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거푸집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하였다.
    2
    지배자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3
    반달 돌칼을 이용하여 곡식을 수확하였다.
    4
    가락바퀴와 뼈바늘을이용하여 옷을 이젔다.
    5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거주하였다.
    해설

    찍개·찌르개 등 뗀석기를 처음 사용하였고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가 전시되는 시대는 구석기 시대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거리를 구하며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 머물렀다. 가락바퀴는 신석기, 반달 돌칼과 고인돌은 청동기, 거푸집으로 만든 세형 동검은 철기 시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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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자료는 여러 대인과 왕이 몰래 연개소문을 죽이려 논의하다 일이 새어 나가자, 연개소문이 부병을 모아 놓고 손님으로 온 이들 1백여 명을 살해한 뒤 궁궐로 들어가 왕을 시해하고 왕제의 아들 장(보장왕)을 왕으로 세운 다음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다. 이는 642년 연개소문의 정변이다.

    연표는 589년 수의 중국 통일, 612년 살수 대첩, 618년 당의 건국, 645년 안시성 전투, 660년 황산벌 전투, 676년 기벌포 전투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연개소문의 정변이 일어난 642년은 당의 건국(618)과 안시성 전투(645) 사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당 태종은 연개소문의 왕 시해와 대당 강경책을 구실로 고구려를 침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안시성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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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2
    (가)-박, 석,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3
    (나)-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4
    (나)-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5
    (가), (나)-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
    해설

    (가)는 동이 지역 중에서 가장 평탄하고 넓어 토질이 오곡이 자라기 알맞고, 12월에 제천 행사를 열어 크게 모여 마시고 노래하며 이때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를 풀어 주며, 전쟁이 나면 하늘에 제사하고 소를 잡아 그 발굽으로 길흉을 점쳤다고 하였다. 이는 영고와 우제점법으로 유명한 부여이다.

    (나)는 넓이가 사방 2천 리이고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아 사람들이 산골짜기에 의지해 살며, 혼인하면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살다가 자식이 장성한 뒤 돌아오고(서옥제), 금과 은, 재물을 다 써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든 뒤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는다고 하였다. 이는 고구려이다.

    부여는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加)들이 각각 사출도를 주관하는 연맹 왕국이었으므로, 부여에 대한 설명으로 옳다.

    박·석·김의 왕위 교대 계승은 신라, 10월의 무천과 책화는 동예,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풍속이므로 부여나 고구려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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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대승기신론소,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였다.
    2
    화랑도의 규범으로 세속 5계를 제시하였다.
    3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종을 정리하였다.
    4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다.
    5
    당에서 귀국하여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을 건의하였다.
    해설

    인물 카드에는 생몰이 617년~686년, 아버지는 담날, 아들은 설총이라 적혀 있고, 주요 활동으로 무애가를 지어 불교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모든 진리는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 사상을 주장했다고 되어 있다. (가) 인물은 원효이다.

    원효는 종파 간의 대립을 넘어서기 위해 십문화쟁론을 지어 화쟁 사상을 폈고,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해 불교 교리를 깊이 있게 정리하였다. 또 아미타 신앙을 전파하며 어려운 교리를 모르는 백성도 염불로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하여 불교를 대중화하였다.

    세속 5계는 원광, 화엄일승법계도는 의상, 왕오천축국전은 혜초,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 건의는 자장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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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무덤 양식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모줄임 천장 구조로 되어 있다.
    2
    (가) - 무덤의 둘레돌에 12지 신상을 새겼다.
    3
    (나) - 대표적인 무덤으로 황남대총이 있다.
    4
    (나) - 내부의 천장과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5
    (가), (나) -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해설

    학습 카드의 (가)는 나무로 덧널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쌓은 후 흙(봉토)을 덮은 무덤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신라에서 주로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이며, 도굴이 어려워 부장품이 많이 남았고 황남대총·천마총이 대표적이다.

    (나)는 돌로 널길과 널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무덤으로,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어 추가로 매장할 수 있었다.

    굴식 돌방무덤은 널방의 천장과 벽에 벽화를 그리기도 하였는데, 고구려의 무용총·강서대묘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돌로 널길과 널방을 만든 무덤에 대한 설명으로 옳다.

    모줄임 천장 구조와 둘레돌에 12지 신상을 새긴 것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 계통의 특징이므로 돌무지덧널무덤의 설명이 될 수 없고, 황남대총은 돌무지덧널무덤이므로 굴식 돌방무덤의 사례가 아니다.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은 무령왕릉 같은 벽돌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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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자료는 (가)의 왕인 김구해가 왕비와 세 아들 노종·무덕·무력을 데리고 나라의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 항복하자, 법흥왕이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의 벼슬과 본국을 식읍으로 주었으며 아들 무력은 각간에 이르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다. 따라서 (가)는 532년 신라에 병합된 금관가야이다.

    금관가야는 김해를 중심으로 낙동강 하류의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낙랑·왜와 중계 무역을 하였다. 그래서 대성동 고분군 등 가야 유적에서는 철제 판갑옷과 투구, 철제 무기와 덩이쇠가 다수 출토된다.

    제시된 보기 중 가야의 문화유산은 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판갑옷이다.

    나머지는 광배가 있는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고구려), 화려한 뚜껑 장식과 용 받침의 금동 대향로 및 곁가지가 달린 칠지도(백제), 그리고 뚜껑이 있는 청동 합으로 모두 가야의 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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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광개토 대왕이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쳤다.
    2
    진흥왕이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3
    소수림왕이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4
    개로왕이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북위에 국서를 보냈다.
    5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해설

    제시된 두 자료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앞 자료는 장수왕 15년(427년) 평양 천도이고, 뒤 자료는 고구려왕 거련(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왕 (개로왕)이 아들 문주를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했으나 이미 한성이 함락되고 왕도 피살되었다는 475년 한성 함락 기사이다.

    따라서 물어보는 시기는 427년부터 475년 사이이다. 이 시기에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해 북위에 국서를 보내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다(472년). 이것이 두 자료 사이에 들어가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난다. 소수림왕의 태학 설립·율령 반포(372년),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과 고국원왕 전사(371년), 광개토 대왕의 왜 격퇴(400년)는 모두 평양 천도 이전의 일이고, 진흥왕이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한 것은 6세기 신라의 일로 한성 함락 이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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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라)를 시행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나) -(다) - (라)
    2
    (가) -(다) -(라) - (나)
    3
    (나) -(라) -(가) - (다)
    4
    (다) -(나) -(가) - (라)
    5
    (라) -(가) -(나) - (다)
    해설

    자료는 삼국사기로 보는 통일 신라의 토지 제도 네 가지다. 각각 문무 관료전 지급, 내외 관료의 녹읍 폐지와 해마다 조(租)를 차등 하사, 처음으로 백성에게 정전 지급, 매달 주던 녹봉을 없애고 다시 녹읍을 지급이다.

    시행 시기는 문무 관료전 지급이 신문왕 7년(687년), 녹읍을 폐지하고 조를 해마다 차등 지급한 것이 신문왕 9년(689년), 백성에게 정전을 나누어 준 것이 성덕왕 21년(722년), 녹봉을 없애고 녹읍을 부활시킨 것이 경덕왕 16년(757년)이다.

    즉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정전 지급 → 녹읍 부활의 차례가 된다. 왕권이 강화되던 신문왕 대에 귀족의 경제 기반인 녹읍을 없앴다가, 귀족 세력이 다시 힘을 얻은 경덕왕 대에 녹읍이 되살아났다는 흐름으로 기억하면 순서를 잡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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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인안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2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공격하였다.
    3
    수도를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옮겼다.
    4
    대문예로 하여금 흑수 말갈을 정벌하게 하였다.
    5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해설

    검색 결과에 재위 기간 737년~793년, 이름 대흠무, 존호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 자녀 정혜 공주·정효 공주가 제시되어 있다. 이는 발해 문왕에 해당한다.

    문왕은 당과 친선 관계를 맺고 체제를 정비하면서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수도를 옮겼고, 뒤에 다시 동경 용원부로 천도하였다. 연호로는 대흥을 사용하였다.

    인안이라는 연호 사용, 장문휴를 보낸 당의 등주 공격, 대문예에게 명한 흑수 말갈 정벌은 모두 문왕의 아버지인 무왕 때의 일이며,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운 인물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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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경재소를 두어 유향소를 통제하였어요.
    2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어요.
    3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였어요.
    4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을 두었어요.
    5
    관찰사를 보내어 관할 고을의 수령을 감독하였어요.
    해설

    지도에는 한주·삭주·명주·웅주·상주·전주·무주·강주·양주의 주와 함께 북원경(원주)·중원경(충주)·서원경(청주)·남원경(남원)·금관경(김해)이 표시되어 있고, 수도 금성이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쳐 있다. 이는 통일 신라의 9주 5소경 체제를 나타낸 지도이다.

    통일 신라는 수도가 국토 동남쪽에 치우친 약점을 보완하려고 요충지에 5소경을 두었고, 지방관의 비리를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을 파견하였다. 또 지방 세력을 견제하려고 그 자제를 수도에 머물게 하는 상수리 제도도 운영하였다.

    유향소를 통제한 경재소, 고을 수령을 감독한 관찰사는 조선의 제도이고, 왕족을 파견한 22담로는 백제 무령왕 대의 지방 통치, 전국 주요 지역의 12목은 고려 성종이 설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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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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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2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되었다.
    3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4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5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해설

    첫 자료는 넷째 아들 금강을 총애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형인 신검·양검·용검이 불만을 품었다는 내용이고, 둘째 자료는 그가 바다를 건너 고려에 귀부하며 역적인 아들을 베고자 한다고 청한 내용이다. 두 자료의 인물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견훤은 완산주를 근거로 후백제를 세우고 중국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제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였다. 뒤에 큰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해 고려 왕건에게 귀순하였다.

    김흠돌의 반란 진압은 신라 신문왕, 경주의 사심관 임명은 신라 마지막 왕 김부(경순왕),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한 것은 궁예,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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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사이에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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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가 주도로 해동통보가 발행되었다.
    2
    인사 행정을 담당하던 정방이 폐지되었다.
    3
    관학 진흥을 위해 전문 강좌인 7재가 개설되었다.
    4
    호구의 정확한 파악을 위해 호패법이 실시되었다.
    5
    처음으로 직관∙산관 각 품의 전시과가 제정되었다.
    해설

    앞 자료는 쌍기가 과거 제도의 실시를 건의하여 지공거가 되고 진사 갑과에 최섬 등 2인, 명경업 3인, 복업 2인을 뽑았다는 내용으로 광종 9년(958년)의 과거제 시행이다. 뒤 자료는 최승로가 지방 세력의 백성 침탈을 막기 위해 외관을 두라고 상서한 내용으로 성종 초의 시무 28조에 해당한다.

    따라서 물어보는 시기는 광종 대와 성종 대 사이, 곧 경종 대이다. 경종 원년(976년)에는 관품과 인품을 함께 따져 직관·산관 각 품에게 처음으로 전시과를 지급한 시정 전시과가 마련되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해동통보 발행은 숙종, 관학 진흥을 위한 7재 개설은 예종 대의 일이고, 인사 행정을 맡던 정방은 무신 정권기에 설치되어 충선왕·공민왕 대의 개혁 과정에서 혁파되었으며, 호패법 실시는 조선 태종 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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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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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려 출신으로 구성된 항마군이 있었다.
    2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 9성 일대를 확보하였다.
    3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설치되었다.
    4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만든 사병 조직이다.
    5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항쟁하였다.
    해설

    대화에서 개경 환도 결정에 반발하여 봉기한 조직을 소개하고 있고, 화면의 자료는 고려첩장불심조조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추대한 이 조직이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를 그 이전의 고려 국서와 비교해 정리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 조직은 삼별초이다.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던 삼별초는 1270년 개경 환도가 결정되자 배중손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강화도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대몽 항쟁을 이어 갔다. 일본에 국서를 보내 연합을 꾀한 사실이 고려첩장불심조조로 확인된다.

    승려로 구성된 항마군을 포함하고 여진을 정벌해 동북 9성을 확보한 것은 윤관의 별무반,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설치된 것은 정종 때의 광군,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만든 사병 조직은 도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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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사초,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하였다.
    2
    (가) -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 등을 수록하였다.
    3
    (나) -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4
    (나) -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
    (가), (나) - 고구려 건국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 형태로 서술 하였다.
    해설

    앞 역사서는 1145년(인종 23)에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고 본기 28권·지 9권·표 3권·열전 10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으므로 기전체 사서인 삼국사기이다. 뒤 역사서는 1287년(충렬왕 13)에 이승휴가 펴냈고 상권은 중국사, 하권은 우리나라 역사를 담았다고 하였으므로 제왕운기이다.

    제왕운기는 우리 역사를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부터 서술하여 중국사와 대등한 흐름으로 정리하였다. 원 간섭기라는 상황에서 민족의 자주 의식을 드러낸 서사시 형식의 역사서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 민간 설화를 실은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제왕운기가 아니며, 고구려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쓴 것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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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원 간섭기에 첨의부로 격하되었다.
    2
    고려 말에 도평의사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3
    소속 관원이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4
    공민왕 때 내정 개혁의 일환으로 운영되었다.
    5
    최씨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 기구로 활용되었다.
    해설

    용어 해설에서 토지와 노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기구로, 빼앗긴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본래 신분으로 되돌리며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뒤 폐지와 설치를 거듭했다고 하였다. 관련 사료에는 신돈이 이 기구의 설치를 청하고 스스로 판사가 되었다고 나온다. 이 기구는 전민변정도감이다.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이 신돈을 등용해 추진한 내정 개혁의 핵심 수단으로 운영되었다.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와 노비를 돌려주어 국가 재정과 양인 확보를 꾀했고, 사료의 표현대로 온 나라 사람들이 기뻐할 만큼 호응을 얻었다.

    원 간섭기에 첨의부로 격하된 것은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고려 말에 도평의사사로 바뀐 것은 도병마사, 소속 관원이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린 것은 어사대, 최씨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 기구는 교정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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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대화의 왕이 재위했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주자소가 설치되어 계미자가 주조되었다.
    2
    전통 한의학을 정리한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3
    음악 이론 등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이 간행되었다.
    4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되었다.
    5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인 칠정산 내편이 편찬되었다.
    해설

    대화에서 신하가 서거정 등이 동국통감을 완성하여 바쳤다고 하며 삼국 이래의 여러 역사책과 중국 역사에서 가려 뽑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고 아뢰고 있다. 동국통감이 완성된 것은 1485년이므로 대화 속 왕은 조선 성종이다.

    성종 대에는 문물 제도를 정비하는 편찬 사업이 활발하여, 경국대전이 완성·반포되었고 성현 등이 음악 이론과 악기·무용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간행하였다(1493년). 이 밖에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도 이 시기의 결실이다.

    주자소를 설치해 계미자를 주조하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든 것은 태종, 한양을 기준으로 삼은 역법서 칠정산 내편을 편찬한 것은 세종, 전통 한의학을 정리한 동의보감이 완성된 것은 광해군 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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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였다.
    2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였다.
    3
    일본에 다녀와서 해동제국기를 편찬하였다.
    4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다.
    5
    성학십도에서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태조 이성계에게 지어 바친 법전으로, 경제육전과 경국대전의 모체가 되었다고 평가받는 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이 책에서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한 인물이 도성의 축조 계획을 세우고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지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책은 조선경국전이며, 이를 지은 인물은 조선 건국을 설계한 정도전입니다. 그는 재상이 실질적으로 국정을 총괄해야 한다는 재상 중심의 정치 운영론을 폈고, 한양 천도 후 도성과 궁궐·전각의 이름을 직접 지었습니다.

    정도전은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의 교리를 조목조목 반박한 불씨잡변을 저술하여 불교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는 고려 말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성리학을 새 왕조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려 한 작업이었습니다.

    참고로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인물은 수양대군(세조), 해동제국기를 편찬한 인물은 신숙주, 기축봉사를 올린 인물은 송시열, 성학십도를 지은 인물은 이황으로 각각 구별해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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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윤임이 제거되었다.
    2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3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고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다.
    4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5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김굉필 등이 처형되었다.
    해설

    (가)는 김일손이 사초에 부도한 말로 선대의 일을 기록하고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는 이유로 국문을 명한 내용으로, 무오사화(1498, 연산군 4년)에 해당합니다. (나)는 대사헌 조광조 등이 반정 공신 책봉이 부당하다며 공(功)과 이(利)를 탐하는 근원을 막아야 한다고 아뢴 내용으로, 위훈 삭제를 주장한 1519년(중종 14년)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두 시기 사이는 연산군 대 후반부터 중종 대 전반까지입니다. 이 사이에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건의 전말이 연산군에게 알려지면서 갑자사화(1504)가 일어나 김굉필 등 많은 사림과 훈구 인사가 처형되었습니다.

    나머지 사실들은 시기가 어긋납니다. 외척 간 다툼으로 윤임이 제거된 을사사화는 1545년, 이조 전랑 문제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린 것은 1575년, 이괄의 난은 1624년, 인현 왕후 폐위와 남인 집권(기사환국)은 1689년으로 모두 (나)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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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상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혜상공국을 통해 보호받았다.
    2
    금난전권이라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3
    전국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설치하였다.
    4
    책문 후시를 통해 대청 무역을 주도하였다.
    5
    포구에서 중개∙금융∙숙박업 등에 주력하였다.
    해설

    제시된 장면은 조선 시대 상점 터가 확인된 종로 피맛골 발굴 현장을 소개하면서, 조선 정부가 이 일대에 행랑을 지어 상가를 조성하고 (가)에게 빌려주었으며 (가) 중에는 육의전 상인이 대표적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지어 준 점포를 받아 영업한 이들은 시전 상인입니다. 시전 상인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의무를 지는 대신 특정 물종을 독점 판매할 권리를 보장받았고, 그 가운데 규모가 큰 여섯 점포가 육의전이었습니다.

    시전 상인이 누린 대표적 특권이 금난전권으로, 허가받지 않은 상인의 난전을 단속하고 물러가게 할 수 있는 권한이었습니다. 이 특권은 정조 대 신해통공(1791)으로 육의전을 제외하고 폐지되었습니다.

    한편 보부상을 보호한 기구는 혜상공국, 송방이라는 지점망을 둔 상인은 송상, 책문 후시로 대청 무역을 주도한 상인은 만상, 포구에서 중개·금융·숙박업에 주력한 상인은 객주와 여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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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전쟁’의 영향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북방에 4군 6진이 개척되었다.
    2
    이종무에 의해 대마도가 정벌되었다.
    3
    청에 당한 치욕을 갚자는 북벌론이 전개되었다.
    4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되었다.
    5
    외적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해설

    제시된 사진은 김준룡 장군 전승비 및 비각으로, 설명에는 이 전쟁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란한 국왕을 구하기 위해 근왕병을 이끌고 올라와 누르하치의 사위인 적장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다고 나와 있습니다.

    국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란하고 상대가 후금을 이은 청군이라는 점에서 이 전쟁은 병자호란(1636~1637)입니다. 김준룡은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을 크게 무찔렀으나, 인조는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하고 청과 군신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치욕의 결과 효종 대에는 청에 당한 수치를 씻자는 북벌론이 전개되어, 송시열 등과 함께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반면 4군 6진 개척과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계해약조 체결은 모두 조선 전기 세종 대 전후의 일이며, 비변사가 처음 설치된 것은 중종 대 삼포왜란을 계기로 한 일이어서 이 전쟁의 영향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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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반에게도 군포를 납부하게 하였다.
    2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어 전세를 부과하였다.
    3
    어장세, 염전세, 선박세를 거두어 군사비로 충당하였다.
    4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에게 결작을 징수하였다.
    5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부하는 공인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해설

    제시된 만기요람의 기록에는 좌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이 법을 처음 시행하여 백성의 토지에서 미곡을 거두어 서울로 옮기게 했으며, 먼저 경기에서 시작하고 선혜청을 설치하였고, 이후 충청도와 황해도로 확대되었다고 나옵니다.

    이원익의 건의, 경기 우선 시행, 선혜청 설치라는 세 요소가 모두 가리키는 것은 대동법입니다. 대동법은 집집마다 현물 특산물을 내던 공납을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베·동전으로 내게 바꾼 제도로,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에서 시작되어 숙종 대에 전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국가가 현물 대신 쌀을 거두게 되자, 정부의 위탁을 받아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하는 공인이 등장하였습니다. 공인의 대량 구매 활동은 상품 화폐 경제와 수공업 발달을 촉진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한편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리자는 주장은 호포론,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전세를 매긴 것은 연분 9등법, 어장세·염전세·선박세 징수와 결작 부과는 균역법의 재정 보충책으로 서로 구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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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생선을 팔고 상평통보를 받는 상인
    2
    장시에서 탈춤 공연을 벌이는 광대
    3
    시사(詩社)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중인
    4
    직전법에 의해 수조권을 지급받는 관리
    5
    고추, 인삼 등을 상품 작물로 재배하는 농민
    해설

    제시된 그림은 김득신의 풍속화로, 병아리를 물고 도망가는 고양이와 이에 놀란 닭, 긴 담뱃대로 이를 제지하려는 남성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조용한 여염집에서 벌어진 소동을 그렸다 하여 파적도(破寂圖)라고도 불립니다.

    김득신의 풍속화가 그려진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고, 장시에서 탈춤과 판소리 공연이 성행하였으며, 중인들이 시사(詩社)를 조직해 위항 문학 활동을 벌였고, 고추·인삼·담배 같은 상품 작물 재배가 확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직전법에 따라 수조권을 지급받는 관리입니다. 직전법은 세조 때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주도록 만든 제도로 명종 대에 이미 폐지되었으므로, 조선 후기 풍속화의 시대 배경과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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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사료는 남연군방(南延君房)의 차지중사가 아뢴 내용으로, 덕산의 묘지에 서양 놈들이 침입하여 무덤을 훼손한 변고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1868)입니다.

    연표를 보면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와 1866년 병인양요 사이가 (가),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사이가 (나), 1871년과 1876년 강화도 조약 사이가 (다), 1876년과 1884년 갑신정변 사이가 (라), 1884년과 1894년 갑오개혁 사이가 (마)입니다.

    1868년은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사이에 놓이므로 (나)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 사건으로 서양에 대한 반감이 커져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더욱 강경해졌고, 이후 신미양요를 겪은 뒤 척화비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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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가상 인터뷰의 왕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하였다.
    2
    국경을 정한 백두산 정계비를 건립하였다.
    3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4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다.
    5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고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해설

    가상 인터뷰에서 왕은 팔순을 맞이하여 재위 기간의 치적을 쓴 어제문업을 남겼다고 하며, 그 내용으로 탕평과 청계천 준설 등 여섯 가지 치적을 기록하였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52년이라는 긴 재위 끝에 팔순을 넘겼고 탕평책과 청계천 준설을 대표 업적으로 꼽은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탕평비를 세우고 서원을 정리했으며, 균역법을 실시해 군포를 1필로 줄이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는 등 민생 안정에도 힘썼습니다.

    영조는 문물 제도를 정비하는 편찬 사업도 활발히 벌여, 우리나라의 지리·정치·경제·문화 등 역대 문물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밖에 속대전과 속오례의도 이때 간행되었습니다.

    한편 홍문관 설치는 성종,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경복궁 중건은 고종(흥선 대원군), 삼정이정청 설치는 철종 대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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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하였다.
    2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었다.
    3
    양반전에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지적하였다.
    4
    의산문답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였다.
    5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내세웠다.
    해설

    제시된 지도는 한성에서 의주를 거쳐 심양·산해관·북경을 지나 열하에 이르는 경로를 붉은 선으로 표시한 것으로, 연행사를 따라 청에 다녀온 길을 나타냅니다. 설명에는 연암이라는 호를 쓴 그가 청에서 보고 들은 것을 여행기로 남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연암이라는 호와 열하까지 다녀온 견문록 열하일기가 가리키는 인물은 박지원입니다. 그는 청의 발달한 문물을 목격한 뒤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한 중상학파 실학자입니다.

    박지원은 소설 형식의 글을 통해 당대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했는데, 그중 양반전에서는 양반 신분을 사고파는 이야기를 통해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지적하였습니다. 허생전과 호질도 그의 대표작입니다.

    이와 달리 양명학을 연구해 강화 학파를 이룬 인물은 정제두, 서얼 출신 규장각 검서관은 이덕무·박제가 등, 의산문답으로 중국 중심 세계관을 비판한 인물은 홍대용, 우서를 지은 인물은 유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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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두었다.
    2
    국경 지대인 양계에 설치되었다.
    3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창설되었다.
    4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 주축을 이루었다.
    5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친위 부대였다.
    해설

    제시된 비망기에서 왕은 적의 난리를 겪는 2년 동안 군사 한 명을 훈련시키거나 무기 하나를 수리한 것이 없이 명의 군대만 바라보았다고 자책하면서, 따로 (가)를 설치해 인원을 차출하여 장정을 뽑아 활을 익히고 조총을 쏘게 하는 등 모든 무예를 훈련시키자고 명하고 있습니다.

    명군의 참전, 조총 훈련이라는 정황으로 보아 이는 임진왜란 중 선조가 내린 명이며, (가)는 1593년에 설치된 훈련도감입니다. 훈련도감은 명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의 절강병법을 받아들여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 체제로 편성되었습니다.

    훈련도감의 가장 큰 특징은 병사들이 일정한 급료를 받는 직업 군인, 곧 상비군으로 주축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농민이 번갈아 복무하던 이전의 병농일치 방식과 크게 달랐고, 그 비용은 삼수미세로 충당하였습니다.

    참고로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둔 부대는 장용영, 양계에 설치된 부대는 고려의 주진군,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창설된 부대는 총융청·수어청,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친위 부대는 고려의 2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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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최혜국 대우 조항이 포함되었다.
    2
    천주교 선교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3
    양곡의 수출을 허용하고 관세를 설정하지 않았다.
    4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부임하는 계기가 되었다.
    5
    부산, 원산, 인천에 개항장이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설

    제시된 궁궐 안 장면에서 고종은 "그 나라의 부강함은 천하제일"이라 묻고, 전권대신 민영익은 "곡식이 생산되는 땅이 많고 상무(商務)가 가장 왕성하다"고 답한다. 결정적 단서는 고종의 "대통령이 이번에 바뀌었다고 하던가?"라는 물음으로, 상대국이 미국임을 알려 준다. 즉 밑줄 그은 조약은 미국 공사 부임의 근거가 된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이며, 민영익 일행은 그 답례로 파견된 보빙사이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제3국의 압박이 있을 때 서로 돕는다는 거중조정 조항과 함께 최혜국 대우가 처음으로 명문화되었다. 이 최혜국 대우 규정은 이후 다른 열강이 조선에서 얻은 이권을 미국도 자동으로 누리게 하는 통로가 되었다.

    천주교 선교를 사실상 허용한 것은 조프(조·프랑스) 수호 통상 조약이고, 양곡의 무제한 유출과 무관세를 허용한 것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협정인 조일 무역 규칙이다.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온 것은 제1차 한일 협약의 결과이며, 부산·원산·인천 개항은 강화도 조약(1876)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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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정여립의 모반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2
    최제우가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되었다.
    3
    홍경래 등의 봉기로 정주성이 점령되었다.
    4
    이승훈, 정약용 등이 연루되어 처벌되었다.
    5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해설

    화면 속 책은 사학징의(邪學懲義)로, 설명문에 "1801년(순조 1)에 일어난 (가)의 진행 과정을 기록한 책"이며 "정순 왕후의 명령에 따라 사학(邪學) 죄인들을 문초한 내용"이 형조·포도청 기록과 함께 실려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사학은 천주교를 가리키므로 (가)는 신유박해이다.

    정조 사후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 왕후와 노론 벽파는 천주교 금압을 명분으로 남인 시파 세력을 대대적으로 제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승훈정약용 형제 등이 연루되어 처벌받았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은 선조 대의 기축옥사이고, 최제우가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된 것은 1864년의 일이다. 홍경래의 봉기로 정주성이 점령된 것은 1811년,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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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외규장각 도서의 약탈 과정을 살펴본다.
    2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배경을 분석한다.
    3
    아관 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 사례를 조사한다.
    4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의 전개 과정을 알아본다.
    5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된 특사의 활동 내용을 파악한다.
    해설

    학술 대회 안내문은 동비토록(東匪討錄)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발표 주제로 "무장(茂長) 포고문에 나타난 보국안민 사상", "초토사 홍계훈이 올린 장계를 통해 본 조정의 입장", "청과 일본 군대의 조선 상륙과 청·일 전쟁의 전개 과정"을 제시하였다. 무장 포고문, 초토사 홍계훈, 청·일 군대 상륙은 모두 동학 농민 운동(1894)을 가리키는 표지이다.

    따라서 이 운동을 탐구하려면 농민군이 전라 감영군을 격파한 황토현 전투와 홍계훈이 이끈 경군을 물리친 황룡촌 전투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 전투의 승리로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하였고, 이에 조정이 청군을 부르자 일본군도 상륙하여 청·일 전쟁으로 이어졌다.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병인양요,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은 1885년, 열강의 이권 침탈 심화는 아관 파천 이후, 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의 일로 모두 이 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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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되었다.
    2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3
    왕조의 통치 규범을 재정비한 대전통편이 편찬되었다.
    4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5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인정한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었다.
    해설

    제시된 매천야록의 기록은 대원군이 군국사무를 맡아 궐내에 거처하면서 통리기무아문과 무위영·장어영을 폐지하고 5영의 군제를 복구하였으며, 군료(軍料)를 지급하도록 하고 난병(亂兵)에게 해산을 명하였다고 전한다. 구식 군인의 밀린 급료 문제와 신식 군제의 철폐가 함께 나타나므로, 이는 임오군란(1882)으로 흥선 대원군이 일시 재집권한 상황이다.

    임오군란은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되고 대원군이 청에 납치되면서 끝났는데, 군란 중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은 조선과 제물포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서울 주둔을 인정하게 되어, 일본군이 합법적으로 도성에 머무는 길이 열렸다.

    척화비 건립(1871),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1876), 조선책략에 반발한 영남 만인소(1881)는 모두 이 사건보다 앞선 일이며, 대전통편은 정조 대에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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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 (마)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지주 문재철의 횡포에 맞선 소작 쟁의가 발생하였다.
    2
    (나) - 상권 수호를 위해 황국 중앙 총상회가 조직되었다.
    3
    (다) - 김광제 등의 발의로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다.
    4
    (라) - 토산품 애용을 위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되었다.
    5
    (마) -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해 조선 형평사가 창립되었다.
    해설

    지도에는 다섯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서북쪽에서부터 평양, 서울, 남서 해안의 목포가 차례로 나오고, 영남 쪽에는 위에 대구, 그 아래 남해안 가까이 진주가 표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에서는 1898년 시전 상인들이 외국 상인의 내륙 침투에 맞서 상권을 지키기 위해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고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지주 문재철의 횡포에 맞선 소작 쟁의는 평양이 아니라 전남 신안 암태도에서 일어났고, 김광제 등의 발의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은 목포가 아니라 대구에서 비롯되었다.

    토산품 애용을 내건 조선 물산 장려회는 진주가 아니라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발족시켰으며,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내세운 조선 형평사는 대구가 아니라 진주에서 창립되었다. 모두 지도에 표시된 지역과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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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글이 작성된 이후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국한문 혼용체의 황성신문이 발간되었다.
    2
    교원 양성을 위해 한성 사범 학교가 설립되었다.
    3
    헐버트, 길모어 등이 육영 공원 교사로 초빙되었다.
    4
    근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청에 영선사 일행이 파견되었다.
    5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교육 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해설

    제시된 글은 덕원 부사 정현석의 장계로, 덕원부가 "해안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고 아울러 개항지"라는 점을 들어 인재를 기르는 것이 급선무라 하며 원산사(元山社)에 글방을 설치하였다고 보고한다. 이는 1883년 덕원·원산의 관민이 힘을 모아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 원산 학사의 설립 경위이다.

    따라서 이후의 사실을 묻는 문제에서, 근대 기술 습득을 위해 청에 파견된 영선사1881년에 떠났으므로 이 글이 작성되기 이전의 일이 된다. 영선사 일행은 톈진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법을 배우고 돌아와 기기창 설치로 이어졌다.

    나머지는 모두 이 글보다 뒤의 일이다. 헐버트·길모어 등을 초빙한 육영 공원은 1886년에 세워졌고, 한성 사범 학교 설립과 교육 입국 조서 반포는 1895년, 국한문 혼용의 황성신문 발간은 189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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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시기에 실시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지계를 발급하였다.
    2
    박문국을 설치하고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3
    공사 노비법을 혁파하고 과거제를 폐지하였다.
    4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하였다.
    5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여권 사진과 함께 "고종이 국호를 (가)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를 선포한 이후 만들어진 여권"이며, (가) 시기에는 "황제 직속의 원수부가 설치되는 등 각종 개혁이 실시되었다"고 설명한다. 국호 변경과 새 연호, 황제 직속 원수부는 곧 대한 제국광무 연호를 가리킨다.

    대한 제국은 구본신참을 원칙으로 광무개혁을 추진하면서,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해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토지 소유 증명서인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와 함께 원수부를 두어 황제가 군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박문국 설치와 한성순보 발행은 1883년으로 개항 직후의 일이고, 공사 노비법 혁파와 과거제 폐지는 제1차 갑오개혁, 8도를 23부로 개편한 것과 홍범 14조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 시기의 조치여서 모두 대한 제국 수립 이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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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잡지 한글을 간행하였다.
    2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
    3
    가갸날을 제정하고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4
    국문 연구소에서 한글 연구를 체계화하였다.
    5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설

    "이달의 인물" 자료에는 호가 한힌샘·백천(白泉), 생몰 연도가 1876~1914년이고, 주요 활동으로 독립신문 교보원 활동, 국문동식회 조직, 국어문법·말의 소리 저술이 적혀 있으며 1980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고 되어 있다. 이 인물은 국어학자 주시경이다.

    주시경은 학부 안에 설치된 국문 연구소(1907)의 위원으로 지석영 등과 함께 국문의 표기법과 문법을 연구하여 한글 연구를 체계화하였고, 그 성과를 국어문법·말의 소리로 정리하였다.

    잡지 한글 간행과 가갸날 제정은 조선어 연구회의 활동이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과 조선어 학회 사건(1942)은 조선어 학회와 관련된 일이다. 모두 1914년에 세상을 떠난 그가 관여할 수 없었던 이후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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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이륭양행에 교통국을 설치하였다.
    2
    태극 서관과 자기 회사를 운영하였다.
    3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4
    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5
    만민 공동회를 열어 민권 신장을 추구하였다.
    해설

    화면 속 메달은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안창호 기념 메달이며, 설명에서 "그가 양기탁 등과 함께 조직한 비밀 결사인 이 단체는 대성 학교, 오산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안창호·양기탁이 만든 비밀 결사로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운 단체는 신민회(1907)이다.

    신민회는 국권 회복과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교육·산업 진흥에 힘써, 서적 보급과 자금 마련을 위해 태극 서관을 두고 민족 산업 육성을 위해 자기 회사를 운영하였다. 또한 남만주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다가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이륭양행에 교통국을 둔 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고,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것은 보안회이다.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 추진과 만민 공동회 개최는 독립 협회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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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지역에서 있었던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설립하였다.
    2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하여 군사 훈련을 하였다.
    3
    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4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5
    대한 광복군 정부가 세워져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는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의 회고록을 소개하면서, "국권 피탈 직후 (가) 지역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일가의 삶"과 "(가) 지역의 삼원보에 터를 잡고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고 전한다. 삼원보와 신흥 강습소가 있던 곳은 서간도(남만주)이다.

    이회영 6형제를 비롯한 신민회 인사들은 1911년 삼원보에 정착해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세우고, 그 부설로 신흥 강습소를 열어 독립군 간부를 길렀다. 신흥 강습소는 뒤에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여 청산리 대첩 등에서 활약한 인재를 배출하였다.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해 군사 훈련을 한 곳은 하와이이고, 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편 곳은 미주 지역이다. 2·8 독립 선언서 발표는 도쿄,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은 연해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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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대화에서 연길 일대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건, 이를 취재하던 신문 기자 장덕준의 희생, 청산리 전투 패배에 따른 일본군의 만행이라는 단서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는 1920년 일본군이 간도 지역 한인 마을을 무차별 학살한 간도 참변(경신참변)을 가리킨다.

    봉오동·청산리에서 잇달아 참패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간도의 한인 촌락을 습격해 민간인을 살해하고 가옥과 학교, 교회를 불태웠다.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은 이 참상을 취재하러 갔다가 행방불명되어 한국 최초의 순직 기자로 기록된다.

    연표는 1910년 국권 피탈 - 1919년 3·1 운동 - 1925년 미쓰야 협정 - 1931년 만주 사변 - 1937년 중·일 전쟁 - 1945년 8·15 광복의 여섯 시점으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1920년에 일어난 간도 참변은 3·1 운동과 미쓰야 협정 사이의 구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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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종교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사찰령 폐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2
    개벽, 신여성 등의 잡지를 발행하였다.
    3
    항일 단체인 중광단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4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에 기여하였다.
    5
    경향신문을 발행하여 민중 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해설

    자료의 인물은 무원 김교헌으로, 단군에 대한 여러 저술을 주관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고 나철의 뒤를 이어 제2대 도사교(교주)에 취임하였으며 대한 독립 선언서 발표에 적극 참여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나철이 창시하고 교주를 도사교라 부른 종교는 대종교이다.

    대종교는 단군 신앙을 바탕으로 1909년 나철이 중광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총본사를 만주로 옮겨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결실이 서일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항일 단체 중광단으로, 이는 뒤에 북로 군정서로 발전하여 청산리 대첩을 이끌었다.

    나머지 선택지는 다른 종교의 활동이다. 개벽·신여성 등의 잡지 발행은 천도교, 사찰령 폐지 운동은 한용운 등의 불교계, 배재 학당 설립은 개신교(아펜젤러), 경향신문 발행은 천주교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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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취지서를 발표한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근우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2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3
    이상재 등이 주도하여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4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접지 어린이 등을 발간하였다.
    5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 등의 구호를 내세웠다.
    해설

    제시된 발기 취지서는 "민중의 보편적 지식은 보통 교육으로도 가능하지만 심오한 지식과 학문은 고등 교육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민립 대학의 설립을 제창한다고 밝히고 있다. 곧 1920년대 초 전개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의 취지서이다.

    이 운동은 1922년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1923년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창립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상재, 이승훈 등이 앞장서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제의 방해와 잇단 가뭄·수해로 모금이 부진하여 좌절되었고, 일제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24년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하였다.

    다른 선택지는 각각 근우회의 여성 운동, 3·1 운동, 방정환 등의 소년 운동,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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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신간회에서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2
    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3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4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5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배경이 되었다.
    해설

    검색 결과에 1929년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민족 운동이며, 정부가 11월 3일을 학생의 날(현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고 나와 있다. 관련 이미지의 기념탑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있다. 검색창에 들어갈 것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다.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에서 촉발되었고, 일본 경찰의 편파적인 처리에 분노한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이듬해까지 전국으로 번졌다.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으로 평가된다.

    이때 신간회는 광주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열어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려 하였으나, 사전에 간부들이 검거되면서 무산되었다.

    나머지 선택지는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6·10 만세 운동, 임시 정부 수립과 문화 통치의 계기가 된 3·1 운동,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국채 보상 운동에 대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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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독립 투쟁 과정을 서술하였다.
    2
    (가) - 유물 사관을 토대로 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하였다.
    3
    (나) - 진단 학회를 창립하여 실증주의 사학을 발전시켰다.
    4
    (나) - 독사신론을 발표하여 민족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두었다.
    5
    (가), (나) - 조선학 운동을 주도하며 여유당전서를 간행하였다.
    해설

    (가)는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없어질 수 없으니,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라고 말한 인물로 박은식이다. (나)는 "우리 조선의 역사는 세계사적 일원론적인 역사 법칙에 의해 다른 민족들과 거의 같은 궤도로 발전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한 인물로, 유물 사관에 입각한 백남운이다.

    박은식은 민족 정신인 국혼(國魂)을 강조하며 일제의 침략 과정을 다룬 한국통사와, 3·1 운동을 비롯한 독립 투쟁의 과정을 서술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였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 등에서 우리 역사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단계를 밟았음을 논증하여 식민 사학의 정체성론을 반박하였으므로, 유물 사관으로 정체성론을 비판한 활동은 (나)의 몫이다.

    이 밖에 진단 학회 창립과 실증주의 사학은 이병도·손진태, 독사신론은 신채호, 여유당전서 간행을 통한 조선학 운동은 정인보·안재홍·문일평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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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의열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3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4
    쌍성보 전투에서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다.
    5
    명동 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습격하여 중상을 입혔다.
    해설

    전시된 친필 일기의 주인공은 한국 독립군과 한국 광복군의 총사령관을 지낸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이 두 부대의 총사령을 모두 맡은 사람은 지청천(이청천)이다.

    지청천은 1930년대 초 북만주에서 한국 독립군을 이끌며 중국 호로군 등 중국군과 손잡고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후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 광복군의 총사령이 되었다.

    나머지 선택지의 주인공은 각각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한 임병찬, 명동 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습격한 이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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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두 의거를 일으킨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 창설되었다.
    2
    김구의 주도로 상하이에서 조직되었다.
    3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하였다.
    4
    김익상, 김상옥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5
    일제가 꾸며낸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해설

    첫 번째 자료는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의 행렬에 수류탄을 투척한 의거로 1932년 1월 도쿄에서 일어난 이봉창 의거이고, 두 번째 자료는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 군부·정계 요인에게 부상을 입힌 의거로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의 윤봉길 의거이다.

    두 의거를 일으킨 단체는 한인 애국단으로,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1931년 김구가 상하이에서 조직하였다.

    특히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 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되어, 뒷날 한국 광복군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고 김익상·김상옥이 단원으로 활동한 단체는 의열단이며, 105인 사건으로 해체된 단체는 신민회, 중·일 전쟁 이후 창설된 단체로는 조선 의용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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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회사령이 철폐되었다.
    2
    조선 태형령이 시행되었다.
    3
    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었다.
    4
    여자 정신 근로령이 공포되었다.
    5
    제1차 조선 교육령이 발표되었다.
    해설

    제시된 포스터는 태평양 전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 애국반에는 호적 미등재자가 없도록 합시다"라는 수칙과 함께 징병제 대상자는 빠짐없이 호적에 등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곧 인력을 남김없이 동원하려던 민족 말살 통치기(1930년대 후반~1945년)의 자료이다.

    이 시기 일제는 국가 총동원법을 근거로 지원병제와 징병제, 징용을 실시하고 여성까지 동원하였다. 1944년에는 여자 정신 근로령을 공포하여 여성을 군수 공장 등에 강제로 동원하였다.

    나머지 선택지는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기와 관련된 정책이다. 조선 태형령(1912), 토지 조사 사업(1910~1918), 제1차 조선 교육령(1911)이 이 시기에 시행·발표되었고, 회사령은 1910년에 제정되었다가 1920년에 철폐되었으므로 어느 것도 태평양 전쟁 시기의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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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가상 인터뷰의 주인공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좌우 합작 위원회의 주축이 되었다.
    2
    김규식과 함께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다.
    3
    재미 한인을 중심으로 홍사단을 설립하였다.
    4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5
    중국 국민당과 협력하여 조선 의용대를 창성하였다.
    해설

    가상 인터뷰의 주인공은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완전한 독립 국가 건설에 힘썼다고 답하고 있다. 이 인물은 여운형이다.

    여운형은 1944년 국내에서 비밀리에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하였고, 광복 직후 이를 모체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켜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려 하였다.

    이후 그는 좌우 대립을 넘어 통일 정부를 세우고자 김규식과 함께 좌우 합작 위원회의 주축이 되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으나, 1947년 암살되면서 합작 운동은 좌절되었다.

    한편 남북 협상에 김규식과 함께 참여한 인물은 김구, 흥사단을 설립한 인물은 안창호, 정읍 발언으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인물은 이승만, 조선 의용대를 창설한 인물은 김원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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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정부 형태가 내각 책임제로 바뀌었다.
    2
    장기 독재를 가능하게 한 유신 헌법이 공포되었다.
    3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이 구속되었다.
    4
    임시 수도 부산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5
    여당 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한 3∙15 부정 선거가 자행되었다.
    해설

    (가)는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 특위)가 친일 청산에 나서자 친일 경력의 경찰과 친일파가 반발하고,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발표한 뒤 반민 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구속한 상황이다. 국회 프락치 사건과 반민 특위 습격이 이어진 1949년의 일이다.

    (나)는 자유당이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개헌을 추진하다 의결 정족수에 1명이 모자라 부결된 것을 사사오입의 논리로 번복한 사건으로,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이다.

    따라서 두 시기 사이에 해당하는 사실은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임시 수도 부산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가운데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발췌 개헌)이 통과된 일이다.

    나머지는 모두 (나) 이후의 일이다. 진보당의 조봉암 구속은 1958년, 3·15 부정 선거는 1960년, 내각 책임제 개헌은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유신 헌법 공포는 197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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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총선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비례 대표제가 적용되었다.
    2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였다.
    3
    38도선 이남 지역에서만 실시되었다.
    4
    제헌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였다.
    5
    제주도의 일부 지역에서 선거가 무효 처리되었다.
    해설

    그림의 자료는 조선화보(朝鮮画報)에 실린 투표 방법 안내 포스터로, "여러분! 대표를 뽑아 국회에 보내시오"라는 문구 아래 등록투표 두 단계를 그림으로 나누어 보여 주고 있다. 선거인 등록부터 기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절차까지 상세히 안내하며,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감시 아래 실시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1948년 5·10 총선거임을 알 수 있다.

    이 선거는 21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였다. 유엔 소총회의 결정에 따라 남북 협상이 결렬된 상태에서 38도선 이남 지역에서만 치러졌으며, 임기 2년의 제헌 국회를 구성하여 제헌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만 5·10 총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로 실시되었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 대표제는 적용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비례 대표제가 도입된 것은 이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한편 제주 4·3 사건의 여파로 투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제주도 2개 선거구는 선거가 무효 처리되어, 이듬해에야 다시 선거를 치러 의원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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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뉴스에 보도된 사건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뉴스는 동대문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분신한 사건을 전하면서, 그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 실태를 고발하며 근로 기준법의 준수를 외쳤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1970년 11월에 일어난 전태일 분신 사건으로, 이후 노동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제시된 항목 중 이 사건보다 에 있었던 일은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 임금법이 제정된 것(1986년 제정, 1988년 시행)과, 중화학 공업 육성에 힘입어 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한 것(1977년)이다.

    반면 한·미 원조 협정이 체결된 것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이고,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된 것은 1962년부터이므로 두 가지 모두 전태일 분신 사건보다 앞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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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가), (나) 인물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왼쪽 인물은 경상남도 거제 출신으로 신민당과 통일민주당 총재를 지내고 민주화 추진 협의회 공동 의장을 맡았으며 제14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소개되어 있으므로 김영삼이다. 오른쪽 인물은 전라남도 신안 출신으로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후보였고 민주화 추진 협의회 공동 의장을 거쳐 제15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김대중이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대통령 긴급 재정 경제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가 전격 시행되었으며(1993), 이와 함께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이 추진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이 추진되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2000).

    한편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은 1991년 노태우 정부 때의 일이고,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므로 두 인물의 재임 시기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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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다음 선언문을 발표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양원제 국회가 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3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4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해설

    선언문은 "분단을 이유로, 경제 개발을 이유로, 그리고 지금은 올림픽을 이유로 민주화를 유보하자는 역대 독재 정권의 거짓 논리"를 비판하면서 4·13 폭거가 무효임을 선언하는 국민들의 행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4·13 폭거는 전두환 정부의 4·13 호헌 조치이므로, 이 글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당시의 선언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고, 결국 6·29 민주화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개헌이 이루어졌다.

    참의원과 민의원의 양원제 국회가 출현한 것은 4·19 혁명 뒤의 개헌 결과이고,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것은 6·3 시위이다.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고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5·18 민주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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