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1[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자료>가 수록된 고려시대의 역사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자 료 >
    웅(雄)은 천부인 3개를 받고 귀신 3,000명을 데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를 일러 단웅천왕이라 하였다. (단웅천왕은) 손녀(孫女)에게 약을 먹게 하여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하여 남자아이를 낳게 하니,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다.
    1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외기」편에 수록하였다.
    2
    불교적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3
    고조선에서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운문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4
    신라의 역사를 상대·중대·하대로 나누어 인식하였다.
    5
    합리주의 유교사관에 따라 기전체로 편찬하였다.
    해설

    자료의 역사서는 이승휴의 『제왕운기』로,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운문으로 서술하였다.

    ‘단웅천왕’,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 ‘단수신’과의 혼인이 『제왕운기』의 단군 기사에 나오는 단서이다.

    • 「외기」편에 단군의 건국을 수록한 것은 조선 시대의 『동국통감』이다.
    • 불교적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정리한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 신라사를 상대·중대·하대로 구분한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이다.
    • 합리주의 유교사관에 따른 기전체 역사서도 『삼국사기』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저서의 저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백두산 천지, 이순신의 철갑구선, 금강산, 을사조약 이후 순국한 인물 등의 삽화가 수록되었다.
    ◦고종 즉위부터 105인 사건 발생까지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1915년 상하이에서 출간되었다.
    1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활동하였다.
    2
    「조선혁명선언」을 저작하였다.
    3
    역사의 발전 동력을 조선의 얼에서 찾고자 하였다.
    4
    『조선민족사개론』을 저술하였다.
    5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해설

    저서는 『한국통사』이고, 저자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냈다.

    ‘1915년 상하이’ 출간, 고종 즉위부터 ‘105인 사건’까지 다룬 범위가 『한국통사』를 가리키는 단서이다.

    • 「조선혁명선언」은 신채호가 의열단의 요청으로 작성하였다.
    • 조선의 ‘얼’을 역사의 동력으로 본 인물은 정인보이다.
    • 『조선민족사개론』은 손진태의 저술이다.
    • 신간회는 1927년에 창립되었으므로 그 전에 세상을 떠난 박은식은 참여할 수 없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3[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ㄱ∼ㄹ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우역을 설치하고 관도를 수리하였다.
    ㄴ.순장을 금지하고 상복법(喪服法)을 제정·반포하였다.
    ㄷ.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ㄹ.왕자 복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1
    ㄱ → ㄹ → ㄴ → ㄷ
    2
    ㄴ → ㄹ → ㄱ → ㄷ
    3
    ㄷ → ㄹ → ㄱ → ㄴ
    4
    ㄹ → ㄱ → ㄴ → ㄷ
    5
    ㄹ → ㄴ → ㄱ → ㄷ
    해설

    시기 순서는 ㄹ → ㄱ → ㄴ → ㄷ이다.

    네 사건은 모두 신라의 일로, 실성왕 → 소지 마립간 → 지증왕 순으로 이어진다.

    • ㄹ. 왕자 복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것은 실성왕 때인 412년이다.
    • ㄱ. 우역 설치와 관도 수리는 소지 마립간 때인 487년이다.
    • ㄴ. 순장 금지는 502년, 상복법 제정은 504년으로 지증왕 때이다.
    • ㄷ.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지증왕 때인 512년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4[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황제께서 이미 대병(大兵)으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포위하고는, 또 한 무리의 군대에게 명하여 ㉡강화도(江華島)를 함락시켜 궁빈(宮嬪)과 왕자(王子) 및 여러 신하의 가족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는데, 황제께서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해를 입히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시종하는 관리와 내시들로 하여금 간호(看護)하게 하셨다. 이윽고 크게 은전(恩典)을 베풀어 ㉢작은 나라의 임금과 신하 및 사로잡혔던 권속(眷屬)들이 모두 옛 장소로 돌아가게 되니, 서리와 눈이 변하여 봄 햇볕이 되고 가뭄이 단비가 된 듯, 나라가 거의 망했다가 다시 살아나고, 종사(宗社)가 거의 끊어졌다가 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동쪽 땅 수천 리에 두루 출생과 성장하는 은택(恩澤)을 입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예로부터 드물게 보는 일이라 하겠다. 아아, 훌륭하도다.
    1
    ㉠:성을 건설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가 남아있어 복원이 가능했다.
    2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관련된 용장성 유적이 남아있다.
    3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한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4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을 단행하였다.
    5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즉위하였다.
    해설

    ㉢은 조선 인조이며, 그는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으로 즉위하였다.

    병자호란 뒤 청의 공덕을 기린 삼전도비의 글로, 남한산성 포위와 강화도 함락, 항복한 ‘작은 나라의 임금’이 단서이다.

    • 성 건설 과정을 기록한 의궤가 남아 복원에 활용된 곳은 남한산성이 아니라 수원 화성이다.
    • 용장성은 삼별초가 항쟁한 진도의 유적으로, 강화도에 있지 않다.
    • 팔만대장경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 나선 정벌은 인조가 아니라 효종 때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5[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공민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 보 기 >
    ㄱ.정치 개혁을 위해 임시 기구인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ㄴ.호복을 폐지하고 태조 왕건 때의 복식을 회복하였다.
    ㄷ.왕권 강화와 신변 보호를 위해 자제위를 설치하였다.
    ㄹ.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청천강 이북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ㅁ.신돈의 건의로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1
    ㄱ, ㄹ
    2
    ㄴ, ㄹ
    3
    ㄴ, ㅁ
    4
    ㄷ, ㅁ
    5
    ㄹ, ㅁ
    해설

    공민왕에 대한 옳은 설명은 ㄷ, ㅁ이다.

    공민왕은 자제위를 두어 왕권을 뒷받침하였고, 신돈의 건의로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두 지문을 함께 포함한 조합은 하나뿐이다.

    • ㄱ. 정치도감은 충목왕 때 설치된 개혁 기구이다.
    • ㄴ. 호복 폐지는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지만, 태조 왕건 때의 복식을 회복했다는 서술은 옳지 않다.
    • ㄹ. 쌍성총관부 공격으로 되찾은 곳은 청천강 이북이 아니라 철령 이북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6[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인물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은/는 장군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등주를 공격하게 하였다. 당은 급히 유주의 군사를 징발해 발해를 공격하려 하였다. 그리고 김사란을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 발해의 남쪽을 공격하도록 요청하였다.
    1
    상경으로 천도하였다.
    2
    국호를 진국에서 발해로 바꾸었다.
    3
    인안(仁安)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4
    5경 15부 62주의 제도를 완비하였다.
    5
    당에 왕자를 보내 신라 사신보다 윗자리에 앉을 것을 요청하였다.
    해설

    ㉠은 발해 무왕이며,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장군을 보내 ‘등주’를 공격하게 하고, 당이 ‘김사란’을 신라에 보내 발해 공격을 요청한 내용이 단서이다.

    • 상경 천도는 문왕 때의 일이다.
    • 진국에서 발해로 국호를 바꾼 것은 건국자인 고왕 때이다.
    • 5경 15부 62주의 제도는 선왕 때 완비되었다.
    • 왕자가 신라 사신보다 윗자리를 요청한 쟁장 사건은 9세기 말의 일로, 무왕 때가 아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7[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는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릴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조정으로 나가서, 위로는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구세력의 비방도 막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도학을 실천하고자 왕에게 왕도의 철학을 이행하도록 간청하기는 하였지만 비방하려는 입이 너무 많아 비방하는 입이 한 번 열리자 결국 몸이 죽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였으니, 후세 사람들에게 행적이 경계가 되었다.
    - 『석담일기』 -
    1
    『성학집요』, 『동호문답』 등을 저술하였다.
    2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조의제문을 지었다.
    3
    백운동서원에 사액을 내려줄 것을 건의하였다.
    4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여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5
    내수사 장리 폐지와 소격서 혁파를 주장하였다.
    해설

    ‘그’는 조광조로, 내수사 장리 폐지와 소격서 혁파를 주장하였다.

    이이가 『석담일기』에서 ‘도학’ 실천을 왕에게 간청했으나 구세력의 비방으로 ‘몸이 죽었다’고 평한 것이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를 가리킨다.

    • 『성학집요』와 『동호문답』은 이 글을 쓴 이이의 저술이다.
    • 조의제문을 지어 무오사화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은 김종직이다.
    • 백운동서원의 사액을 건의한 인물은 이황이다.
    • 주자의 학설을 비판해 사문난적으로 몰린 인물은 윤휴, 박세당 등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8[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정책이 실시된 배경으로 옳지 않은 것은?
    양역의 폐단이 심하여 백성들이 살 수 없을 지경이니 이제 군포를 영구히 1필로 감한다. 이 때문에 부족해진 재정은 어장과 선박에 대한 세금을 국가에서 직접 거두고 선무군관에게서 포(布) 1필씩 거두어 보충하도록 한다.
    1
    결작의 부담이 소작 농민에게 전가되었다.
    2
    공명첩을 매입하여 양반이 되는 농민이 늘어났다.
    3
    군영과 감영, 병영에서 독자적으로 군포를 징수하였다.
    4
    이웃과 친족의 군역 부담을 대신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5
    군역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여 유망하는 농민이 많아졌다.
    해설

    자료의 정책은 영조의 균역법이다. 결작 부담의 전가는 균역법 시행 이후의 문제이므로 배경이 될 수 없다.

    군포를 ‘1필로 감’하고 ‘어장과 선박’ 세금, ‘선무군관’ 포로 재정을 보충한다는 내용이 단서이다. 결작도 이때 줄어든 재정을 메우려 도입되었다.

    • 공명첩을 사서 양반이 되는 농민이 늘자 군포를 낼 사람이 줄어든 것은 배경에 해당한다.
    • 여러 군영과 감영, 병영이 각각 군포를 거두어 농민의 부담이 커진 것도 배경이다.
    • 이웃과 친족이 군역을 대신 떠안는 폐단도 배경이다.
    • 군역 부담을 견디지 못한 농민의 유망도 배경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9[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개항기 조선이 일본과 체결한 조약·규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 보 기 >
    ㄱ.조일무역규칙은 조선에서 일본인의 양곡 유출을 금지하였다.
    ㄴ.조일무역규칙은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규정하였다.
    ㄷ.조일수호조규 부록은 일본인의 재판 시 조선의 국내법만을 적용하는 영사재판권을 규정하였다.
    ㄹ.조일수호조규는 청의 간섭을 차단하고자 조선을 자주 국가로 명시하였다.
    ㅁ.조일수호조규 부록은 일본인이 조선에서 일본 화폐를 이용할 수 있게 규정하였다.
    1
    ㄱ, ㄴ, ㅁ
    2
    ㄱ, ㄷ, ㅁ
    3
    ㄴ, ㄷ, ㄹ
    4
    ㄴ, ㄹ, ㅁ
    5
    ㄷ, ㄹ, ㅁ
    해설

    옳은 설명은 ㄴ, ㄹ, ㅁ이다.

    조일수호조규는 조선을 자주국으로 명시했고, 부록과 조일무역규칙은 일본의 경제 침투를 뒷받침하는 조항을 담았다.

    • ㄱ(X). 조일무역규칙은 양곡 유출을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무제한 유출을 허용하였다.
    • ㄴ(O). 조일무역규칙에 따라 수출입 상품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다.
    • ㄷ(X). 영사재판권은 부록이 아니라 조일수호조규 본 조약에 규정되었고, 일본 영사가 일본 법으로 재판하는 내용이다.
    • ㄹ(O). 조일수호조규는 조선을 자주국으로 명시해 청의 종주권을 부정하려 하였다.
    • ㅁ(O). 부록은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0[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ㄱ∼ㄹ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대한국 국제 선포
    ㄴ.나철 등의 대종교 창시
    ㄷ.헤이그 특사 파견
    ㄹ.대한제국 군대 해산
    1
    ㄱ → ㄷ → ㄴ → ㄹ
    2
    ㄱ → ㄷ → ㄹ → ㄴ
    3
    ㄱ → ㄹ → ㄷ → ㄴ
    4
    ㄴ → ㄷ → ㄱ → ㄹ
    5
    ㄷ → ㄴ → ㄱ → ㄹ
    해설

    시기 순서는 ㄱ → ㄷ → ㄹ → ㄴ이다.

    대한제국 초기의 국제 선포에서 시작해 1907년의 두 사건을 거쳐 대종교 창시로 이어진다.

    • ㄱ. 대한국 국제 선포는 1899년이다.
    • ㄷ. 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으로, 군대 해산보다 앞선다.
    • ㄹ. 대한제국 군대 해산은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강제 퇴위된 뒤인 1907년이다.
    • ㄴ. 나철 등이 단군 신앙을 내세워 대종교를 창시한 것은 1909년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1[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사건이 일어난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도적이 나라의 서남쪽에서 일어났다. 바지를 붉은색으로 입어 스스로 차이를 드러냈다. 사람들이 그들을 적고적(赤袴賊)이라고 불렀다. 주현(州縣)의 백성을 죽이고 해쳤는데, 왕경 서부의 모량리까지 와서 민가를 노략질하고 돌아갔다.
    1
    김요가 반란을 일으켰다.
    2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
    3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4
    대공과 대렴이 반란을 일으켰다.
    5
    최치원이 시무책 십여 조를 건의하였다.
    해설

    적고적이 활동한 왕은 신라 진성여왕이며, 이때 최치원이 시무책 십여 조를 건의하였다.

    붉은 바지를 입은 ‘적고적’이 왕경 서부 ‘모량리’까지 침범한 것은 신라 하대 진성여왕 때의 일이다.

    • 김요의 반란은 진성여왕 바로 앞 왕인 정강왕 때의 일이다.
    • 김헌창의 반란은 헌덕왕 때의 일이다.
    •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는 흥덕왕 때의 일이다.
    • 대공과 대렴의 반란은 혜공왕 때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2[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신분 ㉠의 조선 전기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의 자손들이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것은 우리나라의 옛법이 아니다. …… 그런데 『경국대전』을 편찬한 뒤로부터 금고를 가하기 시작하였으니 아직 백 년도 채 되지 못한다. …… 양반 사대부의 자식으로서 다만 외가가 미천하다는 이유만으로 대대로 금고하여 비록 훌륭한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끝내 머리를 숙이고 시골에서 그대로 죽어 향리나 수군만도 못하니 참으로 가련하다.
    - 『패관잡기』 -
    1
    일부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진출하였다.
    2
    관직 진출을 위해 통청운동을 전개하였다.
    3
    무과와 잡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4
    지방 수령의 업무를 보좌하며 직역을 세습하였다.
    5
    단안이라는 명부를 만들어 위계와 조직을 관리하였다.
    해설

    ㉠은 서얼이며, 조선 전기의 서얼은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으나 무과와 잡과에는 응시할 수 있었다.

    ‘양반 사대부의 자식’이면서 ‘외가가 미천’하다는 이유로 『경국대전』 이후 금고되었다는 내용이 서얼을 가리키는 단서이다.

    • 규장각 검서관 진출은 정조 때의 일로 조선 후기에 해당한다.
    • 통청운동도 조선 후기 서얼의 신분 상승 운동이다.
    • 수령을 보좌하며 직역을 세습한 것은 향리이다.
    • 단안은 향리의 명부로, 서얼과 관련이 없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3[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왕의 이름은 경신으로 나물왕의 12세손이다. 선덕왕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자 여러 신하가 회의하여 왕의 조카 주원을 옹립하고자 하였다. 주원의 집은 서울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는데, 마침 큰비가 와서 알천의 물이 넘쳤으므로 주원은 왕궁으로 오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왕은 큰 자리라 진실로 사람이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갑자기 비가 쏟아진 것은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상대등 경신은 전왕의 동생으로 평소 덕망이 높고 왕의 자질이 있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의 뜻이 모아져 경신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니 나라 사람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1
    패강장성을 축조하였다.
    2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3
    성덕대왕 신종을 조성하였다.
    4
    주·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5
    서원소경을 설치하였다.
    해설

    밑줄 친 왕은 신라 원성왕이며, 이 왕 때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었다.

    이름이 ‘경신’이고, 선덕왕 사후 ‘알천’이 넘쳐 ‘주원’이 오지 못하자 상대등 경신이 즉위했다는 내용이 단서이다.

    • 패강장성 축조는 헌덕왕 때의 일이다.
    • 성덕대왕 신종은 경덕왕 때 시작되어 혜공왕 때 완성되었다.
    • 주·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꾼 왕은 경덕왕이다.
    • 서원소경 설치는 신문왕 때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4[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사건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왕이 직접 정예 기병 5천 명을 이끌고 가서 공산의 동수에서 견훤을 요격하였으나 불리하였다. 견훤의 병사들이 왕을 에워싸서 매우 위급한 상황이 되자 대장 신숭겸과 김락이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전군이 패배하였고 왕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 『고려사』 -
    1
    왕건이 연호를 천수로 정하였다.
    2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후백제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3
    궁예가 금성을 점령하고 나주로 개칭하였다.
    4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살해하였다.
    5
    고려가 수도를 철원에서 송악으로 옮겼다.
    해설

    자료는 927년의 공산 전투이며, 이후의 사실은 930년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후백제군을 격퇴한 일이다.

    왕건이 ‘공산의 동수’에서 견훤에게 패하고 ‘신숭겸’과 ‘김락’이 전사했다는 내용이 단서이다.

    • 왕건이 연호를 천수로 정한 것은 고려를 세운 918년이다.
    • 궁예 세력의 금성 점령과 나주 개칭은 후고구려 시기인 10세기 초의 일이다.
    • 견훤의 경애왕 살해는 공산 전투 직전의 일로, 왕건은 신라를 구원하러 가다가 공산에서 패하였다.
    • 철원에서 송악으로의 천도는 919년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5[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종 12년(1225)에 최우(崔瑀)가 자기 집에 ㉠을/를 설치하고 모든 관리의 평가와 등용을 맡게 하였다. 이를 위해 문사(文士)를 선발하여 ㉠에 속하게 하고 필자적(必者赤)이라고 불렀다.
    1
    본래 장군들의 회의기구였다.
    2
    장관은 교정별감이라고 하였다.
    3
    경대승이 처음으로 조직화하였다.
    4
    직제로서 정색승선, 정색상서 등이 있었다.
    5
    문인들을 3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숙위하게 하였다.
    해설

    ㉠은 정방으로, 정색승선·정색상서 등의 직제를 두었다.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해 ‘모든 관리의 평가와 등용’을 맡겼다는 내용이 인사 기구인 정방을 가리키는 단서이다.

    • 본래 장군들의 회의 기구였던 것은 중방이다.
    • 교정별감을 장관으로 둔 기구는 교정도감이다.
    • 경대승이 처음 조직한 것은 도방이다.
    • 문인들을 나누어 교대로 숙위하게 한 기구는 서방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6[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세계 경제 공황으로 어려움을 겪은 일본 내에서는 군부의 세력이 커졌으며,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군부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였다. 이어서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대륙을 침략하였고,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은 후 미국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 보 기 >
    ㄱ.김좌진과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과 싸워 이겼다.
    ㄴ.조선혁명군과 중국 의용군이 힘을 합쳐 영릉가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ㄷ.의열단의 나석주 의사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 기관을 공격하였다.
    ㄹ.한국독립군은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은 ㄴ, ㄹ이다.

    만주사변은 1931년에 일어났고, 이후 한·중 연합 작전이 활발해졌다. 따라서 1931년 이후의 사건만 해당한다.

    • ㄱ(X). 김좌진과 홍범도의 청산리 전투는 1920년으로 만주사변 이전이다.
    • ㄴ(O).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연합해 1932년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 ㄷ(X). 나석주의 의거는 1926년으로 만주사변 이전이다.
    • ㄹ(O). 지청천의 한국독립군은 중국 호로군과 연합해 1932년 쌍성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7[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과 같은 통치가 행해진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친일 인사를 귀족, 양반, 부호, 실업가, 교육가, 종교인 등에 침투시켜 각종 친일 단체를 조직하게 하였다.
    ◦조선인 부호들을 민중과 대립하게 하고, 이들에게 일본 자본을 공급하여 친일화하였다.
    ◦도평의회 제도를 실시하였다.

    < 보 기 >
    ㄱ.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ㄴ.순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ㄷ.복벽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독립의군부가 조직되었다.
    ㄹ.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었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5
    ㄷ, ㄹ
    해설

    자료의 통치는 1920년대 문화 통치이며, 이 시기의 사실은 ㄱ, ㄴ이다.

    친일 단체 조직을 통한 민족 분열 공작과 ‘도평의회’ 제도가 3·1 운동 이후 문화 통치의 단서이다.

    • ㄱ(O).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1923년이다.
    • ㄴ(O). 순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한 6·10 만세 운동은 1926년이다.
    • ㄷ(X). 대한독립의군부는 1910년대 초 임병찬이 조직하였다.
    • ㄹ(X). 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의 일로 민족 말살 통치기에 해당한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8[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밑줄 친 ‘이 법’의 시행 결과로 옳은 것은?
    선조 때 이이가 수미법을 시행하기를 청하였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우의정 유성룡도 역시 미곡을 거두는 것이 편리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일이 모두 성취되지 못하였다. 선조 41년(1608)에 이르러 좌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이 법을 비로소 시행하여, 민결(民結)에서 미곡을 거두어 서울로 옮기게 했다.
    1
    담당 기구로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2
    공납을 현물로 징수하는 폐단이 사라졌다.
    3
    토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들의 부담이 늘어났다.
    4
    사주인들이 공물을 대납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5
    환곡제를 폐지하고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해설

    ‘이 법’은 대동법이며, 토지 결수에 따라 부과되어 토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의 부담이 늘어났다.

    ‘수미법’ 논의를 이어 ‘이원익’의 건의로 시행되었고, ‘민결’에서 미곡을 거둔다는 내용이 단서이다.

    • 대동법의 담당 기구는 선혜청이며, 삼정이정청은 임술 농민 봉기 때 설치되었다.
    • 별공과 진상이 남아 있어 공납의 현물 징수 폐단이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 사주인 등의 방납 폐단을 줄이려는 것이 대동법의 목적이었고, 이후 공인이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게 되었다.
    • 환곡제를 폐지하고 사창제를 실시한 것은 대동법과 무관한 후대의 개혁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19[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6·25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 보 기 >
    ㄱ.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였다.
    ㄴ.미국, 중국, 남한, 북한 대표가 휴전협정서에 조인하였다.
    ㄷ.중국은 유엔군의 38도선 북상 후 참전을 결정하였다.
    ㄹ.대만과 필리핀도 한국과 함께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되었다.
    1
    ㄱ, ㄴ
    2
    ㄱ, ㄷ
    3
    ㄴ, ㄹ
    4
    ㄱ, ㄴ, ㄷ
    5
    ㄱ, ㄷ, ㄹ
    해설

    6·25 전쟁에 대한 옳은 설명은 ㄱ, ㄷ이다.

    휴전 협정의 조인 주체와 애치슨 라인의 범위를 정확히 구분하면 판정할 수 있다.

    • ㄱ(O).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의하였다.
    • ㄴ(X). 휴전 협정은 유엔군 사령관, 북한군 사령관,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 명의로 조인되었고 남한 대표는 서명하지 않았다.
    • ㄷ(O). 중국은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자 참전을 결정하였다.
    • ㄹ(X). 대만은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되었으나 필리핀은 방위선에 포함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20[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다음 선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1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2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표방하였다.
    3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최초로 만나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4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한 공동선언 발표의 배경이 되었다.
    5
    남북 화해 협력과 상호불가침의 원칙을 처음으로 문서화하였다.
    해설

    자료는 2000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으로,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 만나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 해결, ‘연합제 안’과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의 공통성 인정이 단서이다.

    •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은 1991년으로 이 선언보다 앞선다.
    •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통일 3원칙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의 내용이다.
    •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도 1991년에 나와 이 선언보다 앞선다.
    • 화해 협력과 상호 불가침을 문서화한 것은 1991년의 남북 기본 합의서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메모
    아직 메모가 없어요. 위 버튼으로 첫 메모를 남겨보세요.

[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정답과 해설은 무료인가요?

이 페이지의 20문항 정답과 해설은 로그인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무제한 풀이·실전 모의고사·PDF 출력·전자책 다운로드는 베이직 플랜에 포함됩니다.

이 회차를 CBT 로 직접 풀어볼 수 있나요?

국회직 9급 한국사 기출문제 암기장에서 이 회차를 회차별·랜덤으로 풀고 오답노트에 자동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국회직 9급 한국사 기출문제 풀러 가기 →

시험지 PDF 나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나요?

이 회차의 인쇄용 시험지 PDF 페이지에서 시험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험지 PDF 받기 →

[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문항별 상세 페이지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