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지방직 한국사] 16년 2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다.
- 빈부의 격차와 계급 발생은 잉여 생산물이 생긴 청동기 시대의 현상이다.
- 군장이 제사를 주관한 것은 정치적 지배자가 등장한 청동기 시대 이후의 모습이다.
- 신문왕 때 관료전을 지급하고, 성덕왕 때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 민정 문서는 인구를 남녀별로 연령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 통일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 군·현을 두어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 죄를 지은 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귀향형은 주로 지배층에게 적용된 형벌이다.
- 지방 행정의 실무를 맡은 지방 호족 출신 세력은 향리이다.
-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된 것은 천민인 노비이다.
- 갑: 호(戶)에 부과하던 공물을 토지에 부과하게 되면서 땅이 많은 대가(大家)와 거족(巨族)이 불만을 가져 원망을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심히 걱정스럽군.
- 을: 부자는 토지 소유에 비례하여 많은 액수의 세금을 한꺼번에 내기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수확과 노동력이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도 여태껏 그럭저럭 납부해온 것을 왜 못 내겠소?
- 군포를 1년에 1필로 줄인 것은 영조 때의 균역법이다.
- 토지 1결당 2두의 결작미를 거둔 것도 균역법의 보완책이다.
-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두로 고정한 것은 인조 때의 영정법이다.
- 협동조합이 모든 농지를 소유하는 방식은 이 법령의 내용과 관계없다.
- 민유지가 대거 총독부 소유로 된 것은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의 결과이다.
- 토지를 몰수해 무상으로 분배한 것은 북한의 토지 개혁(무상 몰수·무상 분배)이다.
- ㄴ을 맨 앞에 두는 배열은 538년의 사비 천도를 520년의 율령 반포보다 앞선 것으로 본 점에서 틀렸다.
- ㄱ을 ㄴ보다 앞에 두는 배열은 7세기 초의 살수 대첩을 6세기 사건보다 이르게 본 점에서 틀렸다.
-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한 것은 성종이다.
- 사심관과 기인 제도를 도입한 것은 태조이다.
- 과거 제도를 시행하고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은 광종이다.
- 한 마음(一心)을 깨닫지 못하고 한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중생인데, 부처는 이 한 마음을 깨달았다.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직 한 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를 찾을 수 없다.
- 먼저 깨치고 나서 후에 수행한다는 뜻은 못의 얼음이 전부 물인 줄은 알지만 그것이 태양의 열을 받아 녹게 되는 것처럼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았으나 불법의 힘으로 부처의 길을 닦게 되는 것과 같다.
- 국청사를 창건하고 천태종을 창시한 인물은 의천이다.
-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 사상을 펼친 인물은 신라의 의상이다.
- 『십문화쟁론』을 저술해 종파 간 대립을 조화시키려 한 인물은 신라의 원효이다.
- 속대전을 편찬하여 법령을 정비하였다.
- 사형수에 대한 삼복법(三覆法)을 엄격하게 시행하였다.
-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하였다.
- 신해통공으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철폐한 것은 정조이다.
- 삼정이정청을 설치한 것은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난 철종 때이다.
- 환곡제를 사창제로 바꾼 것은 흥선 대원군이다.
- 회사령은 1910년에 공포되어 태형령 시행보다 앞선다.
- 경의선 철도는 1906년에 개통되었다.
-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에 설립되었다.
- 신진 사대부가 권문세족을 비판한 것은 고려 말의 일이다.
- 전정·군정·환곡의 삼정 문란은 조선 후기 세도 정치기의 일이다.
-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때 실시되었다.
- 군대 해산에 반발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한 것은 1907년 정미의병이다.
- 보국안민·제폭구민을 내걸고 봉기한 것은 동학 농민 운동이다.
- 유생들이 충의와 역적 토벌을 명분으로 주동한 것은 을미의병 등 초기 의병이다.
- 공·사 노비 제도를 모두 폐지하고, 인신 매매를 금지한다.
- 연좌법을 폐지하여 죄인 자신 외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 과부의 재혼은 귀천을 막론하고 그 자유에 맡긴다.
- 갑오개혁 때 청의 연호를 폐지하고 개국 기년을 사용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은 군국기무처가 주도하였다.
- 신분제 폐지와 과부 재가 허용 등은 동학 농민군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 중앙에 22부, 지방에 5방을 둔 것은 성왕 때의 정비이다.
- 나제 동맹을 처음 맺은 것은 비유왕 때이다.
-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정복한 것은 신라 진흥왕이다.
- 성리학적 유교 사관에 입각한 『사략』은 이제현이 저술하였다.
- 단군부터 서술한 역사서로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있다.
- 영웅 서사시 「동명왕편」은 이규보가 지었다.
- 교정도감은 1209년 최충헌이 설치하였으므로 (가)가 아니라 (나) 시기이다.
-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1176년이므로 (나)가 아니라 (가) 시기이다.
- 재조대장경은 최우 집권기에 조판을 시작해 1251년에 완성되었으므로 (라)가 아니라 (다) 시기이다.
- 혼의·간의 등 천체 관측 기구는 세종 때 제작되었다.
- 경자자와 갑인자는 세종 때 주조된 금속 활자이다.
- 『향약집성방』은 세종 때 편찬된 의서이다.
- 불교 신앙 조직인 향도가 널리 퍼진 것은 고려 시대의 모습이다.
- 일반 농민을 백정이라 부른 것은 고려 시대이다.
- 서원은 16세기 중종 때 백운동 서원을 시작으로 설립되었다.
- ㄱ을 맨 앞에 두는 배열은 1925년의 신민부를 1923년의 형평사보다 앞선 것으로 본 점에서 틀렸다.
- ㄷ을 ㄱ보다 앞에 두는 배열은 1929년의 원산 총파업을 1925년 신민부보다 이르게 본 점에서 틀렸다.
- 인조반정으로 몰락한 붕당은 북인이다.
- 경신환국으로 정국을 주도한 붕당은 서인이다.
- 정제두 등이 양명학을 본격 수용한 것은 소론 계열 학자들이다.
밑줄 친 ‘이 토기’가 주로 사용되었던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 토기는 팽이처럼 밑이 뾰족하거나 둥글고, 표면에 빗살처럼 생긴 무늬가 새겨져 있다. 곡식을 담는 데 많이 이용된 이 토기는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대표적 유적지는 서울 암사동, 봉산 지탑리 등이다.
농경과 정착 생활이 이루어졌다.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을 만들었다.
빈부의 격차가 나타나고 계급이 발생하였다.
군장이 부족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이며, 이를 사용한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
‘빗살처럼 생긴 무늬’, 대표 유적지 ‘서울 암사동’·‘봉산 지탑리’라는 단서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조·피 등을 재배하는 농경이 시작되어 강가나 해안에 움집을 짓고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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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문서가 작성되었던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토지는 논, 밭, 촌주위답, 내시령답 등 토지의 종류와 면적을 기록하고, 사람들은 인구, 가호, 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 변동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 밖에 소와 말의 수, 뽕나무, 잣나무, 호두나무의 수까지 기록하였다.
관료에게는 관료전을, 백성에게는 정전을 지급하였다.
인구는 남녀 모두 연령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아래에는 군이나 현을 두어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국가에 봉사하는 대가로 관료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전시과 제도를 운영하였다.
이 문서는 통일 신라의 민정 문서(신라 촌락 문서)이며, 전시과는 고려의 토지 제도이므로 이 시대의 설명으로 옳지 않다.
‘촌주위답’, ‘내시령답’, 3년 동안의 변동 내용, 소·말과 뽕나무·잣나무·호두나무의 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민정 문서임을 알 수 있다. 관료에게 직역의 대가로 전지와 시지를 준 전시과는 고려 경종 때 처음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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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의 주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려 시기에 ( ㉠ )은(는) 금, 은, 구리, 쇠 등 광산물을 채취하거나 도자기, 종이, 차 등 특정한 물품을 생산하여 국가에 공물로 바쳤다.
군현민과 같은 양인이지만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죄를 지으면 형벌로 귀향을 시키는 처벌을 받았다.
지방 호족 출신으로 지방 행정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재산으로 간주되어 매매ㆍ상속ㆍ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은 고려의 특수 행정 구역인 소(所)이며, 그 주민은 군현민과 같은 양인이었지만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금·은·구리·쇠 같은 광산물이나 도자기·종이·차 등 특정 물품을 생산해 공물로 바친 곳은 소이다. 향·부곡·소의 주민은 신분상 양인이었으나 일반 군현민보다 세금 부담이 무겁고 거주 이전이 제한되는 등 차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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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화에 나타난 수취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농민의 군포 부담을 1년에 1필로 줄여 주었다.
지주에게 토지 1결당 2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다.
농민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두로 고정하였다.
대화에 나타난 수취 제도는 대동법이며,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호(戶)에 부과하던 공물을 토지에 부과’하게 되어 땅이 많은 ‘대가와 거족’이 불만을 가졌다는 내용에서 대동법임을 알 수 있다. 대동법은 공물을 집집마다 특산물로 거두던 방식을 바꾸어 토지 결수에 따라 쌀·베·동전 등으로 거두었고,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작되어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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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법령의 시행 결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5조 정부는 다음에 의하여 농지를 매수한다.
1. 다음의 농지는 정부에 귀속한다.
(가) 법령 및 조약에 의하여 몰수 또는 국유로 된 토지
(나) 소유권의 명의가 분명하지 않은 농지
2. 다음의 농지는 본법 규정에 의하여 정부가 매수한다.
… (중략) …
제12조 농지의 분배는 1가구당 총 경영 면적 3정보를 초과하지 못한다.
협동조합이 모든 농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많은 일반 민유지가 총독부 소유로 되었다.
소작지가 크게 줄어들고 자작지가 늘어났다.
지주 소유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였다.
이 법령은 이승만 정부 때의 농지 개혁법이며, 시행 결과 소작지가 크게 줄고 자작지가 늘어났다.
정부가 농지를 ‘매수’하고 분배 상한을 ‘1가구당 총 경영 면적 3정보’로 정한 데서 농지 개혁법임을 알 수 있다. 유상 매수·유상 분배 방식으로 지주의 토지를 사들여 농민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자작농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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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실들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고구려-살수에서 수 양제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ㄴ. 백제-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
ㄷ. 신라-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다.
ㄹ. 가야-고령 지역의 대가야가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ㄴ → ㄷ → ㄹ → ㄱ
ㄴ → ㄹ → ㄷ → ㄱ
ㄷ → ㄴ → ㄹ → ㄱ
ㄷ → ㄹ → ㄱ → ㄴ
시기 순서는 ㄷ→ㄴ→ㄹ→ㄱ이다.
신라 법흥왕의 율령 반포와 공복 제정은 520년, 백제 성왕의 사비 천도와 남부여 국호 변경은 538년, 신라 진흥왕 때 대가야 멸망은 562년,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은 61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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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주전도감에서 왕에게 아뢰기를 “백성들이 화폐를 사용하는 유익함을 이해하고 그것을 편리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종묘에 알리십시오.”라고 하였다. 이 해에 또 은병을 만들어 화폐로 사용하였는데, 은 한 근으로 우리나라의 지형을 본떠서 만들었고 민간에서는 활구라고 불렀다.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하였다.
여진 정벌을 위해 윤관이 건의한 별무반을 설치하였다.
지방 호족을 견제하기 위해 사심관과 기인 제도를 도입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 제도를 시행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밑줄 친 ‘왕’은 고려 숙종이며, 그의 재위 기간에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이 설치되었다.
‘주전도감’에서 화폐를 만들고 우리나라 지형을 본뜬 ‘은병’, 곧 ‘활구’를 주조했다는 데서 숙종임을 알 수 있다. 숙종 때 여진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윤관의 건의로 기병 중심의 별무반을 편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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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을 주장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국청사를 창건하고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 사상을 선양하였다.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해 수선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종파 간의 사상적 대립을 조화시키고자 하였다.
이 내용을 주장한 인물은 고려의 지눌이며, 불교계 개혁을 위해 수선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먼저 깨치고 나서 후에 수행한다’는 돈오점수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주장에서 지눌임을 알 수 있다. 지눌은 송광사를 중심으로 수선사 결사를 일으켜 독경·선 수행·노동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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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책을 시행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신해통공을 단행해 상업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였다.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농민의 불만을 해결하려 하였다.
붕당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다.
환곡제를 면민이 공동출자하여 운영하는 사창제로 전환하였다.
이 정책을 시행한 왕은 영조이며, 붕당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다.
‘속대전’ 편찬, 사형수에 대한 ‘삼복법’ 엄격 시행, ‘신문고’ 부활은 영조의 정책이다. 영조는 탕평책을 추진하면서 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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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법령이 시행되던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은 것은?
제1조 3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구류에 처하여야 할 자는 그 정상에 따라 태형에 처할 수 있다.
제6조 태형은 태로써 볼기를 치는 방법으로 집행한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
회사령 공포를 듣고 있는 상인
경의선 철도 개통식을 보는 학생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식에 참석한 기자
대한광복군정부의 군사 훈련에 참여한 청년
이 법령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조선 태형령이며,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은 대한광복군정부의 군사 훈련에 참여한 청년이다.
‘태형’을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는 데서 1912년 제정되어 1920년 폐지된 조선 태형령임을 알 수 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1914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이동휘 등이 세운 망명 정부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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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곳곳에서 도적이 벌 떼같이 일어났다. 이에, 원종, 애노 등이 사벌주(상주)에 의거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나마 벼슬의 영기에게 명하여 잡게 하였다.
지방에서는 호족 세력이 성장하였다.
신진 사대부가 대두하여 권문세족을 비판하였다.
농민들은 전정, 군정, 환곡 등 삼정의 문란으로 고통을 받았다.
봄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이 자료는 신라 하대 진성 여왕 때의 원종·애노의 난이며, 이 시기 지방에서는 호족 세력이 성장하였다.
‘원종, 애노’가 ‘사벌주(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데서 진성 여왕 때임을 알 수 있다.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지방에서는 성주·장군을 자처한 호족이 독자 세력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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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임오년 서울의 영군(營軍)들이 큰 소란을 피웠다. 갑술년 이후 대내의 경비가 불법으로 지출되고 호조와 선혜청의 창고도 고갈되어 서울의 관리들은 봉급을 못 받았으며, 5영의 병사들도 가끔 결식을 하여 급기야 5영을 2영으로 줄이고 노병과 약졸들을 쫓아냈는데, 내쫓긴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그들은 난을 일으키려 했다.
군대 해산에 반발한 군인들은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다.
보국안민, 제폭구민의 대의를 위해 봉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서울의 하층민들도 참여하였다.
충의를 위해 역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유생들이 주동하였다.
이 사건은 임오군란이며,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서울의 하층민들도 참여하였다.
‘임오년’에 ‘영군(營軍)’이 소란을 일으켰고, ‘5영을 2영으로’ 줄여 쫓겨난 군인들이 난을 일으키려 했다는 데서 1882년 임오군란임을 알 수 있다. 구식 군인의 차별 대우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어 개화 정책과 일본에 반감을 가진 도시 하층민이 가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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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이 포함된 개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중국 연호의 사용을 폐지하였다.
독립 협회 활동의 영향을 받았다.
군국기무처의 주도 하에 추진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였다.
이 내용은 제1차 갑오개혁의 개혁안이며, 독립 협회는 그 뒤에 창립되었으므로 독립 협회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
공·사 노비 제도 폐지, 연좌법 폐지, 과부 재가 허용은 1894년 군국기무처가 추진한 사회 개혁이다. 독립 협회는 1896년에 창립되었으므로 시기상 갑오개혁에 영향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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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무덤 주인’이 왕위에 있었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1971년 7월,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도중 벽돌무덤 하나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 입구를 열자, 무덤 주인을 알려주는 지석이 놓여 있었으며, 백제는 물론 중국의 남조와 왜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중앙에는 22부 관청을 두고 지방에는 5방을 설치하였다.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맞서 나제동맹을 처음 결성하였다.
활발한 대외 정복 전쟁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가야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지방에 22개의 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무덤 주인’은 백제 무령왕이며, 그는 지방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였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벽돌무덤’과 주인을 알려 주는 ‘지석’, 중국 남조의 유물이라는 단서에서 무령왕릉임을 알 수 있다. 무령왕은 22담로에 왕족을 보내 지방 통제를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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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묘청의 천도 운동에서 그가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는 독립적·진취적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일천년래 제일 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성리학적 유교 사관에 입각한 사략을 저술하였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最古)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우리나라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한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저술하였다.
밑줄 친 ‘그’는 김부식이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묘청의 천도 운동’에서 묘청과 맞선 인물로, 이 글은 신채호가 서경 천도 운동을 ‘일천년래 제일 사건’이라 평가한 대목이다. 김부식은 개경 세력을 이끌고 묘청의 난을 진압했고, 인종의 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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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 시기 | 구간 |
|---|---|
| (가) | 무신정변 발생 ~ 최충헌 집권 |
| (나) | 최충헌 집권 ~ 최우 집권 |
| (다) | 최우 집권 ~ 김준 집권 |
| (라) | 김준 집권 ~ 왕정 복구 |
(가)-국정을 총괄하는 교정도감이 처음 설치되었다.
(나)-망이ㆍ망소이 등 명학소민이 봉기하였다.
(다)-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다.
(라)-고려대장경을 다시 조판하여 완성하였다.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한 것은 (다) 최우 집권기의 일이다.
무신정변은 1170년, 최충헌 집권은 1196년, 최우 집권은 1219년, 김준 집권은 1258년이며 이후 원종 때 왕정이 복구되었다. 『상정고금예문』은 몽골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한 뒤인 1234년에 금속 활자로 인쇄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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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왕이 이순지, 김담 등에게 명하여 중국의 선명력, 수시력 등의 역법을 참조하여 새로운 역법을 만들게 하였다. 이 역법은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었다. 내편은 수시력의 원리와 방법을 해설한 것이며, 외편은 회회력(이슬람력)을 해설, 편찬한 것이다.
천체 관측 기구인 혼의, 간의 등을 제작하였다.
경기 지역의 농사 경험을 토대로 금양잡록을 편찬하였다.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 등 금속 활자를 주조하였다.
우리 풍토에 맞는 약재와 치료법을 정리한 향약집성방을 편찬하였다.
밑줄 친 ‘왕’은 세종이며, 『금양잡록』은 성종 때 강희맹이 편찬하였으므로 세종 재위 기간의 사실이 아니다.
‘이순지, 김담’에게 수시력과 회회력을 참고해 내편·외편으로 된 역법을 만들게 한 것은 세종 때의 『칠정산』이다. 『금양잡록』은 강희맹이 경기 금양 지역의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엮은 농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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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옷차림은 신분의 귀천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근래 이것이 문란해져 상민·천민들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 것을 마치 조정의 관리나 선비와 같이 한다. 진실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시전 상인들이나 군역을 지는 상민들까지도 서로 양반이라 부른다.
불교의 신앙 조직인 향도가 널리 확산되었다.
서얼의 청요직 진출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었다.
양민의 대다수를 차지한 농민을 백정(白丁)이라고 하였다.
선현 봉사(奉祀)와 교육을 위한 서원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이 자료는 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를 보여 주며, 이 시기에는 서얼의 청요직 진출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었다.
상민·천민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으며 ‘시전 상인’이나 ‘군역을 지는 상민’까지 서로 양반이라 부른다는 데서 양반 중심 신분 질서가 흔들린 조선 후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서얼들의 통청 운동으로 서얼의 관직 진출 제한이 완화되었고, 정조 때는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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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실들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김좌진을 중심으로 한 신민부가 조직되었다.
ㄴ. 민족협동전선론에 따라 정우회가 조직되었다.
ㄷ.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한 원산 노동자 총파업이 일어났다.
ㄹ. 백정의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형평사가 창립되었다.
ㄱ → ㄴ → ㄹ → ㄷ
ㄱ → ㄹ → ㄷ → ㄴ
ㄹ → ㄱ → ㄴ → ㄷ
ㄹ → ㄷ → ㄱ → ㄴ
시기 순서는 ㄹ→ㄱ→ㄴ→ㄷ이다.
형평사는 1923년 진주에서 창립되었고, 김좌진 중심의 신민부는 1925년 북만주에서 조직되었다. 정우회가 민족 협동 전선론을 담은 정우회 선언을 발표한 것은 1926년이며,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1929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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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이 주장한 붕당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기해년의 일은 생각할수록 망극합니다. 그때 저들이 효종 대왕을 서자처럼 여겨 대왕대비의 상복을 기년복(1년 상복)으로 낮추어 입도록 하자고 청했으니, 지금이라도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조반정으로 몰락하였다.
기사환국으로 다시 집권하였다.
경신환국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였다.
정제두 등이 양명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였다.
이 주장을 한 붕당은 남인이며,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다시 집권하였다.
‘기해년’ 효종의 상에 대왕대비(자의 대비)의 상복을 ‘기년복’으로 정한 서인을 비판한 것으로, 기해예송에서 3년복을 주장한 남인의 입장이다. 남인은 경신환국으로 몰락했다가 기사환국으로 재집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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