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3회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거친 무늬 거울 닦기
비파형 동검 제작하기
빗살무늬 토기 만들기
철제 농기구로 밭 갈기
학습지 제목은 "신석기 시대 사람의 하루가 담긴 가상 일과표를 만들어 봅시다"이고, 시계 모양 일과표에는 불씨 확인하기, 아침 식사, 사슴 사냥하기, 가락바퀴로 실 뽑기, (가), 저녁 식사, 간석기 손질하기가 시간대별로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이 들어가야 합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어 곡식을 저장하고 조리할 그릇이 필요해졌고, 그 대표적인 토기가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일과표에 이미 적힌 간석기와 가락바퀴 역시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이므로 빗살무늬 토기 만들기가 (가)에 알맞습니다.
거친무늬 거울과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고, 철제 농기구로 밭을 가는 모습은 철기 시대 이후의 생활이므로 신석기 시대의 하루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범금 8조가 있었다.
책화라는 풍습이 있었다.
낙랑군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다.
제가 회의에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그림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나라"를 다룬 신간 도서 소개로, 단군의 탄생부터 왕검성이 함락될 때까지의 역사를 담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독자평에도 단군 신화가 인상적이었다는 말과 한(漢)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말이 실려 있습니다.
단군왕검이 세웠고 한 무제의 침공으로 왕검성이 함락되며 멸망한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에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범금 8조(8조법)가 있었는데, 그중 살인·상해·절도에 관한 세 조항이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한편 다른 부족을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게 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고, 낙랑군과 왜에 철을 수출한 것은 변한과 가야이며,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것은 고구려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가상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옳은 것은? [2점]
김유신
장보고
연개소문
흑치상지
그림의 가상 인터뷰는 제목이 "대막리지와의 인터뷰"이고, 주인공이 대막리지에 오르기 전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했으며 그 목적이 당의 침략에 대비해 서쪽 국경을 튼튼히 하기 위함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또 신라 김춘추가 군사 지원을 요청한 데 대해 "신라가 죽령 서북의 땅을 돌려준다면 고려해 보겠다"고 답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는 642년 신라의 구원 요청을 옛 고구려 영토 반환 조건을 내걸어 사실상 거절한 장면입니다.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다가 정변을 일으켜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의 인물은 연개소문입니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 고구려는 당의 침입에 강경하게 맞섰고, 안시성 싸움에서 당 태종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화백 회의라 불리는 합의 기구가 있었다.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그림 속 해설은 이 유물이 2009년 포항 중성리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이 국가의 비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당시의 관등 체계 및 골품제의 정비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등과 골품제를 언급한 데서 이 국가가 신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로, 재산 소유 분쟁에 대한 판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라에는 진골 귀족들이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만장일치로 결정하던 화백 회의가 있었습니다. 반면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이 실시한 빈민 구제책이고, 영고는 부여의 제천 행사이며, 왕족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룬 나라는 백제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제시된 카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에 대한 설명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며, 기단 위 네 모퉁이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상이 놓여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는 현존하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징에 해당하는 사진은 1번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마한의 소국 중 하나였다.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였다.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광덕, 준풍 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림의 강의 화면에는 "대무예가 대장 장문휴를 보내 수군을 거느리고 등주를 공격하게 하였다. 당 현종은 급히 대문예에게 유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반격하게 하였다"는 사료가 제시되어 있고, 교사는 대무예가 (가)의 무왕이며 대조영의 아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조영이 세우고 그 아들 무왕이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공격하는 대당 강경책을 편 나라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이후 선왕 대에 이르러 최대 영토를 확보하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한편 마한의 소국에서 성장한 나라는 백제이고,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상수리 제도는 통일 신라의 제도이며, 광덕·준풍이라는 연호는 고려 광종이 사용하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그림의 퀴즈 화면에는 세 가지 힌트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신라의 중앙 행정 기구인 14부 중 하나이고, 왕의 명령 전달과 국가 기밀을 담당하며, 장관을 중시 또는 시중이라 부른다는 내용입니다.
세 힌트가 모두 가리키는 기구는 집사부입니다. 진덕 여왕 때 설치되어 왕명 출납을 맡았고, 신문왕 대 왕권이 강화되면서 그 장관인 중시(시중)의 권한도 함께 커졌습니다.
참고로 의정부와 도병마사는 각각 조선과 고려의 최고 회의 기구이고, 정당성은 발해 3성 가운데 국정을 총괄하던 기구로 그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3점]
활구라고 불리는 은병이 유통되었다.
고추, 담배 등이 상품 작물로 재배되었다.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시장을 감독하기 위한 기구로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그림은 민정 문서라고도 불리는 촌락 문서를 정리한 자료로, 사해점촌의 인구 147명, 말 25마리와 소 22마리, 논 102결과 밭 62결, 뽕나무 1,004그루·잣나무 120그루·가래나무 112그루가 숫자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가축, 토지, 유실수까지 촌 단위로 상세히 기록해 조세 수취의 근거로 삼은 이 문서는 통일 신라의 것으로,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통일 신라 시기에는 앞서 지증왕 때 수도의 시장을 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동시전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반면 활구라 불린 은병은 고려의 화폐이고, 고추·담배 등의 상품 작물 재배와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던 공인의 활동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강수
설총
김부식
최치원
그림 속 소개 글은 이 인물이 호가 고운이고 신라 말기에 활동했으며, 당의 빈공과에 합격하고 난을 일으킨 황소에게 항복을 권하는 격문을 써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귀국한 이후 진성 여왕에게 개혁안을 올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최치원입니다. 그가 당에서 쓴 격문이 「토황소격문」이며, 귀국 후에는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은둔하였습니다.
한편 강수는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문장가이고, 설총은 이두를 정리하고 「화왕계」를 지었으며, 김부식은 고려 인종 때 『삼국사기』를 편찬한 인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집현전을 설치하였다.
기인 제도를 실시하였다.
나선 정벌을 단행하였다.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그림에서 왕은 "짐의 후사들이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힐까 걱정되어 훈요 10조를 남기니, 후세에 전하여 귀감으로 삼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고, 이를 받드는 신하로 박술희가 그려져 있습니다.
훈요 10조를 남겨 박술희에게 전한 왕은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입니다. 그는 호족을 통합하기 위해 혼인 정책과 사성 정책을 폈고, 동시에 호족을 견제하려 그 자제를 수도에 머물게 하는 기인 제도와 사심관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이와 달리 집현전 설치는 조선 세종, 나선 정벌은 조선 효종, 노비안검법 시행은 고려 광종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 - (나) - (다)
(나) - (가) - (다)
(나) - (다) - (가)
(다) - (나) - (가)
그림의 세 장면은 각각 정중부가 "문신의 관을 쓴 자는 모두 죽여라"고 외치는 무신 정변, 이자겸이 "왕이 우리를 죽이려 했다. 군사를 동원하여 궁궐로 가자"고 말하는 난, 묘청이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하겠다"고 선포하는 서경 천도 운동입니다.
일어난 시기를 보면 이자겸의 난이 1126년으로 가장 이르고, 이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 1135년에 일어났으며, 정중부 등이 일으킨 무신 정변은 1170년으로 가장 늦습니다.
따라서 순서는 이자겸의 난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무신 정변이 됩니다. 세 사건은 모두 고려 중기 문벌 사회의 동요를 보여 주는 흐름으로 함께 묶어 기억하면 좋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사건이 있었던 국가의 지방 통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지방에 22담로를 두었다.
양계에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주요 지역에 5소경을 설치하였다.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나누었다.
그림의 역사 신문 기사는 "공주 명학소, 충순현으로 승격"이라는 제목 아래, 공주 명학소 사람 망이·망소이가 무리를 불러 모아 난을 일으켜 공주를 함락하자 정부가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무신 집권기인 1176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이 국가는 고려입니다. 기사도 이 승격 조치가 소의 주민으로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이 철폐됨을 의미한다고 짚고 있습니다.
고려는 지방을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와 국경 지대의 군사 행정 구역인 양계로 나누어, 5도에는 안찰사를, 양계에는 병마사를 파견하였습니다. 반면 22담로는 백제 무령왕, 5소경은 통일 신라, 5경 15부 62주는 발해의 지방 제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①
②
③
④
그림은 교사가 고려의 교육 기관에 대해 말해 보라고 묻고, 네 학생이 각각 답하는 장면입니다. 학생들의 답변은 '최고 국립 교육 기관으로 국자감을 두었다', '경당에서 글과 활쏘기를 가르쳤다', '문헌공도 등 사학 12도가 번성하였다', '지방에 유학 교육을 담당하는 향교가 있었다'입니다.
이 가운데 옳지 않은 답변은 경당을 말한 것입니다. 경당은 고구려가 지방에 세운 교육 기관으로, 평민 자제까지 모아 글과 활쏘기를 함께 가르쳤습니다. 고려의 기관이 아니므로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맞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고려의 교육 제도가 맞습니다. 성종 때 개경에 국자감을 두어 최고 국립 교육 기관으로 삼았고,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학 교육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문헌공도)을 비롯한 사학 12도가 번성하여 관학이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별무반이 편성되었다.
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6조 직계제가 실시되었다.
김흠돌의 난이 진압되었다.
화면의 '중앙 정치 기구의 변화' 표는 중서문하성·상서성 → 첨의부, 6부 → 4사, 중추원(추밀원) → 밀직사, 어사대 → 감찰사로 기구가 바뀐 것을 보여 줍니다. 발표자는 이를 두고 원의 정치적 간섭을 받던 시기에 관제가 격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성 6부가 첨의부와 4사로 축소되고 기구 이름의 격이 낮아진 것은 원 간섭기 고려의 대표적인 관제 격하 사례입니다. 왕의 칭호도 '조·종' 대신 '충○왕'으로 낮추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원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였고, 원정이 실패한 뒤에도 이를 그대로 두어 내정 간섭 기구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표에 나타난 시기의 사실로 알맞습니다.
별무반은 원 간섭기 이전인 숙종 때 여진 정벌을 위해 편성되었고, 6조 직계제는 조선 태종·세조 때, 김흠돌의 난 진압은 신라 신문왕 때의 일이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사비로 천도하였다.
북한산 순수비를 세웠다.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그림은 동영상 채널 화면으로, '동영상으로 보는 (가)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제거하다'(조회수 63만 회)와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다'(조회수 36만 회) 두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기철을 비롯한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은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고 격하되었던 관제를 복구하는 등 반원 자주 정책을 폈습니다.
공민왕은 내정 개혁을 위해 신돈을 등용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되돌렸습니다.
사비 천도는 백제 성왕, 북한산 순수비 건립은 신라 진흥왕, 독서삼품과 실시는 신라 원성왕의 일이므로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보고서의 주제는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이며, 조사 내용은 현재 남아 있는 고려 시대 주요 목조 건축물과 배흘림기둥·주심포 양식의 특징입니다. 지도에는 조사 대상으로 수덕사 대웅전과 봉정사 극락전이 이미 표시되어 있고, 나머지 한 자리가 (가)로 비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수덕사 대웅전·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현존하는 고려 시대 목조 건축물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 조건에 맞는 것은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을 보여 주는 고려 목조 건축의 대표작입니다.
종묘 정전과 경복궁 근정전은 조선 시대 건축물이고, 법주사 팔상전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현존 유일의 5층 목탑이므로 고려 시대 목조 건축을 다루는 이 보고서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건의를 받아들여 제정한 법으로 옳은 것은? [3점]
과전법
대동법
영정법
호패법
제시된 글은 조준의 상소로, "수도에 거주하는 관료에게는 단지 경기 안의 토지만 지급하고 그 밖의 토지는 허락하지 마십시오. 이를 법으로 제정하여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십시오"라는 내용입니다.
이 건의를 받아들여 고려 말인 1391년에 제정한 법이 과전법입니다. 전·현직 관리에게 경기 지역 토지에 한하여 수조권을 나누어 주도록 한 제도로, 권문세족의 대토지를 정리하고 신진 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대동법은 광해군 때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 등으로 거두게 한 제도, 영정법은 인조 때 전세를 토지 1결당 4~6두로 고정한 제도, 호패법은 태종 때 시행한 인구 파악 제도이므로 조준의 건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자격루가 제작되었다.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다.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전시된 책은 농사직설이며, 설명에 따르면 정초·변효문 등이 왕의 명을 받아 편찬한 농서로,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보급하기 위해 각 지역 노련한 농부들의 경험을 수집하여 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농사직설은 세종 때 편찬되었습니다. 중국 농서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농사법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세종 재위 시기에는 장영실 등이 물시계인 자격루를 제작하여 시각을 자동으로 알리게 하였고, 이 밖에 앙부일구·측우기·칠정산 등 과학 기술 성과가 잇따랐습니다.
화통도감 설치는 고려 우왕 때 최무선의 건의로 이루어졌고,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저술하였으며, 백두산정계비는 조선 숙종 때 세워졌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였다.
그림 속 안내인은 태실 앞에서 "조선 왕실은 자손이 태어나면 전국 각지의 명당에 태실을 만들어 탯줄을 보관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이곳이 국조오례의를 편찬하는 등 통치 체제 정비에 큰 역할을 한 조선 제9대 왕의 태실이고, 원래 경기도 광주시에 있던 것을 창경궁으로 옮겨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조오례의를 편찬한 조선 제9대 왕은 성종입니다. 성종은 국가 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 음악을 정리한 악학궤범,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 등을 편찬하게 하여 문물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특히 성종은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한 조선의 기본 법전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하여, 유교적 법치 국가의 통치 규범을 확립하였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초계문신제 시행은 정조의 일이며,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 이성계가 단행한 사건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등이 피살되었다.
(가) 장면에서는 신하가 왕에게 "조광조가 조정을 어지럽히고 윤리를 무너뜨렸으니 처벌함이 마땅합니다"라고 아뢰고 왕이 그리하라고 답합니다. 조광조 일파가 제거된 기묘사화로, 중종 때인 1519년의 일입니다.
(나) 장면에서는 두 신하가 "자의 대비께서는 기년복을 입으셔야 합니다", "삼년복을 입으시는 것이 맞습니다"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효종 사후 자의 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예송으로, 현종 때인 1659년의 일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는 16세기 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입니다. 이 시기인 1575년 선조 때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붕당이 형성되었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등이 피살된 것은 1398년으로 (가) 이전이고, 성균관 입구의 탕평비 건립은 영조 때, 갑신정변은 1884년의 일이라 모두 (나) 이후에 해당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귀주 대첩
진포 대첩
행주 대첩
황산 대첩
탐구 계획서의 주제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전투'이며, 표에는 삼국 시대의 '을지문덕의 지략으로 수의 침략을 물리친 살수 대첩', 조선 시대의 '이순신이 학익진으로 왜군을 격퇴한 한산도 대첩'이 적혀 있습니다.
비어 있는 (가)는 고려 시대 항목으로, 설명이 '강감찬의 지휘로 거란의 대군을 섬멸한' 전투입니다. 이는 1019년 거란의 3차 침입 때 물러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무찌른 귀주 대첩입니다.
진포 대첩과 황산 대첩은 고려 말 왜구를 격퇴한 싸움이고, 행주 대첩은 임진왜란 때 권율이 왜군을 물리친 전투이므로 거란을 상대한 전투라는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대화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상평통보가 유통되었다.
전시과 제도가 실시되었다.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팔관회의 경비 마련을 위해 팔관보가 설치되었다.
대화에서 왕이 기근이 심한 호남의 상황을 묻자 신하가 "통신사 조엄이 들여온 고구마가 구황 작물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흉년에도 이를 재배하는 백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라며, 수령과 아전들의 수탈 때문에 재배를 포기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오면서 고구마를 들여온 것은 1763년의 일이므로, 대화에 나타난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이 무렵에는 고구마·감자 같은 구황 작물이 보급되고 상품 작물 재배가 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숙종 때 법화로 채택된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어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였고, 동시에 화폐를 쌓아 두는 전황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전시과 제도 실시, 국제 무역항 벽란도의 번성, 팔관회 경비 마련을 위한 팔관보 설치는 모두 고려 시대의 경제 상황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서희
이황
박제가
정몽주
사진 속 장소는 도산 서당으로, 안내인은 이곳이 『성학십도』를 저술한 성리학자가 제자들을 양성한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사후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고자 서당 뒤편에 도산 서원을 조성해, 한 공간에 서원과 서당이 공존하는 드문 형태가 되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도산 서당을 세워 후학을 기르고 『성학십도』를 지어 군주가 갖추어야 할 학문의 요체를 그림과 함께 제시한 인물은 이황입니다. 그는 주자의 성리학을 깊이 연구해 이기이원론을 정립하였고, 기대승과 벌인 사단칠정 논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학문은 영남 학파로 이어졌고 일본 성리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과 구분해 두면 좋습니다.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해 강동 6주를 얻어낸 인물은 고려의 서희이고, 청에 다녀온 뒤 『북학의』를 지어 절약보다 소비를 통한 생산 자극을 주장한 인물은 박제가이며, 고려 말 성리학자로 이방원 세력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 인물은 정몽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북벌이 추진되었다.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최씨 무신 정권이 붕괴하였다.
제시된 자료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황제 앞에 나아가 항복의 예를 행하고, 포로로 사로잡힌 이들이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라며 통곡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병자호란의 결말인 인조의 삼전도 항복(1637) 장면입니다.
이 굴욕적인 항복과 소현 세자·봉림 대군 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간 경험은 이후 정국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청에서 돌아와 즉위한 효종은 송시열·이완 등과 함께 청을 정벌해 치욕을 씻자는 북벌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워 어영청을 강화하고 군비를 확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알맞은 것은 북벌 추진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사건보다 앞선 시기의 일입니다. 강화도로 천도한 것은 몽골의 침입에 맞선 고려 무신 정권 때(1232)이고, 쓰시마섬 정벌은 고려 말과 조선 세종 때(이종무)에 이루어졌으며, 최씨 무신 정권의 붕괴(1258) 역시 고려 시대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부대로 옳은 것은? [2점]
9서당
별기군
삼별초
훈련도감
잡지 기사는 네덜란드 알크마르에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 벨테브레이가 조선에 정착해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으며, 조선 연안에 표류한 뒤 서울로 압송되어 (가)에 소속되어 서양의 화포 기술을 전수하였다고 소개합니다. 이어 (가)는 임진왜란 중 설치되었고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으로 구성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유성룡의 건의로 설치되어 포수(조총)·사수(활)·살수(창검)의 삼수병 체제를 갖춘 부대는 훈련도감입니다. 훈련도감의 군인은 급료를 받는 상비군·직업군인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의무 병역과 성격이 달랐고, 이후 5군영 체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른 부대들과 혼동하지 않도록 정리해 두면, 9서당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정비된 중앙군이고, 별기군은 1881년 개화 정책의 일환으로 창설된 신식 군대이며, 삼별초는 고려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으로 개경 환도에 반대해 진도·제주로 옮겨 가며 대몽 항쟁을 이어 간 부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렸다.
수양 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지방 세력 통제를 위해 사심관 제도가 실시되었다.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제시된 자료는 “구만 리 긴 하늘에도 머리 들기 어렵고 / 삼천 리 넓은 땅에서도 발을 펴기 어렵도다”라는 시와 그 해설입니다. 해설은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진 김병연이 안동 김씨 등 소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기에 전국을 방랑하며 시를 남겼고, 할아버지가 반역죄로 처형되어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소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한 이 시기는 순조·헌종·철종 대에 걸친 세도 정치기(19세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전정·군정·환곡의 삼정이 크게 문란해져 농민의 부담이 극심했고, 결국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지자 정부는 그 수습책으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삼정이정청 설치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크게 다릅니다.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린 것과 사심관 제도가 실시된 것은 각각 고려 성종·태조 때의 일이고, 수양 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은 조선 전기 단종 때(1453)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추사체를 창안하였다.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사상 의학을 정립하였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화에서 한 사람은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인 이 인물을 묻고, 다른 사람은 그가 유학과 서양 과학 등 여러 학문을 융합해 독창적 사상을 세웠으며 저술한 『의산문답』에 무한 우주론과 중국 중심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 잘 드러나 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의산문답』을 지어 무한 우주론을 펴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한 인물은 홍대용입니다. 그는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지전설을 내세워 전통적인 화이관의 근거를 흔들었고, 『담헌서』·『연기』 등을 남겼으며 혼천의를 제작하는 등 천문·수학에도 밝았습니다.
다른 설명들은 각기 다른 인물의 업적입니다. 추사체를 창안한 인물은 김정희, 사람의 체질을 넷으로 나눈 사상 의학을 정립한 인물은 이제마, 목판으로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인물은 김정호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공산성
전주성
수원 화성
한양 도성
조사 보고서는 (가)가 정조의 명에 의해 축조된 성으로 거중기 등을 이용해 공사 기간과 경비를 줄일 수 있었고,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일부 훼손되었지만 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래에는 훼손된 남포루의 사진, 의궤에 묘사된 포루 그림, 복원 후의 모습이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를 옮기고 새 도시를 건설하며 쌓은 이 성은 수원 화성입니다.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와 녹로 같은 기구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축조되었고, 축성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남아 있어 훗날 정확한 복원이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다른 성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공산성은 백제가 웅진에 도읍하던 시기의 산성이고, 전주성은 동학 농민군이 점령해 정부와 화약을 맺은 곳이며, 한양 도성은 조선 태조 때 새 수도를 둘러싸도록 쌓은 도성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녹읍이 폐지되었어요.
장용영이 설치되었어요.
척화비가 건립되었어요.
요동 정벌이 추진되었어요.
영상 속 안내인은 이곳이 석파정으로 고종의 아버지인 이하응의 별장이었으며, 아들 고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10여 년간 국정을 장악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즉 밑줄 그은 시기는 흥선 대원군 집권기(1863~1873)입니다. 대화 창에는 이미 당백전 발행과 호포제 실시가 올라와 있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 당백전을 발행했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호포제를 실시했으며,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정리하고 『대전회통』을 편찬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고수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 화친하지 않겠다는 뜻을 널리 알렸습니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알맞은 것은 척화비 건립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장용영 설치는 조선 정조 때의 일이며, 요동 정벌 추진은 고려 말 우왕 때(위화도 회군의 배경)와 조선 초 정도전 주도로 논의된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 - (나) - (다)
(나) - (가) - (다)
(나) - (다) - (가)
(다) - (나) - (가)
(가) 봉오동 전투는 1920년, (나) 영릉가 전투(양세봉의 조선혁명군)는 1932년, (다) 한국광복군의 인도·미얀마 전선 활동(지청천 총사령)은 1943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시기순으로 나열하면 (가)-(나)-(다)가 된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최혜국 대우가 규정되어 있다.
통감부가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하는 배경이 되었다.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이 주둔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은 민영익을 대표로 한 보빙사의 모습이며, 설명은 『조선책략』 유포로 미국과의 수교론이 제기된 상황에서 청의 주선으로 조약이 체결된 이후 조선이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조약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입니다.
이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거중 조정 조항과 함께 관세 조항이 처음 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치외 법권과 더불어 다른 나라에 준 유리한 조건을 자동으로 적용받는 최혜국 대우가 규정되어 불평등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조약 체결 후 미국 공사가 부임하자 조선은 답례로 보빙사를 보냈습니다.
다른 설명들은 각각 다른 조약에 해당합니다. 통감부 설치를 가져온 것은 을사늑약(1905)이고, 부산·원산·인천 개항의 배경이 된 것은 강화도 조약(1876)이며,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이 주둔하게 된 계기는 임오군란 후 맺은 제물포 조약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되었던 곳
근대적 우편 업무를 담당하였던 곳
순 한문 신문인 한성순보가 발간되었던 곳
헐버트를 교사로 초빙해 근대 학문을 가르쳤던 곳
답사 안내문의 주제는 개항 이후 설립된 근대 시설이며, 답사 장소로 기기국 번사창(서양식 무기를 만들었던 곳), 우정총국, 제중원(광혜원) 터(정부가 세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있던 곳), 원각사 터(최초의 서양식 극장이 있던 곳)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빈칸 (가)는 우정총국에 붙일 설명입니다.
우정총국은 1884년 근대적 우편 업무를 맡기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홍영식이 총판을 맡았습니다. 개국 축하연 자리에서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키면서 우편 업무는 곧 중단되었고, 우편 사무는 을미개혁 이후 우체사가 설치되면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설명들은 각각 다른 시설에 해당합니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된 곳은 단성사이고, 순 한문 신문인 한성순보를 발간한 곳은 박문국이며, 헐버트 등 외국인 교사를 초빙해 근대 학문을 가르친 곳은 육영 공원입니다. 참고로 안내문에 함께 실린 원각사는 최초의 서양식 극장으로, 이미 다른 답사 장소에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비변사
원수부
홍문관
군국기무처
대화에서 한 사람이 노비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묻자, 다른 사람은 (가)에서 과거 제도를 없애고 연좌제를 폐지하는 개혁 안건도 통과시켰다고 답합니다. 신분제와 과거제, 연좌제를 한꺼번에 손댄 이 기구는 제1차 갑오개혁(1894)을 주도한 군국기무처입니다.
군국기무처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뒤 김홍집을 중심으로 설치된 초정부적 개혁 기구로, 짧은 기간에 210여 건의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정치 면에서는 개국 기년 사용과 궁내부 설치를 통한 왕실·정부 사무 분리, 6조의 8아문 개편을 단행했고, 경제 면에서는 은 본위 화폐 제도와 조세 금납화·도량형 통일을 실시했으며, 사회 면에서는 신분제와 노비제 폐지, 과부의 재가 허용, 조혼 금지 등을 규정하였습니다.
다른 기구들과 구분해 두면 좋습니다. 비변사는 조선 후기 국정을 총괄하다 흥선 대원군 때 사실상 폐지된 기구이고, 원수부는 대한 제국 시기 고종이 군 통수권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며, 홍문관은 조선 시대 경연을 담당하며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사를 이룬 기구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신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천도교의 기관지였다.
박문국에서 발간하였다.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었다.
화면 속 게시물은 1896년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소개하면서, 이날이 서재필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을 창간한 날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실린 지면 사진에도 순한글 제호가 보입니다.
이 조건에 맞는 신문은 독립신문입니다. 독립신문은 정부의 지원을 받되 민간이 발행한 신문으로, 순한글판과 함께 외국인에게 조선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영문판을 함께 펴낸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신문에 해당합니다. 천도교의 기관지는 만세보이고, 근대적 인쇄·출판 기관인 박문국에서 발간한 것은 한성순보입니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규탄한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은 신문은 황성신문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가상 뉴스가 보도된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김윤식이 영선사로 파견되었다.
제너럴 셔면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뉴스 화면의 자막은 '일본군 수비대 등이 왕비 시해'이며, 기자는 새벽에 한성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궁궐에 침입해 왕비를 시해했고 최근 부임한 일본 공사가 사건을 지휘한 것으로 지목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1895년 을미사변을 가리킵니다.
명성 황후가 시해되고 이어 단발령까지 시행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궁궐을 벗어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아관 파천). 을미사변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바로 이 사건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을미사변보다 앞선 일입니다.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제너럴 셔먼호 사건도 1866년에 일어났으며, 김윤식이 영선사로 청에 파견된 것은 1881년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단체로 옳은 것은? [1점]
근우회
보안회
신민회
조선어 학회
제시된 카드 네 장은 각각 안창호·양기탁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는 점, 국권 회복과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한 비밀 결사라는 점, 민족 교육을 위해 오산 학교와 대성 학교를 세웠다는 점,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와해되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을 모두 충족하는 단체는 신민회(1907)입니다. 신민회는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은 비밀 결사로, 학교 설립과 태극 서관·자기 회사 운영 등 실력 양성 운동을 펴는 한편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 하였습니다.
다른 단체들은 성격이 다릅니다. 근우회는 1927년에 조직된 여성 운동 단체이고, 보안회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이며, 조선어 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한 국어 연구 단체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김구
강우규
윤봉길
이승만
안내원의 설명에는 구 서울역사 앞에 세워진 동상이라는 점, 당시 65세의 고령이었다는 점,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을 향해 이곳에서 폭탄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 체포되어 이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는 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 인물은 강우규입니다. 그는 1919년 9월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를 겨냥해 폭탄을 던졌고, 거사 당시 예순이 넘은 나이여서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다른 인물들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윤봉길은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고, 김구는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으며, 이승만은 외교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뒤 정부 수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독립 선언에 참여하였다.
인물 카드에는 이름이 손병희(1861~1922), 호는 의암이라고 적혀 있고, 주요 활동으로 교조 신원 운동 참여, 동학의 3대 교주 취임,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한 사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손병희는 1919년 3·1 운동 때 천도교 측을 대표해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에 참여하였고, 이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으로 나온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은 김좌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인물은 안중근이며,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특사로 파견된 인물은 이준·이상설·이위종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민족 운동으로 옳은 것은? [1점]
6·10 만세 운동
물산 장려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
검색 결과 화면은 1920년대 초반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이상재·이승훈 등이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전개한 운동이며, 1년 내 1천만 원 조성을 목표로 모금 활동을 벌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방해와 자연재해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입니다. 조선 교육회를 중심으로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어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모금에 나섰으나, 총독부는 이를 견제하며 경성 제국 대학을 세워 운동의 명분을 무너뜨렸습니다.
다른 운동과는 성격이 구분됩니다. 물산 장려 운동은 국산품 애용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내세운 운동이고, 6·10 만세 운동은 순종의 인산일에,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1929년 한일 학생 충돌을 계기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항일 시위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915년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으로 활동하며 친일 부호 처단과 독립 자금 확보 활동을 전개한 인물은 박상진이다. 대한 광복회는 국내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로, 박상진은 총사령을 맡아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주도하였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무장 투쟁 단체로 옳은 것은? [3점]
의열단
북로 군정서
조선 혁명군
한국 광복군
전시 패널은 '항일 무장 투쟁 특별전' 제2관 '만주 사변 이후'로, 총사령 양세봉의 지휘 아래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남만주 일대를 호령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옆의 지도에는 영릉가 전투(1932)와 흥경성 전투(1933)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에 맞는 부대는 조선 혁명군입니다. 조선 혁명당 산하 부대로 남만주에서 활동하였으며, 중국 의용군과 한중 연합 작전을 펼쳐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북만주에서 중국 호로군과 연합해 쌍성보·대전자령 전투를 이끈 부대는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이므로 구분해야 합니다. 북로 군정서는 1920년 청산리 대첩을 이끈 부대, 한국 광복군은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임시 정부의 정규군, 의열단은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원산 총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
만민 공동회에서 연설하는 백정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
조선 태형령을 관보에 싣는 관리
기자는 제주 송악산의 일제 동굴 진지 앞에서, 이 진지가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 전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송악산 주변 군사 시설 경비와 연안으로 침투하는 연합군에 대한 대비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은 1941년에 시작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1940년대 전시 동원기, 곧 민족 말살 통치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 일제는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강요하며 황국 신민 서사 암송, 신사 참배, 궁성 요배 등을 강제하였습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는 학생의 모습이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원산 총파업은 1929년, 만민 공동회는 1898년 독립 협회 활동기의 일이며, 조선 태형령은 1912년에 제정된 무단 통치기의 악법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단체로 옳은 것은? [2점]
독립 의군부
민족 혁명당
조선 의용대
조선 건국 동맹
필기 화면에는 '광복을 위한 노력'이라는 제목 아래, 여운형의 주도로 1944년 국내에서 조직되었고, 주요 활동으로 민주 국가 건설을 위한 강령 발표와 국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연합 시도가, 변천으로 광복 직후 조직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기반이 되었다는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단체는 조선 건국 동맹입니다. 일제의 패망을 예견한 여운형이 국내에서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으로,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로 개편되어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려 하였습니다.
다른 단체와 구분해야 합니다. 독립 의군부는 1910년대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한 복벽주의 단체, 민족 혁명당은 1935년 중국에서 결성된 통합 정당, 조선 의용대는 1938년 김원봉이 창설한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국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3선 개헌한을 통과시켰다.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다.
5·16 군사 정변으로 해산되었다.
국회의원이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하였다.
사진 설명에 따르면 이 국회는 5·10 총선거를 통해 구성되었고, 임기 2년의 국회의원으로 이루어졌으며,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곧 1948년에 개원한 제헌 국회입니다.
제헌 국회는 헌법 제정 외에도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만들고, 지주제를 해체하고 경자유전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1949년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기 국회의 일입니다. 3선 개헌안 통과는 1969년, 5·16 군사 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된 것은 1961년이며,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하는 유신 정우회 방식은 1972년 유신 체제에서 나타났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정부' 시기에 볼 수 있는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부마 민주 항쟁에 참여하는 학생
서울 올림픽 대회 개막식을 관람하는 시민
금융 실명제 시행 속보를 시청하는 회사원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에 체포되는 친일 행위자
화면 속 뉴스는 긴급 조치 9호로 피해를 입은 국민과 그 가족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료에서 긴급 조치 9호는 정부가 선포한 유신 헌법을 부정·반대·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속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고 설명합니다.
유신 헌법은 1972년에 선포되었고 긴급 조치는 1974년부터 잇달아 발동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정부'는 유신 체제기의 박정희 정부입니다. 이 시기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사실상 임명하고 통일 주체 국민 회의가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등 권위주의 통치가 강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은 부마 민주 항쟁에 참여하는 학생입니다. 부마 민주 항쟁은 1979년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 유신 체제에 반대하며 일어난 시위로, 이후 10·26 사태로 이어져 유신 체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 올림픽 대회 개막식(1988년)은 노태우 정부 시기, 금융 실명제 시행(1993년)은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이며,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의 친일 행위자 체포(1948~1949년)는 이승만 정부 초기의 일이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이 있었다.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신문 기사는 '프로 축구 출범 40주년'을 다루면서, 5·18 민주화 운동이 진압된 이후 집권한 (가) 정부가 프로 야구 출범 이듬해인 1983년에 프로 축구를 출범시켰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프로 야구는 1982년에 시작되었으므로 (가)는 1980년대 전반에 집권한 전두환 정부입니다.
기사에서 이를 두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조치'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한 점도, 프로 스포츠 육성을 유화 정책으로 활용한 전두환 정부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이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입니다. 1980년대 중후반 국제 금리와 유가가 낮아지고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이 크게 늘어 고도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수립(1962년)은 박정희 정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1996년)은 김영삼 정부,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2007년)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김대중
김영삼
윤보선
최규하
학생들은 한 인물에 대해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평화적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을 갖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설명에 모두 해당하는 인물은 김대중입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여야 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었습니다.
2000년에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첫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개성 공단 조성 합의와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교류가 확대되었습니다. 같은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김영삼은 제14대 대통령으로 금융 실명제와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등을 추진하였고, 윤보선은 4·19 혁명 이후 장면 내각기의 대통령, 최규하는 10·26 사태 직후 취임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명칭으로 옳은 것은? [1점]
단오
동지
한식
정월 대보름
화면 속 게시글은 '#세시_풍속 #부럼_깨기 #오곡밥_먹기'라는 태그와 함께 오늘은 음력 1월 15일이라며 (가) 맞이 부럼 깨기를 완료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댓글에서는 부럼 깨기가 부스럼을 예방하고 치아를 튼튼히 하려는 뜻이 담긴 세시 풍속이라고 설명합니다.
음력 1월 15일에 해당하며 부럼 깨기와 오곡밥 먹기를 하는 명절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이 밖에도 귀밝이술 마시기,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달맞이 등의 풍속이 전해집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와 그네뛰기·씨름을 즐겼고, 동지는 양력 12월 22일 무렵으로 팥죽을 먹었으며,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찬 음식을 먹고 성묘를 하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섬으로 옳은 것은? [1점]
독도
진도
거문도
제주도
초대장은 '우리 땅 (가) 체험 교실'을 안내하면서 전시 내용으로 안용복, 홍순칠 등의 우리 땅 지키기 활동을 들고, 체험 내용으로 동도·서도 종이 모형 만들기와 강치 열쇠고리 만들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도와 서도라는 두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강치가 서식하던 곳은 독도입니다. 배경 사진의 가파른 바위섬 모습도 독도의 지형과 일치합니다.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았고, 광복 이후 홍순칠은 독도 의용 수비대를 조직해 독도를 지켰습니다. 대한 제국은 1900년 칙령 제41호로 울도군이 울릉도와 석도(독도)를 관할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진도는 삼별초의 대몽 항쟁지, 거문도는 영국이 러시아 견제를 구실로 불법 점령했던 곳, 제주도는 삼별초 최후의 항쟁과 4·3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지역으로 옳은 것은? [2점]
강릉
군산
대구
진주
학습 활동에서 학생들은 한 지역에 대해 고려 시대 12목의 하나였다,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왜군에 맞서 싸운 장소이다, 조선 후기에 유계춘의 주도로 농민 봉기가 일어난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가 개최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설명이 모두 가리키는 지역은 진주입니다. 임진왜란 때 김시민이 이끈 진주 대첩은 3대 대첩의 하나로 꼽히며, 이후 벌어진 제2차 진주성 전투도 이곳에서 일어났습니다.
1862년에는 삼정의 문란과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유계춘을 중심으로 진주 농민 봉기가 일어났고, 이것이 전국으로 번져 임술 농민 봉기가 되었습니다. 1923년에는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내건 조선 형평사가 이곳에서 창립되었습니다.
강릉은 오죽헌과 단오제로, 군산은 개항장과 일제의 쌀 반출 항구로, 대구는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3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