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5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빗살무늬토기를 제작하였다.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다.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반달 돌칼을 사용하여 곡물을 수확하였다.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었다.
유물 카드는 명칭이 슴베찌르개, 출토지가 충청북도 단양 수양개 유적이며, 소개란에 뗀석기로서 슴베를 자루에 연결하여 창끝이나 화살촉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적혀 있다. 뗀석기인 슴베찌르개는 후기 구석기의 대표적 도구이므로 (가)는 구석기 시대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거리를 얻으며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하였다.
빗살무늬토기 제작과 가락바퀴·뼈바늘을 이용한 옷 만들기는 정착 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의 모습이다.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 축조와 반달 돌칼을 이용한 곡물 수확은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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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였습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였습니다.
박, 석, 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마한의 목지국을 압도하고 지역의 맹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화면의 우표는 구간(九干)이 구지봉에서 6개의 알을 맞이하고 그중 한 알에서 수로가 나오는 장면을 담고 있다. 구지봉 설화와 김수로왕 탄생 이야기는 금관가야의 건국 신화이므로, 교사가 묻는 나라는 가야이다.
금관가야가 자리한 낙동강 하류의 김해 지역은 질 좋은 철이 많이 났고, 규격을 맞춘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면서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는 중계 무역으로 번영하였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는 부여이고,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박·석·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이은 것은 신라 초기의 모습이며, 마한의 목지국을 압도하고 맹주로 성장한 것은 백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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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하였다.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하였다.
거칠부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지방에 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였다.
그림은 왕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저 이차돈도 불법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 한다며 상서로운 일을 보여 달라고 기원하는 장면이다. 이는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공인한 신라 법흥왕 때의 일이다.
법흥왕은 군사 업무를 맡는 병부를 설치하고 율령을 반포하였으며 공복을 제정하였고, 귀족 회의를 주재하는 최고 관직인 상대등을 두어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또 '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고 금관가야를 병합하였다.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한 것은 백제 성왕,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것은 신라 진흥왕의 업적이다.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은 지증왕이며, 지방에 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한 것은 백제 무령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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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진흥왕이 대가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여 한성을 함락시켰다.
계백이 이끄는 군대가 황산벌에서 결사 항전하였다.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가)는 을지문덕이 우문술의 군사를 지치게 만든 뒤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산에 진을 쳤다는 기록으로, 612년 수의 침입 때 벌어진 살수 대첩 무렵의 상황이다. (나)는 여러 장수가 안시성을 급히 공격하고 강하왕 도종이 흙산을 쌓아 침입하려 했다는 기록으로, 645년 당 태종의 침입 때 벌어진 안시성 싸움이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는 7세기 전반, 즉 612년과 645년 사이의 시기이다. 이 무렵인 642년에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보장왕을 세운 뒤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고, 이는 당이 고구려를 침공하는 구실이 되었다.
진흥왕의 대가야 정복은 562년, 장수왕의 한성 함락은 475년,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것은 371년으로 모두 살수 대첩 이전이다. 계백의 황산벌 항전은 660년으로 안시성 싸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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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보기>에서 고른 것은?[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자료의 문화유산은 위치가 충청남도 공주시이고, 1971년 송산리 6호분의 침수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 중 도굴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소개된다. 이는 백제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양)의 양식을 본떠 벽돌로 쌓아 만든 벽돌무덤(전축분)으로, 당시 백제가 남조와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무덤 입구에서 무덤의 주인과 사망·매장 시기를 적은 묘지석이 나와 축조 연대와 피장자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삼국 시대의 드문 사례가 되었다.
모줄임 천장 구조는 고구려 굴식 돌방무덤에서 주로 확인되는 특징이고, 장군총과 같은 돌무지무덤은 고구려 초기와 백제 한성 시기의 무덤 양식이므로 이 무덤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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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의 경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2점]
솔빈부의 말이 특산물로 유명하였다.
벽란도를 통해 송 상인과 교역하였다.
청해진이 국제 무역 거점으로 번성하였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으로 나누어 전세를 부과하였다
신문 기사는 일본 도다이 사 쇼소인에 소장된 '사하리'라 불리는 금속제 그릇과 청동 가위를 다루고 있다. 그릇 바닥에 새겨진 '위수내말(爲水乃末)'에서 '내말'은 (가)의 관등인 나마를 뜻하고, 청동 가위는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통일 신라이다.
통일 신라는 당·일본과의 해상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특히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한 청해진이 해적을 소탕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국제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하였다. 산둥반도 일대에는 신라방·신라소·신라원이 세워졌다.
솔빈부의 말을 특산물로 자랑한 나라는 발해이고, 벽란도에서 송 상인과 교역한 것은 고려이다. 진대법으로 빈민을 구제한 것은 고구려,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으로 나누어 전세를 매긴 전분 6등법은 조선 세종 때의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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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불상’으로 옳은 것은?[3점]
학예사는 국보 제78호인 이 불상이 반가의 자세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며 6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삼국 시대 금동불의 대표작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답이 되는 사진은 좌우로 뻗은 장식이 달린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걸터앉아 한 손을 뺨 가까이 올려 사유하는 금동 보살상이다. 갸름한 얼굴과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이 함께 나타난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둔 채 결가부좌한 여래 좌상, 한쪽 무릎을 세우고 편안하게 걸터앉은 보살상, 광배와 대좌를 갖춘 소형 금동 불상, 여러 부처와 보살이 새겨진 석조 조각은 모두 반가 사유의 자세가 아니므로 설명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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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1점]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완산주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임존성에서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을 격퇴하였다.
안승을 왕으로 받들어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자료는 중국에서 발견된 백제 장군의 묘지석 탁본으로, 이름은 상지이고 조상은 부여씨에서 나왔으나 흑치 지방에 봉해져 이를 성씨로 삼았으며 가문이 대대로 달솔을 지냈다고 새겨져 있다. 곧 이 인물은 흑치상지이다.
흑치상지는 백제 멸망 직후 임존성을 거점으로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켜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이후 부흥 운동이 지도부의 내분으로 흔들리자 당에 투항하여 당의 장수로 활동하였다.
김흠돌의 난 진압은 통일 신라 신문왕, 완산주에 도읍한 것은 후백제의 견훤, 국호를 마진으로 고치고 철원으로 옮긴 것은 후고구려의 궁예, 안승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이끈 검모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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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설명하는 문화유산을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1점]
(가)
(나)
(다)
(라)
(마)
설명에 나온 문화유산은 국보 제3호로 진흥왕 대의 영토 확장을 보여 주며, 조선 후기 김정희가 고증하기 전까지 무학대사왕심비 등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알 수 있다.
지도에서 서울과 선으로 이어진 비석 사진이 바로 이 순수비이므로, 해당 위치의 기호 (나)를 고르면 된다.
나머지는 지안과 연결된 광개토 대왕릉비, 단양의 신라 적성비, 충주의 고구려비, 부여와 연결된 비석으로, 북한산 순수비와는 세워진 위치와 성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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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의 제한이 있었다.
주자감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교육하였다.
독서삼품과를 마련하여 인재를 등용하고자 하였다.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를 제정하였다.
자료는 『제왕운기』의 한 대목으로, 옛 고구려의 장수 대조영이 태백산 남쪽 성에 자리를 잡고 측천무후 원년에 나라를 열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가)는 발해이다.
발해는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지배층 자제를 교육하였다. 중앙 관제는 3성 6부를 두되 정당성 아래 좌사정·우사정을 두고 부의 이름에 유교 덕목을 붙이는 등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골품에 따른 관등 승진 제한과 독서삼품과는 신라, 오경박사·의박사·역박사를 일본에 보낸 것은 백제, 범금 8조는 고조선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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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를 설치하였다.
왕권 강화를 위해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다.
신돈을 등용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흑창을 처음 설치하였다.
자료에서 왕이 경관 5품 이상에게 각각 봉사를 올려 시정의 잘잘못을 논하라 명하였고 이에 최승로가 앞선 5대 조정의 정치를 평가한 글을 올렸다고 하였다. 이는 시무 28조가 올려진 상황이므로 밑줄 그은 왕은 고려 성종이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처음으로 중앙이 지방을 직접 통제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또한 국자감을 정비하고 2성 6부의 중앙 관제를 마련하였다.
양현고는 예종, 노비안검법은 광종, 신돈 등용과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 흑창 설치는 태조 왕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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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은 것은? [2점]
화포를 사용하여 진포에서 격퇴하였다.
별무반을 편성하여 동북 9성을 개척하였다.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여 침입에 대비하였다.
이종무로 하여금 근거지를 정벌하게 하였다.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쟁을 준비하였다.
자료는 (가)의 병사가 귀주를 지나자 강감찬 등이 동교에서 맞아 싸워 크게 이겼고, 살아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이었다고 전한다. 이는 귀주 대첩이므로 (가)는 거란이다.
고려는 거란의 3차 침입을 물리친 뒤에도 재침에 대비하여 개경에 나성을 쌓았고, 이어 압록강에서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진포에서 화포로 격퇴한 대상은 왜구, 별무반과 동북 9성은 여진, 이종무의 정벌은 왜구의 근거지 쓰시마, 강화도 천도는 몽골의 침입에 대한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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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제도를 운영한 국가의 지방 통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나누었다.
특수 행정 구역으로 향, 부곡, 소가 있었다.
지방 장관으로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두었다.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수도의 위치가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해 5소경을 설치하였다.
자료에 6위를 설치하고 직원과 장수를 배치한 뒤 응양군과 용호군의 2군을 두었으며 2군이 6위보다 지위가 높았다고 하였다. 이는 고려의 중앙군인 2군 6위 체제이다.
고려의 지방에는 일반 군현과 구별되는 특수 행정 구역으로 향·부곡·소가 있었다. 이곳 주민은 거주 이전이 제한되고 일반 군현민보다 무거운 부담을 졌으며, 소의 주민은 수공업품이나 광물 등을 생산해 바쳤다.
5경 15부 62주는 발해, 욕살·처려근지는 고구려, 상수리 제도와 5소경은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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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망이ㆍ망소이가 난을 일으켰다.
정몽주가 이방원 세력에 의해 피살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소실되었다.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되었다.
자료에서 묘청 등이 (가)의 임원역 땅을 대화세라 하며 이곳에 궁궐을 세우고 옮기면 금이 스스로 항복하고 36개 나라가 신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가)는 서경, 곧 평양이다.
평양에서는 1920년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하여 '내 살림 내 것으로'를 내걸고 국산품 애용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 운동은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공주 명학소, 정몽주 피살은 개경 선죽교,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인 원산 학사는 원산, 황룡사 구층 목탑 소실은 경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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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1점]
녹읍 폐지를 명하는 국왕
농상집요를 소개하는 관리
당백전을 주조하는 관청 소속 장인
공가를 받고 관청에 물품을 납부하는 공인
고추, 담배 등을 상품 작물로 재배하는 농민
대화에서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공로로 벼슬을 받게 되었고, 장인 정천익이 이를 심어 재배에 성공하였다고 하였다. 목화 전래는 고려 말의 일이므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을 골라야 한다.
고려 후기에는 이암이 원에서 『농상집요』를 들여와 소개하였다. 이 책은 중국 화북 지방의 농법을 정리한 농서로, 목화 재배와 함께 당시 농업 기술 발전에 자극을 주었다.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 때, 당백전 주조는 흥선 대원군 집권기, 공인의 활동은 대동법 시행 이후, 고추·담배의 상품 작물 재배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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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정을 위해 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경기 지역에 한하여 과전법이 실시되었다.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정중부 등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우왕이 요동 정벌을 위해 이성계를 파견하였다.
(가)는 다루가치가 왕을 비난하자 선지를 왕지로, 짐을 고로, 사를 유로, 주를 정으로 고쳤다는 내용으로, 원 간섭기에 들어 왕실 용어가 격하된 상황을 보여 준다. (나)는 기철·권겸·노책이 반역을 도모하다 처단된 일로, 공민왕이 반원 자주 정책을 펴며 친원 세력을 숙청한 1356년의 사실이다.
두 시기 사이인 충렬왕 때 원은 일본 원정을 준비하며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였다. 정동행성은 원정 실패 이후에도 남아 내정 간섭 기구로 기능하였다.
과전법 실시(1391), 우왕의 요동 정벌 파견(1388)은 (나) 이후이고, 김윤후의 처인성 승리(1232)와 정중부 등의 무신 정변(1170)은 (가)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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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자장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이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불국사 삼층 석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찾아낸,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간행된 (가)는 『직지심체요절』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한 것은 『성학십도』, 3년마다 작성된 것은 신라 촌락 문서, 거란 격퇴를 기원한 것은 초조대장경, 충신·효자·열녀를 알린 것은 『삼강행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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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고려에 성리학을 최초로 소개하였다.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에 힘썼다.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하였다.
성리학을 도식으로 설명한 성학십도를 저술하였다.
인물은 충선왕을 수행하여 중국의 여러 지역을 다녔고, 『역옹패설』을 저술하고 역사서인 『사략』을 편찬하였다고 말한다. 이는 고려 후기의 학자 이제현이다.
이제현은 충선왕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세운 독서당인 만권당에 머물며 원의 학자들과 교유하였고, 이를 통해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 고려에 전하였다.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소개한 인물은 안향, 9재 학당을 세운 인물은 최충, 강화 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 『성학십도』를 지은 인물은 이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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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을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가)
(나)
(다)
(라)
(마)
제시된 사료는 운문(청도)에 웅거한 김사미와 초전(울산)에 자리 잡은 효심이 유랑민을 모아 고을을 노략질하자, 왕이 대장군 전존걸과 장군 이지순 등을 보내 토벌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곧 무신 집권기인 1193년(명종 23년)에 일어난 김사미·효심의 난이다.
연표는 918년 고려 건국 → 1009년 강조의 정변 → 1126년 이자겸의 난 → 1170년 무신정변 → 1270년 개경 환도 → 1388년 위화도 회군의 여섯 지점으로 다섯 구간을 나누어 놓았다.
1193년은 무신정변(1170)과 개경 환도(1270) 사이에 놓이므로,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무신정변 직후부터 개경 환도까지의 구간이다. 무신 정권의 가혹한 수탈에 맞서 하층민의 봉기가 잇따르던 때로, 망이·망소이의 난(1176), 만적의 난(1198)도 같은 구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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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행해지던 풍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진달래꽃으로 화전 부치기
새알심을 넣어 팥죽 만들기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감기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 먹기
부스럼을 예방하기 위한 부럼 깨기
제시된 자료는 세시 풍속을 소개하면서 「세종실록」의 병조 보고를 인용하고 있다. "동지로부터 105일이 지나면 세찬 바람과 심한 비가 있으니 (가)라 부른다", "(가)에는 밤낮으로 불과 연기를 일절 금지하고 관리들이 순찰하게 하소서"라는 대목이 결정적 단서다.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이자 불을 금하는 명절은 한식이다. 자료의 관련 행사 부분에서도 '손 없는 날',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손을 대도 탈이 없다고 하여 개사초(잔디 새로 입히기)·비석과 상석 세우기·이장을 했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조상에 제사 지내고 성묘하는 한식의 대표적 풍습이다.
따라서 이날의 풍습으로는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것이 알맞다. 진달래 화전은 삼짇날, 팥죽은 동지, 창포물 머리감기는 단오, 부럼 깨기는 정월 대보름의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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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회의 왕이 재위했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이 설치되었다.
전통 한의학을 정리한 동의보감이 간행되었다.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한 측우기가 제작되었다.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다.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되었다.
그림 속 왕은 "우리나라에 서적이 매우 적어 유생들이 널리 볼 수 없는 것을 염려하니, 주자소를 설치하고 민무질 등을 제조로 삼아 역대 사서와 경전을 간행하라"고 명하고, 신하들은 동철(銅鐵)을 자원해 바치겠다고 답하고 있다.
주자소 설치와 왕의 처남인 민무질의 등장에서 이 왕이 태종임을 알 수 있다. 태종은 1403년 주자소를 두고 금속 활자인 계미자를 주조하여 인쇄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태종 재위 기간의 사실로 옳은 것은 1402년 권근·김사형·이회 등이 만든 현존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제작이다. 홍문관 설치는 성종, 측우기 제작은 세종, 동의보감 간행은 광해군, 동국문헌비고 편찬은 영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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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였다.
계유정난을 계기로 정계에서 축출되었다.
일본에 다녀와서 해동제국기를 편찬하였다.
인재 등용을 위해 현량과 실시를 건의하였다.
방납의 폐단을 줄이고자 수미법을 주장하였다.
화면 속 설명은 제시된 글이 태조를 칭송한 문덕곡의 서문이며, 그 지은이가 조선경국전을 편찬하는 등 조선 초 문물제도 정비에 크게 기여했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글 본문 역시 "전하께서 즉위하시자 … 언로를 열고 공신을 보전하셨으며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예악을 제정하셨다"며 태조의 치적을 나열하는데, 이는 문덕곡의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가) 인물은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의 교리를 이론적으로 비판하고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고자 하였다. 계유정난으로 축출된 인물은 김종서 등, 해동제국기는 신숙주, 현량과 건의는 조광조, 방납의 폐단을 없애려 수미법을 주장한 인물은 이이·유성룡 등으로 정도전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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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주세붕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좌수와 별감을 중심으로 운영되엇다.
중앙에서 교수와 훈도가 파견되었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건의로 혁파되었다.
매향 활동을 하면서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제시된 상소는 (가)를 설치한 목적이 "학문을 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선비를 대우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향사(享祀)의 대상은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원(祠院)은 많으나 사문(斯文)은 침체되었으니, 앞으로 새로 창설할 때는 예조에 보고하여 조정의 공론을 거친 뒤 세우게 하자고 건의하고 있다.
선현을 제사(향사)하고 유생을 교육하며 사사로이 남설되던 사립 교육 기관, 곧 (가)는 서원이다.
서원은 1543년(중종 38년) 주세붕이 안향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며, 뒤에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좌수·별감은 유향소, 교수·훈도 파견은 향교, 조광조의 건의로 혁파된 것은 소격서, 매향 활동은 향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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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예송이 전개되었다.
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을사사화가 발생하였다.
김종직 등 사림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사림이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관련자들이 화를 입었다.
왕의 말에 임꺽정이 많은 죄를 짓고도 오래도록 법을 피하고 있다는 한탄과, 을묘년의 왜변(1555년 을묘왜변)과 같은 일이 또 있으면 어찌하겠느냐는 우려가 함께 나온다. 임꺽정의 활동(1559~1562)과 을묘왜변이 모두 언급되므로 밑줄 그은 왕은 명종이다.
명종 대에는 외척인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의 권력 다툼이 격화되어 즉위 직후인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났고, 문정 왕후의 수렴청정과 외척의 전횡 속에 정치가 혼란해지면서 임꺽정의 난 같은 유민·도적 문제가 심각해졌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난다. 예송은 현종, 김종직 등 사림의 중앙 진출은 성종, 동인과 서인의 분당은 선조, 폐비 윤씨 사사 사건으로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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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국경 지역인 양계에 배치되었다.
소속 군인에게 군인전이 지급되었다.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되었다.
유사시에 향토 방위를 담당하는 예비군이었다.
국왕의 친위 부대로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두었다.
그림에서 서양인은 "배가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다"며, 같은 네덜란드 사람인 벨테브레이를 만나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곧 하멜 일행과 먼저 조선에 정착한 박연(벨테브레이)의 만남이다.
이어 조선 관리 차림의 벨테브레이는 하멜 일행이 한양에서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가)에 배속되어 총포의 제조와 조작법을 병사들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 중 설치되어 화포·조총을 다룬 부대이므로 (가)는 훈련도감이다.
훈련도감은 1593년 유성룡의 건의로 설치되어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되었고, 급료를 받는 상비군(직업 군인) 성격을 띠었다. 양계 배치와 군인전 지급은 고려의 군사 제도, 향토 방위 예비군은 속오군,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둔 국왕 친위 부대는 장용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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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이 전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김종서가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하였다.
조ㆍ명 연합군이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한 계해약조가 체결되었다.
제시된 상소는 강홍립·김경서 등이 중국(명) 군대와 함께 적지에 깊숙이 들어가 싸우다 죽지 않고 투항하여 적의 뜰에 무릎을 꿇었다며, 그 가족을 잡아 가두어 군율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1619년 광해군이 명의 요청으로 파병한 조선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에 항복한 사건이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서인 세력은 이를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일로 비판하였다.
따라서 이 상황 이후의 사실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서인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다. 6진 개척(세종)과 계해약조(1443)는 조선 전기, 평양성 전투 승리(1593)와 기축옥사(1589)는 광해군 즉위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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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지계를 발급하였다.
속대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청과의 경계를 정한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삼군부를 부활시켜 군국 기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
제시된 어찰은 (가)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비밀리에 보낸 편지로, "최근 벽파가 떨어져 나간다는 소문이 성행한다"며 정국을 조율하는 내용이다. 설명은 또한 그가 부친인 사도 세자의 추숭(追崇)을 반대한 노론 벽파 영수와도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밝힌다.
사도 세자의 아들이자 심환지와 어찰을 주고받은 인물이므로 (가)는 정조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장용영을 창설했으며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등 왕권 강화를 추진하였다.
정조가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초계문신제로, 37세 이하의 젊은 문신을 선발해 규장각에서 재교육하여 개혁의 친위 세력으로 삼았다. 지계 발급은 대한 제국, 속대전 편찬은 영조, 삼군부 부활은 흥선 대원군, 백두산 정계비 건립은 숙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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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상평통보가 시장에서 유통되었다.
강희맹이 농서인 금양잡록을 저술하였다.
보부상이 장시를 돌아다니며 활동 하였다.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왜관에서 개시 무역과 후시무역이 이루어졌다.
제시된 자료는 평안도에서 설점(設店)한 이후 백성들이 이익을 다투어 사사로이 잠채(潛採)하고 있으며, 설점한 고을이 아니어도 몰래 캐지 않는 곳이 없어 묘지나 논밭을 가리지 않고 굴을 뚫고 땅을 파헤친다고 전한다. 농민들까지 생업을 팽개치고 이익을 좇는다는 대목도 보인다.
이는 설점수세제 시행 이후 광산 개발이 활발해진 조선 후기의 상황이다. 이 시기에는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고, 보부상이 장시를 오가며 활동했으며, 송상과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쌓고 왜관에서는 개시·후시 무역이 이루어졌다.
반면 강희맹의 금양잡록은 15세기 후반 성종 대에 저술된 농서로, 조선 전기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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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이 작성된 당시의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성현 등이 악학궤범을 편찬하였다.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가 유행하였다.
서예에서 조맹부의 송설체가 도입되었다.
제시된 글은 관상대 위에 혼천의와 비슷한 기구들이 진열된 모습을 보고, 벗 정철조의 집에서 본 물건과 유사하다고 회상하는 내용이다. 정철조와 홍대용이 황도와 적도, 남극과 북극을 화제로 토론하는 장면까지 담겨 있어, 청에 다녀온 박지원이 남긴 기행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홍대용·박지원은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북학파 실학자다. 따라서 이 글이 쓰인 때는 조선 후기이며, 이 시기 문화의 특징으로는 서민 의식의 성장에 힘입어 한글 소설과 형식이 자유로운 사설시조가 널리 읽히고 불린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안견의 몽유도원도, 김시습의 금오신화, 성현 등이 편찬한 악학궤범은 모두 15세기 조선 전기의 성과이고, 조맹부의 송설체 도입은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 후기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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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백낙신이 탐학이 발단이 되었다.
집강소가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국안민, 제폭구민을 기피로 내걸었다.
홍경래의 주도로 가산, 정주성 등을 점령하였다.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자료의 사진은 김립시집(金笠詩集)으로, 방랑 시인 김삿갓(김병연)의 시를 모은 문집이다. 설명에는 그가 서북민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여 일어난 ‘이 사건’ 당시 항복한 선천 부사 김익순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가, 뒤에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고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올랐다고 되어 있다.
서북민 차별에 반발해 평안도에서 일어난 사건은 1811년의 홍경래의 난이다. 몰락 양반 홍경래가 영세 농민·광산 노동자·상인 등을 규합해 봉기하여 가산과 정주성 등 청천강 이북 지역을 한때 장악하였고, 이후 정주성에서 관군에 맞서 오래 농성하였으나 결국 진압되었다.
한편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탐학이 발단이 되고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이며, 보국안민·제폭구민의 구호와 집강소 설치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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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서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1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자료는 이원익이 정승으로 있을 때 양첩 소생은 손자 대, 천첩 소생은 증손 대에 가서 관직 진출을 허용하도록 정했다는 내용이다. 첩의 자손에 대한 관직 제한을 논하고 있으므로 (가)는 서얼이다.
서얼은 조선 후기에 집단 상소를 올려 청요직 진출을 허용해 달라는 통청 운동을 여러 차례 전개하였고, 정조 때에는 유득공·박제가·이덕무·서이수 등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두 설명이 옳은 조합이다.
보기 가운데 화척·양수척으로 불렸다는 것과 1923년 진주에서 차별 철폐를 위해 조선 형평사를 조직했다는 것은 모두 백정에 관한 설명이므로 (가)와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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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실시했어.
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하는 영정법을 실시했어.
현직 관리에게만 과전을 지급하는 직전법을 시행했어.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도록 하는 의창을 설치했어.
기금을 모아 그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마련했어.
칠판의 시는 “시아버지 죽어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다 안 말랐는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다 실렸으니”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정약용의 애절양이다.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와 어린아이에게 물리는 황구첨정 등 군정의 문란으로 고통받는 백성의 처지를 그린 작품이다.
흥선 대원군은 이러한 군정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상민에게만 물리던 군포를 양반에게도 부과하는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군포를 개인이 아닌 가호 단위로 매겨 양반층의 면세 특권을 없앤 조치로,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알맞다.
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한 영정법은 인조 때,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준 직전법은 세조 때의 제도이며, 의창과 제위보는 고려의 빈민 구제 기구이므로 군정 문란의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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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운요호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
병인박해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톈진 조약이 체결되는 배경이 되었다.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는 피해를 입었다.
대화 장면에서 ‘이 사건’은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하면서 시작되었고, 조선군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으나 사진 속 ‘수(帥)자기’를 빼앗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1871년의 신미양요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통상을 요구하며 침입한 미군에 맞서 어재연이 이끄는 부대가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하였다. 어재연은 전사하고 부대 지휘를 상징하던 수자기가 약탈당했으나, 조선은 통상 요구를 끝내 거부하였고 이후 척화비가 세워졌다.
참고로 운요호 사건은 1875년 일본이 일으켜 강화도 조약으로 이어진 사건이고, 병인박해와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1866년 프랑스가 침입한 병인양요와 연결되며, 톈진 조약은 갑신정변의 결과 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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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이 전개된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조ㆍ일 통상 장정이 체결되었다.
러시아가 절영도 조차를 시도하였다.
일본이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였다.
시전 상인들이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였다.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제시된 문서는 고을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니 곡물 수출을 중지하겠다는 통고문으로, 음력 을유년 12월 21일을 기점으로 한 달이 지난 이후부터 쌀 수출을 금지하니 이를 일본 상민들에게 알려 달라고 일본 총영사에게 요청하고 있다. 곧 지방관이 선포한 방곡령이다.
‘한 달 전에 미리 통지한다’는 절차는 1883년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에 방곡령 시행 시 1개월 전 통고를 규정해 두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 조약으로 일본에 최혜국 대우가 인정되고 곡물 유출이 이어지면서 방곡령이 내려질 배경이 만들어졌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화폐 정리 사업은 1904~1905년, 시전 상인의 황국 중앙 총상회 조직과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시도는 1898년 무렵의 일로, 모두 방곡령보다 뒤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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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조약 체결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김옥균 등이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다.
조약문에는 조선이 5만 원을 지불해 피해를 입은 일본 관원의 유족과 부상자에게 지급하고, 일본 공사관에 일본군을 주둔시켜 경비하게 하며, 대관을 파견해 국서로 사과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배상금·공사관 경비병 주둔·사죄 사절 파견을 규정한 이 조약은 1882년의 제물포 조약이다.
제물포 조약은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의 결과로 체결되었다. 봉기 과정에서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하고 일본인 교관 등이 살해되자, 일본이 그 책임을 물어 조선을 압박한 것이다.
한편 우정총국 축하연을 이용한 정변(갑신정변)의 결과는 한성 조약과 톈진 조약이며, 영국의 거문도 점령, 아관 파천,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은 이 조약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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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이 작성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가)
(나)
(다)
(라)
(마)
글의 필자는 독일 부영사 부들러로, 청·러시아·일본 3국이 조약을 맺어 스위스의 예에 따라 조선을 영세 중립국으로 보장하자고 건의하고 있다. 이는 갑신정변 직후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심해지자 제기된 중립화론으로, 1885년에 나왔다.
연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 1884년 갑신정변 → 1894년 청·일 전쟁 → 1897년 대한 제국 수립 → 1904년 러·일 전쟁 → 1910년 국권 피탈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 따라서 이 건의가 나온 시점은 갑신정변과 청·일 전쟁 사이 구간에 해당한다.
같은 무렵 유길준도 조선 중립화론을 구상하였고,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 역시 이 구간에서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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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조서가 반포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박문국이 설치되었다.
육영 공원이 세워졌다.
조사 시찰단이 파견되었다.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한성 사범학교가 건립되었다.
제시된 조서는 정부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히면서, 신하와 백성에게 덕성·체력·지혜를 기르라고 당부하고, 왕실의 안전과 나라의 부강이 모두 교육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1895년 고종이 반포한 교육 입국 조서이다.
이 조서의 취지에 따라 곧이어 소학교령·한성 사범학교 관제 등이 마련되었고, 교원 양성을 위한 한성 사범학교가 세워졌다. 근대적 관립 학교 체계가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해 통리기무아문 설치(1880), 조사 시찰단 파견(1881), 박문국 설치(1883), 육영 공원 설립(1886)은 모두 조서 반포 이전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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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도쿄에서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재미 한인을 중심으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일본의 침략 과정을 서술한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이념으로 삼균주의를 주장하였다.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화면 속 인물은 1887~1958년을 살았고, 훈격은 대한민국장, 서훈 연도는 1989년으로 소개되어 있다. 공적 개요에는 1917년 대동단결선언 발표,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원 비서장, 1927년 한국 독립당 관내 촉성회 연합회 결성, 1930년 한국 독립당 결성, 1944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외무부장이 적혀 있다. 이 이력의 주인공은 조소앙이다.
조소앙은 광복 후 세울 나라의 이념으로 삼균주의를 제창하였다.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전제로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실현하자는 주장으로, 1941년 임시 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강령에 반영되었다.
도쿄에서 일왕 행렬에 폭탄을 던진 인물은 이봉창, 미주에서 흥사단을 조직한 인물은 안창호, 한국통사를 저술한 인물은 박은식,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한 인물은 여운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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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알렌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되었다.
신간회 창립 대회가 개최되었다.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은세계, 치악산 등의 신극이 공연되었다.
조사 보고서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을 정리한 것으로,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영 시기는 1908~1909년, 개장 초기에는 판소리를 공연하기도 했으며 191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극장은 원각사이다.
원각사에서는 이인직이 쓴 신소설을 각색한 은세계를 비롯해 치악산 등의 신극(신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판소리 공연에서 출발해 서양식 무대극으로 나아간 이 극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실이므로 빈칸에 들어갈 내용으로 알맞다.
알렌의 건의로 세워진 것은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고, 나운규의 아리랑 개봉은 1926년 단성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간회 창립 대회는 1927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고종의 황제 즉위식은 1897년 환구단에서 거행되었으므로 1908~1909년에 운영된 이 극장과는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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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조약이 체결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최익현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독립 협회가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민영환이 조약 체결에 항거하여 순국하였다.
13도 연합 의병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제시된 조약은 한국 정부가 시정 개선에 관해 통감의 지도를 받고, 법령 제정과 중요한 행정상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치며,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감이 내정 전반을 장악하고 일본인을 관리로 앉히는 이 내용은 1907년 체결된 한 · 일 신협약(정미 7조약)의 조항이다.
이 조약과 함께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 전쟁이 확대되었고, 1907년 말 결성된 13도 창의군이 이듬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조약 체결 이후의 사실로 옳다.
이만손 등의 영남 만인소는 1881년, 민영환의 순국은 1905년 을사늑약 때, 독립 협회의 만민 공동회는 1898년의 일이다. 최익현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킨 것도 1906년으로, 모두 1907년 이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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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민족 운동의 배경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제시문은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이 태화관에 모여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고 한용운의 식사에 이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같은 시각 탑골 공원에 모인 학생들의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고 전한다. 1919년의 3 · 1 운동이다.
보기 가운데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 자결주의(1918)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무렵 약소민족의 독립 요구를 자극하여 3 · 1 운동의 국제적 배경이 되었다. 또 도쿄 유학생들의 2 · 8 독립 선언(1919년 2월)은 국내 민족 대표들의 독립 선언 준비를 직접 자극한 도화선이었다. 따라서 이 둘이 배경으로 옳다.
반면 대한 제국의 황제였던 순종의 사망(1926)은 6 · 10 만세 운동의 배경이고, 사회주의 세력의 정우회 선언(1926)은 신간회 창립으로 이어진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3 · 1 운동보다 뒤의 일이므로 배경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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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활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국내 비밀 행정 조직으로 연통제를 두었다.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독립신문을 간행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대성 학교와 오산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전개하였다.
임시 사료 편찬 위원회를 두고 한ㆍ일 관계 사료집을 발간하였다.
화면은 프랑스 파리 샤토됭가 38번지에 있던 파리 위원부 구지를 소개하는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정보이다. 신한 청년단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이 (가)의 수립과 함께 외무총장 겸 주 파리 위원부 대표 위원으로 선임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다.
임시 정부는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제와 통신 기관인 교통국을 운영하였고, 독립신문을 간행해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또 독립 공채(애국 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고, 임시 사료 편찬 위원회를 두어 한 · 일 관계 사료집을 펴내 국제 사회에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러나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전개한 것은 1907년 국내에서 조직된 비밀 결사 신민회의 활동이다. 안창호가 평양에 대성 학교를, 이승훈이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설립한 것으로 임시 정부의 활동이 아니므로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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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지역에서 일어난 민족운동으로 옳은 것은? [1점]
독립군 양성을 위해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하였다.
권업회를 조직하고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였다.
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 교육을 위해 서전서숙, 명동 학교 등을 건립하였다.
신문 기사는 1920~1930년대 (가) 지역에 살던 고려인들의 생활을 다루면서, 그곳 고려인이 창간한 한글 신문 선봉, 신한촌 등 집단 거주지, 고려인 교사를 양성하던 고려 사범 대학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 연해주를 가리킨다.
연해주 한인 사회는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를 조직해 신문 발행과 교육 활동을 폈고, 1914년에는 이상설 · 이동휘를 중심으로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여 독립 전쟁을 준비하였다.
신흥 강습소 설립은 서간도 삼원보, 서전서숙과 명동 학교는 북간도, 대조선 국민 군단은 하와이, 대한인 국민회의 외교 활동은 미주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이므로 연해주와는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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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지역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탐라총관부가 설치된 목적을 살펴본다.
고산리 우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알아본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지역을 찾아본다.
김만덕의 빈민 구제 활동에 대한 기록을 조사한다.
4ㆍ3 사건으로 많은 주민이 희생된 지역을 파악한다.
답사 보고서는 삼별초의 마지막 근거지인 항파두리 항몽 유적이 있고, 일제가 주민을 강제 동원해 만든 알뜨르 비행장과 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가 남아 있는 고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설명까지 종합하면 이 지역은 제주도이다.
제주도는 고려 시대 원이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목마장으로 삼았던 곳이고,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의 유적인 고산리 유적이 자리하며, 조선 후기 거상 김만덕이 흉년에 재산을 풀어 빈민을 구제한 무대였다. 또 광복 후 4 · 3 사건으로 많은 주민이 희생된 지역이기도 하다.
반면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은 유배지였던 흑산도로, 제주도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제주도 답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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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시기’의 일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회사령을 제정하였다.
미곡 공출제를 시행하였다.
조선 태형령을 시행하였다.
미쓰야 협정을 체결하였다.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다.
제시문은 난징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을 소개하면서, 이 위안소가 일제가 중 · 일 전쟁을 일으키고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시기에 운영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중 · 일 전쟁은 1937년에 일어났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1930년대 후반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전시 동원기)이다.
일제는 이 시기에 국가 총동원법을 적용해 인력과 물자를 수탈하였고, 군량 확보를 위해 농민에게 할당량을 강제로 거두는 미곡 공출제를 시행하고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전시 체제의 대표적인 경제 수탈 정책이다.
이에 비해 회사령 제정, 조선 태형령 시행, 토지 조사 사업 실시는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정책이고, 미쓰야 협정 체결은 1925년 만주 지역 독립군을 탄압하기 위해 맺은 것으로 시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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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독립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가) - 자유시 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가) -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도, 미얀마 전선을 파견되었다.
(나) -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나) - 중국 관내(關內)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가), (나) - 미군과 연계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왼쪽 인물은 광복군 총영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국민부 산하 (가)의 총사령이 되었고 이후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한 · 중 연합군을 편성했다고 말한다. 이는 양세봉이 이끈 조선 혁명군이다. 오른쪽 인물은 만주에서 의열단을 결성하고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38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의 군사 조직인 (나)를 조직했다고 하였으므로, 김원봉이 창설한 조선 의용대이다.
조선 의용대는 1938년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로, 중국 국민당 군과 함께 정보 수집 · 포로 심문 · 선전 활동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다.
자유시 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은 1921년 러시아령으로 이동한 대한 독립 군단이고, 인도 · 미얀마 전선 파견과 미군(OSS)과 연계한 국내 진공 작전 계획은 모두 한국광복군의 활동이다.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부대는 지청천이 이끈 한국 독립군이므로 조선 의용대의 활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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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두 주장이 제기된 계기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이승만 정부가 반동 포로를 석방하였다.
김구, 김규식 등이 남북 협상에 참석하였다.
제헌 국회에서 반민족 행위 처벌법이 제정되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 사항이 보도되었다.
유엔이 한반도에서 인구 비례에 따른 총선거 실시를 결의하였다.
첫 번째 글은 외래의 탁치 세력을 배격한다며 이미 독립 국가와 정부가 존재했음을 선언하는 반탁 주장이고, 두 번째 글은 신탁 제도가 조선 독립을 달성하는 과도적 방도로서 진보적 역할을 하며 을사조약이나 위임 통치와는 전혀 다르다는 찬탁(총체적 지지) 주장이다.
이처럼 신탁 통치를 둘러싸고 좌 · 우가 정면으로 갈린 계기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 사항이 국내에 보도된 일이었다. 임시 민주 정부 수립과 미 · 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방안이 알려지면서 반탁 운동과 지지 운동이 격렬히 대립하였다.
유엔의 인구 비례 총선거 결의(1947)와 김구 · 김규식의 남북 협상(1948), 제헌 국회의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1948), 이승만 정부의 반공 포로 석방(1953)은 모두 이 논쟁 이후에 일어난 일이므로 계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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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정부’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프로 야구단이 정식으로 창단되었다.
양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농촌 근대화를 표방한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었다.
과외 전면 금지와 대학 졸업 정원제가 시행되었다.
외한 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제시문은 정부가 경범죄 처벌법을 개정해 성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장발과 미풍양속을 해치는 옷차림을 경범죄 유형으로 추가하고, 이를 근거로 젊은이들의 장발과 미니스커트 착용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고 전한다. 이는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의 일이다.
같은 시기인 1970년부터 정부는 농촌 근대화를 표방하며 근면 · 자조 · 협동을 구호로 내건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 마을 길 넓히기, 지붕 개량 등 농촌 환경 개선 사업을 벌였다.
프로 야구단 창단(1982)과 과외 전면 금지 · 대학 졸업 정원제(1980~1981)는 전두환 정부 시기, 금 모으기 운동(1998)은 외환 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 시기, 호주제 폐지(2005)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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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제시된 건물은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쓰이는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남영동)이며, 그 5층에서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가) 운동은 6월 민주 항쟁(1987)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이 폭로되고 전두환 정부가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시민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구호로 내걸고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따라서 보기 중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 등의 구호를 내세웠다는 설명이 이 운동에 해당합니다.
그 결과 정부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이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는 설명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로 옳습니다.
반면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시민이 희생된 것은 5·18 민주화 운동(1980)이며, 국민의 요구에 굴복하여 대통령이 하야한 것은 이승만이 물러난 4·19 혁명(1960)의 결과이므로 (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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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회를 개최한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2점]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개성 공단 건설 사업을 실현하였다.
7ㆍ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다.
화면 속 뉴스는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막을 전하고 있으며, 12년 만에 동·서 양 진영이 함께 모여 159개국 선수 8,000여 명이 참가한 대회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1988년에 열린 서울 올림픽으로, 당시는 노태우 정부 시기입니다.
노태우 정부는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북방 외교를 추진하여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와 수교하였고, 19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이 합의서에서 남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불가침에 합의하였습니다.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과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는 1972년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고,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은 2000년 김대중 정부, 개성 공단 건설의 실제 착공·가동은 그 이후 노무현 정부 시기의 성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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