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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회직 9급 한국사] 26년 1회차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황제께서 이미 대병(大兵)으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포위하고는, 또 한 무리의 군대에게 명하여 ㉡강화도(江華島)를 함락시켜 궁빈(宮嬪)과 왕자(王子) 및 여러 신하의 가족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는데, 황제께서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해를 입히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시종하는 관리와 내시들로 하여금 간호(看護)하게 하셨다. 이윽고 크게 은전(恩典)을 베풀어 ㉢작은 나라의 임금과 신하 및 사로잡혔던 권속(眷屬)들이 모두 옛 장소로 돌아가게 되니, 서리와 눈이 변하여 봄 햇볕이 되고 가뭄이 단비가 된 듯, 나라가 거의 망했다가 다시 살아나고, 종사(宗社)가 거의 끊어졌다가 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동쪽 땅 수천 리에 두루 출생과 성장하는 은택(恩澤)을 입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예로부터 드물게 보는 일이라 하겠다. 아아, 훌륭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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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건설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가 남아있어 복원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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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대몽항쟁과 관련된 용장성 유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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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한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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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을 단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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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즉위하였다.
해설
㉢은 조선 인조이며, 그는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으로 즉위하였다.
병자호란 뒤 청의 공덕을 기린 삼전도비의 글로, 남한산성 포위와 강화도 함락, 항복한 ‘작은 나라의 임금’이 단서이다.
- 성 건설 과정을 기록한 의궤가 남아 복원에 활용된 곳은 남한산성이 아니라 수원 화성이다.
- 용장성은 삼별초가 항쟁한 진도의 유적으로, 강화도에 있지 않다.
- 팔만대장경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 나선 정벌은 인조가 아니라 효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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