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4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되었다.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다.
반량전, 명도전 등의 화폐를 사용하였다.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빗살무늬 토기를 이용하여 식량을 저장하였다.
제시된 장면에서 교사는 경기도 고양시 도내동 유적 발굴 현장을 보여 주며, 이 유적에서 약 4~7만 년 전에 제작된 주먹도끼·찌르개·돌날 등 (가) 시대의 도구가 8,000여 점이나 출토되었고 대규모 석기 제작 공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합니다.
수만 년 전이라는 연대와 주먹도끼·찌르개·돌날 같은 뗀석기는 구석기 시대를 가리키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구석기인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얻으며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옳은 생활 모습은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계절과 먹거리를 따라 이동해야 했으므로 정착 취락 대신 임시 거처를 이용하였습니다.
반면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의 일반화는 고려 시대, 반량전·명도전 사용은 철기 시대, 고인돌 축조는 청동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이용한 식량 저장은 신석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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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정사암에 모여 재상을 선출하였다.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를 두었다.
제시된 사료는 누선장군 양복이 병사 7천 명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성에 이르렀으나, 성을 지키던 우거왕이 양복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 성을 나와 공격하자 양복의 군사가 패배해 흩어져 달아났고, 좌장군 순체도 패수서군을 공격했으나 나아가지 못하자 한 무제가 위산을 보내 우거왕을 회유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왕검성·우거왕·한 무제·좌장군 순체·누선장군 양복은 모두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한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이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그러므로 옳은 설명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살인·상해·절도에 관한 세 조항이 전해지며, 이를 통해 생명과 노동력, 사유 재산을 중시한 사회상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정사암 회의는 백제, 10월의 동맹은 고구려, 책화는 동예,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풍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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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국가적인 조직으로 화랑도를 개편하였다.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최고 지배자의 칭호를 마립간이라 하였다.
지방관 감찰을 위하여 외사정을 파견하였다.
제시된 사료는 왕 6년 가을 7월에 이찬 이사부가 “국사(國史)는 군주와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만대에 포폄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편찬을 건의하자, 왕이 이를 받아들여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해 문사를 모아 편찬하게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입니다.
거칠부에게 『국사』 편찬을 맡긴 신라의 왕은 진흥왕입니다. 진흥왕은 대외 팽창과 함께 왕실의 권위를 정리·과시하기 위해 역사서 편찬을 추진하였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국가적인 조직으로 화랑도를 개편하였다는 것입니다. 진흥왕은 종래의 청소년 집단을 국가가 관리하는 인재 양성 조직으로 재편해 정복 활동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정전 지급은 성덕왕, 국학 설립과 외사정 파견은 신문왕의 일이며, 최고 지배자의 칭호로 마립간을 쓴 것은 내물왕 무렵부터 지증왕이 ‘왕’ 호칭을 채택하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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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하였습니다.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습니다.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이 대표적인 특산물입니다.
대가들이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렸습니다.
교사가 제시한 자료는 중국 지린성 마오얼산 유적에서 출토된 금·은 장신구이며, 이 나라 사람들이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로 치장하기를 즐겼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12월에 열린 제천 행사 영고(迎鼓)로, 이는 부여의 대표적인 풍속입니다.
부여는 왕 아래에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加)가 있어 각각 별도의 행정 구역인 사출도를 주관하였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중앙과 네 구역이 합쳐진 연맹체적 정치 구조로, 왕권이 강하지 못했던 부여의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혼인하기 전 여자를 데려와 기르다가 성인이 되면 예물을 주고 맞이하는 민며느리제는 옥저의 풍습이고, 철을 낙랑과 왜에 수출한 나라는 변한(가야)입니다. 단궁·과하마·반어피는 동예의 특산물이며, 대가들이 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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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가)-백제의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한 곳이다.
(나)-당시 생활상을 담은 수렵도 등의 벽화가 남아 있다.
(다)-돌무지덧널무덤으로 다양한 껴묻거리가 출토되었다.
(라)-김정희의 금석과안록에서 비의 설립 시기가 고증되었다.
(마)-벽돌무덤으로 중국 양나라와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 준다.
답사 계획서의 지도는 중국 지안(집안)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표시한 것으로, 국내성 → 무용총 → 각저총 → 광개토 대왕릉비 → 장군총 순으로 답사 경로가 짜여 있습니다. 지도에는 강줄기가 만나는 남쪽 평지에 국내성, 그 위쪽 산지에 무용총과 각저총, 강가에 광개토 대왕릉비, 가장 북동쪽에 장군총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무용총은 굴식 돌방무덤으로, 말을 타고 짐승을 쫓는 수렵도와 춤추는 사람들을 그린 무용도 등 당시 생활상을 담은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초기의 생활 풍속도에서 후기의 사신도로 변해 가는 흐름을 보여 주는 대표 유적입니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이며, 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한 곳은 평양성입니다. 각저총 역시 벽화 고분(씨름도)이지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니며,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의 무덤 양식입니다.
광개토 대왕릉비는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석으로, 김정희가 금석과안록에서 설립 시기를 고증한 것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장군총은 잘 다듬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은 돌무지무덤이고, 중국 남조 양나라와의 교류를 보여 주는 벽돌무덤은 백제 무령왕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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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전투’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관구검의 공격으로 환도성이 함락되었다.
연개소문이 정권을 정악하고 신라를 압박하였다.
미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태조왕이 옥저를 정복하고 동해안으로 진출하였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였다.
제시된 사료는 온달이 신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며 출전하였다가 아단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던 중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 전투는 고구려 영양왕 즉위 무렵(590년경)의 일로, 진흥왕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던 시도였습니다.
따라서 이후의 사실을 골라야 합니다. 연개소문은 642년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제거하고 보장왕을 세운 뒤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고, 신라에 강경책을 펴며 압박하였습니다. 이는 온달의 전사보다 뒤의 일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 이전입니다.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함락된 것은 246년(동천왕), 미천왕의 서안평 공격은 311년, 태조왕의 옥저 정복은 1세기 후반,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427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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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였다.
백제가 대야성을 점령하였다.
고구려가 낙랑군을 축출하였다.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군을 물리쳤다.
신라가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였다.
사료는 당의 소정방이 산둥 내주에서 출발해 서해를 건너오고, 신라 무열왕이 태자 법민에게 병선 100척을 주어 덕물도에서 맞이하게 한 뒤 백제의 도성을 치겠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백제 공격이므로 밑줄 그은 '이 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재위 641~660)입니다.
의자왕은 즉위 이듬해인 642년 장군 윤충을 보내 신라의 서쪽 요충지인 대야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때 성주 김품석 부부가 죽으면서 김춘추가 고구려·당에 원병을 청하러 나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제의 사비 천도는 538년 성왕 때, 고구려의 낙랑군 축출은 313년 미천왕 때의 일로 의자왕 이전입니다.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군을 격파한 것은 675년,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삼은 것은 674년으로 백제 멸망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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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녹읍 폐지를 명하는 국왕
백강 전투에 참전하는 왜의 수군
청해진에서 교역 물품을 점검하는 군졸
솔빈부의 특산물인 말을 판매하는 상인
지방에 설치된 22담로에 파견되는 왕족
전시 초대의 글에서 평양 조선 중앙 역사 박물관에서 빌려 온 유물을 소개하며, (가)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에서 출토된 대형 치미가 고구려와의 문화적 연관성을 보여 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상경 용천부를 수도로 삼고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드러낸 나라이므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지방을 5경 15부 62주로 편제하였는데, 그중 솔빈부는 말이 특산물로 유명하여 주요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솔빈부의 말을 파는 상인의 모습은 발해에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 백강 전투는 백제 부흥 운동 시기(663), 청해진은 통일 신라 장보고와 관련되며,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한 것은 백제 무령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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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가 있었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박, 석, 김의 3성이 번갈아 왕위를 차지하였다.
시조 김수로왕의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삼국사기의 이 기록은 김구해(구형왕)가 아내와 세 아들 노종·무덕·무력을 데리고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하자 신라 법흥왕이 높은 관등을 주고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532년 신라에 병합된 금관가야의 멸망 장면이며, 셋째 아들 무력은 훗날 김유신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 김해 지역에서 성장한 전기 가야 연맹의 맹주로, 시조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전해집니다. 알에서 태어난 여섯 아이가 여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난생 설화입니다.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와 박·석·김 3성의 왕위 교대는 신라,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오경박사·의박사·역박사의 일본 파견은 백제와 관련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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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진골 귀족인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
왕의 장인인 김흠돌이 반란을 도보하였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건립되었다.
최치원이 국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제시된 사료는 혜공왕 말년의 혼란 속에서 상대등이던 김양상(선덕왕)이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올랐으며, 이에 참여한 김경신이 상대등이 되었다가 여러 사람의 뜻에 따라 왕위를 이었다는 내용입니다. 김경신이 곧 원성왕이므로, 이 상황은 780년 선덕왕 즉위에서 785년 원성왕 즉위에 이르는 신라 하대의 시작에 해당합니다.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는 최치원이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린 일(894)이 있습니다. 당에서 빈공과에 급제하고 돌아온 그는 정치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전의 일입니다. 진골 김춘추의 즉위는 654년, 김흠돌의 난은 681년 신문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것은 527년 법흥왕 때,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세워진 것은 선덕 여왕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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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나리오의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신숭겸이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궁예가 정변으로 왕위에서 축출되었다.
견훤이 경주를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다.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에 패배하였다.
왕건이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시나리오는 완산주(전주)의 궁궐을 배경으로, 왕이 넷째 왕자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첫째 왕자가 신덕·영순의 권유를 받아 왕을 금산사에 유폐한 장면입니다. 후백제 견훤이 맏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갇힌 935년의 사건입니다.
금산사를 탈출한 견훤은 고려에 귀부하였고, 이듬해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은 고려군에 크게 패하였습니다. 이어 황산에서 항복하면서 후백제가 멸망하고 왕건의 후삼국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상황 이전의 일입니다. 궁예가 축출된 것은 918년, 공산 전투에서 신숭겸이 전사하고 견훤이 경주를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한 것은 927년, 왕건이 승리한 고창 전투는 93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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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ㄴ
ㄱ,ㄷ
ㄴ,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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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서 (가)는 그 수장이 문하시중이라 하였으므로 고려의 중서문하성이고, (나)는 어사대부가 소속된 기구이므로 어사대입니다. 두 관청의 성격을 각각 구분하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중서문하성은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중앙 관서로, 재신은 국가 정책을 심의하고 낭사는 간쟁을 담당하였습니다. 어사대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구인데,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을 이루어 관리 임명에 동의하는 서경권과 간쟁·봉박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반면 화폐와 곡식의 출납·회계를 맡은 기구는 삼사이므로 중서문하성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원 간섭기에 도평의사사로 개편된 기구는 도병마사로, 국방 문제를 논의하던 재추 합좌 기구였지 어사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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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나)-(다)-(라)
(가)-(나)-(라)-(다)
(나)-(가)-(다)-(라)
(나)-(가)-(라)-(다)
(다)-(가)-(나)-(라)
게시판의 네 쪽지는 고려 중기의 정치적 사건들입니다. 금국 정벌을 주장하던 묘청이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하며 서경에서 일으킨 난은 1135년이고,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궁궐을 불태우고 왕을 감금한 사건은 1126년입니다.
왕이 보현원에 행차했을 때 정중부와 이의방 등 무신들이 문신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무신 정변은 1170년이며,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가 수탈에 저항해 봉기한 것은 1176년으로 무신 집권기에 일어난 하층민 봉기입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이자겸의 난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무신 정변 → 망이·망소이의 봉기가 됩니다.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가 무신 정변으로 이어지고, 다시 하층민의 저항으로 확산되는 흐름으로 기억하면 순서를 놓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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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하부 낭사를 분리하여사간원으로 독립시켰다.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다.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인 칠정산을 만들었다.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국가의 통치 규범을 마련하였다.
직전법을 제정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였다.
대담 화면의 주제는 조선 전기의 문화이며, 출연자는 이 시기에 역사·문학·지리·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편찬 사업이 활발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가) 왕 때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이 편찬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 책을 모두 완성한 임금은 성종입니다. 서거정 등이 우리 역대 시문을 모은 동문선, 각 지역의 지리·풍속을 정리한 동국여지승람, 성현 등이 음악 이론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이 모두 성종 대의 성과입니다.
성종은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한 법전을 마무리해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함으로써 조선의 통치 규범을 확립하였습니다. 이것이 (가) 왕의 업적에 해당합니다.
사간원 독립과 한양 천도는 태종·태조 때의 일이고, 칠정산은 세종, 직전법은 세조 때 시행된 제도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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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가)-팔상전을 통해 본 오층 목탑의 구조
(나)-석조 미륵보살 입상의 조형적 특징
(다)-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주요 활동
(라)-팔만대장경의 운반 과정과 보관 경위
(마)-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요세의 신앙 결사 운동
답사 안내문의 주제는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이며, 일정표에는 1회차 안동 봉정사(가), 2회차 논산 관촉사(나), 3회차 순천 송광사(다), 4회차 합천 해인사(라), 5회차 강진 백련사(마)가 차례로 적혀 있습니다.
오층 목탑 구조로 유명한 팔상전은 안동 봉정사가 아니라 보은 법주사에 있는 건물입니다. 안동 봉정사에서 주목할 문화유산은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인 극락전으로, 현존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로 꼽힙니다. 따라서 봉정사와 팔상전을 연결한 설명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알맞게 짝지어져 있습니다. 논산 관촉사에는 고려 전기의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 있고, 순천 송광사는 지눌이 수선사 결사를 펼친 곳이며,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는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강진 백련사는 요세가 법화 신앙에 기반해 결사 운동을 전개한 사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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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유인우, 이자춘 등이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나세, 심덕부 등이 진포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의 삼별초가 조직되었다.
서희가 외교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명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하여 요동 정벌이 추진되었다.
제시된 자료는 고려 시대 항목의 그림 해설로, 노국 대장 공주와 그 남편인 왕이 의자에 마주 앉은 모습을 그린 초상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노국 대장 공주의 배우자인 이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반원 자주 정책을 추진하여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유인우·이자춘 등을 보내 원이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았습니다. 이것이 공민왕 재위 기간의 사실에 해당합니다.
나세·심덕부의 진포 대첩과 요동 정벌 추진은 우왕 때, 삼별초 조직은 최씨 무신 정권기, 서희의 강동 6주 획득은 성종 때의 일로 모두 공민왕 재위기와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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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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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의 발표 주제는 ○○ 시대 과학 기술의 발달이고, 학생들의 발표 내용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간행과 사천대에서의 천체·기상 관측입니다. 두 가지 모두 고려 시대의 성과이므로 (가)에도 고려의 과학 기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보기>에서 화통도감을 설치해 화약과 화포를 제작한 것은 고려 우왕 때 최무선의 건의로 이루어진 일이고, 우리 풍토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을 정리한 향약구급방 역시 고려 시대에 편찬된 현존 최고(最古)의 의서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가 (가)에 들어갈 내용입니다.
반면 기기도설을 참고한 거중기 제작은 조선 정조 때 정약용의 작업이고, 농업 기술을 비롯한 생활 백과를 집대성한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서유구의 저술이므로 고려 시대와는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시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1점]
내상과 만상이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담배와 면화 등이 상품 작물로 활발하게 재배되었다.
모내기법의 확대로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성행하였다.
건원중보가 발행되어 금속 화폐의 통용이 추진되었다.
설점수세제의 시행으로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었다.
화면에 제시된 지도는 대동여지도의 일부로,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이 국제 무역항 벽란도입니다. 발표자는 (가) 시대에 벽란도에서 송의 상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과도 교역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벽란도가 예성강 하구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고 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든 시기는 고려입니다. 이때 우리나라의 이름이 '코리아'로 서방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고려 성종 때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가 주조되어 금속 화폐의 통용이 추진되었습니다. 이것이 고려 시대의 경제 상황에 해당합니다.
내상·만상의 국제 무역, 담배와 면화 등 상품 작물 재배, 모내기법 확대에 따른 이모작 성행, 설점수세제에 따른 민간 광산 개발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경제 모습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하였다.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작성하였다.
동호문답을 통해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성학십도를 지어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하였다.
가례집람을 저술하여 예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리하였다.
사진 속 건물은 논산 돈암 서원이며, 안내에 따르면 호가 사계인 인물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중 하나입니다. 또한 아들인 김집과 제자 송시열·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호가 사계이고 김집의 아버지이며 송시열·송준길을 길러낸 기호학파의 대표적 인물은 김장생입니다.
김장생은 예학에 정통하여 가례집람을 저술함으로써 주자가례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리하였고, 이를 통해 조선 예학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강화 학파 형성은 정제두, 조의제문은 김종직, 동호문답은 이이, 성학십도는 이황의 활동이므로 이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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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창덕궁 옛 선원전에 임시로 모셨던 조선 왕과 왕비, 대한 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위 49위를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가 열린 (가)는 종묘이다. 정답으로 제시된 사진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 정전으로, 길게 이어진 맞배지붕 건물과 넓은 월대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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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고 유향소를 폐지하였다.
문신의 재교육을 위한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총융청과 수어청을 설치하여 도성을 방비하였다.
전제상정소를 설립하고 전분 6등법을 제정하였다.
변급, 신류 등을 파견하여 나선 정벌을 단행하였다.
자료는 왕 즉위 1년의 기록으로, 3월 14일에 광해를 폐하여 군으로 봉하고 이광정·이귀·김류 등에게 관직을 주었으며, 3월 15일에는 영창 대군의 관봉을 회복하고 인목 대비의 의복을 바꿀 날을 정하게 하였고, 3월 25일에는 반정에 공이 있는 김자점 등을 6품직에 제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서인 세력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폐위된 인목 대비의 지위를 되돌린 이 사건은 인조반정이며, 따라서 밑줄 그은 왕은 인조입니다.
인조는 이괄의 난과 후금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총융청과 수어청을 새로 두어 수도 외곽과 도성 방비를 강화하였습니다.
유향소 폐지는 세조, 초계문신제는 정조, 전제상정소와 전분 6등법은 세종, 나선 정벌은 효종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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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역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김만덕의 빈민 구제 활동에 대해 알아본다.
정묘호란에서 정봉수의 활약상을 살펴본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을 검색한다.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운 장소를 찾아본다.
유계춘이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지역을 조사한다.
답사 안내문의 경로는 촉석루 → 김시민 장군 전공비 → 강민첨 탄생지 → 옥봉 고분군이고, 지도에도 강가를 따라 이들 유적이 함께 표시되어 있습니다.
남강가의 촉석루,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을 이끈 김시민의 전공비, 거란 침입 때 활약한 강민첨의 탄생지가 함께 있는 고장은 진주입니다.
진주는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처음 일어난 곳으로,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몰락 양반 유계춘이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봉기 지역을 조사하는 활동이 이 고장에 대한 탐구로 알맞습니다.
김만덕은 제주, 정봉수는 용골산성(평안도),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흑산도, 신립의 배수진은 충주 탄금대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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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주상’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신유박해로 다수의 천주교도가 처형되었다.
박규수의 건의로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의 부대가 파견되었다.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통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대전회통이 편찬되었다.
대화에서 두 인물은 주상이 각 궁방과 중앙 관서의 공노비를 해방시켜 모두 양민으로 삼도록 허락했다는 소식과, 노비안을 모아 돈화문 밖에서 불태우라고 명했다는 내용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중앙 관서의 공노비 6만여 명을 해방하고 노비안을 불태운 조치는 1801년에 이루어졌으므로, 밑줄 그은 주상은 순조입니다.
같은 해인 1801년, 순조 즉위 초 정순 왕후의 수렴청정 아래 신유박해가 일어나 이승훈·정약종 등 다수의 천주교도가 처형되고 정약용·정약전 등이 유배되었습니다.
삼정이정청 설치는 철종, 강홍립 부대 파견은 광해군, 탕평비 건립은 영조, 대전회통 편찬은 고종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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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가)-혜상공국을 통해 정부의 보호를 받았다.
(가)-전국 각지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설치하였다.
(나)-책문 후시를 통해 청과의 무역을 주도하였다.
(나)-금난전권을 행사해 사상의 활동을 억압하였다.
(가), (나)-근대적 상회사인 대동 상회를 설립하였다.
대화의 주제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상인입니다. 한 학생은 (가)를 개성 상인이라 하며 사개치부법이라는 회계법을 고안했다고 말하고, 다른 학생은 (나)가 한강을 무대로 정부의 세곡 운송을 주도했고 강상(江商)이라고도 불렸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가)는 송상, (나)는 경강상인입니다.
송상은 전국의 주요 상업 도시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두고 인삼의 재배·가공과 판매를 장악하였으며, 만상과 내상을 중개하여 대외 무역에서도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 설명이 (가)에 해당합니다.
혜상공국의 보호를 받은 것은 보부상, 책문 후시로 청과의 무역을 주도한 것은 의주의 만상, 금난전권을 행사한 것은 시전 상인이며, 대동 상회는 개항 이후 인천에서 설립된 근대적 상회사로 이들 상인 집단의 활동과는 구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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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가)-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나)-광해군 때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다)-국왕의 비서 기관에서 발행한 관보이다.
(라)-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일기에서 유래하였다.
(마)-춘추관 관원들이 편찬 업무에 참여하였다.
안내문이 제시한 조선의 관찬 기록물은 조보, 일성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다섯 가지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국왕이 승하한 뒤 실록청을 설치해 편찬하였는데, 사초와 시정기를 관리하던 춘추관 관원들이 편찬 업무에 참여하였다. 실록에 대한 설명으로 옳다.
나머지는 대상과 설명이 어긋나 있다. 국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발행하여 조정의 소식을 알리던 관보는 비변사등록이 아니라 조보이며, 광해군 대의 기록부터 남아 있는 것은 일성록이 아니라 비변사등록이다.
또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존현각일기에서 비롯된 것은 승정원일기가 아니라 일성록이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조보가 아니라 승정원일기·일성록·조선왕조실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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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가)-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나)-촉의 장수인 관우를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다)-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혁파되었다.
(라)-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국왕이 신농, 후직에게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탐방 지도는 경복궁역의 사직단, 종로3가역의 종묘, 혜화역의 문묘, 동묘앞역의 동관왕묘, 제기동역의 선농단 다섯 곳을 잇고 있다.
이 중 제기동역과 이어지는 선농단은 농사의 신 신농씨와 곡식의 신 후직씨에게 제사하며 풍년을 기원하던 제단으로, 국왕이 직접 밭을 가는 친경 의례를 행하던 곳이다. 옳은 설명이다.
나머지 짝은 서로 어긋난다.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은 사직단이 아니라 종묘이고, 사직단은 토지신(社)과 곡식신(稷)에게 제사하던 곳이다. 촉의 장수 관우를 제사하는 사당은 종묘가 아니라 동관왕묘다.
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공자와 선현을 모시고 유학을 가르치던 곳은 동관왕묘가 아니라 문묘이며, 흥선 대원군이 집권기에 대대적으로 혁파한 것은 문묘가 아니라 서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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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조선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1점]
광군을 조직하여 침입에 대비하였다.
학문 교류를 위해 만권당을 설립하였다.
하정사, 성절사, 천추사 등을 파견하였다.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무역을 재개하였다.
사절 왕래를 위해 한성에 북평관을 개설하였다.
자료의 은화는 조선의 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1710년에 발행된 것으로, 그 교역이 부산 초량 왜관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밑줄 그은 나라는 일본이다.
임진왜란으로 끊겼던 국교는 에도 막부의 국교 재개 요청을 조선이 받아들이면서 회복되었고, 조선은 1609년 기유약조를 맺어 세견선과 세사미두의 한도를 정하고 왜관을 통한 제한된 무역을 재개하였다. 일본에 대한 조선의 정책으로 옳다.
나머지는 상대가 다르다. 광군은 고려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조직한 것이고, 만권당은 고려 충선왕이 원의 연경에 세운 학문 교류 기관이다. 하정사·성절사·천추사는 명에 보낸 사절이며, 한성에 북평관을 두어 사절 왕래를 뒷받침한 상대는 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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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붕당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광해군 시기에 국정을 이끌었다.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언적과 이황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기해 예송에서 자의 대비의 기년복을 주장하였다.
정여립 모반 사건을 내세워 기축옥사를 주도하였다.
자료에서 홍문관은 윤국형이 우성전과 유성룡의 심복이라고 논박하면서, 유성룡이 다시 재상이 되자 윤국형 등이 선비를 갈라 자기들에게 붙는 자를 (가)라 하고 뜻을 달리하는 자를 북인이라 하여 당쟁의 실마리를 크게 열어 놓았다고 하였다. 북인과 갈라선 쪽이므로 (가)는 동인에서 분화한 남인이다.
남인은 이황의 학맥을 이은 유성룡·김성일 계열이 중심을 이루었고, 이황이 학문을 이어받은 이언적 이래의 영남 사림이 그 뿌리가 되었다. 남인의 학통에 대한 설명으로 옳다.
나머지는 다른 붕당의 일이다. 광해군 대 중립 외교와 함께 국정을 주도한 것은 조식 문인 중심의 북인이고,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한 쪽은 서인이다.
기해 예송에서 자의 대비의 기년복(1년)을 주장한 것도 서인이며 남인은 3년복을 주장하였다. 정여립 모반 사건을 내세워 기축옥사를 주도한 것 역시 정철 등 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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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종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에 기여하였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강조하였다.
일제의 통제에 맞서 사찰령 폐지 운동을 펼쳤다.
간척 사업을 추진하고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사와 신주를 모시는 문제로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신문 기사는 경상도 일대에서 교세를 넓히던 (가)의 교주 최제우가 제자 23명과 함께 경주에서 체포되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고, 혹세무민의 죄로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전한다. (가)는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다.
동학은 사람이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를 내세웠고, 이는 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존귀하다는 평등 사상으로 이어져 하층민의 호응을 얻었다.
나머지는 다른 종교의 활동이다.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을 보급한 것은 개신교(아펜젤러)이고, 일제의 사찰령 폐지 운동을 편 것은 불교계다. 간척 사업과 새생활 운동을 전개한 것은 원불교이며, 제사와 신주 문제로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은 천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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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하였다.
동국지리지를 저술하여 삼한의 위치를 고증하였다.
지전설을 주장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였다.
연행사를 따라 청에 다녀온 후 열하일기를 집필하였다.
자영농 육성을 위해 신분에 따른 토지의 차등 분배를 주장하였다.
사진 속 장소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반계 서당으로, 낙향해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제자를 기르고 반계수록을 지었다고 하였다. (가)는 유형원이다.
유형원은 균전론을 제시하여, 토지를 국가가 관리하면서 관리·선비·농민 등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자영농을 육성하고 조세와 군역의 기반을 바로잡자고 주장하였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이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된 이는 이덕무·박제가 등 서얼 출신 학자들이고, 동국지리지에서 삼한의 위치를 고증한 이는 한백겸이다.
또 지전설을 내세워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한 이는 홍대용이며, 연행사를 따라 청에 다녀온 뒤 열하일기를 남긴 이는 박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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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관계’가 발급되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되었다.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가 개최되었다.
러시아가 용암포를 점령하고 조차를 요구하였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였다.
자료는 대한 제국 인민으로 전답을 가진 자는 관청이 증명한 관계(官契)를 반드시 소유하고 구계(舊契)는 무효로 하며, 대한 제국 인민 외에는 전답 소유주가 될 수 없어 외국인에게 명의를 빌려주거나 몰래 매매·저당·양도하면 최고형에 처하고 해당 전답은 몰수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양전·지계 사업의 산물이다. 1898년 양지아문을 두어 토지를 측량하기 시작하였고, 이어 지계아문이 설치되면서 1901년부터 근대적 소유권 증명서인 관계(지계)를 발급하였다. 이 사업은 러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다.
따라서 관계가 발급되던 시기의 사실로는 1903년 러시아가 용암포를 점령하고 조차를 요구한 사건이 해당한다. 압록강 삼림 채벌권을 둘러싼 이 사건은 러일 간 대립을 크게 격화시켰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난다. 이만손 등의 영남 만인소는 1881년, 박문국의 한성순보 발행은 1883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한 미군의 강화도 침략(신미양요)은 1871년의 일이고,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는 1923년으로 훨씬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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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개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ㄱ,ㄴ
ㄱ,ㄷ
ㄴ,ㄷ
ㄴ,ㄹ
ㄷ,ㄹ
편지는 상하이에서 살해된 조선인 망명자를 두고, 그가 일본인의 협력을 기반으로 청프 전쟁이 벌어진 틈을 타 정변을 일으켜 기존 대신들을 몰아내고 스스로 참판에 오르는 등 새 관료 조직을 꾸렸다고 전한다. 밑줄 그은 개혁은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에서 추진한 개혁이다.
청의 군사 개입으로 실패하였다는 설명은 옳다. 개화당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으나,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청군의 출동으로 3일 만에 무너졌다.
국가 재정을 호조로 일원화하고자 하였다는 설명도 옳다. 갑신정변의 14개조 정강에는 지조법 개혁과 함께 모든 재정을 호조가 통할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반면 집강소를 중심으로 시행되었다거나 토지의 균등 분배를 내세웠다는 것은 갑신정변이 아니라 동학 농민 운동의 폐정 개혁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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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민족 교육을 위해 대성 학교를 설립하였다.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물을 소개하였다.
영국인 베델과 제휴하여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독립 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추원 관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문서는 서양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조약을 체결한 나라에 보낸 국서로, 종2품 협판내무부사인 (가)를 초대 주미 공사로 임명해 수도에 머물며 교섭 사무를 맡기겠다고 밝히고 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 이후 파견된 이 인물은 박정양이다.
박정양은 귀국 뒤 개화 관료로 활동하다가 1898년 관민 공동회에서 제기된 독립 협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추원 관제를 관선·민선 의관으로 구성하는 의회식 기구로 개편하려 하였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이다. 대성 학교를 세운 이는 안창호, 서유견문으로 서양 문물을 소개한 이는 유길준, 베델과 제휴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이는 양기탁이며,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된 특사는 이상설·이준·이위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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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조약이 맺어진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였다.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시전 상인들이 철시 투쟁을 전개하였다.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하여 무력 시위를 벌였다.
제시된 조약은 청 상무위원이 개항한 조선의 항구에 주재하며 자국 상인을 돌보고, 조선인이 원고이고 청 상인이 피고인 사건까지 청 상무위원이 체포·재판하도록 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이다. 청의 영사 재판권을 명문화한 불평등 조약이다.
이 장정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맺어졌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과 밀린 급료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봉기하자 청은 군대를 보내 이를 진압하고 흥선 대원군을 압송하였으며, 그렇게 커진 영향력을 발판으로 조선에 이 장정을 강요하였다.
나머지는 배경이 될 수 없다. 운요호의 무력 시위(1875)는 강화도 조약의 배경이고,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은 1885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1895년의 일로 모두 이 조약보다 뒤이거나 관련이 없다.
시전 상인의 철시 투쟁 역시 이 장정으로 청 상인의 한성 진출이 허용된 뒤 상권을 침탈당하자 벌어진 일이므로, 배경이 아니라 결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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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고종이 아관 파천 이후 환궁한 곳입니다.
두 차례의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일제의 강압 속에 을사늑약이 체결된 현장입니다.
명성 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된 장소입니다.
궁궐 안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있습니다.
안내 자료에 열거된 중화전·석조전·중명전·정관헌·함녕전·대한문은 모두 덕수궁(경운궁)의 건물이다. 배치도에도 석조전·정관헌 같은 서양식 건물이 함께 표시되어 있어, 대한제국의 황궁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으로 불리는 이 궁궐임을 알 수 있다.
덕수궁은 고종이 아관 파천 이후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이며, 광복 후 석조전에서는 두 차례의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렸다.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현장이고, 정관헌은 궁궐 안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로 꼽힌다.
반면 명성 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된 을미사변(1895)은 경복궁 안 건청궁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이 궁궐을 소개하는 내용으로는 알맞지 않다. 고종이 경운궁으로 옮겨 온 것은 을미사변과 아관 파천을 겪은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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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공사 노비법의 폐지를 결정하였다.
임술 농민 봉기를 계기로 설치되었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람의 건의로 혁파되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최고 기구로 자리 잡았다.
소속 부서로 교린사, 군무사, 통상사 등의 12사를 두었다.
화면 속 답변은 (가)가 초정부적인 정책 의결 기구였고 총재 1명을 포함해 20명 내외로 구성되었으며, 총재를 영의정 김홍집이 겸임했고, 약 3개월 동안 210여 건의 법안을 의결했으나 6개월여 만에 폐지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을 주도한 군국기무처이다.
군국기무처는 신분제 개혁의 핵심으로 공사 노비법을 폐지하였고, 과부의 재가 허용, 조혼 금지, 과거제 폐지, 은 본위 화폐 제도 채택, 개국 기년 사용 등을 잇달아 결정하였다.
임술 농민 봉기를 계기로 설치된 기구는 삼정이정청이고,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건의로 혁파된 것은 소격서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정 최고 기구가 된 것은 비변사, 교린사·군무사·통상사 등 12사를 둔 것은 통리기무아문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숭무 학교의 설립 목적을 파악한다.
대조선 국민군단의 활동 내용을 분석한다.
동제사를 통한 한중 교류 상황을 살펴본다.
중광단이 북로 군정서로 개편된 과정을 조사한다.
유학생들이 2ㆍ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장소를 확인한다.
제시된 상소는 참정 김규홍이 (가)를 두고 우리나라와 청의 경계 지대로 수백 년 동안 비어 있었으나 북쪽 변경 백성들이 이주해 경작하면서 수만 호 십여만 명에 이르렀고, 청인들의 괴롭힘이 심해 시찰관 이범윤을 파견해 호구를 조사하게 했다고 아뢰는 내용이다. 이 지역은 간도이다.
대한제국은 1902년 이범윤을 간도 시찰원으로, 이듬해 간도 관리사로 파견해 이주 한인을 보호하려 하였다. 이후 북간도는 한인 사회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북간도에서는 대종교 계열의 중광단이 3·1 운동 이후 북로 군정서로 개편되어 김좌진의 지휘 아래 청산리 대첩을 이끌었으므로, 그 개편 과정을 조사하는 활동이 적절하다. 숭무 학교는 멕시코, 대조선 국민군단은 하와이, 동제사는 상하이,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와 관련된 사실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민족 혁명당이 결성되었다.
조선 혁명 선언이 작성되었다.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가 창립되었다.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가 조직되었다.
한성, 상하이, 연해주 지역의 임시 정부가 통합되었다.
제시문은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 단원들이 개별 의거 활동의 한계를 느껴 황푸 군관 학교에 입교해 군사 훈련을 받고, '통일적 총지휘 기관의 확립'을 촉구하는 대독립당 촉성회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며 민족 협동 전선을 제창한 뒤, 전위 투사를 기르기 위해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조선 혁명 간부 학교는 1932년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난징 부근에 설립되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전개된 사실을 찾아야 한다.
김원봉은 이 학교 출신 인력을 기반으로 1935년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해 민족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조선 혁명 선언은 1923년,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 창립은 1926년, 독립 의군부 조직은 1912년, 한성·상하이·연해주 임시 정부의 통합은 1919년의 일로 모두 앞선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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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격문이 작성된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김상옥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브나로드 운동이 전개되었다.
고액 소작료에 반발하여 암태도 소작 쟁의가 발생하였다.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 방향을 밝힌 정우회 선언이 발표되었다.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105인 사건을 날조하였다.
(가)는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던 창덕궁 주인이 53세의 나이로 4월 25일에 서거하였다"면서 민중에게 혁명 단체 깃발 아래 모이자고 호소한 격문으로, 순종의 승하(1926)를 계기로 일어난 6·10 만세 운동 때 작성된 것이다.
(나)는 "광주 학생 사건을 지지하고 성원하라", "광주 조선 학생 동지 400여 명을 철쇄에 묶어 넣었다"고 외친 격문으로, 1929년 11월에 시작된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당시의 것이다.
두 격문 사이인 1926년 11월, 사회주의 단체 정우회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제휴 등 활동 방향을 밝힌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고, 이는 이듬해 신간회 창립으로 이어졌다.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투탄과 암태도 소작 쟁의는 1923년 무렵, 105인 사건 날조는 1911년으로 앞서며, 브나로드 운동은 1931년에 시작되어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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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군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김좌진의 지휘 아래 활동하였다.
자유시 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과 연계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중국 관내(關內)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중국 호로군과 연합 작전을 통해 항일 전쟁을 전개하였다.
사진 속 건물은 충칭의 옛 터에 복원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 총사령부 건물로, 임시 정부가 중국의 도움을 받아 (가)를 창설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이다.
한국광복군은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인도·미얀마 전선에 대원을 파견했으며,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연계해 특수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김좌진의 지휘 아래 활동한 부대는 북로 군정서, 자유시 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은 부대는 대한 독립 군단이다.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조선 의용대이며, 중국 호로군과 연합 작전을 편 것은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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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일제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탈하였다.
도 평의회, 부ㆍ면 협의회 등의 자문 기구를 설치하였다.
재정 고문 메가타의 주도 아래 화폐 정리 사업을 실시하였다.
회사 설립 시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회사령을 적용하였다.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을 공포하였다.
그림 설명은 토지 조사 사업이 진행되던 시기에 총독부가 식민 통치의 실적을 선전하려고 조선 물산 공진회를 열었고, 회의장을 만들기 위해 경복궁 일부를 헐어냈다는 내용이다. 조선 물산 공진회는 1915년에 개최되었으므로 이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이다.
이 시기 일제는 1910년 회사령을 공포해 회사를 세울 때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한국인의 기업 활동을 억눌렀다. 회사령은 1920년에 신고제로 바뀌었다.
도 평의회와 부·면 협의회 설치는 1920년대 이른바 문화 통치기의 일이고,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과 국가 총동원법은 1930년대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에 해당한다. 재정 고문 메가타가 주도한 화폐 정리 사업은 국권 피탈 이전인 1905년에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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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권업회 조직과 권업신문 발간
서전서숙 설립과 민족 교육 진흥
신흥 무관 학교 설립과 독립군 양성
한인 애국단 결성과 항일 의거 활동
신한 청년당 결성과 파리 강화 회의 참석
안내문은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최재형의 활동을 살펴보는 학술 대회를 알리고 있다. 발표 주제로 동의회를 통해 본 재러 한인의 의병 활동, 대동공보를 통한 언론 활동,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최재형이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가)에도 연해주를 무대로 한 활동이 들어가야 한다. 최재형은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조직된 권업회에 참여하였고, 그 기관지인 권업신문 발간을 뒷받침하였다.
서전서숙 설립은 북간도, 신흥 무관 학교 설립은 서간도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한인 애국단 결성과 신한 청년당 결성 및 파리 강화 회의 파견은 모두 상하이를 중심으로 전개된 활동이어서 연해주 주제로는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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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부대’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동북 항일 연군으로 개편되어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간도 참변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으로 남만주 지역에서 활약하였다.
사진 속 건물은 총사령 지청천이 이끈 부대가 길림 자위군과 연합하여 만주국 군대를 격퇴한 쌍성보 전투의 현장인 승은문이다. 이 부대는 북만주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군이다.
한국 독립군은 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으로, 중국 호로군 등 중국 항일 부대와 손잡고 쌍성보·사도하자·동경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1933년 대전자령에서 매복 작전으로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 많은 전리품을 거두었다.
동북 항일 연군으로 개편되어 유격전을 편 것은 만주의 항일 유격대이고, 간도 참변 이후 조직을 정비해 자유시로 이동한 것은 대한 독립 군단이다. 홍범도 부대와 연합해 청산리에서 교전한 것은 북로 군정서,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으로 남만주에서 활약한 것은 조선 혁명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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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ㆍ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정읍 발언이 제기되었다.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좌우 합작 위원회가 결성되어 좌우 합작 7원칙에 합의하였다.
민족주의 정당을 중심으로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가)는 "나의 연령이 이제 70하고도 3",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밝힌 글로, 1948년 2월 김구가 발표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다.
(나)는 "기미 3월 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 국민 대회를 열고 임시 정부를 건설하여"라고 하면서, 이 국회에서 탄생하는 정부가 "한국 전체를 대표한 중앙 정부"임을 공포한 것으로, 1948년 5월 말 제헌 국회가 문을 열 무렵의 연설이다.
두 시점 사이인 1948년 5월 10일, 유엔 소총회 결정에 따라 남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다. 정읍 발언(1946)과 좌우 합작 7원칙 합의(1946),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조직(1945),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결성(1945)은 모두 (가)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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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1점]
여유당전서 간행 사업을 계기로 조직되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제정하였다.
국어의 이해 체계 확립을 위해 국문 연구소를 세웠다.
개벽, 신여성 등의 잡지를 간행하여 민족의식을 높였다.
인재 육성을 일환으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시된 예심 종결 결정문에는 피고 이극로·최현배 외 10명을 함흥 지방 법원 공판에 부친다는 주문과 함께, 이들이 1919년 만세 소요 사건의 실례에 비추어 조선의 독립을 장래에 기약하는 데는 문화 운동에 의하여 민족정신의 환기와 실력 양성을 급무로 삼고, 그 기초가 되는 어문 운동의 방법을 취해 10여 년 동안 활동해 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1942년의 조선어 학회 사건 관련 문서이며, (가)는 조선어 학회입니다.
조선어 학회는 조선어 연구회를 계승하여 1931년 조직된 국어 연구 단체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제정하고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회원들이 대거 검거되었습니다. 따라서 (가)의 활동으로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제정을 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유당전서 간행 사업을 계기로 전개된 것은 정인보·안재홍 등이 주도한 조선학 운동이고, 국문 연구소는 1907년 대한 제국 학부 아래 설치된 기관이며, 개벽·신여성 등의 잡지 간행은 천도교,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의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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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법령이 제정된 이후에 볼 수 있는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3점]
신간회의 간부로 활동하는 변호사
원산 총파업에 동참하는 공장 노동자
부민관에 폭탄을 설치하는 대한 애국 청년당원
잡지 어린이 창간호를 준비하는 천도교 소년회원
조선 물산 장려회 발기인 대회에 참여하는 기업인
제시된 법령은 제1조에서 호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연령 17년 이상의 제국 신민인 남자로서 육군 병역에 복무하기를 지원하는 자를 전형 후 현역 또는 제1 보충 병역에 편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3조에서 보충 병역·국민 병역에 있는 자나 병역을 마친 자가 전시·사변시에 육군 부대 편입을 지원하면 적의한 부대에 편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호적법이 적용되지 않는 조선인 남자를 대상으로 한 육군 특별 지원병령(1938)입니다.
중일 전쟁 이후 병력 부족에 시달린 일제는 이 법령으로 조선인을 군에 동원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학도 지원병제(1943)와 징병제(1944)로 강제 동원을 확대해 갔습니다. 따라서 답은 1938년 이후에 있었던 일이어야 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대한 애국 청년당이 1945년 7월 친일 집회가 열린 부민관에 폭탄을 설치한 의거입니다. 반면 원산 총파업(1929), 잡지 어린이 창간(1923), 조선 물산 장려회 발기인 대회(1920), 신간회 활동(1927~1931)은 모두 이 법령 제정 이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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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북한의 전면적인 남침으로 6ㆍ25 전쟁이 발발하였다.
경찰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습격하였다.
정ㆍ부통령 직접 선거를 주 내용으로 하는 개헌이 이루어졌다.
전조선 정당 사회 단체 지도자 협의회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일제가 남긴 재산 처리를 위한 귀속재산처리법이 처음 제정되었다.
제시된 상황은 5월 26일 부산에서 국회의원 통근 버스가 헌병대로 강제 연행되어 야당 의원 50여 명이 구금되고, 내각 책임제를 추진하던 의원들이 체포되었으며 국제 공산당 사건 혐의로 10여 명의 국회의원이 구속되었다는 내용입니다. 6·25 전쟁 중 임시 수도 부산에서 이승만 정부가 재선을 위해 일으킨 부산 정치 파동(1952)입니다.
당시 국회의 간접 선거로는 재선이 어려웠던 이승만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을 탄압한 뒤, 1952년 7월 발췌 개헌을 강행하여 대통령·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통과시켰습니다. 이것이 이 상황 직후에 전개된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6·25 전쟁 발발(1950. 6.), 경찰의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습격(1949), 귀속재산처리법 제정(1949), 남북 협상 과정에서 나온 전조선 정당 사회 단체 지도자 협의회 성명서(1948)는 모두 부산 정치 파동 이전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뉴스가 보도된 정부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프로 야구단이 정식으로 창단되었다.
금강산 해로 관광 사업이 시작되었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친되었다.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대통령의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가 전격 실시되었다.
뉴스 화면의 자막은 정부, 올해부터 중학교 의무 교육 실시이고, 앵커는 정부가 대학 입시 본고사를 폐지하고 대학 졸업 정원제를 실시한 데 이어 중학교 의무 교육을 처음 도입하기로 하였으며, 올해 도서·벽지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 내년에는 도서·벽지 중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본고사 폐지와 졸업 정원제는 1980년 7·30 교육 개혁 조치로 시행되었고, 도서·벽지부터 시작한 중학교 의무 교육은 1985년에 도입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뉴스는 전두환 정부 시기의 보도입니다.
이 시기의 사실로는 1982년 프로 야구단의 정식 창단이 있습니다. 금강산 해로 관광 시작(1998)과 금 모으기 운동(1998)은 김대중 정부, 금융 실명제 실시(1993)는 김영삼 정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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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헌법 조항이 시행된 시기의 민주화 운동으로 옳은 것은? [2점]
굴욕적 대일 외교 반대를 주장하는 6ㆍ3 시위가 일어났다.
긴급 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3ㆍ1 민주 구국 선언이 발표되었다.
부정 선거에 항거하는 4ㆍ19 혁명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었다.
4ㆍ13 호헌 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전 국민적인 저항이 벌어졌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공동 의장으로 한 민주화 추진 협의회가 조직되었다.
제시된 헌법 조항은 제39조에서 대통령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고 하고, 제40조에서 통일 주체 국민 회의가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선거하되 그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한다고 하며, 제47조에서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제59조에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972년 제정된 유신 헌법입니다.
유신 체제에서 박정희 정부는 긴급 조치를 잇달아 발동해 개헌 논의 자체를 금지하였고, 이에 맞서 1976년 명동 성당에서 재야 인사들이 긴급 조치 철폐와 민주 회복을 요구하는 3·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헌법이 시행되던 시기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6·3 시위(1964)와 4·19 혁명(1960)은 유신 이전이고, 4·13 호헌 조치에 맞선 저항(1987년 6월 민주 항쟁)과 민주화 추진 협의회 조직(1984)은 유신 헌법이 폐지된 뒤 전두환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1점]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과 예술 공연단 교환이 이루어졌다.
남북한 간 최초의 공식 합의서인 남북 기본 합의서를 교환하였다.
7ㆍ4 남북 공동 성명을 실천하기 위한 남북 조절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10ㆍ4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신문 기사는 개성 공단 착공식이 30일 11시 북한 개성 현지 1단계 지구에서 남측과 북측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동 조성하는 대규모 수출 공업 단지로서 남측의 기술력·대외 무역 능력과 북측의 노동력을 결합한 남북 경협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개성 공단 착공식은 2003년 6월에 열렸으므로 밑줄 그은 정부는 노무현 정부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이어받아 2007년 평양에서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10·4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다른 사례들은 시기가 다릅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과 남북 기본 합의서는 노태우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과 예술 공연단 교환은 전두환 정부, 7·4 남북 공동 성명과 남북 조절 위원회는 박정희 정부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