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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계리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 내용에 관련된 인물과 그 주장으로 옳은 것은?
위정척사는 정조 이래로 내려온 조정의 기본 정책으로서 아직도 그 의리가 빛나고 있는데, 고종의 친정 이래로 일본과 서양의 똑같은 해를 모르고 일본과의 통상을 주장해 온 결과 사설(邪說)과 이의(異議)가 횡행하여 조선의 사태가 위급하기 비길 데가 없습니다. 양물(洋物)과 야소(耶蘇)라는 사교의 위세로 공맹(孔孟)의 큰 도는 날로 사라지게 되어 가정에는 윤리가 깨지고 사람에게 예의가 허물어져 그 결과 종묘사직이 무너질 위기에 있습니다. 국왕은 더욱 위정척사의 대의를 밝혀 주화매국(主和賣國)하려는 신료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1
이항로는 양이(攘夷)와 침범이 국가 존망의 위기를 조성한다고 주장하면서 양물을 배척하고 통상을 반대하였다.
2
홍재학은 조선책략이 유포되자 정부의 개화정책을 비판하는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
3
최익현은 일본과의 통상에 반대하여 오불가소(五不可疏)를 올렸다.
4
기정진은 서양의 경제적 침략에 대한 대비책과 국력배양을 위한 내수론을 제시하였다.
해설
자료와 관련된 인물은 홍재학으로, 『조선책략』 유포 이후 정부의 개화 정책을 비판하는 만언소를 올렸다.
자료는 '고종의 친정 이래로' '일본과의 통상을 주장해 온 결과' 사설과 '야소'가 퍼졌다며 '주화매국'하는 신료를 처단하라고 요구한다.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이 본격화된 1880년대 초의 상소이다.
- 이항로가 통상 반대와 척화 주전론을 편 것은 1860년대 서양 세력의 침략기로, 개항 이후 상황을 다룬 자료와 시기가 맞지 않는다.
- 최익현의 오불가소는 개항 직전에 일본과의 통상 자체를 반대한 상소로, 이미 통상이 이루어진 뒤의 상황을 다룬 자료와 다르다.
- 기정진의 대비책은 1860년대 서양 세력의 침입에 대응한 것으로 자료의 시기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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