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한국사] 08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 A층→B층→C층으로 갈수록 늦은 시기이므로 위에 쌓여 지표면에 가깝다는 설명은 옳다.
-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고 농경 정착 생활 속에 취락을 이루었다.
- 철기 시대 유적에서는 세형동검과 잔무늬거울 같은 독자적 청동기가 함께 출토된다.
- 인구를 남녀·연령별 6등급으로 나눈 것은 노동력(역)을 수취 대상으로 파악하려는 목적이다.
- 약 10호 가량의 자연 촌락을 기준으로 행정적으로 편성하였다.
- 뽕나무·잣나무·호두나무와 소·말의 수까지 기록해 나무와 가축도 수취 대상으로 파악하였다.
-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고구려) 국왕을 자처한 것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보여 주는 사실이다.
- 문왕은 당과 친선 관계를 맺고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 등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 발해 유적에서 출토된 온돌 장치와 굴식 돌방무덤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증거이다.
-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따라 기전체로 편찬하였다.
- 『삼국유사』는 일연이 불교사와 고유 설화를 중시하여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 <동명왕편>은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로 고구려 계승 의식을 드러냈다.
- 숙종 때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한 뒤 비를 세운 것은 사실이다.
- 청은 비문의 토문강을 두만강이라고 주장하여 간도가 자국 영토라 하였다.
- 토문강을 송화강 지류로 해석하면 북간도 지역이 조선의 영토가 되므로 조선은 이 해석을 근거로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 선원보략은 왕실의 족보로, 프랑스군 약탈 도서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 승정원일기는 왕명 출납 기록으로 국내에 보존되어 있다.
- 조선왕조실록은 사고에 나누어 보관되었고 외규장각 약탈 도서가 아니다.
- 조선 전기에는 시비법이 발달하여 땅을 묵히지 않고 해마다 경작하는 연작상경이 가능해졌다.
- 조선 전기 남부 일부 지방에는 모내기법이 보급되어 생산량 증대에 기여하였다.
- 세종 때 각 지역 농민의 실제 경험을 모아 우리 실정에 맞는 농서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 『규사』는 서얼들의 역사와 신분 상승 노력을 정리한 책이다.
- 『연조귀감』은 향리의 역사와 인물을 정리하여 향리의 지위를 내세운 책이다.
- 『호산외기』는 조희룡이 중인층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전기집이다.
- 문과 식년시는 초시, 복시, 왕 앞에서 순위를 정하는 전시의 세 단계로 치러졌다.
- 소과(생원·진사시) 합격자는 성균관 입학이나 문과 응시 자격을 얻었고 하급 관리가 되기도 하였다.
- 기술관을 뽑는 잡과는 3년마다 치렀으며 역과·의과·음양과·율과 등 분야별 정원이 정해져 있었다.
- 신기군은 별무반의 기병 부대이다.
- 신보군은 별무반의 보병 부대이다.
- 항마군은 승려로 구성된 별무반의 승병 부대이다.
- 특사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려 국제 여론에 호소하고 국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다는 이유로 만국 평화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였다.
-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 상평통보는 조선 인조 때 처음 주조되었으나, 숙종 이후 상공업 발달에 따라 전국적으로 널리 유통되었으므로 가장 늦다.
- 은병이 저화보다 앞서므로 저화를 은병보다 먼저 놓은 순서는 맞지 않는다.
- 상평통보 유통을 맨 앞에 둔 순서는 조선 후기 사실을 고려보다 앞에 둔 것이어서 틀리다.
- 고려에서는 여성의 재가가 비교적 자유로웠고 재가녀 자식의 사회 진출에도 차별이 적었다.
- 음서의 혜택은 아들뿐 아니라 사위와 외손자에게까지 미쳤다.
- 호적에는 남녀 구분 없이 출생 순서대로 자녀를 기재하였다.
-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양반의 무능과 허위,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풍자하였다.
- 유형원은 신분에 따라 토지를 차등 분배하여 자영농을 육성하자는 균전론을 주장하였다.
-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하였으며 토지 개혁안으로 여전론과 정전제를 제시하였다.
- 화북에서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한 것은 김두봉 등 사회주의 계열이다.
- 조선의용대를 결성한 인물은 김원봉이다.
- 조선혁명군을 이끌고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한 인물은 양세봉이다.
- 어린이날 제정과 『어린이』 잡지 발간은 방정환 등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이다.
- 조선공산당 중심의 사회주의 운동은 형평사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
- 정치적·경제적 각성 촉구와 기회주의 배격은 신간회의 강령이다.
- 1949년에 제정되었으나 개정을 거쳐 이듬해인 1950년에 시행되었다.
- 국가가 지주에게 보상하고 농민은 분배받은 농지 값을 상환하는 유상매입·유상분배 원칙을 적용하였다.
- 산림·임야 등을 제외하고 농지만을 대상으로 하여 무상몰수·무상분배로 진행된 북한의 토지개혁과 차이가 있었다.
-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에서 나온 공동 선언문은 2000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이다.
-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과 직통 전화 가설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때의 합의이다.
- 경의선 철도 복원 사업은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추진되었다.
- 강의는 '옳을 의'를 쓴 講義가 바르며, '의논할 의'를 쓴 講議는 틀린 표기이다.
- 대기명령은 '틀 기'를 쓴 待機命令이 바르며, '기약할 기'를 쓴 待期命令은 틀린 표기이다.
- 사법부는 '관청 부'를 쓴 司法府가 바르며, '거느릴 부'를 쓴 司法部는 틀린 표기이다.
- 杞國憂天(기국우천)은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기우'의 유래이다.
- 牽强附會(견강부회)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을 말한다.
- 囊中之錐(낭중지추)는 뛰어난 인재는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밑줄 친 A, B, C층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A층에서는 돌보습, 돌괭이 등 석기류와 빗살무늬토기가 여러 점 출토되었다. B층에서는 기둥 구멍이 있는 장방형의 주거지에서 반달돌칼, 민무늬토기 등이 다수 발굴되었다. C층에서는 철기로 만든 농기구가 다수 출토되었다.
A층보다는 B층이, B층보다는 C층이 지표면에 가깝다.
A층과 같은 시기의 유적은 주로 내륙의 산지에 분포하고 있다.
B층의 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농경 정착 생활을 하며 취락을 이루었다.
C층과 같은 시기의 유적에서는 세형동검과 잔무늬거울이 출토되었다.
옳지 않은 설명은 신석기 시대(A층) 유적이 주로 내륙 산지에 분포한다는 진술이다.
'빗살무늬토기'로 A층은 신석기, '반달돌칼·민무늬토기'로 B층은 청동기, '철기로 만든 농기구'로 C층은 철기 시대이다. 신석기 유적은 고기잡이와 채집에 유리한 강가나 바닷가에 주로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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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민정문서의 내용을 통해 추론한 통일신라 사회의 모습으로 잘못 된 것은?
민정문서에는 촌의 면적, 호와 인구 수, 전답의 면적, 삼밭, 뽕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소, 말 등의 수효가 기록되어 있다. 호(가구)는 9등급으로 나누고, 인구는 남녀별로 구분하고 연령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였다. 토지의 종류로는 촌주위답, 연수유답, 관모답, 내시령답 등이 있었다. 이들 촌락은 대략 10호 가량의 자연 촌락을 기준으로 편성된 것이었으며, 이러한 촌락 다수를 관할하는 촌주의 존재가 보인다. 이 문서에 담긴 내용은 매 3년마다 조사하여 보고되었다.
노동력이 국가의 주요 수취 대상이었다.
자연 촌락의 기반 위에 행정촌을 편제하였다.
나무와 가축도 국가 수취 대상으로 파악되었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에 의해 직접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잘못된 추론은 촌락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에게 직접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료에 '촌락 다수를 관할하는 촌주'가 보이듯, 신라의 촌락은 지방 유력자인 촌주를 통해 관리되었고 중앙 관리가 촌락까지 직접 내려가 다스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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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국왕임을 자처하였다.
문왕 때에는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체제를 정비하였다.
무왕 때에는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지역으로 진출하여 해동성국이라 불리었다.
발해 유적지에서는 온돌 장치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되었다.
발해가 해동성국이라 불린 것은 무왕 때가 아니라 선왕 때이므로, 무왕 때 해동성국이라 불렸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무왕은 영토 확장과 함께 당의 산둥 지방(등주)을 공격하는 등 당과 대립하였고, 선왕은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요동 지역까지 진출하여 최대 영역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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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역사서의 편찬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제왕운기』는 고려 초의 구삼국사를 기본으로 하여 중국 중심 사상을 극복하였다.
『삼국유사』는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고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다루었다.
<동명왕편>은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 고구려의 전통을 중시하였다.
구삼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제왕운기』가 아니라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므로, 『제왕운기』에 대한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중국사와 우리 역사를 나누어 서술하고 우리 역사를 단군에서 시작하여 중국과 대등한 독자적 역사로 파악한 서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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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와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청나라 사람의 계속되는 국경 침범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 측에서 청나라에 요청하여 국경을 심사하였다.
숙종 때 조선과 청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한 뒤 세웠다.
청나라는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동쪽 경계인 토문강을 두만강이라고 주장하였다.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을 송화강 지류로 해석하면 북간도 지역은 조선의 영토가 된다.
백두산정계비는 조선의 요청이 아니라 청의 주도로 국경을 조사하여 세운 것이므로, 조선이 청에 요청하였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숙종 때 청은 목극등을 파견하여 조선 관리와 함께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게 하고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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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이 도서’로 옳은 것은?
1866년 로즈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극동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고 조선 정부에 대해 프랑스 신부 살해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의 체결을 요구하였다. 조선 정부는 40여 일 간의 군사적 대응 끝에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 그러나 강화도의 행궁과 외규장각 등이 불타고 대규모의 약탈도 자행되었다. 이 도서는 이 때 프랑스 함대에 의해 약탈되어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원보략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 의궤
밑줄 친 도서는 조선왕조 의궤이다.
'1866년 로즈 제독', '외규장각' 약탈이라는 단서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임을 알 수 있다. 의궤는 왕실 행사의 절차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책으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고,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 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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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농업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견종법이 널리 보급되어 노동력을 절감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시비법이 발달하여 경작지를 묵히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남부지방에 모내기법이 보급되어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여러 지역 농민들의 실제 경험을 수집하여 정리한 『농사직설』이 편찬되었다.
밭고랑에 씨를 뿌리는 견종법이 널리 보급되어 노동력을 절감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므로 조선 전기 농업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다.
조선 후기에는 이앙법과 견종법의 확산으로 노동력이 절감되면서 광작이 성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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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중인과 서얼 층의 성장과 더불어 이른바 위항인(委巷人)들의 문학 활동이 활발해진다. 다음 중 위항인들의 작품이 아닌 것은?
규사(葵史)
대동야승(大東野乘)
연조귀감(?曹龜鑑)
호산외기(壺山外記)
『대동야승』은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야사·일화를 모은 총서로, 위항인(중인·서얼·향리)의 활동과 관련된 작품이 아니다.
조선 후기 신분 상승 운동과 함께 중인·서얼·향리층은 자신들의 역사와 인물을 정리한 전기·역사서를 편찬하여 존재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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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 대한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은?
문과 식년시는 초시와 복시, 왕 앞에서 실시하는 전시 등의 세 단계로 치러졌다.
무과도 문과와 같은 절차를 거쳐 치르는데 최종 선발 인원은 33명이었다.
소과 합격자는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하급 관리가 되기도 하였다.
기술관을 뽑는 잡과는 3년마다 치렀으며 분야별로 규정된 인원이 있었다.
최종 선발 인원이 33명인 것은 문과이며, 무과의 최종 선발 인원은 28명이므로 무과에 대한 설명이 옳지 않다.
무과도 문과처럼 초시·복시·전시의 단계를 거쳤으나 선발 인원은 문과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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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여진족을 정벌하기 위해 편성된 부대가 아닌 것은?
신기군(神騎軍)
신보군(神步軍)
신의군(神義軍)
항마군(降魔軍)
신의군은 몽골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사람들로 구성된 부대로, 좌별초·우별초와 함께 삼별초를 이루었으며 여진 정벌 부대가 아니다.
여진 정벌을 위해서는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이 편성되었고, 이후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 9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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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우표에서 기념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국제 여론에 호소하여 국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황국협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출국하였다.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적절하지 않은 설명은 특사가 황국협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출국하였다는 것이다.
우표의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문구로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이준·이상설·이위종은 고종의 밀명을 받고 파견되었으며, 황국협회는 1898년 독립협회를 탄압하던 보부상 중심 단체로 특사 파견과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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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고려와 조선시대 화폐의 사용과 관련된 것이다. 시대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철전인 건원중보를 썼다.
ㄴ. 종이 화폐인 저화가 발행되었다.
ㄷ. 우리나라 지형을 본뜬 은병(활구)을 만들어 썼다.
ㄹ. 상공업의 발달에 따라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되었다.
ㄱ-ㄷ-ㄴ-ㄹ
ㄴ-ㄱ-ㄹ-ㄷ
ㄷ-ㄹ-ㄱ-ㄴ
ㄹ-ㄷ-ㄴ-ㄱ
시대 순서는 건원중보 → 은병(활구) → 저화 → 상평통보이다.
고려 성종 때 철전인 건원중보를 만들었고, 숙종 때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두어 은병을 만들었다. 저화는 고려 말 공양왕 때 처음 발행되고 조선 태종 때 다시 발행된 종이 화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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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회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여성의 재가는 별 문제 없이 행하여졌다.
사위와 외손자에게까지 음서의 혜택이 있었다.
출생 순서대로 호적에 기재하여 남녀의 차별을 하지 않았다.
고려 초 왕실에서 성행하였던 친족 간의 혼인 풍습은 중기 이후에 사라졌다.
고려 왕실의 친족 간 혼인(근친혼)은 중기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므로, 중기 이후 사라졌다는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원 간섭기에 충선왕이 왕실 근친혼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으나 풍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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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각 실학자들의 주장 내용이 잘못 연결된 것은?
박지원 :<양반전>을 저술하여 양반 중심 문벌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유득공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유형원 : 자영농 육성을 위한 토지제도의 개혁안으로 균전론을 주장하였다.
정약용 : 실학을 집대성하였으며 토지제도 개혁론으로 여전론과 정전제 등을 주장하였다.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힌 인물은 유득공이 아니라 김정희이므로 잘못 연결되었다.
유득공은 『발해고』를 지어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다루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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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고를 남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독립이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화북지역에서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의용대를 결성하여 대일 전선에 참가하였다.
조선혁명군을 이끌고 영릉가 전투에 참가하였다.
개정임시헌법에 따라 임시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회고의 인물은 김구이며, 개정 임시헌법에 따라 임시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다'는 구절은 김구의 「나의 소원」(백범일지)에 나온다. 1940년 충칭에서 임시정부가 헌법을 고쳐 주석 중심 체제를 채택하면서 김구가 주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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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언과 관련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인 인류의 본령이다. 그런 고로 우리들은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여 교육을 장려하며 우리들도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을 기하고자 한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고『어린이』잡지를 발간하였다.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백정의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운동을 일으켰다.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하며 기회주의를 배격하였다.
선언은 조선 형평사의 취지문이며, 이 단체는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형평운동을 일으켰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라는 구절은 1923년 진주에서 결성된 형평사가 백정의 평등한 대우를 내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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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제정된 농지개혁법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제정 즉시 시행되지 못하고 이듬해인 1950년에 시행되었다.
유상매입, 유상분배의 원칙을 적용하여 농지를 재분배하였다.
토지 소유의 상한선이 규정되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경작지만을 대상으로 한 점에서 1946년 시행된 북한의 토지개혁과 차이가 있었다.
농지개혁법은 가구당 소유 상한을 3정보로 규정하였으므로, 토지 소유 상한선이 규정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3정보를 넘는 농지와 부재지주의 농지를 국가가 사들여 농민에게 나누어 주는 유상매입·유상분배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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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와 관련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천명된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대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최초로 남북한 정상이 만나 합의한 공동 선언문이다.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등 화해 분위기가 배경이 되었다.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고 직통 전화를 가설하기로 하였다.
경의선 철도 복원 사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료는 노태우 정부 때 채택된 남북 기본 합의서이며,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 화해 분위기가 배경이 되었다.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천명된 3대 원칙을 재확인',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대목이 단서이다.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뒤 같은 해 12월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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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한자어의 한자 표기가 올바른 것은?
납부금(納付金)
강의(講議)
대기명령(待期命令)
사법부(司法部)
세금이나 공과금 따위를 내는 돈을 뜻하는 납부금은 納付金으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르다.
나머지는 뜻에 맞지 않는 한자를 쓴 것으로, 각각 바른 표기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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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국 춘추 시대 말기의 법치주의자인 한비자에 관한 내용이다. ( )에 들어갈 故事成語로 알맞은 것은?
한비자(韓非子)는 요(堯)·순(舜)을 이상으로 하는 王道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시대의 변천은 돌고 돌거나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므로, 이상적인 과거로 돌아가려는 復古主義는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낡은 관습을 지키며 융통성 없이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람을 ( )에 비유하였다.
杞國憂天
牽强附會
囊中之錐
守株待兎
빈칸에 들어갈 고사성어는 守株待兎(수주대토)이다.
『한비자』 오두 편에서 우연히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얻은 농부가 일을 그만두고 그루터기만 지키며 토끼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로, 낡은 관습에 얽매여 융통성 없는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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