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1[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B.C. 5000년경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 보 기 >
    ㄱ. 조개 껍질을 이용하여 장식을 만들고 있다.
    ㄴ. 고인돌 무덤을 만들기 위해 돌을 나르고 있다.
    ㄷ. 모양을 낸 진흙을 불에 구워 그릇을 만들고 있다.
    ㄹ. 도둑질한 자를 노비로 삼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B.C. 5000년경은 신석기 시대이므로 옳은 장면은 ㄱ과 ㄷ이다.

    신석기인은 조개 껍질로 장식품을 만들었고(ㄱ), 진흙을 빚어 불에 구운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조리했다(ㄷ).

    • ㄴ. 고인돌은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므로 이 시기의 장면이 아니다.
    • ㄹ. 도둑질한 자를 노비로 삼는 규정은 고조선의 8조법에 보이는 내용으로, 사유 재산과 신분이 성립한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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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자료에서 설명하는 나라의 모습으로 옳은 것은?
    ◦산과 하천을 경계로 구역을 정하여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읍락의 경계를 침범하면 노비와 소, 말을 내도록 벌을 주니 이를 책화라고 한다. 대군장이 없고 예로부터 후, 읍군, 삼로가 하호를 다스렸다.
    ◦큰 나라 사이에서 시달리다가 마침내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고구려는 이 나라 사람 가운데 세력이 큰 사람을 사자(使者)로 삼아 다스리게 하고, 고구려의 대가로 하여금 조세 수취를 책임지도록 했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1
    읍락사회의 공동체적 결속력이 강하였다.
    2
    해마다 영고라는 제천행사를 거행하였다.
    3
    천군이라 불리는 종교 지도자가 따로 있었다.
    4
    사회 분화가 미숙하여 천민층은 나타나지 않았다.
    5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여 주민들에게 조세를 걷었다.
    해설

    자료의 나라는 동예이며, 옳은 설명은 읍락사회의 공동체적 결속력이 강하였다는 내용이다.

    ‘책화’, ‘후, 읍군, 삼로’가 동예를 가리키는 단서다. 다른 읍락의 경계를 침범하면 노비와 소, 말로 배상하게 한 책화는 읍락 단위의 폐쇄적 결속을 보여 준다.

    • 영고는 부여의 제천행사이고, 동예의 제천행사는 무천이다.
    • 천군이라는 별도의 종교 지도자는 삼한의 특징이다.
    • 책화의 벌로 노비를 내게 했으므로 천민층이 없었다는 설명은 자료와 어긋난다.
    • 동예에는 대군장이 없었고 고구려 복속 뒤에도 토착 세력을 통한 간접 지배를 받았으므로, 지방관을 파견했다는 설명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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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내용과 관련된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모두 높은 데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그곳을 다시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한 개가 있었다.…그 알을 쪼개어 보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놀랍고도 이상하여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 몸에는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모조리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밝게 빛났다.
    1
    특산물로 단궁과 과하마 등이 유명하였다.
    2
    돌무지덧널무덤에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하였다.
    3
    전연의 침략을 받아 왕릉이 도굴되기도 하였다.
    4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해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5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변한 지역에서 출현하였다.
    해설

    자료는 신라의 건국 설화이며, 옳은 설명은 돌무지덧널무덤에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하였다는 내용이다.

    ‘나정’, ‘흰 말’, ‘보랏빛 알’은 박혁거세 탄생 설화의 단서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 고분의 대표 양식이다.

    • 단궁과 과하마는 동예의 특산물이다.
    • 전연의 침략으로 왕릉이 도굴된 나라는 고구려다.
    • 고구려의 남진으로 웅진으로 천도한 나라는 백제다.
    • 변한 지역에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출현한 나라는 가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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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이듬해 경신(庚申)에는 승려 30명을 득도(得度)케 하고, 당시의 서울인 사비성에 왕흥사(王興寺)를 세우게 하여 겨우 그 기초를 세우다가 승하하였다. (가)이/가 왕위를 계승하여 아버지가 닦은 터에 건물을 세워 수십 년만에 완성했는데, 그 절 또한 미륵사(彌勒寺)라고도 불렀다. 산을 등지고 물에 임했으며 꽃나무가 수려하여 사시의 아름다움을 구비하였다.
    -『삼국유사』-

    < 보 기 >
    ㄱ. 6세기 후반 백제 왕을 지냈다.
    ㄴ.지방에 22개의 담로를 설치하였다.
    ㄷ.신라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ㄹ. 당나라와 일본과의 친선을 강화하면서 국가의 부흥을 도모하였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가)는 백제 무왕이며, 옳은 것은 ㄷ과 ㄹ이다.

    왕흥사 기초를 세우다 승하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륵사’를 완성했다는 내용이 단서다. 서동 설화에 신라 선화공주와의 혼인이 전하고(ㄷ), 무왕은 당·일본과의 친선을 강화하며 국가 부흥을 꾀했다(ㄹ).

    • ㄱ. 무왕은 7세기 전반에 재위한 왕이므로 6세기 후반의 왕이라는 설명은 틀리다.
    • ㄴ. 지방의 22담로 설치는 무령왕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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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발해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중앙 관제로 당을 모방한 3성 6부를 두었다.
    2
    문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 국왕 대흠무’라 칭했다.
    3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이끌고 나라를 세웠다.
    4
    고왕은 당의 압력에 대항하여 산둥반도의 덩저우를 공격했다.
    5
    선왕은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고왕이 덩저우를 공격했다는 설명으로, 산둥반도의 덩저우를 공격한 왕은 무왕이다.

    고왕은 건국자 대조영이며, 그 뒤를 이은 무왕 때 장문휴가 수군을 이끌고 덩저우를 공격했다.

    • 발해의 중앙 관제가 당을 모방한 3성 6부라는 설명은 옳다.
    • 문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 국왕 대흠무’라 칭한 것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보여 주는 사실이다.
    •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이끌고 건국했다는 설명은 옳다.
    • 선왕이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지방제도를 정비했다는 설명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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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밑줄 친 ‘국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우리 태조께서 개국한 이래로 신이 알게 된 것은 모두 신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제 태조로부터 경종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의 정치와 교화에서 본받을 만하거나 경계로 삼을 만한 잘잘못을 기록하고, 시무책을 조목별로 나누어 국왕께 올립니다.
    1
    전지와 시지를 함께 주는 전시과를 처음 시행하였다.
    2
    거란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진 실록을 다시 편찬하였다.
    3
    과거 제도를 도입하여 신구 세력의 교체를 도모하였다.
    4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하였다.
    5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하였다.
    해설

    밑줄 친 ‘국왕’은 고려 성종이며, 옳은 정책은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한 것이다.

    태조부터 경종까지 다섯 왕의 정치를 평가하고 시무책을 올렸다는 내용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가리킨다. 성종은 이를 받아들여 지방관을 파견했다.

    • 전지와 시지를 함께 주는 전시과를 처음 시행한 왕은 경종이다.
    • 거란의 침략으로 불탄 실록을 다시 편찬한 것은 현종 때의 일이다.
    • 과거 제도를 도입해 신구 세력 교체를 도모한 왕은 광종이다.
    •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왕은 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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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이때부터 별무반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윤관이 임금에게 포로 346명과 말 96필, 소 300여 두를 바쳤다. 그리고 통태진 등 지방에 성을 쌓았는 바, 이것이 북계의 9성이다.
    (나)김윤후는…몽골군이 이르자 처인성으로 난을 피하였는데, 몽골의 장수 살리타가 와서 성을 공격하므로 그를 사살하였다.
    -『고려사』-
    1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를 받아들였다.
    2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3
    홍건적이 침입해 국왕이 안동까지 피난하였다.
    4
    서희는 거란과 협상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5
    삼별초가 몽골과의 강화에 반대하여 대몽 항쟁을 전개하였다.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를 받아들인 일이다.

    (가)는 별무반을 앞세운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축조(1107년 무렵), (나)는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한 일(1232년)이다.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은 1126년이므로 이 사이에 든다.

    • 광덕, 준풍 연호 사용은 10세기 광종 때로 (가)보다 앞선다.
    • 홍건적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난한 일은 14세기로 (나)보다 뒤다.
    • 서희의 강동 6주 확보는 993년으로 (가)보다 앞선다.
    • 삼별초의 대몽 항쟁은 개경 환도가 결정된 1270년 이후로 (나)보다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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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주장에 근거한 정책으로 적절한 것은?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다.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 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임금이 가장 올바른 경지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조선경국전』-
    1
    경연의 실시
    2
    군주제 타파
    3
    직전법 실시
    4
    호포제 시행
    5
    6조 직계제 시행
    해설

    자료의 주장에 근거한 정책은 경연의 실시다.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의 저술로, 임금의 자질이 한결같지 않으니 신하가 임금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경연은 신하가 임금에게 학문과 정사를 강론해 임금을 올바르게 이끄는 제도다.

    • 자료는 임금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군주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므로 군주제 타파는 맞지 않다.
    • 직전법은 현직 관리에게 수조지를 지급한 토지 제도로 자료의 주장과 무관하다.
    • 호포제는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게 한 군역 제도로 자료의 주장과 무관하다.
    • 6조 직계제는 왕이 6조를 직접 장악하는 왕권 강화책으로, 신하의 견제를 강조한 자료와 방향이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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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강화도 조약] → (가) → [임오군란]
    1
    종래의 5군영을 2영으로 개편하였다.
    2
    『조선책략』이라는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3
    개화정책 추진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4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하였다.
    5
    청나라에 영선사를 파견하여 무기제조기술을 배우게 하였다.
    해설

    (가) 시기의 사실이 아닌 것은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한 일이다.

    강화도 조약은 1876년, 임오군란은 1882년이다. 보빙사는 임오군란 뒤인 1883년에 파견되었으므로 (가) 시기를 벗어난다.

    • 5군영을 무위영·장어영의 2영으로 개편한 것은 1881년의 일로 (가) 시기에 든다.
    • 『조선책략』은 1880년 김홍집이 들여와 소개했으므로 (가) 시기에 든다.
    •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1880년의 일로 (가) 시기에 든다.
    • 영선사 파견은 1881년의 일로 (가) 시기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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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가) 신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가)은/는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지 않아도 살 수가 있다. 또 조금만 공부를 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아도 진사 벼슬은 할 수 있다. 문과의 홍패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어 자기 밭의 김을 먼저 매게 하는데 어느 누구든지 (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코로 잿물을 먹인다. 또한 상투를 붙들어 매고 수염을 자르는 등 갖은 형벌을 가하여도 감히 원망할 수 없다.

    < 보 기 >
    ㄱ. 법적으로 규정된 신분이었다.
    ㄴ. 전현직 문반 관직자들로 제한되었다.
    ㄷ. 유향소를 통해 향촌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ㄹ. 향안(鄕案) 입록을 두고 향촌 사회에서 서로 다투기도 하였다.
    1
    ㄱ, ㄷ
    2
    ㄱ, ㄹ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가)는 양반이며, 옳은 것은 ㄷ과 ㄹ이다.

    ‘문과의 홍패’, ‘진사’, 농사나 장사 없이 마을 사람을 부리는 모습은 박지원의 『양반전』에 묘사된 양반의 특권이다. 양반은 유향소를 통해 향촌에 영향력을 행사했고(ㄷ), 향안 입록을 둘러싸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ㄹ).

    • ㄱ. 법제상 신분은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었고, 양반은 법으로 규정된 신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신분이었다.
    • ㄴ. 양반은 문반에 한정되지 않고 문무 양반과 그 가족·가문까지 포함하는 지배층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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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사회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근본 강령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여 교육을 장려하며, 우리도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본 사의 큰 뜻이다.
    1
    서얼 차별이 발단이 되었다.
    2
    근우회 결성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3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4
    민립대학 설립 운동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5
    소년 운동으로 확대되어 조선 소년군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설

    자료의 사회 운동은 형평 운동이며, 옳은 설명은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는 내용이다.

    ‘계급을 타파’, ‘모욕적 칭호를 폐지’, ‘본 사’가 단서로, 백정 차별 철폐를 내건 조선 형평사의 취지문이다. 형평사는 1923년 진주에서 창립되었다.

    • 발단이 된 것은 서얼 차별이 아니라 백정에 대한 차별이다.
    • 근우회는 여성 운동 단체로 형평 운동이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이 아니다.
    • 민립대학 설립 운동은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위한 실력 양성 운동으로 형평 운동과 배경이 다르다.
    • 조선 소년군은 소년 운동의 흐름에서 창설된 것으로 형평 운동의 확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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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시대별 불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고대 삼국 중 백제가 가장 먼저 수용했다.
    2
    고구려 제가회의와 신라 화백회의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3
    신라 원효는 부석사에서 화엄 사상을 설파하며 화엄종을 열었다.
    4
    조선 초 승과 시험제도를 실시하고, 승려들에게 도첩을 발급했다.
    5
    고려 광종은 균여를 통해 교종과 선종을 화엄종 중심으로 통합했다.
    해설

    옳은 설명은 조선 초에 승과 시험제도를 실시하고 승려들에게 도첩을 발급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은 초기에 승과로 승려를 선발하면서 도첩제로 출가를 통제했다.

    • 삼국 가운데 불교를 가장 먼저 수용한 나라는 백제가 아니라 소수림왕 때의 고구려다.
    • 제가회의와 화백회의는 귀족 합의 전통에서 나온 제도로 불교가 사상적 배경이 된 것이 아니다.
    • 부석사에서 화엄 사상을 펴며 화엄종을 연 인물은 원효가 아니라 의상이다.
    • 광종 때 균여는 교종을 화엄종 중심으로 정리했고,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통합은 뒤에 의천이 천태종으로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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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가) 국가는 마땅히 한 집의 재산을 헤아리고 전(田) 몇 부(負)를 한정하여 1호(戶)의 영업전(永業田)으로 삼는다. … 가난한 백성이 만약 현재 남아 있는 토지를 가지고 항구적으로 생업을 영위할 토대로 삼는다면 어찌 조금은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나)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법령을 세우십시오. … 토지 소유를 제한하면 겸병한 자가 없어지고, 겸병한 자가 없어지면 산업이 균등하게 될 것입니다. 산업이 균등하게 된 후에야 백성이 모두 안정되어 각기 제 토지를 경작하게 되고, 근면한 사람과 나태한 사람의 구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1
    (가)를 주장한 인물은 천주교를 수용했다.
    2
    (가)를 주장한 인물은 유배지에서 실학을 집대성했다.
    3
    (나)를 주장한 인물은 중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4
    (나)를 주장한 인물은 문답 형식의 과학사상서를 저술했다.
    5
    (가)와 (나)를 주장한 두 인물은 서로 교류하면서 개혁안을 발전시켰다.
    해설

    (가)는 이익, (나)는 박지원의 토지 개혁론이며, 옳은 설명은 (나)의 인물이 중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내용이다.

    (가)는 ‘영업전’을 정해 매매를 제한하는 이익의 한전론이고, (나)는 ‘토지 소유를 제한’하자는 박지원의 한전론이다. 박지원은 사행단을 따라 청을 다녀와 『열하일기』를 남겼다.

    • 이익은 서학을 연구했으나 천주교를 수용했다고 볼 수 없으며, 신앙으로 수용한 것은 그의 문하 일부다.
    • 유배지에서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은 정약용이다.
    • 문답 형식의 과학사상서 『의산문답』을 쓴 인물은 홍대용이다.
    • 이익은 근기 남인, 박지원은 노론 출신의 북학파로 학맥이 달라 서로 교류하며 개혁안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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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성명을 발표한 정권이 시행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1의(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
    다섯째, 민족의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1
    한일회담 타결을 추진했다.
    2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3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권력 기반을 마련했다.
    4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다수의 폭력배를 검거했다.
    5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언론매체를 통폐합했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언론매체를 통폐합했다는 설명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는다는 성명은 5·16 군사 정변 세력의 혁명 공약으로, 대상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사 정권이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언론 통폐합은 1980년 신군부의 조치다.

    • 한일회담 타결 추진은 군사 정권과 뒤이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일이다.
    •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이 정권이 추진한 정책이다.
    • 중앙정보부는 5·16 직후 창설되어 권력 기반이 되었다.
    •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폭력배를 대거 검거한 것도 5·16 직후의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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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밑줄 친 ‘왕’의 재위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왕이 대사성 김방행에게 이르기를, “성균관 시험의 시험지 중에 만일 조금이라도 패관잡기에 관련되는 답이 있으면 비록 전편이 주옥같을지라도 하고(下考)로 처리하고 이어 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여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여 조금도 용서가 없어야 할 것이다. 내일 승보시(陞補試)를 보일 때 여러 선비를 모아두고 직접 이 뜻을 일러주어 실효가 있게 하라. … 일전에 남공철의 대책(對策) 중에도 소품(小品)을 인용한 몇 구절이 있었다. … 오늘 이 하교가 있었음을 듣고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올바른 길로 가기 전에는 그가 비록 대궐에 들더라도 감히 경연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남공철의 지제교 직함을 우선 떼도록 하라. … 정관(政官)으로 하여금 문신 중에서 그런 문체를 쓰는 자들을 자세히 살펴 다시는 교수(敎授)의 후보자로 추천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1
    『만기요람』이 편찬되었다.
    2
    『대전통편』이 편찬되었다.
    3
    『경국대전』이 편찬되었다.
    4
    『국조오례의』가 편찬되었다.
    5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다.
    해설

    밑줄 친 ‘왕’은 정조이며, 재위 시기의 사실은 『대전통편』의 편찬이다.

    ‘패관잡기’, ‘소품’을 금하고 ‘남공철’을 문책한 내용은 정조의 문체 반정이다. 『대전통편』은 정조 때 법전을 재정리한 통일 법전이다.

    • 『만기요람』은 순조 때 편찬되었다.
    • 『경국대전』은 성종 때 완성·반포되었다.
    • 『국조오례의』는 성종 때 완성되었다.
    • 『동국여지승람』은 성종 때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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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밑줄 친 ‘의병’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격문을 띄워 팔도의 여러 고을에 고하노라.…우리 국모의 원수를 생각하며 이미 이를 갈았는데, 참혹한 일이 더하여 우리 부모에게서 받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 버리니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이에 감히 의병을 일으키고 마침내 이 뜻을 세상에 포고하노니, 위로는 공경에서 아래로는 서민에까지 어느 누가 애통하고 절박하지 않으랴.
    1
    위정 척사론을 계승한 유생들이 주도하였다.
    2
    진위대의 해산 군인과 합세하여 전력을 강화하였다.
    3
    각국 영사관에 통문을 보내는 등 외교 활동을 벌였다.
    4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에 자극받아 활동을 전개하였다.
    5
    다른 지방의 의병과 힘을 합쳐 서울 진공 작전을 시도하였다.
    해설

    밑줄 친 ‘의병’은 을미의병이며, 옳은 설명은 위정 척사론을 계승한 유생들이 주도하였다는 내용이다.

    ‘국모의 원수’는 을미사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 버리니’는 단발령을 가리킨다. 을미의병은 유인석 등 척사 계열 유생이 이끌었다.

    • 해산 군인과 합세해 전력을 강화한 것은 군대 해산 뒤의 정미의병이다.
    • 각국 영사관에 통문을 보내 외교 활동을 벌인 것은 정미의병 시기의 13도 창의군이다.
    • ‘시일야방성대곡’은 을사늑약에 항의한 논설로 을사의병 시기의 일이다.
    • 서울 진공 작전은 정미의병 시기 13도 창의군이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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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사건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6월 민주 항쟁
    ㄴ. 농지개혁법 공포
    ㄷ. 금융실명제 실시
    ㄹ. 7.4 남북공동성명
    ㅁ.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1
    ㄴ→ㄱ→ㅁ→ㄹ→ㄷ
    2
    ㄴ→ㄷ→ㄹ→ㄱ→ㅁ
    3
    ㄴ→ㄹ→ㄱ→ㅁ→ㄷ
    4
    ㄹ→ㄴ→ㄷ→ㅁ→ㄱ
    5
    ㄹ→ㅁ→ㄱ→ㄴ→ㄷ
    해설

    시기 순서는 ㄴ→ㄹ→ㄱ→ㅁ→ㄷ이다.

    농지개혁법 공포(1949) → 7.4 남북공동성명(1972) → 6월 민주 항쟁(1987) →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 → 금융실명제 실시(1993) 순이다.

    • ㄴ→ㄱ→ㅁ→ㄹ→ㄷ: 7.4 남북공동성명이 6월 민주 항쟁과 남북기본합의서보다 앞서므로 틀리다.
    • ㄴ→ㄷ→ㄹ→ㄱ→ㅁ: 금융실명제가 가장 늦은 사건인데 두 번째에 놓였으므로 틀리다.
    • ㄹ→ㄴ→ㄷ→ㅁ→ㄱ: 농지개혁법 공포가 7.4 남북공동성명보다 앞서므로 틀리다.
    • ㄹ→ㅁ→ㄱ→ㄴ→ㄷ: 농지개혁법 공포가 가장 이른 사건인데 네 번째에 놓였으므로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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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역사가 및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한백겸은 『동국지리지』에서 고대사의 지명을 새롭게 고증하였다.
    2
    홍여하는『휘찬여사』에서기자-마한-신라를정통국가로내세웠다.
    3
    조정은 『동사보유』를 저술하면서 옛 기록의 신화와 전설 등을 다수 수록하였다.
    4
    한치윤은 『해동역사』를 저술하면서 500여 종의 중국, 일본 자료를 참고하였다.
    5
    이종휘는 『동사』에서 의병 경험을 살려 역대 애국 명장들의 활약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이종휘의 『동사』가 의병 경험을 살려 애국 명장을 다루었다는 설명이다.

    이종휘는 18세기 학자로 『동사』에서 고구려 등 고대사를 중시했다. 의병 경험을 살려 역대 명장의 활약을 강조한 역사서로는 오운의 『동사찬요』가 꼽힌다.

    • 한백겸이 『동국지리지』에서 고대 지명을 새롭게 고증했다는 설명은 옳다.
    • 홍여하가 기자-마한-신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내세웠다는 설명은 옳다.
    • 조정이 『동사보유』에 옛 기록의 신화와 전설을 다수 수록했다는 설명은 옳다.
    • 한치윤이 『해동역사』에서 500여 종의 중국, 일본 자료를 참고했다는 설명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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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밑줄 친 ‘왕’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또 왕에게 아뢰기를 “개경의 지세(地勢)가 쇠퇴하였으므로 하늘이 재앙을 내려 궁궐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러니 자주 서경으로 행차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맞이하여 무궁한 큰 업적을 이룩하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여러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모두 다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1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었다.
    2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
    3
    압록강과 도련포에 걸쳐 천리장성을 쌓았다.
    4
    김부식으로 하여금 『삼국사기』를 편찬토록 하였다.
    5
    취민유도 원칙을 내세워 백성에 대한 과도한 수취를 금했다.
    해설

    밑줄 친 ‘왕’은 고려 인종이며, 옳은 설명은 김부식으로 하여금 『삼국사기』를 편찬토록 한 것이다.

    ‘개경의 지세가 쇠퇴’했다며 ‘서경’ 행차를 청한 것은 묘청 세력의 서경 천도 주장이다. 『삼국사기』는 인종 때 왕명으로 편찬되었다.

    • 5도와 양계의 지방 제도는 인종 이전인 고려 전기에 정비되었다.
    •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한 왕은 공민왕이다.
    • 압록강과 도련포에 걸친 천리장성은 인종 이전인 덕종~정종 때 쌓았다.
    • 취민유도 원칙을 내세운 왕은 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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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강령을 발표한 정당·정치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1. 우리는 원자력 혁명이 재래할 새로운 시대의 출현에 대응하여 사상과 제도의 선구적 창도로서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의 달성을 기한다.
    2. 우리는 공산 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 분자의 독재도 이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여 책임 있는 혁신 정치의 실현을 기한다.
    …
    5. 우리는 교육체계를 혁신하여 점진적으로 국가보장제를 수립하고, 민족적 새 문화의 창조로써 세계 문화에 기여를 기한다.

    < 보 기 >
    ㄱ. 대중의 자각과 단결을 강조했다.
    ㄴ.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 통일을 주장했다.
    ㄷ. 민생 안정을 내세워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을 제정했다.
    ㄹ.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대안으로 일민주의를 제시했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강령을 발표한 정당은 진보당(조봉암)이며, 옳은 것은 ㄱ과 ㄴ이다.

    ‘원자력 혁명’, 공산 독재와 ‘자본가와 부패 분자의 독재’ 배격, ‘혁신 정치’가 단서다. 진보당은 피해 대중의 자각과 단결을 강조했고(ㄱ), 조봉암은 평화 통일론을 내세웠다(ㄴ).

    • ㄷ.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은 5·16 군사 정변 뒤 군사 정부가 제정했다.
    • ㄹ. 일민주의는 이승만 정권이 내세운 이념으로 진보당과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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