[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널무덤과 독무덤을 만들었다.
    2
    권력을 가진 군장이 백성을 다스렸다.
    3
    반량전, 명도전 등의 화폐를 사용하였다.
    4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움집이 나타났다.
    5
    우경이 시작되어 깊이갈이가 가능해졌다.
    해설

    보도 자료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 발굴 현장을 소개하면서, 최하층에서 이른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어 (가) 시대가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밖에 화살촉·갈돌·갈판 등의 석기가 나왔다고 전한다. 이는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보여 주는 대표적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강가나 바닷가에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바닥이 둥글거나 모서리가 둥근 네모꼴인 움집을 짓고 살았다. 갈돌과 갈판은 채집하거나 수확한 곡물을 가는 데 쓰인 간석기이다.

    나머지는 다른 시대의 특징이다. 널무덤과 독무덤, 반량전·명도전 같은 중국 화폐의 사용은 철기 시대에 해당하고, 권력을 가진 군장이 백성을 다스린 것은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 이후이며, 우경이 시작되어 깊이갈이가 가능해진 것은 삼국 시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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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나라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2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3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8조법을 만들었다.
    4
    대가들이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렸다.
    5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소나 말로 변상하였다.
    해설

    제시된 유물은 중국 지린성 라오허선에서 출토된 말 모양 장식의 허리띠 고리이다. 설명에서는 이 말 장식이 농사와 함께 목축을 중시한 나라의 특징을 보여 주며, 그러한 특징이 마가(馬加) 등 주요 지배 세력의 명칭에도 나타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가) 나라는 부여이다.

    부여에서는 마가·우가·저가·구가 등의 여러 가(加)들이 사출도를 다스렸고,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행사인 영고를 열어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즐기고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풍습이다. 민며느리제는 옥저, 8조법은 고조선, 대가들이 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것은 고구려,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소나 말로 변상하게 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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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비석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고구려의 관등명이 기록되어 있다.
    2
    고구려가 신라를 동이(東夷)로 칭하고 있다.
    3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 비석이다.
    4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진출하였음을 보여준다.
    5
    고구려가 신라의 요청으로 왜를 격퇴한 사실이 나타나 있다.
    해설

    비문에는 “고(구)려 대왕의 조왕(祖王)께서 태자 공, 대사자 다우환노 등에게 명하여 이곳에 이르러 매금(寐錦)을 만나도록 하였다”, “동이(東夷) 매금과 그 관리들에게 의복을 내리라 하였다”는 구절이 보이고, 지도에는 남한강 중류의 충주 지역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매금은 마립간, 곧 신라 왕을 가리키므로 이 비석은 충주(중원) 고구려비입니다.

    따라서 대사자 같은 고구려 관등명이 새겨져 있고, 신라를 동이라 낮춰 부르며 의복을 하사하는 상하 관계를 드러내며, 세워진 자리가 남한강 유역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남한강 유역 진출을 보여 준다는 설명이 모두 성립합니다. 또한 만주가 아닌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 비석이라는 점도 이 비석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반면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아 왜를 격퇴한 내용은 이 비석이 아니라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광개토 대왕릉비에 실려 있습니다. 400년 광개토 대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그것이므로, 이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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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2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켰다.
    3
    고구려가 낙랑군을 축출하였다.
    4
    신라가 금관가야를 복속시켰다.
    5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군을 물리쳤다.
    해설

    (가)는 신하들이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 라(羅)는 사방(四方)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하여 왕이 따랐다는 내용으로,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확정한 503년의 일입니다.

    (나)는 백제 왕 명농이 가량(가야)과 함께 관산성을 공격하다가 신라의 고간 도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내용입니다. 명농은 성왕의 이름이므로 554년 관산성 전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두 사건 사이는 6세기 초부터 중엽까지의 시기이며, 이 사이에 해당하는 사실은 법흥왕이 532년 금관가야를 복속시킨 일입니다.

    웅진 천도(475년)와 고구려의 낙랑군 축출(313년)은 (가)보다 앞서고, 대야성 함락(642년)과 매소성 전투(675년)는 (나)보다 뒤의 일이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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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자료는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정벌하게 하였고 군사가 모두 113만 3800명이었으며 군량 운반자는 그 배가 되었다는 기록, 그리고 우중문의 군대가 오골성에 주둔하자 고구려가 군사를 내어 군수품 수레를 습격했다는 기록입니다. 곧 612년 수 양제의 고구려 침입입니다.

    <보기>에서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거둔 대승은 바로 이 전쟁의 결정적 장면으로, 우중문·우문술이 이끈 30만여 별동대가 거의 전멸했습니다. 무리한 원정 실패로 국력이 소모되고 반란이 잇따라 수가 멸망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설명도 옳습니다.

    반면 안시성에서 이세민(당 태종)의 대군을 격파한 것은 645년 의 침입 때 일이고, 안동도호부를 요동의 신성으로 옮긴 것은 나당 전쟁 이후 신라가 당 세력을 몰아낸 결과이므로 이 전쟁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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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신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지방의 주요 지역인 담로에 파견되었다.
    2
    성리학을 바탕으로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3
    화백 회의에 참여하여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4
    어려서부터 경당에 들어가 유학과 활쏘기를 배웠다.
    5
    신라 말기 호족과 연계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해설

    그림은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 탑비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대손이지만 아버지 범청이 진골에서 한 등급 떨어져 ‘득난(得難)’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득난은 (가)를 달리 부르는 말이며, 이 신분은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도 17관등 중 제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진골 바로 아래이면서 아찬이 승진의 한계였던 신분은 6두품입니다. 골품제의 벽에 막혀 중앙 정치의 핵심에서 배제된 이들은 학문과 종교로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서 보듯 골품제에 불만을 품은 6두품 지식인들은 신라 말기에 지방 호족과 손을 잡고 사회 개혁을 추구하며 새 왕조 개창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담로에 왕족을 파견한 것은 백제, 성리학으로 불교의 폐단을 비판한 것은 고려 말 신진 사대부, 화백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것은 진골 귀족, 경당에서 유학과 활쏘기를 배운 것은 고구려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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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우산국을 정벌하여 영토로 삼았다.
    2
    9주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3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교육하였다.
    4
    병부 등을 설치하여 지배 체제를 정비하였다.
    5
    인재를 등용하고자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해설

    첫 번째 자료는 왕이 교서를 내려 “김흠돌 등의 악이 쌓이고 죄가 가득 차서 그들이 도모하던 역모가 세상에 드러났다”며 잔당을 소탕했다고 밝힌 내용이고, 두 번째 자료는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에 간직하고 이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며 국보로 삼았다는 내용입니다. 두 사건 모두 신문왕 때의 일입니다.

    신문왕은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왕권을 전제화하였습니다. 만파식적 설화 역시 왕실의 권위와 나라의 안정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문왕은 유교 정치 이념을 뒷받침할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국학을 세워 유학을 교육하였습니다. 또한 9주 5소경 정비, 9서당 10정 편성,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도 그의 업적입니다.

    우산국 정벌은 지증왕, 9주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친 것은 경덕왕, 병부 설치는 법흥왕, 독서삼품과 실시는 원성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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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리었다.
    2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추었다.
    3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4
    위화부 등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분담하였다.
    5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해설

    첫 번째 자료는 왕자 대봉예가 당 조정에 문서를 올려 (가)가 신라보다 윗자리에 있기를 청했다가 “국명의 선후는 강약에 따라 일컫는 것이 아니다”라는 답을 받은 일로, 발해와 신라의 쟁장 사건입니다. 두 번째 자료는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가)의 남해·압록·부여·책성 4부가 모두 고구려의 옛 땅이라 한 기록입니다. 따라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렸고,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무왕의 인안, 문왕의 대흥 같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고, 문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국왕을 칭한 데서 고구려 계승 의식도 뚜렷합니다.

    반면 위화부 등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나눈 것은 발해가 아니라 통일 신라의 중앙 관제입니다. 발해의 중앙 정치 조직은 3성 6부였고, 정당성 아래 충·인·의·지·예·신부를 두어 유교식 명칭을 붙였으므로 이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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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라)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지도는 한강 남쪽 서울 일대의 한성 백제 유적으로, (가) 풍납동 토성, (나) 몽촌토성, (다) 석촌동 2호분, (라) 방이동 1호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풍납동 토성은 한성 도읍기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대부(大夫)’ 글자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어 백제 도성 관련 유적임을 뒷받침합니다. 석촌동 고분군은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고구려 장군총과 같은 계통의 무덤 양식이어서 백제 건국 세력이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었다는 건국 설화를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합니다.

    몽촌토성을 인조가 청의 강요로 군신 관계를 맺은 곳이라 한 설명은 잘못입니다. 그 장소는 병자호란 뒤 항복이 이루어진 삼전도입니다. 또 방이동 고분은 굴식 돌방무덤 계열로, 도굴이 어려워 껴묻거리가 많이 남는 돌무지덧널무덤은 백제가 아니라 신라 경주의 대표적 무덤 양식이므로 이 역시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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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지방을 5방으로 정비하였다.
    2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3
    중앙군으로 9서당을 설치하였다.
    4
    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5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해설

    자료는 (가)가 완산주에 이르자 백성들이 환영하였고, 그가 좌우에게 “신라의 김유신이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의 군대와 함께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는 내용입니다. 백제 부흥을 내세우며 완산주에 자리 잡은 인물이므로 (가)는 견훤입니다.

    견훤은 900년 후백제를 세운 뒤 중국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고 자신의 정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 하였습니다. 이는 후백제의 대외 활동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방을 5방으로 정비한 것은 백제 성왕, 중앙군으로 9서당을 둔 것은 통일 신라 신문왕의 일이며, 광평성 등 정치 기구를 마련하고 국호를 마진으로 고쳐 철원으로 천도한 것은 궁예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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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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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목에 처음으로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2
    서경을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3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4
    전시과 제도를 마련하여 관리에게 토지를 지급하였다.
    5
    권문세족을 견제하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해설

    말풍선의 내용은 “조(租)를 수확량의 10분의 1로 하여 지나친 세금 징수를 금하고, 가난한 백성을 위해 흑창을 설치하라”는 것입니다. 세율을 1/10로 낮추는 취민유도 정책과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 설치는 모두 고려 태조 왕건의 조치입니다.

    태조는 고구려 계승 의식을 내세우며 북진 정책을 폈고,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중시하면서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국경을 청천강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선까지 넓혔습니다.

    12목에 처음 지방관을 파견한 것은 성종,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실시한 것은 광종, 전시과를 처음 마련한 것은 경종,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권문세족을 견제한 것은 공민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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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글이 수록된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왕조의 역사를 백과사전식으로 기록하였다.
    2
    유교 사관에 입각하여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3
    사초,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하였다.
    4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 등이 수록되었다.
    5
    고조선부터 충렬왕 때까지의 역사를 서사시로 정리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중국은 반고로부터 금(金)까지이고, 우리나라는 단군으로부터 본조(本朝)까지”라 하여 중국사와 우리 역사를 나란히 비교하고 운(韻)을 넣어 읊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으니 뚜렷이 중국과 구분되어 나누어져 있도다”, “하느님[釋帝]의 손자 그 이름하여 단군이라”는 시구가 실려 있습니다.

    운문 형식으로 중국사와 우리 역사를 상하권에 나누어 서술하고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내세운 이 책은 충렬왕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입니다. 원 간섭기에 자주 의식을 드러낸 대표적인 역사서입니다.

    따라서 고조선(단군)부터 당대인 충렬왕 때까지의 역사를 서사시로 정리했다는 설명이 이 책의 성격에 들어맞습니다.

    조선 왕조의 역사를 백과사전식으로 기록한 것은 「연려실기술」이나 「동국문헌비고」 같은 조선 후기의 저술이고, 유교 사관에 따라 기전체로 쓴 것은 「삼국사기」,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 민간 설화를 실은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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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자료의 두 인물은 초상과 함께 붙은 설명으로 구분됩니다. (가)는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고 수행 방법으로 교관겸수를 제시한 의천이고, (나)는 수선사 결사를 통해 불교계를 개혁하려 하고 정혜쌍수를 내세운 지눌입니다.

    의천은 송·요·일본 등에서 불경 주석서를 모아 교장(속장경)을 편찬하고 그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습니다. 지눌은 돈오점수를 바탕으로, 단번에 깨친 뒤에도 꾸준히 닦아 나가는 수행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교장 편찬과 돈오점수를 짝지은 것이 옳은 조합입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승려의 활동입니다. 무애가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인물은 원효이고,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한 인물은 의상으로 모두 신라 승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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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묘청이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
    2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을 크게 물리쳤다.
    3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4
    서희가 외교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5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를 수용하자고 주장하였다.
    해설

    제시된 「고려사절요」 기록은 정지상 등이 왕에게 “대동강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으니 신령스러운 용이 침을 토하는 형국”이라며 금을 제압하소서라고 아뢴 장면입니다. 이는 인종 때 서경 출신 세력이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하던 상황을 보여 줍니다.

    정지상·묘청 등의 서경 세력은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 귀족의 반대로 천도가 무산되자, 1135년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는 묘청이 서경에서 난을 일으킨 일이 알맞습니다.

    서희의 외교 담판에 따른 강동 6주 획득(성종), 강감찬의 귀주 대첩(현종), 윤관의 동북 9성 축조(예종), 이자겸의 금 사대 요구 수용 주장(인종 초)은 모두 이 대화보다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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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이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대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2
    원 간섭기에 첨의부로 격하되었다.
    3
    고려 말에 도평의사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4
    최우에 의해 설치되어 인사 행정을 처리하였다.
    5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로 구성되었다.
    해설

    두 자료가 가리키는 ‘이 기구’는 정방입니다. 「역옹패설」에는 유경이 김준과 함께 최의를 죽이고 권력을 왕실에 돌려준 뒤에도 이 기구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탄식하는 내용이, 「고려사」에는 공민왕 5년 6월 왕이 “이 기구는 권신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조정에서 사람들에게 관작을 주는 본의와 어긋난다”며 영구히 폐지하겠다고 한 교서가 실려 있습니다.

    정방은 무신 집권기에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하여 문무 관리의 인사 행정을 처리하던 기구입니다. 국가의 인사권이 사적인 기구로 넘어간 셈이어서, 무신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존속하다가 공민왕의 개혁 과정에서 폐지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간으로 불린 것은 어사대와 중서문하성 낭사, 첨의부로 격하된 것은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도평의사사로 이름이 바뀐 것은 도병마사, 재신과 추밀로 구성된 것은 도병마사·식목도감으로 모두 다른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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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검색 화면의 설명은 12세기경 고려 도공들이 처음 제작한 도자기로, 그릇이 반 건조된 상태에서 무늬를 음각한 뒤 백토나 흑토를 메우고 그 표면을 깎아 내는 기법을 쓴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고려의 독창적 기법인 상감법으로, 해당 문화유산은 상감 청자입니다.

    보기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것은 비취색 청자 매병 표면에 둥근 테두리 안의 학과 구름 무늬를 흰색·검은색으로 새겨 넣은 유물입니다. 어깨가 벌어지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전형적인 고려 매병 형태에 무늬가 빼곡히 상감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유물은 시대나 종류가 다릅니다. 목이 짧고 표면이 거친 토기는 삼국 시대의 것이고, 흰 바탕에 푸른 안료로 나무와 꽃을 그린 청화 백자와 포도 넝쿨을 그린 백자 항아리는 조선의 것이며, 무늬 없이 참외 모양으로 빚은 순청자 병은 상감 기법을 쓰지 않은 청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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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국경 지대인 양계에 설치되었다.
    2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다.
    3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설치되었다.
    4
    유사시에 향토 방위를 맡는 예비군이었다.
    5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설치되었다.
    해설

    개경 환도 결정에 반발해 강화도에서 봉기한 뒤 진도를 거쳐 제주도 항파두리성으로 옮겨 항쟁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삼별초이다. 삼별초는 최우가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든 야별초에서 비롯되어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확대되었고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하였다. 광군은 거란 대비, 별무반은 신기군·신보군·항마군 편성, 홍산 대첩은 최영이 왜구를 물리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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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고려사」 기록은 공양왕 3년 도평의사사의 건의로 시행된 과전법입니다. 자료에 “1품에서 산직(散職)까지를 나누어 18과로 한다”, “경성에 살면서 왕실을 보위하는 자는 시산(時散)을 따지지 않고 등급에 따라 토지를 받는다”라고 하여 전·현직 관리를 모두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전법의 지급 대상 토지는 원칙적으로 경기 지역에 한정하였습니다. 이는 지방 토지에 대한 사전 확대를 막아 국가의 수조권 장악력을 높이려는 조치였습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세습이 금지되었으나, 관리가 죽으면 그 아내에게 수신전을, 부모가 모두 죽고 자녀만 남으면 휼양전을 주어 사실상 세습되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옳은 설명입니다.

    현직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한 것은 고려 경정 전시과이고, 개국 공신에게 인품·행실·공로를 기준으로 토지를 준 것은 태조 때의 역분전이므로 과전법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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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좌수, 별감을 두어 운영하였다.
    2
    문묘를 세워 선현에 제사를 지냈다.
    3
    중앙에 설치되어 지방을 통제하였다.
    4
    흥선 대원군에 의해 대폭 정리되었다.
    5
    풍속 교화와 향촌 자치의 기능이 있었다.
    해설

    (가)는 향약입니다. 「퇴계집」에는 “예의를 해쳐 고을 풍속을 무너뜨리는 자”를 벌하기 위해 이것을 세운다고 하였고, 「율곡전서」에는 가입을 원하는 자에게 먼저 규약문을 보여 몇 달 동안 실행할 수 있는지 스스로 헤아리게 하며 약정(約正)이 여러 사람에게 물어 가입을 허락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향약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의 4대 덕목을 바탕으로 풍속 교화와 향촌 자치의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이황의 예안 향약, 이이의 해주 향약처럼 지역 사정에 맞게 시행되었고, 사림의 향촌 지배 기반이 되었습니다.

    좌수와 별감을 두어 운영한 것은 유향소, 문묘를 세워 선현에 제사한 것은 성균관과 향교, 중앙에 설치되어 지방을 통제한 것은 경재소, 흥선 대원군에 의해 대폭 정리된 것은 서원이므로 향약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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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화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김일손의 사초가 발단이 되었다.
    2
    대윤과 소윤의 권력 다툼이 계기가 되었다.
    3
    도학 정치를 주장한 조광조 등이 제거되었다.
    4
    위훈 삭제에 대한 훈구 세력의 반발이 원인이었다.
    5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설

    대화에서 신하는 “죽은 김종직세조 대왕을 항우에 비유하는 글을 지었다”라고 아뢰고, 왕은 “선왕을 헐뜯었으니 대역죄로 부관참시하고 그 무리들을 능지처참하라”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글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며, 이 사건은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입니다.

    무오사화는 사관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성종실록」 편찬 과정에서 이를 발견한 훈구 세력이 문제 삼으면서 김일손 등 사림이 큰 화를 입었습니다.

    대윤과 소윤의 권력 다툼이 계기가 된 것은 명종 때의 을사사화, 조광조 등이 제거되고 위훈 삭제에 훈구가 반발한 것은 중종 때의 기묘사화이며,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 것은 선조 때 동인 내부의 붕당 분화이므로 이 사화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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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2
    법령을 정비하여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3
    갑인자를 주조하여 활자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4
    청과의 국경선을 정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5
    군역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해설

    자료에서 왕은 “설총이 이두를 제작한 본뜻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함”이라 하면서, 지금의 언문(諺文)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합니다. 이어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백성이 모두 쉽게 깨달아 충신·효자·열녀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입니다.

    세종은 인쇄술에도 힘을 기울여 경자자에 이어 갑인자를 주조하였습니다. 갑인자는 활자의 모양이 정교하고 조립이 편리하여 조선 금속 활자 인쇄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됩니다.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보낸 나선 정벌은 효종,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균역법 시행은 영조 때의 일이므로 이 왕의 재위 기간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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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을묘왜변을 계기로 설치되었다.
    2
    순조가 즉위하면서 혁파되었다.
    3
    국방상 요지인 영이나 진에 배치되었다.
    4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되었다.
    5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였다.
    해설

    역사 용어 사전의 설명에서 (가)는 조선 후기 5군영 가운데 가장 먼저 설치되었고 훈국(訓局)이라고도 불렸으며, 양반과 공·사천을 가리지 않고 병사를 모집하고 일정한 급료를 받는 상비군으로 직업 군인의 성격을 띠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임진왜란 중 선조 때 설치된 훈련도감입니다.

    훈련도감은 명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의 삼수병 체제를 받아들여 포수·사수·살수로 편제되었습니다. 조총을 다루는 포수, 활을 쏘는 사수, 창검을 쓰는 살수를 나누어 훈련시켜 왜군의 조총에 대응하고자 한 것입니다.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화된 것은 비변사, 순조 즉위와 함께 혁파된 것은 정조가 만든 장용영, 국방상 요지인 영이나 진에 배치된 것은 조선 전기의 영진군,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 친위 부대는 고려의 2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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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집현전을 통한 유교 정치의 활성화를 꾀하였다.
    2
    도교 행사를 주관하던 소격서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3
    호락논쟁에 참여하여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였다.
    4
    효종의 사망에 따른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에 대해 기년설을 주장하였다.
    5
    성호사설을 저술하여 자영농 육성을 위한 토지 제도 개혁론을 제시하였다.
    해설

    검색 화면의 (가)는 생몰 연대가 1607년~1689년이고 호가 우암(尤庵)·우재(尤齋)이며, 윤휴를 사문난적이라 비판하고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으며, 희빈 장씨의 소생을 원자로 정한 것을 비판하다 정권에서 밀려난 인물입니다. 이는 서인·노론의 영수 송시열입니다.

    송시열은 효종이 사망한 뒤 벌어진 기해예송에서 자의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기년설(1년)을 주장하였습니다. 효종이 왕위를 이었더라도 차남이므로 사대부의 예와 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고, 이에 맞서 남인은 3년설을 폈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유교 정치를 활성화한 것은 세종, 소격서 폐지를 주장한 것은 조광조, 호락논쟁에서 인물성동론을 편 것은 이간 등 낙론 계열, 성호사설을 저술한 것은 이익이므로 이 인물의 활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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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신숙주가 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썼다.
    2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3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되었다.
    4
    조선 정부의 통제에 반발하여 3포 왜란이 일어났다.
    5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무역이 허용되었다.
    해설

    제시된 글은 왜란 이후 경제적 타격을 입은 대마도주가 교역 재개를 요청하고, 에도 막부도 포로로 잡아간 조선인 일부를 돌려보내며 국교 재개를 청하자, 조선이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포로를 데려오기 위해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한 상황이다. 사명대사의 도일은 1604년의 일로, 이후 1607년부터 회답겸쇄환사가 파견되며 국교가 회복된다.

    국교 재개 뒤 일본과의 무역은 1609년 기유약조로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왜관 역시 두모포를 거쳐 1678년 초량으로 옮겨져 이곳에서만 통제된 범위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어 제한된 무역이 허용되었다는 내용이다.

    나머지는 모두 임진왜란 이전의 사실이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1419년(세종 1), 신숙주가 일본을 다녀와 지은 해동제국기는 1471년, 계해약조는 1443년, 조선의 통제에 반발한 3포 왜란은 1510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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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홍문관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다.
    2
    서얼 출신의 학자들을 검서관에 기용하였다.
    3
    신진 인사를 등용하기 위해 현량과를 실시하였다.
    4
    만권당을 설치하여 중국 학자들과 교류를 확대하였다.
    5
    관학 진흥을 위해 국자감에 7재라는 전문 강좌를 개설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주합루는 창덕궁 후원에 세워졌으며 그 안에 왕의 어제·어필과 도서를 관리하고 정책 연구를 담당한 기구, 곧 규장각이 있었다. 기사에서 이 기구가 37세 이하의 당하관 중 뽑힌 문신을 교육하며 한 달에 두 번의 구술과 한 번의 필답으로 평가했다고 한 것은 초계문신제를 가리키며, 배출된 인물로 정약용과 김조순이 언급된다. 따라서 (가)는 정조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왕권을 뒷받침하는 학술·정책 기관으로 키우면서,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 등용되지 못했던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등을 검서관으로 발탁하였다. 이는 서얼 허통 요구를 수용한 조치이자 규장각 운영의 실무를 맡긴 인사였다.

    홍문관을 처음 설치한 것은 성종, 현량과를 실시한 것은 조광조의 건의를 받아들인 중종 때의 일이다. 만권당은 고려 충선왕이 원의 연경에 세운 것이고, 국자감에 7재를 둔 것은 고려 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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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건의에 따라 실시된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영의정 이원익이 방납의 폐단을 지적하며, 별도의 담당 관청을 두고 토지 1결마다 봄·가을 두 번에 걸쳐 각각 쌀 8두씩을 거두어 그 쌀로 물건을 조달하게 하자고 건의한 내용이다. 이는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대동법의 실시 배경으로, 지문에서 특히 경기도의 폐단이 심하다고 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동법으로 국가가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사들이게 되면서, 관청의 주문을 받아 물품을 조달하는 어용 상인인 공인이 등장하였고 이는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동법의 실무는 새로 설치된 선혜청이 담당하였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공인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는 것과 선혜청이 관련 업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한 것은 흥선 대원군이 시행한 호포제이고, 토지 소유자에게 1결당 2두의 결작을 부과한 것은 영조 때 군포를 1필로 줄이면서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 시행한 균역법의 내용이므로 대동법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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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소설이 쓰여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풍속화를 그리는 화원
    2
    홍길동전을 읽고 있는 여인
    3
    교정도감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관리
    4
    시사(詩社)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는 중인
    5
    송파나루에서 산대놀이 공연을 벌이는 광대
    해설

    제시된 소설은 허생이 만 금을 얻어 안성에 머물며 대추·밤·감·석류·귤·유자 등 과실을 두 배 값에 모두 사들여 저장하자 온 나라가 잔치와 제사를 치르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장사꾼들이 10배의 값을 치르고 되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매점매석을 통한 도고 상업의 폐단을 그린 박지원의 허생전으로, 18세기 후반 조선 후기의 작품이다.

    이 시기에는 김홍도·신윤복 같은 화원이 풍속화를 그렸고,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이 널리 읽혔으며, 중인들이 시사를 조직해 시를 짓고 낭송하는 위항 문학이 유행하였다. 또 송파나루 등 장시와 나루터에서 산대놀이와 탈춤 공연이 성행하였다.

    반면 교정도감은 고려 무신 집권기에 최충헌이 설치한 최고 권력 기구로, 조선 후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교정도감에서 회의하는 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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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전시 안내문은 추사 김정희 특별전이며, 대표 전시 작품 (가)에 대해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제자 이상적이 청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것에 대한 답례로 그려준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곧 세한도를 가리킨다.

    세한도는 헐벗은 땅에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 그리고 둥근 창이 뚫린 소박한 집 한 채만을 마른 붓질로 그린 가로로 긴 문인화이다. 화면 오른쪽에 '세한도(歲寒圖)'라는 화제와 낙관이 있으며,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에 기대어 변치 않는 제자의 의리를 기린 작품이다. 보기 가운데 이런 특징을 지닌 그림이 (가)에 해당한다.

    나머지 그림들은 나비와 벌, 가지 등 풀과 벌레를 채색으로 그린 초충도이거나, 바위산·소나무 숲을 담채로 그린 산수화로, 담백한 먹선만으로 그린 김정희의 문인화와는 화풍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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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화폐가 유통되던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벽란도에서 국제 무역이 성행하였다.
    2
    담배, 면화 등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3
    보부상이 장시를 돌아다니며 활동하였다.
    4
    송상이 전국 여러 곳에 송방을 설치하였다.
    5
    수리 시설의 확충으로 이앙법이 확산되었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숙종실록의 기록으로, 허적·권대운 등이 돈을 유통시키자고 청하자 왕이 호조·상평청·진휼청 등에 명하여 (가)를 주조하고 돈 400문을 은 1냥의 값으로 정해 시중에 유통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1678년(숙종 4) 상평통보를 법화로 채택해 전국적으로 유통시킨 사실이다.

    상평통보가 유통된 조선 후기에는 담배·면화·인삼 등 상품 작물 재배가 활발해졌고, 보부상이 장시를 돌며 물화를 유통시켰으며, 개성의 송상이 전국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또 저수지 등 수리 시설이 확충되면서 이앙법이 널리 퍼져 노동력 절감과 광작이 가능해졌다.

    반면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송·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드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것은 고려 시대의 일이다. 따라서 상평통보 유통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은 것은 벽란도에서 국제 무역이 성행하였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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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 (마)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 무덤이 있다.
    2
    (나) - 웅진 시기의 궁궐터가 남아 있다.
    3
    (다) - 왕궁의 배후 산성이었다.
    4
    (라) - 백제 금동 대향로가 출토되었다.
    5
    (마) - 금제 사리 봉안기가 발견되었다.
    해설

    답사 계획서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3일에 걸쳐 도는 일정이다. 1일차는 (가) 송산리 고분군과 (나) 공산성, 2일차는 (다) 부소산성·(라) 정림사지를 비롯한 관북리 유적·부여 나성·능산리 고분군, 3일차는 (마)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답사한다.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에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이 있고, 공산성은 웅진 도읍기의 왕성으로 궁궐터가 남아 있다. 부여의 부소산성은 사비 왕궁의 배후 산성이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는 사탑 건립 내력을 적은 금제 사리 봉안기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백제 금동 대향로는 정림사지가 아니라 부여 능산리 절터의 공방터에서 출토되었다. 정림사지에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이 남아 있다. 따라서 옳지 않은 설명은 정림사지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가 출토되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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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 (라)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 (라)
    2
    (가) - (나) - (라) - (다)
    3
    (나) - (가) - (다) - (라)
    4
    (나) - (가) - (라) - (다)
    5
    (다) - (라) - (가) - (나)
    해설

    각 사건을 확인하면 (가)는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군대와 낭인을 건청궁에 난입시켜 왕비를 시해한 을미사변으로 1895년 10월, (나)는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직후 러시아·프랑스·독일 공사가 랴오둥 반도의 반환을 요구한 삼국 간섭으로 1895년 4월의 일이다.

    (다)는 심순택 등이 여러 차례 황제 즉위를 진언하고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가 이어지자 왕이 아홉 번의 사양 끝에 이를 수용한 것으로, 1897년 10월 대한 제국 수립과 고종의 황제 즉위 과정이다. (라)는 러시아 장교 4명과 수병 100여 명이 공사관 보호를 명목으로 한성에 들어오고, 왕과 왕태자가 궁녀의 가마를 타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긴 아관파천으로 1896년 2월이다.

    따라서 시간 순서는 삼국 간섭(1895년 4월) → 을미사변(1895년 10월) → 아관파천(1896년 2월) → 대한 제국 수립과 황제 즉위(1897년 10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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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신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천도교의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2
    정부가 발행하는 순한문 신문이었다.
    3
    신문지법의 적용을 받아 폐간되었다.
    4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었다.
    5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해설

    대화에서 두 인물은 (가)가 박문국에서 발행되며 외국 소식까지 번역해 기사를 싣는다고 하고, 한 달에 세 번씩 발간되는데 기사의 절반 이상이 외국에 관한 것이어서 세상의 형세를 잘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열흘마다 한 번, 즉 순간(旬刊)으로 나온 이 신문은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한성순보는 개화 정책의 일환으로 설치된 박문국에서 정부가 발행한 관보 성격의 신문으로, 기사는 모두 순한문으로 작성되었다.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이 불타면서 폐간되었다가 뒤에 국한문 혼용의 한성주보로 이어졌다.

    천도교 기관지는 만세보이고,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은 것은 황성신문이며, 국채 보상 운동 확산에 앞장선 것은 대한매일신보이다. 신문지법은 1907년에 제정된 법이므로 그 이전에 폐간된 이 신문과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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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한성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2
    구본신참을 개혁의 원칙으로 표방하였다.
    3
    흥선 대원군이 청에 납치되는 원인이 되었다.
    4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5
    김윤식을 청에 영선사로 파견하는 배경이 되었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전에는 개화당을 꾸짖는 자가 많아도 개화가 이롭다는 말을 크게 꺾지는 못했는데, 김옥균 등이 주도한 (가)를 겪은 뒤부터 조야에서 모두 "개화당이라는 자들은 충의를 모르고 외국인과 연결하여 나라를 팔고 종사를 배반하였다"고 말한다는 내용이다. 급진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갑신정변(1884)에 대한 여론 악화를 보여준다.

    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끝났고, 이 과정에서 일본 공사관이 불타고 일본인이 사망하자 일본은 조선에 책임을 물어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비 부담을 규정한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어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어 양국 군대를 철수하고 파병 시 사전 통보하기로 하였다.

    구본신참은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이 내건 원칙이고, 흥선 대원군이 청에 납치된 것은 임오군란의 결과이다. 부산·원산·인천의 개항은 강화도 조약에 따른 것이며, 김윤식을 영선사로 청에 파견한 것은 1881년 근대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한 조치였으므로 모두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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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그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탁지부에서 국가 재정을 전담할 것을 주장하였다.
    2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진주성을 점령하였다.
    3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4
    홍경래의 주도로 난을 일으켜 선천, 정주 등을 장악하였다.
    5
    보국안민을 내세우며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해설

    제시된 통문에는 “벌레같은 왜적들이 날뛰어 수도를 침범”, “각 접(接)들은 힘을 합하여 왜적을 쳐야 한다”는 구절과 함께, 녹두라 불리는 자가 전라도에서 병력 수십만 명을 이끌고 공주·삼례에 이르러 진을 치고 보은의 병력과 호응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접’이라는 조직 단위와 ‘녹두(전봉준)’, 그리고 삼례 집결·보은 호응이라는 정황은 1894년 동학 농민군의 제2차 봉기를 가리킨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반발해 남접과 북접이 논산에서 연합한 뒤 서울로 북상하던 국면이다.

    따라서 밑줄 그은 ‘그들’은 동학 농민군이며, 이들은 보국안민을 기치로 내걸고 공주로 향하다가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 연합 부대에 맞서 싸웠으나 화력의 열세로 크게 패하였다.

    탁지부 중심의 재정 일원화 주장은 독립 협회 계열의 개혁 요구이고, 유계춘의 진주 봉기와 홍경래의 난은 19세기 전반의 농민 항쟁이며, 황무지 개간권 반대 운동은 1904년 보안회의 활동이므로 이 통문의 세력과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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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연통제를 통해 독립 운동 자금을 모았다.
    2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3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4
    관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정부에 헌의 6조를 건의하였다.
    5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통감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해설

    대화에는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대한매일신보 주필 양기탁과 함께 이 단체를 조직했고, 양기탁이 총감독을, 안창호가 신입 회원의 자격을 심사하는 집행원을 맡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안창호·양기탁이 주도하고 회원 자격을 심사해 받아들이는 비밀 결사 형태라는 점에서 이 단체는 1907년에 결성된 신민회이다. 신민회는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신민회는 실력 양성을 위해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고, 태극 서관과 자기 회사를 운영하며 남만주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 하였다. 이 단체는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드러나 해체되었다.

    연통제와 파리 강화 회의 청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관민 공동회와 헌의 6조는 독립 협회,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으로 해산된 단체는 대한 자강회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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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일본 국왕이 탄 마차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2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3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4
    명동 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습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5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하였다.
    해설

    자료는 일본 미야기 현 다이린 사(大林寺)에 세워진 유묵비를 소개하고 있다. 비석의 주인공은 하얼빈 의거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던 인물이며, 사형장으로 향하기 직전 헌병 간수 지바 도시치에게 써 준 글씨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고 설명한다.

    하얼빈 의거, 뤼순 감옥 수감, 그리고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유묵은 모두 안중근을 가리키는 결정적 단서다. 그는 자신을 대한 의군 참모중장으로 칭하며 의거가 군인의 정당한 전쟁 행위임을 주장하였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고, 이듬해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일왕의 마차 행렬에 폭탄을 던진 인물은 이봉창, 스티븐스를 저격한 인물은 장인환·전명운, 이완용을 습격한 인물은 이재명, 훙커우 공원 의거의 주인공은 윤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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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만세 운동’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105인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2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4
    연해주에서 대한 광복군 정부가 수립되는 배경이 되었다.
    5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해설

    화면 속 사진은 고종의 인산(因山) 행렬 장면이며, 설명자는 손병희 등 종교계 인사들과 학생 대표들이 인산일에 많은 군중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대규모 만세 운동을 추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고종의 인산일(1919년 3월 3일)을 계기로 삼아 종교계와 학생층이 연합해 준비한 만세 운동은 3·1 운동이다. 민족 대표들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학생·시민이 탑골 공원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작되어 전국과 국외로 확산되었다.

    일제는 제암리 학살 등 무단적 탄압으로 대응했지만, 거족적 저항에 부딪혀 통치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는 등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105인 사건은 신민회 탄압 사건이고,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이며, 대한 광복군 정부는 1914년에 세워져 이 운동보다 앞서고, 준비 과정에서 사회주의자가 대거 검거된 것은 6·10 만세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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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가상 뉴스의 보도 내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뉴스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개정된 임시 헌장에 따라 의정원 회의를 열어 한국 독립당의 김구를 주석, 조선 민족 혁명당의 김규식을 부주석으로 선출하였고, 이로써 임시 정부가 좌우 독립운동 세력이 결집한 형태의 정부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한다.

    주석·부주석제를 규정한 것은 1944년의 제5차 개헌이다. 김구가 주석, 김규식이 부주석에 오르면서 좌익 계열인 민족 혁명당 인사들이 임시 정부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된 시기다.

    연표는 1919년 임시 정부 수립, 1923년 국민 대표 회의 개최, 1931년 한인 애국단 조직, 1935년 한국 국민당 창당, 1941년 대한민국 건국 강령 발표, 1945년 광복을 차례로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1944년의 이 개편은 건국 강령 발표(1941)와 광복(1945) 사이 구간, 즉 연표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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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중·일 전쟁 발발 직후에 조직되었다.
    2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강령으로 삼았다.
    3
    고종의 밀지를 받아 결성된 비밀 무장 단체였다.
    4
    중국군과 함께 쌍성보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5
    미군의 지원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해설

    전시 자료는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 단체를 소개하는 장면으로, 일제 경찰이 작성한 감시 대상 인물 카드에 (가) 단원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고 설명한다. 그중 조선 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단장 김원봉의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하였다.

    단장이 김원봉이고 김익상이 단원이라는 점에서 (가)는 1919년 만주 지린에서 결성된 의열단이다. 의열단은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 통치 기관 파괴를 노선으로 삼아, 김익상의 조선 총독부 투탄, 나석주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 투탄,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투탄 등을 실행하였다.

    김원봉의 요청으로 신채호가 1923년에 집필한 조선 혁명 선언은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며 의열단의 활동 강령이 되었다.

    중일 전쟁 직후 결성된 것은 조선 의용대, 고종의 밀지로 결성된 비밀 무장 단체는 독립 의군부, 쌍성보 전투는 한국 독립군, 미군 지원의 국내 진공 작전은 한국광복군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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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종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위정척사를 내세워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2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에 기여하였다.
    3
    경향신문을 발행하여 민중 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4
    단군 숭배 사상을 전파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5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소년 운동을 주도하였다.
    해설

    자료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포 서일을 소개하면서, 그가 (가)의 3종사(宗師) 중 한 사람으로 진리도설(眞理圖說), 회삼경(會三經) 등의 저술을 통해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중광단, 정의단, 군정부, 북로 군정서, 대한 독립 군단을 이끌며 만주 지역 항일 운동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하였다.

    ‘3종사’와 회삼경 같은 저술, 그리고 중광단·북로 군정서로 이어지는 만주 무장 투쟁의 계보는 나철이 1909년에 중광한 대종교를 가리킨다. 서일은 대종교 신자들을 모아 중광단을 만들었고 이것이 북로 군정서로 발전해 청산리 대첩의 주력이 되었다.

    대종교는 단군 숭배 사상을 교리의 중심에 두고 이를 전파함으로써 민족의 뿌리를 자각하게 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교단 본부를 만주로 옮기고 무장 독립 전쟁에 앞장섰다.

    영남 만인소는 유생들의 위정척사 운동, 배재 학당과 경향신문은 각각 개신교와 천주교의 활동, 잡지 어린이 발간과 소년 운동은 천도교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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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이곳’에서의 민족 운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권업회를 세우고 신문을 발행하였다.
    2
    한인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설치하였다.
    3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고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4
    서전서숙, 명동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5
    조선 청년 독립단을 조직하고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해설

    대화 속 인물들은 갤릭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이곳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며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고, 그래도 대한인 국민회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 준다고 위안을 삼는다.

    갤릭호는 1902년 말 인천을 출발한 최초의 공식 이민단이 태평양을 건널 때 탔던 배로, 이들이 도착한 곳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력이 필요했던 하와이이다. 미주 한인 사회는 1910년 대한인 국민회로 통합되어 동포의 권익 옹호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담당하였다.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1914년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여 둔전병 방식으로 군사 훈련을 실시하며 무장 투쟁을 준비하였다.

    권업회와 권업신문은 연해주,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는 서간도, 서전서숙·명동 학교는 북간도,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에서 전개된 민족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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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암태도 소작 쟁의에 영향을 주었다.
    2
    비합법적 노동 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
    일본 상품의 관세가 철폐되는 계기가 되었다.
    4
    조선 노농 총동맹이 창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5
    일본, 프랑스 등의 노동 단체로부터 격려 전문을 받았다.
    해설

    칠판 정리에 따르면 (가) 사건은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일어났고, 문평 라이징 선 석유 회사의 일본인 감독 고다마가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일이 발단이 되었다. 문평 제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파업이 시작되어 노동 연합회가 지원하면서 확대되었고,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이 지속되었다.

    결과는 함남 노동회를 이용한 회유와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실패했으며, 의의는 1920년대 최대 규모의 파업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1929년의 원산 총파업이다.

    원산 총파업은 넉 달 가까이 이어지며 항일 운동의 성격을 띠었고, 이 소식이 국외에 알려지면서 일본, 프랑스 등지의 노동 단체로부터 격려 전문을 받아 국제적 연대의 성격을 보여 주었다.

    암태도 소작 쟁의는 1923~1924년의 농민 운동으로 원산 총파업보다 앞서고, 조선 노농 총동맹 창립은 1924년의 일이며, 일본 상품 관세 철폐(1923)는 물산 장려 운동의 배경이므로 이 사건과 연결되지 않는다. 또한 이 파업은 칠판에 적힌 대로 원산 노동 연합회 산하의 합법적 노동조합이 이끌었으므로 비합법 조합 중심의 운동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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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우리말 큰사전 편찬 사업을 추진하였다.
    2
    구미 위원부를 설치하여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3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기본 강령을 발표하였다.
    4
    토지 개혁 실시를 포함한 좌·우 합작 7원칙을 제시하였다.
    5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계획하였다.
    해설

    자료는 이 단체가 1927년 2월‘민족 유일당 민족 협동 전선’이라는 기치 아래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되었고, 창립 총회에서 이상재를 회장으로 선출하였으며 창립 10개월 만에 지회가 100개를 돌파할 정도로 성장하였다고 설명한다.

    1927년 좌우 합작으로 출범해 이상재를 회장으로 삼은 이 단체는 신간회로, 일제 강점기 국내 최대의 합법적 항일 사회단체였다. 자매 단체로 여성 운동 조직인 근우회가 함께 조직되었다.

    신간회는 각지에 지회를 두고 강연회를 열어 민중을 계몽하였으며,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조사단을 파견하고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간부들이 대거 검거되었고, 이후 집행부가 타협적으로 바뀌면서 1931년 해소되었다.

    우리말 큰사전 편찬은 조선어 학회, 구미 위원부 설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삼균주의에 기초한 강령은 한국 독립당과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 좌우 합작 7원칙은 광복 이후 좌우 합작 위원회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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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글을 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 조선사 편찬에 참여하였다.
    2
    진단 학회에 참여하여 진단 학보 발간에 기여하였다.
    3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독립 투쟁 과정을 서술하였다.
    4
    독사신론을 발표하여 민족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두었다.
    5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식민주의 사학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해설

    자료는 갑자년(1864)부터 신해년(1911)까지의 역사를 3편 114장으로 엮어 통사(痛史)라 이름 붙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흥선 대원군 집권부터 국권 피탈 직후까지를 '아픈 역사'로 정리한 이 책은 박은식의 『한국통사』이며, '우리 동포들에게 국혼(國魂)이 담겨 있다'는 구절은 나라의 형체(國魄)는 망해도 정신인 국혼은 살아 있다는 그의 역사관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 이어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갑신정변 이후 3·1 운동에 이르는 독립 투쟁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인물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이병도·손진태 등이 진단 학회를 세워 『진단 학보』를 냈고, 『독사신론』으로 민족을 역사 서술의 주체로 세운 이는 신채호이며,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유물 사관으로 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한 이는 백남운입니다. 조선사 편수회 참여는 이병도·신석호 등 일제 관변 사학과 관련된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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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일제의 회사령 폐지에 영향을 받았다.
    2
    김광제, 서상돈 등의 발의로 본격화되었다.
    3
    평양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
    산업 육성을 통한 민족의 실력 양성을 도모하였다.
    5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자본가의 이익만을 우선시한다고 비판받았다.
    해설

    자료의 사진은 시가 행진 장면이고, 이 운동을 주도한 단체가 창립 총회에서 정한 지침으로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을 계발하여 산업을 장려한다”, “조선인의 산품(産品)을 애용하여 산업을 융성하게 한다”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국산품 애용과 산업 장려를 내건 이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으로, 1920년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배경에는 1920년 회사령 폐지(허가제→신고제)와 뒤이은 관세 철폐 움직임으로 일본 자본의 침투가 거세지자 민족 자본을 지키려 한 사정이 있었고, 목표는 산업 육성을 통한 실력 양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사회주의 계열로부터 결국 자본가·상인의 이익만 챙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잘못된 설명은 김광제·서상돈의 발의로 본격화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은 1907년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을 발의한 인물로, 나라가 진 빚 1,300만 원을 국민 모금으로 갚자는 이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과 시기도 성격도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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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밑줄 그은 ‘석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프랑스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침략하였다.
    2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점령하였다.
    3
    일본이 러·일 전쟁 중에 불법적으로 편입하였다.
    4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위해 조차를 요구하였다.
    5
    일본이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청에 귀속시켰다.
    해설

    화면의 문서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년 반포)로, 제2조에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관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石島)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면서 관할에 넣은 석도(石島)는 '돌섬'을 한자로 옮긴 이름으로,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킵니다. 대한제국이 독도를 행정 구역으로 명시해 관리했음을 보여 주는 핵심 사료입니다.

    이 섬에 해당하는 사실은 일본이 러·일 전쟁 중 불법으로 자국 영토에 편입했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은 1905년 이른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이 섬을 '다케시마'라 칭하며 편입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영토 주권을 침해한 조치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섬의 역사입니다. 프랑스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침략한 곳은 강화도(병인양요), 영국이 러시아 남하를 견제한다며 불법 점령한 곳은 거문도(1885~1887),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위해 조차를 요구한 곳은 절영도, 일본이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청에 넘긴 곳은 간도(간도 협약, 1909)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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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성명서가 발표되었던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성명서는 “남북 제 정당 사회 단체” 지도자들이 외국 군대 철수 이후 내전이 없을 것임을 확인하고, “남조선 단독 선거”를 반대하며 그것이 민족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기만적 선거라고 규정한 글입니다. 이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협상(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김구·김규식 등이 참여해 발표한 공동 성명서입니다.

    연표는 1945.8 광복 — 1945.12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 1946.3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 1947.5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 1947.11 유엔 총회의 남북한 총선거 결정 — 1948.7 대한민국 헌법 공포로 이어집니다. 남북 협상은 유엔 소총회의 남한만의 단독 선거 결정(1948.2)에 반대해 추진된 것이므로, 1947년 11월 이후이면서 1948년 5·10 총선거와 7월 헌법 공포 이전에 놓입니다.

    따라서 이 성명서가 발표된 시기는 유엔 총회의 남북한 총선거 결정(1947.11)과 대한민국 헌법 공포(1948.7) 사이 구간인 (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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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2
    칠레와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하였다.
    3
    미국의 경제 원조로 소비재 산업이 발달하였다.
    4
    제3차 경제 개발 계획으로 중화학 공업이 육성되었다.
    5
    개성 공단 건설을 통해 남북 간 경제 교류가 이루어졌다.
    해설

    (가)는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으로 3년 동안 매년 10%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내용으로, 1980년대 후반의 상황입니다. (나)는 외환 위기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 국가 부도는 면했으나 기업 구조 조정과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는 내용으로, 1997년의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두 자료 사이는 대체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7년까지이며, 이 시기의 경제 사실로 옳은 것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입니다.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6년에 이루어졌고, 자본 시장 개방의 확대는 이듬해 외환 위기의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납니다. 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FTA)은 2003년 체결되어 2004년 발효된 우리나라 최초의 FTA이고, 미국의 경제 원조에 따른 소비재(삼백) 산업 발달은 1950년대이며,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중화학 공업 육성은 1970년대, 개성 공단 가동은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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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과 같은 헌법 개정의 결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국회의원의 임기가 6년으로 정해졌다.
    2
    정부 형태가 내각 책임제로 바뀌게 되었다.
    3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이 철폐되었다.
    4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추천하게 되었다.
    5
    임기 7년 단임의 대통령 간접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해설

    자료의 표결 수치를 보면 재적 의원 203명, 재석 202명 가운데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가 나왔습니다. 개헌에 필요한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 3분의 2 이상인 136표였으므로 1표가 모자라 일단 부결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당은 재적 203명의 3분의 2가 135.333…이니 사사오입하면 135명이 정족수가 된다고 주장하며,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번복 가결 동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것이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제2차 개헌)입니다.

    이 개헌의 핵심 내용은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한 것으로, 이승만의 장기 집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다른 항목은 각각 다른 개헌에 해당합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추천하고 국회의원 임기를 6년으로 한 것은 1972년 유신 헌법,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전환은 4·19 혁명 직후의 제3차 개헌, 임기 7년 단임의 대통령 간접 선거는 1980년 제8차 개헌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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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9회
    다음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허정 과도 정부 성립의 배경이 되었다.
    2
    양원제 국회가 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에 반대하여 일어났다.
    4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5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냈다.
    해설

    자료는 4월 13일에 대통령이 개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로 헌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하자, 시민들이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를 중심으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발표는 전두환 정부의 4·13 호헌 조치(1987)이며, 이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 6월 민주 항쟁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조작과 이한열의 피격이 알려지면서 항쟁은 전국으로 번졌고, 그 결과 여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건의 결과입니다. 허정 과도 정부 수립양원제 국회 출현은 1960년 4·19 혁명의 결과이고,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에 반대해 일어나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 것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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