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1[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과 같은 풍속이 있었던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나라에서 대회를 열어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영고(迎鼓)라고 한다. 이때 형옥(刑獄)을 중단하여 죄수를 풀어 주었다.

    <보 기>
    ㄱ.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제천의식을 행하고, 소를 죽여 그 굽으로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ㄴ.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의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다.
    ㄷ. 왕이 나온 대표 부족의 세력은 궁궐, 성책, 감옥, 창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ㄹ.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ㅁ. 신성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다.
    1
    ㄱ, ㄷ
    2
    ㄱ, ㄹ
    3
    ㄴ, ㄷ
    4
    ㄴ, ㅁ
    5
    ㄹ, ㅁ
    해설

    ‘영고’는 부여의 제천 행사이므로, 부여의 모습을 설명한 ㄱ과 ㄷ을 고른 조합이 옳다.

    사료의 ‘은력 정월’, ‘영고’가 대상을 확정하는 단서이다. 부여는 전쟁 때 제천 의식을 행하고 소의 굽으로 길흉을 점치는 우제점법이 있었으며(ㄱ 옳음), 왕이 나온 대표 부족은 궁궐·성책·감옥·창고 등을 갖추었다(ㄷ 옳음).

    • 가매장 후 뼈를 추려 가족 공동의 큰 목곽에 안치하는 풍습(ㄴ)은 옥저의 것이다.
    • 왕 아래 상가·고추가 등의 대가가 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체제(ㄹ)는 고구려의 것이다.
    • 신성 지역 소도와 제사장 천군(ㅁ)은 삼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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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과 같은 국서를 일본으로 보낸 발해의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발해왕이 아룁니다. 산하(山河)가 다른 곳이고, 국토가 같지 않지만 어렴풋이 풍교도덕(風敎道德)을 듣고 우러르는 마음이 더할 뿐입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대왕은 천제(天帝)의 명을 받아 일본의 기틀을 연 이후 대대로 명군(明君)의 자리를 이어 자손이 번성하였습니다. 발해왕은 황송스럽게도 대국(大國)을 맡아 외람되게 여러 번(蕃)을 함부로 총괄하며,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習俗)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너무 멀어 길이 막히고 끊어졌습니다. 어진 이와 가까이 하며 우호를 맺고 옛날의 예에 맞추어 사신을 보내어 이웃을 찾는 것이 오늘에야 비롯하게 되었습니다.
    1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2
    수도를 동경에서 상경으로 옮겼다.
    3
    신라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4
    장문휴로 하여금 수군을 거느리고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하게 하였다.
    5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해설

    국서를 보낸 왕은 발해 무왕이며, 장문휴에게 수군을 주어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하게 한 왕이다.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가지고 있다’는 구절과, 사신 왕래가 ‘오늘에야 비롯’된다는 구절이 일본과 처음 국교를 튼 무왕의 국서임을 보여 준다. 무왕은 당과 대립하며 산둥 공격을 단행하였다.

    • 인안은 무왕, 대흥은 문왕의 연호이므로 두 연호를 한 왕이 쓴 것처럼 서술한 것은 맞지 않다.
    • 동경에서 상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긴 왕은 성왕이다.
    • 남쪽으로 신라와 국경을 접할 만큼 영토를 넓힌 것은 선왕 때의 일이다.
    •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는 선왕 무렵 전성기에 불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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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 ㄱ∼ㅁ 시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단양적성비 북한산비  창녕비  황초령비
     건립 건립  건립  건립
    ↓ ↓ ↓ ↓
    ㄱㄴㄷㄹㅁ

    <보 기>
    ㄱ. 신라가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였다.
    ㄴ. 백제의 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전사하였다.
    ㄷ. 신라가 고령 지역의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ㄹ.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완공하였다.
    ㅁ. 신라의 거칠부가『국사』를 편찬하였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ㅁ
    4
    ㄷ, ㄹ
    5
    ㄹ, ㅁ
    해설

    같은 글자의 시기에 바르게 들어가는 사건은 금관가야 정복(ㄱ)과 관산성 전투(ㄴ)뿐이다.

    기준이 되는 비석은 단양 적성비(6세기 중반), 북한산비(555년 무렵), 창녕비(561), 황초령비(568) 순이다. 따라서 시기 ㄱ은 단양 적성비 이전, 시기 ㅁ은 황초령비 이후이다.

    • 금관가야 정복(532)은 단양 적성비 이전이므로 시기 ㄱ에 맞다.
    • 관산성 전투(554)는 단양 적성비와 북한산비 사이이므로 시기 ㄴ에 맞다.
    • 대가야 정복(562)은 창녕비 이후이므로 시기 ㄷ이 아니라 시기 ㄹ에 해당한다.
    • 고구려 천리장성 완공(647)은 황초령비 이후이므로 시기 ㄹ이 아니라 시기 ㅁ에 해당한다.
    • 거칠부의 『국사』 편찬(545)은 진흥왕 초기의 일이므로 황초령비 이후인 시기 ㅁ에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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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192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것은?
    1
    철수는 시위를 벌이다 보통경찰에게 체포되었다.
    2
    영수는 종로에 있는 화신백화점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3
    제한적으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어, 성수는 한글 신문을 발간할 수 있었다.
    4
    민국은 사회주의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5
    영희는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해설

    화신백화점의 영업은 1930년대에 들어서 이루어졌으므로, 1920년대 상황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나머지는 3·1 운동 이후 문화 통치기와 사회주의 사상 확산이라는 1920년대 상황에 맞는다.

    • 헌병 경찰제를 대신해 보통 경찰제가 실시된 것은 1920년대의 상황이다.
    •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한글 신문이 제한적으로 허용된 것은 1920년대 초의 일이다.
    • 사회주의 운동을 단속하는 치안유지법은 1925년에 제정되었다.
    • 조선여성동우회는 1924년에 조직된 사회주의 계열 여성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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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의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조세 제도의 개선책과 그 결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백성의 뜻을 알고 싶어 재차 대궐문에 나아갔더니, 몇 사람의 유생이 ‘전하께서는 백성을 해친 일이 없는데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을 신은 실로 마음 아프게 여깁니다.’라고 말하고, 방민(坊民)들은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불평하고 있다고 말하니, 비록 강구(康衢)에 노닌들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군포(軍布)는 나라의 반쪽이 원망하고 호포는 한 나라가 원망할 것이다. 지금 내가 어탑에 앉지 않는 것은 마음에 미안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경 등은 알겠는가? 호포나 결포나 모두 구애되는 단서가 있기 마련이다. (중략) 경 등은 대안을 잘 강구하라” 하였다.
    1
    군포를 12개월마다 1필만 내게 하였다.
    2
    절감된 군포의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종래 군역이 면제되었던 양반들에게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는 대신 군포 1필씩을 내게 하였다.
    3
    지주에게는 결작이라고 하여 토지 1결당 미곡 2두를 부담케 하였다.
    4
    각 아문이나 궁방에서 받아들이던 어세, 염세, 선세를 균역청에서 관할케 하였다.
    5
    토지에 부과되는 결작의 부담이 소작 농민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해설

    사료의 개혁은 영조의 균역법이며, 선무군관포를 양반 전체에게 물린 것처럼 서술한 내용이 옳지 않다.

    ‘군포’, ‘호포’, ‘결포’ 논의와 왕이 대궐문에 나아가 백성의 뜻을 물었다는 대목이 단서이다. 선무군관은 일부 상층 양인·한유자에게 칭호를 주고 군포 1필을 거둔 것으로, 양반 전체가 군포를 낸 것은 뒷날 호포제 시행 때의 일이다.

    • 12개월마다 1필로 군포를 줄인 것은 균역법의 핵심 내용으로 옳다.
    • 지주에게 토지 1결당 미곡 2두의 결작을 부담시킨 것은 옳다.
    • 어세·염세·선세를 균역청에서 관할하게 한 것은 옳다.
    • 결작 부담이 소작 농민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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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 사료와 관련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내가 봉기하자 나의 고향을 현(縣)으로 승격시키고 수령을 두어 편안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하더니, 오래지 않아 다시 군사를 보내 토벌하고 나의 어머니와 아내를 옥에 가둔 것은 무슨 뜻인가? 차라리 칼날 아래서 죽을지언정 끝내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왕경에 이르고야 말겠다.
    1
    최충헌의 집권기에 일어났다.
    2
    개경의 노비세력을 규합하여 봉기하였다.
    3
    신라의 부흥을 외치며 고려 정부에 저항하였다.
    4
    서북 지역의 조위총과 공동전선을 펴기도 하였다.
    5
    남적이라고도 불렸으며, 아주(충남 아산)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해설

    사료는 망이·망소이의 난에 관한 것이며, 남적이라 불리고 아주까지 세력을 넓혔다는 설명이 옳다.

    ‘고향을 현으로 승격’시켜 회유했다는 대목이 단서로, 공주 명학소가 충순현으로 승격된 일을 가리킨다. 이 봉기는 1176년 무신 집권 초기에 일어났다.

    • 봉기는 정중부 집권기의 일이므로 최충헌 집권기라는 설명은 맞지 않다.
    • 개경 노비를 규합하려 한 봉기는 만적의 난이다.
    • 신라 부흥을 내건 것은 경주 지역의 봉기로, 공주 명학소의 사건과 다르다.
    • 조위총의 봉기는 서경을 근거로 일어난 별개의 반란으로, 사료 속 봉기의 주체는 명학소 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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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의 사실들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ㄴ. 독립신문이 발간되었다.
    ㄷ.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ㄹ. 광혜원이 설립되었다.
    1
    ㄱ – ㄴ – ㄷ - ㄹ
    2
    ㄴ – ㄱ – ㄷ -ㄹ
    3
    ㄴ – ㄱ - ㄹ - ㄷ
    4
    ㄹ – ㄱ – ㄴ - ㄷ
    5
    ㄹ – ㄴ – ㄱ - ㄷ
    해설

    시기순 배열은 광혜원 → 독립신문 → 경인선 → 국채보상운동이다.

    각 사실의 연도를 대조하면 순서가 ㄹ – ㄴ – ㄱ – ㄷ으로 확정된다.

    • 광혜원(ㄹ)은 1885년에 설립되었다.
    • 독립신문(ㄴ)은 1896년에 창간되었다.
    • 경인선(ㄱ)은 1899년에 개통되었다.
    • 국채보상운동(ㄷ)은 1907년에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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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의 사실들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을 편성하고 급료를 지급하였다.
    ㄴ. 중앙군을 옷의 색깔을 기준으로 9개의 서당으로 편성하였다.
    ㄷ.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별무반을 편성하였다.
    ㄹ. 정규군 외에 서리, 잡학인, 신량역천인, 노비 등으로 일종의 예비군을 구성하였다.
    ㅁ. 야별초를 좌‧우로 나누고, 신의군과 합쳐 조직을 확대하였다.
    1
    ㄴ - ㄱ - ㄷ - ㅁ - ㄹ
    2
    ㄴ - ㄷ - ㅁ - ㄹ - ㄱ
    3
    ㄴ - ㅁ - ㄷ - ㄱ - ㄹ
    4
    ㄷ - ㄴ - ㄹ - ㅁ - ㄱ
    5
    ㄷ - ㅁ - ㄴ - ㄱ - ㄹ
    해설

    시기순 배열은 9서당 → 별무반 → 삼별초 → 잡색군 → 삼수병이다.

    각 군사 조직이 속한 시대를 대조하면 순서가 ㄴ - ㄷ - ㅁ - ㄹ - ㄱ으로 확정된다.

    • 옷 색깔로 구분한 9서당(ㄴ)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완성되었다.
    • 신기군·신보군·항마군의 별무반(ㄷ)은 고려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편성되었다.
    • 야별초를 좌·우로 나누고 신의군을 합친 삼별초(ㅁ)는 고려 무신 집권기의 조직이다.
    • 서리·잡학인·신량역천인·노비로 구성한 잡색군(ㄹ)은 조선 초기의 예비군이다.
    •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ㄱ)은 임진왜란 중 설치된 훈련도감의 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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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 중 의열단에 대한 사실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르면?
    ㄱ. 1919년 지린(길림)에서 조직되었다.
    ㄴ. 많은 단원들이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 교육 및 간부 훈련을 받았다.
    ㄷ.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본 국왕을 처단하려는 의거를 행하였다.
    ㄹ. 신채호는 이 단체를 위하여「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였다.
    ㅁ. 1930년대 후반 이 단체의 주요 인사들은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였다.
    1
    ㄱ, ㄴ, ㄷ
    2
    ㄱ, ㄴ, ㄹ
    3
    ㄴ, ㄷ, ㄹ
    4
    ㄱ, ㄴ, ㄷ, ㄹ
    5
    ㄱ, ㄴ, ㄹ, ㅁ
    해설

    의열단의 사실은 ㄱ, ㄴ, ㄹ, ㅁ이고, 이봉창 의거만 다른 단체의 활동이다.

    의열단은 김원봉이 주도하였고, 1930년대 후반 주요 인사가 조선의용대 조직으로 이어졌다.

    • 1919년 지린에서 조직된 것(ㄱ)은 옳다.
    • 단원들이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해 군사 훈련을 받은 것(ㄴ)은 옳다.
    • 이봉창의 도쿄 의거(ㄷ)는 김구의 한인애국단 활동이므로 옳지 않다.
    •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 것(ㄹ)은 옳다.
    • 1938년 김원봉 등이 조선의용대를 조직한 것(ㅁ)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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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 왕의 재위시기에 활동했던 승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왕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 다툼에 휩쓸려 사림 세력은 또다시 정계에서 밀려났다. 이에 따라 이 왕 때에는 윤원형을 비롯한 왕실 외척인 척신들이 정국을 주도하였고, 사림의 세력은 크게 꺾였다.
    1
    왕실의 지원을 받아 승과를 부활시키는 등 불교 중흥 정책을 펼 쳤다.
    2
    다른 종파들과 사상적 대립을 조화시키고 분파 의식을 극복하려는『십문화쟁론』을 지었다.
    3
    「화엄일승법계도」를 저술하여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4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두루 힘쓰자며 ‘정혜쌍수’, ‘돈오점수’를 주장하였다.
    5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상업에도 관여하는 불교계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교단의 통합 정리에 노력하였다.
    해설

    자료의 왕은 조선 명종이고, 이 시기의 승려는 왕실의 지원으로 승과를 부활시킨 보우이다.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이 정국을 주도했다는 대목이 명종 대임을 알려 준다. 보우는 문정왕후의 지원을 받아 불교 중흥을 꾀하였다.

    • 『십문화쟁론』을 지은 승려는 신라의 원효이다.
    • 「화엄일승법계도」를 저술한 승려는 신라의 의상이다.
    • 정혜쌍수·돈오점수를 주장한 승려는 고려의 지눌이다.
    • 불교계 폐단을 바로잡으려 교단 통합을 꾀한 활동은 고려의 의천 등에 해당하며 명종 대와 시기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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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전주화약 후 전라도를 중심으로 집강소가 설치되어 폐정개혁이 추진되었다.
    2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시 동학교단의 남접과 북접이 합세하였다.
    3
    고부에서 일어난 민란은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4
    전봉준과 손화중 등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백산에서 4대 강령과 격문을 발표하였다.
    5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 후 전세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해설

    남접과 북접이 합세한 것은 제1차 봉기가 아니라 제2차 봉기이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제1차 봉기는 전봉준 등 남접이 주도하였고, 전주화약 뒤 일본의 내정 간섭에 맞선 제2차 봉기에서 논산 집결로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였다.

    • 전주화약 후 집강소를 두어 폐정개혁을 추진한 것은 옳다.
    • 고부 민란이 운동의 발단이 된 것은 옳다.
    • 백산에서 4대 강령과 격문을 발표한 것은 옳다.
    • 공주 우금치 패배 후 전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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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토지제도에 대한 설명이다. 옳지 않은 것은?
    고려 태조 때에는 ㉠역분전을 나누어 주었고, ㉡경종 때에 전시과 제도를 만들었다. 전시과는 목종 때의 개정을 거쳐 ㉢문종 때에 완성되었다. 고려 후기 이래로 누적된 전시과 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려 말에 과전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습되는 토지도 있었기 때문에 점차 새로 관직에 등용된 관리에게 줄 토지가 부족하게 되어, ㉣세조 때에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관료들이 수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과다하게 수취하는 일이 잦아지자 ㉤성종 때에 수조 방식을 시정하였다.
    1
    ㉠ -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준 토지였다.
    2
    ㉡ - 관직의 높고 낮음과 함께 인품을 반영하여 토지를 지급하였다.
    3
    ㉢ - 지급액이 전체적으로 감소하였지만 18등급의 현직 관료 모 두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
    4
    ㉣ -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하는 직전제로 바꾸었다.
    5
    ㉤ - 지방 관청에서 그 해의 생산량을 조사하여 거두고, 관리 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해설

    문종 때의 경정 전시과는 현직 관료에게 지급하였으나 18등급 전부에 시지를 준 것은 아니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경정 전시과는 지급액이 전체적으로 줄었고, 하위 등급에는 전지만 주고 시지는 지급하지 않았다.

    • 역분전은 후삼국 통일 과정의 공로를 기준으로 지급한 토지로 옳다.
    • 경종 때의 시정 전시과가 관품과 인품을 함께 반영한 것은 옳다.
    • 세조 때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주는 직전법으로 바꾼 것은 옳다.
    • 성종 때 관청이 수조하여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관수관급제로 바꾼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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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의 사실들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당대등을 호장으로 개칭하였다.
    ㄴ. 과거제를 실시하여 관리를 선발하였다.
    ㄷ.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내려주기 시작하였다.
    ㄹ. 4도호부, 8목, 56주·군 등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1
    ㄱ – ㄷ – ㄴ – ㄹ
    2
    ㄱ – ㄹ – ㄴ – ㄷ
    3
    ㄷ – ㄴ – ㄱ – ㄹ
    4
    ㄷ – ㄴ – ㄹ – ㄱ
    5
    ㄹ – ㄷ – ㄴ – ㄱ
    해설

    시기순 배열은 태조 → 광종 → 성종 → 현종의 사실인 ㄷ – ㄴ – ㄱ – ㄹ이다.

    모두 고려 초기의 사실이므로 왕대의 선후를 대조하면 지방 호족 통제가 점차 강화되는 흐름이 드러난다.

    • 호족에게 성씨를 내려 준 것(ㄷ)은 태조 때 시작되었다.
    • 과거제 실시(ㄴ)는 광종 때인 958년의 일이다.
    • 당대등을 호장으로 고친 향리 제도 정비(ㄱ)는 성종 때의 일이다.
    • 4도호부, 8목, 56주·군 등에 지방관을 파견한 것(ㄹ)은 현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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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고려시대의 지방 통치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5도에 파견된 안찰사는 상설행정기관 없이 순회하며 수령을 감독하였다.
    2
    군사행정구역인 양계에 파견된 병마사는 안찰사보다 지위가 높았다.
    3
    소는 특정한 물품을 조달하는 특수행정구역이었다.
    4
    외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외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더 많았다.
    5
    5도는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교주도를 말한다.
    해설

    고려의 5도에 충청도는 없고 서해도가 들어가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고려의 5도는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 서해도이다. 충청이라는 구역은 이 시기 양광도에 포함되었다.

    • 5도의 안찰사가 상설 행정 기관 없이 순회하며 수령을 감독한 것은 옳다.
    • 양계에 파견된 병마사가 안찰사보다 지위가 높았던 것은 옳다.
    • 소가 특정 물품을 조달하는 특수 행정 구역이었던 것은 옳다.
    •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았던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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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 중 1940년대에 발생한 사실을 모두 고른 것은?
    ㄱ. 조선어학회 사건 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ㄷ. 사사오입개헌 ㄹ. 조선정판사위조지폐 사건
    ㅁ. 여수·순천 10·19 사건
    1
    ㄱ, ㄷ
    2
    ㄱ, ㄹ
    3
    ㄴ, ㅁ
    4
    ㄱ, ㄹ, ㅁ
    5
    ㄴ, ㄷ, ㅁ
    해설

    1940년대의 사실은 ㄱ, ㄹ, ㅁ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 말기,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과 여수·순천 사건은 해방 직후이고, 나머지 둘은 1950년대의 일이다.

    • 조선어학회 사건(ㄱ)은 1942년의 일이다.
    •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ㄴ)은 1953년의 일이다.
    • 사사오입 개헌(ㄷ)은 1954년의 일이다.
    •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ㄹ)은 1946년의 일이다.
    • 여수·순천 10·19 사건(ㅁ)은 1948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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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 ㉠~㉢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신라는 그 운이 끝나고 도의가 땅에 떨어지자 온갖 도적들이 고슴도치의 털과 같이 일어났다. 가장 심한 자가 ㉠과 ㉡ 두 사람이다. ㉠은 신라의 왕자이면서 신라를 원수로 여겨 반란을 일으켰다. ㉡은 신라의 백성으로 신라의 녹을 먹으면서 모반의 마음을 품고 도읍에 쳐들어가 임금과 신하 베기를 짐승 죽이듯, 풀 베듯 하였다. 두 사람은 천하의 극악한 사람이다. ㉠은 신하에게 버림을 받았고, ㉡은 아들에게 화를 입었는데,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짓이다. (중략) 흉악한 두 사람이 어찌 ㉢에 항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을 위해 백성을 몰아다 준 사람일 뿐이었다.”
    1
    ㉠ - 국정을 총괄하는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서를 설치하고 9관등제를 실시하였다.
    2
    ㉠ - 연호를 무태, 수덕만세, 정개, 천수 등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였다.
    3
    ㉡ - 지배세력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나자 ㉢에게 귀부하였다.
    4
    ㉡ - 서남해를 지키는 군인생활을 하다가 농민을 규합하여 나라 를 세우고 완산주를 도읍으로 정하였다.
    5
    ㉢ - ㉠의 신하로 있으면서 후백제의 나주를 점령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해설

    ㉠은 궁예, ㉡은 견훤, ㉢은 왕건이며, 궁예의 연호에 천수를 넣은 설명이 옳지 않다.

    ‘신라의 왕자’이자 ‘신하에게 버림’받은 인물이 궁예, ‘아들에게 화’를 입은 인물이 견훤이다. 천수는 궁예를 축출하고 즉위한 왕건이 사용한 연호이다.

    • 궁예가 광평성을 비롯한 관서를 설치하고 9관등제를 실시한 것은 옳다.
    • 견훤이 후백제 내분 끝에 왕건에게 귀부한 것은 옳다.
    • 견훤이 서남해 방수 군인 출신으로 완산주에 도읍을 정한 것은 옳다.
    •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서 나주를 점령한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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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의 주장을 펼친 조선 후기 실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주례』에 나타난 주나라 제도를 모범으로 하여 중앙과 지방의 정치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정치적 실권을 군주에게 몰아주고, 군주가 수령을 매개로 민을 직접 다스리도록 하되, 민의 자주권을 최대로 보장하여 아랫사람이 통치자를 추대하는 형식에 의하여 권력이 짜여져야 한다.
    1
    방대한 문화백과사전을 편찬하였다.
    2
    자영농 육성을 위한 한전론을 주장하였다.
    3
    정전제를 현실에 맞게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4
    청나라에 다녀와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였다.
    5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한『동국통감』편찬에 참여하였다.
    해설

    주장을 펼친 실학자는 정약용이며, 정전제를 현실에 맞게 실시할 것을 주장한 설명이 옳다.

    ‘주례’를 모범으로 한 제도 개혁과 ‘아랫사람이 통치자를 추대’한다는 구절은 『경세유표』와 「탕론」으로 대표되는 정약용의 사상이다. 그는 토지론에서 여전론을 거쳐 정전제의 현실적 시행을 주장하였다.

    • 방대한 문화 백과사전 편찬은 『지봉유설』의 이수광 등의 업적이다.
    • 자영농 육성을 위한 한전론은 이익 등이 주장하였다.
    • 청나라에 다녀와 상공업 진흥을 강조한 것은 박지원·박제가 등 북학파이다.
    • 『동국통감』은 서거정 등이 성종 때 편찬한 것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의 활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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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조선시대의 지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과 조선을 크게 그렸다는 특징이 있다.
    2
    「요계관방지도」에는 우리나라 북방지역과 만주, 만리장성을 포함하여 중국 동북지방의 군사요새지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3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최초로 100리척을 사용한 과학적인 지도이다.
    4
    「팔도도」는 양성지 등이 세조 때 완성하였으며, 북방영토를 실측하여 만들었다.
    5
    「대동여지도」는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을 정밀하게 표시하고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였으며, 목판으로 인쇄하였다.
    해설

    세조 때 양성지 등이 실측하여 완성한 지도는 「팔도도」가 아니라 「동국지도」이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팔도도」는 태종 때 이회가 만든 지도로 알려져 있고, 세조 때의 성과는 정척·양성지의 「동국지도」이다.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중국과 조선을 크게 그린 세계 지도인 것은 옳다.
    • 「요계관방지도」에 북방과 만주, 만리장성 일대의 군사 요새가 상세히 그려진 것은 옳다.
    •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100리척을 처음 사용한 것은 옳다.
    • 「대동여지도」가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고 목판으로 인쇄된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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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과 같은 선언이 발표된 이후 마련된 헌법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국민합의 배신한 4⋅13호헌 조치는 무효임을 전 국민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오늘 우리는 전 세계 이목이 우리를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 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장정을 시작한다.
    1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다.
    2
    4년제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 국회의 권력 구조를 골자로 한다.
    3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새로운 주권수임기구를 만들어 대통령을 간선제로 선출하고,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4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하고,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5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결의 요건 강화를 골자로 한다.
    해설

    이 선언 이후 마련된 헌법은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제9차 개헌 헌법이다.

    ‘4·13 호헌 조치’ 무효와 ‘고문’으로 죽은 젊은이를 언급한 대목이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6·10 국민대회 선언임을 알려 준다.

    • 대통령 임기 4년과 단원제 국회의 체제는 1987년 이전 헌법의 내용으로, 제5차 개헌 헌법 등에서 볼 수 있다.
    •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 간선제는 1972년 유신 헌법의 내용이다.
    • 7년 단임과 대통령 선거인단 간선제는 1980년 제8차 개헌 헌법의 내용이다.
    • 대통령의 3선 연임 허용은 1969년 제6차 개헌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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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국회직 9급 한국사] 17년 1회차
    다음의 내용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관민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전제 황권을 공고히 할 것
    ㄴ. 칠반천인(七班賤人)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白丁)이 쓰는 패랭이를 벗겨 버릴 것
    ㄷ. 전국적으로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아전들의 부정을 막고 백성의 곤경을 구제하며, 더불어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할 것
    ㄹ. 공노비(公奴婢)와 사노비(私奴婢)에 관한 법을 일체 혁파하고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금지한다.
    ㅁ. 장관(將官)을 교육하고 징병법을 적용하여 군사 제도의 기초를 확립한다.
    1
    ㄱ - ㄷ - ㄹ - ㅁ - ㄴ
    2
    ㄴ - ㄷ - ㄹ - ㅁ - ㄱ
    3
    ㄴ - ㄹ - ㄱ - ㄷ - ㅁ
    4
    ㄷ - ㄴ - ㄹ - ㅁ - ㄱ
    5
    ㄷ - ㄹ - ㅁ - ㄱ - ㄴ
    해설

    시기순 배열은 ㄷ - ㄴ - ㄹ - ㅁ - ㄱ이다.

    각 조항의 출처를 찾으면 갑신정변 → 동학농민운동 → 갑오개혁 → 홍범 14조 → 독립협회 순으로 정리된다.

    • 지조법 개혁(ㄷ)은 1884년 갑신정변 때의 14개조 정강이다.
    • 칠반천인 대우 개선과 패랭이 폐지(ㄴ)는 1894년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이다.
    • 공사 노비법 혁파(ㄹ)는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의 내용이다.
    • 장관 교육과 징병법 적용(ㅁ)은 제2차 갑오개혁 때 반포된 홍범 14조의 내용이다.
    • 관민 협력으로 황권을 공고히 하자는 조항(ㄱ)은 1898년 관민공동회의 헌의 6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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