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이 조약'의 체결에 대한 저항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4회
밑줄 그은 '이 조약'의 체결에 대한 저항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
민영환, 조병세 등이 자결로써 항거하였다.
2
이상설이 매국노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3
고종이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4
유생 출신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이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5
나철, 오기호 등이 5적 처단을 위해 자신회를 조직하였다.
해설
제시문은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 강경하신 성의(聖意)로 거절하기를 그치지 않으셨으니, 이 조약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건대 이토 후작 스스로도 알고 간파하였을 것”이라 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대신들을 질타하며 “사천 년의 강토와 오백 년의 종묘사직을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백성을 남의 노예가 되도록 하였도다”라고 통탄합니다. 이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규탄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이 조약’은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한 을사늑약입니다.
을사늑약에 대한 저항으로 민영환·조병세 등은 자결로써 항거하였고, 이상설은 조약 파기와 매국노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나철·오기호 등은 을사 5적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보내 조약의 무효를 국제 사회에 알리려 하였습니다.
반면 유생 출신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이 충주성을 점령한 것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일어난 을미의병 때의 일로, 을사늑약보다 10년 앞선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조약 체결에 대한 저항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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