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자료의 집터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대의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거친무늬 거울을 사용하였다.
    2
    지배자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만들었다.
    3
    거푸집을 활용하여 청동기를 제작하였다.
    4
    금속제 무기를 사용하여 정복 활동을 벌였다.
    5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었다.
    해설

    자료의 집터는 강가나 해안가에서 주로 발견되고, 4~5명 정도의 가족이 살 크기이며, 바닥이 원형 또는 모서리가 둥근 방형이고 중앙에 화덕, 출입문 옆에 저장 구덩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신석기 시대의 움집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가락바퀴(방추차)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는 원시적 수공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신석기 유적에서 흔히 출토되는 대표 유물입니다.

    반면 거친무늬 거울, 지배자의 무덤인 고인돌, 거푸집을 이용한 청동기 제작은 모두 청동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또 금속제 무기를 사용한 본격적인 정복 활동은 청동기 시대 이후 계급 사회에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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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2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3
    제가 회의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4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
    5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8조법을 만들었다.
    해설

    『삼국지』 동이전의 이 기록은 나라 동쪽의 큰 굴인 수혈(隧穴)과, 10월에 온 나라 사람이 크게 모여 수신(隧神)을 맞아 강가에서 제사 지내는 풍습을 전합니다. 이는 고구려의 제천 행사인 동맹에 대한 서술입니다.

    고구려는 왕 아래 대가들이 각자 세력을 거느린 연맹적 성격이 강하여, 국가의 중대사는 귀족 회의인 제가 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신라의 화백 회의, 백제의 정사암 회의에 대응하는 기구입니다.

    다른 나라의 특징과 구분해야 합니다. 무천은 동예의 제천 행사, 사출도는 부여의 마가·우가·저가·구가가 다스린 지방,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제정 분리 사회를 보여 주며, 8조법은 고조선의 사회 질서 유지 규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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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ㄱ)의 상황 이후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한서』 조선전의 밑줄 부분은 위만이 진번·조선인과 옛 연·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왕이 되고 왕검에 도읍을 정한 상황, 곧 기원전 194년 무렵 위만 조선의 성립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 이후의 사실을 골라야 합니다.

    위만 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 수용하고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남쪽의 진국(辰國)한(漢) 사이에서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 무제와 갈등이 커져 결국 침략을 받게 됩니다.

    또 우거왕 때 대신인 조선상 역계경이 한과의 관계에 대한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하였는데, 이 역시 위만 조선 성립 이후의 사건입니다.

    반면 연의 장수 진개의 공격으로 서쪽 땅을 잃은 것은 기원전 3세기 초의 일이고, 준왕이 부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것도 위만이 집권하기 전의 일이므로 이후의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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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나) 지역에 있었던 가야 소국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 -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2
    (가) - 박, 석, 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3
    (나) - 신라 진흥왕에 의해 정복되었다.
    4
    (나) -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5
    (가), (나) - 이사금이라는 지배자 칭호를 사용하였다.
    해설

    지도에서 (가)는 낙동강 상류 내륙에 표시되어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연결되고, (나)는 남해안 가까이에 표시되어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연결됩니다. 즉 (가)는 대가야, (나)는 금관가야가 있던 지역입니다.

    금관가야는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으나, 400년 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 왜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고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후 가야 연맹의 주도권은 고령의 대가야로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한 것은 (나) 금관가야이지 (가)가 아니며, 금관가야는 532년 법흥왕에게 병합되었고 진흥왕에게 정복된 것(562년)은 (가) 대가야입니다.

    또한 박·석·김 3성의 왕위 교대이사금이라는 칭호는 신라의 특징이므로 두 가야 소국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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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당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2
    성골 출신으로 왕이 된 마지막 인물이다.
    3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4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귀족들을 숙청하였다.
    5
    집사부의 설치를 건의하고 친당 외교를 주도하였다.
    해설

    그림에서 고구려 왕은 “죽령 이북은 본래 우리 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고 압박하고, (가) 인물은 “신하인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귀국의 요구를 따를 수 없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는 642년 대야성 함락 직후 신라가 고구려에 군사를 요청한 장면으로, (가)는 김춘추입니다.

    고구려와의 교섭이 실패하자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을 성사시키는 등 친당 외교를 주도하였습니다. 아울러 진덕 여왕 대에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집사부의 설치를 비롯한 관제 정비를 건의하여 왕권 강화의 기반을 닦았고, 뒤에 진골 최초로 왕위에 올라 태종 무열왕이 되었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각 다른 인물의 업적입니다. 당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한 것은 문무왕,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은 진덕 여왕,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운 것은 선덕 여왕,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귀족을 숙청한 것은 신문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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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자료는 왕 10년에 대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처음 창건하였고, 왕 16년에 관리들에게 매달 주던 녹봉을 없애고 다시 녹읍을 주었다고 전합니다. 불국사 창건(751)과 녹읍 부활(757)이라는 두 사실로 보아 이 왕은 통일 신라 경덕왕입니다.

    경덕왕은 한화 정책을 추진하여 757년에 지방 행정 구역인 9주와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었고, 이어 관직명도 중국식으로 고쳤습니다. 또한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태학감으로 개칭하고 박사·조교를 두어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습니다.

    반면 독서삼품과는 원성왕이 788년에 실시한 관리 선발 제도이고, 성덕 대왕 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를 기리려 주조를 시작했으나 완성되어 봉덕사에 안치된 것은 그의 아들 혜공왕 때(771)이므로 재위 기간의 사실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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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지증왕이 순장을 금지하였다.
    2
    진흥왕이 마운령에 순수비를 세웠다.
    3
    무령왕이 지방에 22담로를 설치하였다.
    4
    신라가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5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
    해설

    (가)는 소지 마립간 15년에 백제 왕 모대(동성왕)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자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나제 동맹을 혼인으로 한층 굳힌 결혼 동맹(493)이다.

    (나)는 백제 왕 명농(성왕)이 가야와 함께 관산성을 공격하다가 신주 군주 김무력의 군대와 교전하던 중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관산성 전투(554) 기록이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중엽까지의 시기이다.

    지증왕의 순장 금지(502), 무령왕의 22담로 설치(6세기 초), 신라 법흥왕의 독자 연호 건원 사용(536), 성왕의 사비 천도와 국호 남부여(538)는 모두 이 기간 안에 일어난 일이다.

    반면 진흥왕이 마운령에 순수비를 세운 것은 관산성 전투 이후 함경도 방면까지 영역을 넓히고 나서인 568년의 일이므로, 두 시기 사이의 사실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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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들어갈 불상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설명문은 이 불상이 국보 제83호이며 머리에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눈·코·입이 뚜렷하고 신체가 균형 잡혔으며 옷주름이 입체적으로 처리된 뛰어난 조각 수법을 보인다고 하였다. 또 일본 고류 사(廣隆寺)의 불상과 모습이 매우 비슷해 우리 고대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흔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의 특징이다. 따라서 (가)에는 세 개의 산 모양 관을 쓰고, 한쪽 다리를 반대쪽 무릎 위에 얹은 채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 자세를 취한 금동 불상이 들어가야 한다.

    나머지 보기의 불상들은 관을 쓰고 곧게 서 있는 보살 입상,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정면을 향해 앉은 좌상, 커다란 배 모양 광배를 등에 두른 여래 입상,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으로, 반가사유의 자세도 삼산관도 갖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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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자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지방관의 근무 성적을 평가한 문서이다.
    2
    국가 물품을 생산하는 수공업자 명부이다.
    3
    이름을 적는 곳이 비어 있는 관직 임명장이다.
    4
    재산 상속과 분배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5
    호구를 남녀별·연령별로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해설

    화면에 걸린 문서는 1933년 일본 도다이 사(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서 발견된 통일 신라 시대의 문서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는 서원경 부근 네 개 촌락의 실태를 적은 신라 촌락 문서(민정 문서)이다.

    이 문서는 촌주가 3년마다 다시 작성하였으며, 호구를 남녀별·연령별로 나누어 파악하고 호의 등급까지 매겼다. 그 밖에 논밭의 면적, 소와 말의 수, 뽕나무·잣나무·호두나무 수까지 적어 조세와 노동력을 거두는 기초 자료로 삼았다.

    지방관의 근무 성적을 매긴 문서, 관영 수공업자의 명부, 이름 칸을 비워 둔 임명장(공명첩), 재산 상속과 분배를 적은 문서는 모두 이 문서의 성격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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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들어갈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주관하였다.
    2
    입학 자격은 생원, 진사를 원칙으로 하였다.
    3
    장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양현고를 두었다.
    4
    전국의 부·목·군·현에 하나씩 설립되었다.
    5
    중앙에서 교관인 교수나 훈도가 파견되었다.
    해설

    자료는 주역·상서·모시·주례·대례·춘추와 무학을 각각 여택·대빙·경덕·구인·복응·양정·강예로 이름 붙이고, 시험으로 뽑은 학생 70명과 무학 8명을 7재(七齋)로 나누어 공부하게 했다는 『고려사』 기록이다. 이는 고려 예종국자감에 둔 전문 강좌이므로 (가)는 국자감이다.

    당시 사학 12도의 융성으로 관학이 위축되자 예종은 7재와 함께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해 학생들의 학비와 학교 운영 비용을 대었고, 학문 연구 기관인 청연각·보문각도 두었다.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주관하고 전국 부·목·군·현에 하나씩 세워졌으며 교관인 교수·훈도가 중앙에서 파견된 곳은 조선의 향교이고, 생원·진사를 입학 자격으로 삼은 곳은 조선의 성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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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2
    궁전 터에서 온돌 장치가 발견되었다.
    3
    고려 국왕을 표방하고 일본과 교류하였다.
    4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5
    지방 세력의 통제를 위해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였다.
    해설

    제시된 도성도와 설명은 상경성에 관한 것이다. 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주작대로가 있으며, 내성은 왕이 사는 궁성구와 관아가 놓인 황성구로 나뉜다고 하였다. 그림에도 남북으로 곧게 뻗은 주작대로를 축으로 북쪽에 궁성과 어화원, 그 아래에 황성이 놓이고 성 안팎으로 제1절터부터 제9절터까지 흩어져 있다. 당의 장안성을 본떠 만든 발해의 수도이다.

    발해는 선왕 무렵 최대 영역을 이루어 해동성국이라 불렸고, 상경성 궁전 터에서 온돌 장치가 나와 고구려 문화를 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고구려) 국왕을 표방하였고, 3성 6부 가운데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반면 지방 세력을 견제하려고 그 자제를 수도에 머무르게 한 상수리 제도는 신라의 제도이므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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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5도 양계의 지방 제도를 확립하였다.
    2
    별무반을 보내어 동북 9성을 개척하였다.
    3
    흑창을 처음 설치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
    4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5
    2성 6부제를 토대로 중앙 통치 조직을 정비하였다.
    해설

    자료는 왕 9년에 한림학사 쌍기에게 명하여 처음으로 과거를 시행해 진사를 뽑았고, 왕 11년에는 백관의 공복을 원윤 이상은 자색, 중단경 이상은 붉은색, 도항경 이상은 비색, 소주부 이상은 녹색으로 정했다는 『고려사』 기록이다. 이는 고려 광종의 개혁 조치이다.

    광종은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을 약화시키고, 과거제와 공복 제정으로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 질서를 세워 왕권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개경을 황도라 부르며 스스로 황제를 칭하였다.

    2성 6부를 토대로 중앙 통치 조직을 정비한 것은 성종, 5도 양계의 지방 제도를 확립한 것은 현종, 별무반을 보내 동북 9성을 개척한 것은 예종, 흑창을 처음 설치한 것은 태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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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일심 사상과 화쟁 사상을 주장하였다.
    2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다.
    3
    외교 문서를 전담하고 청방인문표를 작성하였다.
    4
    국왕에게 조언하는 내용의 화왕계를 저술하였다.
    5
    명망있는 승려의 전기를 기록한 해동고승전을 남겼다.
    해설

    (가)는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계원필경』·『제왕연대력』·『법장화상전』 등을 남긴 인물, 곧 최치원이다.

    귀국한 최치원은 신라 말의 혼란을 바로잡고자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버리고 각지를 떠돌며 은둔하였다.

    일심 사상과 화쟁 사상을 주장한 인물은 원효, 청방인문표 등 외교 문서를 전담한 인물은 강수, 화왕계를 지은 인물은 설총, 『해동고승전』을 남긴 인물은 고려의 각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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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자료의 (가)는 국청사 주지로 있으면서 처음으로 천태교를 강의하고, 이미 전해졌으나 쇠퇴해 있던 천태교를 다시 일으키려 하였으며 인예 태후가 절을 짓기 시작하고 숙종이 이를 마무리했다고 한 인물이다. 이는 대각국사 의천이다.

    보기 중 옳은 것은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든 일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한 일이다. 의천은 송·요·일본에서 모은 불교 주석서의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편찬해 교장을 간행하였고, 숙종에게 주전관 설치를 건의해 해동통보 등 화폐 주조의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 농서인 『농상집요』를 들여와 소개한 인물은 이암이고, 수선사 결사를 통해 불교 개혁 운동을 전개한 인물은 지눌이므로 의천의 활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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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새알심 넣어 팥죽 만들기
    2
    창포 삶은 물에 머리 감기
    3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달맞이하기
    4
    부스럼을 예방하기 위한 부럼 깨기
    5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덕담 주고받기
    해설

    안내문은 12월 22일에 열리는 '액운을 물리치는 작은 설' 체험 행사이다. 밤이 가장 길고 이날을 지나면 해가 다시 길어지는 동지를 가리키며, 새해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작은 설(아세)이라 불렀다.

    체험 활동으로 새해 달력 만들기, 버선 모양 복주머니 만들기,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부적 찍기가 제시되어 있는데 모두 동지의 풍속이다. 따라서 (가)에도 동지 풍속이 들어가야 한다.

    동지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은 새알심을 넣어 팥죽을 쑤어 먹는 것으로, 붉은 팥의 색이 잡귀와 액운을 물리친다고 믿어 대문이나 벽에 뿌리기도 하였다.

    창포 삶은 물에 머리 감기는 단오, 달맞이와 부럼 깨기는 정월 대보름, 세배와 덕담 주고받기는 설날의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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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두 사건의 공통점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자겸이 주도하였다.
    2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3
    무신 정권을 타도하려고 하였다.
    4
    고구려 부흥을 기치로 내세웠다.
    5
    강조의 정변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
    해설

    첫째 자료는 동북면 병마사 간의대부가 동계에서 군사를 일으켜 전(前) 왕을 복위시키려 하고, 동북면 지병마사 한언국이 호응하여 장순석 등이 거제에 있던 전 왕을 계림에 모시게 했다는 김보당의 난이다. 폐위된 의종을 다시 세우려 한 문신 세력의 봉기였다.

    둘째 자료는 어떤 인물이 동계·북계의 여러 성에 격문을 돌려 "개경 중방에서 북계의 성들을 토벌하려 군사를 동원했다니 각자 군사와 말을 모아 서경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호소하자 절령 이북 40여 성이 호응했다는 조위총의 난이다.

    두 사건은 모두 정중부 등이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뒤 일어났으며, 무신들의 최고 회의 기구인 중방이 주도하던 무신 정권을 타도하려 한 반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자겸이 주도한 난, 서경 천도를 내세운 묘청의 난, 고구려 부흥을 기치로 삼은 반란, 그리고 거란의 침입 구실이 된 강조의 정변은 이 두 사건과 성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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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왕명을 받아 연대순으로 편찬하였다.
    2
    불교 중심의 고대 민간 설화를 수록하였다.
    3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다.
    4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5
    고구려 건국 영웅을 서사시 형태로 서술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이(神異)한 일로 탄생했음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것이 기이(紀異)편을 책 첫머리에 실은 까닭”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임금이 일어날 때는 부명(符命)을 받고 도록(圖籙)을 얻는다는 서술도 함께 나오는데, 이는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의 서문입니다.

    『삼국유사』는 단군 신화를 비롯한 건국 설화와 향가, 불교 관련 이야기를 폭넓게 담았습니다. 즉 불교 중심의 고대 민간 설화와 신이한 전승을 수록한 역사서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반면 『삼국유사』는 왕명이 아니라 일연이 개인적으로 저술한 사서입니다. 왕명을 받아 편찬한 관찬 사서이면서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이고,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를 정리한 것은 『동국통감』입니다. 고구려 건국 영웅 주몽을 서사시로 노래한 것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므로 이 책의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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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신문 기사는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봉기한 (가)이/가 강화도를 떠나 새로운 근거지로 삼았던 성터”라고 하고, 김통정의 지휘 아래 이 성이 축성되었다고 전합니다.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항전한 이 세력은 삼별초입니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해 배중손을 중심으로 봉기한 뒤, 진도에서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항쟁하였고 결국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이 두 진술이 삼별초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승려 출신으로 편성된 항마군은 고려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만들어진 별무반의 한 부대이고, 신변 보호를 위해 경대승이 처음 조직한 사병 집단은 도방이므로 삼별초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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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사림원을 설치하여 개혁을 실시하였다.
    2
    과전법을 공포하여 전제를 개혁하였다.
    3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재조대장경을 제작하였다.
    4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5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
    해설

    『고려사』 기록에서 밑줄 그은 왕은 이색을 판개성부사 겸 성균대사성으로 삼아 성균관 생원의 정원을 늘리고, 경술을 공부한 김구용·정몽주·박상충·박의중·이숭인을 발탁해 교관을 겸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성균관을 순수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해 신진 사대부를 길러낸 공민왕의 정책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 자주 정책을 폈습니다.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내정 간섭 기구 역할을 하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으며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회복하였습니다.

    사림원을 두어 개혁을 시도한 것은 충선왕, 과전법 공포는 공양왕 때의 일이며, 대장도감을 설치해 재조대장경을 새긴 것은 고종 때 몽골 침입기의 일입니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인물은 태조 왕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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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주자소를 설치하여 인쇄하였다.
    2
    신미양요 때 약탈된 문화 유산이다.
    3
    불국사 3층 석탑 안에서 발견되었다.
    4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간행되었다.
    5
    세계 기록 유산으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해설

    제시문은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며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라고도 한다”, “승려 백운 화상이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 중요한 내용을 뽑아 해설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실린 표지 사진에도 ‘直指(직지)’ 글자가 보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간행되었으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현재 원본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주자소는 조선 태종 때 설치된 활자 주조 기관이고, 신미양요가 아니라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해 갔습니다.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나온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며,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세계 기록 유산은 팔만대장경 목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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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들어갈 자료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강좌 안내문의 주제는 ‘조선 시대의 회화’이고, 이미 걸려 있는 두 작품은 매화를 그린 문인화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민화입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 들어가야 합니다.

    씨름판 구경꾼을 원형으로 배치한 김홍도의 풍속화, 난초와 발문을 함께 담은 김정희의 문인화, 탕건을 쓴 인물이 정면을 응시하는 윤두서의 자화상, 안개 걷힌 바위산을 짙은 먹으로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모두 조선 시대 회화라서 자료로 알맞습니다.

    그러나 굵고 거친 선으로 고개를 든 황소를 그린 드로잉이중섭의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활동한 20세기 근현대 화가의 그림입니다. 조선 시대 회화 강좌 자료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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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다) 관리가 속한 관청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국왕 직속의 사법 기구이다.
    2
    (나) - 부속 관청으로 교서관을 두었다.
    3
    (다) - 장관으로 종2품 대사헌이 있었다.
    4
    (가), (나) - 고려의 삼사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였다.
    5
    (나), (다) - 5품 이하 관리에 대해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해설

    대화에 등장하는 세 관리의 소속은 관직명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부제학은 “집현전을 계승하여 국왕의 자문에 응한다”고 했으므로 홍문관, 집의는 “정치를 논하여 바르게 이끌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한다”고 했으므로 사헌부, 사간은 “국왕의 정치에 대한 간언을 담당한다”고 했으므로 사간원입니다.

    이 가운데 사헌부와 사간원을 합쳐 양사(대간)라 불렀고, 이들은 5품 이하 관리의 임명에 대해 서경권을 행사하여 인사의 적격 여부를 심사하였습니다. 홍문관까지 더한 셋을 삼사라 하여 권력의 독점을 견제하였습니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는 홍문관이 아니라 의금부이고, 교서관은 사헌부의 부속 관청이 아니라 서적 인쇄를 맡은 별도의 관청입니다. 종2품 대사헌은 사헌부의 장관이며 사간원의 장관은 정3품 대사간입니다. 또한 고려의 삼사가 맡던 화폐·곡식 출납 회계 업무는 조선에서 호조가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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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감사, 도백으로도 불렸다.
    2
    대대로 직역을 세습하였다.
    3
    유향소의 좌수로 향리를 규찰하였다.
    4
    임기는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하고 360일이었다.
    5
    국왕의 대리인으로 행정·사법·군사권을 행사하였다.
    해설

    자료는 “도내(道內)의 (가)에 대한 고과(考課)는 『경국대전』에 따라 매해 연말에 실시하며 다음 칠사(七事)에 근거한다”라고 하면서 농상성·호구증·학교흥·군정수·부역균·사송간·간활식 일곱 항목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수령칠사이므로 (가)는 지방 고을을 다스린 수령입니다.

    수령은 부·목·군·현에 파견되어 국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해당 고을의 행정권·사법권·군사권을 함께 행사하였습니다. 그 성과를 관찰사가 칠사 기준으로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였습니다.

    감사·도백·방백으로 불린 것은 도의 장관인 관찰사이고, 함경도·평안도를 제외하고 임기가 360일이었던 것도 관찰사입니다(수령의 임기는 1,800일). 직역을 대대로 세습한 것은 향리이며, 유향소의 좌수는 지방 사족이 맡아 향리를 규찰하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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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지도에 표시된 지역을 개척한 국왕의 대외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박위를 파견하여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2
    세견선에 관한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
    3
    북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어영청을 확대하였다.
    4
    박권을 보내 국경을 확정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5
    여진과의 무역을 위해 경원에 무역소를 처음 설치하였다.
    해설

    지도에는 압록강 상류 쪽에 4군(우예·여연·자성·무창)이, 두만강 하류 쪽에 6진(온성·종성·경원·회령·경흥·부령)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내 이 지역을 개척해 오늘날의 국경선을 확정한 국왕은 세종입니다.

    세종은 북방으로는 여진을 몰아내면서, 남방으로는 이종무를 보내 쓰시마 섬을 정벌한 뒤 3포를 열어 교역을 허용하였습니다. 이어 1443년에 왜인의 세견선을 연 50척, 세사미두를 200석으로 제한하는 계해약조를 맺어 무역 규모를 통제하였습니다.

    박위를 보내 대마도를 정벌한 것은 고려 창왕 때이고, 어영청을 확대해 북벌을 추진한 왕은 효종입니다. 백두산정계비는 숙종 때 박권을 보내 세운 것이며, 경원에 무역소를 처음 설치한 왕은 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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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자료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김일손 등의 신진 사류가 화를 입었다.
    2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게 되었다.
    3
    중전이 폐위되고 남인이 집권하게 되었다.
    4
    서인이 환국을 통해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5
    현량과를 통해 등용된 신진 세력들이 희생되었다.
    해설

    제시된 글은 정축년 10월 밀성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꿈에 신인을 만났는데 “나는 초나라 회왕의 손자 심(의제)인데 서초 패왕(항우)에게 살해되어 침강에 던져졌다”고 하여 마침내 글을 지어 조문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으로, 항우가 의제를 죽인 일에 빗대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한 글입니다.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이 글을 사초에 실은 사실이 『성종실록』 편찬 과정에서 드러나자, 훈구 세력인 유자광·이극돈 등이 이를 문제 삼아 연산군에게 고발하면서 무오사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김일손 등 신진 사류가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화를 입었고, 이미 죽은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습니다. 사초가 발단이 되었기에 ‘사화(史禍)’라고도 부릅니다.

    참고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 것은 정여립 모반 사건과 정철 처벌 문제, 중전이 폐위되고 남인이 집권한 것은 기사환국, 현량과 출신들이 희생된 것은 기묘사화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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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논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그림 속 관리는 예조에서 선왕의 국상을 아뢰면서, “선왕께서 차남으로 왕위에 오르셨기에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고 오례의에도 참고할 사항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차남으로 즉위한 선왕은 효종이며, 밑줄 그은 논쟁은 효종 사후 벌어진 기해예송입니다.

    예송은 왕실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례(典禮) 문제로, 남인과 서인 사이의 대립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서인은 효종을 차남으로 보아 1년만 입어야 한다고 했고, 남인은 왕위를 이었으므로 장자로 대우해 3년을 입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이때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사대부와 왕실에 같은 예를 적용하는 『주자가례』를 근거로 기년설(1년설)을 주장하였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두 진술이 예송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한편 북인이 정권을 장악한 배경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과 광해군 즉위였고, 외척인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난 사건은 명종 때의 을사사화이므로 예송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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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제왕학으로서 성학집요를 저술하였다.
    2
    소격서 폐지와 소학의 보급을 주장하였다.
    3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다.
    4
    성학십도에서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하였다.
    5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하였다.
    해설

    제시된 문화재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인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로, 안내문에는 “정국공신에 대한 위훈 삭제 등 개혁 정치를 주도하다 사화로 유배당한 선생의 옛 자취를 기록해 두었다”라고 적혀 있고, 현종 8년(1667) 능주 목사 민여로가 세웠다는 사실도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위훈 삭제를 주도하다 사화로 화를 입고 화순(능주)에 유배된 인물은 호가 정암조광조입니다.

    조광조는 중종 대에 등용되어 도학 정치를 내세우며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도교 제사를 주관하던 소격서를 폐지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향촌 교화를 위해 소학의 보급과 향약 시행에 힘썼으며, 천거제인 현량과 실시도 건의하였습니다.

    다만 중종반정 공신들의 거짓 공훈을 깎아내리는 위훈 삭제를 밀어붙이다 훈구 세력의 반발을 사 기묘사화(1519)로 제거되었고, 능주로 유배된 뒤 사약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성학집요는 이이, 성학십도는 이황, 기축봉사는 송시열,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의 저술이므로 이 인물의 활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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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이 자료’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2
    태조 왕대부터의 기록이 남아 있다.
    3
    사초와 시정기 등을 근거로 편찬되었다.
    4
    춘추관 관원들이 편찬 업무에 참여하였다.
    5
    임진왜란 이전에는 4대 사고에 보관되었다.
    해설

    화면 속 인물은 사진의 책을 가리키며 “이 자료는 조선 역대 왕들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실록청에서 편찬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밑줄 그은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승하한 뒤 임시로 설치된 실록청에서 춘추관 관원들이 참여하여 편찬하였고, 사관이 기록한 사초와 각 관청의 문서를 정리한 시정기, 승정원일기 등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서술 방식은 연월일 순으로 사실을 적어 나가는 편년체이며, 태조 대부터 철종 대까지의 기록이 전합니다.

    따라서 인물이나 제도별로 항목을 나누어 서술하는 기전체 형식이라는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기전체는 본기·열전·지·표로 구성되는 방식으로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실록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춘추관·충주·전주·성주의 4대 사고에 나누어 보관되었고, 전란으로 전주 사고본만 남은 뒤에는 태백산·오대산·묘향산(뒤에 적상산)·마니산(뒤에 정족산) 등 산속 사고로 옮겨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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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궁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신문 기사는 “조선 정궁의 위용 회복”이라는 제목 아래 1990년부터 추진된 복원 사업을 전하며, 침전 지역 공개, 동궁 지역 2단계, 태원전 지역 3단계(1997년부터 4년간), 그리고 조선 총독부 건물이 헐린 자리에 흥례문 등을 복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의 정궁이면서 총독부 청사가 앞을 가로막고 있던 궁궐은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은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조선의 법궁으로, 정도전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습니다.

    일제는 이 궁궐의 전각을 헐어내고 1915년 이곳에서 조선 물산 공진회를 열어 식민 통치를 선전하였으며, 이어 근정전 앞을 가리는 총독부 청사를 세웠습니다. 따라서 태조 때 한양 천도와 함께 처음 지어졌다는 설명과 물산 공진회 개최 장소로 이용되었다는 설명이 옳습니다.

    반면 선조가 임진왜란 뒤 거처하여 정릉동 행궁으로 불린 곳과 을사늑약이 강제된 중명전이 있는 곳은 모두 경운궁(덕수궁)이므로 이 궁궐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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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가)는 “왜적이 대거 쳐들어와 부산 첨사 정발이 항전하다 전사하고 성이 함락되었다”라는 내용으로 임진왜란의 발발(1592)을 가리킵니다. (나)는 “부원수 이괄이 금부도사 고덕률 등을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였다”라는 내용으로 인조 즉위 직후 일어난 이괄의 난(1624)입니다.

    두 사건 사이에 해당하는 사실은 허준이 광해군 때 동의보감을 완성한 일(1610)과, 임진왜란 중 지방군 체제를 속오법에 따라 개편하여 양반부터 노비까지 편제한 속오군을 둔 일입니다.

    한편 청이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침입한 것은 1636년의 병자호란이고, 허적의 건의로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된 것은 숙종 대(1678)의 일이므로 모두 이괄의 난보다 뒤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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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이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그림에서 지주는 “가호(家戶) 대신 토지를 기준으로 수취하는 이 제도 때문에 부담이 늘었다”라고 하고, 공인은 “선혜청에서 공가(貢價)를 받아 관수품을 조달하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공납을 거두고 선혜청과 공인이 등장한 이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대동법은 지방 특산물을 대신 납부해 주고 폭리를 취하던 방납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토지 1결당 대체로 쌀 12두를 거두되, 쌀 생산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면포·삼베·동전 등으로도 납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풍흉에 관계없이 1결당 4~6두를 부과한 것은 인조 때의 영정법이고,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포를 거둔 것은 영조 때의 균역법이므로 이 제도의 내용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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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책의 저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
    2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3
    북경에 다녀온 뒤 연행록을 남겼다.
    4
    100리 척을 사용한 지도를 제작하였다.
    5
    청으로부터 시헌력 도입을 건의하였다.
    해설

    소개된 책은 표지에 자산어보(玆山魚譜)라 적혀 있고, 내용은 “흑산도 근해의 수산 생물의 종류와 명칭·분포·형태·습성 등을 기록”한 것이며, 구성은 제1권 인류(鱗類), 제2권 무인류(無鱗類) 및 개류(介類), 제3권 잡류(雜類)로 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약전입니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형으로, 남인 계열의 학자이자 천주교와 관련되어 순조 즉위 직후 일어난 신유박해(1801)에 연루되어 흑산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는 유배지에서 어민들과 함께 바다 생물을 직접 관찰·조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백과사전격인 이 책을 남겼습니다.

    참고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인물은 이승훈, 100리 척을 사용한 동국지도를 만든 인물은 정상기, 시헌력 도입을 건의한 인물은 김육이며, 북경에 다녀온 뒤 연행록을 남긴 인물로는 박지원·홍대용 등이 있으므로 모두 이 책의 저자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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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음서와 공음전의 혜택을 받았다.
    2
    양인 신분으로 천역에 종사하였다.
    3
    공장안에 등록되어 생산을 담당하였다.
    4
    소속 관청에 매년 신공(身貢)을 바쳤다.
    5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었다.
    해설

    영조실록의 기사는 “우리나라에서 (가)를 현직(顯職)에 서용하지 말자는 의논은 처음 서선에게서 나왔는데 …… 마침내 자손까지 영원히 금고(禁錮)하기에 이르렀다”, “부자(父子)의 은혜도 군신(君臣)의 의리도 없으니 윤리를 해치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벼슬길이 막힌 이 신분층은 서얼입니다.

    서얼은 태종 대 서선의 건의에서 비롯된 서얼금고법으로 문과 응시와 청요직 진출이 제한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여러 차례 통청 운동을 벌여 차별 철폐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조 때에는 서얼 출신인 유득공·박제가·이덕무·서이수 등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학문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한편 음서와 공음전의 혜택을 받은 것은 고려의 문벌 귀족, 양인 신분으로 천한 역을 담당한 것은 신량역천, 공장안에 등록되어 생산에 종사한 것은 관영 수공업자, 소속 관청에 신공을 바친 것은 외거 노비이므로 이 신분층의 설명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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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글을 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2
    오학론에서 성리학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3
    체질을 연구하여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4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5
    무한우주론을 근거로 화이의 구분을 부정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의산문답의 일부로, “땅덩이는 하루 동안 한 바퀴를 도는데, 땅 둘레는 9만 리이고 하루는 12시(時)”라며 9만 리를 12시간에 도니 천둥·번개나 포탄보다 빠르다고 설명하고, 서양의 측량이 정밀하니 “지구가 둥글다는 설은 다시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인물은 홍대용입니다.

    홍대용은 북학파 실학자로 담헌서·임하경륜 등을 남겼으며, 의산문답에서 실옹과 허자의 문답 형식을 빌려 지전설과 우주가 무한하다는 무한우주론을 폈습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지구에 중심이 따로 없으므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도 성립할 수 없다며 화이(華夷)의 구분을 부정하였고, 이러한 인식은 조선 후기 중화 중심 세계관을 극복하는 논리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인물은 유득공, 오학론을 지은 인물은 정약용, 사상 의학을 확립한 인물은 이제마,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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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호포법을 제정하여 군포를 징수하였다.
    2
    5군영에서 2영으로 군제를 개편하였다.
    3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4
    속대전을 편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5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여 관리를 재교육하였다.
    해설

    제시된 시는 “어깨 팔뚝 드러난 적삼 입은 어린 것들 …… 큰 아이는 다섯 살에 기병에 등록되고 작은 놈도 세 살에 군적에 올라 있어”(적성촌에서),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애절양)라고 하여 군포 수취의 폐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군적에 올려 군포를 걷는 황구첨정, 죽은 사람에게까지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는 조선 후기 군정의 문란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양반은 군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담이 고스란히 상민에게 쏠린 데서 비롯된 문제였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포법을 실시하여 개인이 아니라 호(戶) 단위로 군포를 부과함으로써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였고, 그 결과 상민의 부담이 줄고 국가 재정도 늘어났습니다.

    참고로 5군영을 2영으로 개편한 것은 개항 이후 개화 정책, 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은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속대전 편찬은 영조, 초계문신제는 정조의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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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들어갈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황룡촌 전투에서 농민군 승리
    2
    삼례에서 교조 신원 운동 전개
    3
    백산에서 농민군 4대 강령 발표
    4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안 추진
    5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하여 고부 관아 습격
    해설

    연표는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과정을 1894년 3월 무장에서 전봉준 등이 주도하여 봉기1894년 5월 정부와 농민군이 전주 화약 체결(가)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일본군에게 패배의 순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전주 화약 직후부터 2차 봉기 사이에 있었던 일이 들어가야 합니다.

    전주 화약으로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나면서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후 전라도 각 고을에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탐관오리 처벌, 노비 문서 소각, 토지의 평균 분작 등 개혁안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반면 삼례 교조 신원 운동은 1892년, 고부 관아 습격은 1894년 1월로 무장 봉기 이전의 일이며, 백산에서의 4대 강령 발표와 황룡촌 전투 승리는 1차 봉기 과정에서 전주 화약 이전에 일어난 사실이므로 이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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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중추원 고문으로서 자주 독립을 강조하였다.
    2
    대동강에 침입한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웠다.
    3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4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려 왜양일체론을 주장하였다.
    5
    13도 창의군을 지휘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해설

    인물 카드에는 1833년 경기도 포천 출생, 1846년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감, 1855년 명경과 급제, 1873년 서원 철폐를 비판한 계유 상소, 1906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킴, 1907년 대마도에서 순국이 차례로 적혀 있다. 화서 이항로의 제자로 위정척사 사상을 이었고, 흥선 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한 계유 상소로 대원군을 하야시킨 뒤 말년에 의병장으로 순국한 인물, 곧 최익현이다.

    최익현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논의가 진행되자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려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렸다. 그는 이 상소에서 일본이 이미 서양 오랑캐와 다를 바 없다는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에 반대하였다.

    중추원 고문으로 자주 독립을 강조한 인물은 독립 협회를 이끈 서재필이고, 대동강에 들어온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운 것은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 때의 일이다.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한 인물은 임병찬이며,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이인영·허위가 지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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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논설에서 비판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였다.
    2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다.
    3
    각 부서에 일본인 차관이 배치되었다.
    4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5
    사법권과 감옥에 관한 사무를 빼앗겼다.
    해설

    제시된 논설은 황성신문에 실린 글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는 자들이 출세와 부귀를 바라고 거짓 위협에 겁을 먹어 뒤로 물러나 벌벌 떨며 매국의 역적이 되기를 달게 받아들였다", "4천 년 강토와 5백 년 종사를 남에게 바치고 2천만 국민을 남의 노예로 만든다", "아! 원통하고, 아! 분하도다"라며 통곡하고 있다.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으로,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규탄한 논설이다.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여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권한을 잃었고,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였다. 논설이 "강토와 종사를 남에게 바쳤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외교권 상실을 가리킨다.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각 부서에 일본인 차관이 배치된 것은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한·일 신협약(정미7조약) 때이며,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임명된 것은 1904년 제1차 한·일 협약의 결과이다.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빼앗긴 것은 1909년 기유각서에 따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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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마) 시기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전환국이 설치되어 화폐 발행이 시작되었다.
    2
    (나) - 고딕 양식의 명동 성당이 완공되었다.
    3
    (다) - 최초의 상업 광고가 실린 한성주보가 발행되었다.
    4
    (라) - 서울과 인천 사이에 철도가 최초로 개통되었다.
    5
    (마) - 덕원 지방의 관민들이 원산학사를 설립하였다.
    해설

    연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 (가) - 1882년 임오군란 - (나) - 1889년 함경도 방곡령 선포 - (다) - 1896년 아관 파천 - (라) - 1904년 한·일 의정서 체결 - (마) -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의 순서로 이어진다. 각 사건의 연도를 먼저 확정한 뒤 어느 구간에 들어가는지 따지면 된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은 1899년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이다. 이는 아관 파천(1896)과 한·일 의정서 체결(1904) 사이, 곧 (라) 구간에 해당하므로 옳은 서술이다.

    나머지는 구간이 어긋난다. 전환국 설치는 1883년, 원산학사 설립도 1883년, 최초의 상업 광고가 실린 한성주보 발행은 1886년으로 모두 임오군란(1882)과 방곡령(1889) 사이인 (나) 구간의 일이다. 고딕 양식의 명동 성당 완공은 1898년으로 (라) 구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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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복벽주의가 이념적 바탕이었다.
    2
    보안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신민회가 해체되는 배경이 되었다.
    4
    이광수, 최린 등이 중심 인물이었다.
    5
    조선 혁명 선언을 행동 지침으로 삼았다.
    해설

    화면에 제시된 글은 민족적 경륜이다. "왜 지금의 조선 민족에게는 정치적 생활이 없나?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로 조선인에게는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한 것이 제일의 원천이요",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며, 학생이 "이 운동은 일제의 분열 정책에 이용되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일제 지배를 전제로 그 테두리 안에서 참정권과 정치 결사를 얻자는 주장이므로, 1920년대에 전개된 자치 운동(참정권 운동)이다. 민족적 경륜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이광수와 천도교 신파의 최린 등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그 중심 인물이었다.

    복벽주의를 이념으로 삼은 것은 독립 의군부이고, 보안법 제정(1907)과 신민회 해체를 부른 105인 사건(1911)은 모두 1920년대 자치 운동보다 앞선 일이다. 조선 혁명 선언을 행동 지침으로 삼은 단체는 신채호가 선언문을 쓴 의열단으로, 무장 투쟁을 내세워 자치 운동과는 정반대의 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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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의열단을 창설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2
    미군과 연계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다.
    3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4
    한국 독립군을 이끌고 대전자령 전투에 참여하였다.
    5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흥경성 전투를 지휘하였다.
    해설

    연보에는 1867년 서울 저동 출생, 1905년 나인영·기산도 등과 함께 을사오적 암살 모의, 1910년 6형제 50여 명의 가족이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후 만주로 망명, 1911년 재만 한인 자치 기관인 경학사 조직, 1931년 항일 구국 연맹 결성과 비밀 행동 조직인 흑색 공포단 조직, 1932년 다롄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고문 끝에 순국이 적혀 있다. 명문가의 여섯 형제가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서간도로 떠난 일화로 유명한 이회영이다.

    이회영 일가는 서간도 삼원보에 정착하여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세우고, 그 부설 교육 기관으로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신흥 강습소는 뒤에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여 다수의 독립군 지휘관을 양성하였고, 이들이 청산리 대첩 등에서 활약하였다.

    의열단을 창설한 인물은 김원봉, 미군(OSS)과 연계한 국내 진공 작전은 한국광복군을 이끈 지청천·이범석 등이 추진하였다. 한국 독립군을 이끌고 대전자령 전투를 치른 인물은 지청천,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흥경성 전투를 지휘한 인물은 조선 혁명군의 양세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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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라) 지역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한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지도에서 (가)는 한반도 북쪽 만주 북부(헤이룽강·쑹화강 유역), (나)는 동북쪽 바다에 접한 연해주, (다)는 백두산 바로 북쪽의 북간도(연변 일대), (라)는 압록강 서쪽의 랴오둥(요동) 방면이다.

    효종 때 조선군이 청의 요청으로 참전한 나선 정벌은 헤이룽강과 쑹화강이 합류하는 만주 북부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한 싸움이므로, 북만주에 해당하는 (가)에서 승전지를 조사하는 것은 적절하다. 또 북간도 용정에는 대종교 계열이 세운 명동 학교 터와 이 학교가 배출한 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남아 있으므로, 북간도인 (다)에서의 탐구로 알맞다.

    연해주는 신한촌과 대한 광복군 정부, 권업회 등의 무대였고 한인 애국단은 김구가 상하이에서 조직한 단체이므로 (나)와 맞지 않는다. 정혜 공주 묘가 있는 육정산 고분군은 발해 초기 도읍인 동모산 부근(지린성 둔화)으로 백두산 북쪽에 있어, 압록강 서쪽인 (라)에서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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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두 운동의 공통점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신간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언론 기관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3
    경성 제국 대학이 설립되면서 중단되었다.
    4
    제4차 조선 교육령의 공포로 시작되었다.
    5
    전국적인 모금 운동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해설

    왼쪽 자료는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로, 동아일보가 1931년부터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이다. 오른쪽 자료는 "문자 보급반(文字普及班)"과 "한글 원본"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교재로, 조선일보가 벌인 문자 보급 운동의 자료이다.

    두 운동은 모두 1920~30년대에 언론 기관인 신문사가 주도하여 방학 때 학생들을 농촌으로 보내 한글을 가르치고 문맹을 퇴치하려 한 계몽 운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운동은 1935년 조선 총독부의 금지 조치로 중단되었다.

    신간회 창립의 계기가 된 것은 정우회 선언이며, 경성 제국 대학 설립과 맞물려 좌절된 것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다. 제4차 조선 교육령은 1943년에 공포되어 시기가 맞지 않고,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함께 벌인 것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나 국채 보상 운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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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법령이 시행된 시기의 일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토지를 점탈하기 위해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였다.
    2
    지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조선 광업령을 제정하였다.
    3
    일본식 성명을 강요하기 위해 조선 민사령을 개정하였다.
    4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회사령을 공포하였다.
    5
    조선 불교의 자주성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하였다.
    해설

    제시된 법령은 제4조에서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제8조에서 "물자의 생산·수리·배급·양도 기타의 처분, 사용·소비·소지 및 이동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력과 물자를 모두 통제하는 이 법은 중·일 전쟁 이후 1938년에 제정된 국가 총동원법이다.

    이 시기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민족 말살 통치를 폈다. 1939년 조선 민사령을 개정하여 이듬해부터 일본식 성명 사용(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이 대표적이며,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신사 참배도 함께 강요되었다.

    토지 조사령(1912), 조선 광업령(1915), 회사령(1910), 사찰령(1911)은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 시기의 법령으로, 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된 1930년대 후반 이후와는 시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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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문화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갸날을 제정하는 배경이 되었다.
    2
    조선사 편수회 설치의 계기가 되었다.
    3
    여유당전서를 간행하면서 제창되었다.
    4
    원각사를 설립하여 은세계를 공연하였다.
    5
    신경향파 문학이 대두하는 배경이 되었다.
    해설

    제시된 문화 활동은 다산 서거 99주년 기념 사업 추진이 계기가 되었고, 안재홍·정인보·문일평이 중심이 되어 1930년대 중반에 민족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선의 언어·역사·문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고 정리되어 있다. 이는 1934년을 전후해 전개된 조선학 운동이다.

    조선학 운동은 정약용 서거 99주기 기념 사업으로 여유당전서를 간행하는 과정에서 제창되었다. 이들은 실학에서 근대 지향적·민족적 사상의 뿌리를 찾아, 일제의 식민 사관과 국수적 민족주의를 모두 넘어선 학문 연구를 지향하였다.

    가갸날 제정은 조선어 연구회의 활동이고, 조선사 편수회는 일제가 식민 사관을 뒷받침할 조선사를 편찬하려고 설치한 기구이다. 원각사에서 은세계를 공연한 것은 1908년의 일이며, 신경향파 문학은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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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과 같이 국회가 구성되었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내각 책임제와 지방 자치제가 실시되었다.
    2
    베트남 파병과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3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과 농지 개혁법이 공포되었다.
    4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해 국민 연금 제도가 도입되었다.
    5
    금융 실명 거래에 관한 법률과 공직자 윤리법이 제정되었다.
    해설

    그래프는 국회가 민의원(총 의석수 233석)참의원(총 의석수 58석)의 두 원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민의원은 민주당 175석, 무소속 49석, 사회 대중당 4석, 자유당 2석, 헌정 동지회·통일당·한국 사회당 각 1석이고, 참의원은 민주당 31석, 무소속 20석, 자유당 4석, 혁신 동지 총연맹·한국 사회당·사회 대중당 각 1석으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양원제가 시행되고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4·19 혁명 뒤인 1960년 7·29 총선으로 구성된 제5대 국회, 곧 장면 내각의 제2공화국 시기이다.

    4·19 혁명 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이 시기에는 국무총리가 행정부를 이끄는 내각 책임제가 채택되었고, 시·읍·면장까지 주민이 직접 뽑는 지방 자치제가 전면 실시되었다.

    베트남 파병과 한·일 국교 정상화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 국민 연금 제도 도입은 1988년, 금융 실명 거래에 관한 법률과 공직자 윤리법 제정은 1980년대의 일이다. 반민족 행위 처벌법과 농지 개혁법 공포는 제헌 국회~제2대 국회 시기인 1948~1949년으로, 양원제 국회가 구성되기 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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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성명서가 발표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성명서는 "오인(吾人)은 삼천만 한인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영·미·화·가·호 기타 제국의 대일 선전이 일본을 격패시키고 동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하하여"로 시작하며, "1910년의 합병 조약 및 일체 불평등 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한 대일 선전 성명서(1941년 12월)이다.

    임시 정부는 충칭에 정착한 뒤 1940년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해 미국·영국 등이 참전하자 곧바로 일본에 선전 포고하여 연합국의 일원으로 대일 항전에 나설 뜻을 분명히 하였다.

    연표는 1919년 3·1 운동, 1926년 6·10 만세 운동, 1931년 만주 사변, 1937년 중·일 전쟁,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 1945년 8·15 광복으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 1941년은 중·일 전쟁과 조선어 학회 사건 사이에 놓이므로, 성명서가 발표된 시기는 그 구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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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다음 선언을 발표한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남북 조절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3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4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다.
    5
    금강산 해로 관광 사업을 시작하였다.
    해설

    제시된 선언은 첫 조항에서 "남과 북은 6·15 공동 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라고 밝히고, 이어 경제 협력 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활성화할 것, 역사·언어·교육·과학기술·문화예술·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킬 것, 인도주의 협력 사업을 추진할 것을 담고 있다. 이는 2007년에 발표된 10·4 남북 공동 선언(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계승한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으므로, 발표 주체는 노무현 정부임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평양에서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열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선언이다. 따라서 이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는 두 번째 남북 정상 회담의 성사를 들 수 있다.

    나머지 사실들은 시기가 다르다.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은 7·4 남북 공동 성명 직후인 박정희 정부,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1991년 노태우 정부, 금강산 해로 관광 시작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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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라)의 경제 상황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 (라)
    2
    (가) - (다) - (라) - (나)
    3
    (나) - (다) - (라) - (가)
    4
    (나) - (라) - (다) - (가)
    5
    (다) - (나) - (가) - (라)
    해설

    자료의 네 상황은 각각 칠레·유럽 연합(EU)·미국 등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 제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원유 가격 폭등과 경제 불황, 외환 위기로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 지원 요청,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으로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이다.

    시기를 확정하면, 제1차 석유 파동은 1973년으로 가장 이르다. 이어 3저 호황은 1980년대 중후반 전두환 정부 시기에 나타났고, IMF 구제 금융 요청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의 일이다. FTA 체결은 2004년 칠레와의 협정 발효를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따라서 석유 파동 → 3저 호황 → 외환 위기 →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의 순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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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6회
    (가)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세종실록에서 지리지 부분을 검토한다.
    2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 문서를 조사한다.
    3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과 전투한 장소를 찾아본다.
    4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간 배경을 살펴본다.
    5
    러·일 전쟁 때 일본이 불법으로 편입한 지역을 알아본다.
    해설

    기획전 안내문은 "신라 지증왕 때 울릉도와 더불어 우리 영토로 편입된 이래"라고 밝히고 있다. 512년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켰으므로, (가)는 울릉도와 함께 우리 영토가 된 독도이다. 포스터의 사진도 두 개의 큰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독도의 모습이다.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보여 주는 근거는 여러 갈래로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울진현 조에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 섬을 함께 기록하였고,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1900)는 울도군의 관할 구역에 석도(독도)를 포함시켰다. 숙종 때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받았으며, 일본은 러·일 전쟁 중인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하였다.

    반면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과 전투를 벌인 장소강화도로, 정족산성·문수산성 등에서 양헌수·한성근 부대가 항전한 곳이다. 이는 독도와 관련이 없으므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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