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시대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2
    주로 동굴이나 막집에서 거주하였다.
    3
    지배자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4
    반달 돌칼을 사용하여 곡물을 수확하였다.
    5
    빗살무늬 토기를 제작하여 식량을 저장하였다.
    해설

    뉴스 화면은 충청북도 단양군 수양개 6지구 유적 발굴 조사에서 주먹도끼·찍개를 비롯한 15,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몸돌과 격지를 통해 이곳에서 석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주먹도끼와 찍개는 대표적인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이며, 몸돌에서 격지를 떼어 내어 도구를 만든 것도 구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 방식입니다. 따라서 (가)는 구석기 시대입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빗살무늬 토기로 식량을 저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이고, 고인돌을 축조하고 반달 돌칼로 곡물을 수확한 것은 청동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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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읍군, 삼로라고 불리는 군장이 있었다.
    2
    (가)-대가들이 사자, 조의, 선인 등을 거느렸다.
    3
    (나)-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4
    (나)-제가(諸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5
    (가), (나)-도둑질한 자에게는 12배를 변상하게 하였다.
    해설

    대화에서 (가)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어 나라의 결속을 다졌다고 하였고, (나)는 해마다 5월과 10월에 제사를 지내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하였습니다. 동맹은 고구려의 제천 행사이고, 씨를 뿌린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은 삼한의 풍습입니다.

    고구려는 왕 아래 상가·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고, 이들은 각기 사자·조의·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렸습니다. 또 국가의 중대사는 제가 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읍군·삼로라는 군장이 있었던 것은 옥저와 동예이고, 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며, 제가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한 것은 부여입니다. 도둑질한 자에게 12배를 물게 한 1책 12법은 부여와 고구려의 법속으로, 삼한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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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국가의 경제 생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수도에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2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3
    낙랑, 왜 등과 활발하게 교역하였다.
    4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5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있었다.
    해설

    전시된 유물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 판갑옷으로, 당시 철기 제작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성동 고분군은 금관가야의 지배층 무덤이므로 (가)는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김해 지역에서 성장하였고, 질 좋은 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철을 덩이쇠 형태로 만들어 화폐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바닷길을 이용해 낙랑과 왜 등을 잇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습니다.

    수도에 동시전을 둔 것은 신라,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를 둔 것과 진대법을 시행한 것은 고구려, 단궁·과하마·반어피를 특산물로 삼은 것은 동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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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하였다.
    2
    고구려가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였다.
    3
    신라가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4
    고구려가 대방군을 축출하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5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왕이 전사하였다.
    해설

    (가)는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경전을 전하였고 태학을 세워 자제를 교육시켰다는 내용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4세기 후반(372년 무렵)의 일입니다.

    (나)는 고구려 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백제의 도읍 한성을 함락하고 그 왕 부여 경(개로왕)을 죽였다는 내용으로, 장수왕의 한성 공격(475년)에 해당합니다.

    두 사건 사이의 시기에 해당하는 것은 광개토 대왕이 신라 내물왕의 요청을 받아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한 사실(400년)입니다.

    대방군 축출(미천왕)과 백제의 평양성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한 사건(371년)은 (가) 이전이며, 신라의 병부 설치(법흥왕)와 백제의 대야성 함락(의자왕)은 (나)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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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왕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원광에게 걸사표를 짓게 하였다.
    2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3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4
    집사부를 설치하고 장관을 중시라고 하였다.
    5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해설

    화면 속 비석은 (가) 왕이 남한강 중상류 지역인 적성을 차지한 뒤 그 지역 주민의 공훈을 표창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도에도 남한강 상류의 내륙 지역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단양 신라 적성비진흥왕 때 세워졌습니다.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하고 대가야를 병합하였으며, 북한산비·창녕비·황초령비·마운령비 등 여러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또한 거칠부에게 명하여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고,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원광에게 걸사표를 짓게 한 것은 진평왕,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은 지증왕이며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도 지증왕입니다. 집사부를 설치하고 그 장관을 중시라 한 것은 진덕 여왕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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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신라가 금관가야를 병합하였다.
    2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3
    백제가 관산성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4
    고구려가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5
    백제가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다.
    해설

    두 인물의 대화에서 백제군이 신라군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그 결과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이 나제 동맹을 바탕으로 함께 고구려를 공격한 551년의 상황입니다.

    이후 진흥왕이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까지 빼앗아 동맹은 깨졌고, 이에 분노한 성왕이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하였습니다(554년).

    고구려의 평양 천도(427년)와 영락 연호 사용(광개토 대왕), 백제의 동진으로부터의 불교 수용(침류왕, 384년), 신라의 금관가야 병합(법흥왕, 532년)은 모두 이 대화 상황 이전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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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자료는 손인사·유인원과 신라왕 김법민이 육군을 이끌고, 유인궤와 부여 융이 수군과 군량을 실은 배를 이끌고 웅진강에서 백강으로 가 주류성으로 향하였으며, 백강 어귀에서 왜국 군사를 만나 네 번 싸워 모두 이기고 배 4백 척을 불살랐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백제 부흥 운동을 돕던 왜의 수군이 나당 연합군에 패한 백강 전투(663년)입니다.

    연표를 보면 612년 살수 대첩, 645년 안시성 전투, 660년 황산벌 전투, 668년 평양성 함락, 675년 매소성 전투, 698년 발해 건국의 순서로 구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백강 전투는 백제가 멸망한 황산벌 전투(660년) 이후, 고구려가 무너진 평양성 함락(668년) 이전에 일어났으므로, 660년과 668년 사이의 구간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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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국보이며 백제의 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 주고 불교와 도교 사상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백제 금동 대향로이다. 정답 자료는 봉황이 앉은 뚜껑 아래 산봉우리와 인물·동물을 새기고 용이 받치고 있는 향로로, 백제 금동 대향로의 모습이다. 1993년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어 199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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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화왕계를 지어 왕에게 조언하였다.
    2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을 왕에게 건의하였다.
    3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한 해동고승전을 남겼다.
    4
    현세에서 고난을 구제받고자 하는 관음 신앙을 강조하였다.
    5
    종파 간의 사상적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였다.
    해설

    자료는 (가)를 우리나라 화엄종의 개조라고 소개하면서, 19세 때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하고 당에 유학하여 지엄의 문하에서 화엄 사상을 공부하였으며, 귀국 후 낙산사와 부석사를 창건하고 지통·표훈 등 많은 제자를 길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신라의 승려 의상입니다.

    의상은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화엄 사상으로 조화를 강조하였고, 아미타 신앙과 함께 관음 신앙을 널리 퍼뜨려 현세에서 고난을 구제받고자 하는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낙산사가 관음 도량으로 세워진 것도 이와 관련됩니다.

    화왕계를 지은 인물은 설총,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을 건의한 인물은 자장, 해동고승전을 남긴 인물은 각훈,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종파 간 대립을 해소하려 한 인물은 원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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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칠판의 주제는 삼국 시대의 무덤 양식입니다. (가)는 널방을 벽돌로 쌓고 그 위에 봉분을 만든 무덤, (나)는 돌로 널길과 널방 등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은 무덤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곧 (가)는 벽돌무덤(전축분), (나)는 굴식 돌방무덤입니다.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양식으로, 백제 웅진 시기의 무령왕릉이 대표적입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널방의 벽과 천장에 벽화를 그리기도 하였는데, 고구려 강서대묘의 사신도와 무용총의 수렵도가 그 예입니다.

    무덤의 둘레돌에 12지 신상을 조각한 것은 통일 신라 시기 김유신 묘 등에서 보이는 특징이며, 도굴이 어려워 금관·유리잔 등 껴묻거리가 많이 출토된 것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에 해당합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널길이 있어 오히려 도굴이 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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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2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교육하였다.
    3
    대가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4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였다.
    5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여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해설

    제시된 「삼국사기」 기록은 신하들이 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 입구의 큰 바위 위에서 장례를 치렀고, 왕이 변하여 용이 되었다 하여 그 바위를 대왕석(대왕암)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유조에는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영토를 안정시켰다”, “죽고 열흘 뒤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동해의 대왕암에 장사 지내고 불교식 화장을 유언한 인물은 문무왕입니다. 그는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적을 막겠다는 뜻을 남겼고, 아들 신문왕이 그를 기려 감은사를 완성하였습니다.

    문무왕은 백제 부흥 세력을 정리한 뒤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이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던 당을 매소성·기벌포 싸움에서 물리쳐 나·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것은 성덕왕, 국학을 세워 유학을 가르친 것은 신문왕, 독서삼품과를 실시한 것은 원성왕의 일이며, 대가야를 정복한 것은 신라 진흥왕 때의 일로 통일 이전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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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이 파견되었다.
    2
    왕의 장인인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다.
    3
    무열왕의 직계 자손이 왕위를 세습하였다.
    4
    계루부 등 5부 출신 귀족이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5
    지방에서 호족들이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해설

    그림에서 신하들은 왕에게 “청해진의 궁복이 자신의 딸을 왕비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아뢰고, 왕은 “반란을 진압할 대책을 마련해 보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궁복은 장보고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는 왕위 계승 다툼에서 신무왕을 도운 공으로 세력을 키웠으나, 딸을 왕비로 들이려던 계획이 진골 귀족의 반대로 좌절되자 반발하였고 결국 자객에게 피살되었습니다. 문성왕 대의 일로, 신라 하대에 해당합니다.

    신라 하대는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크게 약해진 시기였습니다. 이 틈을 타 지방에서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호족이 성주·장군을 자처하며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22담로에 왕족을 보낸 것은 백제 무령왕, 김흠돌의 난과 무열왕 직계의 왕위 세습은 신라 중대의 일이며, 계루부 등 5부 귀족이 지배층을 이룬 것은 고구려의 사회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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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은진 미륵이라 불리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 석불로, 지방 세력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따라서 (가) 국가는 고려이다. 정답 자료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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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그’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교정별감이 되어 국정을 장악하였다.
    2
    왕권을 제약하던 기구인 정방을 폐지하였다.
    3
    시무 28조를 올려 지방관 파견을 건의하였다.
    4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이동하여 대몽 항쟁을 펼쳤다.
    5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권문세족을 견제하였다.
    해설

    제시된 「고려사」 기록에서 ‘그’는 동생과 함께 봉사(封事)를 올려 “적신 이의민은 성품이 사납고 잔인하여 임금의 자리를 흔들고자 하였다”라며 이를 소탕하여 제거하였다고 밝히고, 옛 것을 개혁하고 태조의 바른 법을 따르라고 왕에게 건의하고 있습니다.

    동생 최충수와 함께 이의민을 제거하고 봉사 10조를 올린 인물은 최충헌입니다. 그는 이후 동생마저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하여 4대 60여 년에 걸친 최씨 무신 정권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최충헌은 반대 세력을 감시·숙청하고 인사·재정까지 관장하는 최고 권력 기구인 교정도감을 설치한 뒤, 그 우두머리인 교정별감이 되어 국정을 장악하였습니다.

    정방을 폐지한 것은 충선왕·공민왕, 시무 28조를 올린 것은 최승로,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옮겨 항쟁한 것은 배중손,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가 된 것은 신돈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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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습니다.
    3
    3포가 개항되어 일본과의 교역이 이루어졌습니다.
    4
    수도에 시전을 감독하는 경시서가 설치되었습니다.
    5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기록한 농사직설이 편찬되었습니다.
    해설

    그림 속 화폐는 앞뒤 두 면이 함께 제시되어 있고, 교사는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이며 뒷면에 ‘東國(동국)’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 연호를 딴 화폐 이름 뒷면에 ‘동국’을 새겨 우리 것임을 밝힌 이 주화는 고려 성종 때 주조된 건원중보입니다. 따라서 발표해야 할 것은 고려 시대의 경제 상황입니다.

    고려는 개경에 시전을 두어 관청과 귀족에게 물품을 공급하게 하였고, 이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기 위해 경시서를 설치하였습니다. 이후 숙종 때에는 삼한통보·해동통보·활구(은병) 등이 추가로 발행되었습니다.

    모내기법의 전국적 확산과 감자·고구마 등 구황 작물 재배는 조선 후기, 3포 개항과 농사직설 편찬은 조선 세종 대의 일로 고려의 경제 상황과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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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가 개최되었다.
    2
    안승이 왕으로 봉해진 보덕국이 세워졌다.
    3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 체결되었다.
    4
    조선 후기 만상의 근거지로 청과의 무역이 전개되었다.
    5
    조만식 등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되었다.
    해설

    안내문은 (가) 지역을 “백제 무왕의 꿈이 서려 있는” 고장으로 소개하면서, 삼국 시대에 금마저로 불렸고 백제역사유적지구인 왕궁리 유적미륵사지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사진으로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가 실려 있고, 안내 지도에는 미륵산·용화산과 미륵사지, 금마저수지, 왕궁리 유적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금마저이자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있는 곳은 전북 익산입니다. 무왕은 이곳에 미륵사를 창건하고 천도를 계획할 만큼 공을 들였습니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 왕족 안승을 왕으로 삼아 보덕국을 세우게 하고 금마저, 곧 익산에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이는 당을 견제하려는 신라의 고구려 부흥 세력 포섭 정책이었습니다.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가 열린 곳은 진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곳은 강화도, 만상의 근거지는 의주,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한 곳은 평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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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왕’의 재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여진 정벌에 나서는 별무반의 군인
    2
    도병마사에서 회의하는 중추원 관리
    3
    국자감에 7재의 개설을 명하는 국왕
    4
    전시과에 따라 토지를 지급받는 관리
    5
    노비안검법에 의해 양인으로 해방되는 노비
    해설

    「고려사절요」 기록에서 왕은 한림학사 쌍기를 지공거로 임명하고 시(詩)·부(賦)·송(頌)과 시무책을 시험하여 진사를 뽑게 하였으며, 직접 위봉루에 나가 급제자를 발표하여 갑과 최섬 등 2명, 명경 3명, 복업 2명을 합격시켰습니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처음 시행한 왕은 고려 광종입니다. 그는 공신과 호족의 세력을 누르고 국왕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관리를 뽑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광종은 과거제에 앞서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후삼국의 혼란기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해방시켰습니다. 이는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조세 수취 대상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여진 정벌을 위한 별무반은 숙종, 국자감에 7재를 설치한 것은 예종, 전시과를 처음 마련한 것은 경종 때의 일이며, 도병마사는 성종 대 이후 정비된 회의 기구여서 광종 재위 시기에는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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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마)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강좌 안내문은 ‘고려 시대의 문화’를 주제로 다섯 강좌를 제시합니다. 1강은 규모가 거대하고 인체 비례가 불균형한 불상 (가), 2강은 맑고 투명한 비취색 자기 (나), 3강은 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석탑 (다), 4강은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의 목조 건축물 (라), 5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마)입니다.

    (가)에는 머리에 큰 관을 쓴 거대한 석조 불상이, (나)에는 비취색 참외 모양 청자 병이, (다)에는 실내에 전시된 대리석 십층석탑이, (라)에는 배흘림기둥이 받치는 단층 목조 건물이 제시되어 있어 각 설명과 잘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마)에 실린 자료는 낡은 종이를 길게 이어 붙인 두루마리 형태의 목판 인쇄물로, 통일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해당합니다. 이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이지 금속 활자본이 아닙니다.

    5강의 설명에 맞는 문화유산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심체요절로, 책자 형태로 남아 있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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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고려사」 기록에는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였던 인후가 재상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원경이 그에게 기대려 아들을 인후의 딸에게 장가보냈으며, 원경이 무략장군 정동행중서성 도진무로 임명되어 금부를 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각주에는 겁령구가 원의 공주가 고려에 들어올 때 따라온 시종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원의 공주가 고려 왕비가 되고 정동행성이 설치된 시기, 곧 원 간섭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원의 요구로 결혼도감을 두어 공녀를 뽑아 보냈고, 지배층 사이에서는 변발과 호복 같은 몽골풍이 유행하였습니다.

    반면 김부식이 유교적 합리 사관에 입각해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은 고려 중기 인종 때이고, 망이·망소이가 공주 명학소에서 봉기한 것은 무신 집권기의 일이어서 원 간섭기의 모습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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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사건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강화도로 천도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2
    강감찬이 나성 축조를 건의한 의도를 분석한다.
    3
    만적이 개경에서 반란을 모의한 이유를 알아본다.
    4
    금의 군신 관계 요구를 수용한 인물에 대해 조사한다.
    5
    공민왕이 개혁 정책을 추진한 시기의 국제 정세를 파악한다.
    해설

    역사 신문의 기사 제목은 “개경의 궁궐이 불타고 왕이 피신하다”이며, 본문은 왕의 장인이자 외조부로서 권세를 누리던 인물이 난을 일으켰고, 내시 김찬과 상장군 최탁 등이 그를 암살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의 일파인 척준경이 군사를 일으켜 반격하면서 난이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딸들을 왕비로 들여 왕의 장인이자 외조부가 되었고 척준경과 손잡아 개경 궁궐을 불태운 인물은 이자겸으로, 인종 때 일어난 이자겸의 난(1126)입니다.

    이자겸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지키기 위해 여진이 세운 금이 요구한 군신 관계를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탐구하려면 금의 사대 요구를 수용한 인물이 누구이며 왜 그러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알맞습니다.

    강화도 천도는 몽골 침입기, 강감찬의 나성 축조 건의는 거란 침입 직후, 만적의 봉기 모의는 최충헌 집권기, 공민왕의 개혁은 원·명 교체기의 일로 이 사건과는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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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소개하였다.
    2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3
    황산 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다.
    4
    경제문감을 저술하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다.
    5
    화약과 화포 제작을 위한 화통도감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해설

    제시문에서 ‘그’는 남은과 함께 임금을 날마다 뵙고 요동을 공격할 것을 권하며 진도(陣圖)를 익히게 하였고, 휴가 중이던 좌정승 조준을 찾아가 “요동을 공격하는 일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공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은과 함께 요동 정벌을 추진하고 진법 훈련을 주관한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그는 조선 건국을 주도한 개국 공신으로 한양 천도와 도성 설계, 각종 제도 정비를 이끌었습니다.

    정도전은 경제문감을 지어 재상이 중심이 되어 국정을 이끄는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고, 조선경국전으로 통치 규범을 제시하고 불씨잡변으로 불교를 비판하였습니다.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소개한 인물은 안향,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유한 인물은 이제현, 황산 대첩을 승리로 이끈 인물은 이성계,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한 인물은 최무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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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
    2
    윤임 일파가 제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이조 전랑을 둘러싼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배경이 되었다.
    4
    대비의 복상 문제가 붕당의 대립으로 확대되어 일어났다.
    5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명호(名號) 문제로 인해 발생하였다.
    해설

    제시된 자료는 도동 서원에 위패가 모셔진 김굉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의제문이 빌미가 되어 일어난 무오사화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되었고, 이후 연산군 10년(1504)에 일어난 (가) 사건 때 그도 참형을 당했습니다.

    연산군 10년에 일어나 김굉필까지 희생시킨 사화는 갑자사화입니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에 관련된 훈구와 사림 세력이 대거 화를 입은 사건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화·환국에 해당합니다. 윤임 일파가 제거된 것은 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이고, 이조 전랑을 둘러싼 동인과 서인의 갈등은 선조 때 붕당의 형성 배경입니다. 대비의 복상 문제는 현종 대 예송이며,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명호 문제는 숙종 대 기사환국의 발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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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신량역천으로 분류되었다.
    2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었다.
    3
    고려 시대에는 화척이라 불렸다.
    4
    수령을 보좌하며 행정 실무를 담당하였다.
    5
    시전을 운영하며 관청의 수요품을 조달하였다.
    해설

    제시된 책은 연조귀감으로, 1777년(정조 1)에 이진흥이 (가)의 사적을 모아 정리한 책입니다. 자료에 (가)가 지방 이서(吏胥)층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그 기원과 형성 과정·행적을 밝히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상소가 실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가)는 향리입니다. 향리는 지방 관아에 소속되어 수령을 보좌하면서 행정 실무를 담당한 계층으로, 신분상 중인에 속하며 직역이 세습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계층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량역천은 신분은 양인이나 천한 일에 종사한 부류이고,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된 것은 노비입니다. 고려 시대에 화척이라 불린 것은 백정(도살업자)이며, 시전을 운영하며 관청의 수요품을 조달한 것은 시전 상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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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노론의 영수로 북벌론을 주장하였다.
    2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건립하였다.
    3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하였다.
    4
    성학집요를 저술하여 군주가 수양해야 할 덕목을 제시하였다.
    5
    학문의 실천성을 강조하여 정인홍, 곽재우 등의 제자를 배출 하였다.
    해설

    자료는 호가 남명(南冥)인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경(敬)'과 '의(義)'를 새긴 칼을 차고 다녔다는 일화와 경상우도의 대표적인 학자로 칭송받았다는 설명에서 인물이 조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식은 이론 논쟁보다 학문의 실천성을 강조하였고, 그 문하에서 정인홍, 곽재우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는데, 이는 실천을 중시한 남명 학풍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노론의 영수로 북벌론을 주장한 인물은 송시열, 백운동 서원을 세운 인물은 주세붕, 강화 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 성학집요를 저술한 인물은 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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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학술 기관으로 경연을 관장하였다.
    2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아보았다.
    3
    재상들이 합의하여 국정을 총괄하였다.
    4
    왕명의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이었다.
    5
    대사간을 수장으로 하여 간쟁을 담당하였다.
    해설

    그림 속 신하는 옛 집현전의 기능을 복구할 독립된 관청을 허락해 달라고 청하고, 왕은 예문관에서 옛 집현전의 직제를 분리하여 (가)로 이관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조 때 폐지된 집현전의 기능을 이어받아 성종 대에 학술·언론 기관으로 자리 잡은 관청은 홍문관입니다. 홍문관은 궁중의 서적과 문한을 관리하는 학술 기관이자, 왕과 신하가 학문과 정책을 토론하는 경연을 관장하였고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사를 이루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기구입니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은 한성부, 재상들의 합의로 국정을 총괄한 것은 의정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은 승정원, 대사간을 수장으로 간쟁을 담당한 것은 사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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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글이 쓰인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2
    국경 지역에 4군 6진이 개척되었다.
    3
    사절 왕래를 위하여 북평관이 개설되었다.
    4
    일본에 제한된 무역을 허용한 기유약조가 체결되었다.
    5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임시 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
    해설

    제시된 글은 사야가가 강화서로 올린 것으로,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이 되어 3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왔다가 조선에 귀순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 글은 임진왜란(1592) 초기에 쓰인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의 사실은 기유약조입니다. 전란으로 단절된 일본과의 국교는 광해군 때 재개되었고, 1609년 기유약조를 맺어 부산포에 왜관을 두고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임진왜란 이전의 일입니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1419년(세종 1), 4군 6진 개척과 여진 사신 접대를 위한 북평관 개설은 세종 대, 비변사가 임시 기구로 설치된 것은 중종 대 삼포왜란을 계기로 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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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정책을 실시한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였다.
    2
    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3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추진하였다.
    4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여주고자 균역법을 시행하였다.
    5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을 위해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해설

    자료는 도성 안 도랑이 막혀 물이 넘치자 준천사(濬川司)를 설치하여 돌을 캐어다 높이 쌓고 도랑을 쳐서 물이 잘 흐르게 하였으며, 신문고를 다시 설치하여 하정(下情)이 통하게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청계천 준설을 위해 준천사를 두고 태종 대 이후 폐지되었던 신문고를 부활시킨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이 밖에도 탕평책을 실시하고 속대전을 편찬하였으며,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는 등 여러 민생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영조의 대표적 업적은 균역법 시행으로, 군포 부담을 1년 2필에서 1필로 줄여 백성의 군역 부담을 덜어 주고 부족분은 결작·선무군관포·어염선세 등으로 보충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대동법의 전국 확대는 숙종, 장용영 설치는 정조, 중립 외교는 광해군, 나선 정벌 조총 부대 파견은 효종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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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문화유산 카드에는 국보 제67호, 소재지 전라남도 구례군, 정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계 중층 팔작지붕 건물이라는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현존하는 중층 불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내부가 층 구분 없이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02년(숙종 28)에 중건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건물은 구례 지리산에 있는 화엄사 각황전입니다. 사진 속에서도 아래위 두 층의 지붕을 얹은 웅장한 중층 불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진은 다른 문화유산입니다. 법주사 팔상전은 충북 보은의 5층 목탑이고, 금산사 미륵전은 전북 김제의 3층 불전입니다. 무량사 극락전은 충남 부여, 마곡사 대웅보전은 충남 공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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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운요호 사건의 결과를 알아본다.
    2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영향을 파악한다.
    3
    외규장각 도서의 약탈 과정을 조사한다.
    4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내용을 검색한다.
    5
    광성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의 활약을 살펴본다.
    해설

    자료는 서양 오랑캐가 강화에 쳐들어왔다는 상황에서 순무사 이경하, 중군 이용희, 천총 양헌수가 동원되었고, 양헌수가 손돌목을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가 매복하였다가 성 아래로 접근한 적에게 총포를 쏘아 물리쳤다는 내용입니다.

    양헌수의 정족산성 전투가 벌어진 사건은 병인양요(1866)입니다.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입하였다가 정족산성과 문수산성에서 패한 뒤 물러났습니다.

    이때 프랑스군은 철수하면서 강화도 외규장각의 의궤 등 도서와 은괴를 약탈해 갔으므로, 그 약탈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합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건입니다. 운요호 사건은 강화도 조약의 배경,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1868년 남연군 묘 도굴 시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1882년의 일이며, 광성보에서 어재연이 항전한 것은 미국이 침입한 신미양요(187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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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전시회에 전시될 그림으로 적절한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2
    3
    4
    5
    해설

    전시회 포스터에는 '조선 전기 회화를 만나다'라는 특별전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15~16세기에 그려진 그림을 골라야 합니다.

    절벽 아래 바위에 팔을 괸 채 엎드려 물을 바라보는 선비를 간결한 필치로 그린 작품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로,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회화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 작품입니다. 원형 구도로 금강산 전경을 담은 정선의 금강전도와 비 갠 뒤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화이고, 단옷날 여인들의 모습을 담은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풍속화이며, 집 한 채와 소나무·잣나무를 메마른 붓질로 그린 김정희의 세한도는 19세기 문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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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농민 봉기의 진상을 조사하는 안핵사
    2
    환곡의 부담으로 마을을 떠나는 농민
    3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을 읽는 양반
    4
    임꺽정이 이끄는 도적떼에 가담하는 백성
    5
    삼정이정청에서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관료
    해설

    다큐멘터리 기획안의 제목은 '19세기의 정치 혼란과 사회 불안'이고, 기획 의도에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일부 외척 가문이 집권한 시기의 사회 모습을 다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세도 정치기가 배경이며, 첫 장면도 관직을 파는 대가로 뇌물을 받는 고관입니다.

    이 시기에는 삼정의 문란이 극심해져 환곡의 부담으로 마을을 떠나는 농민이 속출하였고,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나자 정부는 안핵사를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대책을 논의하였습니다. 또한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 같은 비기·도참이 널리 퍼졌습니다.

    반면 임꺽정의 도적 활동은 16세기 명종 대의 일로, 19세기 세도 정치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장면으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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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글을 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을 주장하였다.
    2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3
    사람의 체질을 연구하여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4
    북학의를 저술하여 수레와 배의 이용을 권장하였다.
    5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혼천의를 제작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우서(迂書)』의 한 대목이다. "이미 문벌에 따라 사람을 기용하니, 사람이면 모두 오장(五臟)과 칠규(七竅)가 있는데 어느 어리석은 사람이 양반이나 중인이 되려고 하지 않고 군보(軍保)의 천역을 즐겨 지려 하겠는가"라며 문벌에 따른 신분 차별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우서』를 지은 인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수원이다. 그는 신분에 따라 직업이 고정되는 현실을 문제 삼아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고, 상공업을 천하게 여기는 풍조를 바꾸어 상공업을 진흥해야 한다고 보았다.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정약용, 사상 의학을 확립한 인물은 이제마, 『북학의』를 지어 수레와 배의 이용을 권장한 인물은 박제가, 혼천의를 제작한 인물은 홍대용 등으로 모두 『우서』의 저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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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에 들어갈 사건의 결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청에 영선사가 파견되었다.
    2
    5군영이 2영으로 개편되었다.
    3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4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5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인정한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었다.
    해설

    퀴즈에서 제시한 힌트는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개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사건"이다. 이는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을 가리킨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차별받고 봉급미마저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구식 군인들이 봉기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하고 일본인 교관이 살해되었다. 청군의 개입으로 군란이 진압된 뒤 조선은 일본과 배상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일본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인정하는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였다. 영선사 파견, 5군영의 2영 개편,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모두 군란 이전의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이 된 것은 1904년 제1차 한·일 협약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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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다) 주장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이항로와 기정진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2
    (가)-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뒷받침하였다.
    3
    (나)-강화도 조약의 체결에 반대하였다.
    4
    (나)-단발령과 을미사변을 계기로 제기되었다.
    5
    (다)-조선책략의 유포로 인해 일어났다.
    해설

    (가)는 서양의 적과 화친하면 "인류가 금수의 지경에 빠질 것"이라며 싸울 것을 주장한 글로, 1860년대의 척화주전론이다. 이항로·기정진 등이 대표적 인물이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나)는 "저들이 비록 왜인이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서양 오랑캐와 다를 것이 없다", "강화가 이루어지면 사악한 서적과 천주교가 다시 들어올 것"이라 한 1870년대의 왜양일체론이다. 최익현 등이 이를 내세워 강화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다.

    따라서 이 왜양일체론이 단발령과 을미사변을 계기로 제기되었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 단발령과 을미사변을 계기로 일어난 것은 1895년의 을미의병으로, 시기가 20년가량 뒤진다.

    (다)는 미국을 "우리가 원래 잘 모르던 나라"라 하며 수교를 경계한 1880년대의 개항 반대 상소로, 『조선책략』의 유포에 반발해 일어난 영남 만인소의 논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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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글이 쓰인 배경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제1차 영·일 동맹이 체결되었다.
    2
    러시아가 삼국 간섭을 주도하였다.
    3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였다.
    4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5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해설

    제시된 글은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러시아를 방어하는 큰 기틀이 될 것"이라고 한 「중립론」으로, 유길준이 쓴 조선 중립화 구상이다. 글 자체가 러시아의 남하와 이를 둘러싼 열강의 대립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글이 나온 배경은 1885년의 거문도 사건이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면서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노골화되었고, 이에 조선을 중립화하여 분쟁의 무대가 되는 것을 막자는 논의가 제기되었다.

    제1차 영·일 동맹(1902), 러시아 주도의 삼국 간섭(1895), 청·일 전쟁에서의 일본 승리(1895), 아관 파천(1896)은 모두 이 글이 작성된 시점보다 뒤의 일이므로 배경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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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개혁안’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탐관오리를 징계하여 쫓아낼 것
    2
    국가의 모든 재정을 호조에서 관할할 것
    3
    의정부와 각 아문의 직무 권한을 명확히 할 것
    4
    죄인 외의 친족에게 연좌율을 일체 적용하지 말 것
    5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관민이 협력하여 전제 황권을 공고히 할 것
    해설

    대화는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이후"의 활동을 다루고 있으며, 농민군이 정부에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개혁안을 거듭 제시하였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안은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이다.

    폐정 개혁안에는 탐관오리를 징계하여 쫓아낼 것, 횡포한 부호와 불량한 유림을 엄징할 것, 노비 문서를 소각할 것, 토지를 평균하여 나누어 경작할 것 등 신분제 철폐와 조세 수취 개선을 겨냥한 요구가 담겼다.

    국가 재정의 호조 일원화는 갑신정변 때의 개혁 정강, 의정부와 각 아문의 직무 권한 명확화 및 연좌제 폐지는 갑오개혁의 내용, 관민 협력으로 전제 황권을 공고히 하자는 것은 독립 협회의 헌의 6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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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제시된 글은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고쳐 독립관이라 하며 독립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문이다. 회원의 보조금 참여를 호소하고 있으므로 (가) 단체는 1896년에 창립된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와 관민 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하고 중추원을 개편하는 의회 설립 운동을 추진하였다. 또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민중을 계몽하고 자주 국권·자유 민권 의식을 넓혔다.

    국채 보상 운동을 주도한 것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기성회 계열이고, 공화 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은 단체는 신민회이다. 독립 협회는 입헌 군주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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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활동을 전개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2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철회시켰다.
    3
    농촌 계몽을 위해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하였다.
    4
    고종의 강제 퇴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5
    계몽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 태극 서관을 설립하였다.
    해설

    제시된 글은 "남만주로 집단 이주하려 기도하고 …… 토지를 사들이고 촌락을 세워 새 영토로 삼고 ……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고 나아가 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 기회를 엿보아 독립 전쟁을 일으켜 구한국의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신민회의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계획을 가리킨다.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이 조직한 신민회는 비밀 결사로 활동하며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국내에서는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를 세워 교육을 진흥하고 자기 회사를 운영해 민족 산업을 키웠으며, 국외에서는 남만주 삼원보에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또한 계몽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 태극 서관을 설립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다. 신민회는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드러나 해체되었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1920년대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보안회,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시위는 대한 자강회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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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매사냥
    2
    윷놀이
    3
    강강술래
    4
    줄다리기
    5
    남사당놀이
    해설

    퀴즈의 단계별 힌트는 2010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등재, '시치미를 떼다'는 말의 유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고려에서는 응방(鷹坊)을 두어 원에 세공하였다"는 기록이다.

    세 힌트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민속놀이는 매사냥이다. 길들인 매로 꿩 등을 잡는 전통 사냥으로, 매 주인을 표시하려 매의 꽁지에 매어 둔 이름표인 시치미를 떼어 가로챈 데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이 나왔다.

    고려 시대에는 원의 요구에 따라 매를 기르고 바치는 관청인 응방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힌트의 세 번째 단계와 직접 연결된다. 매사냥은 2010년 여러 나라와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강강술래는 2009년, 남사당놀이는 2009년, 줄다리기는 2015년에 등재되었고 응방이나 시치미와는 관련이 없으며, 윷놀이는 유네스코 등재 종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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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일제가 다음 대책을 마련한 배경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났다.
    2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3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4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5
    정인보,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조선학 운동이 전개되었다.
    해설

    제시된 글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발언으로, "작년 봄 행해진 만세 소요"를 언급하며 그것이 어린 장난이 아니라 근저 있고 실력 있는 조직적 운동이 될 것임을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작년 봄의 만세 소요"는 3·1 운동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대책이 마련된 배경은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거족적 저항에 부딪힌 일제는 무단 통치로는 식민 지배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총독이 사이토로 바뀌면서 이른바 문화 통치가 시작되어,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고 조선인 신문 발행을 허용하는 등 유화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글에서 "위력을 동반한 문화 운동"이라 밝혔듯 실제로는 친일파를 양성하고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기만적 통치였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 6·10 만세 운동(1926), 신간회 결성(1927), 조선학 운동(1930년대)은 모두 이 발언보다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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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가)
    2
    (나)
    3
    (다)
    4
    (라)
    5
    (마)
    해설

    제시된 글은 "군사장(허위)"이 전군에 명령을 전하여 동대문 밖으로 진군하게 하고, 스스로 3백 명을 인솔해 선두에 서서 동대문 밖 삼십 리 되는 곳에 나아가 전군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서울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전군이 모여드는 시기가 어긋나고 일본군이 갑자기 진격하여 퇴진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으로 1908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 부대는 정미의병 때 각지 의병이 연합해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아 결성한 13도 창의군이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이 합류하면서 의병의 전투력이 크게 강화된 상황에서 추진되었다.

    연표에서 1907년 정미 7조약과 1910년 국권 피탈 사이의 시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의 을사의병과 혼동하지 않도록, 군대 해산 이후에야 가능했던 대규모 연합 작전이라는 점을 기준으로 시기를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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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옳은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해조신문, 권업신문 등을 발간하였습니다.
    2
    (가)-독립군 양성을 위해 신흥 강습소를 세웠습니다.
    3
    (나)-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결성하였습니다.
    4
    (나)-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5
    (다)-민족 교육을 위해 서전서숙, 명동 학교 등을 건립하였습니다.
    해설

    지도에서 (가)는 압록강 건너 삼원보가 표시된 서간도(남만주), (나)는 연길·용정·왕청이 표시된 북간도, (다)는 블라디보스토크가 표시된 연해주입니다. 교사는 1910년대 이 세 지역에서 일어난 해외 이주 동포들의 민족 운동을 묻고 있습니다.

    서간도 삼원보로 망명한 신민회 인사들은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세우고, 독립군 지휘관을 기르기 위해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습니다. 신흥 강습소는 뒷날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여 수많은 독립군 간부를 배출하였으므로, 삼원보 지역의 활동으로 신흥 강습소 설립을 든 답변이 옳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지역이 어긋납니다. 해조신문·권업신문 발간과 권업회·대한 광복군 정부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활동이고, 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한 외교 활동은 미주 지역의 일입니다.

    서전서숙·명동 학교 같은 민족 교육 기관은 이상설·김약연 등이 북간도 용정 일대에 세운 것이므로 연해주가 아니라 북간도의 활동에 해당합니다. 경학사 역시 북간도가 아닌 서간도에서 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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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독립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지청천이 총사령관으로 부대를 지휘하였다.
    2
    자유시 참변으로 인하여 세력이 약화되었다.
    3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4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5
    미군의 지원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해설

    제시된 기록은 일본군 전초 부대가 지나간 뒤 본대가 대전자령 계곡으로 들어오자 매복해 있던 부대가 바위를 굴리며 사격하여 적을 포위·섬멸했다는 내용으로, 중국 호로군과 연합 작전을 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1933년의 대전자령 전투를 가리킵니다.

    대전자령 전투를 이끈 부대는 북만주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군이며, 그 총사령관은 지청천이었습니다. 한국 독립군은 중국 호로군과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쌍성보·사도하자·동경성·대전자령 등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자유시 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은 1921년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한 대한 독립 군단 계열이고, 청산리 대첩은 1920년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 부대 등이 거둔 승리이므로 시기와 부대가 다릅니다.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1938년 김원봉이 조직한 조선 의용대이며, 미군(OSS)의 지원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한 것은 1940년대 한국광복군이므로 이 기록의 부대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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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시기’의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토월회가 발족되면서 신극 운동이 일어났다.
    2
    이육사가 잡지 문장을 통해 절정을 발표하였다.
    3
    계몽적 성격의 창가인 경부철도가가 만들어졌다.
    4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 처음 개봉되었다.
    5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신경향파가 등장하였다.
    해설

    제시된 시는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로, "육첩방은 남의 나라",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같은 구절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대화에서는 이 시가 일제가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 친일 단체를 만들어 침략 전쟁을 찬양하도록 강요하던 시기에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시기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민족 말살 통치와 전시 동원이 강화되던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입니다. 이 무렵 이육사는 1940년 잡지 『문장』에 저항시 「절정」을 발표하여 극한 상황 속의 결연한 의지를 노래하였습니다.

    다른 설명들은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계몽적 창가인 「경부철도가」는 1908년 최남선이 지었고, 토월회의 신극 운동은 1923년에,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은 1926년에 있었습니다.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신경향파 문학 역시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과 함께 등장하여 카프 결성으로 이어졌으므로, 중·일 전쟁 이후의 문화로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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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농지령이 공포되었다.
    2
    국가 총동원법이 제정되었다.
    3
    암태도 소작 쟁의가 일어났다.
    4
    함경도에서 방곡령이 선포되었다.
    5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해설

    (가)는 제1차 세계 대전기 일본의 급속한 공업화로 쌀값이 폭등하고 쌀 폭동이 일어나자 부족한 쌀을 한국에서 충당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는 내용으로, 1920년부터의 상황입니다.

    (나)는 조선 노농 총동맹을 노동과 농민으로 분리하자는 의견에 따라 투표를 실시하여 조선 노동 총동맹조선 농민 총동맹이 각각 조직되었다는 내용으로, 1927년의 일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는 1920년대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에 전남 신안의 소작인들이 지주의 고율 소작료에 맞서 1년 넘게 싸워 소작료 인하를 얻어낸 암태도 소작 쟁의가 1923~1924년에 일어났으므로, 두 시기 사이의 사실로 옳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벗어납니다. 함경도 방곡령 선포는 188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은 1908년으로 (가) 이전이고, 조선 농지령 공포는 1934년, 국가 총동원법 제정은 1938년으로 (나) 이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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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문제 이미지
    1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하였다.
    2
    비밀 행정 조직으로 연통제를 실시하였다.
    3
    고종의 밀지를 받아 결성된 비밀 단체이다.
    4
    일제가 꾸며낸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5
    단원인 이봉창이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해설

    자료는 1923년 5월 경성 지방 법원의 재판 장면으로, 판사가 (가) 단장인 김원봉이 보낸 폭탄을 전달하라는 부탁을 받았는지 묻고 있고, 김상옥이 남대문에서 폭탄·권총이 든 트렁크를 찾아가고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과 관련되었다는 진술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가)는 김원봉이 1919년 만주 지린에서 조직한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은 1923년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의 직접 혁명을 내세우며 일제 요인 사살과 식민 통치 기관 파괴에 나섰습니다.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투탄, 나석주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 투탄 등이 대표적입니다.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제를 운영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고, 고종의 밀지를 받아 결성된 비밀 단체는 임병찬의 독립 의군부이므로 이 단체와는 다릅니다.

    또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해체된 단체는 신민회이며, 이봉창이 일왕 행렬에 폭탄을 던진 것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의 의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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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다음 문서를 접수한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2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3
    칠레와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4
    유상 매수, 유상 분배를 규정한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5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해설

    제시된 문서는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것으로, 한국 정부가 월남(베트남)에 대한 전투 부대 증파 요청을 접수하여 1개 연대를 4월에, 1개 사단 병력을 7월에 도착시키기로 했다는 내용과 함께, 그 대가로 한국군 현대화 장비 제공과 추가 파병에 따르는 원화 경비 부담 등 군사 협조 조항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1966년의 브라운 각서입니다.

    따라서 이 문서를 접수한 시기는 박정희 정부이며, 이 무렵 정부는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을 추진하여 기간 산업 건설과 수출 주도 성장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들어온 차관과 특수는 이 계획의 자금원이 되었습니다.

    유상 매수·유상 분배를 규정한 농지 개혁법 제정은 1949년 이승만 정부 때의 일로, 브라운 각서보다 훨씬 앞섭니다.

    반대로 금융 실명제 실시(1993)는 김영삼 정부, OECD 가입(1996)도 김영삼 정부, 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2004년 발효)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므로 모두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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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라)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문제 이미지
    1
    (가) - (나) - (다) - (라)
    2
    (가) - (나) - (라) - (다)
    3
    (나) - (가) - (다) - (라)
    4
    (나) - (가) - (라) - (다)
    5
    (다) - (가) - (나) - (라)
    해설

    기록장에 정리된 6·25 전쟁의 장면을 각각 확인하면, (가)는 스트러블 제독 지휘 아래 8개국 261척의 함정이 집결하여 새벽 5시부터 상륙 부대가 배 20척에 나누어 타고 감행한 인천 상륙 작전(1950년 9월)입니다.

    (나)는 북한군의 진격로를 차단하기 위해 한강 인도교와 한강 철교를 폭파하여 한강 이북 부대의 퇴로와 시민들의 피난길이 막혔다는 내용으로,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말의 일입니다.

    (다)는 중국군의 신정 공세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평택~삼척선까지 후퇴하여 새 방어선을 구축한 1·4 후퇴(1951년 1월)이고, (라)는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가 소련의 제의를 받아들여 북한과 중국에 휴전 회담을 제안하고 개성에서 제1차 휴전 회담이 열린 1951년 7월의 일입니다.

    따라서 한강 인도교 폭파 → 인천 상륙 작전 → 중국군 공세에 따른 후퇴와 새 방어선 구축 → 개성 휴전 회담 개최의 순서로 전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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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화면은 "대통령을 하야시킨 (가)의 현장"이라는 제목 아래 광화문 광장, 대학 교수단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현수막을 들고 가두시위에 나선 마로니에 공원(옛 서울대학교 교수 회관 터), 그리고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경무대를 떠나 도착한 이화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는 이승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4·19 혁명입니다.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마산 시위에서 시작되었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이어 교수단 시위가 결정적 계기가 되어 대통령이 하야하였습니다.

    혁명 이후 허정 과도 정부가 헌법을 고쳐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로 통치 구조를 바꾸었고, 그 결과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4·19 혁명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한편 4·13 호헌 조치의 철폐를 요구한 것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고,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배경이 된 것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므로 4·19 혁명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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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31회
    밑줄 그은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2점]
    문제 이미지
    1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성사시켰다.
    2
    통일의 3대 원칙을 명시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3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과 예술 공연단 교환을 실현하였다.
    4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5
    남북한 정부 간 최초의 공식 합의서인 남북 기본 합의서를 교환 하였다.
    해설

    화면 속 방송은 "국민 기초 생활 보장 제도 시행"을 알리며, 정부가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빈부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국민에게 기본 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출범하여 2000년부터 국민 기초 생활 보장 제도를 시행한 것은 김대중 정부입니다. 이 정부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햇볕 정책)을 추진하여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하는 등 남북 교류를 확대하였습니다.

    그 결실로 2000년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렸고, 통일 방안의 공통성 인정과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을 담은 6·15 남북 공동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이후 개성 공단 조성과 경의선 복원 등이 추진되었습니다.

    다른 통일 노력은 시기가 다릅니다.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밝힌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과 예술 공연단 교환은 전두환 정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남북 기본 합의서 교환은 노태우 정부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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