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이 전쟁’의 영향으로 옳은 것은? [3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8회
밑줄 그은 ‘이 전쟁’의 영향으로 옳은 것은? [3점]
1
북방에 4군 6진이 개척되었다.
2
이종무에 의해 대마도가 정벌되었다.
3
청에 당한 치욕을 갚자는 북벌론이 전개되었다.
4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되었다.
5
외적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해설
제시된 사진은 김준룡 장군 전승비 및 비각으로, 설명에는 이 전쟁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란한 국왕을 구하기 위해 근왕병을 이끌고 올라와 누르하치의 사위인 적장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다고 나와 있습니다.
국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란하고 상대가 후금을 이은 청군이라는 점에서 이 전쟁은 병자호란(1636~1637)입니다. 김준룡은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을 크게 무찔렀으나, 인조는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하고 청과 군신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치욕의 결과 효종 대에는 청에 당한 수치를 씻자는 북벌론이 전개되어, 송시열 등과 함께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반면 4군 6진 개척과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계해약조 체결은 모두 조선 전기 세종 대 전후의 일이며, 비변사가 처음 설치된 것은 중종 대 삼포왜란을 계기로 한 일이어서 이 전쟁의 영향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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