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비석’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0회 상세 페이지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0회
밑줄 그은 ‘비석’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
간도 귀속 문제의 쟁점을 조사한다.
2
거문도 사건의 전개 과정을 파악한다.
3
삼국 간섭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본다.
4
청·일 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알아본다.
5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내용을 분석한다.
해설
제시된 『만기요람』 기록에는 목극등이 샘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을 분수령이라 하며 경계를 정하고 돌을 깎아 비석을 세웠다고 나온다. 그 비문에는 '오라총관 목극등'과 '서쪽은 압록강이며 동쪽은 토문강이므로 분수령 위에다 돌에 새겨 표를 삼는다'고 쓰여 있다. 이 비석은 숙종 38년(1712) 조선과 청이 국경을 정하며 백두산에 세운 백두산정계비이다.
19세기 후반 비문의 '토문강'을 조선은 쑹화강의 지류로, 청은 두만강으로 해석하면서 두 강 사이 지역인 간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다. 따라서 이 비석과 관련해서는 간도 귀속 문제의 쟁점을 조사하는 탐구 활동이 가장 적절하다.
거문도 사건은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려 거문도를 점령한 일, 삼국 간섭은 청·일 전쟁 후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의 반환 문제, 청·일 전쟁은 동학 농민 운동을 계기로 한 청과 일본의 조선 지배권 다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은 임오군란 이후 청 상인의 내지 통상과 관련된 사안으로 모두 이 비석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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