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제40회 기출문제 해설 페이지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1점]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되었다.
반량전, 명도전 등의 화폐를 사용하였다.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보관하엿다.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대표적인 도구로 주먹도끼, 찍개 등을 제작하였다.
전시된 유물은 경상남도 창녕군 비봉리에서 출토된 배의 복제품으로, 원래 출토품은 약 8천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최고(最古)의 배이다. 해설에서 (가) 시대 사람들이 낚싯바늘과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신석기 시대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이 시작되면서 수확한 곡물을 저장하고 조리할 그릇이 필요해졌고, 이에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한 이른 민무늬 토기·덧무늬 토기 등을 만들어 식량을 보관하였다.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며 부족 사회를 이루었다.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된 것은 고려 시대 이후이고, 반량전·명도전 등 중국 화폐의 사용은 철기 시대의 모습이다. 많은 인력을 동원한 고인돌 축조는 청동기 시대, 주먹도끼와 찍개 같은 뗀석기 제작은 구석기 시대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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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혼인 풍속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소도라고 불린 신성 지역이 존재하였다.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유명하였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범금 8조를 두었다.
중국 지린성 쑹화강 유역 둥퇀산 유적에서 출토되었고 여러 가(加)들이 사출도를 관할하며 순장 풍습이 있었다는 설명에서 (가)는 부여임을 알 수 있다. 부여는 수렵 사회의 전통을 이어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신지·읍차와 천군·소도는 삼한, 사자·조의·선인은 고구려,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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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화유산을 남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백강에서 왜군과 함께 당군에 맞서 싸웠다.
지방 장관으로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두었다.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만장일치제인 화백 회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였다.
그림은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 솥과 김해 대동면 덕산리에서 출토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이며, 가운데 지도에는 두 유물의 출토지가 모두 김해시 경계 안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김해를 중심으로 성장한 나라는 전기 가야 연맹을 이끈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구의 항구와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고, 대성동 고분군의 청동 솥·기마인물형 뿔잔 같은 외래 계통 유물이 그 활발한 교역을 보여 줍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사실입니다. 읍락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 백강에서 왜군과 함께 당군에 맞선 것은 부흥 운동기의 백제, 욕살·처려근지라는 지방 장관을 둔 나라는 고구려, 만장일치제인 화백 회의를 운영한 나라는 신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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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의자왕이 대양성을 함락하였다.
미천왕이 서안평을 점령하였다.
동성왕이 나ㆍ제 동맹을 강화하였다.
성왕이 한강 하류 지역을 수복하였다.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가)는 영락 6년(396) 병신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제[百殘]를 토벌하여 아리수를 건너 도성에 육박하고 백제왕이 노객이 되겠다고 맹세했다는 내용으로, 광개토 대왕릉비에 실린 광개토 대왕의 백제 정벌입니다.
(나)는 고구려 장수 재증걸루 등이 성을 함락하고 도망하던 개로왕을 잡아 아차성 아래에서 죽였다는 내용으로, 475년 장수왕의 한성 함락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는 396년~475년입니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사실은 장수왕이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것으로, 남진 정책을 본격화한 조치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납니다. 미천왕의 서안평 점령은 311년, 동성왕의 나·제 동맹 강화(결혼 동맹)는 493년, 성왕의 한강 하류 수복은 551년, 의자왕의 대야성 함락은 642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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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중앙군으로 9서당이 편성되었다.
대가야를 병합하여 영토가 확장되었다.
지방관 감찰을 위하여 외사정이 파견되었다.
최고 지배자의 칭호가 마립간으로 변경되었다.
시장을 관리하기 위하여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거칠부가 왕의 명령을 받들어 국사(國史)를 편찬했고 그 공으로 파진찬에 올랐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칠부에게 역사서 편찬을 명한 왕은 신라 진흥왕입니다(545년).
진흥왕은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쳐 562년 대가야를 병합하며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였고, 한강 유역을 장악한 뒤 북한산·창녕·황초령·마운령에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일입니다. 중앙군으로 9서당을 편성한 것은 통일 신라 신문왕, 지방관 감찰을 위해 외사정을 파견한 것은 문무왕 때의 일이며, 최고 지배자의 칭호를 마립간으로 바꾼 것은 내물왕 무렵, 동시전 설치는 지증왕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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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옥저를 정복하고 동해안으로 진출하였다.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다.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내신 좌평, 위사 좌평 등 6좌평의 관제를 마련하였다.
해동성국이라 불렸고 사신 이거정이 일본에 다라니경을 전한 (가) 국가는 발해이다. 발해는 선왕 대에 이르러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다. 광군은 고려 정종, 9서당 10정과 외사정은 통일 신라, 광덕·준풍 연호는 고려 광종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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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3점]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매소성에서 당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유학 교육을 위하여 국학을 설립하였다.
인재를 등용하기 위하여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화면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연표로, 3년 4월 당이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왕에게 대도독 관작을 내린 일, 3년 5월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과 함께 부흥을 꾀한 일, 8년 9월 고구려 왕이 항복한 일, 10년 6월 검모잠이 안승을 임금으로 받들어 귀순하자 금마저에 머물게 한 일이 적혀 있습니다.
백제 부흥 운동(661~663)과 고구려 멸망(668), 고구려 부흥 세력의 귀순(670)이 재위 3~10년에 걸쳐 있으므로 (가)는 문무왕입니다.
문무왕은 이어진 나·당 전쟁에서 675년 매소성에서 당의 군대를 격파하고 이듬해 기벌포 싸움으로 당을 몰아내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것은 성덕왕, 우산국 복속은 지증왕, 국학 설립은 신문왕, 독서삼품과 실시는 원성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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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은진 미륵이라 불리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 석불로, 지방 세력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따라서 (가) 국가는 고려이다. 정답 자료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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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가) - 풍수지리설을 들어여오다
(나) -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을 건의하다
(다) -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하다
(라) - 세속 오계를 제시하다
(마) - 대승기신론소를 저술하다
강좌 안내문의 주제는 제1강 원광 (가), 제2강 자장 (나), 제3강 원효 (다), 제4강 의상 (라), 제5강 도선 (마) 순으로 짜여 있습니다. 각 빈칸에는 해당 승려의 활동이 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자장은 선덕 여왕에게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을 건의하여 세우게 하였고, 대국통이 되어 계율을 정비하였으므로 (나)와 짝이 맞습니다.
나머지는 짝이 어긋납니다. 세속 오계를 제시한 이는 원광이므로 (가)에, 대승기신론소를 저술한 이는 원효이므로 (다)에,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한 이는 의상이므로 (라)에, 풍수지리설을 들여온 이는 도선이므로 (마)에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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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에게 패배하였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방송 화면은 남북 공동 발굴이 추진되는 비무장 지대 내 유적으로 강원도 철원의 태봉 옛 도성이 유력하며, 이 도성이 태봉 왕의 이름을 따 (가) 도성으로도 불린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태봉을 세운 왕은 궁예이므로 (가)는 궁예입니다.
궁예는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뒤 철원으로 천도하고 국호를 마진·태봉으로 바꾸었으며, 최고 관부인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정치 기구를 마련하여 국가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일입니다. 후당·오월에 사신을 보내고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에게 패한 것은 후백제 쪽 사실이며,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이는 왕건, 청해진을 설치한 이는 신라의 장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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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실이 있었던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가)
(나)
(다)
(라)
(마)
사료는 왕이 선정전 남문에서 여진의 사신 요불 등을 접견하고, 9성을 돌려주면 자손대대로 공물을 바치고 국경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은 뒤 9성의 반환을 허락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윤관이 개척한 동북 9성을 여진에 돌려준 1109년의 일입니다.
연표는 1019년 귀주 대첩 – (가) – 1104년 별무반 조직 – (나) – 1232년 처인성 전투 – (다) – 1270년 개경 환도 – (라) – 1356년 쌍성총관부 탈환 – (마) – 1380년 진포 대첩으로 이어집니다.
1109년은 별무반 조직(1104)과 처인성 전투(1232) 사이에 놓이므로, 해당 시기는 (나)입니다. 별무반 편성 →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축조(1107) → 9성 반환(1109)의 흐름을 함께 기억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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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였다.
왕실의 외척인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묘청 일파가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토벌되었다.
조위총이 군사를 일으켜 정중부 등의 제거를 도모하였다.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하였다.
대화에서 단재 신채호가 이 사건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으로 평가했고,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에서 전자가 패하고 후자가 승리하여 우리 역사가 사대적·보수적으로 흘렀다고 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신채호가 그렇게 규정한 사건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입니다.
묘청 등 서경 세력은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다 뜻이 좌절되자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로 하여 난을 일으켰고, 결국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토벌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건입니다. 위화도 회군과 최영 제거는 1388년, 이자겸의 난은 1126년, 조위총의 난은 무신 정권기인 1174년, 강조의 정변은 1009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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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에 해당하는 토지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가)는 경종 원년(976) 11월에 직관과 산관 각 품의 전시과를 처음 정했다는 기록으로 시정 전시과이고, (나)는 공양왕 3년(1391) 5월에 도평의사사의 건의로 과전을 주는 법을 정했다는 과전법입니다.
보기 ㄱ은 옳습니다. 전시과는 관리에게 곡물을 거둘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는 시지를 함께 지급하여 수조권을 행사하게 한 제도였습니다. 보기 ㄷ도 옳습니다. 과전법은 지급 대상 토지를 원칙적으로 경기 지역에 한정하였습니다.
보기 ㄴ은 (가)에 대한 설명으로 맞지 않습니다. 관리가 죽은 뒤 유가족에게 수신전·휼양전을 지급한 것은 과전법의 내용입니다. 보기 ㄹ도 (나)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인품과 공복(관품)을 함께 기준으로 삼은 것은 976년의 시정 전시과입니다.
따라서 옳은 것은 ㄱ과 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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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국자감에 전문 강좌인 7재를 개설하였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하여 광군을 창설하였다.
인사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방을 폐지하였다.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도입하였다.
전국에 12목을 처음으로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화면 속 영정은 고려 제31대 왕과 그 왕비인 노국 대장 공주의 그림이며, 이 왕이 원·명 교체기에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 간섭기 말 반원 자주 개혁을 편 제31대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무신 정권 이래 인사권을 쥐고 있던 정방을 폐지하여 인사권을 왕에게 되돌렸습니다. 아울러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으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 땅을 되찾았고,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권문세족의 토지와 노비를 정리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국자감에 전문 강좌인 7재를 개설한 이는 예종, 광군 창설은 정종,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도입한 이는 광종, 전국에 12목을 처음 설치한 이는 성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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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자료 카드에는 국보 제48-1호, 소재지 강원도 평창군, 그리고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불교 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다각 다층 석탑을 대표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맞는 문화유산은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입니다. 사진에서 확인되듯 몸돌과 지붕돌의 평면이 사각형이 아닌 팔각이고, 지붕돌이 아홉 겹으로 높이 솟아 있으며, 꼭대기에는 금속제 상륜부가 길게 얹혀 있습니다. 고려 전기 관동 지방에서 유행한 다각 다층 석탑의 전형입니다.
나머지 자료들은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기단에 계단과 난간을 두르고 목조 건축을 본떠 화려하게 꾸민 탑은 통일 신라 불국사의 다보탑입니다. 아(亞)자 모양으로 굴곡진 기단 위에 목조 건축의 지붕과 공포까지 정교하게 조각해 층층이 쌓아 올린 대리석 탑, 사각 평면의 지붕돌이 다섯 겹 얹힌 오층석탑, 벽돌처럼 층층이 쌓아 올려 지붕이 계단 모양 층급을 이루는 전탑 계열의 탑은 모두 평면이 팔각이 아니어서 다각 다층 석탑이라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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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의천이 불교 통합을 위해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요세가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신앙 결사를 이끌었습니다.
지눌이 정혜사를 결성하고 불교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각훈이 해동고승전을 저술하여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하였습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여 불교 중심의 설화, 야사 등을 정리하였습니다.
사진 속 답사 안내 장면에서 학생은 이곳이 강진 만덕산에 위치한 백련사이며, 고려 무신 정권기 최우의 후원으로 절의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덕산 백련사는 요세가 이끈 백련 결사의 근거지입니다. 요세는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법화 신앙 결사를 조직하였고, 지방민의 호응과 최씨 무신 정권의 후원을 받으며 교세를 크게 넓혔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요세가 법화 신앙에 기반한 신앙 결사를 이끌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같은 시기 결사 운동이라도 지눌의 정혜결사(수선사)는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의천의 해동 천태종 개창은 무신 정권 이전인 고려 중기 개경 국청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각훈의 해동고승전과 일연의 삼국유사는 저술 활동이지 만덕산 백련사와 직접 연결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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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이 설치되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다.
백성의 유망을 막기 위하여 호패법이 실시되었다.
국가의 의례를 정비한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다.
궁궐의 공사비 마련을 위하여 당백전이 발행되었다.
시나리오는 천도를 위해 축조한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신하에게 짓게 한 왕이 등장하고, 그 신하가 근정전이라는 이름에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진다"는 뜻을 담았다고 아뢰는 장면입니다.
한양 천도 후 경복궁과 근정전·사정전 등의 이름을 지은 신하는 정도전이며, 이때의 왕은 조선 태조입니다. 따라서 태조 재위 기간(1392~1398)의 사실을 찾아야 합니다.
태조 말년인 1398년, 세자 책봉과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이방원이 정도전 등을 제거한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났으므로 태조 재위 중의 사실로 옳습니다.
집현전 설치와 국조오례의 완성은 각각 세종과 성종 대의 일이고, 호패법 실시는 태종 대, 당백전 발행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 고종 대의 일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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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물가 조절을 위해 상평창을 설치하였어요.
병자에게 의약품을 제공하는 혜민국이 있었어요.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보급하였어요.
환자 치료와 빈민 구제를 위해 개경에 동ㆍ서 대비원을 두었어요.
기금을 모아 그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운영하였어요.
수업 장면에서 교사는 고려 시대에 민생 안정을 위해 시행된 사회 시책을 묻고 있고, 한 학생이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의창을 두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도 고려의 사회 시책이 들어가야 하며, 문제는 그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입니다.
물가 조절 기구인 상평창, 의약과 빈민 구제를 맡은 혜민국, 환자 치료와 빈민 구제를 담당한 개경의 동·서 대비원, 기금의 이자로 빈민을 구제한 제위보는 모두 고려의 대표적인 사회 시책입니다.
반면 구황촬요는 조선 명종 대에 기근 때 먹을 수 있는 것과 굶주린 백성을 살리는 방법을 정리해 한글로 풀어 간행·보급한 책으로, 고려가 아닌 조선의 정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이 빈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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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개량된 금속 활자인 갑인자가 주조되었어요.
폭탄의 일종인 비격진천뢰가 만들어졌어요.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가 설계되었어요.
100리 척을 사용한 동국지도가 제작되었어요.
사상 의학을 정립한 동의수세보원이 편찬되었어요.
화면 속 문답 게시글은 세종 대에는 실용적인 학문이 발전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과학 기술의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목록입니다. 이미 제시된 답변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 앙부일구와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 칠정산이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도 세종 대의 과학 기술 성과가 들어가야 합니다. 세종은 계미자의 단점을 보완해 활자를 네모반듯하게 다듬고 조판을 개량한 갑인자를 주조하여 인쇄 능률을 크게 높였으므로, 개량된 금속 활자인 갑인자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알맞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비격진천뢰는 선조 대 이장손이 만든 폭탄이고, 기기도설을 참고한 거중기는 정조 대 정약용이 설계했습니다. 100리 척을 사용한 동국지도는 영조 대 정상기가, 사상 의학을 정립한 동의수세보원은 고종 대 이제마가 펴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4군 6진을 설치하여 북방 영토를 개척하였다.
대전회통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재개하였다.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여주었다.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였다.
답사 안내 자료집은 봉분 둘레에 병풍석이 없는 광릉 사진과 함께, 이 왕이 한명회·권람 등과 함께 변란을 일으킨 후 왕위에 올랐고,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고 군제를 개편하는 등 왕권 강화에 힘썼으며, 무덤에 석실과 석곽을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내부를 석회다짐으로 막았다고 설명합니다.
한명회·권람과 함께 계유정난을 일으켜 즉위하고 광릉에 묻힌 왕은 세조입니다. 세조는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육조 직계제를 부활시켰으며, 중앙군을 5위로, 지방군을 진관 체제로 정비했습니다.
세조는 세습되던 과전이 부족해지자 직전법을 실시하여 수신전·휼양전을 없애고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습니다.
4군 6진 개척은 세종, 대전회통 편찬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고종, 기유약조 체결은 광해군, 균역법 시행은 영조 때의 일이어서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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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신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매매, 증여, 상속의 대상이 되었다.
장례원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공장안에 등록되어 수공업 제품 생산을 담당하였다.
양인이지만 천역을 담당하는 신량역천으로 분류되었다.
관직 진출 제한을 없애달라는 소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자료에 실린 책은 이향견문록으로, 이 책은 유재건이 지은 인물 행적기이며 위항 문학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에 따른 사회적 차별에 불만이 많아 시사(詩社)를 조직하는 등의 문예 활동으로 위상을 높이려 했고, 마을의 거리에 묻혀 있는 유능한 인사들의 행적을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위항 문학과 시사 활동을 주도하며 신분 상승을 꾀한 계층은 중인입니다. 조선 후기 중인들은 기술직과 서리직에 종사하며 축적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고위 관직 진출이 막혀 있었습니다.
이에 중인들은 철종 대에 대규모로 연대하여 관직 진출 제한을 없애 달라는 소청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비록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는 중인 신분의 대표적인 신분 상승 시도입니다.
매매·증여·상속의 대상이 되고 장례원의 관리를 받은 것은 노비, 공장안에 등록되어 수공업 제품을 만든 것은 관영 수공업자, 양인이면서 천한 역을 담당한 신량역천은 별도의 계층으로 중인의 설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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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그림으로 옳은 것은? [1점]
전시 안내문은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겸재의 그림을 모은 겸재 특별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겸재는 정선의 호이며, 그는 우리 산천을 직접 답사하고 그린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화가입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정선의 작품이 들어가야 합니다. 알맞은 그림은 비 갠 뒤의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로, 화면 위쪽에 짙은 먹을 겹쳐 칠해 물기를 머금은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를 육중하게 표현하고, 그 아래에는 흰 안개를 길게 남겨 산 아래 소나무 숲과 기와집이 드러나도록 한 가로 구도의 그림입니다.
나머지 그림들은 정선의 작품이 아닙니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명암법으로 입체감 있게 표현해 서양 화법의 영향을 보여주는 그림은 강세황의 영통동구도이고, 앙상한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소박한 집을 메마른 붓질로 그린 그림은 김정희의 세한도입니다. 뾰족한 봉우리들이 청록빛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 두루마리 그림과, 큰 나무 아래 바위에 사람이 비스듬히 누워 쉬는 모습을 담은 세로 그림 역시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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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고려의 삼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실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을 주관하였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을 처결하였다.
발표 장면에서 학생은 화면에 띄운 글씨가 영조가 세손을 데리고 (가)에 거둥하여 해당 관원들에게 내린 사언시이며, 이 기구는 집현전을 계승하였고 옥당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설명합니다. 화면 속 글씨에도 붉게 표시된 옥당(玉堂) 두 글자가 보입니다.
집현전의 학술 기능을 이어받았고 옥당·옥서로 불린 기구는 조선의 홍문관입니다. 홍문관은 궁중의 경서와 문서를 관리하며 국왕의 자문에 응하였고,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사를 이루었습니다.
홍문관의 대표적인 직무는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을 주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학문적 논의가 정책 비판으로 이어지며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은 것은 한성부, 고려의 삼사와 같이 화폐·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맡은 것은 조선의 호조, 실록 보관과 관리를 맡은 것은 춘추관, 반역죄·강상죄를 다룬 국왕 직속 사법 기구는 의금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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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가 주조되었다.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다.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가 활동하였다.
여러 장시가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되었다.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가상 대화에서 두 사람은 담배 가게에서 전기수가 영웅 소설을 읽어 주다가, 주인공 임경업이 어려움에 빠지는 대목에서 듣던 사람이 흥분해 전기수를 살해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소설을 빌려보는 데 정신이 팔려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합니다.
담배와 같은 상품 작물이 재배되고, 한글 소설과 전기수·세책업이 성행한 것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이 아닌 것을 골라야 합니다.
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 주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로, 조선 후기와는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이 이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지 않습니다.
반면 고구마·감자 같은 구황 작물의 재배,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의 활동, 여러 장시가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결된 것, 송상과 만상의 대청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은 모두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경제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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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서인이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외척 간의 갈등으로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김일손 등이 처형되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기축옥사가 발생하였다.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가 심의겸이 대립하였다.
제시된 상소는 김제남과 함께 영창 대군을 옹립하기로 모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어린 영창 대군이라도 법대로 처리하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이는 광해군 때인 1613년에 일어난 계축옥사로, 이 사건을 계기로 대북 세력은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폐위하여 서궁에 유폐하였다.
이러한 폐모살제와 명·후금 사이의 중립 외교는 성리학적 명분론을 앞세운 서인 세력의 반발을 샀다. 그 결과 1623년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였으므로, 이것이 제시된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이다.
나머지는 모두 계축옥사 이전의 일이다. 김일손 등이 조의제문을 빌미로 처형된 무오사화는 연산군 때(1498), 외척 간 갈등에서 비롯된 을사사화는 명종 즉위 직후(1545)의 일이다. 또 이조 전랑 자리를 놓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여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것은 선조 때(1575)이고,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일어난 기축옥사(1589) 역시 선조 대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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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보기에서 고른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제시문은 "변방의 일은 병조가 주관하는 것인데 근래 변방 일을 위해 (가)를 설치하여 변방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실제로 다 장악하고 있으며, 병조 판서가 참여해도 도리어 지엽적인 입장이 되고 참판 이하 당상관은 일의 내용을 전혀 모른다"며 혁파를 청하는 글이다. 병조의 권한을 대신 흡수한 이 기구는 비변사이다.
비변사는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기구로 출발했다가 을묘왜변 이후 상설화되었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뿐 아니라 재정·인사·외교까지 다루는 최고 회의 기구로 조직과 기능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 결과 의정부와 6조 중심의 행정 체계는 유명무실해졌다.
또한 19세기 세도 정치 시기에는 안동 김씨·풍양 조씨 같은 외척 세력이 비변사의 요직을 독점하여 권력 기반으로 삼았다. 비변사는 결국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이르러 혁파되었다.
왕명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은 승정원이며,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건의로 혁파된 것은 도교 행사를 주관하던 소격서이므로 비변사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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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소란’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1점]
(가)
(나)
(다)
(라)
(마)
제시문은 진주의 난민들이 소란을 일으킨 원인을 설명한 글이다. 전 경상 우병사 백낙신이 탐욕스러워 백성을 침학하였고, 경상 우병영의 환곡 결손[還逋]과 도결(都結)을 메우려고 6만 냥을 한꺼번에 가호(家戶)에 배정하여 억지로 부과하려 하자 민심이 들끓어 봉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1862년 삼정의 문란을 배경으로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임술 농민 봉기)이다.
연표는 1510년 삼포왜란 – 1597년 정유재란 – 1680년 경신환국 – 1728년 이인좌의 난 – 1811년 홍경래의 난 –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순서로 구간을 나누고 있다. 따라서 1862년에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는 홍경래의 난(1811)과 동학 농민 운동(1894) 사이 구간에 해당한다.
이 봉기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어 임술 농민 봉기로 이어졌고, 정부는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는 한편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수습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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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조총 부대가 파견되어 러시아 군대와 교전하였다.
명의 요청에 따라 강홍립이 이끄는 부대가 파병되었다.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괄이 평안도에 주둔하였다.
용골산성에서 정봉수와 이립이 의병을 이끌고 항전하였다.
포수, 살수, 사수의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가)는 『지천집』의 글로, 정묘년의 맹약을 잠시라도 지켜 몇 년이나마 화를 늦추면서 그 사이에 성을 쌓고 군량을 비축하며 방어를 튼튼히 하자는 주장이다. 정묘약조가 맺어진 정묘호란(1627) 이후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만기요람』의 기록으로, 청의 오라총관 목극등이 국경을 정하기 위해 백두산에 이르러 조선의 접반사 박권, 함경도 순찰사 이선부 등과 함께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을 분수령으로 삼아 경계를 정하고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이는 백두산정계비 건립(1712)이다.
따라서 두 시기 사이에 있었던 사실은 효종 때의 나선 정벌이다.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가 파견되어 만주 지역에서 러시아 군대와 교전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가) 이전이거나 정묘호란 당시의 일이다.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 설치(1593), 명의 요청에 따른 강홍립 부대 파병(1619),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이괄이 평안도에 주둔한 일(1623)은 모두 정묘호란 이전이고, 정봉수와 이립이 용골산성에서 의병을 이끌고 항전한 것은 정묘호란 당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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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하였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처음으로 고증하였다.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되어 활동하였다.
곽우록에서 토지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을 제시하였다.
우서를 통해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소개 자료는 초정(楚亭) 선생을 다루고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이면서 문인화풍의 산수화와 꿩·물고기 그림 등을 잘 그렸고,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조선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특히 재물을 우물에 비유하여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인물은 박제가이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었으나 정조가 서얼 등용책을 펴면서 이덕무·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수레와 선박을 이용해 통상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이다. 『양반전』으로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한 이는 박지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처음 고증한 이는 김정희이다. 또 『곽우록』에서 한전론을 제시한 이는 이익,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한 이는 유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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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ㄱ, ㄴ
ㄱ, ㄷ
ㄴ, ㄷ
ㄴ, ㄹ
ㄷ, ㄹ
신문 기사는 서울시가 양헌수 장군의 문집 『하거집』과 일기 등을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서 (가)는 로즈 제독의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이며,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이를 물리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가)는 1866년의 병인양요이다.
병인양요는 프랑스가 병인박해로 자국 선교사가 처형된 것을 구실로 일으킨 침략이었다. 프랑스군은 한성근이 지킨 문수산성과 양헌수가 지킨 정족산성에서 패해 물러나면서, 강화도 외규장각의 의궤 등 도서와 각종 문화재를 약탈하는 피해를 남겼다.
나머지는 다른 사건이다.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한 것은 1898년 독립 협회의 활동이며,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한 것은 미국이 일으킨 1871년 신미양요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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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사변’의 결과로 옳은 것은? [2점]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다.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만손 등의 영남 유생들이 만인소를 올렸다.
개화 정책을 담당하는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3일 만에 실패로 끝나 주동자들이 해외로 망명하였다.
제시된 조약문은 일본이 이노우에 가오루를 전권 대사로 파견하고 조선은 김홍집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체결한 것이다. 제2조에서 피해를 입은 일본인 유가족과 부상자를 돌보고 상인들의 화물 훼손·약탈에 대해 11만 원을 지불하며, 제4조에서 일본 공관 신축을 위해 땅과 건물을 내주고 2만 원을 공사비로 지불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1884년 갑신정변의 뒷수습으로 맺어진 한성 조약이다.
따라서 밑줄 그은 '사변'은 갑신정변이다. 김옥균·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정변을 일으켰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고 주동자들은 일본 등 해외로 망명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갑신정변 이전의 일이다.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1876)과 통리기무아문 설치 및 별기군 창설(1881)은 개항 직후 개화 정책의 산물이고,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만인소를 올린 것도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한 1881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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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황이 나타난 배경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설립된 과정을 정리한다.
회사 설립을 신고제로 변경한 목적을 살펴본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이유를 찾아본다.
임오군란의 결과로 체결된 협정의 내용을 조사한다.
구(舊) 백동화가 제일 은행권으로 교환된 시기를 검색한다.
대화 장면에서 한 인물은 "요즘은 공주, 전주 등에도 장이 열리면 청 상인들이 물건을 팔러 온다"고 하고, 다른 인물은 "청 상인들에게 상권을 빼앗긴 조선 상인이 많다"고 답하고 있다. 개항장에 머물던 외국 상인이 내륙 장시까지 진출해 조선 상인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내지 통상이 가능해진 것은 1882년 체결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때문이다. 이 장정은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이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강화하면서 강요한 것으로, 청 상인의 서울과 내륙 통상을 허용하여 청 상인이 조선 시장에 깊숙이 침투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임오군란의 결과로 체결된 이 협정의 내용을 조사하는 것이 배경 탐구로 적절하다.
나머지는 시기나 성격이 맞지 않는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1908)과 회사령 폐지로 회사 설립이 신고제로 바뀐 일(1920)은 국권 피탈 전후의 사안이고, 아관 파천(1896)과 화폐 정리 사업에 따른 백동화의 제일 은행권 교환(1905) 역시 이 대화의 배경과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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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전신선을 가설하는 인부
이화 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
제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한성 전기 회사 창립을 협의하는 관리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읽고 있는 교사
(가)는 덕원부가 해안의 요충지이자 개항지이므로 인재를 기르는 것이 핵심이라며 원산사(元山社)에 학교를 설치하였다는 내용으로, 1883년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 원산 학사에 관한 것이다.
(나)는 경인 철도 회사의 개업 예식과 화륜거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달리는 모습을 묘사한 기사로,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개통 장면이다. 따라서 두 자료 사이의 시기는 1883년부터 1899년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한성과 인천을 잇는 전신선 가설(1885), 제중원 설립(1885), 이화 학당 설립(1886), 한성 전기 회사 설립(1898) 등이 이루어졌으므로 모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으므로, 그 기사를 읽는 교사의 모습은 이 시기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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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지계를 발급하였다.
상회사인 대동 상회, 장통 상회를 설립하엿다.
황제의 군사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원수부를 설치하였다.
근대식 무기 제조 기술 도입을 위하여 영선사를 파견하였다.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고 한성 사범 학교 관제를 마련하였다.
발표 장면에서 학생은 화면의 자료가 고종이 종묘에 바친 독립서고문이며 여기에 홍범 14조가 포함되어 있고, 홍범 14조는 김홍집과 박영효의 연립 내각이 주도한 '이 개혁'의 기본 방향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밑줄 그은 개혁은 제2차 갑오개혁이다.
제2차 갑오개혁에서는 의정부를 내각으로 개편하고 8아문을 7부로 바꾸었으며,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하고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행정권에서 분리하였다. 교육 면에서는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고 한성 사범 학교 관제와 외국어 학교 관제 등을 마련하여 근대적 교육 제도의 기틀을 세웠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르다. 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 황제의 군사권 강화를 위한 원수부 설치는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때이고, 대동 상회·장통 상회 설립(1883)과 영선사 파견(1881)은 개항 이후 초기 개화 정책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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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하였다.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시켰다.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태극 서관을 설립하여 계몽 서적을 보급하였다.
한ㆍ일 관계 사료집을 편찬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하였다.
기획안의 회차별 방송 내용은 만민 공동회를 통한 자주 국권 운동, 관민 공동회에서의 헌의 6조 결의, 황국 협회의 습격과 단체의 해산으로 이어집니다. 이 세 사건을 모두 겪은 단체는 1896년 창립된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1898년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한 뒤, 이를 바탕으로 중추원을 의회식으로 개편하여 근대적 의회를 설립하려 하였습니다. 관선·민선 의관을 절반씩 두는 중추원 관제가 반포되었으나, 보수 세력이 조작한 공화정 수립 모함과 황국 협회의 습격으로 무산되고 단체도 해산되었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시기나 주체가 다릅니다.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과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각각 1907년의 대한 자강회와 1904년의 보안회가 벌인 일이고, 태극 서관을 통한 계몽 서적 보급은 신민회, 한·일 관계 사료집 편찬과 독립신문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독립 공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마련하였다.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에 따라 해산하였다.
양주에 집결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제출하려 하였다.
인물 소개에 따르면 왕산 허위는 한·일 신협약 체결과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결성된 (가) 부대에서 군사장을 맡았고, 각지의 유생 의병장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이 부대의 총 병력은 1만여 명, 총대장에는 대한관동창의대장 이인영이 추대되었습니다. 이는 1907년 정미의병 때 결성된 13도 창의군을 가리킵니다.
13도 창의군은 양주에 집결한 뒤 서울 주재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선발대를 이끌던 허위 부대가 동대문 밖에서 일본군에 막혔고,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상으로 귀향하면서 작전은 실패하였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대한 독립군, 독립 공채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에 따른 해산은 1895년 을미의병,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시도는 1912년 결성된 독립 의군부의 사실이므로 이 부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가) - 신흥 강습소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다
(나) -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에 힘쓰다
(다) - 유학생을 중심으로 2ㆍ8독립 선언서를 발표하다
(라) - 대조선 국민 군단을 결성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다
(마) -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여 무장 독립 전쟁을 준비하다
게시판의 조별 과제 제목은 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 지역을 나눈 것으로, 5조는 용정, 4조는 도쿄, 3조는 하와이, 2조는 삼원보, 1조는 연해주를 맡았습니다. 각 지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활동과 짝지어야 합니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는 권업회를 기반으로 1914년 이상설과 이동휘를 정·부통령으로 하는 대한 광복군 정부가 수립되어 무장 독립 전쟁을 준비하였으므로, 연해주를 맡은 조의 제목으로 알맞습니다.
나머지는 지역이 서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신흥 강습소는 서간도 삼원보에 세워졌고, 서전서숙은 북간도 용정에 이상설이 설립하였으며, 2·8 독립 선언서는 도쿄의 유학생들이 발표하였고, 대조선 국민 군단은 박용만이 하와이에서 결성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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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조선 노동 총동맹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국민의 성금을 모아 국채를 갚고자 하였다.
조선 사람 조선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농민 단체를 결성하여 소작 쟁의를 전개하였다.
동아일보 기사는 (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두 갈래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측이나 관청 일부에서 이를 일종의 일본 제품 배척 운동으로 간주해 불온한 사상이라고 공격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자 일부가 유산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무산 계급과는 관련이 없다고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양쪽의 비판을 받은 민족 운동은 1920년대 초의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회사령 폐지와 관세 철폐 움직임으로 일본 자본의 침투가 거세지자,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조직하여 국산품 애용과 근검저축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때 내건 대표적인 구호가 ‘조선 사람 조선 것’이었습니다.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진 것은 형평 운동, 성금으로 국채를 갚자는 것은 국채 보상 운동이며, 소작 쟁의는 농민 운동, 조선 노동 총동맹은 노동 운동을 주도한 단체이므로 이 운동의 설명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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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잡지가 발간되던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박은식 등이 조선 광문회를 조직하였다.
안국선이 신소설 금수회의록을 집필하였다.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 처음 개봉되었다.
국내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건립되었다.
주시경이 국문 연구소를 세워 한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제시된 잡지는 방정환이 이끈 천도교 소년회가 펴낸 『어린이』입니다. 아동 문학과 이야기, 그림, 교양 지식, 독자란 등으로 꾸며졌고, 어린아이를 한울님처럼 대하라는 제2대 교주 최시형의 뜻을 이어 소년 운동을 적극 전개한 잡지입니다. 이 잡지는 1923년에 창간되어 1930년대 중반까지 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는 나운규가 제작·주연한 영화 아리랑이 1926년 단성사에서 처음 개봉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창간 이전의 일입니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집필과 원각사 건립은 1908년, 주시경 등이 참여한 국문 연구소 설립은 1907년, 박은식·최남선 등의 조선 광문회 조직은 1910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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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치안 유지법이 제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였다.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배경이 되었다.
국내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이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를 구호로 내세웠다.
기적비의 주인공 권오설은 사회주의 진영의 중심 인물로,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삼아 천도교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 준비한 이 운동을 기획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26년의 6·10 만세 운동을 가리킵니다.
거사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3·1 운동만큼 크게 번지지는 못했지만, 인산일 당일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 시위를 벌였습니다. 무엇보다 준비 과정에서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손을 잡은 경험이 남았고, 이 경험은 국내에서 좌우가 힘을 합치는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이듬해 신간회 창립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치안 유지법 제정은 1925년, 이른바 문화 통치의 배경은 1919년 3·1 운동이며,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내건 것은 형평 운동,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를 구호로 삼은 것은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이므로 이 운동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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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법령이 제정된 이후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원산 총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
헌병 경찰에게 태형을 당하는 상인
신간회 창립 대회에 참여하는 청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주도하는 학생
여자 정신 근로령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여성
제시된 법령은 국민학교의 교과를 국민과·이수과·체련과·예능과 및 직업과로 편성하고, 교육 전반에 걸쳐 황국의 도를 수련하게 하여 황국 신민이라는 자각을 철저히 하도록 하며, 수업 용어는 국어(일본어)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학교의 이름을 국민학교로 바꾼 1941년의 국민학교령으로, 민족 말살 통치가 절정에 이른 시기의 법령입니다.
따라서 이후에 볼 수 있는 모습은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에 따라 강제로 끌려가는 여성입니다. 일제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며 국가 총동원법을 근거로 인력과 물자를 마구잡이로 동원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 법령보다 앞선 시기의 모습입니다. 헌병 경찰의 태형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 신간회 창립 대회는 1927년, 원산 총파업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도 1929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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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여유당전서 간행 사업을 계기로 전개되었다.
조선사 편수회를 설치하여 조선사를 편찬하였다.
모금 활동을 통한 민립 대학 설립을 목표로 하였다.
오산 학교와 대성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안내문은 (가)를 일제의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한국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주체성을 탐구한 민족 운동으로 소개하고, 발표 주제로 정인보의 조선 양명학 연구와 얼 사상, 안재홍의 조선학과 신민족주의론, 문일평의 조선학론과 역사 대중화를 들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조선학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1934년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아 정인보와 안재홍이 주도한 『여유당전서』 간행 사업을 계기로 본격화되었습니다. 실학을 근대 지향적·민족적 학문으로 재평가하면서 한국사의 독자적 발전을 밝히려 한 것입니다.
신경향파 문학의 등장 배경은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이고,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 사관을 퍼뜨리기 위해 조선 총독부가 설치한 기구이며, 민립 대학 설립 모금은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오산 학교와 대성 학교 설립은 신민회의 활동이므로 이 운동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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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남만주에서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도ㆍ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었다.
간도 참변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중국 관내(關內)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였다.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흉상의 주인공은 (가) 부대의 총사령 양세봉이며, 그는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부대는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인 조선 혁명군입니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조선 혁명군은 남만주 일대에서 중국 의용군과 힘을 합쳐 한·중 연합 작전을 펼쳤고, 그 대표적인 성과가 1932년의 영릉가 전투와 1933년의 흥경성 전투였습니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된 것은 한국광복군, 간도 참변 이후 자유시로 이동한 것은 대한 독립 군단, 중국 관내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조선 의용대, 홍범도 부대와 함께 청산리에서 싸운 것은 북로 군정서이므로 이 부대의 활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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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건국 강령을 기초하였다.
한국광복군의 일원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하는 조선 혁명 선언을 집필하였다.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설립하였다.
연보를 보면 이 인물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42년 도쿄 일본신학교 재학, 1944년 학병 강제 징집, 1953년 사상계 창간 주도, 1962년 막사이사이상 수상, 1967년 제7대 총선 옥중 출마로 국회의원 당선, 1973년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 주도, 1975년 사망의 이력을 지녔습니다. 장준하입니다.
그는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6천 리를 걸어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고, 한국광복군에 들어가 미국 전략 정보국(OSS)의 훈련을 받으며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습니다. 다만 일제의 항복으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삼균주의에 입각한 건국 강령 기초는 조소앙, 조선 혁명 선언 집필은 신채호, 조선 건국 동맹 결성은 여운형, 조선 혁명 간부 학교 설립은 김원봉의 활동이므로 이 인물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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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가 작성된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6ㆍ3 시위가 전개되고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이 구속되었다.
유엔 한국 재건단의 지원으로 문경 시멘트 공장이 건설되었다.
일제가 남긴 재산 처리를 위하여 귀속 재산 처리법이 제정되었다.
제시된 문서에는 무상 원조 3억 달러를 10년에 걸쳐 공여하고, 유상 원조(해외 경제 협력 기금) 2억 달러는 10년간 연 이자율 3.5%로 제공하며, 수출입 은행 차관 1억 달러 이상은 국교 정상화 이전이라도 협력하도록 추진한다는 합의 내용이 담겨 있다. 1962년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 외무대신 오히라 사이에 오간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의 자금 문제를 사실상 매듭지은 자료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빠진 굴욕적 대일 외교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고, 1964년 학생과 시민이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이 6·3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서울 일원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였는데, 이것이 자료 작성 이후에 일어난 사실이다.
반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구성(1948), 귀속 재산 처리법 제정(1949), 유엔 한국 재건단 지원을 받은 문경 시멘트 공장 건설(1957),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 조봉암의 구속(1958)은 모두 이 메모가 작성되기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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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조치를 시행한 정부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이 체결되었다.
YH무역 노동자들이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하였다.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른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남북 간 경제 교류활성화를 위한 개성 공단이 건설되었다.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자료는 「국민 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 조치」로, 휘발유의 석유류세를 100분의 300으로 올리고 고급 주택·별장·골프장·고급 승용차 등의 취득세를 취득가액의 100분의 15로 중과한다는 조항이 보인다. 제1조가 밝힌 대로 격동하는 세계 경제의 충격, 곧 제1차 석유 파동에 대응하고자 1974년에 선포된 긴급 조치이다.
긴급 조치는 유신 헌법에 근거해 발동된 것이므로 이 조치를 시행한 정부는 박정희 정부이다. 1979년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조치에 항의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이 바로 이 시기의 일로, 사건 처리 과정이 유신 체제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른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금융 실명제 실시는 김영삼 정부의 일이며, 개성 공단 건설과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2000년대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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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의 헌법을 공포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나)-(다)-(라)
(가)-(다)-(라)-(나)
(나)-(가)-(라)-(다)
(나)-(라)-(가)-(다)
(다)-(라)-(나)-(가)
(가)는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두되 계속 재임은 3기에 한한다고 규정하여 장기 집권의 길을 연 1969년의 3선 개헌이다. (나)는 대통령을 통일 주체 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고 임기를 6년으로 정한 1972년의 유신 헌법이다.
(다)는 대통령을 대통령 선거인단이 무기명 투표로 뽑고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한 1980년의 헌법이며, (라)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임기를 5년 단임으로 규정한 1987년의 헌법이다. 1987년 헌법은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여야 합의로 마련된 현행 헌법이다.
따라서 공포된 순서는 3선 개헌 → 유신 헌법 → 선거인단 간선제 헌법 → 5년 단임 직선제 헌법, 곧 (가)-(나)-(다)-(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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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개항 이후 조계가 설정되었다.
제1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일본과의 무역을 위한 왜관이 설치되었다.
강우규가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하였다.
영국군이 러시아 견제를 빌미로 불법 점령하였다.
답사 경로가 짜장면 박물관 → 구(舊) 조선 은행 지점 → 제물포 구락부 → 맥아더 장군 동상 → 바랴그호 추모비로 이어지고 지도에도 항구와 그 배후의 개항장 일대가 그려져 있으므로 (가) 지역은 인천이다. 맥아더 동상은 6·25 전쟁의 인천 상륙 작전을, 바랴그호 추모비는 러일 전쟁 초기 제물포 앞바다 해전을 기린 것이다.
인천은 강화도 조약의 후속으로 1883년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청·일본과 각국의 조계(외국인 거주지)가 설정된 곳이다. 청국 조계에서 비롯한 차이나타운과 짜장면 문화, 외국인 사교장이던 제물포 구락부가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린 곳은 서울 덕수궁이고, 일본과의 무역을 위한 왜관이 설치된 곳은 동래(부산)이다. 강우규가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곳은 서울 남대문역이며, 영국군이 러시아 견제를 빌미로 불법 점령한 곳은 거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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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 등의 구호를 내세웠다.
전개 과정에서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양원제 국회와 장면 내각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3ㆍ1 민주 구국 선언을 통하여 장기 독재에 저항하였다.
자료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으며, 부정이 있었다는 정·부통령 선거를 다시 실시하도록 지시하였고 이기붕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담화이다.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한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자 1960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하야 성명으로, 4·19 혁명의 결과를 보여 준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허정 과도 정부 아래에서 헌법이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국회로 개정되었고, 새 헌법에 따른 총선거를 거쳐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4·19 혁명이 곧 이 정권 교체의 계기가 된 것이다.
호헌 철폐·독재 타도 구호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 시민군의 자발적 조직과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에 해당하며, 3·1 민주 구국 선언은 1976년 유신 체제에 맞선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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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의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나)-(다)-(라)
(가)-(다)-(라)-(나)
(나)-(가)-(라)-(다)
(나)-(라)-(가)-(다)
(다)-(라)-(나)-(가)
(가)는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에 합의한 7·4 남북 공동 성명(1972) 발표 장면이고, (나)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펼침막이 보이는 남북 학생 회담 요구 집회로 4·19 혁명 직후인 1961년 장면 내각 시기에 벌어진 통일 운동이다.
(다)는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채택된 10·4 남북 공동 선언(2007) 서명 장면이며, (라)는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간 정주영의 북한 방문(1998)으로 이후 금강산 관광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남북 학생 회담 요구 집회 → 7·4 남북 공동 성명 → 정주영 방북 → 10·4 남북 공동 선언, 곧 (나)-(가)-(라)-(다)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