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0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가) 시대에 처음 등장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슴베찌르개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였다.
거푸집을 사용하여 도구를 제작하였다.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다.
빗살무늬 토기를 이용하여 식량을 저장하였다.
박물관 누리집의 시대 개관에는 (가) 시대에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고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하였으며, 대표적인 유적지로 부여 송국리와 여주 흔암리가 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시물로는 반달 모양의 간석기와 비파형으로 생긴 청동검이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과 유적지, 그리고 반달 돌칼·비파형 동검이라는 유물은 모두 청동기 시대를 가리킵니다. 이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고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분화하여 군장이 등장하였고, 고인돌 같은 거대한 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거푸집(용범)에 녹인 청동을 부어 비파형 동검이나 거친무늬 거울 등의 도구를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실제로 여러 유적에서 거푸집이 출토되어 청동기를 자체 생산했음을 보여 줍니다.
반면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빗살무늬 토기에 식량을 저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의 모습이며, 슴베찌르개로 사냥하고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던 것은 구석기 시대의 생활이므로 이 시대에 처음 등장한 모습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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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가) -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가) -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
(나) - 특산물로 단궁, 과하마, 반어피가 유명하였다.
(나) -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하였다.
(가), (나) -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 왜 등에 수출하였다.
(가) 자료는 여자가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해 신랑 집에서 장성할 때까지 기르고, 성인이 되면 여자 집으로 돌려보낸 뒤 신랑 집에서 돈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와 아내로 삼는다는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으로, 옥저의 민며느리제입니다.
(나) 자료는 산천을 중요시하여 산과 내마다 구분이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읍락을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을 물게 하였다는 내용으로, 동예의 책화를 보여 줍니다.
따라서 동예의 특산물로 단궁, 과하마, 반어피가 유명하였다는 설명이 옳습니다. 동예는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10월의 동맹은 고구려,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다스린 사출도는 부여의 풍습입니다. 제사장 천군과 신성 지역 소도는 삼한, 철을 많이 생산해 낙랑과 왜에 수출한 것은 변한에 해당하므로 옥저·동예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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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제시된 흐름도의 첫 자료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동쪽으로 침략하려 하니 조선의 후(侯)도 왕을 칭하고 연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는 기록으로, 기원전 4세기 무렵 고조선의 성장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자료는 위만이 망명하여 호복을 입고 동쪽의 패수를 건너 준왕에게 투항하자, 준왕이 그를 믿고 백 리의 땅을 봉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원전 2세기 초의 일입니다. 따라서 (가)는 그 사이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략으로 고조선이 서쪽 땅을 잃었고, 부왕(否王) 등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고 상·대부·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습니다. 이 둘이 옳은 설명입니다.
한나라 무제가 군대를 보내 왕검성을 공격한 것은 기원전 108년 위만 조선이 멸망할 때의 일이고, 조선상 역계경이 무리를 이끌고 진국으로 남하한 것도 우거왕 때의 일이므로 모두 (가) 이후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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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습니다.
귀족 합의제인 화백 제도를 운영하였습니다.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22담로를 설치하였습니다.
대가(大加)들이 사자, 조의, 선인을 거느렸습니다.
위화부 등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분담하였습니다.
화면에는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판갑옷·투구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의 지배층 무덤입니다.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쇠퇴한 5세기 후반 이후 고령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습니다.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내고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기도 했으나, 562년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하였습니다.
귀족 합의제인 화백 제도와 위화부 등 13부를 둔 것은 신라, 지방 통제를 위한 22담로 설치는 백제 무령왕, 대가(大加)들이 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것은 고구려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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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에 제한이 있었다.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
세속 5계를 규범으로 삼는 화랑도를 운영하였다.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경당을 설치하여 청소년에게 글과 활쏘기를 가르쳤다.
자료의 천정대(天政臺)는 「삼국유사」에 재상을 선출할 때 3~4명의 후보 이름을 적어 상자에 넣어 밀봉한 뒤 놓아두었다가, 이름 위에 표시가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고 기록된 정사암(政事巖)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정사암 회의는 백제의 귀족 합의 기구입니다.
백제의 지배층은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사·연·협·해·진·국·목·백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골품에 따른 관직 승진 제한과 세속 5계를 규범으로 삼은 화랑도는 신라, 빈민에게 곡식을 빌려주던 진대법과 청소년에게 글·활쏘기를 가르친 경당은 고구려의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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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가)
(나)
(다)
(라)
(마)
제시된 대화는 이자겸의 난과 관련된 상황으로, 인종이 이자겸을 견제하기 위해 척준경을 회유하려는 내용이다. 이자겸의 난은 1126년(인종 때)에 일어났으며, 이는 귀주대첩(1019)과 무신정변(1170) 사이인 (나)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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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전사시켰다.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하고 관등을 정비하였다.
인안(仁安)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지린 성 동모산에서 건국하였다.
대화에서 동생 대문예를 보내 흑수말갈 정벌을 추진하고,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공격하여 당군을 격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발해 무왕(대무예) 때의 사실입니다.
무왕은 당·신라를 견제하며 돌궐·일본과 통교하는 강경책을 폈고, 인안(仁安)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여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주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한성을 공격해 개로왕을 전사시킨 것은 고구려 장수왕, 사비 천도와 국호 남부여는 백제 성왕, 상대등과 병부 설치는 신라 법흥왕의 일입니다.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지린 성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운 인물은 무왕의 아버지 대조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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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종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사직단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천명 사상을 통해 왕조 교체를 정당화하였다.
시경, 서경, 역경 등을 주요 경전으로 삼았다.
신선 사상과 결합하여 불로장생을 추구하였다.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설명 속 문화유산은 9산 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을 개창한 지증 대사의 탑비와 승탑입니다. 비문에 도의가 당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선(禪)을 말하였고, 뒤를 이어 도윤·범일·무염 등이 당에서 선을 배우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종파는 선종입니다.
선종은 경전 연구에 치중하던 교종과 달리 참선과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신라 하대에 지방 호족과 6두품 세력의 후원을 받아 9산 선문을 이루었고,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사직단 제사, 천명 사상을 통한 왕조 교체 정당화, 시경·서경·역경을 경전으로 삼는 것은 유교와 관련되며, 신선 사상과 결합하여 불로장생을 추구한 것은 도교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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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가) - 담비 가죽과 인삼, 자기 등을 수출하였다.
(가) - 벽란도를 통해 아라비아 상인과 무역하였다.
(나) -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나) - 당에 신라방을 형성하여 활발히 교역하였다.
(가), (나) - 양국 사이에 교통로를 두어 왕래하기도 하였다.
지도에서 (가)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걸쳐 있으며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발해이고, (나)는 한반도 남부에 금성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통일 신라입니다.
따라서 벽란도를 통해 아라비아 상인과 무역하였다는 설명이 발해에 대한 것으로 제시된 점이 옳지 않습니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것은 고려 시대의 일입니다.
발해가 담비 가죽·인삼·자기 등을 수출한 것, 통일 신라가 장보고의 청해진을 통해 해상 무역을 전개하고 당에 신라방을 형성한 것, 두 나라 사이에 신라도라는 교통로를 두어 왕래한 것은 모두 옳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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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설명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문화유산 카드에는 국보 제119호,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이며 고구려 때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만든 천불(千佛) 중 하나로, 광배 뒷면에 연가(延嘉) 7년이라는 연대가 새겨져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입니다.
카드의 설명대로 얼굴이 갸름하고 두꺼운 법의를 입었으며 옷자락이 좌우로 뻗어 있어 북위(北魏) 양식의 영향을 보여 줍니다. 정답에 해당하는 사진은 넓은 배 모양(주형) 광배를 등지고 연꽃 대좌 위에 선 자세로, 옷자락이 좌우로 벌어진 금동 불상입니다.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고 위쪽에 작은 화불이 여러 구 배치된 불상은 발해의 이불병좌상으로, 고구려 불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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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가) -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로 도입되었다.
(가) - 젊고 유능한 관리를 재교육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나) - 5품 이상 문무 관리를 대상으로 마련되었다.
(나) - 좌수와 별감이라는 향임직을 두어 운영되었다.
(가), (나) -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가) 자료는 신라왕 김부가 항복하자 신라국을 없애 경주라 하고, 김부를 경주의 사심(事審)으로 임명하여 부호장 이하 관직 등을 주관하게 하였다는 「고려사」 기록으로, 사심관 제도입니다.
(나) 자료는 국초에 향리의 자제를 뽑아 개경에서 볼모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한 자문에 대비하게 하였는데 이를 기인(其人)이라 하였다는 기록으로, 기인 제도입니다.
두 제도 모두 태조 왕건이 실시한 것으로, 지방 세력(호족)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이 공통됩니다.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로 도입된 것은 광종 때의 과거제이고, 젊고 유능한 관리를 재교육한 것은 조선 정조의 초계문신제입니다. 5품 이상 문무 관리를 대상으로 한 것은 음서, 좌수와 별감이라는 향임직을 둔 것은 조선의 유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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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하였다.
외침에 대비하여 광군이 조직되었다.
서희의 활약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거란을 배척하여 만부교 사건이 일어났다.
압록강에서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제시된 「고려사」 기록은 거란군이 귀주를 지날 때 강감찬 등이 동쪽 교외에서 맞아 싸워, 석천을 건너 반령에 이르기까지 거란군의 시신이 들판에 널렸다는 내용으로, 1019년 거란의 3차 침입 때의 귀주 대첩입니다.
귀주 대첩 이후 고려는 국방을 강화하여 개경에 나성을 쌓고, 이어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축조(1033~1044)하여 거란과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거란에 의한 발해 멸망(926), 거란을 배척한 만부교 사건(942), 광군 조직(947),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얻은 강동 6주(993)는 모두 귀주 대첩 이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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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건의에 따라 추진된 정책으로 옳은 것은? [1점]
군사 조직을 9서당 10정으로 편성하였다.
별무반을 창설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야별초를 확대하여 삼별초를 조직하였다.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궁궐과 도성을 수비하기 위하여 5위를 운영하였다.
그림의 대화에서 신하는 여진 완옌부와 싸워 패한 이유를 "저들은 기병이고 우리는 보병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기병의 양성과 군량의 비축이 필요하다고 건의하고, 왕은 "경의 뜻을 알았으니, 기병을 포함한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 보도록 하시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려 숙종 때 윤관이 여진 정벌의 실패를 반성하며 올린 건의로, 그 결과 기병 부대인 신기군, 보병 부대인 신보군, 승병 부대인 항마군으로 구성된 별무반이 창설되었습니다. 별무반은 뒷날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는 주력이 되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군사 제도들은 시기가 다릅니다. 중앙군 9서당과 지방군 10정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의 편제이고, 야별초를 확대한 삼별초는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습니다. 삼수병(포수·사수·살수)으로 편성된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에, 궁궐과 도성 수비를 맡은 5위는 조선 전기에 운영된 조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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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고구려 계승 의식이 반영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로 서술되었다.
단군 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림의 자료는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얻어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를 보니 그 신이한 사적이 세상에 전하는 것보다 더하였다"로 시작해, 처음에는 믿지 못해 귀환(鬼幻)으로만 여겼으나 세 번 반복하여 읽으니 환(幻)이 아니라 성(聖)이고 귀(鬼)가 아니라 신(神)이었으며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무엇을 볼 것인가"라고 맺고 있습니다. 출전은 「동명왕편」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동명왕편은 고려 후기 이규보가 지은 영웅 서사시로,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의 신이한 행적을 웅장하게 노래한 작품입니다. 무신 정변과 몽골의 침입을 겪던 시기에 우리 역사의 유구함과 자주성을 드러내려 한 것으로, 고구려 계승 의식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책에 해당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이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은 유득공의 발해고입니다. 동명왕편은 연대순으로 서술한 편년체 사서가 아니라 서사시이며, 단군 조선부터 고려까지를 다룬 것은 이승휴의 제왕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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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두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가)
(나)
(다)
(라)
(마)
첫 번째 자료는 동북면 병마사 간의대부 김보당이 동계(東界)에서 군사를 일으켜 전왕(前王, 의종)의 복위를 꾀하고 장순석 등을 거제로 보내 전왕을 계림(경주)으로 모시게 한 사건, 즉 김보당의 난(1173)입니다.
두 번째 자료는 서경 유수 조위총이 군사를 일으켜 동북 양계(兩界)의 여러 성들에 격문을 보내 사람을 모으자, 중서시랑평장사 윤인첨을 보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공격하게 한 사건으로, 조위총의 난(1174)에 해당합니다. 출전은 「고려사」이며, 두 사건 모두 무신 정권 성립 직후 이에 반발해 일어난 반란입니다.
연표는 1126년 이자겸의 난 - 1135년 묘청의 난 - 1170년 무신 정변 - 1232년 강화 천도 - 1270년 개경 환도 - 1351년 공민왕 즉위로 구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1173년과 1174년은 무신 정변 이후, 강화 천도 이전이므로, 1170년과 1232년 사이에 놓인 구간이 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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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지역에서 일어난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최충헌의 사노 만적 등이 난을 도모하였다.
고려 말 정몽주가 이방원 세력에 의해 피살되었다.
남북한 경제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공단이 건설되었다.
조선 후기 송상이 근거지로 삼아 전국적으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조만식 등이 물산 장려 운동을 시작하였다.
화면 속 발표 자료는 "고려의 수도였던 (가)의 만월대 유적에 대한 제7차 남북 공동 발굴 조사 결과 금속 활자가 발견되었고, 이것은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수도이자 만월대가 있는 곳은 개성(개경)입니다.
개성에서는 무신 집권기에 최충헌의 사노 만적이 신분 해방을 내걸고 난을 도모하였고, 고려 말에는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방원 세력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송상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송방이라는 지점을 두고 전국적으로 활동하였으며, 2000년대에는 남북 경제 협력 사업으로 개성 공단이 건설되었습니다.
반면 일제 강점기에 조만식 등이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물산 장려 운동을 시작한 곳은 개성이 아니라 평양이므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실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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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동의보감을 편찬하여 보급하였다.
16세 이상의 남자들에게 호패를 발급하였다.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역법서인 칠정산을 간행하였다.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하였다.
그림의 신문 기사는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즉위한 왕"이 6조 장관인 판서의 품계를 정2품으로 승격시키고, 6조에서 입안한 정책을 의정부 재상들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는 개혁을 단행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6조 직계제를 시행해 왕권을 강화한 조선 태종의 정책입니다. 태종은 이 밖에도 사병을 혁파하고 사간원을 독립시켰으며, 인구 파악과 조세·군역 자원 확보를 위해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호패를 발급하는 호패법을 실시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동의보감 편찬·보급은 광해군,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한 역법서 칠정산 간행은 세종,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주는 직전법 실시는 세조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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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을사사화가 발생하였다.
위훈 삭제 사건을 계기로 조광조 등이 제거되었다.
김종직 등 사림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사림 세력이 피해를 입었다.
폐비 윤씨 사사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화를 당하였다.
그림의 대화에서 한 인물이 "선왕(先王)의 나이 어린 동생이 즉위하셔서 대비께서 수렴청정을 한다"고 말하자, 상대는 "그렇다면 대비와 윤원형 일파가 윤임 세력에 대한 반격에 나서겠군"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죽고 이복동생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어머니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이때 명종의 외척인 윤원형 중심의 소윤이 인종의 외척인 윤임 중심의 대윤을 몰아내면서 일어난 사건이 1545년의 을사사화로, 대화가 예고하는 바로 그 전개에 해당합니다.
다른 선택지들은 모두 이 대화보다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위훈 삭제를 계기로 조광조 등이 제거된 기묘사화는 중종 때(1519), 김종직 등 사림의 중앙 정계 진출은 성종 때, 조의제문에서 비롯된 무오사화(1498)와 폐비 윤씨 사사 사건에서 비롯된 갑자사화(1504)는 연산군 때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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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그림으로 옳은 것은? [1점]
그림의 전시 안내문은 "안견 특별전"을 알리면서, 전시 작품이 "현실 세계와 도원(桃園) 세계가 대비를 이루면서도 전체적으로 통일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안평 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으로 전해진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에 해당하는 작품은 조선 전기 화원 안견이 1447년에 그린 몽유도원도입니다. 안평 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의 광경을 사흘 만에 완성했다고 전하며, 왼쪽의 현실 세계에서 오른쪽의 환상적인 도원 세계로 이어지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선택지의 그림 가운데 몽유도원도는 가로로 길게 펼쳐진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으로,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도원의 복사꽃 골짜기가 오른쪽에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로로 긴 화폭에 산봉우리를 담은 산수화, 눈 덮인 마을을 그린 설경, 바위 무리를 가까이서 잡은 산수화 등은 모두 몽유도원도가 아닌 다른 화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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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중앙에서 교수나 훈도가 파견되었다.
지방의 사림 세력이 주로 설립하였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대부분 철폐되었다.
입학 자격은 소과 합격자를 원칙으로 하였다.
유학부 외에 율학, 서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칠판에 정리된 (가)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으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廡),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齋)로 이루어져 있고 학생 수는 군현의 규모에 따라 배정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고, 건물 배치도에도 명륜당·동재·서재와 대성전·동무·서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갖춘 기관은 향교입니다. 향교는 부·목·군·현에 하나씩 설립된 국립 교육 기관으로, 중앙에서 교수나 훈도가 교관으로 파견되어 유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문묘 기능도 함께 담당하였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기관에 해당합니다. 지방 사림이 주로 설립하고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대부분 철폐된 것은 서원이며, 소과 합격자를 입학 자격 원칙으로 삼은 것은 성균관, 유학부 외에 율학·서학·산학 같은 기술학부를 둔 것은 고려의 국자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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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전쟁’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조총 부대가 나선 정벌에 동원되었다.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 운동이 추진되었다.
4군 6진을 설치하여 북방 영토를 개척하였다.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 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갔다.
청과의 교류를 통해 서양의 과학 기술이 전래되었다.
그림에서 발표자는 김상용 순의비 사진을 보여 주며, 그가 "청이 쳐들어오자 왕명을 받아 종묘의 신위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했으나, 강화성이 함락되자 남문루에서 화약을 쌓아 놓고 불을 붙여 순절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쟁은 병자호란(1636)입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 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갔고, 돌아와 즉위한 효종이 북벌 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또 청의 요청에 따라 조총 부대가 두 차례 나선 정벌에 동원되었으며, 청을 오가는 사신들을 통해 서양의 과학 기술과 문물이 전래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윤덕과 김종서가 압록강·두만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해 북방 영토를 개척한 것은 15세기 세종 때의 일로, 이 전쟁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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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삼한통보, 해동통보가 발행되었다.
덕대가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였다.
모내기법의 확대로 이모작이 성행하였다.
여러 장시가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되었다.
국경 지대에서 개시 무역과 후시 무역이 이루어졌다.
그림의 자료는 "도성 안팎과 번화한 큰 도시의 파밭, 마늘밭, 배추밭, 오이밭은 10무(畝)의 땅에서 얻은 수확이 돈 수만을 헤아리게 된다"고 하고, 서도 지방의 담배밭, 북도 지방의 삼밭, 한산의 모시밭, 전주의 생강밭, 강진의 고구마밭, 황주의 지황밭이 모두 상상등(上上等)의 논보다 그 이익이 10배에 달한다고 전합니다. 출전은 「경세유표」입니다.
정약용이 지은 경세유표에 실린 이 기록은 조선 후기에 담배·모시·채소 같은 상품 작물 재배가 확대되고 상업적 농업이 발달한 상황을 보여 줍니다.
이 시기에는 덕대가 물주의 자본을 받아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였고, 모내기법이 확대되어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성행하였으며, 보부상의 활동으로 여러 장시가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또 국경 지대에서는 공식 무역인 개시와 사무역인 후시가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삼한통보와 해동통보가 발행된 것은 고려 숙종 때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설치한 뒤의 일이므로, 이 자료가 보여 주는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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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참여하였다.
하정사, 성절사, 천추사 등으로도 불리었다.
조선의 문물을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국도지, 영환지략을 들여와 국내에 소개하였다.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왔다.
화면 속 안내에는 임진왜란 이후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조선이 파견한 사절단의 관련 기록물을 한국과 일본의 단체들이 함께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계획이라는 내용과 함께, 화려한 행렬을 그린 그림 두 점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가)는 조선 통신사이다.
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일본에 파견되어 국서 전달이라는 외교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가는 곳마다 시문과 글씨를 남기고 학문·의학·회화 등 조선의 문물을 일본에 전해 주는 문화 교류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한편 하정사·성절사·천추사로 불린 것은 명·청에 보낸 사행이고, 민영익·홍영식·서광범 등이 참여한 것은 미국에 보낸 보빙사이다. 『해국도지』·『영환지략』을 국내에 소개한 것은 청에 다녀온 사신들이며,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것은 영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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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비석’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간도 귀속 문제의 쟁점을 조사한다.
거문도 사건의 전개 과정을 파악한다.
삼국 간섭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본다.
청·일 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알아본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내용을 분석한다.
제시된 『만기요람』 기록에는 목극등이 샘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을 분수령이라 하며 경계를 정하고 돌을 깎아 비석을 세웠다고 나온다. 그 비문에는 '오라총관 목극등'과 '서쪽은 압록강이며 동쪽은 토문강이므로 분수령 위에다 돌에 새겨 표를 삼는다'고 쓰여 있다. 이 비석은 숙종 38년(1712) 조선과 청이 국경을 정하며 백두산에 세운 백두산정계비이다.
19세기 후반 비문의 '토문강'을 조선은 쑹화강의 지류로, 청은 두만강으로 해석하면서 두 강 사이 지역인 간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다. 따라서 이 비석과 관련해서는 간도 귀속 문제의 쟁점을 조사하는 탐구 활동이 가장 적절하다.
거문도 사건은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려 거문도를 점령한 일, 삼국 간섭은 청·일 전쟁 후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의 반환 문제, 청·일 전쟁은 동학 농민 운동을 계기로 한 청과 일본의 조선 지배권 다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은 임오군란 이후 청 상인의 내지 통상과 관련된 사안으로 모두 이 비석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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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를 주장한 붕당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그림 속 두 인물은 효종의 사망 후 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놓고 논쟁하고 있다. 효종을 장자의 예로 대우하여 복상 기간을 3년으로 하자는 (가) 측과, 효종은 장자가 아니므로 1년이어야 한다는 (나) 측의 대립은 현종 때의 기해예송이다.
왕실의 예는 사대부와 다르다며 3년설을 주장한 (가)는 남인으로,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학파에서 이어진 붕당이다. 신하와 같은 예를 적용해 1년설을 편 (나)는 서인으로, 숙종 대 경신환국 이후 남인 처벌 문제 등을 놓고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그러므로 남인이 이황의 학통을 이었다는 설명과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분화되었다는 설명이 옳다.
인현 왕후의 복위를 주장한 것은 갑술환국 때의 서인 측이므로 남인에 대한 설명으로 맞지 않고,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지지한 붕당은 북인이므로 서인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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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금위영을 설치하여 5군영 체제를 확립하였다.
대전통편을 편찬하여 문물 제도를 정비하였다.
붕당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고자 탕평비를 세웠다.
농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자료의 (가) 왕은 세 차례의 환국으로 왕권을 강화하였고, 양 난 이후의 수취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대동법을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였다. 또 국가 의례 복원의 일환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서울의 태조 영정을 새로 제작하였는데, 전주 경기전의 태조 영정을 서울로 옮겨 와 모사한 뒤 다시 돌려보낸 과정을 정리한 것이 태조영정모사도감의궤이다. 이 왕은 숙종이다.
숙종은 수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금위영을 설치하여,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수어청과 함께 5군영 체제를 완성하였다.
『대전통편』 편찬과 육의전을 제외한 금난전권 폐지(신해통공)는 정조의 업적이고, 탕평비 건립과 균역법 실시는 영조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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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전시된 책은 1858년 유림 단체인 달서정사에서 펴낸 『규사』로, 책 이름의 '규(葵)'는 해바라기를 뜻하며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데는 본가지나 곁가지가 다름이 없듯 '이들'의 충성심도 적자(嫡子)와 다를 바 없다는 선조의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밑줄 그은 '이들'은 서얼이다.
서얼은 조선 후기 들어 집단 상소를 거듭 올려 관직 진출 제한을 풀어 달라는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고, 정조 때에는 이덕무·박제가·유득공·서이수 등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기도 하였다.
신량역천은 신분상 양인이면서 천한 역을 지던 계층을 가리키고, 장례원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은 것은 노비이므로 서얼에 대한 설명으로는 알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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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자료의 문화유산은 국보 제62호이고 소재지가 전라북도 김제시이며, 후백제 견훤이 유폐되었던 사찰 안에 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17세기 이후의 대표적인 불교 건축물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갇혔던 절은 김제의 금산사이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은 금산사 미륵전이다. 겉모습은 3층 지붕을 얹은 다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위아래가 트인 통층으로 되어 있어 거대한 미륵불을 모실 수 있게 만든 조선 후기 불전이다.
보은의 법주사 팔상전은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 시대 5층 목탑이고,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시대의 주심포 양식 건물이며, 봉정사 극락전은 현존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로 위치와 건립 시기가 모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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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지행합일을 중요시하였다.
정감록을 통해 왕조 교체를 예언하였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내세웠다.
유교, 불교, 도교에 민간 신앙의 요소를 결합하였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여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신문 기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정제두의 묘 사진과 함께, 그가 강화 학파의 태두로서 심즉리(心卽理)와 치양지(致良知)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를 연구하였고 강화도에서 이광사 등 많은 제자를 길렀다고 전한다. (가)는 양명학이다.
양명학은 마음이 곧 이치이며 누구나 지닌 양심을 그대로 실현해야 한다고 보아, 앎과 실천이 둘이 아니라는 지행합일을 강조하였다. 이는 이론과 명분에 치우친 당시 성리학을 비판하는 논리가 되었다.
『정감록』으로 왕조 교체를 예언한 것은 조선 후기 예언 사상이고,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신다는 시천주는 동학, 유교·불교·도교에 민간 신앙을 결합한 것은 증산교이며, 조상 제사 거부로 탄압받은 것은 천주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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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거중기를 제작하여 화성 축조에 활용하였다.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를 처음으로 고증하였다.
북학의에서 절약보다 적절한 소비를 권장하였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무능과 허례를 풍자하였다.
사람의 체질을 연구하여 사상 의학을 주장하였다.
검색 결과 화면에는 생몰 1737~1805년, 호 연암(燕巖), 주요 저서 『열하일기』·『과농소초』, 주요 주장으로 화폐의 유통, 상업적 농업 장려, 수레와 선박의 이용이 제시되어 있다. 이 인물은 중상학파 실학자 박지원이다.
박지원은 한문 소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무능과 허례허식을 신랄하게 풍자하였으며, 『허생전』·『호질』에서도 당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였다.
거중기를 만들어 화성 축조에 활용한 인물은 정약용, 북한산비를 진흥왕 순수비로 처음 고증한 인물은 김정희, 『북학의』에서 절약보다 적절한 소비를 권장한 인물은 박제가, 체질을 연구해 사상 의학을 주장한 인물은 이제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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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ㄱ), (ㄴ)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미국 로저스 제독이 초지진을 점령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일본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하여 무력 시위를 하였다.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조선이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하고 천주교 포교를 허용하였다.
(ㄱ)은 '조선 국왕이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인 신도 다수를 처형하였다'며 수일 내로 우리 군대가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진군할 것이라고 한 프랑스 대리 공사 벨로네의 서신으로, 1866년 병인박해 직후의 것이다. (ㄴ)은 '이번 덕산 묘지에서 저지른 사건'을 규탄한 영종진 첨사 신효철의 서신으로, 1868년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 때의 것이다.
두 서신 사이인 1866년 가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이때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 매복하여 프랑스군을 물리쳤고,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의궤 등을 약탈해 물러갔다.
미국 로저스 제독의 초지진 점령(신미양요)과 전국 각지의 척화비 건립은 1871년, 운요호의 강화도 무력 시위는 1875년, 프랑스와 조약을 맺어 천주교 포교를 사실상 허용한 것은 1886년의 일로 모두 (ㄴ) 이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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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사에 보도된 사건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고종이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김옥균 등 개화 세력이 정변을 일으켰다.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이 추진되었다.
보안회가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철회시켰다.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신문 논설은 헤이그 국제 회의에 간 이위종이 각국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을사늑약이 무효인 이유를 프랑스어로 세 시간 동안 연설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1907년 고종이 이상설·이준·이위종을 만국 평화 회의에 보낸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이다.
일제는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 신협약을 맺어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하였다. 해산 군인들이 합류하면서 의병 전쟁이 크게 확대되었고, 그해 말 각지 의병 부대가 모여 결성한 13도 창의군은 이듬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고종의 국외 중립 선언과 보안회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1904년, 군국기무처 중심의 개혁은 189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의 정변은 1884년으로 모두 이 사건보다 앞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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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기관지인 한글을 발행하였다.
우리말 큰사전을 간행하였다.
가갸날을 제정하고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주시경, 지석영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다.
화면 속 자료는 국문연구안이고, 설명하는 사람은 이것이 1907년 학부(學部) 안에 설치된 기구의 규칙·활동·참여자들의 의견을 담은 자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07년 학부 산하에 설치되어 국문 표기를 연구한 기관은 국문연구소입니다.
국문연구소는 주시경과 지석영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며 한글의 자모 체계와 맞춤법 원리를 정리했고, 그 성과를 모은 것이 바로 국문연구안입니다. 국가가 설립한 최초의 한글 연구 기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혼동하기 쉬운 다른 사례들도 함께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한성순보는 박문국에서 발행한 근대 신문이고, 기관지 한글의 발행과 가갸날 제정은 1920년대 조선어 연구회의 활동이며, 우리말 큰사전은 조선어 학회의 편찬 사업이 광복 이후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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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1점]
만세보를 발행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다.
만민 공동회를 열어 민권 신장을 추구하였다.
대성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립 대학 설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추진하였다.
일본에게 진 빚을 갚자는 국채 보상 운동을 주도하였다.
노트에 정리된 (가)는 서재필·윤치호 등 개화 지식인들이 주도해 창립했고, 활동으로 고종의 환궁 요구, 한·러 은행 폐쇄 요구, 구국 선언 상소, 의회 설립 요구 및 헌의 6조 건의가 적혀 있으며, 황국 협회의 방해와 고종의 군대 동원으로 해산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1896년에 창립된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열어 열강의 이권 침탈에 맞서고 자유 민권과 참정권 신장을 주장했으며,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해 정부에 올렸습니다. 노트의 활동 항목들이 모두 만민 공동회·관민 공동회를 무대로 전개된 것입니다.
다른 단체들의 활동과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만세보는 천도교의 기관지이고, 대성 학교 설립은 신민회의 교육 활동이며, 민립 대학 설립 모금 운동은 1920년대 민립 대학 기성회가, 국채 보상 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기성회가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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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자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가) - 일본의 개항 요구에 반대하였다.
(가) -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나) -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반대하였다.
(나) - 청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와의 교섭을 건의하였다.
(가), (나) - 조선의 독자적인 영세 중립국 선언을 제시하였다.
(가)는 출처가 「조선책략」으로, 조선이 아시아의 요충에 있어 러시아가 남하하면 반드시 조선부터 노릴 것이니 러시아를 막을 방책이 무엇인지 묻는 내용입니다. (나)는 영남 만인소로,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감정이 없는데 먼 나라와의 외교에 기대어 가까운 나라를 배척하는 잘못된 조치를 취했다가 전쟁의 빌미를 준다고 반발하는 글입니다.
「조선책략」은 청의 외교관이 지어 제2차 수신사 편에 국내로 들어온 책으로, 러시아를 막기 위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으며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곧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제안을 담고 있다는 점이 이 자료의 핵심입니다.
영남 만인소는 그 유포에 반발한 영남 유생들의 집단 상소이므로, 러시아와의 교섭을 건의했다는 설명과는 정반대입니다.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한 것은 독립 협회의 만민 공동회이고, 조선의 영세 중립화 구상은 부들러와 유길준 등이 제기한 별개의 논의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보고서는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을 정리한 것으로, 개혁 방향은 구본신참이며 (가) 황제권의 강화, (나) 군사 제도의 개혁, (다) 재정의 확충과 토지 소유권 조사, (라) 상공업의 진흥이라는 네 항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황제권 강화 항목에는 1899년 반포되어 황제가 무한한 군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대한국 국제가 들어가야 하고, 재정 확충과 토지 소유권 조사 항목에는 양전 사업을 실시해 토지를 측량하고 지계를 발급한 사실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 두 항목이 짝이 맞는 조합입니다.
나머지 두 진술은 시기가 어긋납니다. 별기군은 1881년 개화 정책 초기에 만들어진 신식 군대이며 광무개혁기의 군제 개편은 원수부 설치가 핵심입니다. 대동 상회·장통 회사 역시 1880년대에 설립된 초기 상회사여서 대한 제국기의 식산흥업 정책 사례로 볼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최초로 설립된 여성 교육 기관이다.
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한 사범학교이다.
관민이 합심하여 만든 근대식 학교이다.
교육 입국 조서 반포를 계기로 설립되었다.
헐버트, 길모어 등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였다.
자료는 「덕원부계록」으로, 덕원 부사 정현석이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이 해안의 요충지이자 개항지가 되었으니 개항장을 잘 운영하려면 인재 선발이 중요하고 그 요체는 교육에 있으므로 학교를 설립하고자 한다고 장계를 올린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는 1883년 세워진 원산 학사입니다.
원산 학사는 개항 이후 밀려드는 외세에 대응하려는 덕원·원산 지역의 주민과 지방관이 힘을 합쳐 세운 최초의 근대식 학교로, 재원도 주민들이 모아 마련했습니다. 문예반과 무예반을 두어 산수·과학 등 근대 학문과 함께 무술도 가르쳤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학교들과 구별해 두면 좋습니다.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은 이화 학당이고, 헐버트·길모어 등 외국인 교사를 초빙한 관립 학교는 육영 공원이며, 교원 양성을 위한 사범학교와 교육 입국 조서를 계기로 세워진 관립 학교들은 갑오개혁 이후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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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여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황포 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
중국 국민당과 협력하여 조선 의용대를 결성하였다.
의열단의 활동 강령인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대한 독립군을 지휘하여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연보를 보면 (가)는 1868년 출생해 1907년 산포대를 조직하여 의병 활동을 폈고, 1920년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으며, 1921년 러시아 자유시의 고려 혁명 군관 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별세한 인물입니다. 포수 출신 의병장으로 출발한 이 독립운동가는 홍범도입니다.
홍범도는 1920년 6월 대한 독립군을 이끌고 국내 진공 작전을 펴다 추격해 온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해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어 그해 10월 청산리 일대의 연합 부대에도 참여해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연보의 사진 설명처럼 그의 일대기가 카자흐스탄에서 연극으로 공연될 만큼 현지 고려인 사회에서도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대한 광복회를 조직한 박상진, 조선 혁명 선언을 쓴 신채호, 황포 군관 학교에서 훈련받고 조선 의용대를 결성한 김원봉 등과 혼동하지 않도록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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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지역에서 전개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가) - 이륭양행에 교통국을 설치하여 국내와의 연락을 취하였다.
(나) - 국민 대표 회의를 열어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다) -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라) - 임시 사료 편찬회를 두어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마) - 의거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한인 애국단을 결성하였다.
지도에서 (가)는 충칭, (나)는 상하이, (다)는 단둥, (라)는 서울, (마)는 워싱턴 D.C.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 거점이 각각 어떤 사건과 연결되는지 묻는 문제입니다.
상하이에서는 1923년 국민 대표 회의가 열려 침체에 빠진 임시 정부의 진로를 두고 창조파와 개조파가 격론을 벌였습니다. 상하이가 임시 정부의 최초 소재지였다는 점을 기억하면 연결이 쉽습니다.
나머지는 지역이 서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이륭양행에 설치한 교통국은 압록강 건너 단둥에 있었고, 삼균주의에 입각한 건국 강령 발표는 1941년 충칭에서 이루어졌으며, 임시 사료 편찬회를 두어 한일 관계 사료집을 낸 곳과 한인 애국단을 결성한 곳은 모두 상하이입니다. 워싱턴에는 외교 활동을 맡은 구미 위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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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격문을 발표한 항일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났다.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형평사를 중심으로 진주에서 시작되었다.
신간회에서 조사단을 파견하여 지원하였다.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배경이 되었다.
격문은 “학생 대중아 궐기하자”로 시작해 검거자를 즉시 탈환하자, 교내에 경찰권 침입을 절대 반대하자, 교우회 자치권을 획득하자, 직원회에 생도 대표자를 참석시켜라,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확립시켜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학생 중심의 요구와 식민지 차별 교육 철폐 주장이 함께 담긴 이 격문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것입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통학 열차에서 벌어진 한·일 학생 충돌과 일제 경찰의 편파적 처리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인 동맹 휴학과 시위로 번졌습니다. 이때 신간회는 광주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계획하는 등 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나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주고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로 방향을 바꾸는 배경이 된 것은 3·1 운동이며, 진주에서 형평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것은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내건 형평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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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팥죽 쑤어 먹고 문에 뿌리기
어른에게 세배하고 떡국 먹기
햇곡식을 빻아 송편 빚어 먹기
진달래 꽃으로 화전 부쳐 먹기
부스럼 예방을 위해 부럼 깨물기
안내문은 정월 대보름 체험 프로그램으로, 이미 오곡밥 먹기, 보름달을 보고 소원 빌기, 액운을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는 달집 태우기가 제시되어 있고 (가)에 들어갈 프로그램 하나가 비어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의 대표적인 세시 풍속으로는 부스럼을 예방한다며 딱딱한 견과류를 깨무는 부럼 깨물기가 있습니다.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앞의 항목들과 취지가 이어지므로 빈칸에 알맞습니다.
다른 풍속들은 각기 절기가 다릅니다. 팥죽을 쑤어 문에 뿌리는 것은 동지, 세배하고 떡국을 먹는 것은 설날,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는 것은 추석,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치는 것은 삼짇날의 풍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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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의 사회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1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게시된 자료는 소년 운동의 기초 조항으로, 어린이를 윤리적 압박에서 해방해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하고, 경제적 압박에서 해방해 만 14세 이하의 노동을 폐지하며, 고요히 배우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정과 사회 시설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 전개된 소년 운동의 선언입니다.
이 운동은 방정환과 김기전 등이 주도했고, 천도교 소년회를 중심으로 천도교 세력이 추진했습니다. 이들은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며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인식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나머지 진술은 시기와 성격이 맞지 않습니다. 서당 규칙은 1918년 일제가 서당을 통제하려고 제정한 법령이어서 소년 운동의 결과가 아니며,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국권 피탈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로 바뀌었으므로 1920년대 소년 운동을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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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지역에서 있었던 의거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가) -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나) - 박재혁이 경찰서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다) - 이봉창이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라) - 강우규가 사이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다.
(마) - 윤봉길이 일본군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하였다.
지도에서 (가)는 만주의 하얼빈, (나)는 서울, (다)는 부산, (라)는 중국의 상하이, (마)는 일본의 도쿄를 가리키고 있다. 각 의거가 실제로 일어난 도시와 지도의 지점이 맞아떨어지는지를 따져 보면 된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1909년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곳이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동양 평화론을 저술하다가 순국하였다.
나머지 지점은 인물과 장소가 어긋난다. 박재혁이 폭탄을 터뜨린 경찰서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경찰서였고, 이봉창이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 곳은 부산이 아니라 도쿄였다.
또 강우규가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던진 곳은 상하이가 아니라 서울 남대문역이었으며, 윤봉길이 일본군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한 곳은 도쿄가 아니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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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법령이 시행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1점]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공출을 강요하는 면사무소 서기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
창씨개명을 선동하는 친일 문학인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인 교사
제시된 법령은 소학교의 목적을 "국민 도덕의 함양"과 "충량한 황국 신민을 육성"하는 데 둔다고 밝히고 있고, 제13조에서 심상소학교 교과목을 열거하면서 조선어를 수의(隨意) 과목, 곧 선택 과목으로 낮추었다. 이는 중일 전쟁 직후인 1938년에 공포된 제3차 조선 교육령이다.
따라서 이 법령이 시행된 시기는 민족 말살 통치기에 해당한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 신사 참배 강요, 창씨개명 강요,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한 미곡과 금속의 공출은 모두 이 시기에 실제로 볼 수 있던 모습이다.
반면 헌병 경찰이 조선인에게 태형을 집행하는 모습은 이 시기에는 볼 수 없다. 태형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조선 태형령에 근거한 것으로,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통치로 전환하면서 1920년에 이미 폐지되었고 헌병 경찰제도 보통 경찰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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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법령을 제정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 - (나) - (다) - (라)
(가) - (나) - (라) - (다)
(나) - (가) - (라) - (다)
(나) - (다) - (가) - (라)
(다) - (라) - (나) - (가)
제시된 네 법령은 각각 다음과 같다. (가) 회사의 설립에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은 1910년의 회사령이고, (나) 토지 소유자가 정해진 기간 안에 소유지의 소재·지목·면적 등을 임시 토지 조사 국장에게 신고하게 한 것은 1912년의 토지 조사령이다.
또 (다) 전시에 칙령으로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1938년의 국가 총동원법이며, (라) 소작지 임대차 기간을 3년 이상(영년작물은 7년 이상)으로 정한 것은 1934년의 조선 농지령이다.
따라서 제정된 순서는 회사령(1910) → 토지 조사령(1912) → 조선 농지령(1934) → 국가 총동원법(1938), 곧 (가) - (나) - (라) - (다)이다. 앞의 두 법령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경제 수탈 장치이고, 조선 농지령은 농촌 진흥 운동과 맞물린 1930년대의 회유책이며, 국가 총동원법은 중일 전쟁 이후 인력·물자 수탈을 뒷받침한 법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순서를 잡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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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도표는 8·15 광복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개최 → (가) → 5·10 총선거 실시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가)에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이후부터 1948년 5월 총선거 사이에 있었던 사실이 들어가야 한다.
이 기간에는 신탁 통치 문제로 좌우가 대립하는 가운데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렸고(1946), 이어 좌우 합작 위원회가 활동하였다. 또 유엔 결의에 따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방한하였고(1948. 1), 단독 선거에 반대한 김구가 남북 협상에 참석하였다(1948. 4).
그러나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의 활동은 이 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 반민특위는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한 뒤 1948년 하반기에 설치되어 이듬해 활동하였으므로, 총선거보다 나중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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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헌법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가) - 대통령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선출하였다.
(나) -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제로 하였다.
(다) -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 국회를 운영하였다.
(라) - 대통령 선출 방식으로 간선제를 채택하였다.
(마) - 개헌 당시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았다.
표는 헌법의 변천을 (가) 제헌 헌법(1948) 대통령 간선제, (나) 1차 개헌(1952) 대통령 직선제, (다) 3차 개헌(1960) 의원 내각제, (라) 6차 개헌(1969) 대통령 3선 연임 허용, (마) 9차 개헌(1987)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로 정리하고 있다.
4·19 혁명 직후 이루어진 3차 개헌은 의원 내각제와 함께 국회를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 윤보선, 국무총리 장면의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다른 항목은 시기가 어긋난다. 대통령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선출한 것은 1972년 유신 헌법(7차 개헌)이고,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제로 한 것은 1980년 8차 개헌이다.
또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한 것은 6차 개헌이 아니라 제헌 헌법이며, 개헌 당시의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2차 개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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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제2차 석유 파동으로 경제 위기를 맞았다.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삼백 산업 중심의 소비재 산업이 발달하였다.
농촌 근대화를 목표로 새마을 운동이 추진되었다.
그래프는 미국의 경제 원조 추이로, 1952년 약 161,327천 달러에서 시작해 1957년 무렵 정점에 이른 뒤 감소하여 1960년에는 245,393천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즉 6·25 전쟁 직후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원조 경제 시기를 보여 준다.
이 시기 미국은 밀가루·설탕·면화 등 소비재 원료를 주로 제공하였고, 이를 가공하는 제분·제당·면방직의 이른바 삼백 산업이 발달하였다. 다만 값싼 잉여 농산물의 대량 유입으로 국내 농업, 특히 밀과 면화 재배 농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제2차 석유 파동은 1970년대 말,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은 2000년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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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6·29 민주화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가 파견되었습니다.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습니다.
화면의 자료는 "신문으로 보는 제3공화국"이라는 제목 아래 월남 파병 동의안 통과와 한일 협정 비준안 통과를 보도한 신문 기사를 제시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1965년의 일로, 제3공화국은 5·16 군사 정변 이후 1963년 출범하여 유신 체제가 성립하는 1972년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경제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독과 차관 협정을 맺고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에 파견하였다. 이들이 보낸 임금은 외화 획득의 통로가 되었고, 한일 협정의 청구권 자금, 베트남 파병에 따른 특수와 함께 제1·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재원으로 쓰였다.
다른 사건들은 시기가 다르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은 1953년 이승만 정부 때이고, 6·29 민주화 선언은 1987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1991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1996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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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간 배경을 조사한다.
대한 제국이 반포한 칙령 제41호의 내용을 분석한다.
일본이 러·일 전쟁 때 불법으로 편입한 영토를 찾아본다.
지증왕이 이사부를 보내 복속한 지역과 부속 도서를 살펴본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하여 영국이 점령한 장소를 알아본다.
대화에서 (가)는 서 있는 섬에서 동남쪽으로 87.4km 떨어져 눈으로 보이는 섬이며, 세종실록 지리지에 "우산과 무릉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데, 두 섬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라고 기록된 섬이라고 소개된다. 이는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독도와 관련된 탐구로는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받은 일, 1900년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로 울도군이 울릉 전도와 죽도·석도를 관할하게 한 일, 일본이 러·일 전쟁 중인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불법 편입한 일,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일 등을 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영국이 점령한 장소를 알아보는 것은 이 섬과 무관하다. 이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영국이 불법 점령한 거문도에 관한 내용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