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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혼인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계리직 한국사] 10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계리직 한국사] 10년 1회차
조선시대 혼인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조선 중기까지도 혼인 후에 남자가 여자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있었다.
2
혼인형태는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하였지만 남자들은 첩을 들일 수 있었다.
3
17세기 이후에는 혼인하여 곧바로 남자 집에서 생활하는 친영제도가 정착되었다.
4
여성의 재가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그 소생자식의 사회적 진출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해설

조선시대에는 재가한 여성의 자손에게 관직 진출을 제한했으므로, 재가가 자유롭고 그 자식에게 차별이 없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성리학적 윤리가 강화되면서 『경국대전』에 재가녀 자손의 문과 응시와 동반·서반 관직 임용을 막는 규정(재가녀 자손 금고법)이 마련되었다.

  •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 남귀여가혼의 풍습이 조선 중기까지 이어졌으므로 옳다.
  • 일부일처에 첩 허용: 일부일처가 원칙이었지만 남자는 첩을 둘 수 있었고, 첩의 자식은 서얼로 차별받았다.
  • 친영제도 정착: 성리학적 종법 질서가 확산된 17세기 이후 혼인 직후 남자 집에서 생활하는 친영제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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