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시대'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반량전 등의 중국 화폐를 사용하였다.
    2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3
    우경이 시작되어 깊이갈이가 가능해졌다.
    4
    거푸집을 사용하여 세형 동검을 제작하였다.
    5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었다.
    해설

    지도에 표시된 유적지는 봉산 지탑리, 양양 오산리,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제주 고산리로 모두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유적입니다. 설명에서도 '움집을 짓고 생활하였으며, 농경이 시작되면서 돌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였다'고 하여 이 시대가 신석기 시대임을 알려 줍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가락바퀴(방추차)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이나 그물을 꿰매는 원시적 수공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강가나 바닷가의 움집에 살며 빗살무늬 토기를 만든 것도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한편 반량전 등 중국 화폐 사용과 거푸집을 이용한 세형 동검 제작은 철기 시대, 고인돌 축조는 청동기 시대의 모습이며, 우경이 시작되어 깊이갈이가 가능해진 것은 삼국 시대(신라 지증왕 무렵)의 일이므로 신석기 시대의 사회 모습으로 볼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라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임신서기석의 내용을 분석한다.
    2
    관산성 전투의 원인을 살펴본다.
    3
    청해진이 설치된 배경을 알아본다.
    4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을 찾아본다.
    5
    위만 집권 이후 변화된 경제 상황을 조사한다.
    해설

    신문 기사는 우거왕한(漢)의 침략에 맞섰다는 내용으로, 한이 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를 앞세워 5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해 (가)를 침략했고, 우거왕이 왕검성을 수개월 동안 지켜내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우거왕은 위만의 손자로, 위만은 진·한 교체기에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에 들어와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위만 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예·진과 중국 한 사이의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독점하였는데, 이것이 한과의 갈등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므로 위만 집권 이후 변화된 경제 상황을 조사하는 것이 이 나라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합니다.

    임신서기석청해진은 신라, 관산성 전투칠지도는 백제와 관련된 소재이므로 고조선 탐구와는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2
    (가) - 특산물로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이 있었다.
    3
    (나) - 제가 회의에서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4
    (나) -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 범금 8조를 만들었다.
    5
    (가), (나) -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
    해설

    (가)는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중대회를 열어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이를 영고(迎鼓)라 하고, 이때 형옥을 판단하여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하였으므로 부여입니다. (나)는 산천을 중시하여 산천마다 구분이 있어 함부로 건너거나 들어갈 수 없고, 읍락이 서로 침범하면 생구(生口)·우마로 죄를 물었다는 책화(責禍)가 나오므로 동예입니다.

    부여는 왕 아래에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加)가 있어 각각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으므로, 이 설명이 (가)에 해당합니다. 부여에는 이 밖에 순장, 형사취수제, 1책 12법 등의 풍습도 있었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나라가 어긋납니다. 특산물로 단궁·과하마·반어피가 있었던 것은 (나) 동예이고,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것은 고구려, 범금 8조를 만든 것은 고조선,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 소도가 있었던 것은 삼한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제시된 그림은 시조 이진아시왕의 표준 영정으로, 여러 사서에 김수로왕과 형제로 전하며 고령 지역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영정의 관(冠)과 장신구를 고령에서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하였으므로, 이 나라는 고령의 대가야입니다.

    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변한 지역에서 성장하였고 질 좋은 을 바탕으로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며 무기와 갑옷을 활발히 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보기의 문화유산 가운데 철제 판갑옷과 투구가 이 나라의 유물에 해당합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유물은 가야의 것이 아닙니다. 광배에 명문이 새겨진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을 새긴 무령왕릉 석수는 백제, 말다래에 그린 천마도는 신라의 대표 유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2
    낙랑군을 축출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3
    전진의 순도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다.
    4
    당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다.
    5
    신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왜를 격퇴하였다.
    해설

    비문에는 왕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고, 은택은 하늘까지 미치고 위무는 사해에 떨쳤으며 비를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해 후세에 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도에서 비의 위치는 압록강 중류의 국내성(중국 지안) 일대로 표시되어 있으므로, 이 비는 광개토 대왕릉비이고 밑줄 그은 '왕'은 광개토 대왕입니다.

    광개토 대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호로 전하는 영락을 사용하였고, 만주와 요동 방면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특히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을 받아 5만의 군대를 신라에 보내 왜를 격퇴하였는데, 이 사실이 바로 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원정으로 금관가야가 큰 타격을 입고 가야 연맹의 중심이 대가야로 옮겨 갔습니다.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왕은 광개토 대왕의 아들 장수왕, 낙랑군을 축출한 왕은 미천왕, 전진의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왕은 소수림왕, 당의 침입에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영류왕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진골 귀족 출신으로 화랑세기 등을 저술하였다.
    2
    외교 문서 작성에 능하여 청방인문표를 집필하였다.
    3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다.
    4
    명망 높은 승려들의 전기를 정리한 해동고승전을 남겼다.
    5
    한자의 음과 훈을 차용한 이두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해설

    검색 결과에는 자(字)가 총지(聰智)이고 아버지는 원효, 어머니는 요석 공주이며, 신문왕 때 화왕계(花王戒)를 짓고 성덕왕 때 감산사 아미타여래조상기를 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관련 이미지로 화왕계가 수록된 동문선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이 인물은 설총입니다.

    설총은 6두품 출신 유학자로, 장미(간신)와 할미꽃(충신)에 빗대어 왕에게 충신을 가까이할 것을 일깨운 화왕계를 지었습니다. 또한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이두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읽고 가르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각 다른 인물의 업적입니다. 진골 귀족 출신으로 화랑세기 등을 저술한 인물은 김대문, 외교 문서에 능하여 청방인문표를 지은 인물은 강수,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인물은 혜초, 해동고승전을 지은 인물은 고려의 각훈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지역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답사 계획서의 1일차 (가) 지도에는 공산성송산리 고분군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웅진(공주)이고, 2일차 (나) 지도에는 부소산성·관북리 유적·정림사지·능산리 고분군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사비(부여)입니다. 두 곳 모두 백제의 도읍이었습니다.

    웅진의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령왕릉이 있는데, 이 무덤은 벽돌로 쌓은 전축분으로 중국 남조(양)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유적입니다. 또 사비의 능산리 절터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백제 금동 대향로가 출토되었습니다. 따라서 웅진에 무령왕릉이 있다는 설명과 부여에서 금동 대향로가 출토되었다는 설명이 옳습니다.

    목탑 양식을 계승한 미륵사지 석탑은 웅진이 아니라 익산에 있으며(사비의 정림사지에는 5층 석탑이 있음),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가 도읍으로 삼은 곳은 부여가 아니라 한강 유역의 위례성(한성)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문서를 제작한 국가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2
    빈민 구제를 위한 진대법이 실시되었다.
    3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이 있었다.
    4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다.
    5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기록한 농사직설이 편찬되었다.
    해설

    제시된 문서는 1933년 일본 도다이사(東大寺) 쇼소인(정창원)에서 발견되었고, 촌락마다 호(戶)의 등급과 변동 상황, 성별·연령별 인구 규모, 논·밭의 면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라 촌락 문서(민정문서)로, 이를 제작한 나라는 통일 신라입니다.

    이 문서는 서원경 부근 네 개 촌락의 인구·토지·가축(소와 말)·유실수(뽕나무·잣나무·호두나무)까지 조사한 것으로, 촌주가 3년마다 작성하여 조세와 역을 부과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신라는 이미 지증왕 때 수도에 시장을 열고 이를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두었으며, 통일 후에는 서시·남시가 더해져 상업이 더욱 발달하였습니다. 따라서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이 있었다는 설명이 이 나라의 경제 상황으로 옳습니다.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이 실시한 빈민 구제책이고, 농사직설 편찬은 조선 세종 때, 모내기법의 전국적 확산과 감자·고구마 같은 구황 작물 재배는 조선 후기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국학 내에 설치되었다.
    2
    경당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배웠다.
    3
    진흥왕 때 국가적인 조직으로 정비되었다.
    4
    귀족들로 구성되어 만장일치제로 운영되었다.
    5
    유교 경전을 가르치기 위해 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해설

    그림 속 두 인물의 대화에서 (가)는 풍월도·국선도라고도 불렸고, 김유신 장군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 인물들이 여기 출신이며, 백제군과의 전투에서 이들이 큰 공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신라의 조직은 화랑도이다.

    화랑도는 본래 씨족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유래한 민간 조직이었으나, 진흥왕 때 국가적인 조직으로 정비되어 인재 양성 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원광의 세속 5계를 행동 규범으로 삼았고, 진골 귀족 출신의 화랑과 여러 신분의 낭도로 구성되어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하는 기능도 하였다.

    국학은 신문왕 때 세운 유학 교육 기관으로 박사와 조교를 두어 유교 경전을 가르쳤고, 경당은 고구려의 지방 교육 기관이며, 귀족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것은 화백 회의이므로 화랑도의 설명이 아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삼국사기』 기록은 살수(薩水)에 이르러 (적의) 군사가 강을 반쯤 건넜을 때 뒤에서 공격하여 우둔위장군 신세웅을 죽였고, 처음 요하에 이르렀을 때 30만 5천여 명이던 적군이 요동성으로 돌아갈 때는 겨우 2천 7백 명뿐이었다는 내용이다. 을지문덕이 수의 별동대를 격파한 살수 대첩(612년)이다.

    연표는 589년 수의 중국 통일 - 618년 당의 건국 - 645년 안시성 전투 - 660년 사비성 함락 - 668년 평양성 함락 - 676년 기벌포 전투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

    612년은 수가 중국을 통일한 589년과 당이 건국된 618년 사이이므로, 살수 대첩은 연표의 첫 번째 구간인 (가) 시기에 해당한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인물이 활동한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국가 주도로 건원중보가 발행되었다.
    2
    관료전이 지급되고 녹읍이 폐지되었다.
    3
    원종과 애노의 난 등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4
    묘청 등이 중심이 되어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5
    의상이 화엄 사상을 바탕으로 교단을 형성하였다.
    해설

    그림의 책은 계원필경으로,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가)의 문집이며 당에 있을 때 저술한 작품을 선별해 모은 총 20권 구성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특히 권 11에 실린 격황소서(토황소격문)를 황소가 읽다가 놀라 평상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까지 제시되었으므로 (가)는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였고, 귀국 후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진골 귀족의 벽에 막혀 뜻을 펴지 못하였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신라 하대로, 왕위 쟁탈전과 무거운 조세 수취로 지방 통제력이 무너지던 때였다.

    이 시기에는 진성 여왕이 관리를 보내 밀린 조세를 독촉하자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는 등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졌다.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 의상의 화엄 교단 형성은 신라 중대의 일이고, 건원중보 발행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고려 시대의 일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고도 불렸다.
    2
    중앙 6부의 명칭을 유교식으로 정하였다.
    3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4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다.
    5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하여 외사정을 두었다.
    해설

    특별전 안내문에 실린 세 문화유산은 벽돌을 쌓아 올린 영광탑, 정혜 공주 무덤에서 출토된 돌사자상, 지붕 용마루 끝을 장식하던 치미로 모두 (가)의 유물이다. 이들은 발해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발해는 선왕 때 최대 영역을 확보해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렸고, 지방을 5경 15부 62주로 편성하였다. 중앙 정치는 3성 6부를 두되 6부의 명칭을 충·인·의·지·예·신이라는 유교식으로 정해 독자성을 드러냈으며, 무왕은 인안, 문왕은 대흥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반면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을 파견한 것은 통일 신라 문무왕 때의 제도이므로 발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웠다.
    2
    양길의 휘하에서 세력을 키웠다.
    3
    중앙군으로 9서당을 설치하였다.
    4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5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다.
    해설

    문화유산 정보에 소개된 산성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53호로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있는 석성이며, 완산주(지금의 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후삼국 중 한 나라를 세운 (가)가 쌓았다고 전해져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고 하였다. 또 사서에 아자개의 아들로 상주 가은현 출신이라 기록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견훤이다.

    견훤은 신라의 군인으로 출발해 세력을 키운 뒤 900년 완산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그는 중국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였다.

    북한산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 9서당 설치는 신문왕의 일이며, 양길의 부하로 세력을 키운 뒤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인물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5도 양계의 지방 제도가 확립되었다.
    2
    민생 안정을 위해 흑창이 처음 설치되었다.
    3
    노비안검법의 실시로 국가 재정이 확충되었다.
    4
    전국에 12목이 설치되고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5
    관학 진흥을 위해 전문 강좌인 7재가 개설되었다.
    해설

    (가)는 혜종이 병으로 눕자 왕규가 다른 뜻을 품었고, 정종이 왕식렴과 함께 변란에 대비하다가 왕규가 난을 일으키자 왕식렴이 평양에서 군대를 이끌고 개경으로 들어와 지켰다는 내용으로, 정종이 즉위한 945년의 왕규의 난이다. (나)는 경종 원년(976) 11월에 직관·산관의 각 품에 처음으로 전시과를 정하고 자삼 이상을 18품으로 나누었다는 시정 전시과 기록이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 시기는 정종 대 후반부터 광종(949~975) 재위 기간에 걸친다. 광종은 즉위 후 왕권 강화에 힘써 과거제를 시행하고 공복을 제정하였으며, 광덕·준풍 등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중 956년에 시행한 노비안검법은 후삼국의 혼란기에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를 조사해 양인으로 되돌린 조치로,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세금을 내는 양인을 늘려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흑창 설치는 태조, 12목 설치와 지방관 파견은 성종, 5도 양계 정비는 현종, 7재 개설은 예종 때의 일로 이 시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경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왜관을 설치하여 일본과 교역하였다.
    2
    과전법을 공포하여 전제를 개혁하였다.
    3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4
    연분 9등법을 시행하여 수취 체제를 정비하였다.
    5
    해동통보를 발행하여 화폐의 통용을 추진하였다.
    해설

    그림의 대담에서 밑줄 그은 왕은 의천의 해동 천태종 개창을 지원하였고,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을 창설하였으며 재정 확보를 위한 경제 정책도 실시하였다고 소개된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인물은 고려 숙종이다.

    숙종은 재정 확보와 유통 경제 진작을 위해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화폐 발행을 추진하여 해동통보를 비롯한 해동중보·삼한통보와 은병(활구)을 만들어 통용을 꾀하였다. 다만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 탓에 화폐는 널리 쓰이지 못하였다.

    왜관 설치와 연분 9등법은 조선 세종 때, 전민변정도감 설치는 공민왕 때, 과전법 공포는 고려 말 공양왕 때의 일이므로 이 왕의 경제 정책이 아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2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3
    김부식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기전체 사서이다.
    4
    사초,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하였다.
    5
    고구려 건국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 형태로 서술하였다.
    해설

    화면 속 안내는 (가)가 보물 제723호로 국보 승격이 추진되고 있으며, 1145년(인종 23)에 편찬된 정사(正史)로서 고대 삼국부터 통일 신라까지의 역사를 기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삼국사기이다.

    삼국사기는 김부식 등이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서로, 본기·열전·지·표를 갖춘 기전체로 서술되었으며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입각해 신라 계승 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실은 것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은 발해고,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 고구려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노래한 것은 동명왕편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글을 쓴 승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무애가를 지어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2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을 건의하였다.
    3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려 하였다.
    4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여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5
    법화 신앙을 중심으로 강력한 항몽 투쟁을 표방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수심결』의 일부로, 자기의 본성을 보면 본래 번뇌가 없음을 아는 것을 돈오(頓悟)라 하고, 오랜 세월의 습기(習氣)는 단박에 없어지지 않으므로 그 깨달음에 의지해 점차 닦아 성태를 기르는 것을 점수(漸修)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돈오점수를 내세운 이 글의 저자는 고려의 승려 지눌이다.

    지눌은 불교계가 세속화되고 종파 간 대립이 심하던 무신 집권기에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여, 승려 본연의 자세인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힘쓰자며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정혜쌍수를 내세워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을 것을 강조하고,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는 조계종을 확립하였다.

    무애가를 지은 원효,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을 건의한 자장,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려 한 의천,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백련사에서 항몽을 표방한 요세와는 구분해야 한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국경 지대인 양계에 설치되었다.
    2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창설되었다.
    3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다.
    4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되었다.
    5
    유사시에 향토 방위를 맡는 예비군이었다.
    해설

    개경 환도 결정에 반발해 강화도에서 봉기한 뒤 진도를 거쳐 제주도 항파두리성으로 옮겨 항쟁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삼별초이다. 삼별초는 최우가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든 야별초에서 비롯되어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확대되었고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하였다. 광군은 거란 대비, 별무반은 신기군·신보군·항마군 편성, 홍산 대첩은 최영이 왜구를 물리친 사례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이 건립되었습니다.
    2
    서얼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기도 하였습니다.
    3
    변발과 호복이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습니다.
    4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되었습니다.
    5
    망이·망소이가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하였습니다.
    해설

    칠판의 '고려 제25~30대 국왕 계보'에는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충정왕이 적혀 있고, 교사는 왕의 시호가 '충(忠)'자로 시작되던 시기를 묻고 있다. 이 시기는 원 간섭기이다.

    원 간섭기에는 부마국 지위에 맞춰 왕실 호칭과 관제가 격하되고, 정동행성이 설치되었으며 쌍성총관부 등을 통해 영토를 빼앗겼다. 두 나라 사이에 인적·물적 교류가 늘면서 몽골풍이 들어와 변발과 호복이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고, 반대로 원에는 고려양이 퍼졌다.

    백운동 서원 건립은 조선 중종 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은 조선 태종 때, 규장각 검서관에 서얼이 등용된 것은 조선 정조 때의 일이며,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인 명종 때 일어났으므로 이 시기의 사실이 아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와 관련된 세시 음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자료에 제시된 (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라는 설명과 함께 태양의 부활을 뜻해 민간에서 '작은설' 혹은 '아세(亞歲)'라 불렸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했다는 대목까지 더하면 이 명절은 동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 인용 부분에서 관상감이 임금에게 새해 달력을 올리면 임금이 백관에게 황색·백색 표지의 달력에 동문지보(同文之寶)를 찍어 하사했다고 한 것도 동지의 대표적인 풍속입니다. 새해를 여는 절기로 여겼기 때문에 달력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동지에는 붉은 팥으로 쑨 팥죽을 쑤어 먹고 집 안 곳곳에 뿌려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으므로, 그림 속 음식 가운데 팥알과 새알심이 들어간 붉은 죽이 이 날의 세시 음식입니다.

    나머지 그림의 음식은 절기가 다릅니다. 송편은 추석, 화전은 삼짇날, 오곡밥은 정월 대보름, 수리취떡은 단오의 음식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정책을 시행한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독창적인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2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다.
    3
    궁중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편찬하였다.
    4
    균역법을 실시하여 군역의 부담을 줄이고자 하였다.
    5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하였다.
    해설

    자료에는 왕 16년에 소다로(所多老)의 땅이 넓고 기름지며 적들이 오가는 요충지이므로 회질가의 땅에 벽성을 쌓고 남도의 민호를 이주시켜 경원 도호부를 옮기고 판관과 토관을 두었다고 나옵니다. 두 번째 자료에서는 함길도 감사 김종서가 경원·영북진 두 고을에 판관을 둘 것을 청하자 이조에 명을 내려 이를 시행하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김종서가 함길도에서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하며 남쪽 백성을 옮겨 살게 한 사민 정책은 세종 대의 대표적인 북방 개척 사업입니다. 따라서 이 정책을 시행한 왕은 세종입니다.

    세종은 백성이 쉽게 익혀 쓸 수 있도록 훈민정음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만들어 반포하였습니다.

    경국대전 반포와 악학궤범 편찬은 성종, 균역법 실시는 영조,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준 직전법 실시는 세조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직역이 대대로 세습되었다.
    2
    지방의 행정·사법·군사권을 행사하였다.
    3
    6조 직계제의 실시로 권한이 약화되었다.
    4
    유향소의 우두머리로 향회에서 선출되었다.
    5
    호장, 기관, 장교, 통인 등으로 분류되었다.
    해설

    그림에서 왕이 "8도의 부·목·군·현에 파견되는 (가)가 마땅히 해야 할 7사(七事)가 무엇인가?"라고 묻고, 신하가 농업과 양잠을 성하게 하는 일, 호구를 늘리는 일, 학교를 흥성하게 하는 일, 군정을 잘 다스리는 일, 부역을 고르게 하는 일, 소송을 간소화하는 일, 간사함과 교활함을 없애는 일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가지가 바로 수령 7사이므로 (가)는 각 고을에 파견된 수령입니다. 조선의 수령은 임기 동안 자기 고을의 행정·사법·군사권을 모두 행사하는 국왕의 대리인이었습니다.

    직역이 대대로 세습되고 호장·기관·장교·통인 등으로 나뉜 것은 수령을 보좌하던 향리의 특징이며, 향회에서 선출된 유향소의 우두머리는 좌수입니다. 6조 직계제 시행으로 권한이 약해진 것은 의정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서인이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2
    위훈 삭제를 주장한 조광조 일파가 축출되었다.
    3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동인이 피해를 입었다.
    4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로 예송이 전개되었다.
    5
    사림이 이조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해설

    (가)는 생모 윤씨를 폐하는 의논에 참여한 자와 존호를 올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자를 모두 중형으로 다스려, 죽은 자는 시체를 베고 가산을 몰수했다는 내용입니다.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을 빌미로 일으킨 갑자사화(1504)입니다.

    (나)는 유인숙이 윤임과 혼인을 맺고 음모를 꾸몄다며 윤임·유관·유인숙 세 사람에게 사사를 명한다는 내용으로, 명종이 즉위한 뒤 외척 간 대립 속에 대윤이 제거된 을사사화(1545)입니다.

    두 사건 사이인 중종 대에는 기묘사화(1519)가 일어났습니다. 중종반정 공신의 위훈 삭제를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와 그 일파가 훈구 세력의 반발로 축출된 사건입니다.

    서인의 반정(인조반정)과 예송, 정여립 모반 사건은 모두 을사사화보다 뒤의 일이고, 사림이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것도 선조 때이므로 두 사건 사이에 넣을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라)의 문화유산을 제작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 (라)
    2
    (가) - (나) - (라) - (다)
    3
    (나) - (가) - (다) - (라)
    4
    (나) - (가) - (라) - (다)
    5
    (다) - (나) - (가) - (라)
    해설

    게시판에 붙은 네 도자기를 보면, (가)는 표면 가득 둥근 무늬가 새겨진 청록빛 청자 매병, (나)는 굽다리 받침 위에 두 개의 뿔 모양 잔이 솟은 흙빛 상형 토기(기마 인물 모양 뿔잔), (다)는 회백색 바탕에 물고기와 풀 무늬를 굵은 선으로 그려 넣은 납작한 분청사기 편병, (라)는 흰 바탕에 검붉은 안료로 덩굴과 잎 무늬를 그린 백자 철화 항아리입니다.

    제작 시기를 따지면 굽다리 받침이 달린 토기가 삼국 시대로 가장 이르고, 비색의 청자는 고려를 대표하는 자기입니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 상감청자가 변화하여 조선 전기 15~16세기에 크게 유행하였고, 철화 안료로 무늬를 그린 백자는 그 뒤 조선 중·후기에 널리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제작 순서는 뿔잔 모양 토기 → 청자 매병 → 분청사기 편병 → 백자 철화 항아리가 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문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문서는 토지를 측량하여 기록한 대장으로, 필지의 지번이 5결마다 천자문 순서에 따른 자호(字號)로 표기되고 필지마다 측량 방향, 등급, 모양, 가로·세로의 길이, 경작 여부, 소유자 이름 등이 기재되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는 양안(量案)입니다.

    양안은 조선에서 20년마다 다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경국대전에 규정하였고, 여기에 적힌 토지의 등급과 결수는 그대로 조세 부과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설명이 옳습니다.

    양안은 조선 초부터 작성되었으므로 대한 제국 때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명은 맞지 않습니다. 또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때 지계아문이 토지 소유자에게 발급한 근대적 소유권 증명서는 양안이 아니라 지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5품 이하의 관원에 대한 서경권을 가졌다.
    2
    (가) -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을 주관하였다.
    3
    (나) - 정책을 심의·결정하면서 국정을 총괄하였다.
    4
    (나) -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왕의 비서 기관이었다.
    5
    (가), (나) - 소속 관원을 대간이라고도 불렀다.
    해설

    왼쪽 인물은 자신을 (가)의 도사(都事)라 소개하며 반역죄·강상죄 등을 저지른 죄인을 추국할 때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압송하고 형을 집행한다고 말합니다. 국왕 직속으로 중죄인을 심문하던 이 기구는 의금부입니다.

    오른쪽 인물은 (나)의 주서(注書)로서 도승지의 지휘를 받아 문서의 기록과 관리를 담당하고 매일 국왕을 수행하며 날짜별로 그 언행을 기록한다고 말합니다. 도승지가 우두머리인 이 기구는 승정원이며, 주서가 남긴 기록이 승정원일기입니다.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아 국왕의 비서 기관 역할을 한 관청이므로 이 설명이 옳습니다.

    5품 이하 관원에 대한 서경권을 행사하고 소속 관원을 대간이라 부른 것은 사헌부와 사간원이며, 경연을 주관한 것은 홍문관, 정책을 심의·결정하며 국정을 총괄한 것은 의정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라) 전투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 (라)
    2
    (가) - (나) - (라) - (다)
    3
    (나) - (가) - (다) - (라)
    4
    (나) - (가) - (라) - (다)
    5
    (다) - (나) - (가) - (라)
    해설

    지도에는 한 전쟁의 주요 전투로 (가) 행주 대첩, (나) 충주 탄금대 전투, (다) 명량 해전, (라) 노량 해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모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에 벌어진 싸움입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1592년 4월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우다 패한 탄금대 전투이고, 이듬해인 1593년 2월 권율이 한양 수복의 발판을 마련한 행주 대첩이 뒤를 이었습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뒤 1597년 이순신이 좁은 물길의 빠른 조류를 이용해 대승을 거둔 명량 해전이 있었고, 1598년 왜군이 철수하던 길목을 막고 싸운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며 전쟁이 끝났습니다.

    따라서 순서는 충주 탄금대 전투 → 행주 대첩 → 명량 해전 → 노량 해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가 파견되었다.
    2
    청과의 경계를 정한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졌다.
    3
    문신 재교육을 위한 초계문신제가 시행되었다.
    4
    시전 상인의 특권을 축소하는 신해통공이 실시되었다.
    5
    붕당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해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해설

    그림 속 발표자는 화면에 걸린 한글 편지가 '이 왕'이 동생인 명안 공주에게 보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의 재위 시기에 경신환국 등 여러 차례 환국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명안 공주의 오빠이자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으로 집권 붕당을 통째로 교체한 왕은 숙종입니다. 숙종은 이런 환국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지만 붕당 간 대립은 오히려 격화되었습니다.

    숙종 대인 1712년에는 청과의 국경을 확정하기 위해 두 나라가 함께 답사한 뒤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서쪽으로 압록강, 동쪽으로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고 새겼습니다.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보낸 것은 효종, 초계문신제 시행과 신해통공은 정조, 탕평비 건립은 영조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자료의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벽란도에서 무역을 하는 송의 상인
    2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부하는 공인
    3
    담배 등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
    4
    물주의 자금으로 광산을 경영하는 덕대
    5
    여러 장시를 돌며 물품을 판매하는 보부상
    해설

    자료는 전기수가 동대문 밖에 살면서 「숙향전」·「소대성전」·「심청전」·「설인귀전」 같은 한글 소설을 읽어 주었고, 가장 긴요한 대목에서 갑자기 읽기를 그치면 사람들이 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 앞다투어 돈을 던져 주었는데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한글 소설이 널리 읽히고 그것을 직업적으로 읽어 주는 전기수가 등장한 것은 서민 문화가 발달한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이 시기에는 대동법 시행으로 관청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했고, 담배·인삼 같은 상품 작물 재배가 확산되었으며, 물주의 자금을 받아 광산을 경영하는 덕대와 여러 장시를 도는 보부상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벽란도에서 송의 상인과 무역하는 모습은 예성강 하구의 국제 무역항이 번성했던 고려 시대의 장면이므로 이 시기에는 볼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2
    장례원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3
    사신을 수행하면서 통역을 담당하였다.
    4
    일제 강점기에 형평 운동을 전개하였다.
    5
    청요직 진출을 요구하는 상소를 집단으로 올렸다.
    해설

    제시된 역사 용어 해설은 (가)를 “고려 시대의 재인(才人)화척(禾尺)을 조선 초기에 하나로 합쳐서 부른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인과 화척은 유랑 생활을 하며 천인 취급을 받던 존재였고, 세종 때 이들을 천하게 여기던 옛 명칭 대신 고려 시대에 일반 백성을 일컫던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에서 일반 농민(양인)을 가리키던 말이 바로 백정이었으므로, (가)는 조선 시대의 백정입니다. 조선에서는 이름만 바꾸었을 뿐 도살·유기 제조 등에 종사하며 실제로는 최하층 천대를 받았고,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뒤에도 호적에 붉은 점을 찍는 등 차별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백정들은 1923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 형평 운동을 벌여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라며 신분 차별 철폐를 요구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에 형평 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설명이 (가)에 해당합니다.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된 것은 노비, 장례원의 관리를 받은 것도 노비이며, 사신을 수행하며 통역을 맡은 것은 역관, 청요직 진출을 요구하는 집단 상소를 올린 것은 서얼이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황토현에서 관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2
    (가) -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3
    (나) - 삼정이정청 설치의 계기가 되었다.
    4
    (나) - 지역 차별에 반발한 홍경래가 주도하여 봉기하였다.
    5
    (가), (나) -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여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해설

    (가) 자료는 “평서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니 우리 관서(關西)의 부로 자제와 공사천민 모두 이 격문을 들으라”로 시작하며, 관서 사람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놈이라 일컫는다는 지역 차별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스스로 평서대원수라 칭하며 서북민 차별에 반발해 일으킨 이 봉기는 1811년(순조)의 홍경래의 난입니다.

    (나) 자료는 “임술년 2월 19일, 진주 백성 수만 명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나무 몽둥이를 들고 진주 읍내에 모여 서리들의 가옥 수십 호를 불사르고 부수니”라고 하여, 1862년 유계춘 등이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항거한 임술 농민 봉기(진주 농민 봉기)임을 보여 줍니다.

    진주에서 시작된 봉기가 전국으로 번지자 정부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전정·군정·환곡의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였습니다. 따라서 임술년 진주 봉기가 삼정이정청 설치의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 옳습니다.

    황토현 승리와 남접·북접의 연합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에 해당하고,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과 홍경래 주도의 지역 차별 반발 봉기는 각각 두 자료의 짝이 뒤바뀐 설명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2
    경복궁 중건을 위해 원납전을 징수하였다.
    3
    대전회통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4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5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해설

    화면 속 어록에서 (가)는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겠으며 태산을 깎아내려 평지를 만들고, 또한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려 하는데 여러 공들은 어떠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각 종친의 지위 격상, 노론(세도 가문) 억압, 남인 등용을 뜻하는 유명한 발언이며, 옆의 설명도 “고종의 즉위로 집권한 (가)가 정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진실로 백성에게 해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은 서원 철폐의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가)는 흥선 대원군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왕권 강화를 위해 경복궁 중건에 나서면서 원납전을 강제로 거두고 당백전을 발행하였으며, 대전회통과 육전조례를 편찬해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여 붕당의 근거지와 면세지를 없앴고,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마을 단위 자치 운영 방식인 사창제를 실시하였습니다.

    반면 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한 것은 18세기 정조의 정책으로, 흥선 대원군과는 시기와 인물이 모두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설명이 (가)에 대한 서술로 옳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도표는 ‘외세의 침략적 접근과 조선의 대응’이라는 제목 아래, 불타는 이양선을 그린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 (가)를 거쳐 강화도에서 조선군과 서양 군대가 충돌하는 신미양요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 줍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평양 군민이 미국 상선을 불태운 사건이고, 신미양요는 이를 구실로 미군이 침입한 1871년의 사건이므로 (가)는 그 사이의 시기입니다.

    보기 가운데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한 것은 1868년의 일로, 이 사건은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더욱 굳히게 하였습니다. 또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해의 늦가을에 해당하여 역시 (가) 시기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남연군 묘 도굴 시도와 정족산성 전투 승리를 고른 것이 옳습니다.

    한편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해 무력 시위를 벌인 것은 1875년,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린 것은 1881년으로 모두 신미양요보다 뒤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거사'의 결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미국에 보빙사가 파견되었다.
    2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었다.
    3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다.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한성 조약이 체결되었다.
    5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해설

    대화 장면에서 한 인물은 “청의 군대 일부가 베트남으로 이동한 지금이야말로 민씨 일파를 몰아내고 청과의 사대 관계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고, 다른 인물은 “곧 우정총국 낙성 축하연이 열리니 그 때를 틈타 거사를 감행하세”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청군의 베트남 이동은 청·프 전쟁(1884)으로 조선 주둔 청군 절반이 철수한 상황을 가리키며, 우정총국 축하연을 이용한 거사는 곧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입니다. 정변 세력은 개화당 정부를 세우고 청에 대한 조공 허례 폐지 등을 담은 개혁 정강을 내걸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무너졌습니다.

    정변 과정에서 일본 공사관이 불타고 일본인 사상자가 생기자 일본은 이를 구실로 배상금과 공사관 신축비를 요구하였고, 그 결과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한성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듬해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어 양국 군대를 철수하고 파병 시 사전 통고하기로 하였습니다.

    보빙사 파견과 별기군 창설, 통리기무아문 설치, 부산·원산·인천 개항은 모두 갑신정변 이전인 1876~1883년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다)를 체결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2
    (가) - (다) - (나)
    3
    (나) - (가) - (다)
    4
    (나) - (다) - (가)
    5
    (다) - (가) - (나)
    해설

    (가)는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한 외국인 1명을 외교 고문으로 삼아 외부에 용빙하여 외교에 관한 주요 사무는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고문 정치를 규정한 제1차 한·일 협약(1904년 8월)입니다.

    (나)는 “러시아 제국 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치상·군사상 및 경제상의 탁절한 이익을 갖는다는 것을 승인하고 …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고 하여, 러·일 전쟁을 마무리한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는 “제3국의 침해나 혹은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 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 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 대일본 제국 정부는 …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정황에 따라 차지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제4조로, 러·일 전쟁 발발 직후 강요된 한·일 의정서(1904년 2월)입니다.

    따라서 체결 순서는 한·일 의정서(1904.2) → 제1차 한·일 협약(1904.8) → 포츠머스 조약(1905.9)이므로, (다) → (가) → (나) 순으로 나열해야 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2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되었다.
    3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4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5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해설

    (가)는 “우리 정부는 왕명을 받들어 교정청을 설치하여 당상관 15명을 두고 먼저 폐정 몇 가지를 개혁하니, 이는 모두 동학당이 호소한 일이다. … 6월 16일 교정청에서 혁폐 조목을 의정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전주 화약 이후 조선 정부가 일본의 내정 간섭을 막고 자주적 개혁을 추진하려 설치한 기구가 교정청이므로 (가)는 1894년 6월의 상황입니다.

    (나)는 조선 국왕이 “궁궐에 머무는 것이 자신의 생명에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베베르 공사가 알린 내용으로, 1896년 2월 아관 파천입니다.

    두 시기 사이인 1895년 10월, 삼국 간섭 이후 조선이 러시아와 가까워지자 일본은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 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고, 이 사건과 단발령이 을미의병과 아관 파천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명성 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되었다는 사실이 (가)와 (나) 사이에 해당합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1882년,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은 1885년으로 (가) 이전이며, 고종의 환구단 황제 즉위식은 1897년,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으로 (나) 이후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2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3
    베델과 제휴하여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4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5
    의열단의 활동 지침인 조선 혁명 선언을 집필하였다.
    해설

    제시된 연보는 1871년 평양 출생, 1898년 만민 공동회 간부로 활약, 1907년 국채 보상 운동 주도 및 신민회 조직, 1924년 정의부 조직, 1934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위원 선임, 1938년 중국 장쑤 성에서 서거, 1962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 추서로 이어집니다. 이 이력을 가진 인물은 양기탁입니다.

    양기탁은 1904년 영국인 베델과 손잡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외국인 명의 신문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일제의 침략을 강하게 비판하고 의병 운동을 우호적으로 보도하였습니다. 이 신문은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의 중심 기관 역할을 하며 모금을 확산시켰습니다.

    또한 그는 안창호 등과 함께 비밀 결사 신민회를 조직했다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만주로 망명한 뒤 정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위원으로도 선임되었습니다.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구속된 인물은 이극로·최현배 등,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한 인물은 안창호,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한 인물은 임병찬, 조선 혁명 선언을 집필한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조약'의 체결에 대한 저항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민영환, 조병세 등이 자결로써 항거하였다.
    2
    이상설이 매국노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3
    고종이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4
    유생 출신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이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5
    나철, 오기호 등이 5적 처단을 위해 자신회를 조직하였다.
    해설

    제시문은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 강경하신 성의(聖意)로 거절하기를 그치지 않으셨으니, 이 조약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건대 이토 후작 스스로도 알고 간파하였을 것”이라 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대신들을 질타하며 “사천 년의 강토와 오백 년의 종묘사직을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백성을 남의 노예가 되도록 하였도다”라고 통탄합니다. 이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규탄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이 조약’은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한 을사늑약입니다.

    을사늑약에 대한 저항으로 민영환·조병세 등은 자결로써 항거하였고, 이상설은 조약 파기와 매국노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나철·오기호 등은 을사 5적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보내 조약의 무효를 국제 사회에 알리려 하였습니다.

    반면 유생 출신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이 충주성을 점령한 것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일어난 을미의병 때의 일로, 을사늑약보다 10년 앞선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조약 체결에 대한 저항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헐버트, 길모어 등 외국인이 교사로 초빙되었다.
    2
    (나) - 교육 입국 조서 반포를 계기로 설립되었다.
    3
    (다) - 간도에 만들어진 민족 교육 기관이다.
    4
    (라) - 덕원 지방의 관민들이 합심하여 설립하였다.
    5
    (마) - 개신교 선교사가 선교 목적으로 세웠다.
    해설

    ‘한국사 강의 과제 안내문’에 제시된 학교는 (가) 육영 공원, (나) 원산 학사, (다) 배재 학당, (라) 대성 학교, (마) 한성 사범 학교입니다.

    이 가운데 육영 공원은 1886년 정부가 세운 최초의 근대식 관립 학교로, 헐버트·길모어·벙커 등 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양반 자제에게 영어와 근대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헐버트·길모어 등 외국인이 교사로 초빙되었다는 설명이 육영 공원에 해당합니다.

    원산 학사는 1883년 덕원 지방의 관리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이고, 한성 사범 학교는 1895년 교육 입국 조서 반포를 계기로 교원 양성을 위해 설립된 관립 학교입니다.

    배재 학당은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선교를 목적으로 서울에 세운 학교이며, 대성 학교는 신민회의 안창호가 평양에 세운 민족 교육 기관입니다. 간도에 세워진 민족 교육 기관으로는 서전서숙과 명동 학교를 들 수 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화폐 발행을 위해 전환국이 설치되었다.
    2
    재정 고문 메가타의 주도로 시행되었다.
    3
    은본위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배경이 되었다.
    4
    황국 중앙 총상회가 중심이 되어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5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방곡령을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구(舊) 백동화 교환에 관한 건」으로, 구 백동화 교환 사무를 금고가 처리하고 탁지부 대신이 감독하며, 백동 비율(품위)·무게·무늬 모양·형체가 정식 화폐 기준을 충족하면 1개당 금 2전 5리로 새 화폐와 교환하고,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부정 백동화는 1개당 금 1전에 정부가 사들이되 형태나 품질이 조악하여 화폐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사들이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 「관보」 1905년 6월 29일자 기사로, 이 사업이 곧 화폐 정리 사업임을 알 수 있다.

    화폐 정리 사업은 제1차 한일 협약으로 부임한 재정 고문 메가타가 주도하여 추진하였다. 백동화를 갑·을·병으로 등급을 나누어 교환해 주면서 등급 판정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졌고, 조악하다고 판정된 화폐는 교환조차 거부되어 한국 상인과 은행이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이 사업으로 도입된 것은 은본위제가 아니라 일본 제일은행권을 본위 화폐로 삼는 금본위제였다. 전환국 설치(1883)는 이보다 훨씬 앞선 일이고, 황국 중앙 총상회의 상권 수호 운동이나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의 방곡령 선포(1889)는 화폐 정리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회의가 개최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자료의 신문 기사는 임시 정부 활동 노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청원이 알려지자 신채호·박용만 등이 임시 정부와 임시 의정원의 해산을 요구하였고, 이에 상하이에서 각 지역·단체 대표 130여 명이 모여 기존 독립운동을 평가하고 임시 정부의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전한다. 이는 국민 대표 회의(1923)에 대한 설명이다.

    국민 대표 회의에서는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 정부를 세우자는 창조파와 조직만 개편하자는 개조파가 대립하다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연표에서 1923년은 3·1 운동(1919)만주 사변(1931) 사이의 구간에 해당하므로, 두 사건 사이에 놓인 시기를 고르면 된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운동'의 표어로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
    2
    잘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
    3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
    4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
    5
    천차만별의 천시(賤視)를 철폐하자
    해설

    그림의 게시문은 학생들에게 여름 방학에 고향으로 돌아가 문맹 타파에 힘쓰고 미신 타파와 근검절약을 생활화할 것을 권하며, 1931년부터 본 신문사에서 주최한 이 운동이 올해로 2회를 맞이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1931년 동아일보가 시작한 브나로드 운동임을 알 수 있다.

    브나로드는 러시아어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으로, 학생들이 방학 동안 농촌에 내려가 한글을 가르치고 위생·생활 개선을 계몽하는 문맹 퇴치 운동이었다. 따라서 표어로는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가 어울린다.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는 물산 장려 운동, '잘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는 소년 운동,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천차만별의 천시를 철폐하자'는 형평 운동의 구호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방침이 결정된 이후 시행된 일제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되는 조선 태형령을 시행하였다.
    2
    강압적 통치를 목적으로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였다.
    3
    회사 설립 시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회사령을 공포하였다.
    4
    독립운동 탄압을 위해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제정하였다.
    5
    근대적 토지 소유권 확립을 명분으로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다.
    해설

    제시된 「조선 통치에 관한 방침」은 조선인 지원병 제도를 채용하여 내선일체의 국방에 기여하게 하되 그것으로 참정권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게 하고, 신사 숭경의 관념을 함양하여 황국 신민 의식을 배양한다고 밝히고 있다. 육군 특별 지원병제가 실시된 1938년 무렵 민족 말살 통치 시기의 방침이다.

    이후 일제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치달으며 탄압을 강화하여, 1941년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가두어 둘 수 있는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제정하였다. 이것이 이 방침 이후에 시행된 정책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 시기의 정책이다. 조선 태형령(1912), 헌병 경찰 제도(1910), 회사령(1910), 토지 조사 사업(1910년대)은 모두 제시된 방침보다 앞선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사건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원인을 조사한다.
    2
    신흥 무관 학교의 설립 배경을 파악한다.
    3
    복벽주의를 내세운 단체의 활동을 정리한다.
    4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의 활동을 살펴본다.
    5
    중광단을 중심으로 북로 군정서가 조직된 과정을 알아본다.
    해설

    자료는 4월 29일 새벽 윤 군이 김해산의 집에서 마지막 아침을 함께 먹었다는 회고와, 오후에 홍커우 공원 일본인 경축대 위에서 폭탄이 터져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이 즉사하고 시라카와 대장, 시게미쓰 공사, 우에다 중장, 노무라 중장 등이 중상을 입었다는 신문 호외를 담고 있다. 1932년 상하이에서 일어난 윤봉길 의거이다.

    윤봉길은 김구가 1931년 상하이에서 조직한 한인 애국단 소속으로, 같은 단체의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따라서 이 사건을 탐구하려면 김구가 만든 한인 애국단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어 이후 한국 광복군 창설의 바탕이 되었다. 자유시 참변(1921), 신흥 무관 학교, 복벽주의 단체(대한 독립 의군부),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는 모두 만주·연해주 지역의 무장 투쟁과 관련된 별개의 주제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노동 총동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2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타격을 입었다.
    3
    신간회 중앙 본부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4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배경이 되었다.
    5
    국내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이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설

    자료는 1908년 천도교 제4세 대도주가 된 춘암 박인호를 소개하며, 사회주의자들이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가)를 준비할 때 선생이 이들과 연계하여 '대한 독립 만세',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본위로' 등의 전단 수만 장을 인쇄하도록 지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순종 인산일인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6·10 만세 운동이다.

    6·10 만세 운동은 사회주의 계열과 천도교 등 민족주의 계열, 그리고 학생 단체가 함께 준비하면서 두 진영이 협력할 수 있다는 경험을 남겼다. 이는 국내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어나 이듬해 신간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신간회 중앙 본부의 진상 조사단 파견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 105인 사건의 타격을 입은 것은 신민회, 이른바 문화 통치의 배경이 된 것은 3·1 운동이며, 조선 노동 총동맹은 노동 쟁의를 이끈 조직으로 이 운동의 주도체가 아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가)~(다) 학생이 발표한 법령을 공포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그림에서 왼쪽부터 가, 나, 다)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2
    (가) - (다) - (나)
    3
    (나) - (가) - (다)
    4
    (나) - (다) - (가)
    5
    (다) - (가) - (나)
    해설

    발표 내용을 보면 (가) 학생은 보통학교 수업 연한 4년, 실업 교육 위주의 기능 교육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1911년의 제1차 조선 교육령이다. 한국인을 하급 실무 인력으로 길러 내려는 우민화 교육 방침이 반영되었다.

    (나) 학생은 보통학교 수업 연한 6년, 사범 학교와 대학 설치 허용을 말하고 있는데,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통치기인 1922년의 제2차 조선 교육령에 해당한다. 이때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고 일제는 경성 제국 대학을 세워 무마하였다.

    (다) 학생은 조선어를 선택 과목으로 바꾸고 조선인 학교 명칭을 일본인 학교와 동일하게 하였다고 말하는데, 황국 신민화를 노린 1938년의 제3차 조선 교육령이다. 따라서 공포 순서는 (가) → (나) → (다)로, 발표 순서 그대로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개헌'의 결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정부 형태가 내각 책임제로 바뀌게 되었다.
    2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3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직선제에 의해 선출되었다.
    4
    국회에서 간접 선거 방식으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5
    개헌 당시의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이 철폐되었다.
    해설

    자료는 자유당 및 행정부의 헌법 파괴 행위를 규탄하며, 민의원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가 136명이냐 135명이냐를 두고 정확한 수학적 3분의 2선은 135.33…이므로 이를 넘는 최소 인수인 136명이 의안 통과에 필요한 최저선이며 0.33은 고사하고 0.001만 부족해도 3분의 2에 미달이라고 논박하고 있다.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을 규탄하는 글이다.

    당시 개헌안은 찬성 135표로 부결이 선포되었으나, 자유당은 사사오입(반올림)을 내세워 203의 3분의 2는 135라고 주장하며 부결을 번복하고 가결을 선포하였다.

    이 개헌의 핵심 내용은 개헌 당시의 대통령(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것으로, 이승만의 장기 집권 길을 열어 주었다. 내각 책임제 개헌은 4·19 혁명 직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대통령 선출은 유신 헌법, 5년 단임 직선제는 1987년 개헌의 결과이며, 국회의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은 것은 제헌 헌법에 따른 것으로 이 개헌과는 무관하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정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농지 개혁법 제정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농민
    2
    금융 실명제에 따라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은행원
    3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하는 국민
    4
    한·칠레 자유 무역 협정(FTA)의 비준을 보도하는 기자
    5
    한·독 근로자 채용 협정에 의해 서독으로 파견되는 광부
    해설

    사진 자료는 베트남 파병, 경부 고속 도로 준공, 유신 헌법 공포의 세 장면을 나란히 보여 준다. 모두 박정희 정부 시기(1963~1979)의 일이다.

    이 정부는 1964년부터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며 브라운 각서를 통해 경제·군사 원조를 받았고, 1970년 경부 고속 도로를 개통하였으며, 1972년 유신 헌법을 공포해 장기 집권 체제를 굳혔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은 한·독 근로자 채용 협정(1963)에 따라 서독으로 떠나는 파독 광부이다. 농지 개혁법 제정(1949)은 이승만 정부, 금융 실명제(1993)는 김영삼 정부, 금 모으기 운동(1998)은 김대중 정부, 한·칠레 자유 무역 협정 비준(2004)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여 일어났다.
    2
    4·13 호헌 조치에 국민들이 저항하며 시작되었다.
    3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비롯되었다.
    4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
    3·1 민주 구국 선언을 통해 긴급 조치 철폐 등을 요구하였다.
    해설

    자료는 「80만 광주 시민의 결의」로, 사태의 책임이 과도 정부에 있으니 물러날 것, 명분 없는 계엄령을 즉각 해제할 것, 정부와 언론이 광주 의거를 허위 조작·왜곡 보도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진정한 민주 정부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맞서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시민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저항하다 전남도청에서 진압되었다.

    이 운동의 관련 기록물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는 6·3 시위, 4·13 호헌 조치에 대한 저항은 6월 민주 항쟁, 3·15 부정 선거에서 비롯된 것은 4·19 혁명, 3·1 민주 구국 선언은 유신 반대 운동에 해당한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선언'이 발표된 결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2
    남북 조절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3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루어졌다.
    4
    남북한이 개성 공단 조성에 합의하였다.
    5
    이산가족의 고향 방문이 처음으로 성사되었다.
    해설

    엽서에는 2000년 평양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두 정상은 회담 후에 이 선언을 발표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이 선언'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1차 남북 정상 회담 뒤 발표한 6·15 남북 공동 선언입니다.

    이 선언에서 남북은 통일 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경제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 후속 조치로 개성 공단 조성에 합의하여 남측의 자본·기술과 북측의 토지·노동력을 결합한 경제 협력 사업이 추진되었고,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선언보다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교환은 1985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은 1991년, 남북 조절 위원회 설치는 7·4 남북 공동 성명 직후인 197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문항별 상세 페이지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