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고인돌, 돌널무덤 등이 만들어졌다.
    2
    계급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3
    실을 뽑는 데 가락바퀴가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4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움집이 처음 나타났다.
    5
    농경과 목축을 통한 식량 생산 단계로 진입하였다.
    해설

    제시된 장면은 부여 송국리 유적을 설명하며, 마을을 둘러싼 나무 울타리(목책)의 흔적과 많은 집터가 발굴되었고 대표 유물로 송국리식 토기라 불리는 민무늬 토기와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다고 말합니다. 민무늬 토기와 비파형 동검, 방어 시설을 갖춘 취락은 모두 청동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 생산력이 늘고 잉여 생산물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계급이 발생하여,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돌널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고인돌은 큰 돌을 옮기고 세우는 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으므로 강력한 지배자의 존재를 보여 줍니다.

    나머지 설명은 앞선 시대의 것입니다. 계급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생활, 실을 뽑는 가락바퀴의 사용, 정착 생활에 따른 움집의 등장, 농경과 목축을 통한 식량 생산 단계로의 진입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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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고조선 사회의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신분의 구별이 있었다.
    2
    형벌 제도가 마련되었다.
    3
    사유 재산이 인정되었다.
    4
    개인의 노동력이 중시되었다.
    5
    죄를 지은 사람은 가족까지 처벌받았다.
    해설

    자료는 「한서」 지리지에 전하는 고조선의 8조법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곧바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게 하며, 도둑질을 하면 남자는 노(奴), 여자는 비(婢)로 삼되 용서받고자 하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세 조항이 남아 있습니다.

    살인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에서 형벌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고 개인의 노동력을 중시했음을, 상처를 곡식으로 갚게 한 데서 농경 사회이며 사유 재산이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도둑을 노비로 삼는다는 규정은 노비와 그 주인이라는 신분의 구별이 존재했음을, 50만 전으로 속죄할 수 있다는 규정은 화폐 사용과 재산의 사적 소유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모두 죄를 지은 본인에 대한 처벌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죄인의 가족까지 함께 처벌하는 연좌제는 부여의 법에서 살인자의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는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위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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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신성 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다.
    2
    (가) - 단궁, 과하마, 반어피가 특산물이었다.
    3
    (나) - 혼인 풍습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4
    (나) -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배상하게 하였다.
    5
    (가), (나) - 부족 간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해설

    대화에서 (가)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열렸고 왕이 죽으면 1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순장했다고 하였으므로 부여이고, (나)는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했다가 나중에 뼈를 추려 가족 공동의 목곽에 안치했다고 하였으므로 골장제(세골장)를 행한 옥저입니다.

    옥저에는 여자아이를 어릴 때 신랑 될 집에 데려다 기른 뒤 성인이 되면 예물을 치르고 혼인시키는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에 대한 설명으로 민며느리제를 든 것이 옳습니다.

    나머지는 나라가 어긋납니다. 신성 지역인 소도는 삼한, 단궁·과하마·반어피와 부족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의 특징입니다. 또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한 1책 12법은 부여와 고구려의 법으로, 옥저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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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사진의 내부 모습과 구조도를 보면 널길과 널방의 벽과 천장이 모두 벽돌을 쌓아 아치형(터널형)으로 만든 무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벽돌무덤(전축분)은 백제 웅진 시기의 무령왕릉으로 대표됩니다.

    따라서 널길과 널방을 벽돌로 쌓았다는 설명, 그리고 이러한 양식이 중국 남조(양)의 영향을 받아 축조되었다는 설명이 옳습니다. 무령왕릉에서는 무덤 주인과 축조 연대를 밝힌 지석, 중국제 청자와 오수전 등이 함께 나와 남조와의 활발한 교류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무령왕릉은 도읍이 웅진(공주)에 있던 시기에 조성된 것이므로 사비 시기라는 설명은 맞지 않고, 봉분 하단부에 12지 신상을 조각한 둘레돌을 두른 것은 통일 신라의 굴식 돌방무덤(김유신 묘 등)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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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2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3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다.
    4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가 있었다.
    5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해설

    발표 내용은 구지봉에 (가)의 건국 설화가 전하며,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에 여섯 개의 알이 들어 있었고 가장 먼저 나온 알에서 나온 수로(首露)가 나라를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김해 지역을 근거로 한 금관가야의 건국 설화입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구라는 유리한 위치와 풍부한 철 생산을 바탕으로, 덩이쇠를 수출하면서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여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특징입니다. 제천 행사 동맹은 고구려, 가(加)들이 별도로 다스린 사출도는 부여,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는 신라의 것이며, 가야는 여러 소국의 연맹 단계에 머물러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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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중국 지린성 창바이조선족자치현에 있으며 벽돌을 쌓아 만든 누각 형태의 전탑이고 지하에 무덤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영광탑을 남긴 (가) 국가는 발해이다. 정답 사진은 발해의 대표적 불교 유물인 이불병좌상으로,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모습에 광배와 화불이 표현되어 고구려 불상 양식을 이어받았음을 보여 준다. 나머지 사진은 발해가 아닌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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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자료와 관련된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독서삼품과 제도를 마련하였다.
    2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3
    김씨에 의한 왕위 계승권을 확립하였다.
    4
    율령을 반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5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해설

    자료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3년 3월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농사를 권장하도록 명하여 비로소 우경(牛耕)이 시작되었고, 6년 2월에는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軍主)로 임명하였다는 내용이다.

    소를 이용한 밭갈이의 보급, 주(州) 설치와 군주 파견을 통한 지방 통치 정비, 이사부의 등용은 모두 신라 지증왕 대의 일이다. 이사부는 이후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다.

    따라서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왕(王)' 칭호를 사용한 것이다. 지증왕 4년(503)에 이루어진 조치로, 신라가 중앙 집권 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한편 독서삼품과 설치는 원성왕,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신문왕, 율령 반포는 법흥왕의 업적이며, 김씨의 왕위 계승 독점은 내물왕 때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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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자료는 불국사 가람 배치도와 대웅전 앞뜰에 선 두 석탑의 사진이다. 사진에서 (가)는 이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단정한 형태의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이고, (나)는 계단과 난간, 기둥을 갖춘 화려하고 독특한 형태의 다보탑이다. 두 탑은 대웅전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데, 석가탑이 서쪽, 다보탑이 동쪽에 자리한다.

    석가탑은 감은사지 3층 석탑에서 시작된 통일 신라 전형 양식, 즉 이중 기단 위 3층 탑신 구조를 계승한 대표적인 탑이다. 또한 1966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탑 내부의 사리 장엄구와 함께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반면 다보탑은 통일 신라의 전형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異形) 석탑이므로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추었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다. 또 기단과 탑신에 불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긴 것은 다보탑이 아니라 진전사지 3층 석탑 등 다른 탑들의 특징이다.

    따라서 감은사지 3층 석탑 양식의 계승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이 옳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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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그’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웠다.
    2
    중앙군으로 9서당을 설치하였다.
    3
    대규모 사찰인 미륵사를 건립하였다.
    4
    신라에 적극적인 우호 정책을 펼쳤다.
    5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해설

    대담 자료에서 소개된 인물은 신라 왕족의 후예로 알려졌으며, 양길의 휘하에서 힘을 길러 강원도·경기도 일대를 장악하고 황해도 지역까지 세력을 넓힌 뒤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고 하였다. 이는 궁예의 행적이다.

    궁예는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한 뒤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고치고 무태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이듬해인 905년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911년에는 국호를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고, 광평성을 비롯한 관제를 정비하였다.

    한편 북한산 순수비 건립은 신라 진흥왕, 중앙군 9서당 설치는 신문왕, 미륵사 건립은 백제 무왕의 일이다. 궁예는 신라에 적대적이었고, 신라에 적극적인 우호 정책을 편 인물은 왕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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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자료의 토지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지급 대상 토지를 원칙적으로 경기 지역에 한정하였다.
    2
    관리가 사망하면 유가족에게 수신전과 휼양전을 지급하였다.
    3
    개국 공신에게 인품, 행실, 공로를 기준으로 토지를 분급하였다.
    4
    전란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자 관리의 녹봉을 대신하여 지급하였다.
    5
    현직 관리에게 전답과 임야를 분급하여 수취의 권리를 행사하게 하였다.
    해설

    자료는 「고려사」에 실린 문종 30년(1076)의 기록으로, 양반 전시과를 다시 고쳐 제1과인 중서령·상서령·문하시중에게 전지 100결과 시지 50결을, 제2과 문하시랑·중서시랑에게 전지 90결과 시지 45결을, 최하위인 제18과 한인·잡류에게 전지 17결을 지급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제도가 경정 전시과이다.

    고려의 전시과는 관품에 따라 곡물을 거둘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는 임야인 시지를 등급별로 나누어 주고 그 토지에 대한 수조권을 행사하게 한 제도였다. 경정 전시과 단계에서는 나누어 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지급 대상을 현직 관리로 한정하고 퇴직 관리를 제외하였다.

    따라서 현직 관리에게 전답과 임야를 분급하여 수취의 권리를 행사하게 하였다는 설명이 이 제도에 해당한다.

    한편 지급지를 경기 지역에 한정하고 수신전·휼양전을 유가족에게 준 것은 조선의 과전법, 인품과 공로를 기준으로 개국 공신에게 준 것은 태조 왕건의 역분전, 전란으로 재정이 악화되어 녹봉 대신 준 것은 원 간섭기 무렵의 녹과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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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이곳’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남진 정책을 펴던 장수왕 때에 고구려의 도읍이 되었다.
    2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에 의해 왜군으로부터 탈환되었다.
    3
    조선 후기에 청나라와 대외 무역을 전개한 만상의 근거지였다.
    4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5
    일제 강점기에 조만식 등의 주도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되었다.
    해설

    자료는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 제5조로, "삼한 산천 신령의 도움을 받아 왕업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이곳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 되니 만대 왕업의 땅이라 하였고, 계절마다 가서 1년에 100일 이상 머물라고 당부하고 있다. 여기서 '이곳'은 서경, 곧 평양이다.

    평양은 고구려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추진하며 427년 국내성에서 옮겨 온 도읍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조·명 연합군이 왜군에게서 탈환한 평양성 전투의 무대였다. 또 흥선 대원군 집권기인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며, 1920년 조만식 등이 물산 장려 운동을 시작한 도시이기도 하다.

    반면 조선 후기에 청나라와의 대외 무역으로 성장한 만상의 근거지는 압록강변 국경 도시 의주이다. 평양을 근거지로 활동한 상인은 유상이므로, 만상의 근거지였다는 설명이 이곳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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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지도에 표시된 군사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퇴각하는 수의 군대를 살수에서 크게 물리쳤다.
    2
    고구려 부흥 운동군을 후원하면서 당에 맞서 싸웠다.
    3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한 세력을 토벌하였다.
    4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며 침략한 거란을 격퇴하였다.
    5
    개경까지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던 홍건적을 축출하였다.
    해설

    지도에는 1135년 1월 김부식을 원수로 하여 출진하였다는 표시와 1136년 2월 서경 점령이라는 표시가 있고, 개경에서 북상한 진격로가 자비령·황주·수안·성천·연주 방면으로 갈라져 서경을 에워싸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주요 전투지 표시도 서경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1136)을 진압한 관군의 군사 활동이다. 묘청·정지상 등 서경 세력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 천도금국 정벌, 칭제건원을 주장하다가 좌절되자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하고 난을 일으켰다.

    개경파 문벌 귀족을 대표한 김부식이 토벌군을 이끌어 약 1년간의 공방 끝에 1136년 서경을 함락시켰다. 따라서 이 군사 활동은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한 세력을 토벌한 것이다.

    한편 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물리친 것은 을지문덕, 고구려 부흥 운동을 후원하며 당과 싸운 것은 나당 전쟁기의 신라,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한 거란을 격퇴한 것은 강감찬의 귀주 대첩, 홍건적 축출은 공민왕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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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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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애가를 만들어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2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하였다.
    3
    불교 관련 설화를 중심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4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여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5
    교관겸수를 내세워 교선 통합의 이론 체계를 정립하였다.
    해설

    안내판은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6호,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에 관한 것으로, 1210년 (가)가 입적하자 왕이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내렸으며 1213년에 이 탑이 세워졌다고 적혀 있다.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를 받고 1210년 송광사에서 입적한 인물은 고려 후기의 승려 지눌이다.

    지눌은 불교계의 세속화를 비판하며 승려 본연의 자세인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힘쓰자고 호소한 수선사 결사를 송광사(당시 길상사)에서 제창하였다. 또 정혜쌍수돈오점수를 내세워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는 이론을 세웠다.

    한편 무애가로 불교 대중화에 힘쓴 이는 원효,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은 이는 의상, 삼국유사를 저술한 이는 일연, 교관겸수를 주장한 이는 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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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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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무반을 보내어 여진족을 정벌하였다.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3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실시하였다.
    4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5
    관학 진흥을 위해 국자감에 7재라는 전문 강좌를 개설하였다.
    해설

    자료는 노비안검법의 시행과 그 반발을 전하는 기록이다. 처음으로 명령을 내려 노비를 자세히 살펴 원래 노비가 맞는지 판별하게 하자 태조 이래의 공신들이 탄식하고 원망하였으며, 대목왕후가 간절히 말렸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대목왕후를 왕비로 두고 노비안검법을 단행한 '이 왕'은 고려 광종이다. 광종은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되돌려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조세 수입과 역 부담자를 늘리고자 하였다.

    광종은 이어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 제도를 실시하였다. 유학적 소양을 갖춘 신진 인물을 등용해 공신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조치였으며, 이후 백관의 공복 제정도 이어졌다.

    한편 별무반의 여진 정벌과 국자감 7재 개설은 예종, 12목 설치는 성종, 쌍성총관부 공격은 공민왕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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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홍보물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가)의 우수성을 알리는 축전 안내로, 장소는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이고 내용은 진본 유물 8점 전시, 판각 및 인쇄 체험, 장경판전의 과학적 원리 특강이다. "글자마다 어린 불심, 목향으로 피어나다"라는 문구와 목판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가)는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은 몽골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자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려는 염원에서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최씨 무신 정권의 후원을 받아 1236년부터 1251년까지 새긴 것이다. 8만여 장에 이르는 이 목판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보관 건물인 장경판전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최씨 무신 정권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는 점과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점이 옳은 설명이다.

    반면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만든 것은 현종 때의 초조대장경이며, 주자소는 조선 태종 때 금속 활자를 주조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므로 목판인 팔만대장경과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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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사실이 있었던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자료는 왜구가 배 500척을 이끌고 진포 입구에 들어와 배를 밧줄로 묶어 두고 해안에 상륙해 노략질하자, 나세·심덕부·최무선 등이 진포에 이르러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처음으로 사용해 왜선을 불태웠다는 기록이다. 1380년의 진포 대첩이다.

    최무선은 1377년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해 화약과 화포를 제조하였고, 그 성과가 진포에서 함포 공격으로 처음 발휘되었다. 이는 고려 우왕 때의 일로, 육지로 달아난 왜구는 이성계가 황산 대첩에서 격퇴하였다.

    연표는 1270년 개경 환도 – 1351년 공민왕 즉위 – 1392년 조선 건국 – 1510년 삼포 왜란 – 1592년 임진왜란 – 1627년 정묘호란으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 1380년은 공민왕 즉위(1351)와 조선 건국(1392) 사이인 (나) 구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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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왕자의 난이 일어나 정도전 등이 피살되었다.
    2
    성삼문 등이 상왕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되었다.
    3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빌미가 되어 사화가 일어났다.
    4
    도학 정치를 주장한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가 제거되었다.
    5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관련자들이 화를 입었다.
    해설

    그림 속 신하는 반정으로 정국공신이 된 사람들 가운데 공이 없으면서도 공신에 오른 자가 많으니 훈적에서 삭제하고 하사한 토지와 노비도 환수하라고 아뢰고, 왕은 "위훈을 삭제하라니 무슨 말인가"라며 되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정은 중종반정이며, 이 주장은 조광조가 이끈 신진 사류의 위훈 삭제 요구입니다.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받아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향약 보급 등 급진적인 도학 정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 정점이 정국공신 명단의 4분의 3가량을 삭훈하려 한 위훈 삭제였는데, 이는 훈구 공신들의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직접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훈구 세력이 반격하고 중종도 조광조의 독주에 부담을 느끼면서,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류가 대거 숙청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은 도학 정치를 주장하던 조광조 등 신진 사류가 제거된 사건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대화 이전의 일입니다.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피살된 것은 태조 대,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시도는 세조 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빌미가 된 무오사화와 폐비 윤씨 사사 사건에서 비롯된 갑자사화는 연산군 대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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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각 도에 안찰사를 보내어 지방 행정을 감찰하였어요.
    2
    지방 호족을 통제할 목적으로 사심관을 임명하였어요.
    3
    수도의 위치가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해 5소경을 두었어요.
    4
    향리가 수령의 행정 실무를 보좌하는 아전으로 격하되었어요.
    5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더 많았어요.
    해설

    지도에는 함경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여덟 개 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전국을 8도로 나눈 것은 조선의 행정 구역이며, 답변 첫 줄에서 특수 행정 구역이던 향·부곡·소가 소멸되어 갔다고 한 것도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를 가리킵니다.

    조선은 8도 아래 부·목·군·현을 두고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 시대에 지방 행정의 실질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향리는 수령의 행정 실무를 보조하는 아전으로 지위가 크게 떨어졌고, 외역전도 지급받지 못한 채 세습 하급 실무자로 격하되었습니다. 이것이 빈칸에 들어갈 내용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시대의 제도입니다. 각 도에 안찰사를 보낸 것과 지방 호족 통제를 위해 사심관을 임명한 것,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았던 것은 모두 고려의 지방 제도이고, 수도가 치우친 것을 보완하려 5소경을 둔 것은 통일 신라의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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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동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2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누르고 정국을 주도하였다.
    3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에 걸쳐 예송을 전개하였다.
    4
    원자의 명호(名號)를 정한 것에 반대한 서인이 축출되었다.
    5
    소론의 지지를 받은 희빈 장씨의 아들이 왕으로 즉위하였다.
    해설

    앞 자료는 서인이 역모를 고발하여 허적과 윤휴 등이 처형되고 수많은 남인이 관직에서 쫓겨났다는 내용으로,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집권한 경신환국(1680)입니다. 뒤 자료는 남인 대신들의 관작이 삭탈되고 노론과 소론이 정계에 복귀했으며 인현 왕후가 복위했다는 내용이므로 갑술환국(1694)입니다.

    두 사건 사이인 1689년에는 기사환국이 일어났습니다.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을 원자로 삼고 명호를 정하려 하자 송시열 등 서인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했고, 숙종은 이에 격노하여 송시열을 사사하고 서인을 축출한 뒤 남인에게 정권을 넘겼습니다. 이때 인현 왕후가 폐위되었기에 갑술환국에서 그가 복위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과 북인의 정국 주도는 선조·광해군 대의 일이고, 서인과 남인의 두 차례 예송은 현종 대의 일로 모두 경신환국 이전입니다. 희빈 장씨의 아들이 경종으로 즉위한 것은 1720년으로 갑술환국 이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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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우리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시전에서 영업하며 금난전권을 행사하였다.
    2
    상단을 형성하여 지방 장시를 돌아다니며 활동하였다.
    3
    공가를 받아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납품하였다.
    4
    포구에 자리 잡고 중개·금융·숙박 등의 영업을 하였다.
    5
    주로 한강을 무대로 세곡 수송과 곡물 도매업에 종사하였다.
    해설

    그림은 등에 지게를 지고 상품을 운반하는 상인의 모습이고, 글에서는 "짐을 메고 지고 다니면서 장사하여 먹고 산다", "노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객점에 눕기도 한다",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더라도 형제나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등짐과 봇짐을 지고 떠돌며 강한 조직적 결속을 지녔던 보부상을 가리킵니다.

    보부상은 조선 후기 장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크게 성장하여, 여러 장시를 순회하며 물품을 유통시켰습니다. 이들은 보부상단이라는 조직(상단)을 결성해 자체 규율과 상호 부조 체계를 갖추고 활동 구역을 관리했으므로, 상단을 형성하여 지방 장시를 돌아다니며 활동하였다는 설명이 이들에게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다른 상인들입니다. 시전에서 영업하며 금난전권을 행사한 것은 시전 상인, 공가를 받아 관청 물품을 납품한 것은 대동법 시행 이후의 공인, 포구에서 중개·금융·숙박업을 한 것은 객주와 여각, 한강을 무대로 세곡 수송과 곡물 도매에 종사한 것은 경강상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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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제시된 설명은 회색이나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 유약을 씌워 구운 도자기이며, 백토 분장 자체가 무늬가 되기도 하고 분장 후 선을 새기는 조화 기법, 배경의 백토를 긁어내어 무늬만 남기는 박지 기법 등이 쓰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유행한 분청사기의 정의 그대로입니다.

    보기 중 이 설명에 맞는 것은 회흑색 바탕에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물고기와 물결 무늬를 굵은 선으로 새겨 넣은 편병입니다. 유약이 탁하고 무늬가 자유분방하며 백토와 태토의 색 대비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분청사기의 특징이 뚜렷합니다.

    나머지는 종류가 다릅니다. 맑은 비색을 띤 참외 모양 병과 상감 기법으로 국화 등의 무늬를 새겨 넣은 매병은 고려청자이고, 흰 바탕에 푸른 안료로 꽃과 나무를 그린 항아리는 청화 백자, 아무 무늬 없이 둥근 형태만 살린 흰 항아리는 조선 후기의 백자 달항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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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영의정을 비롯한 3정승의 합의 체제로 운영되었다.
    2
    명종 대에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가 되었다.
    3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총괄 기구로 부상하였다.
    4
    세도 정치 시기에 외척 세력의 권력 기반이 되었다.
    5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혁파되었다.
    해설

    자료는 「효종실록」의 기록으로, 애초에 여진과의 전쟁 때문에 임시로 설치했으나 이제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두 관장하게 되어 의정부는 헛이름만 지니고 육조는 그 직임을 상실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빈칸에 들어갈 기구는 비변사입니다.

    비변사는 중종 대 삼포왜란을 계기로 여진과 왜의 침입에 대비하는 임시 회의 기구로 출발했고, 명종 대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군사뿐 아니라 외교·재정·인사까지 다루는 국정 총괄 기구로 부상했고, 세도 정치기에는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발판이 되었다가 흥선 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혁파했습니다.

    따라서 옳지 않은 설명은 영의정을 비롯한 3정승의 합의 체제로 운영되었다는 것입니다. 3정승의 합의로 국정을 논의한 기구는 의정부이며, 비변사는 3정승을 포함하되 공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와 5군영 대장, 대제학 등 고위 관원이 폭넓게 참여하는 도제조·제조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자료 자체가 비변사 때문에 의정부가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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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제도를 실시한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경국대전을 편찬하여 법령을 정비하였다.
    2
    대동법을 경기도에 시범적으로 시행하였다.
    3
    나선 정벌을 위해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4
    금위영을 설치하여 5군영 체제를 완성하였다.
    5
    붕당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고자 탕평비를 건립하였다.
    해설

    그림에서 신하가 양역이 불균등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다고 아뢰자, 왕은 이제부터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 주도록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군포 부담을 1년에 1필로 낮춘 이 제도는 1750년에 시행된 균역법이며, 이를 실시한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균역법으로 줄어든 재정을 결작(토지 1결당 미곡 2두), 선무군관포, 어세·염세·선세 등으로 보충했습니다. 또한 붕당 간의 극심한 대립을 억제하기 위해 탕평책을 폈고, 그 뜻을 널리 알리고자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웠습니다. 이 밖에 속대전 편찬, 신문고 부활, 청계천 준설 등도 영조의 업적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경국대전을 완성해 반포한 것은 성종, 대동법을 경기도에 처음 시행한 것은 광해군,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한 것은 효종, 금위영을 두어 5군영 체제를 완성한 것은 숙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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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새로운 역법으로 수시력이 도입되었어요.
    2
    서양의 과학 지식과 기술이 전래되었어요.
    3
    만권당을 통해 성리학 관련 서적들이 들어왔어요.
    4
    화북 지방의 농법을 집대성한 농상집요가 소개되었어요.
    5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의 풍습이 받아들여졌어요.
    해설

    그림은 연행사가 연경(베이징)의 조양문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고, 교사는 조선 후기에 연행사 일행을 통해 새로 들어온 문물을 묻고 있습니다. 연행사는 청에 파견된 사절단으로, 이들이 오간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당시 베이징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활동하며 서양 학문과 기술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연행사들은 이곳에서 곤여만국전도와 같은 세계 지도, 천리경·자명종, 화포 등을 접했고, 청을 통해 정리된 시헌력도 들여왔습니다. 그 결과 서양의 과학 지식과 기술이 조선에 전래되어 세계관의 확대와 실학의 발전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해당하는 사실입니다. 원의 역법인 수시력 도입, 충선왕이 연경에 세운 만권당을 통한 성리학 서적의 유입, 화북 지방 농법을 정리한 농상집요의 소개, 지배층 사이에 퍼진 변발과 호복의 유행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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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자료는 전라도 진산에 살던 윤지충이 유교식 제사를 지내지 않고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으며, 어머니 상에 조문을 거절하고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일로 처형당했다는 내용입니다. 1791년에 일어난 신해박해(진산 사건)로, 천주교와 관련해 처음으로 국가의 처벌이 가해진 사건입니다.

    연표는 1636년 병자호란 - 1728년 이인좌의 난 - 1776년 정조 즉위 - 1811년 홍경래의 난 - 1866년 병인양요 -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시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1791년은 정조 즉위(1776)와 홍경래의 난(1811) 사이에 놓이므로, 정조 즉위 다음 칸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신해박해는 정조 재위 중에 일어났으며, 정조는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면서도 남인 시파를 보호하려는 뜻에서 관련자 처벌을 윤지충 등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은 정조 사후 순조 즉위 직후의 신유박해(1801)에서 본격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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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에 들어갈 답변으로 적절한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그림은 김홍도의 풍속화 대장간으로, 달군 쇠를 메로 두드리는 장인들과 숫돌에 낫을 가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김홍도가 활동한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을 묻는 문제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관계가 바뀌어, 수확량을 나누는 타조법 대신 해마다 지대의 액수를 미리 정해 납부하는 도조법이 확산되었습니다. 정액 지대는 소작농이 생산량을 늘린 만큼 이익을 가져갈 수 있게 하여 농민의 자율성과 상품 작물 재배를 자극했습니다.

    또한 모내기법(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김매기에 드는 노동력이 크게 줄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농가가 넓은 땅을 경작하는 광작이 유행하여 부농이 성장하는 한편 토지를 잃은 농민은 임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으로 알맞은 답변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목화가 중국에서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 문익점 이후의 일이고, 전세를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어 부과한 연분 9등법은 조선 전기 세종 대의 공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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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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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글을 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2
    사변록을 통해 주자의 경전 해석을 비판하였다.
    3
    지방 행정의 개혁안을 담은 목민심서를 저술하였다.
    4
    영업전 설정 및 매매 금지를 주장하는 한전론을 제시하였다.
    5
    발해고를 저술하여 고대사 연구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넓혔다.
    해설

    제시된 글은 『성호사설』에서 인용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지역이 좁고 물길이 사방으로 통해 있어 동전이 필요하지 않으며, 동전을 쓴 지 7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폐단이 매우 심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전이 탐관오리·사치 풍속·도둑에게는 편리하나 농민에게는 불편하고, 사람들이 돈꿰미를 차고 저잣거리에서 돈을 허비해 인심이 각박해진다는 이른바 폐전론(廢錢論)입니다.

    이 글을 쓴 인물은 이익(성호)입니다. 그는 중농학파(경세치용) 실학의 대표 학자로, 나라가 쇠퇴하는 여섯 가지 폐단인 육두(六蠹)를 지적하고 화폐 유통의 부작용을 비판하였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한전론(限田論)을 제시한 내용입니다. 이익은 한 가정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를 영업전으로 정해 매매를 금지하고, 그 이외의 토지만 매매를 허용하여 점진적으로 토지 소유의 균등을 이루자고 주장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양명학을 연구해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 『사변록』으로 주자의 경전 해석을 비판한 인물은 박세당, 『목민심서』를 지은 인물은 정약용, 『발해고』를 지어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쓴 인물은 유득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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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몰락 양반 유계춘이 주도하였다.
    2
    지방관과 향리의 착취가 원인이었다.
    3
    전국 각지의 농민 봉기로 확산되었다.
    4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5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 운영으로 일단락되었다.
    해설

    제시된 역사 신문은 발행일이 임술년 2월이며, 지난 2월 19일진주의 백성이 큰 무리를 지어 이서(吏胥)들의 가옥 수십 호를 불사르고 환곡의 폐단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조정이 이를 수습하고자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사건은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세도 정치기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과 지방관·향리의 수탈이 원인이 되어 진주에서 시작된 봉기가 전국 각지로 번졌고, 몰락 양반 유계춘이 진주 봉기를 주도하였습니다.

    조정은 박규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임시 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다만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곧 폐지되었습니다.

    옳지 않은 설명은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 운영으로 일단락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집강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주 화약 이후 전라도 일대에 설치된 기구로, 임술 농민 봉기와는 30여 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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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문화재 카드에는 종목 국보 제55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그리고 상륜부를 갖춘 다층의 높은 건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조선 시대 목조탑이며 통층으로 된 내부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불화(팔상도)가 그려져 있다는 소개가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문화유산은 보은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 팔상전입니다. 5층 목탑 형식의 건물로,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7세기 초에 다시 세웠으며 꼭대기에 금속제 상륜부를 얹고 있어 겉모습은 탑, 쓰임은 불전인 독특한 구조를 보여 줍니다.

    사진으로 제시된 나머지 건물은 조건과 어긋납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전북 김제에 있는 3층 불전, 무량사 극락전은 충남 부여의 2층 불전, 화엄사 각황전은 전남 구례의 2층 불전, 마곡사 대웅보전은 충남 공주의 2층 불전으로, 모두 목조탑이 아니며 소재지도 보은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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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사절단’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강화도 조약의 후속 조치로 보내졌다.
    2
    귀국할 때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3
    서양 국가에 파견된 최초의 사절단이었다.
    4
    개화 반대 여론으로 인해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5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왔다.
    해설

    역사 신문에는 정부가 민영익을 전권 대사로 임명하여 파견한 사절단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고, 전년에 체결한 조약의 외교관 왕래 교섭 원칙에 따라 파견되어 현지인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으며, 수행원 가운데 유길준이 그곳에 남아 유학할 것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서 전년에 체결한 조약은 1882년의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고, 그 후속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이 보빙사입니다. 전권 대사 민영익과 홍영식·서광범 등이 참여했고, 유길준은 남아서 유학하여 뒷날 『서유견문』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이 사절단이 서양 국가에 파견된 최초의 사절단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근대 시설을 둘러본 뒤 돌아와 우정국 설치 등 개화 정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절단에 해당합니다. 강화도 조약의 후속 조치로 일본에 보내진 것은 수신사,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온 것은 제2차 수신사 김홍집, 개화 반대 여론 때문에 비밀리에 파견된 것은 일본에 보낸 조사 시찰단, 청의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고 온 것은 영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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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석장리 유적과 구석기 시대
    2
    (나) - 웅진 천도와 백제의 재도약
    3
    (다) - 김헌창의 난과 왕위 쟁탈전
    4
    (라) - 삼별초의 봉기와 대몽 항쟁
    5
    (마) - 우금치 전투와 동학 농민 운동
    해설

    안내문은 금강을 끼고 있는 백제의 고도에서 열리는 우리 고장 역사 특강으로, 배경 지도에는 금강과 공산성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즉 이 고장은 공주이며, 특강 표는 선사(가)·삼국(나)·통일 신라(다)·고려(라)·조선(마) 순서로 공주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선사 시대 주제로는 우리나라 대표적 구석기 유적인 공주 석장리 유적이, 삼국 시대 주제로는 백제 문주왕이 한성에서 공주로 옮긴 웅진 천도가 알맞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웅천주(공주) 도독이었던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켜,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을 보여 주는 주제로 적절합니다.

    조선 시대 주제인 우금치 전투 역시 1894년 동학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관군과 맞선 싸움이므로 공주와 직접 관련됩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고려 시대 주제로 제시된 삼별초의 봉기입니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봉기해 진도 용장성과 제주 항파두리로 근거지를 옮기며 항쟁하였으므로 공주와 무관합니다. 공주의 고려 시대 주제로는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이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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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라)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지도는 개항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을 보여 줍니다. (가)는 블라디보스토크 쪽에서 뻗어 나와 용암포·부산 등으로 세력을 확대러시아, (나)는 황해 건너 다롄 방면에서 진남포·인천·한성으로 경제 침투를 한 , (다)는 남해상의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영국, (라)는 시모노세키 쪽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며 경제 침탈을 한 일본입니다.

    청에 대한 설명인 톈진 조약 체결로 조선에서 군대를 철수하였다는 내용은 옳습니다. 1885년 갑신정변 뒤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어 양국 군대를 조선에서 철수하고, 이후 파병할 때는 서로에게 미리 알리기로 하였습니다.

    일본에 대한 설명인 방곡령 관련 조항이 포함된 통상 장정을 체결하였다는 내용도 옳습니다. 1883년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에는 방곡령을 시행할 때 1개월 전에 미리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뒷날 함경도·황해도 방곡령 사건에서 일본이 배상을 요구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나머지 두 설명은 나라가 어긋납니다. 조선이 최초로 최혜국 대우를 보장한 상대는 러시아가 아니라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미국이고, 천주교 선교 문제로 조약 체결이 지연된 나라는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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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협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하였다.
    2
    자유 민권 운동을 전개하고 의회 설립 운동을 펼쳤다.
    3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4
    황제의 측근 세력을 중심으로 전제 군주제를 지향하였다.
    5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해설

    그림 속 연설자는 "우리 협회의 요구가 반영된 헌의 6조관민 공동회에서 채택되었고 황제께서도 받아들이셨다"라고 청중 앞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관민 공동회와 헌의 6조는 독립 협회의 대표적인 활동이므로, 밑줄 그은 협회는 1896년 서재필 등이 창립한 독립 협회입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자유 민권 운동을 전개하고 의회 설립 운동을 펼쳤다는 내용입니다.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열어 민권 신장과 이권 수호를 주장하였고, 헌의 6조에서 중추원을 개편해 의회식 기구로 만들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단체의 활동입니다.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한 것은 대한 자강회,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운 것은 신민회, 황제의 측근을 중심으로 전제 군주제를 지향한 것은 독립 협회와 대립한 황국 협회,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은 보안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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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전보가 발송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대한 제국이 대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2
    미국과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3
    일본인 메가타가 대한 제국의 재정 고문으로 초빙되었다.
    4
    고종이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5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일본에 제공하는 한·일 의정서가 강요되었다.
    해설

    전보는 독일 주재 공사에게 보낸 것으로, 이토 특별 공사와 하세가와 장군, 하야시 공사가 군대를 이끌고 궁궐로 난입해 무력으로 황제를 위협하며 그들이 만든 조약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고, 서울에 통감을 두어 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게 하였으니 국제법을 통해 항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입니다.

    즉 이 전보는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직후 고종이 열강에 부당함을 알리려 보낸 것입니다. 고종은 이 조약을 끝내 인정하지 않고 여러 경로로 무효를 호소하였습니다.

    따라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일입니다. 1907년 고종은 이상설·이준·이위종을 보내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일제는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을사늑약 이전의 일입니다. 대한 제국의 국외 중립 선언한·일 의정서 강요는 1904년 초, 메가타가 재정 고문으로 온 것은 제1차 한·일 협약이 맺어진 1904년 8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7월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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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사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농촌 진흥 운동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2
    농민들의 관습적인 경작권을 보장해 주었다.
    3
    지주들을 산업 자본가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4
    일제가 식민지 통치의 재정 기반을 확대하려고 시행하였다.
    5
    세계적 대공황으로 인해 일제의 정책이 바뀌면서 중단되었다.
    해설

    제시된 조선 총독부 시정 연보의 글은 (가) 사업이 지세의 부담을 공평히 하고 지적을 명확히 하여 소유권을 보호하며, 토지의 매매·양도를 간편·확실하게 하여 개량과 이용을 자유롭게 하고 생산력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1910년대에 시행된 토지 조사 사업에 대한 설명입니다.

    일제는 토지 조사령(1912)을 공포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신고해야만 소유권을 인정하는 기한부 신고제를 적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신고 절차를 몰랐거나 놓친 토지, 마을 공유지와 왕실·관청 소유지가 총독부로 넘어가 동양 척식 주식회사 등에 헐값으로 넘겨졌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의 재정 기반을 확대하려고 시행하였다는 내용입니다. 토지 소유 관계를 명확히 해 과세 대상 토지를 늘림으로써 지세 수입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나머지는 사실과 다릅니다. 농민의 관습적 경작권(도지권)은 오히려 부정되어 소작농의 지위가 불안정해졌고, 지주를 산업 자본가로 전환시키려 한 것은 광복 후 농지 개혁의 취지입니다. 또 농촌 진흥 운동은 1930년대의 정책이고, 대공황으로 중단된 것은 산미 증식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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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시나리오의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무오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2
    공화 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지향하였다.
    3
    연해주 이주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4
    조선 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5
    국권 반환 요구서를 조선 총독부에 제출하고자 하였다.
    해설

    시나리오는 서대문 감옥 종로 구치감을 배경으로 검사가 박상진을 신문하는 장면입니다. 박상진은 (가) 단체가 한국을 독립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무기를 구입하여 국권 회복을 준비하려 했고, 그 비용은 부호에게서 의연금을 걷고 일본인들이 불법 징수한 세금을 압수해 조달하려 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총사령 박상진이 이끈 이 단체는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대한 광복회입니다.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군자금을 모아 만주에 무관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하려 했으며, 친일 부호를 처단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공화 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지향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대한 광복회는 이전의 복벽주의 단체들과 달리 국권을 되찾은 뒤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단체의 활동입니다. 무오 독립 선언서는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발표하였고, 연해주 이주 한인이 중심이 된 조직은 권업회이며, 조선 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은 의열단 소속입니다. 국권 반환 요구서를 총독부에 제출하려 한 것은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한 독립 의군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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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민족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미국이 운산 금광 채굴권을 가져갔다.
    2
    프랑스가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였다.
    3
    일본이 차관을 강요하여 대한 제국의 재정을 악화시켰다.
    4
    러시아가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의 삼림 채벌권을 차지하였다.
    5
    중국이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내지 통상권을 얻어냈다.
    해설

    그림은 대구에 세워진 기념비로, 안내인이 “외세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일어난 민족 운동을 기념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웃이라 도우는 척 덮어 씌운 빚 덩어리 / 벗어보자 횃불 든 곳 우리 대구 여기더라”라는 구절에서, 밑줄 그은 민족 운동이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채 보상 운동은 대구의 서상돈·김광제 등이 발기하여 금연·금주와 패물 헌납으로 나랏빚을 갚자고 호소한 경제적 구국 운동으로,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후원 속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계기는 일본이 대한 제국에 차관을 강요하여 재정을 예속시키고 악화시킨 일입니다. 통감부는 시설 개선 명목으로 거액을 빌려주어 1,300만 원에 이르는 빚을 지웠습니다.

    운산 금광 채굴권(미국), 경의선 부설권(프랑스에서 이후 일본으로), 압록강·두만강·울릉도 삼림 채벌권(러시아)은 아관 파천 전후 열강의 이권 침탈 사례로, 독립 협회의 이권 수호 운동과 관련됩니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른 내지 통상권은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의 일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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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자료의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2
    신분,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각계각층이 참여하였다.
    3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간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4
    성진회와 각 학교 독서회에 의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5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해설

    자료에는 “백의(白衣)의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대열에 가담”하고 “인파는 광화문 네거리까지 꽉 메웠다”, “한 대열은 경복궁으로 향했다”, 순사조차 모자와 제복을 찢어 던지고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가담했다는 목격담이 실려 있습니다. 함께 실린 사진에도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만세를 외치는 군중이 담겨 있는데, 이는 1919년의 3·1 운동입니다.

    3·1 운동은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 선언에서 출발했으나, 곧 학생·농민·노동자·상인은 물론 자료에 보이듯 순사까지 가담하여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각계각층이 참여한 거족적 민족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국내에서 만주·연해주·미주로 확산된 점도 특징입니다.

    순종의 인산일을 기해 학생들이 주도한 것은 6·10 만세 운동이고, 이때 시위를 준비하던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이 사전에 대거 검거되었습니다.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에서 비롯되어 성진회와 각 학교 독서회를 통해 전국으로 번진 것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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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무장 투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의용대가 화북 지방에서 일본군과 벌인 전투이다.
    2
    대한 독립군 등이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전투이다.
    3
    한국 독립군이 대전자령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긴 전투이다.
    4
    북로 군정서 중심의 연합 부대가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
    5
    조선 혁명군이 중국 의용군과 함께 연합 작전을 펼쳐 승리한 전투이다.
    해설

    자료는 “(가)의 기억”이라는 제목 아래, 완루구에서 홍범도 장군이 치고 빠지는 전술로 일본군을 교란해 적끼리 서로 사격하게 만들었고, 어랑촌에서 김좌진 부대가 적은 병력으로 적의 총공세에 맞서 싸울 때 지원 사격으로 승리를 이끌었다고 회고합니다. 백운평·완루구·어랑촌 등지의 연속 전투로 구성된 이 무장 투쟁은 1920년 10월의 청산리 대첩입니다.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를 중심으로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등이 연합한 부대가 간도로 출병한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독립 전쟁 사상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 참변을 일으켰습니다.

    봉오동에서 대한 독립군 등이 일본군을 격파한 것은 청산리 대첩에 앞선 봉오동 전투이며, 대전자령 전투는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 화북 지방의 전투는 조선 의용대, 중국 의용군과의 연합 작전으로 영릉가·흥경성에서 승리한 것은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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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2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통해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3
    복벽주의 이념에 따라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4
    국외 거주 동포에게 독립 공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마련하였다.
    5
    구미 위원부를 두어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힘썼다.
    해설

    자료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된 조지 루이스 쇼에 관한 것입니다.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중국 안동(지금의 단둥)에서 무역 회사 이륭양행을 운영하면서, 상하이에서 수립된 (가)가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교통 사무국을 설치할 수 있도록 도왔고 1920년 일제에 체포되어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는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임시 정부는 이륭양행에 둔 안동 교통국과 연통제를 통해 국내와 연락하고 자금을 모았으며, 기관지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해 외교 활동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또 국외 동포를 대상으로 독립 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외교 활동으로는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해 독립 청원서를 제출했고,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한국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 힘썼습니다.

    반면 고종의 복위를 목표로 하는 복벽주의 이념에 따라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키려 한 것은 1912년 임병찬이 조직한 독립 의군부의 활동으로, 공화정을 표방한 임시 정부와는 이념 자체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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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자료의 사회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원불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2
    민족 자본의 보호와 육성을 추구하였다.
    3
    여학교 설립을 통해 여성 교육에 매진하였다.
    4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표로 하였다.
    5
    언론사의 주관으로 진행된 농촌 계몽 운동이었다.
    해설

    자료의 사칙(社則)에는 “본사의 위치는 진주에 둔다”, “본사는 계급 타파, 모욕적 칭호 폐지, 교육 권장, 상호의 친목을 목적으로 한다”, “본 사원의 자격은 조선인은 하인(何人)을 불문하고 입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1923년 진주에서 창립된 조선 형평사의 규약으로, 이 사회 운동은 형평 운동입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된 뒤에도 백정은 호적에 붉은 점이 찍히고 학교 입학이 거부되는 등 차별을 받았습니다. 형평사는 이러한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와 평등한 대우를 목표로 내걸고 전국 조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원불교를 중심으로 저축·개간을 벌인 것은 새생활 운동, 민족 자본의 보호와 육성을 내세운 것은 물산 장려 운동, 여학교 설립으로 여성 교육에 힘쓴 것은 찬양회 등의 활동, 언론사 주관의 농촌 계몽 운동은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과 조선일보의 문자 보급 운동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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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선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민족 유일당 운동이 추진되어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2
    청년 단체를 망라하여 조선 청년 연합회가 결성되었다.
    3
    우리 말과 역사를 연구하는 조선학 운동이 전개되었다.
    4
    실력 양성과 무장 투쟁을 함께 추구하는 신민회가 조직되었다.
    5
    임시 정부의 노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 대표 회의가 열렸다.
    해설

    자료는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하여는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질을 명백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또 과정적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히 승인하여 … 적극적으로 제휴하여”라고 밝힌 정우회 선언(1926)입니다. 사회주의 세력이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제휴를 공식 선언한 문서입니다.

    이 선언은 곧바로 좌우가 힘을 합치는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결합한 신간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최대의 합법적 항일 사회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조선 청년 연합회 결성(1920)과 신민회 조직(1907)은 이 선언보다 앞선 일이며, 국민 대표 회의(1923)도 선언 이전의 사건입니다. 정인보·문일평·안재홍 등이 주도한 조선학 운동은 1930년대에 여유당전서 간행을 계기로 전개된 것으로, 정우회 선언의 직접적 결과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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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2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3
    명동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4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5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하는 조선 혁명 선언을 집필하였다.
    해설

    연보에는 1880년 충청도 회덕현 출생, 1898년 성균관 입교와 독립 협회 가입, 1907년 대한매일신보 논설진으로 초빙, 1914년 환인 동창 학교에서 민족 교육 실시 및 고구려 유적 답사, 1928년 무정부주의 동방 연맹 사건으로 체포, 1931년 조선상고사 신문 연재,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이 적혀 있습니다. 이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신채호는 낭가 사상을 강조하며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를 저술해 민족주의 사학의 토대를 놓았고, 독사신론을 통해 일제의 식민 사관에 맞섰습니다. 1923년에는 의열단장 김원봉의 요청으로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한 독립을 주장한 조선 혁명 선언을 집필해 의열단의 활동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하얼빈 의거는 안중근, 한인 애국단 조직은 김구, 북간도 명동 학교 설립은 김약연 등,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해 군사 훈련을 실시한 것은 박용만의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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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ㄱ)이 시행된 시기의 일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한국인에 한하여 태형령을 적용하였다.
    2
    식량 배급 및 미곡 공출 제도를 실시하였다.
    3
    전국 각지에 신사를 증설하여 참배를 강요하였다.
    4
    조선 사상범 예비 구금령을 통해 독립 운동을 탄압하였다.
    5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하였다.
    해설

    공판 청구서의 범죄 사실은 피고인이 “일본이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제정한 소위 학도 지원병 제도”를 선전하여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특별 강연을 했다는 내용이며, 작성 기관은 반민족행위특별검찰부입니다. 학도 지원병 제도는 1943년에 시행된 것으로, 밑줄 그은 시기는 민족 말살 통치기(1930년대 후반~1945년)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 총동원법을 적용하여 식량 배급과 미곡 공출을 강행하고 금속류까지 거두어 갔습니다. 또 황국 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신사를 증설해 참배를 강요하고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시켰으며, 조선 사상범 예비 구금령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가두었습니다.

    반면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적용한 조선 태형령은 1912년에 제정되어 1920년에 폐지된 무단 통치기의 제도로, 헌병 경찰 제도와 함께 1910년대를 대표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정책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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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선언을 발표한 회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결의하였다.
    2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처음 보장하였다.
    3
    독일 항복 후 전후 처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4
    마지막까지 남아 저항하는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5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가 모여 한국 독립에 대해 논의하였다.
    해설

    사진에는 장제스·루스벨트·처칠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고, 선언문에는 “3대 연합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며 이를 응징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앞의 3대국은 한국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절차를 거쳐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결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1943년 미국·영국·중국 수뇌가 참여한 카이로 회담의 선언입니다.

    카이로 선언은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처음 보장한 문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다만 ‘적당한 절차를 거쳐’라는 단서가 붙어 있어, 훗날 신탁 통치 논의의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결의된 것은 얄타 회담, 독일 항복 이후 전후 처리를 협의하고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것은 포츠담 회담과 그 선언입니다. 미국·영국·소련의 외무 장관이 모여 한국 문제를 논의하고 최고 5년의 신탁 통치를 결정한 것은 1945년 12월의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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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선언이 발표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선언은 “8·15 이전과 이후 피차의 과오와 마찰을 청산하고 우리 정부 밑에 모이자”면서 “3천만의 총역량을 발휘하여 신탁 관리제를 배격하는 국민 운동을 전개하여 자주독립을 완전히 획득하기까지 … 항쟁 개시를 선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탁 통치 결정에 반발한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의 선언문입니다.

    신탁 통치 문제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와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가 결정되면서 불거졌고,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김구 등 임시 정부 계열을 중심으로 곧바로 반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연표에서 8·15 광복(1945년 8월)—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1945년 12월)—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1946년 3월)—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1947년 5월)—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내한(1948년 1월)—5·10 총선거(1948년 5월)의 순서를 따를 때, 이 선언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직후이자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이전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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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다음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는 헌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계엄하에서 통과되었다.
    2
    6·25 전쟁 중 부산에서 공포되었다.
    3
    국회의 형태를 양원제로 규정하였다.
    4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하였다.
    5
    국회에서 토론 없이 표결에 부쳐져 통과되었다.
    해설

    뉴스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번째로 개정된 헌법7월 7일에 공포되었고, 그 핵심이 정·부통령 직선제 채택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1952년 7월 7일 공포된 제1차 개헌, 이른바 발췌 개헌입니다.

    발췌 개헌은 6·25 전쟁 중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재선이 어려워지자 부산 일대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연행한 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킨 뒤, 계엄 상황에서 개헌안을 처리하였습니다.

    내용상으로는 정부안(대통령 직선제)과 국회안(내각책임제 요소)을 발췌·절충한 형태여서,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양원제(민의원·참의원) 국회 구성이 규정되었습니다. 표결은 토론 없이 기립 표결로 강행되어 절차적 정당성을 크게 훼손하였습니다.

    반면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한 것은 1954년의 제2차 개헌(사사오입 개헌) 내용으로, 발췌 개헌과는 시기도 목적도 다릅니다. 따라서 이 조항은 뉴스가 보도한 헌법의 설명으로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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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2
    대한민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3
    대한민국이 중화 인민 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4
    대한민국이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하였다.
    5
    대한민국과 미국이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하였다.
    해설

    (가)는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로,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에 조인되어 이듬해 발효되었습니다. 이로써 미군 주둔과 한·미 군사 동맹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나)는 브라운 각서로, 한국군의 베트남 추가 파병 대가로 미국이 군사·경제적 지원을 약속한 문서이며 1966년 3월에 전달되었습니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의 기간은 대략 1953년 말부터 1966년 초까지입니다.

    이 기간에 해당하는 사실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6·3 시위 등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965년 한·일 기본 조약(한·일 협정)을 체결하여 일본과 국교를 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후의 일입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수교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 결과이고, 중화 인민 공화국과 수교는 1992년, 한·미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2007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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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이 정부’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유상 매수, 유상 분배를 규정한 농지 개혁법을 실시하였다.
    2
    경제 제일주의에 따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안을 처음 마련하였다.
    3
    농촌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를 목표로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였다.
    4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금융 실명제를 전격 시행하였다.
    5
    개성 공단 건설을 통하여 남북 간 경제 교류 사업을 활성화시켰다.
    해설

    자료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운영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이 정부’ 시기에 이 기구에 가입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OECD 가입은 1996년으로, 이는 김영삼 정부 시기에 해당합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8월 대통령 긴급 명령 형식으로 금융 실명제를 전격 시행하여, 가명·차명 거래를 금지하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하였습니다. 지하 경제와 정경 유착을 차단하려는 조치였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농지 개혁법은 이승만 정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안의 최초 마련은 장면 내각,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부, 개성 공단 관련 남북 경제 교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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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가)~(라)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 (라)
    2
    (가) - (다) - (라) - (나)
    3
    (나) - (다) - (라) - (가)
    4
    (나) - (라) - (다) - (가)
    5
    (다) - (나) - (가) - (라)
    해설

    제시된 네 장의 사진은 각각 (가) 6월 민주 항쟁, (나) 4·19 혁명, (다) 부·마 민주 항쟁, (라)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가장 이른 것은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이승만 정부를 붕괴시킨 4·19 혁명(1960)입니다. 이어 유신 체제 말기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 민주 항쟁(1979)이 10·26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계엄 확대에 맞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1980)이 그 다음이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6월 민주 항쟁(1987)이 가장 나중입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4·19 혁명 → 부·마 민주 항쟁 → 5·18 민주화 운동 → 6월 민주 항쟁, 즉 (나) - (다) - (라) - (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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