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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회직 9급 한국사] 23년 1회차
다음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이때부터 별무반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윤관이 임금에게 포로 346명과 말 96필, 소 300여 두를 바쳤다. 그리고 통태진 등 지방에 성을 쌓았는 바, 이것이 북계의 9성이다.
(나)김윤후는…몽골군이 이르자 처인성으로 난을 피하였는데, 몽골의 장수 살리타가 와서 성을 공격하므로 그를 사살하였다.
-『고려사』-
1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를 받아들였다.
2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3
홍건적이 침입해 국왕이 안동까지 피난하였다.
4
서희는 거란과 협상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5
삼별초가 몽골과의 강화에 반대하여 대몽 항쟁을 전개하였다.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를 받아들인 일이다.

(가)는 별무반을 앞세운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축조(1107년 무렵), (나)는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한 일(1232년)이다.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은 1126년이므로 이 사이에 든다.

  • 광덕, 준풍 연호 사용은 10세기 광종 때로 (가)보다 앞선다.
  • 홍건적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난한 일은 14세기로 (나)보다 뒤다.
  • 서희의 강동 6주 확보는 993년으로 (가)보다 앞선다.
  • 삼별초의 대몽 항쟁은 개경 환도가 결정된 1270년 이후로 (나)보다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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