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주로 동굴이나 막집에 거주하였다.
    2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3
    명도전을 이용하여 중국과 교역하였다.
    4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5
    의례 도구로 청동 거울과 방울 등을 제작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의 (가)는 부산 동삼동 유적의 빗살무늬 토기와 갈돌·갈판이 대표 유물인 신석기 시대다.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된 이 시대에는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해 실을 뽑고 옷을 지어 입는 원시적 수공업이 이루어졌다. 동굴이나 막집 거주는 구석기, 거푸집으로 세형 동검을 만든 것은 철기 시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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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읍군, 삼로 등의 군장이 있었다.
    2
    혼인 풍속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3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였다.
    4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 천군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5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라는 풍습이 있었다.
    해설

    『후한서』를 인용한 자료는 이 나라가 현도의 북쪽 천 리에 있고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며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고, 면적은 사방 이천 리이며 본래 예(濊)의 땅이라고 전합니다. 이 위치와 주변 관계는 만주 쑹화강 유역에 있던 부여를 가리킵니다.

    또한 장사 지낼 때 곽은 쓰되 관은 쓰지 않고 사람을 죽여 순장하는데 많을 때는 100명가량이며, 왕의 장례에는 한(漢)이 미리 현도군에 갖다 둔 옥갑을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부여의 순장 풍습과 중국과의 교섭을 보여 줍니다.

    부여는 매년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어 하늘에 제사하고 죄수를 풀어 주었습니다. 반면 읍군·삼로라는 군장과 책화는 동예, 민며느리제는 옥저, 소도와 천군은 삼한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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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은진 미륵이라 불리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 석불로, 지방 세력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따라서 (가) 국가는 고려이다. 정답 자료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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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정책을 실시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2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3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4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였다.
    5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해설

    『삼국사기』를 인용한 자료는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관리들의 공복(公服)을 제정하여 붉은 빛과 자주 빛으로 등급을 표시하였으며, 4월에 이찬 철부를 상대등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총괄하게 하였고 상대등 관직이 이때 처음 생겼다고 전합니다. 율령 반포·공복 제정·상대등 설치를 모두 시행한 왕은 신라 법흥왕입니다.

    법흥왕은 이 밖에도 병부를 설치하고 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금관가야를 병합하는 등 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불교를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 공인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은 지증왕,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신문왕, 거칠부의 국사 편찬은 진흥왕, 자장의 건의에 따른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은 선덕 여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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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2
    중앙군으로 2군 6진위를 설치하였다.
    3
    9주 5소경의 지방 행정 제도를 두었다.
    4
    귀족 합의제인 화백 회의를 운영하였다.
    5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해설

    뉴스 화면의 자막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토제 방울 출토이고, 기자는 경상북도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발굴 조사에서 그림이 새겨진 지름 5cm의 토제 방울 1점을 비롯해 곱은옥, 화살촉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으며 이번 발굴로 이진아시왕을 시조로 이 지역에서 발전한 (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이진아시왕 시조 전승은 대가야를 가리킵니다.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쇠퇴한 뒤 5세기 후반부터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다가 562년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하였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각 다른 나라의 것입니다. 중앙군 2군 6위는 고려, 9주 5소경은 통일 신라, 화백 회의는 신라, 왕족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은 백제의 지배층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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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낙랑군을 몰아냈어요.
    2
    국호를 남부여로 바꿨어요.
    3
    장문휴를 보내 등주를 공격했어요.
    4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정비했어요.
    5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확립했어요.
    해설

    교사는 인안(仁安)이라는 연호를 내세워 당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표방한 발해 제2대 왕에 대해 말해 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인안 연호를 사용한 발해 제2대 왕은 무왕입니다. 앞서 한 학생이 일본에 사신과 국서를 보내 교류를 시작했다고 답한 것도 무왕 때의 사실입니다.

    무왕은 당과 신라, 흑수말갈의 압박에 맞서 대외 팽창 정책을 폈으며, 732년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의 등주를 공격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는 장문휴를 보내 등주를 공격했다는 발표가 알맞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낙랑군을 몰아낸 것은 고구려 미천왕, 국호를 남부여로 바꾼 것은 백제 성왕이며, 3성 6부의 중앙 관제 정비는 발해 문왕,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 확립은 발해 선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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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글은 흑치상지가 좌우 10여 명과 함께 임존산(임존성)에 웅거해 열흘 만에 3만여 명을 모으고, 소정방이 보낸 당군을 물리친 뒤 본국의 2백여 성을 수복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백제 멸망 직후 전개된 백제 부흥 운동을 보여 준다.

    연표는 612년 살수 대첩 – 618년 당 건국 – 645년 안시성 전투 – 660년 황산벌 전투 – 676년 기벌포 전투 – 698년 발해 건국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는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의 결사대가 패한 뒤 사비성이 함락되며 멸망하였고, 흑치상지·복신·도침 등의 부흥 운동은 그 직후인 660~663년에 일어났다.

    따라서 이 상황은 황산벌 전투(660)와 기벌포 전투(676)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부흥 운동은 663년 백강 전투 패배와 주류성 함락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고, 이후 나당 전쟁이 이어져 676년 기벌포 전투로 신라가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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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진대법이 실시되는 배경이 되었다.
    2
    원성왕이 인재 등용 제도로 제정하였다.
    3
    후주 출신인 쌍기의 건의로 실시되었다.
    4
    권문세족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5
    집과 수레의 크기 등 일상생활까지 규제하였다.
    해설

    제시문은 신라 귀족 가문의 자손인 설계두가 “신라에서는 사람을 등용하는 데 (가)를 따지므로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더라도 그 한도를 넘을 수 없다”라며 중국으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가)에 들어갈 제도는 신라의 골품제이다.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신분을 나누어 관등 승진의 상한선을 정해 두었기 때문에, 6두품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제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설계두가 “한도를 넘을 수 없다”라고 한탄한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나아가 골품제는 관직뿐 아니라 집의 규모, 수레의 크기, 의복과 그릇의 재질 등 일상생활 전반까지 신분별로 제한하였다. 진대법은 고구려의 빈민 구제책, 독서삼품과는 원성왕이 마련한 인재 등용책, 과거제는 광종 때 쌍기의 건의로 시행된 제도, 전민변정도감 등은 권문세족 견제와 관련된 사안으로 골품제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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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글을 작성한 인물이 활동한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김흠돌이 반란을 도모하였다.
    2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렸다.
    3
    원광이 세속 5계를 제시하였다.
    4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5
    김춘추가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올랐다.
    해설

    제시된 글은 12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6년 만에 빈공과에 합격하고, 귀국하면서 그동안 지은 글을 모아 계원필경집 1부 20권과 시·부·표·장 등 28권을 왕에게 올린다는 내용이다. 계원필경집을 지어 바친 인물은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당에서 황소의 난 때 격문을 써 문명을 떨친 뒤 885년 신라로 돌아왔고,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은둔하였다. 따라서 그의 활동 시기는 신라 하대에 해당한다.

    이 시기인 889년(진성 여왕 3),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여 신라 하대 농민 봉기의 신호탄이 되었다. 김흠돌의 난은 신문왕, 원광의 세속 5계는 진평왕, 김춘추의 즉위는 7세기 중엽의 일이며, 최승로의 시무 28조는 고려 성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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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자료는 “신문왕 2년에 세워졌고 국보 제112호로 지정된 쌍탑 중 동탑”으로, 삼국 통일 이후 조성된 석탑 양식의 전형을 보여 주며 지붕돌과 몸돌이 각각 여러 개의 석재로 조립되었고, 이 탑이 있는 절은 문무왕의 유업을 이어받아 아들 신문왕이 완공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경주 감은사지 삼층 석탑이다.

    보기의 사진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것은 낮은 산과 벌판을 배경으로 넓은 이중 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올리고 꼭대기에 긴 쇠 찰주가 남아 있는 삼층 석탑이다. 감은사지 석탑은 통일 신라 초기 석탑 특유의 웅장한 규모와 견고한 비례를 보여 준다.

    나머지 사진은 목조 건축을 본떠 층층이 장식한 불국사 다보탑,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신라 선덕 여왕 대의 분황사 모전 석탑, 기와 건물 앞에 선 고려 시대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백제 무왕 대에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으로 자료의 설명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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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폐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2
    신돈을 등용하고 전민변정도감을 두었다.
    3
    민생 안정을 위해 흑창을 처음 설치하였다.
    4
    주전도감을 설치하여 해동통보를 발행하였다.
    5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해설

    대화 장면에서 기자가 “폐하께서 실시한 노비안검법에 대해 말씀해 달라”고 묻자, 왕이 “본래 노비가 아닌데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거나 빚 때문에 강제로 권세가의 노비가 된 자들을 양인으로 해방시킨 정책”이라고 답하고 있다. 노비안검법을 실시한 왕은 고려 광종이다.

    광종은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조세 수입과 역 부담자를 늘리기 위해 노비안검법을 시행했으며,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도입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는 등 왕권 강화 정책을 폈다.

    또한 광종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개경을 황도라 부르며 광덕, 준풍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12목 설치는 성종, 흑창 설치는 태조, 해동통보 발행은 숙종, 신돈 등용과 전민변정도감 설치는 공민왕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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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2
    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3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4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5
    신라의 금성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다.
    해설

    다큐멘터리 기획안은 (가)를 신라 왕족 출신으로 세력을 키워 나라를 세운 인물로 소개하며, 회차별 내용으로 양길의 휘하에서 세력을 키우다, 송악을 도읍으로 나라를 세우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다를 제시하고 있다. 이 인물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이다.

    궁예는 901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한 뒤 904년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로 바꾸고 이듬해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911년에는 국호를 다시 태봉으로 고쳤다. 이때 그는 광평성을 중심으로 병부·대룡부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여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내고 신라 금성을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한 것은 견훤,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것은 장보고,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군대를 격퇴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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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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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감찬이 귀주에서 외적을 격퇴하였다.
    2
    강조가 장변을 일으켜 왕을 폐위하였다.
    3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 수용을 주장하였다.
    4
    서희가 외교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5
    부여성에서 비사성에 이르는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해설

    제시된 고려사의 기록은 여진이 소굴을 잃고 보복하려 하며 땅을 돌려 달라고 해마다 다투었고, 9성 사이의 거리가 멀고 길이 험해 왕래하는 사람들이 자주 노략질을 당하자, 왕이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철수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개척한 동북 9성을 1109년(예종 4)에 반환한 사건이다.

    이후 여진은 세력을 키워 1115년 금을 세우고 요를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다. 1126년(인종 4)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이자겸이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금의 사대 요구를 수용하자고 주장하여 이를 받아들였다.

    나머지는 모두 동북 9성 반환보다 앞선 일이다.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것은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때, 강조의 정변은 1009년, 강감찬의 귀주 대첩은 1019년이며, 부여성에서 비사성에 이르는 천리장성은 7세기 고구려가 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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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정책’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2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3
    수도에 4부 학당을 두었다.
    4
    전문 강좌인 7재를 개설하였다.
    5
    경당을 설립하여 학문을 가르쳤다.
    해설

    대화에서 한 인물이 “최충의 9재 학당을 비롯한 사학 12도로 학생들이 모여들어 관학이 위축되었다”라고 하자, 다른 인물이 “과거 준비에 유리해 정부가 관학 진흥을 위한 정책을 마련한다더라”라고 답하고 있다. 이는 고려 중기의 관학 진흥책에 관한 대화이다.

    고려 정부는 사학의 융성으로 국자감이 위축되자 숙종 때 서적포를 두어 서적을 간행하고, 예종 때 국자감에 전문 강좌인 7재를 개설하였으며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하였다. 인종 때는 경사 6학을 정비하여 관학 진흥을 이어갔다.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 4부 학당은 조선 시대 서울에 둔 관학, 초계문신제는 조선 정조, 경당은 고구려 지방의 교육 기관으로 모두 고려 중기의 관학 진흥책과는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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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2
    경시서가 수도의 시전을 감독하였다.
    3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다.
    4
    모내기법 등을 소개한 농가집성이 편찬되었다.
    5
    국경 지대에서 개시 무역과 후시 무역이 이루어졌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11월에 팔관회가 열려 왕이 신봉루에 나가 관료들에게 잔치를 베풀었고, 송의 상인과 탐라국이 특산물을 바쳐 자리를 내주고 음악을 관람하게 한 것이 이후 상례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팔관회와 신봉루, 송 상인의 참여로 보아 고려 시대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고려는 개경에 시전을 두어 관청과 귀족의 수요를 충당하게 하였고, 경시서를 설치해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고 물가를 조절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를 둔 것은 고구려, 감자·고구마 등 구황 작물 재배와 개시·후시 무역, 신속의 농가집성 편찬은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이므로 이 시기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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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무애가를 지어 불교 대중화에 힘썼어.
    2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했어.
    3
    불교 교단 통합을 위해 해동 천태종을 개창했어.
    4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겼어.
    5
    돈오점수를 주장하며 수행 방법으로 정혜쌍수를 내세웠어.
    해설

    대화에서 학생들은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를 받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여 불교계를 개혁하려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인물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승려 지눌이다.

    지눌은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수선사 결사를 일으켜 승려 본연의 자세인 독경과 참선, 노동에 힘쓸 것을 주장하며 타락한 불교계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수행 방법으로는 단번에 깨친 뒤에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내세우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를 강조하여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려 하였다. 무애가를 지은 이는 원효,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은 이는 의상, 해동 천태종을 개창한 이는 의천,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이는 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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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2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
    3
    만적이 개경에서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다.
    4
    변발과 호복이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5
    망이ㆍ망소이가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공주의 겁령구(시종인) 등에게 성과 이름을 하사하여 홀랄대는 인후로, 삼가는 장순룡으로, 차홀대는 차신으로 삼고 관직은 모두 장군으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첨의부가 "제국 대장 공주의 겁령구와 관료들이 좋은 땅을 많이 차지하여 산천으로 경계를 정하고 사패(賜牌)를 받아 조세를 납입하지 않으니 사패를 도로 거두소서"라고 아뢰었다는 대목이 이어진다.

    제국 대장 공주는 원 세조의 딸로 충렬왕과 혼인하였고, 겁령구는 그를 따라온 원의 시종인이다. 이들이 성과 이름을 받아 고려의 관직에 오르고 사패를 근거로 대규모 농장을 넓히며 권세가로 부상한 시기이므로, 자료는 원 간섭기의 고려를 보여 준다.

    이 시기에는 원과의 인적ㆍ물적 교류가 잦아지면서 몽골풍이 들어와 변발과 호복이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고, 반대로 원에는 고려양이 퍼졌다.

    한편 웅천주 도독 김헌창의 반란은 신라 하대, 만적의 신분 해방 도모와 망이ㆍ망소이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의 일이며, 서얼의 통청 운동은 조선 후기에 전개되어 모두 시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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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2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3
    사초,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4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5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다.
    해설

    대화에서 이 책은 승려 일연이 편찬하였고, 왕력편ㆍ기이편ㆍ흥법편 등 5권 9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교 중심의 역사적 사실과 함께 민간 설화 등이 수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고려 충렬왕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 해당한다.

    삼국유사는 기이편 첫머리에 고조선 항목을 두어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를 실었다. 우리 역사의 출발을 단군에서 찾은 현존 최고(最古)의 기록으로, 원 간섭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자주 의식을 드러낸 서술로 평가된다.

    반면 기전체 형식으로 쓰인 현존 최고의 역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이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책은 유득공의 발해고이며,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편찬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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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정치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수도의 치안과 행정을 주관하였다.
    2
    고려의 삼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3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건의로 혁파되었다.
    4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최고 기구로 성장하였다.
    5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해설

    자료는 "정치를 논하여 바르게 이끌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을 풀어주고, 외람되고 거짓된 것을 금하는" 일을 관장하며 집의 1명, 장령 2명, 지평 2명, 감찰 24명을 둔다고 하였다. 관원 구성과 직무가 조선의 사헌부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헌부는 사간원과 함께 양사(대간)를 이루어 간쟁과 봉박을 행하였고,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하여 인사의 적격 여부를 심사하였다.

    수도의 치안과 행정을 맡은 곳은 한성부, 고려 삼사처럼 회계를 담당한 곳은 조선의 호조 계통이며, 조광조 등 사림의 건의로 혁파된 것은 소격서,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정 최고 기구로 성장한 것은 비변사여서 이 기구와는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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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되었다.
    2
    전통 한의학을 정리한 동의보감이 간행되었다.
    3
    최초로 100리 척을 사용한 동국지도가 제작되었다.
    4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소개한 농사직설이 간행되었다.
    5
    각 도의 지리, 풍속 등이 수록된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다.
    해설

    화면 속 서사시는 "해동의 여섯 용이 나시어서"로 시작하는 제1장과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므로"로 이어지는 제2장을 담고 있다. 설명에 조선의 건국 시조들을 찬양하여 왕조의 창업을 합리화한 작품이며 정인지ㆍ권제 등에게 명하여 훈민정음으로 편찬하게 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책은 용비어천가, 밑줄 그은 이 왕은 세종이다.

    세종 대에는 각 지방 농민의 실제 경험을 수집하여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소개한 농사직설이 간행되었다. 중국 농서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우리 실정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점에 의의가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 동의보감은 광해군 때 간행되었고, 100리 척을 처음 사용한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영조 대, 동국여지승람은 성종 대의 성과여서 이 왕의 재위 기간과는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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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2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3
    관등에 따라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차등 지급하였다.
    4
    개국 공신에게 인품, 공로를 기준으로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5
    수신전, 휼양전 등의 명목으로 세습되는 토지를 폐지하였다.
    해설

    (가)는 도평의사사가 건의하여 왕이 따랐다는 내용으로, "경기는 사방의 근원이니 마땅히 과전을 설치하여 사대부를 우대하고, 경성에 살며 왕실을 보위하는 자는 현직 여부에 상관없이 직위에 따라 과전을 받게 하라"고 하였다. 고려 말 공양왕 때 시행된 과전법이다.

    (나)는 한명회 등이 "직전(職田)의 세는 관에서 거두어 관에서 주면 이런 폐단이 없을 것"이라 아뢰자 대왕대비가 소재지의 지방관이 감독하여 거두게 하라고 한 장면으로, 성종 초 직전의 수조권 행사를 국가가 대행한 관수관급제의 시행을 보여 준다.

    두 자료 사이에는 세조 때의 직전법 시행이 있다. 과전 지급 대상을 현직 관리로 한정하면서 수신전ㆍ휼양전 등의 명목으로 세습되던 토지를 폐지하여 부족해진 토지를 확보하려 한 조치였다.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것은 통일 신라 성덕왕 때, 관등에 따라 전지와 시지를 차등 지급한 전시과와 공신에게 인품ㆍ공로를 기준으로 준 역분전은 모두 고려 시대의 일이며, 양전 후 지계를 발급한 것은 대한 제국 시기여서 두 시점 사이에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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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경기도에 한하여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2
    학문 연구 기관으로 집현전을 설치하였다.
    3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다.
    4
    문하부 낭사를 분리하여 사간원으로 독립시켰다.
    5
    현량과를 실시하여 신진 사림을 등용하고자 하였다.
    해설

    전시된 책에 대한 설명은 신숙주ㆍ정척 등이 국가와 왕실의 각종 행사를 유교 예법에 맞게 정리하여 완성한 국조오례의라고 밝히고 있다. 제사 의식인 길례, 관례와 혼례 등의 가례, 사신 접대 의례인 빈례, 군사 의식인 군례, 상례 의식인 흉례의 다섯 가지 규정을 담은 국가 기본 예식서이다.

    세종 대에 착수되어 오래 미완으로 남아 있던 이 예서는 성종 때 완성되었으므로 (가) 왕은 성종이다.

    성종은 세조 때부터 편찬해 온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함으로써 조선의 통치 체제를 법제적으로 확립하였다.

    경기도에 한하여 대동법을 처음 실시한 것은 광해군, 집현전 설치는 세종, 문하부 낭사를 분리해 사간원으로 독립시킨 것은 태종, 현량과 실시는 중종 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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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하였다.
    2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기축봉사를 올렸다.
    3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한 성학십도를 지었다.
    4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한 동호문답을 저술하였다.
    5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한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였다.
    해설

    검색 결과에 나타난 인물은 생몰 1501년~1570년, 호는 퇴계(退溪)ㆍ퇴도(退陶)이며, 단양 군수ㆍ풍기 군수ㆍ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고 백운동 서원의 사액을 조정에 건의하였으며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쟁을 전개하고 예안 향약을 시행하였다고 소개된다. 이는 이황이다.

    이황은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에서 군주가 갖추어야 할 도를 열 개의 도식과 해설로 정리하여, 성학의 요체를 그림으로 압축해 보여 주었다. 그의 학문은 이후 영남 학파로 이어졌고 일본 성리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강화 학파를 형성한 이는 정제두, 기축봉사를 올린 이는 송시열, 동호문답을 저술한 이는 이이, 조선경국전을 편찬한 이는 정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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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다.
    2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 주축을 이루었다.
    3
    국경 지역인 북계와 동계에 배치되었다.
    4
    이종무가 지위 아래 대마도 정벌에 참여하였다.
    5
    국왕의 친위 부대로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두었다.
    해설

    군사 모집 공고에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군에 맞서 싸울 용감한 군사를 모집합니다"라고 적혀 있고, 지원 분야가 포수ㆍ사수ㆍ살수로 제시되어 있다. 대화에서도 이 부대가 왜군의 조총 부대에 맞서 조직되었고 삼수병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임진왜란 중 설치된 훈련도감이다.

    훈련도감의 삼수병은 직업 군인의 성격을 띠어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 주축을 이루었고,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수미세를 거두었다. 이는 병농일치의 기존 군역 체제와 구별되는 점이다.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은 삼별초와 도방, 북계와 동계에 배치된 것은 고려의 주진군이며, 대마도 정벌에 나선 것은 조선 초의 수군,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둔 것은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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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삼별초의 이동 경로를 찾아본다.
    2
    통신사의 활동 내용을 살펴본다.
    3
    위화도 회군의 결과를 알아본다.
    4
    계해약조의 체결 과정을 조사한다.
    5
    삼전도비의 건립 배경을 파악한다.
    해설

    자료는 연려실기술에 실린 최명길의 발언이다. 그는 "종묘사직의 존망이 호흡하는 사이에 달려 있어" 혼자 말을 타고 달려가 적장을 만나 시간을 벌겠다며, "오랑캐가 만일 신을 죽인다면 신은 말발굽 아래에서 죽을 것"이라 하고, "한성 가까운 곳에 방어할 만한 땅은 남한산성만 한 데가 없으니 전하께서는 도성의 수구문을 통해 나가신 후 서둘러 산성으로 옮기시라"고 청하였다.

    청군이 빠르게 남하하여 인조가 강화도로 피란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상황이므로, 이는 병자호란의 발발 직후 장면이다.

    남한산성에서 항전한 끝에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고, 청은 이를 기념하여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게 하였다. 따라서 이 자료로는 삼전도비의 건립 배경을 파악하는 탐구가 가장 적절하다.

    삼별초의 이동 경로는 고려 대몽 항쟁,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 계해약조와 통신사는 일본과의 교린 관계에 관한 주제여서 이 자료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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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사림과 훈구의 갈등이 원인이 되었다.
    2
    서인과 남인 사이에 발생한 전례 문제이다.
    3
    북인이 정국을 주도하던 시기에 전개되었다.
    4
    외척 세력인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났다.
    5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설

    대화에서 (가)는 현종 때 일어난 사건이며, 효종 사후 인조의 계비인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현종 즉위 초의 기해예송으로, 갑인예송과 함께 예송이라 불린다.

    당시 서인은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기년복(1년)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왕위를 계승한 이상 장자로 대우해야 한다며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왕실 예법의 적용 문제이자 왕권의 위상을 둘러싼 서인과 남인 사이의 전례 문제였던 것이다.

    사림과 훈구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은 사화이고,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난 것은 을사사화이며, 북인이 정국을 주도한 시기는 광해군 대,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 것은 선조 대의 일이어서 이 논쟁과는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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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속대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2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재개하였다.
    3
    동국문헌비고를 간행하여 역대 문물을 정리하였다.
    4
    균역법을 실시하여 군역의 부담을 줄이고자 하였다.
    5
    탕평비를 건립하여 붕당의 폐혜를 경계하고자 하였다.
    해설

    그림은 수문상친림관역도를 보여 주며, 설명에는 한성의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청계천 준설 공사를 왕이 직접 나가 살피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문고를 다시 설치하여 백성의 억울함을 듣고자 하였다는 내용이 함께 제시되어 있으므로, 밑줄 그은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속대전을 편찬해 경국대전 이후 흩어져 있던 법령을 정비하였고, 동국문헌비고를 간행해 역대 문물과 제도를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또 균역법을 실시해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였고,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였습니다.

    반면 기유약조는 임진왜란으로 끊겼던 일본과의 국교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광해군 때인 1609년에 체결되어 부산포를 통한 제한적 무역이 재개된 조약입니다. 영조의 업적과는 시기가 100여 년이나 어긋나므로, 이것이 옳지 않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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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글을 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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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반전에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풍자하였다.
    2
    북학의에서 절약보다 적절한 소비를 강조하였다.
    3
    곽우록에서 토지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을 제시하였다.
    4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5
    색경에서 담배, 수박 등의 상품 작물 재배법을 소개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열하일기』에서 인용한 것으로, 평안도 사람들은 감과 귤을 분간하지 못하고 바닷가 사람들은 멸치를 거름으로 쓸 만큼 흔한데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푼씩 할 만큼 귀해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물자가 고루 유통되지 못하는 까닭이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청에 다녀온 뒤 이 기행문을 남긴 인물은 박지원입니다.

    박지원은 한문 소설 『양반전』을 지어 실속 없이 체면만 차리는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신랄하게 풍자하였습니다. 이 밖에 「허생전」, 「호질」 등에서도 당시 양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저술들은 각각 다른 인물의 것입니다. 『북학의』에서 절약보다 소비를 강조한 인물은 박제가, 『곽우록』에서 한전론을 제시한 인물은 이익,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한 인물은 유수원, 『색경』에서 상품 작물 재배법을 소개한 인물은 박세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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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양선의 출몰을 보고하는 수군
    2
    군정의 문란으로 고통 받는 농민
    3
    삼정이정청 설치를 건의하는 관리
    4
    조선통보를 주조하는 관청 소속 장인
    5
    왕조의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을 읽고 있는 양반
    해설

    제시된 자료는 강화도 용흥궁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곳임을 설명하면서,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안동 김씨인 순원 왕후의 영향력으로 즉위하였고 수렴청정을 받으며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소수의 외척 가문이 비변사의 요직을 독점하여 왕권이 약화된 시기라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세도 정치기입니다.

    세도 정치기에는 삼정의 문란이 극심하여 군정의 폐단으로 농민들이 고통받았고,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나자 수습책으로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습니다. 또 이양선이 연안에 자주 출몰해 수군이 이를 보고하였으며,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이 널리 퍼져 읽혔습니다.

    그러나 조선통보는 조선 전기 세종 때 주조되어 유통을 시도한 화폐로, 세도 정치기와는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 이 시기에 널리 쓰인 화폐는 숙종 이후 전국적으로 유통된 상평통보였으므로, 조선통보를 주조하는 장인의 모습은 이 시기에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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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특별전에 전시될 그림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포스터는 풍속화, 산수화, 기록화, 초상화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단원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는 특별전으로, 함께 걸린 대표작으로 「옥순봉도」「자화상」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단원은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호이므로, 전시될 작품은 김홍도의 그림이어야 합니다.

    보기 가운데 들일을 하다가 둘러앉아 밥을 먹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백하고 간결한 필선으로 담아낸 풍속화가 김홍도의 작품입니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배경을 거의 생략한 채 서민의 생활 장면과 인물의 동작ㆍ표정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머지 그림들은 다른 화가의 작품입니다. 마루 앞에서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은 김득신의 「파적도」, 풀과 벌레를 정갈하게 그린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작품, 짙은 먹으로 바위산을 웅장하게 표현하고 아래에 안개를 깔아 놓은 산수화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메마른 붓질로 소나무와 집 한 채를 그린 그림은 김정희의 「세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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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인물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나선 정벌을 위해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2
    청과의 경계를 정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3
    신유박해로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처형하였다.
    4
    대전통편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5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해설

    제시된 『매천야록』의 기록은 나라 안의 서원과 사묘를 모두 철폐하고 남긴 것은 48개소에 불과하였다고 전하며, 명의 신종을 제사하던 만동묘를 철폐하고 그 황묘위판을 창덕궁 금원의 대보단으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서원 철폐령을 단행한 (가) 인물은 흥선 대원군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세도 정치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비변사를 축소ㆍ폐지하고 경복궁을 중건하였으며,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는 개혁에도 힘썼습니다. 특히 고리대로 변질된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마을 단위에서 곡식을 저장하고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사창제를 실시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정책들은 모두 다른 왕대의 일입니다. 조총 부대를 보낸 나선 정벌은 효종,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신유박해는 순조, 『대전통편』 편찬은 정조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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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제1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2
    안창호가 민족 교육을 위해 대성 학교를 설립하였다.
    3
    고무 공장 노동자 강주룡이 노동 쟁의를 전개하였다.
    4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관민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5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결성되었다.
    해설

    답사 계획서의 경로를 보면 1일차에 대동문 → 보통문 → 을밀대 → 부벽루, 2일차에 안학궁 터 → 대성산성을 돌아보게 되어 있고, 지도에도 대동강을 끼고 이 유적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뒤의 왕궁 터인 안학궁과 대성산성이 함께 있는 곳이므로 (가) 지역은 평양입니다.

    평양에서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관민들에 의해 불태워졌고, 안창호가 민족 교육을 위해 대성 학교를 세웠습니다. 또 1920년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결성되었으며, 1931년에는 평원 고무 공장 노동자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노동 쟁의가 일어났습니다.

    반면 제1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 3월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습니다. 평양에서 있었던 사실이 아니므로 이것이 옳지 않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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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른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방곡령을 선포할 수 있는 조항을 명시하였다.
    2
    메가타가 재정 고문으로 부임하는 근거가 되었다.
    3
    외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처음으로 규정하였다.
    4
    부산 외 2곳에 개항장이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5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여 부당성을 알리고자 하였다.
    해설

    대화에서 우리 측 대표는 신헌, 일본 측 대표는 구로다이며, 작년에 일어난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요구해 체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조약은 1876년의 강화도 조약(조ㆍ일 수호 조규)입니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을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개항 조항에 따라 이미 열려 있던 부산 외에 원산과 인천이 차례로 개항되어, 부산 외 2곳에 개항장이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조약의 내용입니다. 방곡령 선포 조항은 1883년 조ㆍ일 통상 장정에, 최혜국 대우를 처음 규정한 것은 1882년 조ㆍ미 수호 통상 조약에 해당하며, 메가타가 재정 고문으로 부임한 근거는 1904년 제1차 한ㆍ일 협약,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부당성을 알리려 한 것은 1905년 을사늑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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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라)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나)-(다)-(라)
    2
    (가)-(나)-(라)-(다)
    3
    (나)-(가)-(다)-(라)
    4
    (나)-(가)-(라)-(다)
    5
    (다)-(나)-(가)-(라)
    해설

    각 자료의 핵심 단서를 찾으면 시기를 가릴 수 있습니다. (가)는 새로 설치하는 아문의 호칭을 통리기무아문으로 한다는 절목이므로 개화 정책을 총괄할 기구가 만들어진 1880년, (나)는 대원군이 군국사무를 처리하며 5군영 복구를 명하고 난병들을 물러가게 한 내용이므로 임오군란(1882)입니다.

    (다)는 민영익우정국 낙성연에서 칼에 맞아 쓰러지고 왕이 경우궁으로 옮겨 갔다는 내용이므로 갑신정변(1884)이고, (라)는 김윤식이 영국 총영사 아스톤에게 거문도 점거 군대의 철수를 요청한 것이므로 거문도 사건(1885~1887)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통리기무아문 설치 → 임오군란 → 갑신정변 → 거문도 사건, 곧 (가)-(나)-(다)-(라)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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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나) 사절단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귀국할 때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2
    (가)-무기 제조 공장인 기기창 설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3
    (나)-보고 들은 내용을 해동제국기로 남겼다.
    4
    (나)-해국도지, 영환지략을 들여와 국내에 소개하였다.
    5
    (가), (나)-암행어사 형태로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해설

    (가)의 인물은 학생과 기술자를 인솔하여 청에 가서 전기ㆍ화학 등 선진 과학 기술을 배우게 하고 조ㆍ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관한 일을 이홍장과 협의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영선사(1881)입니다. (나)는 미국 공사의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되어 홍영식ㆍ서광범 등과 함께 아서 대통령에게 국서와 신임장을 제출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보빙사(1883)입니다.

    영선사로 청 톈진의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과 근대 기술을 배운 유학생들은 재정 부족 등으로 1년 만에 돌아왔지만, 그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국내에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인 기기창이 설립되었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사절ㆍ인물과 관련됩니다. 귀국할 때 『조선책략』을 가져온 것은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 『해국도지』『영환지략』을 들여와 국내에 소개한 것은 청을 오가던 역관 오경석 등이며, 『해동제국기』는 조선 전기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의 기록입니다. 또 암행어사 형태로 비밀리에 파견된 것은 1881년 일본에 보낸 조사 시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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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정부와 농민군 사이에 전주 화약이 체결되었다.
    2
    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삼례 집회가 개최되었다.
    3
    농민군이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하였다.
    4
    사태 수습을 위해 이용태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5
    전봉준이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하였다.
    해설

    흐름도는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를 백산 봉기 → 황룡촌 전투 승리 → (가) → 남ㆍ북접 논산 집결 → 우금치 전투 패배 순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는 황룡촌 전투 승리 이후부터 남ㆍ북접이 논산에 집결하기 이전 사이에 있었던 사실이어야 합니다.

    황룡촌 전투에서 이긴 농민군은 곧바로 전주성을 점령하였고, 청ㆍ일 양국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자 정부와 농민군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전주 화약을 맺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해 개혁을 추진하다가, 일본의 내정 간섭에 맞서 다시 봉기하여 논산에 집결하였습니다.

    나머지 사건들은 모두 (가) 이전의 일입니다. 교조 신원을 요구한 삼례 집회는 1892년, 고부 관아 습격은 1894년 초, 사태 수습을 위한 이용태의 안핵사 파견은 그 직후이며, 황토현 전투는 백산 봉기 뒤 황룡촌 전투보다 앞서 벌어진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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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의병’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단발령의 시행에 반발하여 봉기하였다.
    2
    민종식이 이끈 부대가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3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4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서울 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5
    조선총독부에 국권반환 요구서를 제출하고자 하였다.
    해설

    그림은 충청북도 제천의 자양영당을 답사하는 장면으로, 이곳에 의암 유인석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유인석이 국모의 원수를 갚고 전통을 보전한다는 복수보형(復讐保形)을 기치로 8도의 유림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려는 비밀 회의를 열었다고 설명한다.

    국모의 원수를 갚자는 명분과 유인석·제천이라는 단서는 을미의병을 가리킨다. 을미의병은 1895년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과 뒤이은 단발령 시행에 반발하여 위정척사 계열 유생들이 주도해 일어났으므로, 단발령의 시행에 반발하여 봉기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른 의병들이다. 민종식의 홍주성 점령은 을사늑약에 반발한 을사의병, 국제법상 교전 단체 승인 요구와 서울 진공 작전은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의 정미의병(13도 창의군)에 해당한다.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한 것은 1912년 임병찬의 독립 의군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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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2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에 반대하였다.
    3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4
    계몽 서적 출판을 위해 태극 서관을 설립하였다.
    5
    일본에게 진 빚을 갚자는 국채 보상 운동을 주도하였다.
    해설

    제시된 『대한계년사』 기록은 1898년 11월 4일 밤 조병식 등이 광화문 밖과 큰길가에 익명서를 붙여, (가)가 11월 5일 대회를 열고 박정양을 대통령, 윤치호를 부통령, 이상재를 내부대신으로 임명해 나라의 체제를 공화정치로 바꾸려 한다고 모함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보수 세력이 꾸며낸 이른바 익명서 사건으로, 이를 빌미로 고종이 간부들을 체포하고 해산을 명한 단체는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1898년 종로에서 만민 공동회를 열어 열강의 이권 침탈에 맞섰고, 특히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고 한러 은행을 폐쇄시켰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보안회,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태극 서관 설립은 신민회, 국채 보상 운동 주도는 국채 보상 기성회의 활동이므로 (가)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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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총사령 양세봉의 지휘아래 활동하였다.
    2
    미국과 연계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3
    쌍성보 전투에서 한ㆍ중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다.
    4
    간도 참변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5
    중국 관내(關內)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해설

    신문 기사는 3·1 운동 100주년 기념 우표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박차정을 다루고 있다. 그는 근우회에서 활동하다 중국으로 망명했고, 1938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의 군사 조직으로 우한(한커우)에서 창설된 (가)의 부녀 복무 단장으로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 35세에 순국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1938년 우한에서 김원봉이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군사 조직으로 창설한 부대는 조선 의용대로,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이후 일부는 화북으로 이동해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뒷날 조선 의용군)가 되었고, 김원봉과 남은 병력은 1942년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총사령 양세봉이 지휘한 부대는 조선 혁명군, 미국(OSS)과 연계해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한 부대는 한국광복군, 쌍성보 전투에서 한중 연합 작전을 편 부대는 한국 독립군, 간도 참변 이후 자유시로 이동한 조직은 대한 독립 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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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공고가 발표된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2
    삼균주의에 바탕을 둔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3
    무장 투쟁을 위해 육군 주만 참의부를 조직하였다.
    4
    국민 대표 회의를 열어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5
    임시 사료 편찬회를 두어 한ㆍ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해설

    제시된 임시 정부 포유문제32회 임시 의정원 회의에 임시 약헌 개정안을 제출해 조직 기구를 바꾸었고, 국무 위원끼리 주석을 호선하던 제도를 폐지하여 주석이 총리격이자 정부를 대표하고 국군을 총감하는 국가 원수격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충칭 정착 직후인 1940년에 단행된 주석 중심제 개헌(제4차 개헌)으로, 김구가 주석에 취임하였다. 따라서 이후의 활동을 골라야 하며, 임시 정부는 1941년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해 광복 후 국가 건설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이전의 일이다. 파리 강화 회의 독립 청원서 제출(1919), 임시 사료 편찬회의 한·일 관계 사료집 간행(1919), 육군 주만 참의부 조직(1923~1924), 국민 대표 회의 개최(1923)는 모두 1940년 개헌 이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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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기탁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2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3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4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하여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5
    독립 투쟁 과정을 정리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였다.
    해설

    화면 속 기자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옛 고려 극장 건물 앞에서, 이곳은 (가)가 근무하던 곳이며 그는 대한 독립군 총사령관이었으나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옮겨졌고 최근 유해 봉환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전한다.

    이 인물은 홍범도이다. 그는 1920년 대한 독립군을 이끌고 최진동의 군무 도독부군, 안무의 국민회군 등과 연합하여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고, 이어 청산리 대첩에도 참여하였다.

    신민회 조직은 안창호·양기탁 등, 조선 건국 동맹 결성은 여운형, 신흥 강습소 설립은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등,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은 박은식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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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는 배경이 있었다.
    2
    신간회가 조사단을 파견하여 지원하였다.
    3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
    국내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이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5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를 구호로 내세웠다.
    해설

    사진 속 기념비는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전개된 운동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비문에는 중앙 고등 보통 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일제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시내 곳곳에서 만세 시위를 벌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된다.

    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이 주도한 이 운동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이다. 준비 과정에서 사회주의 계열과 천도교 등 민족주의 계열, 학생 단체가 함께 움직인 경험은 이념을 넘어선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이는 민족 유일당 운동이 국내에서 전개되어 이듬해 신간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쓰야 협정 체결의 배경이 된 것은 만주 지역 독립군 활동이고, 신간회의 조사단 파견 지원과 관련된 것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다.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으로 확산된 것은 국채 보상 운동,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를 내건 것은 동아일보의 문자 보급 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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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 조직되었다.
    2
    고종의 밀지를 받아 결성된 비밀 단체였다.
    3
    만민 공동회를 열어 민권 신장을 추구하였다.
    4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5
    단원 일부가 황푸 군관 학교에 입학해 군사 훈련을 받았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김창숙이 상하이에서 (가)의 간부인 김원봉, 유우근, 한봉근 등을 만나 의논했으며, (가)의 단원인 나석주를 조선에 잠입시켜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 등에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난사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김원봉이 이끌고 나석주가 단원으로 활동한 이 단체는 의열단이다. 의열단은 1919년 만주 지린에서 결성되어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고, 개인 의열 투쟁의 한계를 느낀 뒤 김원봉을 비롯한 단원 일부가 중국 국민당의 황푸 군관 학교에 입학해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조직된 단체로는 조선 의용군 등이 있고, 고종의 밀지로 결성된 비밀 단체는 독립 의군부, 만민 공동회 개최는 독립 협회, 105인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단체는 신민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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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던 당시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카프(KAPF)에서 활동하는 신경향파 작가
    2
    원각사에서 은세계 공연을 관람하는 학생
    3
    육영 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교사
    4
    전차 개통식에 참여하는 한성 전기 회사 직원
    5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우승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
    해설

    화면은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제작하고 단성사에서 개봉한 영화의 장면과 제작진 사진을 보여 주며, 식민 지배를 받던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1926년에 개봉한 「아리랑」이다.

    따라서 1926년 무렵에 볼 수 있는 모습을 골라야 한다. 1925년 결성된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신경향파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이 시기의 모습으로 적절하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원각사의 「은세계」 공연은 1908년, 육영 공원의 미국인 교사 초빙은 1886년, 한성 전기 회사의 전차 개통식은 1899년으로 모두 영화 개봉보다 앞선다.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은 1936년으로 개봉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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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밑줄 그은 ‘이 시기’에 시행된 일제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한국인에 한하여 적용하는 조선 태형령을 시행하였다.
    2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회사령을 공포하였다.
    3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통해 독립운동을 탄압하였다.
    4
    식민지 교육 방침을 규정한 제1차 조선 교육령을 제정하였다.
    5
    근대적 토지 소유권 확립을 명분으로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다.
    해설

    전시된 유물은 국민 노무 수첩으로, 일제가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시기에 노동력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발행한 것이며,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이 광산 등으로 끌려가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라고 설명된다.

    따라서 '이 시기'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이 시기 일제는 1941년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제정해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하여 항일 운동을 탄압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정책이다. 조선 태형령(1912), 회사령(1910), 제1차 조선 교육령(1911), 토지 조사 사업(1912~1918)은 중·일 전쟁 이전에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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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좌우 합작 7원칙이 발표되었다.
    2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3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4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5
    유상 매수, 유상 분배 원칙의 농지 개혁법이 재정되었다.
    해설

    (가)는 무기 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이 없으니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해 38도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여론에 호소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후인 1946년 6월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다.

    (나)는 귀국한 이래 3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북 통일과 독립을 이루고자 나머지 목숨을 38도선에 내놓은 김구가 자동차로 38도선을 넘어 평양을 향했다는 내용으로, 1948년 4월 남북 협상을 위해 북행하는 장면이다.

    두 시기 사이에는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합작 위원회가 구성되어 1946년 10월 좌우 합작 7원칙이 발표되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1945. 8.)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개최(1945. 12.)는 정읍 발언 이전의 일이고,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구성(1948. 10.)과 농지 개혁법 제정(1949)은 남북 협상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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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가)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
    2
    농촌 근대화를 표방한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었다.
    3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삼청 교육대가 설치되었다.
    4
    한ㆍ독 정부 간의 협정에 따라 서독으로 광부가 파견되었다.
    5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이른바 보안법 파동이 일어났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한 결정 요지입니다. '평화 통일'을 주장한 조봉암이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200여만 표 이상을 얻어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진보당의 민의원 총선 진출을 막고 조봉암을 제거하려는 (가) 정권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가)는 이승만 정부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 등을 구속한 뒤인 1958년 말, 야당 의원들을 무력으로 몰아낸 채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이른바 보안법 파동(2·4 파동)이라고 하며, 반대 세력에 대한 정치 탄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 한 조치였습니다. 조봉암은 이듬해인 1959년에 처형되었습니다.

    한편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 선출은 유신 체제, 새마을 운동 전개와 한·독 협정에 따른 서독 광부 파견은 박정희 정부, 삼청 교육대 설치는 신군부가 집권한 전두환 정부 시기의 일이므로 (가) 정부 시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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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사실이 있었던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2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3
    한ㆍ칠레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4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5
    3저 호황으로 물가가 안정되고 수출이 증가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연간 조강 생산량 1백 3만 톤 규모의 제철 일관공정을 갖춘 포항 종합 제철 공장 제1기 준공식 기사입니다. 총 공사비 1,200여억 원(외자 700여억 원 포함)을 들여 3년 3개월 만에 완공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철강이 조선·기계·자동차 등 중화학 공업의 원재료로 쓰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포항제철 1기 준공은 1973년의 일로, 박정희 정부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 무렵 정부는 중화학 공업 육성을 핵심으로 하는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과 대통령 긴급 명령에 따른 금융 실명제 실시는 김영삼 정부, 한·칠레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노무현 정부, 3저 호황에 따른 물가 안정과 수출 증가는 전두환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이므로 시기가 어긋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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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한ㆍ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여 일어났다.
    2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 내각제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4
    3ㆍ1 민주 구국 선언을 통해 긴급 조치 철폐 등을 요구하였다.
    5
    4ㆍ13 호헌 조치에 반발하여 호헌 철폐 등의 구호를 내세웠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당시 상황을 보도한 외신 기사로, 광주 시민들의 증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공수 부대가 학생들의 시위에 잔인하게 대응했고, 계엄령 해제와 수감된 야당 지도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행진했으며, 광주에 거주하던 25명의 미국인들이 군인들의 무차별적 폭력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내용입니다. 이는 1980년의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은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김대중 등 정치인 구속에 맞서 일어났으며,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시민군이 저항한 사건입니다. 이 운동의 진상을 담은 각종 문서와 사진, 시민들의 기록 등 관련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한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여 일어난 것은 6·3 시위,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 내각제로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은 4·19 혁명, 3·1 민주 구국 선언으로 긴급 조치 철폐를 요구한 것은 유신 반대 운동, 4·13 호헌 조치에 반발해 호헌 철폐를 외친 것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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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3회
    다음 경축사를 발표한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7ㆍ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2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3
    6ㆍ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4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에 서명하였다.
    5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실현하였다.
    해설

    그림의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지난 3년 반의 개혁을 통해 외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으며, 국제 통화 기금(IMF)으로부터 지원받았던 195억 달러의 차관을 3년 앞당겨 전액 상환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외환 위기 직후 출범해 구제 금융을 조기 상환한 이 정부는 김대중 정부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햇볕 정책)을 추진하여 2000년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개성 공단 조성 합의, 경의선 복원,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교류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반면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는 박정희 정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서명은 노태우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 실현은 전두환 정부 시기의 통일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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