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빗살무늬 토기에 식량을 저장하였다.
    2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되었다.
    3
    명도전, 반량전 등의 화폐를 사용하였다.
    4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만들었다.
    5
    거푸집을 이용하여 세형 동검을 제작하였다.
    해설

    해설자가 소개하는 곳은 서울 암사동 유적으로, 당시에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움집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면서 조·피 등을 재배하였고, 아가리가 넓고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데 사용하였다.

    고인돌 축조와 거푸집을 이용한 세형 동검 제작은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모습이고, 명도전·반량전 사용은 철기 시대,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의 일반화는 고려 시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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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다.
    2
    (가) -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3
    (나) -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4
    (나) - 읍락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5
    (가), (나) -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
    해설

    (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고 북쪽은 읍루·부여, 남쪽은 예맥과 접하며,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했다가 살이 썩으면 뼈만 거두어 곽에 안치한다고 하였다. 함경도 동해안에 자리한 옥저로, 이 장례 풍습이 가족 공동 무덤(골장제)이다.

    (나)는 남쪽으로 진한에 접하고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으며 단궁반어피, 과하마가 난다고 하였다. 강원도 동해안의 동예이다.

    동예에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가 있어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였다. 즉 (나)에 대한 설명으로 책화를 드는 것이 옳다.

    10월의 무천은 동예의 제천 행사이므로 (가) 옥저에 붙이면 틀리고, 여러 가(加)사출도를 주관한 것은 부여이다. 신지·읍차라는 지배자와 천군·소도는 모두 삼한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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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수의 군대를 살수에서 크게 물리쳤다.
    2
    서안평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3
    전진의 순도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다.
    4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전사시켰다.
    5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해설

    검색 결과에 재위 기간 412년~491년, 이름은 거련(巨連), 광개토 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김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이 왕은 고구려 장수왕이다.

    장수왕은 평양 천도 후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여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켰으며,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때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살수 대첩은 영양왕 때 을지문덕, 서안평 공격은 미천왕, 전진의 순도를 통한 불교 수용은 소수림왕, 천리장성 축조는 영류왕~보장왕 시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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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마)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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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 - 무덤 둘레돌에 12지 신상을 새긴 이유를 찾아본다.
    2
    (나) - 돌무지 덧널무덤의 내부구조와 특징을 검색한다.
    3
    (다) -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 경위를 조사한다.
    4
    (라) - 9층 목탑을 건립하였던 목적을 파악한다.
    5
    (마) - 모전석탑의 제작 방식을 알아본다.
    해설

    답사 계획서의 경로는 김유신묘 → 천마총 → 첨성대 → 황룡사터 → 분황사로, 지도에는 (가) 김유신묘, (나) 천마총, (다) 첨성대, (라) 황룡사터, (마) 분황사가 표시되어 있다.

    이 중 첨성대는 선덕 여왕 때 만들어진 천문 관측 시설이다. 반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이므로, 첨성대와 연결한 탐구 활동은 적절하지 않다.

    나머지는 모두 알맞다. 김유신묘는 무덤 둘레돌에 12지 신상이 새겨져 있고, 천마총은 돌무지덧널무덤이며, 황룡사에는 자장의 건의로 세운 9층 목탑이 있었고, 분황사에는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 석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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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지증왕이 우산국을 복속하였다.
    2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벌하였다.
    3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전사하였다.
    4
    무령왕이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5
    진흥왕이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하였다.
    해설

    (가)는 왕 16년 봄에 사비(소부리)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다는 기록으로, 백제 성왕의 사비 천도(538년)이다. (나)는 왕 32년 가을 신라를 습격하려다 구천(狗川)에서 신라 복병을 만나 왕이 살해되었다는 기록으로,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 전투(554년)이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는 538년~554년의 시기이다. 성왕은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으나(551년), 진흥왕이 553년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 사건이 이 기간에 들어가며, 동맹의 파기는 곧 관산성 전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고국원왕의 평양성 전사(371)와 근초고왕의 마한 정벌은 4세기, 지증왕의 우산국 복속(512)과 무령왕의 22담로 왕족 파견은 모두 사비 천도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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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특별 기획전 포스터는 김수로왕이 건국하였다고 전해지는 나라를 "철의 왕국"으로 소개하며, 풍부한 을 이용해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설명한다. (가)는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이다.

    가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해 낙랑과 왜에 수출하였고,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였다. 이러한 철기 문화를 보여 주는 대표 유물이 철로 만든 판갑옷과 투구로, 김해·고령 등 가야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보기 가운데 가지가 여러 개 뻗은 칼은 백제가 왜에 보낸 칠지도이고, 석조 불좌상대형 범종은 통일 신라의 불교 문화유산이다. 뚜껑이 있는 둥근 청동 그릇도 가야의 철기 문화를 보여 주는 유물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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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했어요.
    2
    경재소를 설치하여 유향소를 통제했어요.
    3
    국경 지역인 양계에 병마사를 파견했어요.
    4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했어요.
    5
    각 도에 관찰사를 보내 관할 고을의 수령을 감독했어요.
    해설

    칠판에 정리된 중앙 통치 체제는 집사부·병부·위화부 등 총 14개의 중앙 부서 운영, 집사부 장관인 시중이 왕명을 받들어 국정 수행, 관리의 비리를 막기 위한 감찰 기구 사정부 설치, 중앙 교육 기관인 국학 설치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통일 신라의 통치 조직이다.

    통일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고 특수 행정 구역인 5소경을 두었으며,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지방 세력가나 그 자제를 일정 기간 수도에 머물게 하는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였다.

    12목 설치와 양계에 병마사 파견은 고려의 지방 제도이고, 경재소를 통한 유향소 통제와 각 도에 관찰사를 파견해 수령을 감독한 것은 조선의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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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신라도라는 교통로를 통해 신라와 교역하였다.
    2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을 널리 재배하였다.
    3
    해동통보를 발행하여 금속 화폐의 통용을 추진하였다.
    4
    농사직설을 간행하여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하였다.
    5
    삼포를 열어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
    해설

    제시된 『신당서』 기록은 영주(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에서 동쪽으로 2천 리 밖에 위치하고, 동쪽은 바다에 닿고 서쪽에 거란이 있었다고 하며, 특산물로 태백산의 토끼, 남해의 다시마, 책성의 된장, 막힐의 돼지, 솔빈의 말, 현주의 베, 옥주의 면, 용주의 명주, 위성의 철, 노성의 벼, 미타호의 붕어를 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풍속은 고구려, 거란과 대개 같다"라고 한 점까지 더하면 이 나라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상경에서 동경을 거쳐 남쪽으로 이어지는 신라도를 통해 신라와 왕래하며 교역하였고, 이 밖에도 영주도·거란도·일본도·조공도 등 여러 대외 교통로를 운영하였습니다. 특히 솔빈부의 말은 당에 수출되는 대표적 교역품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감자·고구마 같은 구황 작물 재배와 해동통보 발행은 각각 조선 후기와 고려 숙종 때의 일이고, 『농사직설』 간행과 삼포 개항·계해약조 체결은 조선 전기 세종 대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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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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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3
    4
    5
    해설

    문화유산 카드에는 국보 제57호, 소재지 전라남도 화순군 쌍봉사, 철감선사 도윤의 사리를 모신 팔각 원당형 승탑으로 신라 하대 선종의 유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이는 쌍봉사 철감선사탑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사진은 절 건물 앞이 아닌 야외 풀밭에 홀로 서 있는, 팔각 지붕돌과 팔각 몸돌·팔각 기단으로 이루어진 승탑의 모습입니다. 지붕돌에 기왓골과 서까래까지 새겨 목조 건축을 그대로 옮긴 듯한 뛰어난 조형미가 특징입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절 건물 앞 마당에 세워진 석탑으로, 여러 층의 지붕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형태입니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무덤 성격의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구분되며, 선종이 확산되면서 각 산문에서 활발히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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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나)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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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 - 완산주를 도읍으로 하여 후백제를 세웠다.
    2
    (가) -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3
    (나) - 송악을 도읍으로 정하고 후고구려를 건국하였다.
    4
    (나) - 서경을 중시하여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5
    (가), (나) - 황산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에게 패배하였다.
    해설

    『삼국유사』의 사론에서 (가)는 본래 신라의 왕자였으면서 제 나라를 원수로 삼아 선조의 화상을 칼로 베었다고 하였고, 결국 신하로부터 버림을 당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신라 왕실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부하들에게 축출된 궁예에 대한 서술입니다.

    (나)는 신라의 백성으로서 신라의 녹을 먹다가 세력을 키워 도읍을 침범하고 임금과 신하를 죽였다고 하였고, 그 아들에게서 화가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경주를 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뒷날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유폐된 견훤입니다.

    그러므로 옳은 설명은 (가) 궁예에 관한 것으로, 그는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으며 이후 다시 태봉으로 고쳤습니다.

    완산주에 도읍하여 후백제를 세운 것은 (가)가 아니라 (나) 견훤의 일이고, 반대로 송악을 도읍으로 후고구려를 건국한 것은 (나)가 아니라 (가) 궁예의 일입니다. 서경을 중시해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은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며, 황산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에게 패한 것은 견훤의 아들 신검이 이끈 후백제군이므로 두 인물 모두의 활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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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2
    경순왕 김부가 경주의 사심관이 되었다.
    3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
    4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하였다.
    5
    왕실의 외척인 이자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해설

    『고려사』의 이 기록은 중군 김부식윤언이가 정지상과 결탁하였고 임자년에 왕이 서경으로 행차할 때 연호를 세우고 황제로 칭할 것을 청하였다고 아뢰는 내용입니다. 김부식이 중군을 맡아 서경 세력을 토벌하고 칭제건원 주장이 문제가 된 시기이므로, 밑줄 그은 왕은 고려 인종입니다.

    인종 재위 기간에는 왕실의 외척 이자겸이 예종과 인종에게 거듭 딸을 들여 권력을 독점하다가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고(1126), 이어 묘청 등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내세우다 난을 일으켜 김부식에게 진압되었습니다(1135).

    나머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원종과 애노의 봉기, 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의 일이고,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은 것은 고려 태조 때, 강조의 정변은 목종 때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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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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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흑창을 처음 설치하여 민생을 안정시켰어요.
    2
    국자감을 설립하여 유학 교육 진흥에 힘썼어요.
    3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호족 세력을 견제했어요.
    4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했어요.
    5
    전시과 제도를 마련하여 관리에게 토지를 지급했어요.
    해설

    교사는 국보 제41호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의 명문에 준풍(峻豊)이라는 연호가 있고, 이 연호를 쓴 왕이 관리의 공복을 제정해 국왕 중심의 위계질서를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덕·준풍 연호를 사용하고 자색·단색·비색·녹색의 4색 공복을 정한 왕은 고려 광종입니다.

    광종은 이 밖에도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후삼국 혼란기에 강제로 노비가 된 이들을 양인으로 되돌렸습니다. 이는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국가의 조세와 역 부담자를 늘리는 조치였습니다.

    흑창 설치와 『정계』·『계백료서』 저술은 태조, 국자감 설립과 전시과 마련은 각각 성종과 경종 대의 일이므로 광종의 업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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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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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대승에 의해 설치된 숙위 기관이었다.
    2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9성 일대를 확보하였다.
    3
    진도에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였다.
    4
    최씨 무신 정권의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조직되었다.
    5
    9주에 1정씩 배치되고 한주(漢州)에만 1정을 더 두었다.
    해설

    민영 묘지명에는 그가 예종이 동쪽 오랑캐를 정벌하려 하자 자청하여 (가)의 신기군에 편성되어 말을 타고 선봉에서 돌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진 정벌을 앞두고 편성되었고 기병 부대인 신기군을 포함한 조직이므로 (가)는 별무반입니다.

    별무반은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려로 구성된 항마군을 갖추어 창설되었고, 예종 2년(1107) 윤관이 이를 이끌고 여진을 정벌한 뒤 동북 9성을 쌓아 그 일대를 확보하였습니다.

    도방은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설치한 사병 중심의 숙위 기관이고, 진도에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 대몽 항쟁을 이어 간 것과 최씨 무신 정권의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조직된 것은 삼별초이며, 9주에 1정씩 두고 한주에만 1정을 더 둔 것은 통일 신라의 10정이므로 모두 별무반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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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그대’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행사하였다.
    2
    교정별감이 되어 국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3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4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로서 개혁을 이끌었다.
    5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였다.
    해설

    그림에서 무장한 인물은 왕에게 "역적 이의민이 선왕인 의종을 시해하고 백성을 괴롭히며 왕위를 엿보기까지 하였으므로 신이 제거하였다"라고 아뢰며 낡은 것을 개혁할 것을 청하고, 왕은 "그대가 올린 봉사 10조를 잘 읽어 보았으니 올린 대로 행하라"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의민을 제거하고 봉사 10조를 올린 인물은 최충헌입니다.

    최충헌은 이후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권력 기구인 교정도감을 두고 그 장관인 교정별감이 되어 국정 전반을 장악하였으며, 사병 조직인 도방을 확대해 권력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인사 행정을 담당한 정방 설치는 아들 최우의 일이고,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이는 김윤후, 전민변정도감을 이끈 이는 공민왕 대의 신돈이며,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개경에 나성을 쌓은 것은 고려 현종 때의 일이므로 모두 최충헌의 활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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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글이 작성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
    2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였다.
    3
    대각국사 의천이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4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5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여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에서 백성들은 제주 만호 임숙의 탐학을 호소하면서, 죄를 지어 정동행성에 갇혀 있던 그를 다시 제주로 복귀시키려 한다고 항의하고 원의 조정에 고소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동행성이 존속하고 원에 직접 호소할 수 있던 때이므로 이 글이 작성된 시기는 원 간섭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두 나라의 인적·물적 교류가 잦아지면서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 같은 몽골풍이 유행하였고, 반대로 원에서는 고려양이 퍼졌습니다. 또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편되고 관제가 격하되었으며 다루가치가 파견되는 등 내정 간섭이 이루어졌습니다.

    만적의 난은 무신 집권기,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 때, 의천의 천태종 개창과 최충의 9재 학당은 고려 전기의 일이므로 이 시기의 모습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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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준 등의 건의로 과전법이 제정되었다.
    2
    대표적 친원 세력인 기철이 숙청되었다.
    3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ㆍ망소이가 봉기하였다.
    4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5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신문고가 설치되었다.
    해설

    (가)는 최영이 백관과 함께 철령 이북의 땅을 떼어 줄지를 논의하고 우왕과 비밀리에 요동 공격을 의논한 장면으로, 명이 철령위 설치를 통보한 뒤 추진된 요동 정벌(1388)에 해당합니다.

    (나)는 배극렴 등이 거듭 왕위에 오르기를 권하여 태조가 즉위한 장면으로, 조선 건국(1392)입니다.

    두 사건 사이인 1391년에는 조준 등의 건의로 과전법이 제정되어 권문세족의 대농장을 정리하고 경기의 토지를 관료에게 수조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는 신진 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마련해 새 왕조 개창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기철 숙청과 쌍성총관부 공격은 공민왕 초반(1356),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 신문고 설치는 조선 태종 때의 일이므로 모두 이 시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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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건립하였다.
    2
    성호사설에서 한전론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3
    동호문답을 통해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4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한 성학십도를 저술하였다.
    5
    가례집람을 지어 예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리하였다.
    해설

    전시된 그림은 겸재 정선이 부채에 그린 '도산서원'이며, 설명에는 도산 서원이 이 인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고 그가 주자의 서간문에서 성리학의 핵심을 뽑아 『주자서절요』를 지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도산 서원에 배향되고 『주자서절요』를 편찬한 인물은 이황입니다.

    이황은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한 주리론을 확립하였고, 군주가 성학을 익혀 스스로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성학십도』를 지어 군주의 도를 열 개의 도식으로 정리해 선조에게 올렸습니다. 그의 학문은 영남학파로 이어지고 일본 성리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백운동 서원 건립은 주세붕, 『성호사설』의 한전론은 이익, 『동호문답』은 이이, 『가례집람』은 김장생의 업적이므로 이황의 활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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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였다.
    2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였다.
    3
    금위영을 설치하여 5군영 체제를 완성하였다.
    4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5
    삼군부를 부활시켜 군국 기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해설

    제시된 연려실기술 단종조 고사본말은 세종 이래 예악이 제정되어 선비들이 조정에 모여들던 시기, 여러 왕자들이 다투어 빈객을 맞아들이는데 문인(文人)과 재사(才士)들이 모두 안평 대군에게 의탁하여 (가)에게는 이들보다 나은 인재가 없었다고 전한다. 이때 한명회가 (가)를 찾아가 신임을 얻고 은밀히 계책을 올리기를 "세도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문인들이 쓸모없으니 모름지기 무사들과 결탁하소서"라고 하였다.

    안평 대군과 대립하며 한명회를 책사로 얻은 왕자는 수양 대군, 곧 훗날의 세조이다. 그는 한명회의 계책대로 무사들을 끌어모아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안평 대군을 축출한 뒤 정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였다는 설명이 이 인물에 해당한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인물의 행적이다.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한 인물은 조선 건국을 설계한 정도전이며,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반대파를 제거한 인물은 태종(이방원)이다. 금위영을 설치해 5군영 체제를 완성한 것은 숙종 때의 일이고, 삼군부를 부활시켜 군국 기무를 전담하게 한 것은 흥선 대원군의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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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들어갈 세시 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단오
    2
    칠석
    3
    대보름
    4
    삼짇날
    5
    한가위
    해설

    안내문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새봄을 알린다"는 날로 (가)를 소개하며, 이날을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하여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는 날이라고 밝히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제시된 것도 모두 이 명절의 대표 풍속이다. 이날 노랑나비를 보면 길하다는 속설에 따른 나비 날리기,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화전(花煎) 부치기, 각시풀을 추려 실로 묶어 머리채를 만드는 풀각시놀이가 그것이다.

    제비가 돌아오고 진달래 화전을 부치며 답청을 즐기는 음력 3월 3일의 세시 풍속은 삼짇날이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 머리 감기와 그네뛰기·씨름, 칠석은 7월 7일 견우직녀 설화, 대보름은 정월 15일 부럼 깨기와 달집태우기, 한가위는 8월 15일 차례와 강강술래로 각각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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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2
    일본이 러ㆍ일 전쟁 중에 불법적으로 편입하였다.
    3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위하여 조차를 요구하였다.
    4
    네덜란드 상인인 하멜 일행이 표류하여 도착하였다.
    5
    정약전이 섬의 어종을 조사하여 자산어보를 저술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에는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내부에 보고하기를, 일본 관원이 본군에 도착하여 본군 소재 '이 섬'을 일본 속지(屬地)라 자칭하고 토지 면적과 호구 수를 적어 갔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에 내부에서는 이 섬을 일본의 속지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매우 놀랍다고 지령하였다.

    이는 1906년의 이른바 심흥택 보고서로, 여기서 말하는 '이 섬'은 울릉군에 속한 독도이다. 일본은 러ㆍ일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05년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불법 편입하였고, 그 사실이 이듬해 울릉도에 알려지면서 위와 같은 보고가 이루어졌다.

    다른 설명은 모두 별개의 섬에 관한 것이다.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곳은 강화도,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위해 조차를 요구한 곳은 절영도, 하멜 일행이 표류해 도착한 곳은 제주도,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은 흑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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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신무기인 신기전이 개발되었다.
    2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가 동원되었다.
    3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이 조직되었다.
    4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5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의 부대가 파병되었다.
    해설

    시나리오에서 왕은 승지와 사관을 내보낸 뒤 이조 판서 송시열과 단둘이 마주 앉아 "저 오랑캐는 반드시 망하게 될 형편에 처할 것이니 정예병 10만을 양성하여 기회를 보아 곧장 청으로 쳐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을 정벌하겠다는 북벌 구상을 송시열과 은밀히 논의한 이 장면은 효종 때의 이른바 악대설화(幄對說話)를 옮긴 것이다.

    효종은 북벌을 위해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키웠는데, 이렇게 양성된 조총 부대가 청의 요청으로 두 차례(1654년, 1658년) 흑룡강 방면에 파견되어 러시아군과 싸운 것이 나선 정벌이다. 북벌 준비가 역설적으로 청을 돕는 데 쓰인 사건으로, 효종 재위 기간의 대표적 사실이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르다. 신기전 개발은 세종 때, 장용영 설치는 정조 때의 일이며,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된 것은 고려 우왕 때이다.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 부대가 파병된 것(사르후 전투)은 광해군 때로, 효종 즉위 이전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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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가상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2
    김종서가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하였다.
    3
    위훈 삭제를 주장한 조광조 일파가 축출되었다.
    4
    기유약조의 체결로 일본과의 국교가 재개되었다.
    5
    정묘호란이 일어나 정봉수가 용골산성에서 항쟁하였다.
    해설

    대화에서 두 사람은 "서인이 주도한 반정 이후,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다행히 진압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이괄의 잔당이 후금으로 도망쳐 새 왕을 헐뜯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고 하니 뒷일이 걱정"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인조반정(1623) 직후 일어난 이괄의 난(1624)과 그 잔당의 후금 망명 상황이다.

    후금으로 달아난 이괄의 잔당은 인조 정권이 부당하게 들어섰다고 선동하며 조선 침공을 부추겼고, 실제로 후금은 1627년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조선을 침입하였다. 이것이 정묘호란이며, 이때 정봉수용골산성에서, 이립이 의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항쟁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이 대화보다 앞선 사실이다. 권율의 행주 대첩(1593)과 기유약조 체결(1609)은 임진왜란 전후의 일이고, 김종서의 6진 개척은 세종 때, 위훈 삭제를 주장한 조광조 일파의 축출(기묘사화)은 중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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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였다.
    2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두를 거두었다.
    3
    어세, 염세, 선세를 균역청에서 관할하게 하였다.
    4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납부하는 공인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5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하였다.
    해설

    화면 속 인물은 김육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그가 (가)의 시행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소개하고, (가)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징수하면서 나타난 방납의 폐단을 막고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실시되었다고 설명한다. 방납의 폐단을 없애고자 공납을 개혁한 이 제도는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작되어 김육의 노력으로 충청도·전라도로 확대된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집집마다 현물 특산물을 거두던 방식을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베·동전을 내게 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관청이 필요로 하는 물품은 시장에서 사들여야 했고, 국가로부터 대가를 받아 물품을 조달·납품하는 어용 상인인 공인(貢人)이 등장하였다. 공인의 활동은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제도의 내용이다.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두를 거둔 것은 인조 때의 영정법이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한 것은 흥선 대원군의 호포제이다. 어세·염세·선세를 균역청에서 관할하게 하고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한 것은 영조 때의 균역법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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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2
    북학의에서 수레와 배의 이용을 강조하였다.
    3
    양반전에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지적하였다.
    4
    의산문답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였다.
    5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는 "담헌(湛軒), 소행성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제목 아래, 국내 연구진이 발견한 새 소행성에 호가 담헌인 '그'의 인명이 헌정되었다고 전한다. 사진에는 그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혼천의가 실려 있고, 헌정 이유로는 그가 무한 우주론지전설 등을 주장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과학자이자 실학자라는 점을 들고 있다.

    호가 담헌이며 혼천의를 만들고 지전설·무한 우주론을 편 인물은 홍대용이다. 그는 저서 의산문답에서 허자와 실옹의 문답 형식을 빌려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지전설을 펴고, 우주에 중심이 따로 없다는 논리로 중국 중심의 세계관(화이관)을 비판하였다.

    나머지는 다른 실학자의 저술이다. 기기도설을 참고해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정약용, 북학의에서 수레와 배의 이용 및 절약보다 소비를 강조한 인물은 박제가, 양반전으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풍자한 인물은 박지원,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한 인물은 유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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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마) 지역에 대한 탐구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반구대 암각화로 보는 선사 시대 생활
    2
    (나) - 고액 소작료에 반발한 암태도 소작 쟁의
    3
    (다) - 신립 장군이 배수의 진을 친 탄금대 전투
    4
    (라) -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제너럴 셔면호 사건
    5
    (마) - 벽란도에서 이루어진 고려와 송의 국제 무역
    해설

    지도에 표시된 다섯 지역은 (가) 평양, (나) 인천, (다) 충주, (라) 목포, (마) 울산이다. 각 지역과 역사적 사건이 바르게 짝지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충주에는 탄금대가 있으며, 임진왜란 초기 신립 장군이 이곳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에 맞서 싸우다 패배하였다. 따라서 충주와 탄금대 전투를 연결한 탐구 주제가 적절하다.

    나머지는 지역이 어긋난다. 반구대 암각화는 평양이 아니라 울산 대곡리에 있고, 암태도 소작 쟁의는 인천이 아니라 전남 신안에서 일어났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목포가 아니라 대동강에서 일어나 신미양요의 발단이 되었으며, 고려와 송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는 울산이 아니라 예성강 하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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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화 되었다.
    2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혁파되었다.
    3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었다.
    4
    세도 정치 시기에 외척 세력의 권력 기반이 되었다.
    5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이 낭사로 구성되었다.
    해설

    제시된 연려실기술의 기록은 "의정부와 별도로 (가)를 설치하여 재신들 중 군무(軍務)를 아는 자로 당상을 삼아 변방의 일에 대응하도록 하였다"고 하고, 나아가 "조정의 명령이 부득불 모두 (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의정부의 찬성·참찬은 신병 치료나 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고 전한다. 의정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이 기구는 비변사이다.

    비변사는 중종 때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다가 을묘왜변(1555)을 계기로 상설 기구가 되었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군사뿐 아니라 인사·재정·외교까지 총괄하는 최고 기구로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었다. 이후 세도 정치 시기에는 안동 김씨 등 외척 세력의 권력 기반으로 작용하였으며,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혁파되어 정치는 의정부, 군사는 삼군부로 넘어갔다.

    따라서 옳지 않은 설명은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고려 시대의 대간(대성)에 대한 설명으로, 간쟁·봉박·서경의 권한을 행사하며 왕권을 견제하던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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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조사 보고서의 제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이조 전랑 임명 문제와 동ㆍ서 분당
    2
    서인과 남인의 대립으로 인한 환국
    3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촉발된 기해예송
    4
    세자 추숭(追崇)을 둘러싼 시파와 벽파의 갈등
    5
    외척 세력인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난 을사사화
    해설

    조사 보고서 안내에는 주제가 "숙종 때의 정치적 변화 양상"이고, 조사 방법은 "숙종 재위 시기의 정치 변화에 한정하여 조사함"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보고서 제목은 숙종 대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어야 한다.

    숙종 대의 정치는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정권을 독점하는 급격한 교체, 즉 환국으로 요약된다.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였다가,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며,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였다. 이 과정에서 상대 붕당을 아예 배제하는 일당 전제화 경향이 나타나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나머지 제목은 시기가 다르다. 이조 전랑 임명 문제로 동인과 서인이 갈린 것은 선조 때, 기해예송은 현종 때, 세자 추숭을 둘러싼 시파와 벽파의 갈등은 정조 때,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난 을사사화는 명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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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자료는 표지에 균역사실(均役事實)이라 적힌 책으로, 균역법을 처음으로 시행한 왕의 명으로 홍계희가 편찬한 것입니다. 균역법의 제정 배경과 부족한 재정의 보충 방안을 확정하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고, 양반 사대부들의 반대 여론에 대응하여 균역법 시행이 애민 정신에서 나왔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균역법은 1750년 영조가 시행한 정책이므로, 밑줄 그은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경국대전 이후의 법령을 정리하여 속대전을 편찬해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고,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워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영조의 업적에 해당합니다.

    반면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경복궁을 중건한 것은 고종 대 흥선 대원군이 추진한 일이며, 신해통공으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축소한 것은 정조의 정책이므로 영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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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성현 등이 악학궤범을 편찬하였습니다.
    2
    정철이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의 작품을 지었습니다.
    3
    노래와 사설로 줄거리를 풀어 가는 판소리가 발달하였습니다.
    4
    서거정이 역대 문학 작품을 선별하여 동문선을 편찬하였습니다.
    5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간행하였습니다.
    해설

    교사가 제시한 그림은 김홍도가 중인들의 시사(詩社) 광경을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입니다. 당시 중인들이 시사를 조직해 활발한 문예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으므로,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중인층의 위항 문학이 융성하던 조선 후기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 의식이 성장하면서 서민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갈래가 소리꾼이 노래와 사설로 줄거리를 풀어 가는 판소리였습니다. 춘향가·심청가 등이 널리 불렸고 신재효가 이를 정리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성현 등의 악학궤범과 서거정의 동문선은 조선 전기 성종 대의 편찬 사업이고, 정철의 관동별곡·사미인곡은 16세기 조선 중기의 가사 문학이며, 청주 흥덕사의 직지심체요절 간행은 고려 말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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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자료가 작성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앙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민
    2
    상평통보로 토지를 매매하는 양반
    3
    공명첩을 통해 면역의 혜택을 받은 상민
    4
    한강을 무대로 운송업에 종사하는 경강상인
    5
    직전법에 의해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받는 관리
    해설

    제시된 자료는 「성시전도시」로, 이현과 종루 그리고 칠패가 도성(한양)의 3대 시장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온갖 수공업자가 모이고 봉성의 털모자, 연경의 비단실, 함경도의 마포, 한산의 모시 등 각지 물화가 값을 다투며 수레가 줄을 잇는 모습, 소에 실은 나무를 사고파는 모습과 말 중개인(거간)을 부르는 모습까지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상(私商)의 성장으로 종로의 시전 외에 이현·칠패 같은 새로운 시장이 번성한 것은 조선 후기의 상업 발달상이므로, 이 시는 조선 후기에 작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앙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민, 상평통보로 토지를 매매하는 양반, 공명첩으로 면역의 혜택을 받은 상민, 한강 운송업에 종사하는 경강상인은 모두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주던 직전법은 조선 전기 세조 때 시행되어 16세기 명종 대에 이미 폐지되었으므로, 직전법으로 수조권을 지급받는 관리는 이 시기에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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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을 공격하였다.
    2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3
    조선 정부가 프랑스인 선교사들을 처형하였다.
    4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방곡령을 선포하였다.
    5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해설

    제시된 뉴스 화면은 김포 문수산성 장대가 15년 만에 복원되었다는 내용으로, 문수산성이 정족산성과 함께 밑줄 그은 사건의 주요 격전지 가운데 하나이며 서양 세력의 침입에 맞서 한성근 부대가 치열하게 항전한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수산성에서 한성근이, 정족산성에서 양헌수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사건은 1866년의 병인양요입니다.

    병인양요는 같은 해 조선 정부가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인 선교사들을 처형한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가 함대를 보내 강화도를 침입한 것이므로, 이것이 사건의 배경에 해당합니다.

    한편 운요호의 초지진 공격은 1875년,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 방곡령 선포는 1889년,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은 1885년의 일로 모두 병인양요 이후이거나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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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였다.
    2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3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4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태안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5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해설

    제시된 사진은 위정척사 운동을 주도한 인물의 위패를 모신 충청남도 청양의 모덕사입니다. 안내에 따르면 그는 흥선 대원군의 하야와 고종의 친정(親政)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고,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강화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습니다.

    대원군 하야를 이끈 계유상소와 개항 반대 지부복궐척화의소로 유명한 이 인물은 최익현입니다.

    최익현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여 이듬해 전라도 태인(泰仁)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체포된 뒤 쓰시마섬으로 끌려가 순국하였습니다.

    한편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은 박은식, 봉오동 전투 승리는 홍범도, 독립 의군부 조직은 임병찬,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이인영·허위가 관련된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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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기구를 통해 추진된 정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교원 양성을 위해 한성 사범 학교를 설립하였다.
    2
    외교 활동을 펼치기 위해 구미 위원부를 설치하였다.
    3
    개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홍범조를 반포하였다.
    4
    구(舊)백동화를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는 사업을 시행하였다.
    5
    영선사를 파견하여 근대식 무기 제조기술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해설

    제시된 역사 용어 해설은 고종 17년(1880)에 만들어진 개화 정책 총괄 기구로, 개항 이후의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의정부·6조와는 별도로 신설되었으며 교린사·군무사·통상사 등 12사를 두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통리기무아문에 해당합니다.

    통리기무아문은 신식 군대인 별기군 창설과 함께 해외 시찰단 파견을 주관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1881년 청에 보낸 영선사로 근대식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을 도입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한성 사범 학교 설립은 제2차 갑오개혁, 구미 위원부 설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홍범 14조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 구(舊)백동화를 제일은행권으로 바꾼 화폐 정리 사업은 1905년 메가타가 추진한 것으로 이 기구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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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책이 유포된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2
    김기수를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하였다.
    3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4
    박규수의 건의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5
    홍경래가 난을 일으켜 정주성 등을 장악하였다.
    해설

    제시된 책은 조선의 땅이 아시아의 요충에 자리 잡아 러시아가 영토를 공략하면 반드시 조선부터 시작할 것이라 하고, 급선무는 러시아를 막는 것이며 그 방책으로 친중국(親中國)·결일본(結日本)·연미국(聯美國)을 통해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으로,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국내에 들여와 유포되었습니다.

    이 책이 미국과의 수교를 권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적 유생들이 크게 반발하였고, 1881년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이 영남 만인소를 올려 개화 정책과 미국과의 수교에 반대하였습니다.

    한편 김기수를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한 것은 1876년, 어재연의 광성보 항전은 1871년 신미양요, 박규수의 건의에 따른 삼정이정청 설치는 1862년 임술 농민 봉기 직후, 홍경래의 난은 1811년의 일로 모두 이 책이 유포되기 이전에 있었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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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전라도 순창에서 체포되는 전봉준
    2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는 농민군
    3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하는 농민군
    4
    논산에서 연합하는 남접과 북접 부대
    5
    무력을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는 일본군
    해설

    제시된 자료는 동학 농민 운동을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제작하려는 다큐멘터리 기획안으로, 1회는 파괴되는 만석보, 3회는 전주성을 점령하고 전주 화약을 체결하는 농민군입니다.

    만석보 파괴는 1894년 초 고부 농민 봉기이고, 전주성 점령과 전주 화약은 같은 해 봄의 일이므로, (가)에는 그 사이에 일어난 제1차 봉기의 전투가 들어가야 합니다.

    고부 봉기 이후 백산에서 다시 봉기한 농민군은 황토현에서 전라 감영군을 크게 무찌르고 이어 황룡촌 전투에서도 승리한 뒤 전주성으로 진격하였으므로,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는 농민군의 모습이 (가)에 해당합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남접과 북접의 논산 연합, 공주 우금치 패배, 전봉준의 순창 체포는 모두 전주 화약 이후 제2차 봉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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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2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3
    민립 대학 설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4
    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5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해설

    제시된 잡지 특별 기획은 (가) 단체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소개하면서, 기획 1은 서재필의 주도로 창립, 기획 2는 만민 공동회 개최, 기획 3은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올린 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1896년에 창립된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1898년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고종의 재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중추원을 의회식 기구로 개편하여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보안회,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민립 대학 설립 모금 운동은 민립 대학 기성회, 국제법상 교전 단체 승인 요청은 13도 창의군의 활동이므로 이 단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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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사변’ 이후 추진된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하였다.
    2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였다.
    3
    박문국을 설치하여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4
    청과 조ㆍ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5
    태양력을 채택하고 건양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다.
    해설

    제시된 「고종실록」 기사는 고등 재판소가 피고 이희화를 교형에 처하도록 한 안건을 다루면서, 피고가 사변 때 대궐을 침범한 일본인들과 함께 아무런 직책도 없이 입궐하여 왕후 폐하가 시해당하시던 곤녕합에 들어갔고, 시해 직후 대군주 폐하의 어전에 제멋대로 들어가 결정되지 않은 조칙문을 베껴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왕후가 곤녕합에서 시해된 이 사변은 1895년의 을미사변으로, 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한 사건입니다.

    을미사변 이후 김홍집 내각이 추진한 을미개혁에서는 태양력을 채택하고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으며, 단발령 시행과 종두법 실시, 친위대·진위대 설치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보빙사 파견(1883), 별기군 창설(1881), 박문국 설치와 한성순보 발간(1883),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1882)은 모두 을미사변 이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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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들어갈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평양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
    ‘조선 사람 조선 것’등의 구호를 내세웠다.
    3
    자작회,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의 단체가 활동하였다.
    4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함께 준비하였다.
    5
    대한매일신보 등 당시 언론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해설

    안내문의 발표 주제가 광문사 사장 김광제의 역할, 논설 ‘단연보국채’, 가족의 패물을 헌납한 조마리아의 애국 정신, 통감부의 대응과 탄압으로 이어진다는 점, 그리고 학술 대회가 열리는 2017년을 기준으로 110주년이라는 점에서 (가)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으로, 담배를 끊어 모은 돈과 부녀자들의 패물이 의연금으로 모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황성신문·제국신문 등 당시 언론이 모금 창구를 맡고 취지를 널리 알리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결국 통감부가 국채 보상 기성회의 양기탁에게 의연금 횡령 누명을 씌우는 방식으로 운동을 좌절시켰다.

    반면 평양에서 조만식의 주도로 시작되어 ‘조선 사람 조선 것’을 구호로 내걸고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 등이 활동한 것은 1920년대의 물산 장려 운동이며,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함께 준비한 것은 1926년의 6·10 만세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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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법령이 공포된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박상진의 주도로 대한 광복회가 조직되었다.
    2
    전국적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다.
    3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4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 방향을 밝힌 정우회 선언이 발표되었다.
    5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원산 노동자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해설

    제시된 법령은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과 독립운동 단체를 함께 겨냥한 이 조항은 일제가 1925년에 공포한 치안 유지법의 내용이다.

    따라서 이 법령이 공포된 뒤의 사실을 찾아야 하는데, 박상진이 주도하여 대한 광복회를 조직한 것은 1915년으로 치안 유지법 공포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대한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비밀 결사로서 군자금을 모아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나머지는 모두 1925년 이후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세력이 민족주의 세력과의 제휴를 표방한 정우회 선언이 1926년에 나왔고, 이를 배경으로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실인 신간회조선 농민 총동맹이 1927년에 결성되었으며,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한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1929년에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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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농촌 계몽을 위해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하였다.
    2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해체되었다.
    3
    단원인 이봉창이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4
    독립 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5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발송하려 하였다.
    해설

    제시된 판결문은 이승훈·윤치호·양기탁·임치정·안태국·유동열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면서, 이승훈이 안창호·이갑, 미국의 이대위·김유순, 러시아의 김성무 등과 함께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 청국 영토인 서간도에 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의 군사 교육을 실시하고 기회를 틈타 독립 전쟁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려 하였다고 적시하였다.

    안창호·양기탁 등이 1907년에 결성한 비밀 결사 신민회에 대한 서술이다. 신민회는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우고 태극 서관과 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남만주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하고 신흥 강습소를 세워 무장 투쟁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날조하여 다수의 애국지사를 검거하고 그중 105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신민회는 해체되었다. 위 판결문이 바로 그 재판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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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극 서관 운영
    2
    국문 연구소 설립
    3
    최초의 한글 신문 발행
    4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5
    개벽, 신여성 등의 잡지 간행
    해설

    대화에서 이윤재 선생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 학회를 창립하여 (가)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에는 조선어 학회의 활동이 들어가야 한다.

    조선어 연구회를 확대·개편하여 1931년에 출범한 조선어 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고 표준어를 사정하였으며,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다가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회원들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윤재도 이때 투옥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한편 태극 서관 운영은 신민회, 국문 연구소 설립은 대한 제국 학부,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은 1896년 서재필 등이 주도한 일이며, 개벽·신여성 등의 잡지 간행은 천도교가 세운 개벽사의 일이어서 조선어 학회와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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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만세보를 발행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다.
    2
    조만식, 이상재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3
    백정에 대한 시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였다.
    4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5
    고종의 인산(因山)을 기회로 삼아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다.
    해설

    그림은 형평사 창립 대회 장면으로, 연사가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성”이라고 하면서 이 운동이 우리들의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고 교육을 장려하여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이학찬 등이 조선 형평사를 세우고 전개한 형평 운동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된 뒤에도 호적에 도한(屠漢) 표시를 하는 등 백정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자, 이를 없애고 교육과 직업에서의 평등한 대우를 요구한 사회적 차별 철폐 운동이었다.

    만세보를 발행하여 민중 계몽에 힘쓴 것은 천도교, 조만식·이상재 등이 주도한 것은 물산 장려 운동과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다. 또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고 고종의 인산을 기회로 삼아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은 3·1 운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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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법령의 시행 결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총독부의 재정 수입이 증대되었다.
    2
    지계아문이 설치되어 지계가 발급되었다.
    3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농업 이민이 증가하였다.
    4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는 농민들이 늘어났다.
    5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보유 토지가 확대되었다.
    해설

    제시된 법령은 토지의 소유자가 조선 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소·성명·소재·지목·자번호·사표·등급·지적·결수 등을 임시 토지 조사 국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소유자나 임차인이 토지의 사방 경계에 표지판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1912년에 공포되어 토지 조사 사업의 근거가 된 토지 조사령이다.

    기한부 신고제로 운영된 이 사업의 결과 신고하지 않은 토지와 국유지가 조선 총독부에 귀속되어 총독부의 지세 수입이 크게 늘었고, 확보된 토지가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일본인에게 싼값으로 넘어가면서 일본인의 농업 이민이 늘었다. 반대로 경작권과 도지권 같은 관습적 권리를 잃은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이에 비해 지계아문을 설치하여 토지 소유권 증명서인 지계를 발급한 것은 1901년 대한 제국이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양전 사업의 내용으로, 토지 조사령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에 대한 제국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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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자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민족 대표 33인이 선언에 참여하였다.
    2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이었다.
    3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의 요청으로 작성되었다.
    4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도쿄에서 발표되었다.
    5
    독립 청원을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되었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강도 일본을 쫓아내려면 오직 혁명으로만 가능하며”,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민중의 직접 폭력 혁명으로 일제의 통치를 타도하고 이상적 조선을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신채호가 1923년에 집필한 조선 혁명 선언으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요청을 받아 작성한 의열단의 활동 지침이다. 외교론과 준비론을 비판하고 민중 직접 혁명론을 내세운 점이 핵심이며, 이 노선에 따라 김상옥·나석주 등이 식민 통치 기관을 겨냥한 의거를 벌였다.

    민족 대표 33인이 참여한 것은 기미 독립 선언서, 도쿄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발표한 것은 2·8 독립 선언, 독립 청원을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된 것은 김규식이 가져간 독립 청원서이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은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기초한 1941년의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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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숭무 학교 설립과 무장 투쟁 준비
    2
    한인 애국단 결성과 항일 의거 활동
    3
    권업회 조직과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4
    한국 광복군 창설과 국내 정진군 훈련
    5
    국민 대표 회의 참여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활동
    해설

    표는 보재 이상설의 활동을 지역별로 정리한 것으로, 국내(서울)에서는 을사늑약 체결 비판과 을사 5적 처단 상소, 간도에서는 서전서숙 설립과 민족 교육,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되어 을사늑약의 부당성 폭로, 미국에서는 애국 동지 대표자 회의 참석과 국민회 결성 기여, 중국(상하이)에서는 신한 혁명당 결성이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가)에는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활동이 들어가야 한다.

    이상설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근거로 1911년 권업회를 조직하여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의 경제·교육 기반을 다졌으며, 1914년에는 이동휘 등과 함께 최초의 망명 정부 형태인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여 무장 독립 전쟁을 준비하였다.

    멕시코에서 숭무 학교를 세운 것은 이근영 등, 한인 애국단 결성은 김구, 한국 광복군 창설과 국내 정진군 훈련은 1940년대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일이다. 1923년 국민 대표 회의는 이상설이 1917년에 순국한 뒤의 일이므로 그의 활동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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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협정이 적용된 시기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경부 고속 국도를 개통하였다.
    2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3
    제분ㆍ제당ㆍ면방직의 삼백 산업이 성장하였다.
    4
    3저 호황으로 물가가 안정되고 수출이 증가하였다.
    5
    대통령의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였다.
    해설

    제시된 협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경제적 위기를 방지하고 국력 부흥을 촉진하기 위해 미합중국 정부에 재정적·물질적·기술적 원조를 요청하였고 미국이 이를 제공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한·미 원조 협정이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말에 체결되어 1950년대 미국의 대한 원조가 이루어지는 근거가 되었다.

    이 시기 원조는 주로 밀·원면·원당 같은 소비재와 잉여 농산물 형태로 들어왔고, 이를 가공하는 제분·제당·면방직의 삼백 산업이 성장하며 소비재 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값싼 농산물의 대량 유입으로 국내 농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경부 고속 국도 개통은 1970년, 3저 호황은 1980년대 중후반, 대통령 긴급 명령에 의한 금융 실명제 실시는 1993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입은 1996년의 일로 모두 원조 경제 시기 이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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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다)의 전선을 전쟁이 진행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2
    (가) - (다) - (나)
    3
    (나) - (가) - (다)
    4
    (나) - (다) - (가)
    5
    (다) - (가) - (나)
    해설

    지도에는 북한군의 남침(1950. 6. 25.)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전선 변화가 표시되어 있다. (가)는 압록강 부근까지 올라간 국군·유엔군 최대 북진선, (나)는 서울 남쪽까지 내려온 중국군 최대 남진선, (다)는 대구·부산 일대를 감싸는 국군·유엔군 최후 방어선이다.

    전쟁은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국군이 계속 밀리면서 낙동강 일대의 최후 방어선까지 후퇴한 데서 출발한다. 이어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뒤집혀 서울을 되찾고 38도선을 넘어 압록강 부근까지 북진하였다.

    그러나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밀려 1951년 1월 서울을 내주는 1·4 후퇴가 일어났고, 이후 38도선 부근에서 공방을 거듭하다가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지도에 보이는 휴전선이 확정되었다. 따라서 전선의 순서는 최후 방어선 → 최대 북진선 → 중국군 최대 남진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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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2
    간도 참변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3
    중국 관내(關內)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4
    남만주 지역에서 결성된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이었다.
    5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해설

    자료는 이규채 신문 조서로, 임시 대회에서 중국군과 합작하기로 결의한 뒤 총사령 지청천이 각지에 흩어진 독립군 60명을 모아 일대로 편성하고, 지린성 자위군 왕즈웨이(王之維)가 인솔하는 약 10만 군과 연합하여 싸우다 헤이룽장으로 향했다는 내용이다. 지청천이 총사령이고 중국 지린성 자위군·호로군과 한중 연합 작전을 폈다는 점에서 (가)는 한국독립군이다.

    한국독립군은 한국독립당의 군사 조직으로 1930년대 전반 북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며 쌍성보·사도하자·동경성 전투에 이어 대전자령에서 일본군을 매복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이 부대의 대표적 전과이다.

    간도 참변 뒤 조직을 정비해 자유시로 이동한 것은 서일·홍범도 등이 결집한 대한독립군단이고, 중국 관내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김원봉이 이끈 조선 의용대이다. 남만주에서 결성된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은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이며, 홍범도 부대와 연합해 청산리에서 싸운 것은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로 모두 시기와 계통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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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가)에 들어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장면 내각이 출범하는 배경이 되었다.
    2
    4ㆍ13 호헌 조치의 철폐를 요구하였다.
    3
    굴욕적인 한ㆍ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4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와 무력 진압에 항거하였다.
    5
    3ㆍ1 민주 구국 선언을 통하여 유신 체제에 저항하였다.
    해설

    자료의 안내 장면은 이승만의 장기 독재에 저항하여 일어난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김주열 열사의 묘소를 소개하고 있다.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설명하므로, (가)는 4·19 혁명이다.

    전국으로 번진 시위와 대학 교수단의 시국 선언에 밀려 이승만이 하야하였고, 허정 과도 정부 아래에서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이 이루어져 총선 결과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따라서 이 운동은 장면 내각 성립의 직접적 배경이 된다.

    4·13 호헌 조치 철폐를 요구한 것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것은 1964년 6·3 시위이다. 신군부의 계엄 확대와 무력 진압에 항거한 것은 5·18 민주화 운동, 3·1 민주 구국 선언으로 유신 체제에 저항한 것은 1976년의 일로 모두 시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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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6회
    다음 선언을 발표한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남북 조절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실시하였다.
    3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4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다.
    5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최초로 성사시켰다.
    해설

    제시된 선언은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제1항과,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제2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발표된 6·15 남북 공동 선언으로, 김대중 정부 시기의 성과이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추진하여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실시하였고,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 공단 조성 합의 등 남북 교류를 확대하였다.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은 7·4 남북 공동 성명에 따른 박정희 정부의 조치이고,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 때의 일이다.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은 노무현 정부, 이산가족 고향 방문의 최초 성사는 전두환 정부 시기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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