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시대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2
    주로 동굴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을 하였다.
    3
    거푸집을 이용하여 세형 동검을 제작하였다.
    4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였다.
    5
    쟁기,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였다.
    해설

    그림은 경상북도 예천군 삼강리 유적에서 (가) 시대를 대표하는 주먹도끼와 함께 몸돌·격지·찍개 등 16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여러 문화층이 확인되었다는 뉴스 화면입니다. 주먹도끼·찍개·몸돌·격지는 모두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이므로 (가)는 구석기 시대입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농경을 하지 않고 사냥과 채집, 물고기잡이로 식량을 얻었기 때문에 이동 생활을 하였으며,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거주하였습니다.

    한편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빗살무늬 토기로 식량을 저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 거푸집으로 세형 동검을 제작한 것은 초기 철기 시대, 쟁기·쇠스랑 등 철제 농기구를 사용한 것은 철기 시대 이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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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지방의 열 성에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두었습니다.
    2
    제가 회의에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습니다.
    3
    한(漢)과 진국(辰國)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하였습니다.
    4
    전국 7응 중 하나인 연과 대적할 만큼 성장하였습니다.
    5
    부왕(否王) 등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습니다.
    해설

    그림의 대화는 기원전 2세기경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이후의 고조선 상황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다른 학생은 우거왕이 왕검성을 침략한 한 무제의 군대에 맞서 저항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위만 조선 시기의 사실이 들어가야 합니다.

    위만 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세력을 넓혔고,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한(漢)과 진국(辰國)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독점하였습니다. 이는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반면 지방에 욕살·처려근지를 둔 것과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것은 고구려의 제도이고, 전국 7웅의 하나인 연과 대적할 만큼 성장한 것이나 부왕 등 강력한 왕이 등장해 왕위를 세습한 것은 모두 위만 집권 이전 시기의 고조선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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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혼인 풍속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2
    (가)-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여 책화가 있었다.
    3
    (나)-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4
    (나)-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는 12배로 갚게 하였다.
    5
    (가), (나)-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하였다.
    해설

    (가)는 나라가 작아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압박을 받다가 고구려에 예속되었고, 고구려가 그 지역 사람 중에서 대인을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했으며, 맥포·어염 및 해산물을 천 리나 되는 거리에서 짊어져 날랐다고 한 것으로 보아 옥저입니다.

    (나)는 해마다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니 이를 무천(舞天)이라 하고, 호랑이를 신으로 여겨 제사하며, 낙랑의 단궁·반어피·무늬 있는 표범·과하마가 난다고 한 것으로 보아 동예입니다.

    옥저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운 뒤 성인이 되면 며느리로 삼는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습니다. 반면 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의 풍속이므로 (가)에 대한 설명으로 맞지 않고, 여러 가(加)들이 사출도를 주관한 것과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한 1책 12법은 부여,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특징이어서 (나)나 두 나라 공통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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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철이 많이 생산되어 왜 등에 수출하였다.
    2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가 있었다.
    3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4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22담로를 설치하였다.
    5
    박, 석, 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해설

    그림의 자료는 『삼국유사』에 실린 호계사 파사석탑 이야기입니다. 옛날 이 고을이 (가)였을 때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동한 건무 24년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며, 탑은 사각형에 5층이고 붉은 무늬가 있는 돌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수로왕과 허황옥이 언급되었으므로 (가)는 김해의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변한 지역에서 성장하여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 등에 수출하였고,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며 해상 중계 무역으로 번영하였습니다.

    한편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와 박·석·김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한 것은 신라, 빈민 구제를 위한 진대법 실시는 고구려 고국천왕, 22담로 설치는 백제 무령왕에 해당하므로 금관가야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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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하였다.
    2
    대가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3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4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5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해설

    그림의 검색 화면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으로, 3년에 순장을 금지하고 처음으로 우경을 실시했으며, 4년에 '신라'를 국호로 삼고 '신라국왕'이라 칭하였고, 6년에 국내의 주·군·현을 정했다는 내용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는 모두 지증왕의 업적입니다.

    지증왕은 이 밖에도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켰으며, 수도 경주에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설치하여 시장 운영을 국가가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반면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한 것은 선덕 여왕, 대가야를 정복하고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것은 진흥왕, 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은 법흥왕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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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당이 안동도호부를 요동 지역으로 옮겼다.
    2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강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3
    신라가 당의 군대에 맞서 매소성에서 승리하였다.
    4
    고구려 안승이 신라에 의해 보덕국왕으로 임명되었다.
    5
    고구려가 당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완성하였다.
    해설

    (가)는 김춘추가 무릎을 꿇고 아뢰어 당의 군사를 빌려 달라고 청하자 태종이 옳게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했다는 기록으로, 648년에 성립한 나당 동맹을 가리킵니다. (나)는 계필하력과 이적의 군사가 평양성을 한 달 넘게 포위하고 남건이 항거하다가 신성이 성문을 열어 보장왕과 남건 등을 붙잡았다는 기록으로, 668년 고구려 멸망 장면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는 648년부터 668년까지입니다. 이 기간인 663년에 백제 부흥군과 이를 지원하러 온 왜의 수군이 백강에서 신라·당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였고, 이로써 백제 부흥 운동은 사실상 좌절되었습니다.

    반면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완성한 것은 647년으로 (가) 이전의 일이며, 안승이 보덕국왕으로 임명된 것(674년),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군에 승리한 것(675년), 당이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긴 것(676년)은 모두 고구려 멸망 이후 나당 전쟁 시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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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특별전에 전시될 사진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특별전 안내문의 제목은 ‘고분 벽화를 통해 본 고구려인의 삶’이고, 학교 역사 탐구 동아리가 고구려의 고분 벽화 사진을 모아 2019년에 여는 전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시에 걸 수 있는 사진은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벽화여야 합니다.

    제시된 사진 가운데 큰 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이 맞붙어 씨름하고 지팡이 든 노인이 지켜보는 장면(각저총 씨름도), 휘장을 드리운 방에서 주인이 손님을 맞아 상을 받는 장면(무용총 접객도), 말을 탄 무사가 무기를 치켜든 전투 장면, 나무 곁에서 공을 던지고 재주를 부리는 놀이 장면은 모두 고구려 고분 벽화로, 씨름·접객·전투·놀이 같은 고구려인의 생활 풍속을 보여 줍니다.

    반면 흰 회벽 위에 먹선으로 인물들을 나란히 그리고 붉은 채색을 더해, 검은 관모를 쓴 시종들이 긴 붉은 물건을 맞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경남 밀양 고법리 박익 묘의 벽화입니다. 고려 말~조선 초 인물인 박익의 무덤에 그려진 것이므로 고구려 고분 벽화 특별전에 전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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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2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
    3
    수와 외교 관계를 맺고 친선을 도모하엿다.
    4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5
    계백의 결사대를 보내 신라군에 맞서 싸웠다.
    해설

    제시된 『삼국사기』 기록은 왕이 장군 윤충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고, 성주 품석이 처자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자 윤충이 이들을 죽이고 품석의 목을 베어 왕도로 보냈으며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입니다.

    대야성 함락은 642년의 일로, 이때 백제를 다스린 왕은 의자왕입니다. 이 사건으로 사위와 딸을 잃은 김춘추가 고구려와 당을 오가며 동맹을 모색하게 되어, 나당 연합군 결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자왕 재위 말기인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자 왕은 계백이 이끄는 결사대를 황산벌로 보내 김유신의 신라군에 맞서 싸우게 하였습니다. 익산 미륵사 창건과 수와의 친선은 무왕, 사비 천도와 국호 남부여는 성왕, 평양성을 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것은 근초고왕 때의 일이어서 이 왕의 재위 기간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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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왕’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2
    관리 채용을 위해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3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하고 관등을 정비하였다.
    4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5
    위흥과 대구화상에게 삼대목을 편찬하도록 하였다.
    해설

    제시된 설화 자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왕이 설총에게 이야기를 청하자 설총이 화왕(모란)과 장미·백두옹에 빗대어 간언한 화왕계를 들려주었고, 왕이 이를 임금 된 자의 교훈으로 삼으라 하며 설총을 높은 벼슬에 발탁했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하나는 동해에 거북 머리 모양의 작은 산이 나타나고 그 위의 대나무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기에, 왕이 이를 베어 피리를 만들고 만파식적이라 이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화왕계와 만파식적 설화는 모두 통일 신라 신문왕 대의 일로 전해집니다.

    신문왕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687년 문무 관리에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689년에는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켰습니다. 독서삼품과는 원성왕, 병부와 상대등 설치는 법흥왕,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은 선덕 여왕, 『삼대목』 편찬은 진성 여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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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은진 미륵이라 불리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 석불로, 지방 세력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따라서 (가) 국가는 고려이다. 정답 자료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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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인물의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길의 휘하에서 세력을 키웠다.
    2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3
    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4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에게 패배하였다.
    5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해설

    답사 안내 장면에서 소개하는 곳은 전주 동고산성으로, 신라 말의 혼란을 틈타 완산주에 나라를 세운 (가) 인물과 관련된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1980년 이곳에서 발견된 ‘전주성(全州城)’ 명문 기와가 그 근거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900년에 후백제를 세운 인물은 견훤입니다. 견훤은 신라 서남해 방어의 비장 출신으로 세력을 키워 나라를 열었고, 927년에는 경주를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견훤은 중국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 하였습니다. 양길의 휘하에서 성장한 것, 광평성 등 정치 기구를 마련한 것,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한 것은 모두 궁예의 활동이며,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에 패한 쪽은 견훤의 아들 신검이 이끈 후백제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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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정책이 추진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2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이 전개되었다.
    3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이 운영되었다.
    4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을 널리 재배하였다.
    5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왕 2년에 교서를 내려 주전(鑄錢)하는 관청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화폐를 유통시키겠다고 한 내용과, 왕 6년에 주전도감이 백성들이 동전 사용의 이로움을 알게 되었다고 아뢰었으며 같은 해 은병을 만들어 화폐로 삼았다는 내용입니다.

    주전도감을 두고 해동통보 등 동전과 은병(활구)을 발행한 것은 고려 숙종 때의 일입니다. 의천의 건의를 받아들여 추진된 이 화폐 정책은 실제로는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 때문에 널리 유통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 곧 고려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개경에 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이 운영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부경이라는 창고는 고구려, 청해진 중심의 해상 무역은 통일 신라, 감자·고구마 등 구황 작물 재배와 계해약조 체결은 조선 시대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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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왕이 시행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중시하였다.
    2
    민생 안정을 위해 흑창을 설치하였다.
    3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4
    국자감에 7재라는 전문 강좌를 개설하였다.
    5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해설

    제시된 『고려사』 자료는 발해가 거란에게 격파되자 세자 대광현 등이 수만 호를 이끌고 귀순해 오자 (가)가 이들을 후하게 대우하고 성과 이름을 하사하였으며, 종실의 족보에 올리고 본국 조상들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926년 발해 멸망 후 대광현 무리를 받아들이고 왕계(王繼)라는 성명을 내려 준 왕은 고려 태조 왕건입니다. 태조는 이처럼 발해 유민을 포섭하며 북진 정책과 민족 통합을 함께 추진하였습니다.

    태조는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북진의 기지로 중시하였고,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을 설치하였으며,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아 지방 세력을 통제하고,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습니다. 반면 국자감에 7재라는 전문 강좌를 개설한 것은 고려 예종의 관학 진흥책이므로 이 왕의 정책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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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라)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나)-(다)-(라)
    2
    (가)-(나)-(라)-(다)
    3
    (나)-(가)-(라)-(다)
    4
    (나)-(다)-(가)-(라)
    5
    (다)-(라)-(나)-(가)
    해설

    제시된 네 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는 강감찬이 수도에 성곽이 없다며 나성 축조를 요청하여 왕가도가 이를 쌓게 한 일, (나)는 양규가 흥화진에서 군사 7백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서 군사 1천여 명을 더 수습한 뒤, 밤중에 곽주로 들어가 지키던 거란군을 몰살하고 성 안의 남녀 7천여 명을 통주로 옮긴 일입니다.

    (다)는 묘청 등이 서경 임원역이 대화세의 땅이니 궁궐을 세우고 옮기면 천하를 아우를 수 있다고 아뢴 일, (라)는 윤관이 여진을 평정하고 6성을 새로 쌓았다고 하례하는 표를 올렸으며,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은 일입니다.

    연대순으로 보면 양규의 활약은 거란의 2차 침입 때인 1010~1011년, 개경 나성 축조는 거란 침입이 끝난 뒤인 1020년대(1029년 완성), 윤관의 동북 지역 축성(동북 9성)은 1107~1108년, 묘청의 서경 천도 주장은 인종 때인 1128년 이후입니다. 따라서 거란군을 격퇴하고 백성을 통주로 옮긴 일 → 개경 나성 축조 → 여진 평정 후의 축성 → 서경 천도 주장의 순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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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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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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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5
    해설

    대화 장면에서 (가) 문화유산은 국보 제323호이자 고려 시대 최대 규모의 불상이며, ‘은진 미륵’이라고도 불리는데 거대하고 투박하면서도 지역적 특색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것은 충남 논산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입니다. 사진으로는 머리 위에 넓고 네모난 이중의 보개(갓)를 얹고 몸에 비해 얼굴과 손이 크게 표현된, 높이 18m가 넘는 거대한 석조 보살 입상의 모습으로 확인됩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사진들은 바위 면에 삼존이 새겨진 마애여래삼존상, 자연 암벽에 새긴 대형 마애여래입상, 서로 다른 모양의 갓을 쓴 두 구가 나란한 마애이불입상, 야외에 나란히 선 석불 여러 구로, 고려 최대 규모의 ‘은진 미륵’이라는 설명과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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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국가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하였다.
    2
    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3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4
    다인철소 주민들이 충주 지역에서 저항하였다.
    5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었다.
    해설

    제시된 『고려사』 자료에서 (가)의 장수 합진과 찰랄이 거란을 토벌하겠다며 회주·맹주·순주·덕주 네 성을 공격해 격파하고 곧바로 강동성으로 향했고, 고려의 조충·김취려가 이들과 병사를 합쳐 강동성을 포위하자 적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가)가 조서를 보내 사신 저고여를 죽이고 도적의 소행이라 한 것을 죄목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강동성 전투(1219)와 저고여 피살 사건(1225)의 주체인 (가)는 몽골입니다. 저고여 피살을 구실로 1231년부터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려는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하여 장기 항전에 들어갔고,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했으며 뒷날 충주성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또 충주 다인철소 주민들이 저항하였고, 대장도감을 설치해 팔만대장경판을 새겨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이겨 내고자 하였습니다. 반면 최무선이 만든 화포로 진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1380년 왜구를 상대로 한 싸움이므로 이 침입에 대한 대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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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정치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아보았다.
    2
    화폐와 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맡았다.
    3
    5품 이하의 관원에 대한 서경권을 가졌다.
    4
    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다.
    5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였다.
    해설

    역사 용어 해설 카드는 (가)를 1405년(태종 5)에 독립된 기구로 개편된 중앙 관서로, 『경국대전』에 따르면 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 등 6인의 승지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또 『임하필기』를 인용해 승지에 임명되는 당상관은 이조나 대사간을 거쳐야 했고 인망이 신선과 같아 ‘은대(銀臺) 학사’라 불렸다고 하였습니다.

    승지 6인을 두고 은대라는 별칭으로 불린 기구는 조선의 승정원입니다. 승정원은 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으며, 은대·후원·정원 등으로도 불렸고 그 기록이 『승정원일기』로 남았습니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은 한성부, 화폐와 곡식의 출납·회계는 고려의 삼사, 5품 이하 관원에 대한 서경권 행사는 사헌부·사간원 등 대간, 외국어 통역과 번역은 사역원이 맡은 일이어서 이 기구의 기능과 구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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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역사서가 편찬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되었다.
    2
    이제현이 만권당에서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3
    최충이 유학을 교육하는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4
    망이ㆍ망소이가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다.
    5
    의천이 불교 교단 통합을 위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해설

    제시된 두 자료는 모두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편찬된 역사서다. 앞의 글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는 유교적 태도를 언급하면서도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로운 데서 탄생하였음을 인정하고 그래서 책머리에 기이(紀異)편을 둔다고 밝히고 있으니,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1281)다.

    뒤의 글은 "신(臣) 이승휴가 지어서 바칩니다"로 시작하여 제왕들이 계승하며 흥하고 망한 일을 춘추 필법에 따라 서술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제왕운기(1287)다. 두 책 모두 충렬왕 때 나왔다.

    따라서 1280년대 이후의 사실을 골라야 한다. 충선왕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세운 만권당에서 이제현이 원의 유학자들과 교류한 것은 1314년의 일로 두 역사서 편찬 이후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모두 그 이전이다.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된 것은 광종 때(958), 최충의 9재 학당은 문종 때, 의천의 천태종 개창은 1097년,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1176년으로 모두 고려 전기·중기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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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인조가 피신하여 청군에 항전하였다.
    2
    제1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3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4
    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이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다.
    5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되었다.
    해설

    답사 계획서의 일정에 만월대·첨성대·왕건릉·공민왕릉(1일차)과 숭양서원·표충사·선죽교(2일차)가 나란히 실려 있고, 지도에도 이 유적들이 한 도시 안에 모여 표시되어 있다.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 태조 왕건과 공민왕의 무덤,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가 함께 있는 곳은 고려의 수도 개성(개경)이다.

    개경에서는 무신 집권기인 1198년 최충헌의 사노비였던 만적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노비들을 모아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다. 거사 전에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신분 질서 자체를 겨냥한 봉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른 사건들의 무대는 개성이 아니다. 인조가 피신해 청군에 맞선 곳은 남한산성,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린 곳은 서울 덕수궁 석조전,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한 곳은 충남 덕산,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 곳은 청주 흥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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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2
    최초로 100리 철 축척법을 사용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3
    홍역에 관한 국내외 자료를 종합하여 의서를 편찬하였다.
    4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한 역법서를 저술하였다.
    5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는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해설

    화면은 "15세기 조선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끈 3인"으로 이천·장영실·이순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천은 금속 활자인 경자자와 갑인자를 만들어 인쇄술 발달을 이끌었고, 장영실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자격루·앙부일구·혼천의 제작에 참여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빈칸은 남은 한 사람인 이순지의 업적이다.

    이순지는 김담과 함께 세종의 명으로 칠정산 내편·외편을 만들었다. 중국 역법과 아라비아 역법을 바탕으로 하되 한양을 기준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의 운행을 계산한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서였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업적이다. 기기도설을 참고한 거중기 설계와 홍역 관련 의서(마과회통) 편찬은 정약용, 100리 척 축척법을 쓴 지도는 정상기의 동국지도, 사상 의학은 이제마의 업적으로 모두 조선 후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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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단안(壇案)이라는 명부에 등재되었다.
    2
    (가)-지방의 행정ㆍ사법ㆍ군사권을 행사하였다.
    3
    (나)-감사, 도백으로도 불렸다.
    4
    (나)-장례원(章隷院)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5
    (가), (나)-잡과를 통해 선발되었다.
    해설

    왼쪽 인물은 "8도의 부·목·군·현에 파견되며 경국대전에 임기는 1800일이고 원칙적으로 상피제의 적용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는 지방 고을에 파견된 수령이다. 오른쪽 인물은 "지방 관아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고려 때와 달리 외역전을 지급받지 못하며, 우두머리를 호장이라 부른다"고 하였으니 향리다.

    수령은 국왕을 대신해 고을을 다스리는 존재로 조세와 공납 징수, 재판, 지방군 지휘까지 맡아 행정·사법·군사권을 함께 행사하였다. 수령 칠사로 그 임무를 규정하고 상피제와 임기제로 견제한 것도 이 권한이 컸기 때문이다.

    향리는 조선에서 세습적인 아전으로 격이 낮아졌고, 그 명부인 단안(壇案)에 이름을 올렸다. 즉 단안은 수령이 아니라 향리와 관련된 명부다.

    감사·도백은 각 도에 파견된 관찰사의 다른 이름이지 향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장례원은 노비 문서와 소송을 담당한 관청이다. 수령은 중앙에서 임명해 내려보낸 관리였고 향리는 그 지역에서 세습되었으므로, 둘 다 기술관을 뽑는 잡과로 선발되었다는 설명도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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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등이 피살되었다.
    2
    위훈 삭제를 주장한 조광조가 제거되었다.
    3
    서인이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4
    성삼문 등이 상왕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되었다.
    5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위었다.
    해설

    (가)는 왕의 어머니 윤씨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정씨의 참소 때문이라 여긴 왕이 두 사람을 대궐 뜰에서 때려죽이고 자순 왕대비에게까지 불손하게 굴었다는 내용이다. 연산군이 생모 폐비 윤씨 사건을 빌미로 일으킨 갑자사화(1504)의 정황이다.

    (나)는 조정에 대윤·소윤이라는 말이 돌던 중 인종이 승하하자 윤원형이 기회를 얻어 자전의 밀지를 받고 이기·임백령 등과 함께 큰 화를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명종 즉위 직후의 을사사화(1545)다.

    따라서 1504년과 1545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찾아야 한다. 중종의 신임을 받던 조광조가 현량과 실시와 위훈 삭제를 밀어붙이다 훈구 세력의 반발로 제거된 기묘사화가 1519년에 일어나 이 시기에 들어맞는다.

    왕자의 난(1398)과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시도(1456)는 두 사화 이전이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선 것은 1575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은 1623년으로 모두 을사사화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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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좌수와 별감을 선발하여 운영하였다.
    2
    지방의 사림 세력이 주로 설립하였다.
    3
    전국의 부ㆍ목ㆍ군ㆍ현에 하나씩 설립되었다.
    4
    최고의 관립 교육 기관으로 성현의 제사도 지냈다.
    5
    흥선 대원군에 의해 47개소를 제외하고 철폐되었다.
    해설

    전시 설명은 경국대전에 정원이 200명으로 정해져 있고, 생원·진사인 상재생과 이들이 모자랄 때 유학으로 채우는 기재생으로 나뉘며, 아침·저녁 식당 출석을 하나로 세는 원점 300을 채우면 문과 초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주요 시설로 대성전명륜당이 제시된 점까지 더하면 조선의 성균관이다.

    성균관은 국가가 세운 최고 교육 기관으로, 명륜당에서 유학을 가르치는 한편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교육과 제향을 함께 맡은 구조가 향교·서원과 같으면서도 격이 가장 높았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기관의 것이다. 좌수와 별감을 두어 운영한 것은 유향소, 지방 사림이 주로 세우고 흥선 대원군 때 47개소만 남기고 철폐된 것은 서원, 부·목·군·현마다 하나씩 세워진 관학은 향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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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가 동원되었다.
    2
    왕권 강화를 위해 장용영이 설치되었다.
    3
    청과의 경계를 정한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4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다.
    5
    전통 한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해설

    해설자는 이 칠언시가 '이 왕'이 세자 시절 지은 것이며, 척화를 주장한 신하들과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뒤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병자호란 후 심양에 볼모로 갔다가 귀국해 왕위에 오른 인물은 봉림 대군, 곧 효종이다.

    효종은 청에 대한 복수를 내세워 북벌을 준비하며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비를 확충하였다. 그런데 청이 러시아 세력과 충돌하면서 조선에 파병을 요청하자,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를 보내 나선 정벌에 참여시켰다.

    다른 사실들은 시기가 다르다.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때, 동국문헌비고 편찬은 영조 때, 장용영 설치는 정조 때이며, 동의보감 완성은 효종보다 앞선 광해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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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예송이 전개되었다.
    2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서인이 정국을 주도하였다.
    3
    이괄의 난이 일어나 반란군이 도성을 장악하였다.
    4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정국을 독점하였다.
    5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책봉 문제로 환국이 발생되었다.
    해설

    자료는 인평 대군의 아들인 복창군·복선군·복평군이 남인에 붙어 윤휴·허목을 스승으로 삼고, 허적의 서자 허견과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김석주가 알아내어 경신년 옥사를 일으켰다고 전한다. 이는 숙종 6년(1680)에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경신환국이다.

    이후 숙종 15년(1689)에는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두고 서인이 반대하다가 송시열이 사사되고 남인이 다시 집권하는 기사환국이 일어났다. 경신환국 뒤에 전개된 사실로 알맞다.

    나머지는 모두 1680년 이전이다. 자의 대비의 복상을 둘러싼 예송은 현종 때(1659·1674), 정여립 모반 사건은 1589년, 이괄의 난은 1624년,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정국을 독점한 것은 광해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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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이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반에게도 군포가 부과되었다.
    2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3
    풍흉에 따라 전세를 9등급으로 차등 부과하였다.
    4
    부족한 재정의 보충을 위해 선무군관포를 징수하였다.
    5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해설

    대화에서 "이원익의 건의로 경기도에 먼저 시행한다", "방납의 폐단이 경기도에서 특히 심하다", "각 고을에서 공물 대신 쌀을 거두어 선혜청에 납부한다"고 하였다. 광해군 즉위년(1608)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집집마다 현물 공물을 거두던 방식을 바꾸어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베·동전을 내게 한 제도로, 토지가 적은 농민의 부담을 줄였다. 대신 국가가 필요한 물품은 시장에서 사들여야 했다.

    이에 따라 선혜청에서 값을 받아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하였고, 이들의 대량 구매가 상품 화폐 경제와 수공업 발달을 자극하였다.

    다른 설명은 각각 다른 제도의 내용이다.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린 것은 흥선 대원군의 호포제, 양전 후 지계를 발급한 것은 광무개혁, 풍흉에 따라 전세를 9등급으로 나눈 것은 세종의 연분 9등법, 선무군관포 징수는 균역법의 보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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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글을 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하였다.
    2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3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다.
    4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5
    여전론을 통해 마을 단위 토지 분배와 공동 경작을 주장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중국과 서양이 경도로 1백 80도 차이가 나서 서로를 정계(正界)와 도계(倒界)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은 지역에 따라 모두 그러하니 횡(橫)이나 도(倒)할 것 없이 다 정계"라고 말한다. 출처가 『의산문답』으로 밝혀져 있으므로 지은이는 홍대용이다.

    이 대목은 둥근 땅 위에서는 어느 곳도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화이관을 부정하는 논리다. 홍대용은 여기서 더 나아가 땅이 스스로 돈다는 지전설과 우주에 중심이 없고 끝이 없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하였다.

    다른 설명은 각기 다른 실학자의 것이다.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이는 발해고를 지은 유득공,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한 이는 김정희, 여전론을 주장한 이는 정약용이며,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된 인물은 이덕무·박제가·유득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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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종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단군 숭배 사상을 전파하였다.
    2
    하늘에 제사 지내는 초제를 거행하였다.
    3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경전으로 삼았다.
    4
    청을 다녀온 사신들에 의하여 서학으로 소개되었다.
    5
    유ㆍ불ㆍ선을 바탕으로 민간 신앙의 요소까지 포함하였다.
    해설

    병인박해 때 해미에서 수많은 신자가 순교했다는 기사 내용으로 보아 (가)는 천주교다. 천주교는 17세기 청을 다녀온 사신들이 한문 서학서를 들여오면서 학문인 서학으로 먼저 소개되었고, 18세기 후반부터 신앙으로 받아들여졌다. 미륵 신앙은 다른 계통,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동학, 박중빈은 원불교, 단군 숭배는 대종교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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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의 경제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덕대가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였다.
    2
    담배와 면화 등이 상품 작물로 재배되었다.
    3
    수조권이 세습되는 수신전, 휼양전이 있었다.
    4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척하였다.
    5
    왜관에서 개시 무역과 후시 무역이 이루어졌다.
    해설

    제시된 비변사등록 기사는 호조 판서 이성원의 말로, 각 아문의 봉부동전(창고에 봉해 둔 비상 대비용 돈)이 새로 조성된 것이 아닌데도 시중에 돈이 마르는 전황(錢荒)이 극심하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으로 부상(富商)과 대고(大賈)가 이때를 틈타 돈을 갈무리해 두고 이익을 취한다고 보았다.

    동전이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대상인이 화폐를 매점해 전황이 문제가 될 정도라면 조선 후기(18세기 무렵)의 상황이다. 이 시기에는 덕대가 물주의 자본을 받아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했고, 담배·면화 같은 상품 작물 재배가 확대되었다.

    대외 무역에서도 송상과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동래 왜관에서는 공인된 개시 무역과 사무역인 후시 무역이 함께 이루어졌다. 모두 조선 후기 경제의 모습이다.

    반면 수신전과 휼양전은 조선 전기 과전법 체제에서 관리의 유가족에게 수조권을 세습하게 해 준 토지로, 세조 때 직전법이 시행되면서 폐지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경제 모습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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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청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2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왕이 도성을 떠나 공산성으로 피란하였다.
    4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여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5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해설

    사진은 유계춘의 무덤이며, 설명에 따르면 그는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탐학과 향리들의 횡포에 맞서 농민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농민 봉기가 삼남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1862년(철종 13) 유계춘이 주도한 진주 농민 봉기로, 전국으로 번진 임술 농민 봉기의 발단이 된 사건이다. 삼정의 문란, 특히 백낙신의 도결환곡 수탈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박규수안핵사로 파견하였고, 그의 건의에 따라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참고로 청군에 진압된 것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최제우의 동학 창시는 이보다 앞선 1860년의 일이며, 왕이 도성을 떠나 공산성으로 피란한 것은 인조 때 이괄의 난, 남접과 북접의 연합은 동학 농민 운동 2차 봉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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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서술형 평가의 답안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독립시켰다.
    2
    미국과 합작하여 한성 전기 회사를 설립하였다.
    3
    5군영을 2영으로 축소하고 별기군을 창설하였다.
    4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백전을 주조하였다.
    5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고 외국어 학교 관제를 마련하였다.
    해설

    서술형 평가지의 자료는 밑줄 그은 기구를 두고 1880년에 설치되었으며 개화 정책을 총괄하기 위한 것으로, 소속 부서로 사대사·교린사·군무사·통상사·어학사·이용사12사를 두었다고 설명한다.

    12사를 갖추고 개화 정책을 총괄한 이 기구는 통리기무아문이다. 이는 기존 의정부·6조 체제와 별도로 설치된 근대적 개혁 추진 기구였다.

    통리기무아문은 군제 개편에 나서 종래의 5군영을 무위영·장어영의 2영으로 축소하고,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해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을 맡겼다.

    한편 재판소 설치를 통한 사법권 독립과 교육 입국 조서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 한성 전기 회사 설립은 대한 제국 시기, 당백전 주조는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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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반침략 기치를 들고 우금치 전투에 참여하다
    2
    (나)-군국기무처의 총재로 개혁을 주도하다
    3
    (다)-입헌 군주제를 꿈꾸며 갑신정변을 일으키다
    4
    (라)-을사늑약에 반대하여 항일 의병을 이끌다
    5
    (마)-평민 의병장에서 대한 독립군 사령관으로 활약하다
    해설

    안내문은 '인물로 보는 우리 역사'라는 강좌로, 제1강 최익현, 제2강 김옥균, 제3강 전봉준, 제4강 김홍집, 제5강 홍범도 순으로 편성되어 있다. 각 인물에 맞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

    홍범도는 함경도에서 포수 출신 평민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건너가 대한 독립군을 이끌었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다섯 번째 강의 주제로 알맞다.

    나머지는 인물과 주제가 어긋나 있다. 우금치 전투는 전봉준, 군국기무처 총재는 김홍집, 갑신정변은 김옥균, 을사늑약에 반대한 항일 의병은 최익현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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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문은 진성왕 3년(889) 원종과 애노의 난에 대한 『삼국사기』기록이다. 이는 신라 하대 혜공왕 피살(780) 이후, 고려 건국(918) 이전 시기에 해당하므로 연표의 (라)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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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시기에 실시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임명하였다.
    2
    김윤식을 청에 영선사로 파견하였다.
    3
    건양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4
    행정 기구를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하였다.
    5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고 과거제를 폐지하였다.
    해설

    제시된 어진은 황룡포를 입은 고종의 모습이다. 본래 조선의 왕은 홍룡포를 입었으나, 고종은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황룡포 차림으로 황제 즉위식을 올린 뒤 새로운 국호를 선포하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1897년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며 선포한 국호는 대한 제국이다. 따라서 묻는 시기는 대한 제국 시기이며, 이때 광무개혁이 추진되었다.

    대한 제국은 간도 지역 한인을 보호하기 위해 1903년 이범윤간도 관리사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반면 영선사 김윤식 파견은 1881년, 건양 연호 사용은 을미개혁 때, 6조를 8아문으로 개편하고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며 과거제를 폐지한 것은 제1차 갑오개혁으로, 모두 대한 제국 선포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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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신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천도교의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2
    상업 광고가 처음으로 게재되었다.
    3
    국채 보상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4
    농촌 계몽을 위해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하였다.
    5
    순 한문 신문으로 열흘마다 발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해설

    검색 결과 화면은 등록문화재 제509-3호로, 영국인 베델양기탁이 함께 창간하였고 박은식·신채호 등이 항일 논설을 실었으며, 외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이어서 일본의 사전 검열을 받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신문은 1904년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이다. 발행인이 영국인이었던 덕분에 통감부의 검열을 피해 가장 강경한 항일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을 적극 보도하고 의연금 모집을 지원하여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상업 광고가 처음 실린 신문은 한성주보, 순 한문으로 열흘마다 발행한 것은 한성순보, 천도교 기관지는 만세보이며,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가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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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나) 조약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2
    의병 진압을 위한 ‘남한 대토벌’작전이 전개되었다.
    3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 개혁을 요구하였다.
    4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가 파견되었다.
    5
    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해설

    앞의 조약은 제4조에서 대한 제국 정부가 일본의 행동에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고 일본이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한일 의정서(1904)이다.

    뒤의 조약은 제2조에서 한국 정부의 법령 제정과 중요한 행정 처분에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치게 하고, 제5조에서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관리로 임명하도록 한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1907)이다.

    두 조약 사이인 1907년 6월,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였다.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남한 대토벌' 작전은 1909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은 1894년,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은 1885년으로 모두 이 시기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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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마)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샌프란시스코에 중앙 총회를 두었다.
    2
    (나)-숭무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3
    (다)-권업신문을 발행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4
    (라)-2ㆍ8독립 선언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5
    (마)-이상설과 이동휘를 정ㆍ부통령으로 선임하였다.
    해설

    과제 안내문은 국외 독립운동 단체로 간민회, 부민단, 신한 청년당, 대한인 국민회, 대한 광복군 정부 다섯 곳을 제시하고 있다. 각 단체의 활동을 정확히 연결해야 한다.

    대한 광복군 정부는 1914년 연해주에서 이상설과 이동휘를 각각 정통령·부통령으로 선임하여 수립된 망명 정부로, 독립 전쟁을 준비한 최초의 임시 정부 형태였다.

    나머지 설명은 짝이 맞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에 중앙 총회를 둔 것은 대한인 국민회이고, 숭무 학교는 멕시코에서 세워졌으며 서간도의 부민단은 신흥 무관 학교를 뒷받침하였다.

    또한 권업신문을 발행한 것은 연해주의 권업회이고 신한 청년당은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으며, 2·8 독립 선언서는 도쿄 유학생들의 조선 청년 독립단이 발표하였다. 북간도의 간민회는 자치 활동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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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만세 시위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사회주의 세력의 주도 아래 계획되었다.
    2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삼아 추진되었다.
    3
    조선 형평사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5
    박상진이 주도한 대한 광복회 결성에 영향을 주었다.
    해설

    역사 신문은 4월 15일 경기도 수원군(현재 화성시) 제암리에서 일본군이 주민들을 교회에 모이게 한 뒤 문을 잠그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불을 질러 약 30명을 살해했다고 전한다. 이를 최근 만세 시위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해진 탄압으로 보고 있다.

    제암리 학살은 1919년의 일이므로 밑줄 그은 만세 시위 운동은 3·1 운동이다.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시작되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국외로까지 퍼져 나간 전 민족적 항일 운동이었다.

    3·1 운동은 조직적이고 통일된 독립운동 지도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여, 같은 해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해 순종의 인산일에 맞춘 것은 6·10 만세 운동, 조선 형평사가 중심이 된 것은 형평 운동이며, 대한 광복회 결성은 1915년으로 이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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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다.
    2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창립되었다.
    3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여 여유당전서를 간행하였다.
    4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기본 강령을 발표하였다.
    5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전개하였다.
    해설

    동아일보 기사는 전남 광주에서 일어난 고보 학생과 중학생의 충돌 사건에 대해 종로에 본부를 둔 단체가 제19회 중앙상무집행위원회 결의로 장성·송정·광주 세 지회에 조사 보고를 지령하고, 중앙집행위원장 허헌, 서기장 황상규, 회계 김병로 세 최고 간부를 광주에 특파했다고 전한다.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이 단체는 신간회이다. 신간회는 조사 결과를 알리는 민중 대회를 계획했다가 허헌 등 간부들이 검거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손잡은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실로 창립되었으며, '정치적·경제적 각성', '단결', '기회주의 배격'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참고로 조선 혁명 선언을 지침으로 삼은 것은 의열단, 여유당전서 간행은 조선학 운동, 삼균주의 강령은 한국 독립당,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 설립은 신민회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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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대책이 발표된 이후 일제가 시행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한국인에 한해 적용되는 조선 태형령이 공포되었다.
    2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치안 유지법이 마련되었다.
    3
    기한 내에 토지를 신고하게 하는 토지 조사령이 제정되었다.
    4
    헌병대 사령관이 치안을 총괄하는 경무총감부가 신설되었다.
    5
    회사 설립 시 충독의 허가를 얻도고 하는 회사령이 발표되었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사이토 마코토 문서」로, 암암리에 조선인 중 친일 인물을 물색해 각 계급·사정에 따라 각종 친일 단체를 만들게 하고, 조선 내 각 면에 ○재회 등을 조직해 면장을 회장에 추대하며 국유 임야 일부를 불하하거나 입회를 허가하는 등 당국의 양해 아래 각종 편의를 제공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3·1 운동 이후 부임한 사이토 총독이 내세운 이른바 문화 통치의 실상, 즉 친일파를 양성해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기만적 통치 방침을 담은 문서입니다.

    따라서 이 대책이 발표된 1920년대 이후의 정책을 골라야 합니다. 일제는 1925년 국내외에서 확산되던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은 이후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민족 운동가 전반을 검거하는 데 광범위하게 악용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정책입니다. 한국인에게만 적용된 조선 태형령(1912), 헌병대 사령관이 경무총장을 겸해 치안을 총괄한 경무총감부(1910), 기한 내 신고주의를 내세운 토지 조사령(1912), 회사 설립에 총독의 허가를 받게 한 회사령(1910)은 모두 이 문서보다 앞선 시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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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나)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의민단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2
    (가)-잡지 개벽을 발행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3
    (나)-경향신문을 발간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다.
    4
    (나)-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에 기여하였다.
    5
    (가), (나)-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회를 결성하였다.
    해설

    그림은 일제 강점기 종교계의 저항을 정리한 게시판으로, 불교 항목에는 "조선 불교 유신회를 조직하여 사찰령 철폐 운동을 전개하였다"가 적혀 있고, 나머지 두 칸이 각각 (가) 천도교, (나) 대종교로 비어 있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천도교는 3·1 운동을 주도한 뒤 종합 잡지 『개벽』을 비롯해 『신여성』, 『어린이』 등을 발행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문화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나) 대종교는 나철이 단군 신앙을 바탕으로 창시한 종교로, 만주에서 중광단을 결성하고 이를 북로 군정서로 개편하여 청산리 대첩 등 무장 독립 전쟁을 전개하였습니다.

    한편 의민단 조직과 『경향신문』 발간은 천주교, 배재 학당 설립은 개신교(아펜젤러)의 활동이며, 을사오적 처단을 위한 자신회는 대종교 창시 이전 나철·오기호 등이 결성한 별개의 조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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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중국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2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ㆍ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다.
    3
    흥커우 공원에서 일어난 윤봉길 의거를 계획하였다.
    4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하였다.
    5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하여 군사 훈련에 힘썼다.
    해설

    자료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된 이봉창의 이력입니다. 서울 출신으로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막일로 생계를 잇다가 민족 차별에 분노해 상하이로 갔고, 1931년 김구가 조직한 (가)에 가입한 뒤 1932년 1월 도쿄에서 일왕이 탄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으며, 같은 해 사형을 선고받아 순국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가)는 김구가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로를 열기 위해 조직한 한인 애국단입니다. 이 단체는 이봉창 의거에 이어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거를 계획·실행하였고, 그 결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 한국 광복군 창설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를 치른 것은 조선 혁명군, 영국군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투입된 것은 한국 광복군,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한 것은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한 독립 의군부, 조선 혁명 간부 학교 설립은 의열단의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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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글을 쓴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 조선사 편찬에 참여하였다.
    2
    실증주의 사학의 연구를 위해 진단 학회를 창립하였다.
    3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독립 투쟁 과정을 서술하였다.
    4
    임시 사료 편찬회에서 한ㆍ일 관계 사료집을 편찬하였다.
    5
    식민 사학을 반박하는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였다.
    해설

    제시문은 조선의 역사적 발전이 "외관상의 특수성이 다른 문화 민족과 구별될 만큼 독자적인 것은 아니며, 세계사적인 일원론적 역사 법칙에 의해 다른 여러 민족과 거의 같은 궤도의 발전 과정을 거쳐 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조선사에도 보편적 발전 법칙이 관철된다는 사회 경제 사학의 문제의식으로, 글쓴이는 백남운입니다.

    백남운은 유물 사관에 입각해 『조선사회경제사』『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한국사가 봉건 사회를 거치지 못했다는 일제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한편 조선사 편수회 참여는 이병도·신석호 등, 진단 학회 창립은 실증주의 사학자들,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은 박은식, 임시 사료 편찬회의 『한·일 관계 사료집』 편찬은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안창호·이광수 등의 일로 백남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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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이 사건’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일제에 의해 경성 제국 대학이 설립되었다.
    2
    신경향파 작가들이 카프(KAPF)를 결성하였다.
    3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 처음 개봉되었다.
    4
    여성 계몽과 구습 타파를 주장하는 근우회가 창립되었다.
    5
    일제가 한글 학자들을 구속한 조선어 학회 사건이 일어났다.
    해설

    화면의 사진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모습으로, 원본과 달리 오른쪽 사진에서는 가슴의 일장기가 지워져 있습니다. 설명대로 일부 신문이 일장기를 삭제했다가 무기 정간을 당하거나 자진 휴간한 이 사건은 1936년의 일장기 말소 사건입니다.

    따라서 1936년 이후의 사실을 찾아야 합니다. 일제는 1942년 우리말 사전 편찬을 추진하던 한글 학자들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몰아 검거한 조선어 학회 사건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학회는 강제 해산되고 사전 편찬 작업도 중단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사건 이전입니다. 경성 제국 대학 설립은 1924년, 신경향파 작가들의 카프 결성은 1925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은 1926년, 여성 계몽과 구습 타파를 내건 근우회 창립은 1927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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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국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민의원, 참의원의 양원으로 운영되었다.
    2
    한ㆍ미 자유 무역 협정(FTA)을 비준하였다.
    3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였다.
    4
    유상 매수ㆍ유상 분배 원칙의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다.
    5
    의원 정수 3분의 1이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선출되었다.
    해설

    라디오 방송 내용은 5·10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국회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통과시켰고, 한·일 합방에 협력한 자와 독립운동가를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며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전합니다. 즉 밑줄 그은 국회는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입니다.

    제헌 국회는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에 더해, 1949년 유상 매수·유상 분배 원칙에 따라 지주의 토지를 사들여 농민에게 나누어 주는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이로써 지주제가 해체되고 자작농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반면 민의원·참의원의 양원제 운영은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시기, 초대 대통령에 한한 중임 제한 철폐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때의 일이며, 의원 정수 3분의 1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선출한 것은 유신 체제의 국회,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비준은 2011년 국회의 일로 모두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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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의열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
    재미 한인을 중심으로 흥사단을 창립하였다.
    3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4
    민족 자주 연맹을 이끌고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다.
    5
    일제의 패망과 건국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해설

    화면의 독립운동가 소개에는 생몰 연도 1881~1950, 훈격 대한민국장(서훈 1989년)과 함께 공적으로 1919년 파리 강화 회의 민족 대표, 1935년 민족 혁명당 설립 참여, 1944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부주석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세 이력을 모두 갖춘 인물은 김규식입니다.

    광복 후 김규식은 여운형과 함께 좌우 합작 운동을 이끌었고, 민족 자주 연맹을 결성해 그 위원장으로서 김구와 더불어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협상에 참여하여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였습니다.

    한편 의열단 조직과 단장 활동은 김원봉, 재미 한인을 중심으로 한 흥사단 창립은 안창호, 신흥 강습소 설립은 이회영 등 신민회 인사들, 조선 건국 동맹 결성은 여운형의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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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ㄴ
    2
    ㄱ,ㄷ
    3
    ㄴ,ㄷ
    4
    ㄴ,ㄹ
    5
    ㄷ,ㄹ
    해설

    제시된 조약은 "국제 연합군 총사령관을 한쪽 편으로 하고 조선 인민군 최고 사령관 및 중국 인민 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쪽으로 하는" 서명자들이 한국에서의 적대 행위와 일체 무장 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맺은 것이므로, 1953년 7월의 정전 협정입니다.

    ㄱ은 옳습니다. 1951년 개성에서 시작된 정전 회담은 군사 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방식을 둘러싸고 대립하였고, 특히 자유 송환이냐 자동 송환이냐를 놓고 협상이 길어져 2년여 동안 체결이 지연되었습니다.

    ㄷ도 옳습니다. 정전 협정은 당시의 접촉선을 기준으로 군사 분계선을 확정하고, 그 남북 각각 2km씩을 비무장 지대로 설정하였습니다.

    반면 ㄴ의 미·소 군정 종식은 1948년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루어진 일이고, ㄹ의 애치슨 선언은 1950년 1월에 발표되어 6·25 전쟁 발발의 한 배경으로 지목되는 것이므로, 전쟁을 매듭지은 이 협정보다 앞서 있어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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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가) 정부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한ㆍ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였다.
    2
    YH 무역 노동자들의 농성을 강경 진압하였다.
    3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를 시행하였다.
    4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삼청 교육대를 설치하였다.
    5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을 제거하였다.
    해설

    자료는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인민 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국가 전복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 및 긴급 조치 제4호에 따라 다수 인사를 체포해 사형·무기 징역을 선고하고, 판결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1974~1975년의 사건이므로, (가)는 유신 체제하의 박정희 정부입니다.

    박정희 정부 말기인 1979년, 회사 폐업에 항의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 무역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제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면서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부·마 민주 항쟁으로 이어져 유신 체제 붕괴를 재촉하였습니다.

    한편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1953)과 진보당 조봉암 사건(1958)은 이승만 정부, 삼청 교육대 설치는 전두환 신군부, 대통령 긴급 명령을 통한 금융 실명제 실시(1993)는 김영삼 정부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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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밑줄 그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장면 내각이 출범하는 배경이 되었다.
    2
    굴욕적인 한ㆍ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3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4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와 무력 진압에 저항하였다.
    5
    3ㆍ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해설

    '민주화 운동 사진전'의 사진은 "고 박종철 군 국민 추도회"와 "살인 고문 자행하는 군부 독재 물러가라"는 현수막이 걸린 집회 장면입니다. 대화에서 밝히듯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사건이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외친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민주화 운동은 6월 민주 항쟁(1987)입니다.

    4·13 호헌 조치와 이한열의 피격으로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자 정부·여당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헌법(9차 개헌)이 마련되었습니다.

    한편 장면 내각 출범의 배경이자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해 확산된 것은 4·19 혁명,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것은 6·3 시위, 신군부의 계엄 확대와 무력 진압에 저항한 것은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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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다음 정부 시기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남북 기본 합의서를 교환하였다.
    2
    7ㆍ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3
    개성 공업 지구 조성에 합의하였다.
    4
    10ㆍ4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5
    이산 가족 고향 방문을 최초로 성사시켰다.
    해설

    제시된 사진첩에는 서울 올림픽 개최, 3당 합당(민주자유당 창당 축하연),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의 세 장면이 담겨 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시기는 노태우 정부(1988~1993)이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뒤 이른바 북방 외교를 추진하여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권과 수교하였고, 1990년에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쳐 민주자유당을 만들었으며, 1991년 9월 남북이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이 정부의 대표적 통일 성과는 1991년 12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채택되어 이듬해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 기본 합의서)의 교환이다. 같은 시기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도 채택되었다.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이산가족 고향 방문 최초 성사는 전두환 정부(1985), 개성 공업 지구 조성 합의는 김대중 정부, 10·4 남북 공동 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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