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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27회
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몰락 양반 유계춘이 주도하였다.
2
지방관과 향리의 착취가 원인이었다.
3
전국 각지의 농민 봉기로 확산되었다.
4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5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 운영으로 일단락되었다.
해설

제시된 역사 신문은 발행일이 임술년 2월이며, 지난 2월 19일진주의 백성이 큰 무리를 지어 이서(吏胥)들의 가옥 수십 호를 불사르고 환곡의 폐단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조정이 이를 수습하고자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사건은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세도 정치기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과 지방관·향리의 수탈이 원인이 되어 진주에서 시작된 봉기가 전국 각지로 번졌고, 몰락 양반 유계춘이 진주 봉기를 주도하였습니다.

조정은 박규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임시 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다만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곧 폐지되었습니다.

옳지 않은 설명은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 운영으로 일단락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집강소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주 화약 이후 전라도 일대에 설치된 기구로, 임술 농민 봉기와는 30여 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