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철제 무기로 정복 활동을 벌였다.
    2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되었다.
    3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4
    주먹도끼, 찍개 등의 뗀석기를 처음 제작하였다.
    5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해설

    안내문은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이 시대의 대표 유적지로 여주 흔암리 유적을 소개하고, 체험 프로그램으로 민무늬 토기 조각 맞추기, 반달 돌칼로 벼 이삭 수확하기, 흙 속의 탄화미 찾아보기를 제시하였다. 이는 모두 청동기 시대의 특징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고 잉여 생산물이 쌓이면서 빈부 차이와 계급이 생겨났고, 지배층이 죽으면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철제 무기로 정복 활동을 벌인 것은 철기 시대,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된 것은 고려 시대 이후이다. 주먹도끼·찍개 같은 뗀석기를 처음 만든 것은 구석기 시대이며,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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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2
    국가 중대사를 정사암에서 논의하였다.
    3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4
    지방의 여러 성에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두었다.
    5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를 만들었다.
    해설

    역사 신문 기사는 한의 사신 섭하가 자신을 송별하던 (가)의 비왕 장을 살해하자 한 무제가 오히려 섭하에게 벼슬을 내렸고, 이에 분노한 우거왕이 군대를 보내 섭하를 죽이자 한 무제가 병력을 모아 (가)를 침공했다고 전한다. 우거왕과 한 무제의 침공(기원전 109년)이 등장하므로 (가)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8조법)를 두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게 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고 규정하였다. 이를 통해 생명 존중, 사유 재산 보호, 노비의 존재 등을 알 수 있다.

    민며느리제는 옥저, 정사암 회의는 백제, 사출도를 주관한 여러 가(加)는 부여, 욕살·처려근지 같은 지방관은 고구려의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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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진대법의 시행 목적을 파악한다.
    2
    책화의 사회적 의미를 조사한다.
    3
    신성 구역인 소도의 기능을 알아본다.
    4
    화백 회의의 의사 결정 방식을 살펴본다.
    5
    포상 8국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을 찾아본다.
    해설

    화면의 명령어에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이 나라의 특징으로 특산물인 단궁·과하마·반어피, 10월의 제천 행사 무천, 호랑이를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낸 풍습이 제시되어 있다. 이는 모두 동예의 특징이다.

    동예에는 각 부족의 생활권을 엄격히 지키는 책화 풍습이 있어, 다른 부족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게 하였다. 이는 씨족 사회의 폐쇄적 성격이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진대법은 고구려의 빈민 구제 제도, 소도는 삼한의 신성 구역, 화백 회의는 신라의 귀족 회의이며, 포상 8국 전쟁은 가야와 관련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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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전시 설명에 나오는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금령총 천마무늬 말다래, 천마총 천마그림 말다래는 모두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온 유물이다. 따라서 (가)는 경주를 수도로 삼았던 신라이다.

    신라 왕족의 무덤에서는 화려한 금세공품이 쏟아져 나왔는데, 좌우로 넓게 펼친 새 날개 모양에 작은 달개(영락)를 촘촘히 매단 금제 관식이 대표적이다. 관모에 꽂아 장식하던 것으로 천마총·금관총 등 신라 고분에서 확인된다.

    함께 제시된 나머지는 신라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뚜껑 위에 봉황을 얹고 산봉우리를 새긴 금동 대향로, 몸체 좌우로 가지가 뻗어 나온 철제 칠지도, 배 모양 광배를 갖춘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모두 백제의 금속·불교 공예를 보여 준다. 지붕처럼 생긴 윗부분에 네모난 구멍이 뚫리고 아래쪽에 고리가 달린 청동 유물 역시 신라 고분에서 나온 관 장식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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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대화에 나타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2
    고흥에게 서기를 편찬하게 하였다.
    3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4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다.
    5
    장군 달기를 보내 고구려의 도살성을 점령하였다.
    해설

    대화의 단서는 세 가지다. 백가의 난을 평정하고 왕권을 강화한 점, 중국 남조의 양에 "고구려를 여러 차례 격파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다"는 국서를 보낸 점, 1971년에 발굴된 무덤에서 왕과 왕비의 지석과 석수가 나온 점이다. 이는 백제 무령왕을 가리킨다.

    무령왕은 동성왕을 시해한 백가를 제거하고 즉위한 뒤 지방 통제를 강화하고자 전국 요지에 22담로를 두고 그곳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고흥의 서기 편찬은 근초고왕, 금마저의 미륵사 창건은 무왕, 마라난타를 통한 불교 수용은 침류왕, 장군 달기를 보내 도살성을 점령한 것은 성왕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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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2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3
    윤충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을 함락시켰다.
    4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였다.
    5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군사 연합을 성사시켰다.
    해설

    (가)는 태자 김법민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서 소정방을 맞이하여 의자왕의 도성을 치기로 한 장면으로,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한 660년의 일이다.

    (나)는 사찬 시득이 수군을 이끌고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설인귀와 맞서 처음에는 잇따라 패하였으나, 다시 나아가 크고 작은 22번의 싸움에서 이기고 4천여 명을 베었다는 내용으로, 나당 전쟁을 매듭지은 676년 기벌포 전투이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는 660년부터 676년까지이다. 백제 멸망 직후 복신과 도침이 주류성에서 왜에 머물던 부여풍을 왕으로 맞아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킨 것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살수 대첩(612), 대야성 함락(642), 연개소문의 정변(642), 김춘추의 당 군사 동맹 성사(648)는 모두 (가)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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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2
    주자감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3
    군사 조직으로 9서당 10정을 편성하였다.
    4
    기인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5
    왕족인 부여씨와 8성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해설

    자료는 영역이 사방 5천 리이고 5경과 15부를 두었으며, 서쪽으로 중국, 남쪽으로 신라, 북쪽으로 거란, 동쪽으로 일본과 통하면서 거의 3백 년 동안 존속하였다고 전한다. 『해동역사』가 서술한 발해의 모습이다.

    발해는 문왕 때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의 중앙 조직을 갖추고, 유학 교육 기관인 주자감을 설치하여 인재를 길렀다.

    12월의 영고는 부여, 9서당 10정은 통일 신라, 기인 제도는 고려, 부여씨 왕족과 8성 귀족의 지배층 구성은 백제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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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수도에 서시와 남시를 설치하였다.
    2
    활구라고 불리는 은병을 주조하였다.
    3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4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5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전세를 거두었다.
    해설

    대화에서 사진 속 무덤은 (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천추총이며, 근거로 (가)의 도성이었던 국내성 지역에 있는 대형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라는 점과 주변에서 '영락(永樂)'으로 판독되는 명문 기와 조각이 나온 점을 들고 있다. 영락은 광개토 대왕의 연호이므로 (가)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산악 지대에 자리 잡아 농경지가 부족하였고, 정복 전쟁으로 얻은 공물과 약탈물에 크게 의존하였다. 그래서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를 두어 곡식 등을 저장하였다.

    수도에 서시와 남시를 둔 것,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활구라 불린 은병 주조는 고려,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전세를 거둔 연분 9등법은 조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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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하였다.
    2
    광평성 등의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3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4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였다.
    5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다.
    해설

    자료에서 (가)는 나주의 상황을 근심하여 왕건에게 그곳을 지키게 하고 해군대장군으로 삼았으며, 참위설을 믿고 갑자기 송악을 버리고 부양(현재 철원 북부)으로 옮겨 궁궐을 세워 백성을 공사에 시달리게 하였다고 하였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이다.

    궁예는 국호를 마진·태봉으로 바꾸고 독자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최고 중앙 관서인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통치 조직을 정비하였다.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한 것은 문무왕,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것은 서희,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은 것은 고려 태조,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한 것은 견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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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가상 뉴스에서 보도한 내용이 있었던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계백료서를 읽고 있는 관리
    2
    담배를 밭에 심고 있는 농민
    3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군인
    4
    진전사에서 참선하는 선종 승려
    5
    낙랑군과 교역할 덩이쇠를 주조하는 장인
    해설

    뉴스는 장보고의 건의로 설치된 지 20여 년 만에 청해진이 폐지되고 그 주민이 벽골군으로 옮겨진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청해진 혁파는 문성왕 때인 9세기 중엽의 일로,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이 이어지던 신라 하대에 해당한다.

    신라 하대에는 경전 연구 중심의 교종에 맞서 개인의 참선으로 깨달음에 이를 것을 강조한 선종이 크게 퍼졌다. 도의가 머물던 진전사를 비롯해 각지에 선종 사원이 들어서며 9산 선문이 형성되었다.

    계백료서를 반포한 것은 고려 태조, 담배 재배는 조선 후기, 조위총의 난은 고려 무신 집권기, 낙랑군과의 교역에 덩이쇠를 쓰던 것은 삼한·가야 시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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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국가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별무반을 편성하였다.
    2
    화통도감을 설치하였다.
    3
    진관 체제를 실시하였다.
    4
    초조대장경을 조판하였다.
    5
    동녕부의 반환을 요청하였다.
    해설

    화면의 현화사비 탁본은 앞면에 송의 연호 천희(天禧)가, 뒷면에 (가)의 연호 태평(太平)이 새겨져 있다. 게다가 고려가 귀주 대첩에서 (가)를 격퇴하고도 조공 책봉 관계를 받아들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요를 세운 거란이다.

    고려는 현종 때 거란의 대규모 침입을 겪으면서 부처의 힘으로 이를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초조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별무반 편성은 여진, 화통도감 설치는 왜구에 대비한 조치이며, 진관 체제는 조선의 지방 방어 체제이고, 동녕부 반환 요청은 원 간섭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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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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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방의 설치와 매 서식지의 변화
    2
    시화호의 조성과 갯벌 생태계 파괴
    3
    수의 침략과 요하 일대 감염병의 유행
    4
    가죽 제품 수요 증가와 독도 강치의 멸종
    5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와 경성부의 대응 양상
    해설

    기획 의도에 인간과 생태·환경의 관계를 시대 순으로 조망한다고 밝혀 두었으므로, 앞뒤 구성의 시기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1부는 혜공왕 대의 재이와 백좌법회이니 8세기 후반 신라, 3부는 『승정원일기』로 본 소빙기 농업과 경신대기근이니 17세기 후반 조선, 4부는 해수구제 사업과 호랑이 사냥이니 일제 강점기이다.

    따라서 (가)에는 8세기 후반 신라 이후, 17세기 조선 이전, 곧 고려 시대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 원 간섭기에 매를 사육·조달하기 위해 응방이 설치되면서 매 서식지가 달라진 일이 이 자리에 알맞다.

    수의 침략과 요하 일대 감염병 유행은 7세기 초여서 1부보다 앞선다. 독도 강치의 멸종과 을축년 대홍수는 4부와 같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고, 시화호 조성은 1990년대여서 4부보다도 뒤이므로 모두 (가) 자리에 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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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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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3
    4
    5
    해설

    발표에서 소개한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먹은 묵소(墨所)에서 생산되었고 중국 사신 서긍도 언급할 만큼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하였다. 칠판에 함께 걸린 다인철소 유적 출토 솥단지와 나전 국화 넝쿨무늬 합까지 보면, (가)는 소(所) 수공업이 발달하고 서긍이 다녀가 『고려도경』을 남긴 고려이다.

    그런데 밑바닥에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을 비롯한 명문이 도드라지게 새겨진 청동 그릇(호우)은 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5세기 유물로, 광개토 대왕을 기려 만든 것이 신라 고분에 묻힌 사례이다. 고려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금속 상륜부를 길게 올린 팔각 다층 석탑, 넝쿨무늬를 베푼 청자 주자, 섬세한 채색의 수월관음도, 네모난 갓을 얹은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 입상은 모두 고려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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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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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해통공의 단행 배경
    2
    명의 멸망과 소중화주의의 대두
    3
    골품제가 일상생활에 끼친 영향
    4
    울산항을 통한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류
    5
    황제국 표방 사례를 통해 본 외왕내제 의식
    해설

    탐구 계획서의 참고 자료는 태조 왕건 청동상과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두 가지입니다. 왕건상에는 "통천관을 쓰고 있다", 철당간에는 "준풍(峻豊)이라는 연호가 새겨져 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통천관은 본래 중국 황제가 쓰던 관이고, 준풍은 고려 광종이 사용한 독자 연호입니다. 즉 두 유물 모두 고려가 안으로는 황제국의 격식을 갖추었음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중국 왕조에 대해 왕을 칭하면서도, 국내에서는 황제·천자의 용어와 독자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중적 자기 인식을 외왕내제(外王內帝)라고 하므로, 탐구 주제로는 황제국 표방 사례를 통해 본 외왕내제 의식이 가장 알맞습니다.

    참고로 신해통공은 조선 정조 대, 소중화주의는 명이 멸망한 조선 후기, 골품제와 울산항 아라비아 상인 교류는 신라와 관련된 주제여서 두 유물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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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인물’이 활동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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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왕운기를 읽고 있는 왕
    2
    만동묘 복구를 건의하는 유생
    3
    동몽선습을 공부하는 서당 학동
    4
    독서삼품과 시행을 준비하는 관리
    5
    주자소에서 계미자를 주조하는 장인
    해설

    제시된 초상화 설명에는 소수 서원에 봉안되어 있고, 충렬왕 때 원에 갔다가 주희의 저서를 들여와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였으며, 충숙왕이 그 초상화를 문묘에 모시게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인물은 안향입니다.

    따라서 그가 활동한 시기는 원 간섭기인 13세기 후반 충렬왕 무렵입니다. 이 시기에는 이승휴가 단군에서 시작하는 우리 역사를 서사시로 정리한 제왕운기를 지어 올렸으므로, 이를 읽는 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동묘 복구 건의와 동몽선습을 공부하는 서당 학동은 조선 시대의 모습이고, 계미자 주조는 조선 태종 대 주자소의 일입니다.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이 시행한 제도로 모두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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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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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2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3
    인사 행정을 담당하던 정방을 폐지하였다.
    4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하였다.
    5
    오월(吳越)에 사신을 보내고 검교태보의 직을 받았다.
    해설

    체험 학습 보고서의 답사지는 고려 희종의 무덤인 강화 석릉입니다. 설명에 (가)는 이의민을 제거하고 집권하였고 스스로 교정별감이 되어 전횡하였으며, 희종의 암살 시도가 도방의 방해로 실패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아 교정도감의 우두머리인 교정별감을 맡고 사병 조직 도방을 강화한 인물은 최충헌입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희종을 폐위하고 강화도로 유배 보냈습니다.

    최충헌은 집권 직후 명종에게 봉사 10조를 올려 토지 겸병 금지, 조세 제도 시정 등 개혁안을 건의하였습니다.

    비담과 염종의 반란 진압은 신라 김유신, 만권당에서의 교유는 이제현, 정방 폐지는 무신 정권 붕괴 이후의 개혁, 오월에 사신을 보낸 것은 후백제 견훤과 관련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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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관군을 이끌고 묘청의 난을 진압하였다.
    2
    (가) - 시무 28조를 올려 국가 운영 방안을 제시하였다.
    3
    (나) -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백련 결사를 이끌었다.
    4
    (나) - 화폐 발행을 위해 주전도감 설치를 건의하였다.
    5
    (가), (나) - 심성 도야를 강조하고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
    해설

    홀로그램 속 두 인물 중 (가)는 "삼국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한 삼국사기의 편찬을 총괄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김부식이고, (나)는 "불교 중심의 설화와 단군의 건국 이야기 등을 담은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라고 하였으므로 승려 일연입니다.

    김부식은 인종 때 서경 천도를 주장하던 묘청 세력이 난을 일으키자 관군의 총사령관으로 출정하여 이를 진압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에 대한 설명으로 관군을 이끌고 묘청의 난을 진압하였다는 내용이 옳습니다.

    시무 28조는 성종 때 최승로가 올린 것이고, 백련 결사는 요세, 주전도감 설치 건의는 의천, 유불 일치설은 혜심의 주장이므로 두 인물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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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고려사』 기록은 위화도에서 좌·우군도통사가 회군을 요청하였으나 최영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요동 정벌과 위화도 회군(1388)이 일어난 상황을 보여 줍니다.

    연표는 1009년 강조의 정변, 1126년 이자겸의 난, 1232년 처인성 전투, 1273년 삼별초 항쟁 진압, 1351년 공민왕 즉위, 1392년 고려 멸망으로 구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1388년은 공민왕 즉위(1351)와 고려 멸망(1392) 사이에 해당하므로, 연표의 마지막 구간이 알맞습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과전법 시행을 거쳐 4년 뒤 조선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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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렸다.
    2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등을 다루었다.
    3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4
    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였다.
    5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해설

    첫 번째 자료는 문하부 좌·우 정승을 의정부 좌·우 정승으로 고치고 문하부를 혁파하면서 낭사(郎舍)를 고쳐 (가)로 삼았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자료에는 (가)의 수장이 대사간이라고 나옵니다.

    조선 태종 때 문하부가 없어지면서 그 소속 낭사가 독립하여 만들어진 기구가 사간원이며, 그 으뜸 벼슬이 대사간입니다.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담당하였고, 관리 감찰을 맡은 사헌부, 경연과 자문을 맡은 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리며 언론 기능을 수행하였습니다.

    반역죄를 다룬 국왕 직속 사법 기구는 의금부, 실록 편찬은 춘추관, 왕명 출납은 승정원, 사대교린 문서 관장은 승문원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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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의제문을 빌미로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2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되었다.
    3
    예악 질서의 확립을 위한 악학궤범이 완성되었다.
    4
    역대 문물 제도를 정리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다.
    5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는 직전법이 시행되었다.
    해설

    '이달의 책'에 소개된 자료는 대불정수능엄경(언해)입니다. 설명에 (가)가 훈민정음으로 구결을 달고 한계희·김수온 등이 번역하였으며, 목판본은 (가)가 만든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최초의 불경 언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간행하기 위해 간경도감을 설치한 왕은 세조입니다. 세조는 원각사지 십층 석탑 건립 등 불교를 적극 후원하였습니다.

    세조는 재위 중 과전이 부족해지자 수신전·휼양전을 폐지하고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는 직전법을 시행하였습니다.

    무오사화는 연산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태종, 악학궤범은 성종, 동국문헌비고는 영조 때의 일이므로 재위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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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쟁을 전개하였다.
    2
    소학의 보급과 현량과 실시를 주장하였다.
    3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다.
    4
    임진왜란의 상황 등을 담은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5
    최초로 100리 척을 사용하여 동국지도를 제작하였다.
    해설

    해설사가 소개하는 곳은 안동의 병산 서원이며, 이곳에 위패가 봉안된 (가)는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하고 공납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대공수미법을 제안한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류성룡입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전란을 총괄하면서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으로 이루어진 훈련도감 창설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서 전란의 원인과 경과, 대응 과정을 반성적으로 기록한 징비록을 저술하였습니다.

    사단칠정 논쟁은 이황, 소학 보급과 현량과는 조광조, 기축봉사는 송시열, 100리 척을 사용한 동국지도는 정상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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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시나리오의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2점]
    문제 이미지
    1
    강홍립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2
    김종서가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였다.
    3
    김시민이 진주성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4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5
    이완이 어영대장으로 임명되어 북벌을 준비하였다.
    해설

    시나리오는 남한산성 안에서 임금이 칸[汗]의 항복 요구 서신을 받고 김상헌과 최명길이 각각 항전과 화친을 주장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인조 때 일어난 병자호란(1636)의 상황입니다.

    인조는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하였고,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 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인질에서 돌아와 즉위한 효종은 청에 대한 복수를 내세워 북벌을 준비하면서 이완을 어영대장으로 임명하고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비를 확충하였습니다.

    사르후 전투 참전은 광해군, 6진 개척과 쓰시마섬 정벌은 세종, 진주 대첩은 임진왜란 때의 일로 모두 이 상황보다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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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계해약조의 초안을 작성하는 관리
    2
    까치를 소재로 민화를 그리는 화원
    3
    세책가에서 춘향전을 빌리는 부녀자
    4
    시사(詩社)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서리
    5
    송파장에서 산대놀이를 공연하는 광대
    해설

    전시 해설에 나온 작품은 변박이 그린 왜관도로, 초량 왜관의 전경을 관수가(館守家)를 중심으로 서관과 동관 구역으로 나누어 50여 개의 건물 명칭까지 표기한 그림입니다. 밑줄 그은 '시기'는 초량 왜관에서 대일 무역이 이루어지던 조선 후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서민 문화가 발달하여 까치·호랑이 등을 소재로 한 민화가 유행하고, 세책가에서 춘향전 같은 한글 소설을 빌려 읽었으며, 중인·서리층이 시사(詩社)를 조직해 위항 문학 활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송파장 등 장시에서 산대놀이 같은 탈춤 공연이 성행하였습니다.

    반면 계해약조는 조선 세종 때인 1443년 쓰시마섬 도주와 맺어 세견선과 세사미두의 규모를 정한 조약입니다. 이는 초량 왜관이 설치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므로, 계해약조의 초안을 작성하는 관리의 모습은 이 시기에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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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왕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문신을 재교육하기 위한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2
    각 궁방과 중앙 관서의 공노비 6만여 명을 해방하였다.
    3
    국왕의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금위영을 창설하였다.
    4
    각지의 농법을 작물별로 정리한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5
    붕당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해 탕평비를 건립하였다.
    해설

    대화 속 자료는 이십공신회맹축 - 보사공신녹훈후로, 개국 공신부터 보사 공신(경신환국의 공신)까지의 공신과 그 자손들을 모아 회맹 행사를 치른 뒤 그 명단 등을 담은 문서입니다. 특히 이 공신들이 기사환국과 갑술환국을 거치며 지위를 박탈당했다가 회복했다는 설명이 결정적 단서입니다.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이 잇달아 일어난 것은 숙종 재위 시기입니다. 숙종은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집권 붕당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환국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공신의 훈적이 삭탈과 복구를 반복했습니다.

    숙종은 왕권을 뒷받침할 군사력을 확보하고자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담당하는 금위영을 새로 설치하였습니다. 이로써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수어청과 더불어 5군영 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초계문신제 실시는 정조, 각 궁방과 중앙 관서 공노비의 해방은 순조, 탕평비 건립은 영조, 농사직설 편찬은 세종 때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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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가 지급되었다.
    2
    솔빈부의 말이 특산품으로 수출되었다.
    3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4
    당항성, 영암이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5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의 화폐가 발행되었다.
    해설

    제시된 상소문은 도고라는 방식이 새로 나와 한 사람이 물품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이익은 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피해는 만민이 받는다며, 한성부와 평시서가 이를 엄히 금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도고는 상품을 대량으로 매점하여 가격을 조종하던 독점적 도매 상업으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한 조선 후기에 성행하였습니다. 따라서 자료의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 시행에 따라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사서 납품하는 공인이 등장해 활발히 활동하였고, 이들이 대량으로 물품을 사들이면서 도고 성장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지와 시지를 지급한 전시과, 삼한통보·해동통보 발행은 고려의 일이고, 솔빈부의 말 수출은 발해, 당항성·영암의 무역항 번성은 통일 신라에 해당하므로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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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2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3
    역대 명필을 연구하여 추사체를 창안하였다.
    4
    규장각 검서관으로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참여하였다.
    5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려 왜양일체론을 주장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는 수원 화성 박물관에 소장된 친필 고본 『북학의』가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으로, (가)가 청의 연경에 다녀온 뒤 국가 제도와 정책 전반의 개혁 방안을 제시한 책이며 박지원의 친필 서문이 함께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북학의』의 저자는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입니다. 그는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며, 절약보다 소비를 통한 생산 자극을 강조해 우물물에 비유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면서도 정조의 발탁으로 이덕무·유득공·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었고, 이덕무·백동수 등과 더불어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강화학파를 연 정제두, 거중기를 설계한 정약용, 추사체를 창안한 김정희, 왜양일체론을 주장한 최익현은 모두 다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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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지역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근거지를 알아본다.
    2
    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린 유배지를 검색한다.
    3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을 조사한다.
    4
    강주룡이 고공 농성을 벌인 을밀대의 위치를 찾아본다.
    5
    김윤후가 노비 등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한 장소를 파악한다.
    해설

    답사 포스터의 제목은 고구려비를 품은 (가)의 역사를 걷다이며, 배경 사진에 고구려비가 실루엣으로 등장합니다. 답사 경로는 탑평리 칠층 석탑(중앙탑) → 탄금대 → 임충민공 충렬사 → 미륵 대원지로 이어집니다.

    남한 유일의 고구려비인 충주 고구려비를 비롯해 탑평리 칠층 석탑,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탄금대, 임경업을 모신 충렬사, 미륵 대원지는 모두 충주에 있는 유적입니다.

    충주는 고려 시대 충주성 전투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했던 승려 김윤후는 뒤에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서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노비와 백성을 이끌고 몽골군을 물리쳤습니다.

    이괄의 난 근거지는 평안도, 세한도의 유배지는 제주도, 자산어보의 저술지는 흑산도, 을밀대는 평양에 있으므로 답사 지역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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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상황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홍경래 등이 봉기하여 정주성을 점령하였다.
    2
    신돈이 중심이 되어 전민변정 사업을 운영하였다.
    3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고자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4
    기금의 이자로 빈민을 구휼하는 제위보가 만들어졌다.
    5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해설

    자료는 진주 안핵사 박규수의 상소로, 백성의 고통은 환곡과 향곡이 으뜸이며 진주에서 허위로 부과한 세금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미 임금께 아뢰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 때의 일입니다. 진주에서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유계춘 등이 봉기한 것을 시작으로 항쟁이 삼남 일대로 번졌습니다.

    정부는 봉기의 근본 원인인 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대책을 마련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료의 상황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홍경래의 난과 정주성 점령(1811), 황사영 백서 사건(1801)은 그 이전의 일이고, 신돈의 전민변정도감 운영은 고려 공민왕, 제위보 설치는 고려 광종 때의 일이므로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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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의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2점]
    문제 이미지
    1
    운요호가 강화도와 영종도를 공격하였다.
    2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3
    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보은 집회가 열렸다.
    4
    병인박해로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5
    김홍집이 가지고 온 조선책략이 조선에 유포되었다.
    해설

    자료는 성벽 아래로 다가온 적을 일제 사격으로 물리친 전투 기록으로, 양헌수가 순무영에 정족산성에서 적을 격퇴했다는 승전보를 띄워 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입니다. 이때 문수산성에서는 한성근이 항전하였고,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 의궤 등을 약탈해 갔습니다.

    병인양요를 불러온 직접적인 배경은 같은 해 일어난 병인박해입니다.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해 프랑스 신부 9명과 다수의 신자를 처형하자, 프랑스는 이를 구실로 로즈 제독의 함대를 강화도로 보냈습니다.

    운요호의 강화도·영종도 공격(1875),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1868), 조선책략 유포(1880), 보은 집회(1893)는 모두 이 사건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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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박문국을 두어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2
    근대식 무기 제조 시설인 기기창을 설립하였다.
    3
    군제를 개편하여 친위대와 진위대를 설치하였다.
    4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였다.
    5
    비변사를 혁파하여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해설

    자료는 조선 정부가 발행한 관보 제214호로, 내부(內部) 고시를 통해 단발령 시행을 알리며 국왕이 먼저 단발했으니 백성도 따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보에 쓰인 연호 건양이 국모 시해 사건 이후 추진된 개혁의 일환으로 태양력을 도입하며 새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을미사변 뒤에 추진되어 단발령·태양력·건양 연호를 시행한 개혁은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입니다. 이 밖에 종두법 실시와 우편 사무 재개 등도 함께 추진되었습니다.

    을미개혁에서는 군제를 개편하여 중앙에 친위대, 지방에 진위대를 두었습니다.

    공사 노비법 혁파와 과부 재가 허용은 제1차 갑오개혁, 박문국과 한성순보·기기창 설립은 1880년대 개화 정책, 비변사 혁파와 의정부·삼군부 기능 회복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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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김옥균 등 개화파가 주도하였다.
    2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전개 과정에서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4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는 배경이 되었다.
    5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설

    제시된 사진 설명은 퍼시벌 로웰이 찍은 묄렌도르프의 집에 관한 것으로, 본래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집이었으나 그가 (가) 때 피살되어 고종이 하사했고, (가)를 진압한 청의 추천으로 묄렌도르프가 외교 고문에 부임했다고 설명합니다.

    선혜청 당상 민겸호가 피살되고 청군이 개입해 진압한 사건은 1882년의 임오군란입니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과 13개월 만에 지급된 겨와 모래 섞인 급료가 도화선이 되었고, 청은 군란을 진압한 뒤 흥선 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하고 마젠창·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임오군란 때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하자 일본은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경비 병력 주둔을 규정한 제물포 조약을 강요하였습니다. 아울러 청과는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주도한 것은 갑신정변, 홍범 14조 반포는 갑오개혁 시기,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1880년,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병인양요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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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하였다.
    2
    한인 교육을 위해 박달 학원을 설립하였다.
    3
    무장 투쟁을 위해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였다.
    4
    유학생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5
    대한 광복군 정부를 중심으로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하였다.
    해설

    자료 속 전시물은 현순이 쓴 견문록 『포와유람기』로, 호놀룰루 등에 체류한 경험과 20세기 초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한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생활, 그리고 포와(布哇)라 불리던 이 지역의 지리·역사·문화가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포와는 하와이의 한자 음차 표기입니다. 1903년부터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력으로 한인들의 공식 이민이 시작되면서 하와이에 한인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1914년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며 무장 투쟁을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대한인 국민회 하와이 지방 총회가 활동하였고, 이승만의 활동 근거지이기도 하였습니다.

    경학사는 서간도(남만주), 박달 학원은 상하이,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 대한 광복군 정부는 연해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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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청의 알선으로 체결이 추진되었다.
    2
    통감부가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천주교 포교를 허용하는 근거가 되었다.
    4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부임하는 계기가 되었다.
    5
    대한 제국 군대의 해산을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해설

    수행 과제 화면에 올라온 자료는 세 가지입니다. 대한 제국 시기 황실 도서관 등으로 쓰이다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장소인 중명전, 조약 체결에 항거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민영환, 그리고 나철·오기호 등이 조약에 찬성한 다섯 대신을 처단하려고 조직한 자신회입니다.

    이 세 자료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1905년의 을사늑약입니다. 일제는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뒤 이토 히로부미를 앞세워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습니다.

    을사늑약에 따라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고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여 내정까지 간섭하였습니다. 고종은 이에 맞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였습니다.

    청의 알선으로 체결된 것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천주교 포교 허용은 조·프 수호 통상 조약, 스티븐스의 외교 고문 부임은 제1차 한·일 협약, 군대 해산 규정은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의 부수 각서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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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만세보를 발행하였다.
    2
    대성 학교를 설립하였다.
    3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4
    부민관 폭파 의거를 계획하였다.
    5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해설

    전시 안내문은 안태국이 태극 서관의 주임을 맡았고, 안창호·양기탁 등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결성된 단체에서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군자금 모금과 이주민 모집에 힘썼다고 소개하고 있다. 안창호·양기탁이라는 인물, 태극 서관 운영, 비밀 결사,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이라는 네 가지 단서가 모두 가리키는 단체는 신민회(1907)다.

    신민회는 국권 회복과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삼아 실력 양성과 무장 투쟁을 함께 추구하였다. 교육 사업으로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고, 민족 산업을 위해 태극 서관과 자기 회사를 운영하였으며, 남만주 삼원보에 신흥 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기지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대성 학교 설립이 이 단체의 활동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다른 주체의 활동이다. 만세보는 천도교의 기관지이고, 만민 공동회 개최와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각각 독립 협회와 보안회의 활동이며, 부민관 폭파 의거는 1945년 대한 애국 청년당이 계획한 일이다.

    신민회는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드러나면서 해체되었다는 점까지 함께 기억해 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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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학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7재라는 전문 강좌가 있었다.
    2
    덕원부 관민이 합심하여 만들었다.
    3
    교육입국 조서에 근거하여 세워졌다.
    4
    주요 건물로 대성전과 명륜당을 두었다.
    5
    좌원과 우원을 구분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
    해설

    발표 장면에서 학생들은 이 학교에 대해 미국인 헐버트가 교사로 재직하며 한글로 세계 지리서인 『사민필지』를 지었고, 영어·산학·지리 등을 주요 과목으로 개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1886년 정부가 세운 최초의 근대식 공립 교육 기관인 육영 공원을 가리킨다.

    육영 공원은 헐버트·길모어·벙커 등 미국인 교사를 초빙해 영어를 비롯한 근대 학문을 가르쳤고, 학생을 좌원(현직 관리 중에서 선발)과 우원(양반 자제 중에서 선발)으로 나누어 뽑았다. 따라서 좌원과 우원을 구분해 학생을 선발했다는 설명이 이 학교의 특징이다.

    다른 설명은 각기 다른 교육 기관의 것이다. 7재라는 전문 강좌는 고려 예종 때 관학 진흥책으로 국자감에 둔 것이고, 덕원부 관민이 합심해 세운 학교는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인 원산 학사(1883)이다. 교육입국 조서(1895)에 근거해 세워진 것은 한성 사범 학교 등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을 주요 건물로 둔 곳은 향교·성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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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고종의 강제 퇴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2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하였다.
    3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4
    신채호가 쓴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다.
    5
    신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교민들의 단결을 도모하였다.
    해설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나석주로, 그는 1926년 식민지 경제 수탈의 상징이던 조선 식산 은행과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자료 사진의 신문 기사 제목도 ‘동척·식은 폭탄 사건’임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조직된 이 단체는 1919년 김원봉·윤세주 등이 만주 지린에서 결성한 의열단이다.

    의열단은 1923년 신채호에게 의뢰해 받은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다. 이 선언은 외교론과 준비론을 비판하고 민중의 직접 혁명에 의한 강도 일본의 축출을 주장하였다.

    단원들의 대표적 의거로는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투탄, 김익상의 조선 총독부 투탄,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투탄, 나석주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 투탄 등이 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단체의 것이다.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시위는 대한 자강회,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한 것은 독립 의군부, 독립 공채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신규식 중심의 교민 단결 도모는 동제사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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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정책’이 실시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2
    원수부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관리
    3
    몸뻬 착용을 홍보하는 애국반 반장
    4
    경인선 개통식에 참석하는 일본인 거류민
    5
    나운규가 감독한 아리랑의 첫 상영을 준비하는 단성사 직원
    해설

    자료 속 사진과 설명은 일제가 식민 지배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토지 조사국 청사이며, 이 기구가 토지의 조사와 측량, 지적도와 토지 대장 작성을 수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책은 1910년 토지 조사국 설치와 1912년 토지 조사령 공포로 본격화되어 1918년에 마무리된 토지 조사 사업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다. 이때 일제는 헌병이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제를 시행했고, 1912년 조선 태형령을 공포해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가하였다. 그러므로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모습들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원수부는 대한 제국 시기인 1899년에 설치되었고, 경인선 개통식은 1899년의 일이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은 1926년이며, 몸뻬 착용 강요와 애국반 활동은 1930년대 후반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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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개벽, 신여성 등의 잡지를 발행하였다.
    2
    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3
    군사 조직으로 한인 국방 경위대를 창설하였다.
    4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5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조선인 운동이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으로 나뉘어 오다가 민족 단일당 결성을 촉진하며 조직되었고, 각지에 지회가 설치되었으며, 민중 대회를 준비하다 발각되어 타격을 입은 뒤 5년 만에 해소되었다고 서술한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단체는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손잡고 만든 신간회다.

    신간회는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이를 전국적 항일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민중 대회를 열려 하였다. 그러나 대회 준비 과정에서 간부들이 대거 검거되어 조직이 크게 위축되었고, 결국 1931년 해소되었다.

    나머지는 다른 단체의 활동이다. 잡지 『개벽』과 『신여성』 발행은 천도교,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 추진은 독립 협회, 한인 국방 경위대 창설은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삼은 만세 운동 계획은 6·10 만세 운동을 준비한 세력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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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어요.
    2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시행되었어요.
    3
    귀속 재산 관리를 위해 신한 공사가 운영되었어요.
    4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공포되었어요.
    5
    농민의 자력갱생을 내세운 농촌 진흥 운동이 추진되었어요.
    해설

    교사는 대공황 이후 일제가 공업 원료 확보를 위해 한반도 남부에 면화 재배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남쪽에 목화, 북쪽에 양을 기르게 한 남면북양 정책으로, 1930년대에 시행되었다. 화면의 신문 기사들도 ‘강압적 면화 재배 장려에 경주 농민 수백 명이 궐기’, ‘강제로 경작한 면화밭이 해충 피해를 입어 경북 농가의 민심이 악화’라는 당시 실상을 보여 준다.

    같은 1930년대에 일제는 악화된 농촌 사정과 소작 쟁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1932년부터 농촌 진흥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 운동은 농민의 자력갱생을 내세워 궁핍의 원인을 농민 개인의 나태함으로 돌리면서 식민지 수탈 구조를 은폐하려 한 것이었다.

    다른 사실들은 시기가 어긋난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조직은 1923년, 메가타 주도의 화폐 정리 사업은 1905년, 회사령 공포는 1910년의 일이며, 신한 공사의 귀속 재산 관리는 광복 후 미군정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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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김민기, 아침 이슬
    2
    윤심덕, 사의 찬미
    3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4
    코리아나, 손에 손 잡고
    5
    이해연,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해설

    공연 초대장은 라디오와 축음기가 보급되며 대중가요가 확산된 일제 강점기에 발매된 노래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목록에는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 고복수의 ‘타향살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실려 있어, 빈칸에도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곡이 들어가야 한다.

    빈칸의 소개 글은 ‘비극적인 삶으로 빚어낸 염세와 허무’다. 이는 1926년 발표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 불린 윤심덕이 음반 취입 직후 현해탄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죽음을 노래한 이 곡은 그의 비극적 삶과 겹쳐 더욱 널리 알려졌다.

    나머지 곡은 모두 광복 이후의 노래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와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김민기의 ‘아침 이슬’은 1970년대,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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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2
    일본군의 공세를 피해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3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4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었다.
    5
    한국인 유격대를 중심으로 조국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국민부 산하의 무장 단체를 재편하여 양세봉이 총사령관을 맡았고, 대도회 등과 한중 연합군을 편성해 영릉가를 점령하였다고 서술한다. 이 부대는 1929년 남만주에서 창설된 조선 혁명군이다.

    조선 혁명군은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에 맞서 중국 의용군과 연합 작전을 폈다. 1932년 영릉가 전투에 이어 1933년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것이 대표적 전과다.

    다른 설명은 각각 다른 부대의 일이다. 일본군의 공세를 피해 자유시로 이동한 것은 대한 독립 군단 등 봉오동·청산리 이후의 독립군 부대이고,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호남 의병이다. 인도·미얀마 전선 파견은 한국광복군, 조국 광복회 조직은 동북 항일 연군 내 한인 유격대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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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흥사단을 창립함.
    2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
    3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함.
    4
    한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함.
    5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 혁명당을 결성함.
    해설

    지도는 한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보여 준다. 첫 번째 상하이에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밝힌 대동단결 선언 작성에 참여하였고, 마지막 충칭에서 삼균주의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강령 초안을 작성하였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조소앙의 대표적 업적이다.

    지도상 두 번째 항저우는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임시 정부가 옮겨 간 곳이고, 빈칸에 들어갈 세 번째 난징 시기에 해당하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 조소앙은 1935년 난징에서 김원봉 등과 함께 여러 독립운동 정당을 통합한 민족 혁명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행적이다. 흥사단 창립은 안창호,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안중근,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은 박은식,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은 지청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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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제헌절 – 첫 헌법 제정의 의미를 강조하다
    2
    가갸날 –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되새기다
    3
    향토 예비군의 날 – 범국민적인 안보의식을 조성하다
    4
    은사의 날 – 스승을 향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전하다
    5
    이산가족의 날 -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다
    해설

    강좌 안내문의 주제는 ‘기념일에 담긴 일제 강점기 사회·문화’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기리기 시작한 기념일을 다룬다고 밝히고 있다. 앞선 세 강의도 어린이날(1923년 방정환 등 천도교 소년회 주도), 메이데이(고등 경찰의 경계 속에 열린 첫 노동절 행사), 과학 데이(1934년 발명 학회 주도, 과학 대중화)로 모두 이 시기의 기념일이다.

    따라서 빈칸에도 일제 강점기의 기념일이 들어가야 한다. 가갸날은 1926년 조선어 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해 제정한 날로, 오늘날 한글날의 시초다.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되새긴다는 취지 역시 강좌의 흐름과 맞는다.

    나머지는 모두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제헌절은 1948년 헌법 공포를 기념한 날이고, 향토 예비군의 날은 1968년 향토 예비군 창설 이후 제정되었으며, 은사의 날은 오늘날 스승의 날로 이어진 광복 이후의 기념일이고, 이산가족의 날 역시 최근에 지정된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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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원산 총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
    2
    국채 보상 운동에 성금을 내는 상인
    3
    원각사에서 연극 은세계를 공연하는 배우
    4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국민학교 학생
    5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
    해설

    화면 속 건물은 인천 부평에 위치한 일본 육군 조병창이고, 설명에는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시행한 시기에 전쟁 무기 생산을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학도 동원 실시 요강에 따라 학생들이 강제로 동원된 곳이라고 나옵니다. 국가 총동원법은 1938년에 시행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중일 전쟁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1938~1945)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내세워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을 강요하였고, 1941년 국민학교령을 공포해 소학교의 이름을 국민학교로 바꾸었습니다. 따라서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는 국민학교 학생의 모습이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국채 보상 운동(1907)과 원각사의 은세계 공연(1908)은 대한 제국 시기의 일이고,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1923)와 원산 총파업(1929)은 1920년대 문화 통치기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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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농지 개혁의 전개 과정을 알아본다.
    2
    광주 대단지 사건의 결과를 파악한다.
    3
    개발 제한 구역 설정의 목적을 찾아본다.
    4
    산미 증식 계획의 추진 배경을 분석한다.
    5
    지계아문이 추진한 정책의 내용을 조사한다.
    해설

    제시된 자료에는 농민이 평년 수확의 절반가량을 세금 등으로 납부하게 되어 상환을 연기하거나 분배를 취소해 달라고 호소한다는 내용과, 지주가 정조 1석당 5만 8천여 원이라는 헐값으로 환산된 지가 증권마저 액면의 5할 또는 4할에 매각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가 증권과 유상 분배·상환은 광복 이후 농지 개혁에서만 쓰인 장치입니다.

    1949년 제정되어 1950년부터 시행된 농지 개혁법은 1가구 3정보를 상한으로 그 이상의 농지를 유상 매수·유상 분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정부는 지주에게 매수 대금을 현금이 아니라 지가 증권으로 지급했고, 농지를 받은 농민은 평년 생산량의 150%를 5년간 나누어 갚아야 했기에 자료와 같은 어려움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 자료는 농지 개혁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는 탐구 활동에 활용하기에 알맞습니다. 산미 증식 계획은 일제 강점기, 지계아문의 토지 소유권 정리는 대한 제국 광무개혁 때의 일이며, 광주 대단지 사건과 개발 제한 구역 설정은 1970년대 도시 정책과 관련된 사안이라 지가 증권·상환 문제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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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2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3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4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5
    민족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둔 독사신론을 발표하였다.
    해설

    자료는 미소 공동 위원회 미국 대표단 정치고문단 소속인 L. M. 버치 중위가 남긴 연설문으로,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적어 "돌아가신 위대한 선생님에 대하여 나는 조선말로 한마디 하겠습니다"라고 추모하는 내용입니다. 설명에서 (가)는 좌우 합작을 주도했고, 광복 직후 엔도 정무총감과의 회담에서 사회 안정에 관한 요구 사항을 관철하며 해방 정국을 주도하다가 암살되었다고 했으므로 여운형입니다.

    여운형은 일제 패망을 내다보고 1944년 국내에서 비밀 결사인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해 광복에 대비했고, 광복 직후 이를 토대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이후 김규식과 함께 좌우 합작 위원회를 이끌다가 1947년 혜화동에서 저격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각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총리는 이동휘,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인물은 이승만,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특사는 이상설·이준·이위종, 독사신론을 발표한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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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최저 임금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2
    포항 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되었다.
    3
    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이 창립되었다.
    4
    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5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국이 되었다.
    해설

    화면의 "종합 계획도(綜合計劃圖)"는 충남 공주시 장기면을 중심으로 연기군 일부까지 포함한 행정 수도 건설 계획이고, 설명에서 (가) 정부는 수출 100억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했다고 했습니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1977년, 수도권 인구 과밀화 억제를 내세운 임시 행정 수도 건설 구상 발표도 1977년이므로 (가)는 박정희 정부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이어가며 중화학 공업 육성에 힘써 포항 제철소 1기 설비를 1973년에 준공하였습니다. 이는 (가)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이후 정부의 일입니다. 최저 임금 위원회 설치는 최저 임금법이 제정된 전두환 정부 때 이루어졌고, 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 창립(1995)과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입(1996)은 김영삼 정부, 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2004)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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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다음 대화에 나타난 사건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었다.
    2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3
    사사오입의 논리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4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해체되었다.
    5
    민의원, 참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국회가 탄생하였다.
    해설

    대화에서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국회의원 최초로 제명된 사건을 다루면서, 그 이유로 뉴욕 타임스 인터뷰 내용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 무역 노동자들을 강제로 진압한 정부를 비판한 점을 들고 있습니다. YH 무역 사건은 1979년 8월,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 제명은 1979년 10월의 일입니다.

    제명 직후 김영삼의 정치적 기반이던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1979년 10월의 부마 민주 항쟁입니다. 정부는 부산에 계엄령,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해 진압했고, 이 사태 수습을 둘러싼 갈등이 10·26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사실들은 모두 그 이전입니다. 애치슨 라인 발표(1950)와 사사오입 개헌(1954),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해체(1949)는 이승만 정부 시기이고,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 국회 구성(1960)은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출범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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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밑줄 그은 ‘이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헝가리에 상주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2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3
    평화 통일을 주장한 조봉암이 처형되었다.
    4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5
    서울역에서 청량리역 간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해설

    칠판에 적힌 것은 정부가 언론사에 내려보낸 보도 지침으로, 주한 미상공회의소 점거 대학생 연행 기사를 사회면 톱기사로 쓰지 말고 사진도 싣지 말라는 지시, 기사 제목에 '호헌', '개헌'이라는 말을 일체 쓰지 말라는 지시, NCC 고문대책위 구성을 보도하지 말라는 지시가 담겨 있습니다. 개헌 논의 통제와 고문 문제 은폐가 함께 등장하는 이 정부는 전두환 정부입니다.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제 실상은 1986년 보도 지침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고, 이듬해인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4·13 호헌 조치와 맞물려 6월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헝가리 상주 대표부 설치는 북방 외교를 편 노태우 정부, 대통령 긴급 명령을 통한 금융 실명제 실시는 김영삼 정부, 조봉암 처형은 이승만 정부,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은 박정희 정부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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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7회
    (가)~(마)에 해당하는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서안평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대하였다.
    2
    (나) - 소지 마립간과 혼인 동맹을 맺었다.
    3
    (다) - 국호를 남부여라 칭하였다.
    4
    (라) -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5
    (마) -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해설

    자료의 천도 사례를 왕과 연결하면, 427년 평양 천도는 고구려 장수왕, 475년 한성 함락 후의 웅진 천도는 백제 문주왕, 538년 사비 천도는 백제 성왕, 1232년 최우의 건의로 이루어진 강화도 천도는 고려 고종, 1394년 한양 천도는 조선 태조입니다.

    이 가운데 538년 사비로 도읍을 옮긴 성왕은 부여 계승 의식을 내세워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중앙 관청을 정비하는 등 중흥을 꾀했습니다. 사비 천도와 남부여 개칭을 함께 묶은 설명이 옳은 내용입니다.

    나머지는 주체가 어긋납니다. 서안평을 공격해 영토를 넓힌 왕은 미천왕이고, 소지 마립간과 혼인 동맹을 맺은 백제 왕은 동성왕이며,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왕은 공민왕, 경국대전을 완성해 반포한 왕은 성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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