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1[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그림>에 보이는 유물과 관련 있는 시대의 생활 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문제 이미지
    1
    추수할 때는 반달 돌칼이 주로 사용되었다.
    2
    움집에서 점차 벗어나 지상 가옥도 짓게 되었다.
    3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을 만들어 시체를 매장하였다.
    4
    씨족의 구성원이 모두 평등하여 수확물도 공동으로 나누었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씨족 구성원이 모두 평등하여 수확물을 공동으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는 신석기 시대의 모습이다.

    그림의 칼은 비파형 동검과 세형동검으로 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물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잉여 생산물과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계급이 발생하고 족장(군장)이 등장하였다.

    • 곡식을 거둘 때 반달 돌칼을 사용한 것은 청동기 시대의 모습이다.
    • 움집이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바뀌어 간 것도 청동기 시대의 변화이다.
    •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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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조선 전기의 대외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보기>
    ㄱ. 여진에 대해서는 북방 개척을 위해 무력진압 강경책으로 일관하였다.
    ㄴ. 명과는 조공 관계를 통해서 문물을 받아들이고 경제적 실리를 취하였다.
    ㄷ. 일본에 대해서는 세종 때 부산포, 제포, 염포를 개항하여 제한 무역을 실시하였다.
    ㄹ. 유구 및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조선의 이해와 크게 관계되지 않으므로 교류하지 않았다.
    1
    ㄱ, ㄴ
    2
    ㄴ, ㄷ
    3
    ㄷ, ㄹ
    4
    ㄱ, ㄹ
    해설

    조선 전기 대외 관계로 옳은 것은 명과의 조공 관계와 세종 때 3포 개항에 관한 진술이다.

    조선은 명에 사대하며 조공 무역으로 문물을 받아들이고 실리를 얻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쓰시마 정벌 뒤 부산포·제포·염포를 열고 계해약조로 제한된 무역을 허용하였다.

    • 여진에는 4군 6진 개척 같은 토벌과 함께 귀순 장려·무역소 설치 등 회유책도 병행하였으므로 강경책으로 일관했다는 진술은 틀리다.
    • 유구(류큐)·시암·자와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도 조공·진상 형식으로 토산물을 교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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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중국 외교관 황쭌셴의『조선책략』에 반발하여 쓴 글을 <보기>에서 고르면?
    <보기>
    ㄱ.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혐의가 없는데 공연히 타인을 믿음으로써 먼 나라와 친교에 기대어 가까운 이웃에 도전하게 되어 이를 구실로 러시아가 내침하면 이를 어떻게 구할 것입니까? 러시아, 미국, 일본은 모두가 오랑캐들이어서 어느 누구를 후하게 대하거나 박하게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ㄴ. 우리가 일본을 받아들이는 것은 서양을 견제하려는 계책에 서 나온 것입니다. (중략) 서양이라고 하더라도 기계 기술 이나 농서가 진실로 이익이 될 만한 것이면 반드시 행할 것이요, 그 사람으로 인해서 그들의 좋은 법까지 물리칠 필요는 없습니다.
    ㄷ.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러시아를 방어하는 큰 기틀이 될 것이고, 또한 아시아의 여러 대국들이 서로 보전하는 전략도 될 것입니다. (중략) 이는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이익도 될 것이고, 여러 나라가 서로 보전하는 계책도 될 것이니 무엇이 두려워서 하지 않겠습니까.
    ㄹ. 서양 오랑캐의 화가 금일에 이르러서는 이보다 심할 수 없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안으로는 사학의 무리를 잡아 베시고, 밖으로는 바다를 건너오는 적을 정벌하소서. 사람 노릇을 하느냐, 짐승이 되느냐, 존속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기틀이 잠깐 사이에 결정되옵니다.
    1
    ㄱ
    2
    ㄴ
    3
    ㄷ
    4
    ㄹ
    해설

    『조선책략』에 반발한 글은 러시아·미국·일본을 모두 오랑캐로 보며 미국과의 수교를 반대한 영남 만인소의 내용이다.

    『조선책략』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친중국·결일본·연미국'을 권하였다. 이에 이만손 등 영남 유생은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혐의가 없는데' 먼 나라와 친교하다 오히려 화를 부른다며 연미론을 반박하였다.

    • 서양의 기계 기술이나 농서라도 이익이 되면 받아들이자는 글은 동도서기론의 입장이다.
    • 조선이 아시아의 중립국이 되어 러시아를 막자는 글은 갑신정변 이후 제기된 중립화론이다.
    • 사학의 무리를 베고 바다 건너오는 적을 정벌하라는 글은 1860년대 서양의 침략에 맞선 척화주전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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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와 ㉯의 사건 사이에 발생한 일로 옳은 것은?
    ㉮ (왕) 41년 10월에 백제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은 군대를 내어 막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고국의 들에 장사지냈다.
    ㉯ 즉위년 7월에 남쪽으로 백제를 정벌하여 10성을 함락시켰다. 10월에는 백제의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 『삼국사기』 -
    1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2
    낙랑군과 대방군을 한반도 밖으로 쫓아냈다.
    3
    불교를 공인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4
    빈민 구제를 위해 진대법을 처음 시행하였다.
    해설

    두 사건 사이의 일은 소수림왕의 불교 공인과 율령 반포이다. 소수림왕은 372년 불교를 받아들이고 373년 율령을 반포하였다.

    ㉮는 백제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으로 '화살에 맞아 죽은' 고국원왕(371)이다. ㉯는 즉위하자마자 백제의 '관미성'을 함락한 광개토대왕이다.

    •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것은 광개토대왕 다음 장수왕 때(427)이다.
    • 낙랑군·대방군을 몰아낸 것은 고국원왕 이전 미천왕 때이다.
    • 진대법을 처음 시행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고국천왕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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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보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시기의 조선 사회 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보기>
    ◦ 여성의 재가 사실을 족보에 기록하였다.
    ◦ 외손이 있으면 아들이 없더라도 남의 아들로 양자 삼는 사람이 없다.
    1
    호적에 출생 순서대로 기재하였다.
    2
    재산상속은 자녀 균분이 관행이었다.
    3
    동족 부락이 만들어져 족보 편찬이 성행하였다.
    4
    제사는 형제가 돌아가면서 지내거나 책임을 분담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동족 부락이 만들어져 족보 편찬이 성행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부계 중심 가족 제도가 자리 잡은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여성의 '재가 사실'을 족보에 적고, '외손'이 있으면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는 내용은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던 조선 전기 사회의 모습이다.

    • 족보와 호적에 아들·딸 구분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기재하였다.
    • 재산은 아들과 딸에게 고르게 나누는 자녀 균분 상속이 관행이었다.
    • 제사는 형제가 돌아가며 지내거나(윤회 봉사) 책임을 나누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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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다음 법령이 반포된 때에 시행된 개혁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 문벌과 양반, 상민 등의 계급을 타파하여 귀천에 구애됨이 없이 인재를 뽑아 쓸 것
    ◦ 남녀의 조혼을 엄금하여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세 이후에 비로소 결혼을 허락할 것
    ◦ 과부의 재혼은 귀천을 따지지 말고 자유에 맡길 것
    ◦ 공사노비법을 혁파하고 인신매매를 금할 것

    <보기>
    ㄱ. 금본위제를 시행하였다.
    ㄴ. 지방의 8도를 23부로 개편하였다.
    ㄷ. 궁내부가 설치되어 왕실사무를 전담하였다.
    ㄹ. 과거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관리 임용제도를 마련하였다.
    ㅁ.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행정기관으로부터 분리, 독립시켰다.
    1
    ㄱ, ㄴ
    2
    ㄴ, ㄷ
    3
    ㄷ, ㄹ
    4
    ㄹ, ㅁ
    해설

    이 법령과 같은 때 시행된 개혁은 궁내부 설치와 과거제 폐지이다.

    문벌·반상 계급 타파, 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 '공사노비법 혁파'는 1894년 군국기무처가 주도한 제1차 갑오개혁의 의안이다. 이때 왕실 사무를 궁내부로 분리하고 과거제를 폐지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의 화폐 제도는 은본위제였고, 금본위제 시행은 광무개혁 때 추진되었다.
    • 8도를 23부로 개편한 것은 제2차 갑오개혁이다.
    • 재판소를 설치해 사법권을 행정에서 분리한 것도 제2차 갑오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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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문제 이미지
    1
    도굴이 어려워 많은 껴묻거리가 남아 있다.
    2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세련된 무덤이다.
    3
    돌로 널방을 짜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무덤이다.
    4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다.
    해설

    옳은 설명은 도굴이 어려워 많은 껴묻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나무 덧널 위에 '돌무지'를 쌓고 다시 '봉토'로 덮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단면이다. 출입구가 없고 돌무지가 두껍게 덮여 있어 천마총·황남대총처럼 금관 등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세련된 무덤은 백제 무령왕릉 같은 벽돌무덤이다.
    • 돌로 널방을 짜고 흙으로 덮은 무덤은 굴식 돌방무덤이다.
    • 벽화로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무덤은 널방이 있는 고구려의 굴식 돌방무덤이며, 돌무지덧널무덤은 구조상 벽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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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보기>의 ㉮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보기>
    ㉮공물 방납의 폐단이 나날이 심해집니다. 각 고을에서 공물을 상납하려 할 때 바칠 수가 없습니다. 사주인(私主人)은 자기가 갖고 있는 물품으로 관청에 대신 내고 고을 농민들에게는 자기가 낸 물건값을 턱없이 높게 쳐서 열 배의 이득을 취하니 이것은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는 것입니다.
    1
    관청에서 추가로 어장세와 선박세를 징수하였다.
    2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뒤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3
    폐단을 막기 위해 공물 대신 쌀로 납입하게 하였다.
    4
    공가를 미리 받은 상인이 관청에 물품을 납품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설명은 관청에서 어장세와 선박세를 추가로 징수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균역법 시행으로 줄어든 재정을 보충한 방법이다.

    '공물 방납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는 공물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 등으로 걷은 대동법이다.

    • 대동법은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뒤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 집집마다 부과하던 토산물 공물 대신 쌀(삼베·무명·동전)으로 납부하게 하였다.
    • 관청은 공인에게 공가를 미리 주고 필요한 물품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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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다음 선언을 발표한 단체에서 활약한 사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우리는 일본 강도 정치 곧 다른 민족의 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 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버리는 것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중략)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보기>
    ㄱ. 김두봉 ㄴ. 김상옥 ㄷ. 나석주 ㄹ. 이봉창
    1
    ㄱ, ㄴ
    2
    ㄴ, ㄷ
    3
    ㄷ, ㄹ
    4
    ㄱ, ㄹ
    해설

    이 선언을 발표한 단체에서 활약한 인물은 김상옥과 나석주이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는 신채호가 의열단의 행동 강령으로 쓴 조선 혁명 선언(1923)이다. 김상옥은 종로 경찰서에, 나석주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식산 은행에 폭탄을 던졌다.

    • 김두봉은 국어학자로 화북의 조선 독립 동맹을 이끌었다.
    • 이봉창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 단원으로 일왕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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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보기>의 주제어 모두와 연관되는 글의 제목으로 적절한 것은?
    <보기>
    설계두, 장보고, 6두품, 호족, 중위제
    1
    신라 관등제의 정비 과정
    2
    신라 하대 도당유학생의 활약
    3
    신라 골품제의 모순과 한계
    4
    후삼국의 성립과 신라의 몰락
    해설

    주제어 모두와 연관되는 제목은 신라 골품제의 모순과 한계이다.

    설계두는 골품 때문에 출세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당으로 건너갔고, 장보고는 미천한 신분을 이유로 딸을 왕비로 들이려던 일이 좌절되었다. 6두품은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어 중위제라는 보완책이 생겼고, 하대에는 6두품과 호족이 골품제를 비판하며 새 사회를 모색하였다.

    • 관등제 정비 과정으로는 장보고·호족 같은 하대 인물·세력을 설명할 수 없다.
    • 도당 유학생의 활약은 6두품과는 이어지지만 장보고·중위제와는 관계가 멀다.
    • 후삼국 성립은 호족과는 이어지지만 설계두·중위제와는 관계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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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다음 제도가 있었던 시기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수전자(受田者)가 죽은 뒤, 그 처가 자식을 가지고 수신(守信)하는 경우에는 남편의 과전 모두를 물려받고, 자식이 없이 수신하는 경우에는 반만 받으며, 수신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죽고 자식들이 어리면 마땅히 휼양하여야 하니 아버지의 과전 모두를 물려받고, 20세가 되면 본인의 과등(科等)에 따라 받는다.
    1
    군인의 유가족에게는 구분전이 지급되었다.
    2
    전ㆍ현직의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
    3
    영정법 시행으로 풍흉에 상관없이 전세가 고정되었다.
    4
    경기 일대의 토지를 관료에게 분배하고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해설

    옳은 설명은 경기 일대 토지를 관료에게 나누어 주고 수조권을 지급한 것이다.

    관리가 죽은 뒤 수신하는 아내에게 주는 '수신', 어린 자식에게 주는 '휼양' 규정은 고려 말 제정되어 조선 초까지 시행된 과전법의 수신전·휼양전이다. 과전법은 전·현직 관리에게 경기 지역 토지의 수조권만 지급하였다.

    • 군인 유가족에게 구분전을 지급한 것은 고려 전시과 체제이다.
    • 전지와 시지를 함께 지급한 것은 고려의 전시과이다.
    •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고정한 영정법은 과전법 체제가 무너진 뒤인 조선 후기 인조 때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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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다음 글과 관련이 있는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단결은 힘이다. 약자의 힘은 단결이다.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단결을 공고히 하자. (중략) 조선인의 대중적 운동의 목표는 정면의 일정한 세력을 향하여 집중되어야 할 것이니 이에서 민족운동과 계급운동은 동지적 협동으로 병립 병진하여야 할 것이요. (중략) 해소는 확대 강화의 전경만 바라보고 실로 분산 와해의 허전한 광야에 헤매게만 한 것이다. (중략) 계급 진영의 강고한 수립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계급 철폐의 민족 단일당의 과오나 마찬가지로 계급 단일의 민족진영 철폐도 중대한 과오이다.

    <보기>
    ㄱ. 정우회 선언이 단체의 창립에 영향을 끼쳤다.
    ㄴ. 단체가 아닌 개인만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ㄷ. 비합법단체로서 노동쟁의와 소작쟁의를 지원하였다.
    ㄹ. 광주학생운동에 자극받아 서울에서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
    ㄱ, ㄴ
    2
    ㄴ, ㄷ
    3
    ㄷ, ㄹ
    4
    ㄱ, ㄹ
    해설

    이 단체에 대한 옳은 설명은 정우회 선언의 영향을 받아 창립되었다는 것과 개인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운동과 계급운동은 동지적 협동으로 병립 병진'해야 하며 '해소'를 비판하는 글은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한 신간회와 관련된다. 신간회는 1927년 결성되었고 단체 가입을 받지 않고 개인 본위로 조직되었다.

    • 신간회는 비합법 단체가 아니라 일제의 허가를 받은 합법 단체로 활동하였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진상 조사단을 보내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간부들이 체포되어 대회는 열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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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보기>는 고려시대 북방세력과 관련된 사건들이다. 시기 순으로 배열된 것은?
    <보기>
    ㄱ. 윤관은 17만 대군을 이끌고서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았다.
    ㄴ. 강감찬은 강동 6주를 점령한 것에 불만을 가진 거란군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ㄷ. 금나라를 건국한 아구타는 남쪽의 송나라를 제압하고, 고려에 신하가 될 것을 요구하였다.
    1
    ㄱ → ㄴ → ㄷ
    2
    ㄴ → ㄱ → ㄷ
    3
    ㄷ → ㄱ → ㄴ
    4
    ㄷ → ㄴ → ㄱ
    해설

    시기 순서는 강감찬의 거란 격퇴 → 윤관의 9성 축조 → 금의 사대 요구이다.

    강감찬은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며 쳐들어온 거란의 3차 침입(1018)을 1019년 귀주 대첩으로 물리쳤다. 이후 여진이 성장하자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1107년 여진을 정벌해 동북 9성을 쌓았다.

    여진이 세운 금은 세력을 키워 고려에 사대를 요구하였고, 1126년 이자겸 정권이 이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금의 사대 요구가 가장 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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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조선시대에 발생한 다음 정치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ㄱ.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빌미로 다수의 신진관료들이 죽거나 처벌을 당하였다.
    ㄴ. 도덕정치를 실현하려고 한 조광조의 개혁에 대해 훈신들이 반격을 가하였다.
    ㄷ. 인종과 명종의 왕위 계승 문제로 외척 간의 대립이 정쟁으로 표면화되었다.
    1
    ‘ㄱ’은 왕권이 약화된 틈을 타서 훈구세력이 산림(山林)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2
    ‘ㄴ’에 서술된 개혁을 추진한 세력은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을 주장하였다.
    3
    ‘ㄴ’과 ‘ㄷ’에 따른 정치적 갈등의 결과 사림세력이 큰 피해를 입었다.
    4
    ‘ㄷ’의 대립이 심화된 결과 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출현하였다.
    해설

    옳은 설명은 ‘ㄴ’과 ‘ㄷ’의 정치적 갈등으로 사림 세력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ㄱ’은 '조의제문'이 빌미가 된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 ‘ㄴ’은 조광조의 개혁에 훈신이 반발한 중종 때의 기묘사화, ‘ㄷ’은 대윤과 소윤의 외척 대립에서 비롯된 명종 때의 을사사화이다.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모두 사림이 화를 입었다.

    • 무오사화는 왕권이 약화된 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연산군 때 훈구 세력이 사림을 공격한 사건이다.
    • 조광조 등 사림은 중앙집권·부국강병보다 향촌 자치와 왕도 정치를 내세웠다.
    • 동인과 서인의 분당은 사화가 끝난 뒤 선조 때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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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1946∼7년에 진행된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보기>
    ㄱ. 미군정의 후원 하에 이 운동이 전개되었다.
    ㄴ. 중도좌파의 김규식과 중도우파의 여운형이 주도하였다.
    ㄷ. 조선공산당은 이 운동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ㄹ. 김규식과 여운형은 미소공동위원회를 다시 여는 데 관심을 두었다.
    1
    ㄱ, ㄴ
    2
    ㄴ, ㄷ
    3
    ㄷ, ㄹ
    4
    ㄱ, ㄹ
    해설

    좌우 합작 운동에 대한 옳은 설명은 미군정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과 미소 공동 위원회 재개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1946년 중도 세력이 좌우 합작 위원회를 만들었고, 미군정은 중도 세력을 키우려 이를 지원하였다. 합작 위원회는 좌우 합작 7원칙에서 미소 공동 위원회의 속개를 요구하였다.

    • 김규식은 중도 우파, 여운형은 중도 좌파였으므로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은 합작 운동에 반대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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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고려시대의 교통, 통신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조운을 담당하기 위해 조창이라는 기관을 설치하였다.
    2
    군사적인 위급사태를 알리기 위해 봉수제를 실시하였다.
    3
    공문의 전달, 관물의 운송 등을 위해 역참제를 전국적인 규모로 실시하였다.
    4
    봉수제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후기에 이르러 파발제를 시행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파발제를 고려 후기에 시행했다는 설명이다.

    파발제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을 겪으며 봉수제의 한계가 드러나자 도입된 통신 제도로, 고려 시대의 제도가 아니다.

    • 조창: 고려는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수도로 운반하는 조운을 위해 조창을 설치하였다.
    • 봉수제: 고려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군사적 위급 사태를 알리는 봉수제를 운영하였다.
    • 역참제: 고려는 공문 전달과 관물 운송을 위해 전국에 역(驛)을 두고 이를 역도로 묶어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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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우리나라 국경의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신라는 발해와 대립하면서 국경지대에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 천리장성을 쌓았다.
    2
    고려는 원나라가 탐라총관부를 설치한 이후 공민왕 때까지 제주도를 영토로 지배하지 못하였다.
    3
    조선 태종 때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북방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4
    일본은 푸순광산 채굴권과 안봉선 부설권의 대가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해설

    옳은 것은 간도 협약으로 일본이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했다는 설명이다.

    1909년 일본은 청과 간도 협약을 맺어 안봉선 부설권과 푸순 탄광 채굴권 등 만주의 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 천리장성: 천리장성은 고구려(부여성~비사성, 당 대비)와 고려(압록강 어귀~도련포, 거란·여진 대비)가 쌓은 것으로, 신라가 발해와 대립하며 쌓은 것이 아니다.
    • 탐라총관부: 원이 설치한 탐라총관부는 충렬왕 때 고려에 반환되었으므로 공민왕 때까지 지배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틀렸다.
    • 북방 국경선: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은 태종이 아니라 세종 때 4군 6진을 개척하여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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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형태의「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판인쇄물이다.
    2
    고려 후기에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하여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편찬하였다.
    3
    조선 초기에 편찬된『농사직설』에는 농민들이 실제 경험한 농사법이 반영되었다.
    4
    조선 후기에 이제마는『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여, 같은 병이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약을 다르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칠정산』을 고려 후기에 편찬했다는 설명이다.

    『칠정산』 내편·외편은 원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해 조선 세종 때 편찬된 역법서로,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하였다.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불경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 『농사직설』: 조선 세종 때 각 지역 농민의 실제 경험을 모아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하였다.
    • 『동의수세보원』: 조선 후기 이제마가 사람의 체질을 나누어 치료를 달리해야 한다는 사상 의학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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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의미가 유사하지 않은 구절은?
    1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2
    人不知而不*溫不亦君子乎 *溫: 화내다
    3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4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해설

    의미가 다른 구절은 溫故而知新(온고지신)으로,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배움의 자세를 말한다.

    나머지 구절은 모두 『논어』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탓하지 말라는 같은 뜻을 담고 있다.

    •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기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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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계리직 한국사] 12년 1회차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詩句가 아닌 것은?
    1
    松下問童子
    2
    山氣日夕佳
    3
    夏雲多奇峯
    4
    桃花流水杳然去
    해설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구절이 아닌 것은 松下問童子(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묻다)이다.

    이 구절은 당나라 가도의 「심은자불우」 첫 구로, 은자를 찾아가 그 제자에게 스승의 행방을 묻는 사람의 행위를 서술한 것이다.

    • 山氣日夕佳: 도연명의 「음주」 중 한 구절로, 산 기운이 해 질 녘에 아름답다는 경치를 읊었다.
    • 夏雲多奇峯: 여름 구름이 기이한 봉우리처럼 많이 피어오른다는 계절 풍경을 묘사하였다.
    • 桃花流水杳然去: 이백의 「산중문답」 중 한 구절로, 복사꽃이 물 위에 떠 아득히 흘러가는 선경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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