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국가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2회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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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1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하였다.
2
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3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4
다인철소 주민들이 충주 지역에서 저항하였다.
5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었다.
해설
제시된 『고려사』 자료에서 (가)의 장수 합진과 찰랄이 거란을 토벌하겠다며 회주·맹주·순주·덕주 네 성을 공격해 격파하고 곧바로 강동성으로 향했고, 고려의 조충·김취려가 이들과 병사를 합쳐 강동성을 포위하자 적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가)가 조서를 보내 사신 저고여를 죽이고 도적의 소행이라 한 것을 죄목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강동성 전투(1219)와 저고여 피살 사건(1225)의 주체인 (가)는 몽골입니다. 저고여 피살을 구실로 1231년부터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려는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하여 장기 항전에 들어갔고,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했으며 뒷날 충주성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또 충주 다인철소 주민들이 저항하였고, 대장도감을 설치해 팔만대장경판을 새겨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이겨 내고자 하였습니다. 반면 최무선이 만든 화포로 진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1380년 왜구를 상대로 한 싸움이므로 이 침입에 대한 대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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