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여 식량을 생산하였습니다.
    2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기 시작하였습니다.
    3
    쟁기,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였습니다.
    4
    거푸집을 이용하여 비파형 동검을 제작하였습니다.
    5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움집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해설

    화면에 제시된 유적은 굄돌 위에 넓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린 탁자식 고인돌로, 교사의 설명대로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를 대표한다. 거대한 덮개돌을 옮기려면 많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배자가 있어야 하므로 고인돌은 계급 발생의 대표적 증거로 쓰인다.

    이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모습으로는 거푸집(용범)을 이용해 비파형 동검을 비롯한 청동기를 직접 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거푸집이 출토된다는 것은 완제품을 들여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청동기를 만들었음을 뜻한다.

    농경과 목축의 시작, 가락바퀴를 이용한 실 뽑기, 정착 생활에 따른 움집의 등장은 모두 신석기 시대에 처음 나타났고, 쟁기·쇠스랑 같은 철제 농기구의 사용은 철기 시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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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남녀가 몸에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
    2
    (가) -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하였다.
    3
    (나) -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하였다.
    4
    (나) -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5
    (가), (나) - 물건을 훔친 자는 12배로 배상하게 하였다.
    해설

    (가)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국중 대회로 열고, 혼인할 때 신부 집 본채 뒤에 서옥이라는 작은 집을 지었다는 기록이므로 고구려이다. (나)는 5월에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 지내며 10월 농사를 마친 뒤에도 같은 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므로 삼한이다.

    삼한에는 제사장인 천군이 주관하는 신성 지역 소도가 있어서 죄인이 그곳으로 달아나면 잡아가지 못하였다. 정치적 지배자와 제사장이 나뉜 제정 분리 사회였음을 보여 주는 특징이다.

    철이 많이 나 낙랑과 왜에 수출하고 몸에 문신을 새긴 풍습은 삼한 가운데 변한 등의 모습이므로 고구려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읍락의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어서 삼한과 맞지 않고,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한 법속은 부여와 고구려의 것이어서 삼한까지 아우르는 공통점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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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법을 시행하였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2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를 마련하였다.
    3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4
    왕 아래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다.
    5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해설

    제시된 법은 『한서』에 전하는 범금 8조로, 사람을 죽이면 즉시 죽음으로 갚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하며, 남의 물건을 훔치면 남자는 노(奴), 여자는 비(婢)로 삼되 용서받으려면 한 사람마다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보인다. 생명 존중, 농경 사회의 노동력 중시, 사유 재산과 계급의 존재를 알려 주는 고조선의 법이다.

    고조선은 왕 아래에 상(相)·대부·장군 등의 관직을 두어 국가 조직을 갖추었다. 위만 조선 시기 조선상 역계경이 왕에게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리를 이끌고 진국으로 갔다는 기록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신지·읍차는 삼한의 지배자 호칭이고, 골품제는 신라의 신분 제도이다. 제가 회의는 고구려의 귀족 회의이며,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주관한 사출도는 부여의 통치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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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대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2
    상평창을 설치하여 물가를 조절하였다.
    3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4
    구제도감을 설립하여 백성을 구호하였다.
    5
    혜민국을 마련하여 병자에게 약을 지급하였다.
    해설

    자료는 사냥을 나갔던 고국천왕이 길에서 우는 사람을 만나 사연을 물으니, 가난하여 품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그해 흉년이 심해 품 팔 곳도 곡식 구할 데도 없다고 답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다. 왕은 그를 위로한 뒤 재상 을파소와 논의하여 대책을 마련하였다.

    이때 마련된 대책이 진대법이다. 봄철 춘궁기에 관청의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기에 갚게 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제도로, 농민이 몰락해 노비가 되거나 귀족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상평창은 고려·조선에서 물가를 조절하던 기구이고, 구제도감과 혜민국은 고려의 구호·의료 기관이다. 『구황촬요』는 조선 명종 때 기근 대비를 위해 간행한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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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고구려가 옥저를 복속시켰다.
    2
    백제가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3
    가야 연맹이 대가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4
    신라 지배자의 칭호가 차차웅으로 바뀌었다.
    5
    고구려가 대방군을 축출하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왕이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고, 고구려군이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자 그곳에 가득하던 왜적이 퇴각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광개토 대왕릉비에 새겨진 400년의 신라 구원 출병을 가리킵니다.

    이때 고구려군이 왜를 쫓아 낙동강 하류까지 진출하면서, 전기 가야 연맹을 이끌던 금관가야가 큰 타격을 입고 쇠퇴하였습니다. 그 결과 5세기 후반 이후 고령의 대가야가 맹주가 되어 후기 가야 연맹으로 재편되었으므로, 이것이 출병 이후의 사실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400년 이전의 일입니다. 고구려의 옥저 복속은 1세기 태조왕 때, 대방군 축출은 4세기 초 미천왕 때이며, 백제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은 371년입니다. 신라 지배자의 칭호가 차차웅으로 바뀐 것은 1세기 초 남해왕 때로 훨씬 앞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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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무령왕이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2
    침류왕이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다.
    3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함락하였다.
    4
    고이왕이 좌평과 관등제의 기본 골격을 마련하였다.
    5
    성왕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수복하였다.
    해설

    자료 (가)는 왕 원년 겨울 10월에 도읍을 웅진으로 옮겼다는 기록으로,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된 뒤 475년 문주왕이 단행한 웅진 천도입니다. (나)는 왕 16년 봄에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다는 기록으로, 538년 성왕의 사비 천도입니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는 475년부터 538년까지의 웅진 도읍기입니다. 이 시기의 무령왕은 지방의 22개 요충지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으므로, 사이 시기의 사실로 옳습니다.

    침류왕이 동진의 마라난타에게서 불교를 수용한 것은 384년, 고이왕이 좌평과 관등제의 골격을 마련한 것은 3세기의 일로 웅진 천도 이전입니다. 반대로 성왕의 한강 유역 수복(551년)과 의자왕의 대야성 함락(642년)은 사비 천도 이후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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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복신과 도침 등이 주류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2
    묘청 등이 주심이 되어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3
    신라군이 당의 군대에 맞서 매소성에서 승리하였다.
    4
    지방에서 호족들이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5
    요세가 법화 신앙에 중점을 둔 백련 결사를 주도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최치원이 지은 해인사 묘길상탑기로, 사진에도 탑기의 금석문과 명칭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당나라 19대 소종이 중흥을 이룰 무렵 전쟁과 흉년이 겹쳐 굶어 죽고 싸우다 죽은 시체가 들판에 즐비하였고, 이를 애도한 승훈이 옥돌로 삼층탑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소종의 재위 시기는 곧 신라 진성여왕 무렵으로, 원종과 애노의 난을 비롯한 농민 봉기가 잇따르던 신라 하대의 혼란기입니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지면서 지방에서 호족들이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복신과 도침의 주류성 봉기(660년대 백제 부흥 운동)와 나당 전쟁기의 매소성 전투(675년)는 이보다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년)과 요세의 백련 결사(13세기 초)는 고려 시대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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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2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3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4
    관리에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5
    호국의 염원을 담아 황룡사 구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해설

    사진은 경주에 있는 신라 왕의 무덤으로, 다듬은 돌을 쌓아 올린 둘레돌에 삼각형 받침돌을 비스듬히 괴어 놓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설명에서 이 무덤의 주인공이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여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신문왕입니다.

    신문왕은 왕권 강화의 하나로 관리에게 조세만 거둘 수 있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이어 노동력까지 징발할 수 있었던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화랑도의 국가 조직 개편은 진흥왕,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은 지증왕, 건원 연호 사용은 법흥왕,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은 선덕 여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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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국가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울산항이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2
    특산품으로 솔빈부의 말이 유명하였다.
    3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4
    건원중보를 발행하여 화폐 유통을 추진하였다.
    5
    시장을 관리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는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염주성 터에서 쌍봉낙타를 표현한 높이 1.9cm청동 낙타상이 낙타 뼈와 함께 나왔다는 내용입니다. 염주가 62주 가운데 하나이며 일본 등과의 교류 거점이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추었던 발해입니다.

    발해는 목축과 수렵이 발달하여 솔빈부의 말이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이름이 높았고, 이 말은 당에 수출되는 주요 교역품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경제 상황입니다. 울산항의 번성, 청해진 설치, 동시전 설치는 모두 신라에 해당하며, 건원중보 발행은 고려 성종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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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나) 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흑창을 설치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
    2
    (가) -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3
    (나) -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4
    (나) -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통제하였다.
    5
    (가), (나) - 현직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
    해설

    (가)는 견훤이 임금을 죽인 것을 무도하다 하여 군사를 이끌고 토벌해 위태로운 나라(신라)를 구하였다는 내용이므로 고려 태조 왕건입니다. (나)는 정종의 고명을 받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가 투탁해 온 뒤로 문사를 존중하였다는 내용이므로 광종입니다.

    태조는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을 두어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기에 갚게 하였으므로, (가)의 정책으로 옳은 서술이 됩니다.

    반면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는 (가)가 아니라 (나)인 광종이 사용한 것이어서 짝이 어긋납니다. 12목 설치와 지방관 파견은 성종, 상수리 제도는 통일 신라의 제도이며, 현직 관리에게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한 것은 고려 문종 때의 경정 전시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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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문화유산 카드에는 국보 제84호,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서산 일대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조성된 석불로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입니다.

    따라서 (가)에는 바위 면에 본존 여래 입상을 새기고 그 좌우에 보살 입상과 반가사유상을 배치한 마애 삼존불 사진이 들어가야 합니다. 카드의 설명처럼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온화한 미소를 띤 백제 불상 특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시대와 지역이 다릅니다. 머리에 네모난 갓을 얹은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 입상은 고려 시대 논산 관촉사의 불상이고, 갓을 쓴 두 부처를 나란히 새긴 마애 이불 입상은 파주 용미리의 고려 시대 불상으로, 모두 백제 불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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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권수정혜결사문을 작성하여 정혜쌍수를 강조하였다.
    2
    해동고승전을 집필하여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하였다.
    3
    보현십원가를 지어 불교 교리를 대중에게 전파하였다.
    4
    교관겸수를 내세워 이론 연마와 실천을 함께 중시하였다.
    5
    삼국유사를 저술하여 불교 중심의 민간 설화를 정리하였다.
    해설

    사진은 순천 송광사 국사전으로, 이 절이 배출한 16국사의 진영이 모셔진 건물입니다. 대화에서 그 가운데 수선사 결사를 창립하여 불교계의 개혁 운동을 이끌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보조국사 지눌입니다.

    지눌은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어 승려 본연의 수행을 촉구하면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와 단번에 깨친 뒤에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내세웠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승려의 활동입니다. 해동고승전은 각훈, 보현십원가는 균여, 교관겸수는 의천, 삼국유사는 일연이 남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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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상황이 전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광군을 창설하여 외침에 대비하였다.
    2
    거란의 침략을 피해 왕이 나주로 피난하였다.
    3
    서희가 외교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4
    만부교 사건이 일어나 거란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5
    후주와 사신을 교환하여 대외 관계의 안정을 꾀하였다.
    해설

    자료는 강조의 군사가 궁궐에 들이닥쳐 목종을 폐하고 대량원군 순을 왕으로 세운 뒤,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 등 7인을 죽이고 적성현에서 목종까지 시해하였다는 『고려사』의 기록입니다. 이는 1009년에 일어난 강조의 정변이며, 이때 즉위한 대량원군이 현종입니다.

    거란은 강조가 임금을 시해한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1010년 대군을 이끌고 2차 침입을 감행하였고, 개경이 함락되면서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하였습니다. 이것이 정변 이후에 벌어진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정변 이전의 일입니다. 만부교 사건은 942년 태조 때, 광군 창설은 947년 정종 때, 후주와의 사신 교환은 광종 때이며,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것은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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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정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대화에서 고려의 관학이 위축된 이유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출신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라 하였고, 이에 정부가 관학 진흥책을 추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밑줄 그은 '정책'은 곧 고려의 관학 진흥책입니다.

    고려 예종은 국자감을 개편하여 유학과 무학의 전문 강좌인 7재를 두어 운영하였고, 함께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설치하여 관학의 재정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보기 중 이 두 가지가 관학 진흥책에 해당합니다.

    반면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이 인재 등용을 위해 마련한 제도이고, 수도에 4부 학당을 두어 유학 경전을 가르친 것은 조선의 사부 학당에 대한 설명이므로 고려의 관학 진흥책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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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칭제 건원과 금국 정벌을 주장하였다.
    2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제안하였다.
    3
    보현원에서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4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5
    전민변정도감의 판사가 되어 권문세족을 견제하였다.
    해설

    제시된 두 사료는 모두 고려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고종 12년 "이때부터 (가)는 정방을 자기 집에 설치하고 문사를 선발하여 여기에 소속시켰으니 이를 비칙치라 불렀다", 고종 14년 "(가)의 문객들 가운데 당대에 이름난 학자가 많았는데, 이들을 3번(番)으로 나누어 돌아가면서 서방에서 숙직하도록 하였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저에 인사 행정 기구인 정방을 두고, 문신 숙위 기구인 서방을 설치한 인물은 최씨 무신 정권의 최우입니다. 그는 아버지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별감이 되었고, 정방과 서방을 통해 인사권과 문신 세력까지 장악하였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최우는 1232년 몽골의 1차 침입 이후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전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칭제 건원과 금국 정벌 주장은 묘청, 봉사 10조는 최충헌, 보현원 정변은 정중부·이의방 등 무신 정변 주도 세력, 전민변정도감 판사 활동은 공민왕 때의 신돈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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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나성을 쌓고 천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
    2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하였습니다.
    3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습니다.
    4
    국난을 극복하고자 초조 대장경을 간행하였습니다.
    5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을 편성하였습니다.
    해설

    그림 속 교사는 화면에 걸린 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를 가리키며 "고려·원 연합군과 일본군 간의 전투를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하고, 고려가 원의 일본 원정에 동원되었던 시기의 사실을 묻고 있습니다.

    여·원 연합군의 일본 원정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이루어졌으며, 이는 충렬왕 대의 일입니다. 이때 고려에는 정동행성이 설치되고 원의 내정 간섭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옳은 답변은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충렬왕 때 국방 문제를 논의하던 도병마사가 국정 전반을 관장하는 최고 기구인 도평의사사로 확대·개편되었습니다.

    나성 축조와 초조대장경 간행은 거란의 침입과 관련된 현종 대의 일이고, 천리장성 축조는 그 뒤 덕종 때 시작되어 정종 때 완성된 일입니다. 만적의 난은 신종 때, 별무반 편성은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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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제시된 자료는 "○○ 시대의 문화유산"이라는 제목 아래 건축 항목에 만월대와 (가)를, 불상 항목에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개성의 궁궐터인 만월대와 이 두 거대 불상은 모두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입니다.

    따라서 (가)에는 고려 시대의 건축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보기 중 법주사 팔상전은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 다시 세워진 조선 후기의 목조탑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탑입니다. 시대가 다르므로 이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머지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의 대표적인 주심포 양식 목조 건축이며, 성불사 응진전은 고려 후기에 원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다포 양식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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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좌수와 별감을 선발하여 운영되었다.
    2
    대성전을 세워 선현에 제사를 지냈다.
    3
    옥당이라고 불리며 경연을 담당하였다.
    4
    농민들로 구성된 공동 노동의 작업 공동체였다.
    5
    매향(埋香)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해설

    첫 번째 사료에서 사헌부 대사헌 허응은 시무 7조를 올려 "주·부·군·현에 각각 수령이 있는데, 향원 가운데 일 삼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가)를 설치하여 수령을 헐뜯고 백성을 침해한다"라며 혁파를 주장하고, 두 번째 사료에서 헌납 김대는 "(가)의 법은 매우 훌륭했으나 중간에 폐지되어 폐단이 생겼으니 다시 세우자"라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수령을 견제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설치와 혁파를 거듭한 이 기구는 지방 사족의 자치 조직인 유향소입니다. 태종 대에 혁파되었다가 세종 대에 부활하고, 세조 대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다시 폐지된 뒤 성종 대에 재설치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좌수와 별감을 선발하여 운영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유향소는 향회에서 뽑은 좌수와 별감이 실무를 맡았고, 중앙의 경재소가 이를 통제하였습니다.

    대성전을 세워 선현에 제사한 곳은 향교와 성균관, 옥당으로 불리며 경연을 담당한 곳은 홍문관, 공동 노동 조직은 두레, 매향 활동을 주관한 것은 향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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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에 대한 조선의 대외 정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그림은 야연사준도로, 설명문에는 김종서가 ㉠ 두만강 일대에 흩어져 살던 야인을 몰아내고 동북면의 6진을 개척한 뒤의 일화를 그린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연회 중 화살이 날아와 술병에 꽂혔지만 김종서가 침착하게 연회를 진행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대상은 여진이며, 조선의 대여진 정책을 골라야 합니다. 조선은 강경책으로 4군 6진을 개척하는 한편, 회유책도 병행하였습니다.

    옳은 것은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회유하였다는 것과 한양에 북평관을 개설하여 조공 무역을 허용하였다는 두 가지입니다. 무역소는 국경 지대의 교역 창구였고, 북평관은 여진 사절이 머물며 조공 무역을 하던 숙소였습니다.

    강경책의 일환으로 대마도를 정벌하거나 초량에 왜관을 설치하고 개시 무역을 실시한 것은 모두 일본을 상대로 한 정책이므로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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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학술 연구 기구로 청연각이 설치되었다.
    2
    전국의 부ㆍ목ㆍ군ㆍ현에 하나씩 설립되었다.
    3
    중앙에서 파견된 교수나 훈도가 지도하였다.
    4
    유학을 비롯하여 율학, 서학, 산학을 교육하였다.
    5
    국왕으로부터 현판과 함께 노비 등을 받기도 하였다.
    해설

    제시된 사료는 퇴계선생문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주세붕이 처음 (가)를 세울 때 세상에서는 의심하였습니다. … 아마도 하늘이 (가)를 세우는 가르침을 동방에 흥하게 하여 우리나라가 중국과 같아지도록 하려는 것인가 봅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세붕이 처음 세운 이 기관은 서원입니다. 그는 1543년 풍기 군수로서 안향을 기리는 백운동 서원을 세웠고, 이황이 국왕에게 건의하여 소수 서원이라는 이름의 사액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국왕으로부터 현판과 함께 노비 등을 받기도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사액 서원은 현판과 더불어 토지·노비·서적을 하사받고 면세·면역의 특권까지 누렸습니다.

    청연각은 고려 예종 때의 학술 기구이고, 부·목·군·현마다 하나씩 세워져 중앙에서 파견한 교수·훈도가 지도한 곳은 향교이며, 율학·서학·산학 등 기술학을 함께 가르친 곳은 고려의 국자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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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인물이 활동한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광해군이 중립 외교를 추진하였다.
    2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화되었다.
    3
    경기도에 한해서 대동법이 실시되었다.
    4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사화가 발생하였다.
    5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를 둘러싸고 예송이 전개되었다.
    해설

    제시된 자료의 책은 격몽요결로, 설명에 따르면 (가)가 성리학을 처음 배우는 학도들의 입문서로 지었으며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봉양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한 책으로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격몽요결을 저술한 인물은 이이입니다. 그는 동호문답과 성학집요를 지어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고, 16세기 후반 선조 대에 활동하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활동한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화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선조 대에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대립으로 사림이 갈라졌고, 이이는 두 세력의 조정을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경기도에 한정된 대동법 실시는 이이 사후의 일이고, 폐비 윤씨 사사를 빌미로 한 갑자사화는 연산군 때, 자의 대비의 복상을 둘러싼 예송은 현종 때의 일이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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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청화 백자를 제작하는 장인
    2
    상평통보로 물건을 구매하는 농민
    3
    제포의 왜관에서 교역을 하는 상인
    4
    시사(詩社)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중인
    5
    여러 장시를 돌며 물품을 판매하는 보부상
    해설

    제시된 자료에서 임금은 "백성을 대할 때는 귀천이 없어야 하는데 노(奴)와 비(婢)로 구분하는 것이 어찌 동포로 여기는 뜻이겠는가"라며 내노비 36,974명시노비 29,093명을 모두 양민으로 삼고, 승정원에 명하여 노비 문서를 모아 돈화문 밖에서 불태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1801년 순조 즉위 초에 단행된 공노비 해방 조치로, 조선 후기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없는 모습은 제포의 왜관에서 교역을 하는 상인입니다. 제포(창원)의 왜관은 3포 개항으로 운영되던 조선 전기의 시설로, 임진왜란 이후에는 부산의 왜관만 유지되었습니다.

    청화 백자 제작, 상평통보 유통, 중인들의 시사 조직 활동, 장시를 오가는 보부상의 활동은 모두 조선 후기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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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작성하였다.
    2
    소학의 보급과 공납의 개선을 주장하였다.
    3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였다.
    4
    예안 향약을 시행하여 향촌 교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5
    사변록에서 유교 경전에 대한 독자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해설

    그림 속 인물은 화면의 비석을 가리키며 "위훈 삭제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하다가 훈구파의 반발로 유배되어 사사당한 그의 옛 자취가 기록된 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종반정 공신들의 거짓 공훈을 삭제하려다 훈구 세력의 반발로 기묘사화를 맞아 사사된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그는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등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소학의 보급과 공납의 개선을 주장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향촌 교화를 위해 소학을 널리 보급하고 방납의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조의제문을 쓴 이는 김종직, 기축봉사를 올린 이는 송시열, 예안 향약을 시행한 이는 이황, 사변록을 지은 이는 박세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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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궁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고종이 아관 파천 이후에 환궁한 곳이다.
    2
    도성 내 북쪽에 있어 북궐이라고 하였다.
    3
    태종이 한양 재천도를 위하여 건립하였다.
    4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5
    정도전이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정하였다.
    해설

    제시된 답사 안내도는 "(가)로 떠나는 궁궐 탐방"이라는 제목 아래 위치를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로 밝히고, 정문인 대한문 → 정전인 중화전 → 궁궐의 유일한 중층 목조 건물 석어당 → 대한 제국 시기의 서양식 건물 석조전을 잇는 동선을 보여 줍니다.

    대한문·중화전·석어당·석조전을 갖춘 이 궁궐은 덕수궁(경운궁)입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시 거처로 삼은 뒤 광해군이 경운궁이라 이름 붙였고, 대한 제국의 황궁으로 쓰이면서 석조전 같은 서양식 건물이 함께 들어섰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고종이 아관 파천 이후에 환궁한 곳이라는 내용입니다.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고종은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 제국을 선포하였습니다.

    북궐로 불린 궁궐은 경복궁, 태종이 한양 재천도를 위해 세운 궁궐은 창덕궁,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된 궁궐은 창경궁이며, 정도전이 전각 이름을 정한 곳은 경복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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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결작을 징수하여 재정 부족 문제에 대처하였다.
    2
    연분9등법을 시행하여 수취 체제를 정비하였다.
    3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재개하였다.
    4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의 광산 개발을 허용하였다.
    5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해설

    그림 속 두 사람은 정초와 변효문이 새로운 농서를 편찬했다는 소식과,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보급하기 위한 서적을 편찬하라는 왕의 명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노농(老農)에게 물어 정리한 이 농서는 농사직설이며, 이를 편찬하게 한 왕은 세종입니다.

    세종은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6등법을, 그해의 풍흉에 따라 연분9등법을 적용해 전세를 최고 20두에서 최저 4두까지 차등 부과하는 공법을 시행하여 수취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따라서 연분9등법 시행이 이 왕의 정책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토지 1결당 미곡 2두를 걷는 결작은 영조의 균역법 보완책이고, 기유약조는 광해군 때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한 조약이며, 민간의 광산 개발을 허용한 설점수세제는 효종 대에,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준 직전법은 세조 대에 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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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왕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왕권 강화를 위하여 장용영을 신설하였다.
    2
    나선 정벌을 위하여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3
    수도의 방어를 담당하는 어영청을 설치하였다.
    4
    청과의 국경을 정한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하였다.
    5
    농민들의 군역 부담을 줄여주고자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해설

    안내자는 이 건물이 후금의 위협에 대비하여 축조한 남한산성의 4개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어장대로,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왕은 인조입니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한 뒤 정권과 수도의 방어를 담당할 군영으로 어영청을 설치하였고, 이는 뒤에 총융청·수어청과 함께 5군영 체제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수도 방어를 담당하는 어영청 설치가 이 왕의 정책입니다.

    왕권 강화를 위한 친위 부대 장용영은 정조, 나선 정벌을 위한 조총 부대 파견은 효종, 청과의 국경을 정한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군포를 1필로 줄인 균역법은 영조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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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ㆍ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2
    이괄의 반란 세력이 도성을 점령하였다.
    3
    신립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항전하였다.
    4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
    5
    정봉수와 이립이 의병을 이끌고 활약하였다.
    해설

    (가)에서는 행주산성에서 패한 왜군이 명과 강화 교섭을 재개했다는 대화가, (나)에서는 지난달 왜군이 본국으로 철수하여 전쟁이 끝났다는 대화가 나옵니다. (가)는 행주 대첩 직후인 1593년의 휴전 협상 국면이고, (나)는 왜군이 완전히 철수한 1598년 임진왜란 종결 시점입니다.

    두 시기 사이에 강화 교섭이 결렬되면서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고, 이때 이순신이 13척의 배로 울돌목의 조류를 이용해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따라서 명량 대첩이 (가)와 (나) 사이의 사실입니다.

    조·명 연합군의 평양성 탈환은 1593년 1월로 행주 대첩보다 앞서고, 신립의 탄금대 항전은 1592년 개전 초의 일이므로 (가) 이전입니다. 이괄의 난(1624)과 정묘호란 때 정봉수·이립의 활약(1627)은 모두 (나)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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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홍경래 등의 봉기로 정주성이 점령되었다.
    2
    대외 관계를 정리한 동문휘고가 간행하였다.
    3
    신유박해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처형되었다.
    4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5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인 칠정산 내편이 편찬되었다.
    해설

    신문 기사는 조선 왕실 어보의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등재를 다루면서, 그 가운데 왕세손이던 (가)의 사도 세자에 대한 효심에 감동하여 영조가 내린 은도장이 포함되어 있고 여기에 역대 어보 가운데 유일하게 왕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고 전합니다. 사도 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왕세손으로서 왕위에 오른 인물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조선 건국 이후 청·일본 등과 맺은 대외 관계 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를 간행하여 외교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따라서 동문휘고 간행이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평안도 차별에 반발한 홍경래의 봉기로 정주성이 점령된 것과 천주교도를 대대적으로 처형한 신유박해는 모두 순조 대의 일이며, 붕당의 폐해를 경계한 탕평비 건립은 영조,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 칠정산 내편 편찬은 세종 대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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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거중기를 제작하여 수원 화성 건설에 이용하였다.
    2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하였다.
    3
    최초로 100리 척을 활용한 동국지도를 제작하였다.
    4
    북학의를 저술하여 수레와 배의 이용을 권장하였다.
    5
    금석과안록에서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다.
    해설

    인물 카드에는 생몰 연대 1786~1856년, 호 추사(秋史)·완당(阮堂), 출신지 충청남도 예산, 주요 활동으로 역대 서체를 연구한 추사체 창안, 제주도 유배 중 세한도를 그린 일, 청의 학자 옹방강·완원과의 교류가 적혀 있습니다. 이는 모두 김정희를 가리킵니다.

    김정희는 금석문 연구에도 뛰어나 금석과안록을 저술하고, 그동안 무학대사비 등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인물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거중기를 제작해 수원 화성 건설에 활용한 인물은 정약용, 양반전으로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한 인물은 박지원, 100리 척을 처음 사용한 동국지도의 제작자는 정상기, 북학의에서 수레와 배의 이용을 강조한 인물은 박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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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소론과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였다.
    2
    외척 간의 대립으로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3
    허적과 윤휴 등 남인들이 대거 축출되었다.
    4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5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인해 기축옥사가 발생하였다.
    해설

    왕은 기사년 원자 명호를 정한 것에 반대한 송시열의 관직을 회복시키고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기사년(1689) 원자 정호 문제로 송시열이 사사되고 남인이 집권한 것이 기사환국인데, 이 조치는 송시열을 복권시키는 것이므로 남인이 축출되고 서인이 재집권한 갑술환국(1694) 당시의 상황입니다.

    갑술환국으로 남인은 정계에서 크게 밀려났고, 이후 정국은 서인에서 갈라진 노론과 소론이 주도하며 두 세력의 대립 속에 전개되었습니다. 따라서 노론과 소론의 정국 주도가 이 상황 이후의 사실입니다.

    외척 간 대립으로 일어난 을사사화(1545), 정여립 모반 사건에서 비롯된 기축옥사(1589),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권력을 잡은 광해군 대의 일은 모두 앞선 시기이며, 허적과 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된 경신환국(1680) 역시 기사환국보다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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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에 들어갈 그림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전시 안내문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주제와 화풍을 발전시킨 혜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혜원은 신윤복의 호로, 그는 양반과 여인의 풍류, 남녀 간의 애정 등 도시적이고 낭만적인 소재를 섬세한 필선과 화사한 채색으로 그려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신윤복의 작품이 들어가야 합니다. 보기 가운데 담장 아래 초승달이 뜬 늦은 밤, 쓰개치마를 쓴 여인과 갓을 쓴 남자가 마주 선 장면에 제발(題跋)이 적힌 그림이 바로 신윤복의 월하정인으로, 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다룬 그의 대표작입니다.

    나머지 그림들은 성격이 다릅니다. 나귀를 탄 선비가 길에서 인물과 마주친 장면, 여러 사람이 둥글게 둘러앉아 구경하는 놀이 장면, 소를 몰아 논을 가는 농사 장면은 서민의 생업과 놀이를 간결한 필선으로 담아낸 김홍도 계열의 풍속화이고, 관원들이 실내에 늘어선 장면은 행사를 담은 기록화 성격의 그림이어서 모두 혜원의 화풍과 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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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최익현, 민종식 등이 주도하였다.
    2
    한성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3
    보국안민, 제폭구민을 기치로 내걸었다.
    4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발단이 되었다.
    5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해설

    자료는 우정국 낙성연에서 총판 홍영식이 주관한 연회 도중 담장 밖에 불길이 일고, 우영사로 참석한 민영익이 칼에 맞아 쓰러졌으며, 왕이 경우궁으로 거처를 옮기자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가 군대를 이끌고 와 호위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1884년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입니다.

    갑신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고, 정변 과정에서 일본 공사관이 불타고 일본인이 사망한 문제를 두고 조선과 일본이 협상하여 한성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조선은 이 조약으로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 비용 부담을 떠안았습니다.

    최익현·민종식 등이 주도한 것은 을사늑약에 반발한 을사의병이고, 보국안민·제폭구민을 내건 것은 동학 농민 운동이며,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발단이 된 것은 임오군란, 사건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진주 농민 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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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상소가 올려진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조ㆍ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2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3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을 공격하였다.
    4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였다.
    5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들여왔다.
    해설

    상소는 황준헌의 말처럼 러시아가 병탄할 힘과 침략할 뜻이 있다 해도 만 리 밖의 구원을 앉아 기다리며 홀로 가까운 오랑캐와 싸울 수는 없다고 하면서, 미국에게는 일도 아닌 것을 일로 삼아 오랑캐를 불러들이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의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올린 영남 만인소(1881)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개화 정책을 이어갔고, 러시아 견제를 원하는 청의 알선까지 더해져 이듬해인 1882년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에는 거중 조정과 함께 최혜국 대우 규정이 처음 들어갔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상소보다 앞선 일입니다. 어재연 부대의 광성보 항전은 신미양요(1871), 운요호의 초지진 공격은 1875년, 프랑스군의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병인양요(1866),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의 조선책략 반입은 1880년으로 이 상소가 올려진 계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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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주자소를 설치하여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2
    속대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3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추진하였다.
    4
    삼정의 문란을 개선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5
    육의전 이외 시전 상인의 특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을 실시하였다.
    해설

    안내자는 운현궁이 (가)의 개인 저택으로 그의 아들인 고종이 태어나 12살까지 살았던 잠저이며, 고종이 즉위하면서 궁의 칭호를 받아 운현궁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고종의 아버지로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 정권을 잡은 인물은 흥선 대원군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상민에게만 부과되던 군포를 가호 단위로 거두면서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추진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양반의 특권을 제한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인물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주자소를 세워 계미자를 주조한 왕은 태종, 속대전을 편찬해 통치 체제를 정비한 왕은 영조,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삼정이정청을 설치한 것은 철종,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없앤 신해통공은 정조의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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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하였다.
    2
    고종의 밀지를 받아 결성된 비밀 단체이다.
    3
    일제가 꾸며낸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4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5
    공화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해설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폈고 총사령이 박상진이며 상덕태상회를 비밀 연락 거점으로 삼았다는 데서 (가)는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 광복회임을 알 수 있다. 대한 광복회는 이전의 복벽주의 단체들과 달리 공화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파리 강화 회의 청원서는 신한청년당·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내 진공 작전은 한국 광복군, 만민 공동회는 독립 협회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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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보고서는 아관 파천 이후 심화된 외세의 경제 침탈에 맞선 경제적 구국 운동을 정리한 것으로, 표에는 독립 협회, 황국 중앙 총상회, 보안회, 국채 보상 기성회의 활동을 각각 (가)~(라)로 비워 두었다.

    보안회는 1904년 일제가 전국의 황무지를 개간하겠다며 요구한 황무지 개간권에 반대 운동을 벌여 결국 그 요구를 철회시켰고, 국채 보상 기성회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며 금주·금연으로 모은 돈으로 일본에서 들여온 차관을 갚자고 호소하였다. 따라서 보안회와 국채 보상 기성회의 활동을 옳게 짝지은 것이 맞는 설명이다.

    반면 대동 상회·장통 상회는 1880년대 개항장 객주들이 세운 상회사로 독립 협회와는 관계가 없으며, 독립 협회의 대표적 활동은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이다. 황국 중앙 총상회는 서울 시전 상인들이 조직해 외국 상인의 내륙 침투에 맞선 상권 수호 운동을 벌인 단체이므로,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를 황국 중앙 총상회의 활동으로 본 설명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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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소개 자료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영국군 묘를 다루고 있다. 영국이 함대를 보내 조선의 영토를 불법 점령했던 사건, 곧 거문도 사건(1885~1887)이다.

    영국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1885년 거문도를 무단 점령하고 포대와 병영, 테니스장 등을 설치하였다. 이후 청의 중재로 러시아가 조선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영국군은 1887년 철수하였다.

    연표는 1866년 병인양요 – 1876년 강화도 조약 – 1882년 임오군란 – 1894년 청·일 전쟁 – 1904년 러·일 전쟁 – 1910년 국권 피탈 순으로 이어진다. 1885년은 임오군란과 청·일 전쟁 사이에 해당하므로, 이 구간을 가리키는 시기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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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구미 위원부를 설치하여 외교 활동을 추진하였다.
    2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3
    이륭양행에 교통국을 설치하여 국내와 연락을 취하였다.
    4
    임시 사료 편찬회를 두어 한ㆍ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5
    태극 서관을 설립하여 조선 광문회에서 발간한 서적을 보급하였다.
    해설

    자료의 인물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현진(1892~1921)이다. 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가)에 참여하고 재무차장을 맡아 재정 문제 해결에 힘썼으며, 안창호와 함께 (가)의 운영에 진력하다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상하이에서 안창호와 함께 재무 부서를 맡아 일한 조직이므로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다.

    임시 정부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외교 활동을 폈고, 만주 단둥의 이륭양행에 교통국을 설치해 국내와 비밀 연락을 주고받았다. 또 임시 사료 편찬회를 두어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으며, 침체기에는 김구가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태극 서관을 세워 조선 광문회 발간 서적 등을 보급한 것은 1907년 국내에서 조직된 비밀 결사 신민회의 활동으로, 임시 정부와는 시기도 활동 무대도 다르다. 따라서 이 설명이 (가)에 대한 서술로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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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국민 교육 헌장 발표
    2
    경성 제국 대학 설립
    3
    한성 사범 학교 관제 마련
    4
    소학교 명칭을 국민학교로 변경
    5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4년으로 함
    해설

    정리 노트는 1910년대 일제의 통치를 다루며, 정치 항목에 헌병 경찰제 실시조선 태형령 제정, 경제 항목에 토지 조사 사업삼림령·어업령·조선 광업령, 사회 항목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박탈을 적어 두었다. 즉 (가)에는 무단 통치기에 시행된 또 다른 정책이 들어가야 한다.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한국인을 실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만 갖춘 존재로 묶어 두려 하였고, 그 방편으로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줄여 일본인 학교보다 짧게 두었다. 따라서 이 내용이 (가)에 들어갈 사실이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난다. 경성 제국 대학 설립(1924)은 제2차 조선 교육령 시기,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한 것은 1941년 황국 신민화 정책기의 일이다. 한성 사범 학교 관제 마련은 1895년 갑오개혁기 조선 정부가 추진한 근대 교육 정책이며, 국민 교육 헌장 발표는 1968년 광복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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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3ㆍ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2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결성되었다.
    3
    조선 혁명군이 영릉가에서 일본군에 승리하였다.
    4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5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에 조선 의용대가 조직되었다.
    해설

    (가)는 6·10 만세 사건 제1회 공판을 보도한 신문 기사로, 1926년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6·10 만세 운동을 가리킨다. (나)는 광주고보와 중학생 충돌 사건을 다룬 기사로, 1929년 한·일 학생 간 충돌에서 비롯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가리킨다.

    두 사건 사이인 1927년에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손을 잡고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실로 신간회를 창립하였다. 신간회는 뒤에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준비하기도 하였다.

    다른 사실들은 이 구간을 벗어난다. 3·1 운동은 1919년으로 앞서고, 조선 혁명군의 영릉가 전투(1932), 조선 의용대 조직(1938), 조선 건국 동맹 결성(1944)은 모두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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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대화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노동 총동맹 결성으로 이어졌다.
    2
    원산 총파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3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 단체들이 참여하였다.
    4
    임금 삭감 반대, 노동 조건 개선을 주장하였다.
    5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였다.
    해설

    대화 속 장면은 한 여성이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농성하는 모습으로, 평양 평원 고무 공장에서 일하던 강주룡이 벌인 항의 농성이다. 1931년에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 농성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공장 측이 일방적으로 임금 인하를 통보하자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파업에 들어갔고, 강주룡은 을밀대 지붕에 올라 임금 삭감 반대와 노동 조건 개선을 외치며 여론에 호소하였다. 따라서 임금 삭감에 반대하고 노동 조건 개선을 주장한 것이 이 사건의 성격에 맞는 설명이다.

    나머지는 다른 사건에 해당한다. 조선 노동 총동맹 결성(1927)과 원산 총파업(1929)은 이 농성보다 앞서 일어난 별개의 사건이고,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이 참여한 것은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이며,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내건 것은 1923년 조선 형평사의 형평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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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자료를 발표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잡지 근우를 발간하였다.
    2
    김기전, 방정환 등이 주도하였다.
    3
    발명 학회와 과학 문명 보급회를 창립하였다.
    4
    가갸날을 제정하고 기관지인 한글을 발행하였다.
    5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해설

    자료는 1922년 5월 1일 기념 행사에서 배포된 선전문으로,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라는 표제 아래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라”,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되 늘 부드럽게 하라”, “나쁜 구경을 시키지 말고 동물원에 자주 보내라” 등 어린이를 인격체로 대하자는 당부를 담고 있다. 곧 어린이날 제정과 함께 소년 운동을 이끈 천도교 소년회가 발표한 것이다.

    천도교 소년회는 1921년 창립되어 김기전, 방정환 등이 주도하였고, 이듬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삼아 기념 행사를 열었으며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여 소년 운동을 확산시켰다. 따라서 김기전과 방정환이 이끌었다는 설명이 이 단체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다른 단체의 활동이다. 잡지 「근우」 발간은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 발명 학회와 과학 문명 보급회 창립은 과학 대중화 운동을 편 김용관 등의 활동, 가갸날 제정과 기관지 「한글」 발행은 조선어 연구회,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 설립은 신민회의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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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법령이 발표된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되었다.
    2
    함경도에서 방곡령이 선포되었다.
    3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창립되었다.
    4
    한성 은행, 대한 천일 은행이 설립되었다.
    5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해설

    제시된 법령은 「회사령 폐지에 관한 건」으로, 회사령을 폐지하고 이 영 시행 당시 존재하는 회사는 조선 민사령에 의하여 설립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였다. 1910년 회사 설립을 총독의 허가 사항으로 묶었던 회사령이 1920년 폐지되면서 회사 설립은 신고제로 바뀌었다.

    이 조치로 일본 자본의 조선 진출이 쉬워지고 관세 철폐 움직임까지 이어지자, 국내 자본을 지키기 위해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하여 국산품 애용과 자급자족을 내건 물산 장려 운동을 폈다. 따라서 이 사실이 법령 발표 이후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모두 그 이전의 일이다. 함경도 방곡령 선포는 1889년, 한성 은행·대한 천일 은행 설립은 1890년대 후반, 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은 1905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 창립은 1908년으로 모두 회사령 폐지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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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이 실시된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일본군의 보복으로 간도 참변이 발생하였다.
    2
    일제가 중국 군벌과 미쓰야 협정을 체결하였다.
    3
    농촌을 계몽하기 위한 브나로드 운동이 시작되었다.
    4
    한국 독립군이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5
    일제가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다.
    해설

    자료는 남태평양 밀리 환초로 끌려간 한국인 노동자들의 사진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밑줄 그은 정책, 곧 일제의 징용령 이후 강제로 끌려가 가혹한 처우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일본군에게 130여 명이 학살당하고 68명만 살아남았다고 설명되어 있다.

    일제는 중·일 전쟁이 장기화되자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국민 징용령을 시행하여 한국인을 탄광, 군수 공장, 남양 군도의 군사 시설 공사장 등으로 끌고 갔다. 이 시기는 곧 민족 말살 통치기에 해당한다.

    같은 시기 일제는 황국 신민화 정책의 하나로 1940년부터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창씨개명을 밀어붙였으므로 이것이 옳은 사실이다. 반면 간도 참변(1920), 미쓰야 협정(1925), 브나로드 운동 시작(1931), 대전자령 전투(1933)는 모두 징용령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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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집이 있다.
    2
    조선어 학회를 창립하여 한글을 연구하였다.
    3
    단성사에서 개봉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하였다.
    4
    일제의 침략 과정을 서술한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5
    카프(KAPF)를 조직하여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였다.
    해설

    신문 기사는 일본 교토 우지시에 세워진 ‘기억과 화해의 비’를 소개하면서, 그 인물이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연희 전문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중 반일 운동 혐의로 송몽규와 함께 체포되어 1945년 2월 29세의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이는 시인 윤동주에 대한 설명이다.

    윤동주는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등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움과 자기 성찰을 노래하였고, 광복 후 친구들이 남은 원고를 모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냈다. 따라서 이 유고집을 남겼다는 설명이 옳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이다. 조선어 학회 창립과 한글 연구는 이윤재·최현배 등 국어학자들의 일이고, 단성사에서 개봉된 영화 「아리랑」은 나운규가 만들었으며, 「한국통사」는 박은식이 저술하였고, 카프(KAPF)를 조직해 식민지 현실을 고발한 것은 박영희, 김기진 등 사회주의 계열 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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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가) 사건에 대한 탐구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역할을 알아본다.
    2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의 설치 배경을 찾아본다.
    3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계기를 파악한다.
    4
    비상 국무 회의에서 마련한 유신 헌법의 내용을 검색한다.
    5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사실들을 조사한다.
    해설

    제시된 방송 화면에서 기자는 1948년 토벌대의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피해 동광리 주민들이 두 달 가까이 은신했던 장소에 서 있으며, 결국 발각되어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 70주년 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제주도민에게 사과와 위로를 전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는 제주 4·3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의 발포 사건을 계기로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 1948년 남한만의 5·10 총선거를 통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대의 봉기로 시작되었다. 이후 진압 과정에서 중산간 마을이 불타고 무고한 주민들이 대규모로 희생되었으며, 제주도 세 개 선거구 중 두 곳은 투표가 무산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탐구하려면 단독 정부 수립에 반발해 일어난 사실들을 조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김구·김규식의 남북 협상 추진도 같은 맥락의 움직임이다.

    통일 주체 국민 회의와 비상 국무 회의의 유신 헌법은 1972년,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는 1980년 신군부,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로 모두 시기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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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자료를 발표한 정부의 통일 정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자료는 제26주년 광복절 경축사로, 북한에 평화 통일 제의 수락을 촉구하면서 대한 적십자사가 제의한 인도적 남북 회담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광복 26주년은 1971년이므로, 이 자료를 발표한 정부는 박정희 정부이다.

    1971년 대한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찾기 회담 제의로 남북 대화가 시작되었고, 이어 1972년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 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또한 이 공동 성명의 합의 사항을 실천하고 남북 관계를 협의하기 위한 기구로 남북 조절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따라서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과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가 이 정부의 통일 정책에 해당한다.

    반면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합의는 모두 1991~1992년 노태우 정부 시기의 성과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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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이 사건’의 계기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3ㆍ15 부정 선거가 실시되었다.
    2
    베트남 파병에 관한 브라운 각서가 체결되었다.
    3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이 개정되었다.
    4
    신군부 세력이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5
    국민의 직선제 요구를 거부한 4ㆍ13 호헌 조치를 발표하였다.
    해설

    민주화 운동 사진전의 대화에서 사진 속 외국인은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이며, 그는 1980년에 택시 기사 김사복과 함께 광주로 가서 이 사건을 취재하여 세계에 알렸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밑줄 그은 '이 사건'은 5·18 민주화 운동이다.

    10·26 사태로 유신 체제가 끝난 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12·12 사태로 군권을 장악하고 정치에 개입하자, 1980년 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신군부는 이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정권 장악을 노골화하였다.

    이에 반발한 광주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를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므로, 그 계기는 신군부의 쿠데타를 통한 권력 장악이다.

    3·15 부정 선거는 4·19 혁명의, 4·13 호헌 조치는 6월 민주 항쟁의 계기이며, 브라운 각서와 3선 개헌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사실로 이 사건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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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밑줄 그은 ‘이 작전’이 실행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편지에는 인천이 좁은 단일 수로로 대규모 함정의 진입이 불가능하고 적이 기뢰를 매설할 경우 피해가 예상되지만, 바로 그 점이 적을 기습할 수 있는 요소라며 인적·물적·시간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밑줄 그은 '이 작전'은 인천 상륙 작전이다.

    인천 상륙 작전은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지휘로 감행되어 전세를 뒤집었고, 그 결과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연표는 1950년 6월 북한군 남침 이후 1950년 7월 대전 함락, 1950년 9월 서울 탈환, 1950년 12월 흥남 철수, 1951년 7월 휴전 회담 시작, 1953년 7월 정전 협정 체결 순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작전은 대전 함락과 서울 탈환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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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9회
    다음 뉴스의 사건이 일어난 정부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2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3
    한ㆍ미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4
    제2차 석유 파동으로 경제 불황이 심화되었다.
    5
    유상 매수, 유상 분배의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해설

    뉴스 화면은 정부가 금융·외환 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 통화 기금(IMF)에 유동성 조절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으로, 이는 1997년 11월 외환 위기 당시의 발표이다. 따라서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의 정부는 김영삼 정부이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 실명제를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실시하고 지방 자치제를 전면 시행하였으며, 1996년에는 선진국 모임인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외환 보유고 부족으로 국제 통화 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과 제2차 석유 파동은 박정희 정부, 한·미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노무현 정부,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시기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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