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한국사] 10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사는 형사취수제는 고구려의 혼인 풍습이다.
- 왕 아래 상가·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각자 사자·조의·선인 같은 관리를 거느렸다.
- 3세기 중엽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으로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었다.
- 양세봉의 지휘로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펼친 것은 남만주의 조선 혁명군이다.
- 중국 호로군과 연합해 동경성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이다.
- 조국 광복회 국내 조직의 도움을 받은 국내 진입 작전은 동북 항일 연군 계열의 보천보 전투이다.
- 실무 기구가 6조이고 왕권에 따라 권한이 강화된 것은 조선의 6조 직계제이며, 고려의 실무 기구는 6부였다.
- 면리제를 실시해 촌락 주민을 통제한 것은 조선의 지방 제도이다.
-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 남귀여가혼의 풍습이 조선 중기까지 이어졌으므로 옳다.
- 일부일처에 첩 허용: 일부일처가 원칙이었지만 남자는 첩을 둘 수 있었고, 첩의 자식은 서얼로 차별받았다.
- 친영제도 정착: 성리학적 종법 질서가 확산된 17세기 이후 혼인 직후 남자 집에서 생활하는 친영제가 자리 잡았다.
- 웰테브레(벨테브레, 박연)는 인조 때인 1627년 표착해 훈련도감에서 서양식 대포 제조를 도왔다.
- 하멜은 효종 때인 1653년 제주도에 표착했고 귀국 후 하멜 표류기를 남겼다.
- 오페르트는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
- 묄렌도르프는 임오군란 이후 1882년 청의 추천으로 외교 고문으로 부임하였다.
- 홍영식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일어난 갑신정변을 주도하였고 정변 실패로 처형되었다.
-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
- 1883년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의 부대표로 미국 우편 제도를 견문하였다.
- 흉년 대비 곡물을 비치하는 사창 제도는 조선에서 시행되었으며, 고려의 빈민 구제 기구는 의창이었다.
- 1결당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를 거둔 것은 세종의 공법(전분 6등·연분 9등)이다.
- 진골 귀족
- 중국 유학
- 양산 통도사
- 황룡사 9층 목탑
- 해동 화엄종을 열고 관음 신앙을 전파한 승려는 의상이다.
- 당의 현장에게 배워 유식학 발전에 기여한 승려는 원측이다.
- 많은 저술로 사상적 대립을 극복하려 한 승려는 원효이다.
- 부농층의 성장: 새로 성장한 부농층이 관권과 결탁해 향안에 이름을 올리며 기존 양반과 대립(향전)하였다.
- 관권 강화: 수령의 권한이 커지면서 실무를 맡은 향리의 역할도 함께 커졌다.
- 향회의 성격 변화: 양반의 이익을 대변하던 향회는 수령이 부세를 정할 때 의견을 묻는 자문 기구로 바뀌었다.
- 이항로가 통상 반대와 척화 주전론을 편 것은 1860년대 서양 세력의 침략기로, 개항 이후 상황을 다룬 자료와 시기가 맞지 않는다.
- 최익현의 오불가소는 개항 직전에 일본과의 통상 자체를 반대한 상소로, 이미 통상이 이루어진 뒤의 상황을 다룬 자료와 다르다.
- 기정진의 대비책은 1860년대 서양 세력의 침입에 대응한 것으로 자료의 시기와 맞지 않는다.
- 눌지 마립간 때 왕위의 부자 상속제가 확립되었다.
- 자비 마립간 때 수도의 방리 명칭을 정하였다.
- 소지 마립간 때 수도 경주에 시장을 열었다.
- 동명왕(주몽)을 천제의 손자로 그려 건국 영웅으로 드높였다.
-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천하에 알리려 하여 고려의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냈다.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를 실시하는 방안을 결정하였다.
- 카이로 회담: 미·영·중 수뇌가 "적당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한 최초의 국제적 약속이다.
-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 임시 정부 수립과 신탁 통치 문제를 협의했으나 결렬되어, 한국 문제는 국제 연합으로 넘어갔다.
- 재조대장경: 고종 때 몽골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려 만든 팔만대장경은 목판으로 새긴 것이다.
- 인종대 금속활자: 인종 때 만든 금속활자가 전해진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의 저자: 『직지심체요절』은 백운화상(경한)이 엮은 것으로, 나옹화상이 아니다.
- 전신: 1885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서로 전신선이 가설되었다(이후 의주까지 연결).
- 전등: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으로 전등이 켜졌다.
- 전차: 1899년 한성 전기 회사가 서대문~청량리 구간에 전차를 운행하였다.
- 등장 배경: 봉수제가 유명무실해지자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등장하였다.
- 종류: 말을 이용한 기발과 사람이 걸어서 전하는 보발로 나뉘었다.
- 노선: 한양을 중심으로 서발·북발·남발의 3대 간선과 이를 잇는 보조 노선이 있었다.
- 교과서와 서적 보급을 위해 태극 서관을 운영하였다.
-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해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세웠다.
- 이승훈이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우는 등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 『동국통감』은 조선 전기 서거정 등이 편찬한 관찬 통사로, 발해를 우리 역사로 다루지 않았다.
- 『동국사략』은 조선 초 권근 등이 성리학적 관점에서 고대사를 정리한 사서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관찬 지리지를 증보한 책으로 남북국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 왕자불간 내자가추(往者不諫來者可追):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나 앞으로의 일은 바로잡을 수 있다는 뜻으로 미래에 충실할 필요성과 맞다.
- 강남종귤 강북위지(江南種橘江北爲枳):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상대방 입장을 헤아릴 필요성과 맞다.
- '관심'은 關心으로 바르게 표기되었다.
- '반영'은 反映으로 바르게 표기되었다.
- '격동시대'는 激動時代로 바르게 표기되었다.
다음은 우리 역사상 존재한 나라에 관한 기록이다.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거리가 먼 것은?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원과 연못이 없어서 계곡을 따라 살며, 골짜기 물을 식수로 마셨다. 좋은 밭이 없어서 힘들여 일구어도 배를 채우기는 부족하였다. …(중략)… 백성들은 노래하며 유희를 즐긴다. 큰 창고는 없고 집집마다 조그만 창고가 있는데 이름을 부경이라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혼인제도의 풍습이 있었다.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책화라고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하였다.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자 자체적으로 관리를 두었다.
3세기 중엽에 중국 세력의 침략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기도 했다.
거리가 먼 설명은 책화로 노비·소·말을 변상하게 한 풍속이다. 책화는 고구려가 아니라 동예의 풍속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살고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를 두었다는 기록으로 이 나라는 고구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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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 ㉠ )에 관련된 단체의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원년(1919)에 정부가 공포한 군사 조직법에 의거하여 … ( ㉠ )을/를 조직하고 …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 …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정신은 불명예스러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무자비한 압박자에 대한 영웅적 항쟁을 계속하여 왔다. … 이때 우리는 큰 희망을 갖고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할 시기가 왔다고 확신한다. … 우리들은 한·중 연합 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민중들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조선 의용대 병력을 일부 흡수하여 조직을 강화하였다.
양세봉의 지휘 하에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다.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동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조국 광복회 국내 조직의 도움을 받아 국내 진입 작전을 시도하였다.
옳은 설명은 조선 의용대 병력 일부를 흡수해 조직을 강화한 것이다. 1942년 김원봉 계열의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합류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군사 조직법에 의거하여' 조직하고 '한·중 연합 전선'에서 항전한다는 성명이므로 ( ㉠ )은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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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서 고려시대의 정치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보기>
ㄱ. 6조는 왕권에 따라 실무처리 권한이 강화되기도 하였다.
ㄴ. 식목도감은 대내적인 법령 문제를 다루는 재추의 회의기관이었다.
ㄷ.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더 많았다.
ㄹ. 면리제를 실시하여 촌락주민에 대한 지배를 원활히 하고자 하였다.
ㄱ, ㄴ
ㄴ, ㄷ
ㄷ, ㄹ
ㄱ, ㄹ
고려의 정치 제도로 옳은 것은 식목도감에 관한 진술과 속현에 관한 진술이다.
식목도감은 도병마사와 함께 재신·추밀이 모이는 고려 독자의 회의 기관으로 대내적 법령·제도를 다루었다. 고려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아 향리가 실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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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혼인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조선 중기까지도 혼인 후에 남자가 여자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있었다.
혼인형태는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하였지만 남자들은 첩을 들일 수 있었다.
17세기 이후에는 혼인하여 곧바로 남자 집에서 생활하는 친영제도가 정착되었다.
여성의 재가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그 소생자식의 사회적 진출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재가한 여성의 자손에게 관직 진출을 제한했으므로, 재가가 자유롭고 그 자식에게 차별이 없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성리학적 윤리가 강화되면서 『경국대전』에 재가녀 자손의 문과 응시와 동반·서반 관직 임용을 막는 규정(재가녀 자손 금고법)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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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접촉한 인물들이다. 그 시기가 빠른 순으로 배열된 것은?
<보기>
ㄱ. 묄렌도르프(Mollendorff)
ㄴ. 하멜(Hamel)
ㄷ. 오페르트(Oppert)
ㄹ. 웰테브레(Weltevree)
ㄴ-ㄹ-ㄷ-ㄱ
ㄴ-ㄹ-ㄱ-ㄷ
ㄹ-ㄴ-ㄷ-ㄱ
ㄹ-ㄴ-ㄱ-ㄷ
시기가 빠른 순서는 웰테브레 → 하멜 → 오페르트 → 묄렌도르프이다.
네 인물의 활동 시기는 조선 중기 표류민 두 명과 흥선 대원군 집권기, 개항 이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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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 ㉠ )에 들어갈 인물과 관련이 없는 것은?
각국과 더불어 통상한 이래 안팎의 관계와 교섭이 날로 늘어나고, 따라서 관청과 상인들이 주고받는 통신이 많아지게 되었다. … (중략)… 우정총국(郵征總局)을 설립하여 연해의 각 항구에서 왕래하는 서신을 관장하고, 내지(內地)의 우편(郵便)도 또한 마땅히 점차 확장하여 공사(公私)의 이익을 거두도록 하라. 병조참판 ( ㉠ )을 우정총판(郵征總辦)으로 뽑고, 그로 하여금 우정총국의 장정(章程)의 마련과 임원의 선정을 보고하여 시행하도록 할 것을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 분부한다.
-일성록, 고종 21년 3월 27일(양력 4월 22일)-
갑신정변
조사시찰단
보빙사
아관파천
관련이 없는 것은 아관파천이다. 아관파천은 1896년의 일로, ( ㉠ ) 인물은 이미 1884년에 죽었다.
'우정총국' 설립과 '우정총판' 임명(고종 21년, 1884)이라는 단서로 ( ㉠ )은 홍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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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서 고려시대의 농민생활과 사회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보기>
ㄱ. 불교의 신앙조직인 향도가 후기부터 향촌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농민조직으로 발전해 갔다.
ㄴ. 양인의 대다수는 농민으로서 백정(白丁)이라고 불렸으며, 이들에게는 조세·공납·역이 부과되었다.
ㄷ. 평시에 곡물을 비치하였다가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사창제도가 실시되었다.
ㄹ. 농민들은 토지에 대한 세금으로 1결당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를 냈다.
ㄱ, ㄴ
ㄴ, ㄷ
ㄷ, ㄹ
ㄱ, ㄹ
고려 농민 생활로 옳은 것은 향도에 관한 진술과 백정 농민에 관한 진술이다.
향도는 매향 활동을 하던 불교 신앙 조직에서 고려 후기 마을 공동체 조직으로 바뀌었고, 고려의 백정은 특정 직역이 없는 일반 농민으로 조세·공납·역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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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제시어와 관련 있는 신라 승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동화엄종을 창설하고 대중들에게 관음신앙을 전파하였다.
대국통이 되어 승정 기구를 정비하고 불교 교단을 총관하였다.
당나라 승려 현장의 제자가 되어 유식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많은 저술을 통해 불교계의 사상적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제시어의 승려는 자장이며, 옳은 설명은 대국통이 되어 불교 교단을 총괄한 것이다.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당에 유학하고 돌아와 선덕 여왕에게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을 건의했으며, 계율을 중시해 '양산 통도사'를 세우고 계단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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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질서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새로운 세력인 부농층은 관권과 결탁하여 성장 기반을 굳건히 하면서 향안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향촌사회에서 중앙의 관권이 강화되고 아울러 관권을 맡아보고 있던 향리의 역할이 커졌다.
양반층은 향촌을 교화하고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향약·향사례·향음주례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양반의 이익을 대변하던 향회는 주로 수령이 세금을 부과할 때 물어보는 자문기구로 구실이 변하였다.
향약·향사례·향음주례를 처음 실시해 향촌을 교화하려 한 것은 조선 전기~중기 사림의 활동이므로 조선 후기의 변화로 보기 어렵다.
조선 후기에는 오히려 양반의 향촌 지배력이 약해지고 수령과 향리 중심의 관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질서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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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에 관련된 인물과 그 주장으로 옳은 것은?
위정척사는 정조 이래로 내려온 조정의 기본 정책으로서 아직도 그 의리가 빛나고 있는데, 고종의 친정 이래로 일본과 서양의 똑같은 해를 모르고 일본과의 통상을 주장해 온 결과 사설(邪說)과 이의(異議)가 횡행하여 조선의 사태가 위급하기 비길 데가 없습니다. 양물(洋物)과 야소(耶蘇)라는 사교의 위세로 공맹(孔孟)의 큰 도는 날로 사라지게 되어 가정에는 윤리가 깨지고 사람에게 예의가 허물어져 그 결과 종묘사직이 무너질 위기에 있습니다. 국왕은 더욱 위정척사의 대의를 밝혀 주화매국(主和賣國)하려는 신료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이항로는 양이(攘夷)와 침범이 국가 존망의 위기를 조성한다고 주장하면서 양물을 배척하고 통상을 반대하였다.
홍재학은 조선책략이 유포되자 정부의 개화정책을 비판하는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
최익현은 일본과의 통상에 반대하여 오불가소(五不可疏)를 올렸다.
기정진은 서양의 경제적 침략에 대한 대비책과 국력배양을 위한 내수론을 제시하였다.
자료와 관련된 인물은 홍재학으로, 『조선책략』 유포 이후 정부의 개화 정책을 비판하는 만언소를 올렸다.
자료는 '고종의 친정 이래로' '일본과의 통상을 주장해 온 결과' 사설과 '야소'가 퍼졌다며 '주화매국'하는 신료를 처단하라고 요구한다.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이 본격화된 1880년대 초의 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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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라에서 최초로 우역이 설치된 기록이다. 그 시대적 상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비로소 사방에 우역(郵驛)을 두고 맡은 관청에 명하여 관도(官道)를 수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왕위의 부자상속제 확립
활발한 정복사업의 전개
수도의 방리(坊里) 명칭 제정
수도에 시장 설치
가장 거리가 먼 것은 활발한 정복 사업의 전개이다. 신라의 본격적인 영토 확장은 6세기 지증왕·법흥왕·진흥왕 때 이루어졌다.
'비로소 사방에 우역을 두었다'는 기록은 5세기 후반 소지 마립간 때의 일로, 이 무렵 신라는 마립간 시기에 왕권을 다지며 수도 정비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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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서술내용과 저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동명왕의 일은 변화가 신비스러운 것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고 실로 나라를 창시한 신기한 사적이다.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聖人)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동명왕을 천제의 손자로 인식하고 영웅으로 드높였다.
신라의 계승의식과 유교적 합리주의를 표방하였다.
고려의 문화적 우위성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다.
저자는 최충과 더불어 해동의 공자라고 자부하였다.
옳지 않은 것은 신라 계승 의식과 유교적 합리주의를 표방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성격이다.
'동명왕의 일'을 '시를 지어 기록'했다는 서문으로 자료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며,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드러낸 영웅 서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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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과 관련된 회담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三相會議)에서 임시정부 수립과 신탁통치안을 결의하였다.
카이로 회담에서 미·영·중의 수뇌들은 적당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독립시킬 것을 처음으로 결의하였다.
포츠담 회담에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및 청구권을 포기하였다.
제 2차 미·소공동위원회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문제를 협의하였으나 결렬되고 말았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며, 포츠담 회담의 내용이 아니므로 옳지 않다.
포츠담 선언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면서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재확인해 한국 독립을 다시 약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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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금속활자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종대에 고금상정예문이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고종대에 해인사의 재조대장경이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인종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가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의 저자는 나옹화상이다.
고려 고종 때 『상정고금예문』(고금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전하므로 옳은 설명이다.
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금속활자 인쇄 기록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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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설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885년 서울과 인천사이에 전신선이 가설되었다.
1887년 경복궁에 처음으로 전등이 점등되었다.
1899년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처음으로 전차가 운행되었다.
1910년 서울에서 초량까지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었다.
서울과 초량(부산)을 잇는 경부선은 1905년에 개통되었으므로, 1910년에 개설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경부선은 러일 전쟁을 전후해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서둘러 완공한 철도이며, 그보다 앞서 경인선(1899)이 최초로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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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통신수단 중 파발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봉수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등장한 통신수단으로 임진왜란 이후 간헐적으로 시행되었다.
말을 사용하여 신속하게 전달하는 기발(騎撥)과 사람의 도보에 의한 보발(步撥)이 있었다.
한양을 중심으로 서발, 북발, 남발 등 3개의 간선망과 그 사이에 보조 노선이 있었다.
파발이 교대하는 참(站)은 대개 보발은 50리마다, 기발은 100리마다 두었다.
파발의 참(站)은 대개 기발이 25리, 보발이 30리마다 두었으므로, 보발 50리·기발 100리라는 설명이 옳지 않다.
파발은 봉수가 제 기능을 못 하던 임진왜란 이후 군사 정보를 빠르게 전하려고 도입한 통신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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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 ㉠ )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무릇 우리 대한인은 내외를 막론하고 통일 연합으로써 그 진로를 정하고 독립 자유로써 그 목적을 세움이니, 이것이 ( ㉠ )이/가 원하는 바이며, ( ㉠ )이/가 품어 생각하는 소이이니, 간단히 말하면 오직 신정신을 불러 깨우쳐서 신단체를 조직한 후에 신국을 건설할 뿐이다.
국내를 중심으로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교과서와 서적 출판보급을 위해 태극서관을 설립하였다.
민족자본육성을 위해 평양에 자기회사를 운영하였다.
정주에 오산학교 등을 세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옳지 않은 것은 국내를 중심으로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는 설명이다. 신민회는 국내에서 실력 양성 운동을 펴고, 무장 투쟁은 국외 독립군 기지(남만주 삼원보 등) 건설로 준비하였다.
'신정신'을 깨우쳐 '신단체'를 조직하고 '신국'을 건설한다는 취지로 ( ㉠ )은 1907년 결성된 비밀 결사 신민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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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밑줄 친 내용과 가장 가까운 역사의식을 지닌 책은?
부여씨와 고씨가 망한 다음에 김씨의 신라가 남에 있고 대씨의 발해가 북에 있으니 이것이 남북국이다. 여기에는 마땅히 남북국의 역사가 있어야 할 터인데 고려가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동국통감
동국사략
대동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밑줄 친 내용과 가장 가까운 역사의식을 지닌 책은 김정호의 『대동지지』이다.
자료는 유득공의 『발해고』로, '김씨의 신라'와 '대씨의 발해'를 묶어 '남북국'이라 부르며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의 영향을 받은 『대동지지』도 고구려·발해의 북방 강역까지 우리 역사 지리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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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와 내포적 의미가 올바르게 연결되지 않은 것은?
行百里者半於九十- 일을 할 때 시작의 중요성
往者不諫來者可追- 미래의 일에 충실할 필요성
江南種橘江北爲枳- 인생에서 성장 환경의 중요성
己所不欲勿施於人-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성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은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서야 절반을 왔다고 여긴다는 뜻으로, 시작이 아니라 끝맺음(마무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일이 끝에 가까울수록 어려우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교훈이므로 "시작의 중요성"과 연결한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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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한자의 표기가 옳지 않은 것은?
요즈음 歷史에 대한 一般人의 ㉠關心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것을 ㉡反映이라도 하듯 과거 ㉢激動時代의 역사적 事件이나 그 시대를 살아간 人物을 素材로 갖가지 영상들이 만들어지고 小說로 쓰여지고 있다. 이들 作品이 傳達하려는 메시지는 긍정적이든 ㉣不正的이든 現實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意味를 던지고 있다.
㉠
㉡
㉢
㉣
표기가 옳지 않은 것은 不正的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의 대구이므로 '그렇지 않다고 함'을 뜻하는 否定的으로 써야 한다.
不正(부정)은 '바르지 않음'을 뜻해 긍정(肯定)과 짝을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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