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47회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가)시대에 처음 제작된 유물로 옳은 것은? [1점]
화면 속 교사는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된 (가) 시대의 생활 모습을 물었고, 학생들은 대화창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빗살무늬 토기에 식량을 저장하였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농경과 정착, 움집, 가락바퀴, 빗살무늬 토기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으며, 조·피 등을 재배하고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였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유물은 곡식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갈던 갈돌과 갈판입니다. 이는 농경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간석기로, 신석기 시대를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주먹도끼는 뗀석기로 구석기 시대에 처음 제작되었고,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 철제 농기구는 철기 시대에 등장하므로 농경이 시작된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유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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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 - (나) - (다)
(가) - (다) - (나)
(나) - (가) - (다)
(다) - (나) - (가)
전시판은 ‘고구려의 발전 과정’을 세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가)는 영락 연호 사용, (나)는 태학 설립, (다)는 평양 천도입니다.
가장 이른 것은 태학 설립으로, 소수림왕이 372년에 유학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소수림왕은 같은 시기에 불교를 수용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 집권 체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다음은 영락 연호 사용입니다. 391년 즉위한 광개토 대왕은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만주와 한반도 중부로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마지막은 평양 천도로, 장수왕이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겨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였습니다. 따라서 순서는 태학 설립 → 영락 연호 사용 → 평양 천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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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범금 8조로 백성을 다스렸다.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서옥제라는 혼인 품습이 있었다.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대화 장면에서 학생들은 솟대 모형을 두고 솟대가 이 나라의 소도에서 유래했다고 말하고, 이 나라에는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도와 천군은 삼한(마한·진한·변한)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삼한에서는 정치를 맡은 군장과 별개로 천군이 제사를 주관하였고, 소도는 군장의 힘이 미치지 못해 죄인이 도망쳐도 잡아가지 못하는 신성 구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제정 분리 사회라고 합니다.
삼한의 정치적 지배자로는 세력이 큰 신지와 상대적으로 작은 읍차 등이 있었으므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알맞습니다.
범금 8조로 백성을 다스린 나라는 고조선,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는 부여,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던 나라는 고구려로 각각 다른 나라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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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상 인터뷰에 등장하는 왕으로 옳은 것은? [2점]
성왕
법흥왕
지증왕
근초고왕
가상 인터뷰에서 기자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한 사실을 언급하고, 왕은 금관가야를 병합하여 영토를 넓혔다고 답하고 있다. 두 업적을 모두 남긴 신라 왕은 법흥왕이다.
법흥왕은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가 종교로 공인하였고, 532년 금관가야의 구해왕이 항복해 오자 이를 받아들여 낙동강 하류까지 세력을 넓혔다. 또한 병부 설치, 율령 반포, 공복 제정으로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지증왕은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우산국을 복속시켰으며, 백제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성왕은 사비 천도와 관산성 전투로 알려진 인물이어서 인터뷰 내용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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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과거제를 도입하였다.
기인 제도를 실기하였다.
지방에 22담로를 두었다.
신분제도인 골품제가 있었다.
답사 계획서에서 (가)는 부여관에서 만나는 국가로, 보소산성·관북리·정림사지 등 유적을 답사 코스로 삼고 있어 백제(부여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는 웅진(공주)·사비(부여) 시기에 지방을 22담로로 나누어 왕족을 파견해 다스렸다. 주몽 건국은 고구려, 독서삼품과는 통일신라, 한의 침략으로 멸망한 나라는 고조선에 해당하므로 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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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화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대가야가 신라에 정복되었다.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군을 격퇴하였다.
흑치상자가 백제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춘추가 당과의 군사 동맹을 성사시켰다.
대화에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의 결사대와 싸워 힘겹게 승리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던 시점으로, 곧이어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가 멸망하였다.
백제 멸망 직후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근거지로 군사를 모아 백제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복신과 도침이 주류성에서 왕자 부여풍을 받들어 일으킨 부흥 운동도 같은 시기의 일이므로, 황산벌 전투 이후에 있었던 사실에 해당한다.
대가야가 신라에 정복된 것은 562년,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군을 격퇴한 것은 645년, 김춘추가 당과 군사 동맹을 성사시킨 것은 648년으로 모두 황산벌 전투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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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원효
일연
의상
지눌
검색 결과 화면은 귀족 출신의 신라 승려로 당에 유학하였고, 귀국 후 낙산사 등 여러 절을 창건하며 관음 신앙을 전파했으며, 화엄종을 개창하고 화엄일승법계도를 남겼다고 설명한다. 이는 의상에 대한 소개이다.
의상은 당에 건너가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우고 돌아와 부석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을 세웠으며, 화엄 사상의 요지를 210자의 시로 압축한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었다. 현세의 고난에서 구제받기를 비는 관음 신앙을 널리 퍼뜨린 것도 그의 활동이다.
원효는 무애가를 지어 불교 대중화에 힘쓰고 십문화쟁론으로 종파 통합을 꾀했으며 당 유학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일연은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를 지었고, 지눌은 고려 시대에 수선사 결사를 이끌며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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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원종과 애노가 봉기하였다.
김흠돌이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가)는 헌덕왕 14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한 사건으로 822년의 일이다. (나)는 진성왕 8년 최치원이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에 임명된 894년의 일이다.
두 사건 사이인 889년(진성왕 3), 사벌주에서 원종과 애노가 과중한 조세 독촉에 반발하여 봉기하였다. 이는 신라 하대에 중앙의 지방 통제력이 무너지고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김흠돌이 반란을 도모한 것은 신문왕 즉위 직후인 681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은 지증왕 때인 512년,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612년으로 모두 (가) 이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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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1점]
퀴즈가 제시한 힌트는 국보 제126-6호로 지정, 경주 불국사 삼층 석탑에서 발견,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문화유산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1966년 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을 보수하던 중 탑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8세기 중엽 통일 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된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새긴 목판이고,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다녀와 남긴 기행문이며, 직지심체요절은 목판이 아니라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 인쇄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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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상 영화에서 볼수 있는 장면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영화 포스터에는 제목 왕건과 함께 '후삼국을 통일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따라서 왕건이 활동한 10세기 전반의 후삼국 통일 과정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골라야 한다.
진포에서 왜구를 물리치는 최무선은 1380년 고려 말에 벌어진 진포 대첩의 장면이다. 최무선은 화통도감에서 만든 화약 무기로 왜구의 배를 불태웠는데, 이는 왕건이 활동한 시기보다 450년가량 뒤의 일이므로 이 영화에서는 볼 수 없다.
궁예가 왕위에서 쫓겨난 것(918),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것(935),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이 패배한 것(936)은 모두 왕건의 후삼국 통일 과정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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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다.
2군 6위의 군사 조직을 두었다.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었다.
대화에서 우표가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를 기념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가)는 발해이다. 대조영은 698년 동모산 부근에서 나라를 세웠다.
발해는 9세기 선왕 무렵 최대 영역을 확보하며 전성기를 맞았고, 당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융성하였다. 중앙에 3성 6부를 두고 지방을 5경 15부 62주로 편성하는 통치 조직도 갖추었다.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이 실시한 관리 선발 제도이고,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한 나라는 금관가야이며, 2군 6위는 고려의 중앙군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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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카드 뒷면에는 고려 전기의 관리로서 시무 28조를 성종에게 건의하였고 유교 정치 이념에 근거한 통치 체제 확립에 기여했다고 적혀 있다. (가)에 들어갈 인물은 최승로이다.
최승로는 982년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올려 지방관 파견, 지나친 불교 행사의 억제, 유교 이념에 따른 통치 등을 건의하였다. 성종은 이를 받아들여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국자감을 정비하는 등 중앙 집권 체제를 다졌다.
김부식은 인종 때 삼국사기를 편찬하고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인물이며, 정몽주와 이제현은 고려 후기에 활동한 성리학자로 시무 28조와는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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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관료전
대동법
전시과
호포제
퀴즈 진행자는 고려 시대에 관직 복무 등에 대한 대가로 전지와 시지를 차등 지급한 제도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가)에 들어갈 말은 전시과이다.
전시과는 경종 때 인품과 관품을 함께 따진 시정 전시과로 시작해 목종의 개정 전시과, 문종의 경정 전시과로 정비되었다. 곡물을 거둘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는 시지를 관등에 따라 나누어 주되 수조권만 지급하였고, 원칙적으로 관리가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나면 국가에 반납해야 했다.
관료전은 통일 신라 신문왕이 관리에게 지급한 토지이고, 대동법은 조선 광해군 때 시작된 공납 개혁이며, 호포제는 흥선 대원군이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담시킨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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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표에 해당하는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담배, 인삼 등의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활동하였다.
시장을 감독하기 위한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발표 주제는 어느 나라의 화폐이며, 뒷면에 한자로 '동국'이라는 글자를 새긴 건원중보와 은으로 만들어 활구라고도 불린 은병이 소개되어 있다. 이 두 화폐를 사용한 나라는 고려이다.
고려는 성종 때 건원중보를 주조하였고, 숙종 때 삼한통보·해동통보와 함께 은병을 만들어 유통을 꾀하였다. 이 시기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고, 이를 통해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담배와 인삼 같은 상품 작물 재배,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의 활동은 조선 후기의 모습이고, 시장을 감독하는 동시전 설치는 신라 지증왕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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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나'에 해당닿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서희
강감찬
김종서
연개소문
지도 속 인물은 귀주 지역을 가리키며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다", "개경에 나성을 쌓아 북방 세력의 침입에 대비할 것을 건의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업적을 모두 가진 인물은 강감찬입니다.
거란의 3차 침입 때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쳐들어오자, 강감찬은 1019년 귀주 대첩에서 이를 거의 전멸시켜 거란의 침입을 끝냈습니다. 이후 그는 재침에 대비해 개경 외곽을 둘러싸는 나성 축조를 건의하였고, 실제로 나성이 완성되었습니다.
거란의 1차 침입 때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얻은 인물은 서희로, 전투가 아닌 외교 담판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4군 6진 개척으로 북방 영토를 넓힌 김종서는 조선 세종 때 인물이고,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 정권을 장악한 인물이므로 거란 격퇴와는 시기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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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화면의 상세 설명은 (가)를 국보 제18호로 지정된 고려 시대 목조 건축물이며, 경상북도 영주에 있고,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이 특징이고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고 알려 줍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문화유산은 부석사 무량수전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기둥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기법과 공포를 기둥 위에만 얹는 주심포 양식을 잘 보여 줍니다. 서방 극락을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모셨기 때문에 건물 이름이 '무량수전'입니다.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 대웅전과 충북 보은의 법주사 팔상전(5층 목탑 형태), 전북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3층 규모의 다층 불전)은 모두 조선 후기 건축물이어서 고려 시대라는 조건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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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조치가 내려진 시기를 연표에 옳게 고른것은? [3점]
(가)
(나)
(다)
(라)
제시된 자료는 "기강이 무너져 권세가가 토지와 백성을 빼앗고 농장(農莊)을 두어 나라를 병들게 한다"며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이를 바로잡겠다는 내용으로, 말한 이는 판사 신돈입니다.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을 맡아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것은 공민왕 때인 1366년의 일입니다. 공민왕의 개혁 정치는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반원 자주 정책과 함께 추진되었습니다.
연표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1126년 이자겸의 난, 1170년 무신 정변, 1270년 개경 환도, 1392년 고려 멸망으로 구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1366년은 개경 환도(1270)와 고려 멸망(1392) 사이에 놓이므로, 연표의 마지막 구간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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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위화도 회군의 배경
동북 9성의 축조 과정
훈련도감의 설치 목적
고구려의 남진 정책 추진
자료는 우왕과 최영이 요동 공격을 결정하자 이성계가 네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한 이른바 4불가론입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고, 여름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으며, 왜구가 빈틈을 노릴 수 있고, 장마철이라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질병이 돌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성계는 요동 정벌군을 이끌고 출병했지만,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1388년의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이 제거되고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조선 건국의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자료는 위화도 회군의 배경을 탐구하는 데 알맞습니다. 동북 9성은 고려 예종 때 윤관이 여진을 몰아내고 쌓은 것이고,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조선의 군영이며, 고구려의 남진 정책은 5세기 장수왕 때의 일이므로 자료와 시기·주제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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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송시열
정도전
정약용
홍대용
그림에서 태조가 "오늘 (가)가 조선경국전을 지어 바쳤으니 쌀과 비단, 백은을 상으로 내려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에게 조선경국전을 지어 올린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주도한 신진 사대부로, 1394년 조선경국전을 지어 새 왕조의 통치 규범과 정치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했고,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며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세우는 데 앞장섰습니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로 북벌론을 주장한 인물이고, 정약용은 목민심서·경세유표를 쓴 실학자이며, 홍대용은 지전설을 주장한 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로 모두 조선 건국기와는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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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덕궁
안내문은 (가)를 태종 때 이궁으로 세워진 궁궐이라 소개하며, 조선의 정원 조경이 잘 보존된 후원까지 관람하는 야간 행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달빛 따라 걷는 길'로는 돈화문 – 인정전 – 낙선재 – 연경당 – 후원 숲길 – 돈화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정문이 돈화문, 정전이 인정전이며 낙선재와 연경당, 그리고 자연 지형을 살린 후원을 갖춘 궁궐은 창덕궁입니다. 창덕궁은 태종 때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이후 오랫동안 정궁 역할을 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경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경복궁은 태조 때 지은 조선의 법궁으로 정문이 광화문, 정전이 근정전이고, 덕수궁은 대한 제국 시기 고종이 머문 궁궐이며, 경희궁은 광해군 때 세워진 궁궐이므로 안내문의 조건과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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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였다.
수양 대군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대화는 한쪽이 "이조 전랑 김효원의 후임으로 심충겸을 추천하자"고 하자, 다른 쪽이 "심충겸은 외척이므로 이조 전랑에 마땅치 않다"고 반박하는 장면입니다.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싼 사림 내부의 갈등을 보여 줍니다.
이조 전랑은 품계는 낮지만 삼사 관리의 인사권과 후임 추천권을 가진 요직이었습니다. 심충겸은 왕실과 혼인으로 이어진 외척 집안 사람이자 심의겸의 아우였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혔고, 선조 초 이 자리를 두고 김효원을 지지하는 세력과 심의겸을 지지하는 세력이 맞서면서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습니다. 김효원의 집이 한양 동쪽에,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기묘사화(1519, 조광조 제거)와 수양 대군의 권력 장악(1453, 계유정난)은 이 대화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고, 신진 사대부의 등장은 고려 말의 일이므로 이후에 전개된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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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성학십도를 저술하였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사진 속 건물은 도산 서원의 사당인 상덕사로, (가)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고 소개됩니다. 설명은 (가)가 풍기 군수와 성균관 대사성 등의 관직을 지냈고 예안 향약을 만들었다고 알려 줍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인물은 이황입니다.
이황은 풍기 군수 시절 백운동 서원에 사액을 내려 줄 것을 건의하여 소수 서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되도록 했고, 고향 예안에서 향촌 교화를 위해 예안 향약을 실시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도산 서당 자리에 도산 서원을 세웠습니다.
이황은 군주가 갖추어야 할 성리학의 핵심을 열 개의 그림과 설명으로 정리한 성학십도를 선조에게 올렸습니다. 거중기 설계는 정약용, 대마도 정벌은 이종무(세종 때), 대동여지도 제작은 김정호의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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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전쟁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적절한 것은? [2점]
보빙사의 활동을 조사한다.
삼별초의이동 경로를 찾아본다.
삼전도비의 건립 배경을 파악한다.
을미의병이 일어난 계기를 살펴본다.
보고서의 장소는 남한산성이며, 학습 내용에는 (가) 당시 인조가 이곳으로 피란하여 45일간 항전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함께 실린 사진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와 서문입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5일간 버틴 전쟁은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입니다. 청 태종이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침입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고, 식량이 떨어지고 성 밖의 지원도 끊기자 결국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항복했습니다.
이때 항복 의식을 치른 자리에 세워진 것이 삼전도비이므로, 그 건립 배경을 파악하는 활동이 이 전쟁과 직접 이어집니다. 보빙사는 1883년 미국에 보낸 사절단, 삼별초의 이동은 고려의 대몽 항쟁, 을미의병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계기이므로 모두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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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왕'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장용영을 창설하였다.
집현전을 설치하였다.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다.
사진 속 돌다리는 조선 제22대 왕이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가기 위해 만든 만안교로 소개되고 있으며, 옆에는 다리를 조성한 과정을 기록한 비석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의 제22대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를 수원 화성 인근의 현륭원으로 옮기고 자주 행차했는데, 그 행차 길에 놓은 다리가 만안교입니다. 화면 아래 태블릿에도 임금의 행차 행렬을 그린 그림이 나타나 있어 능행과 이어지는 자료임을 보여 줍니다.
정조는 왕권을 뒷받침할 친위 부대로 장용영을 창설했고, 규장각을 정비하고 초계문신제를 운영했으며 수원 화성을 축조했습니다. 집현전 설치는 세종, 척화비 건립은 흥선 대원군, 경국대전 반포는 성종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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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거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강화도 초지진에서 항전하였다.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하였다.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그림은 19세기 농민 봉기를 다룬 역할극 장면으로, 등장인물이 홍경래·우군칙·김창시이고 "광부를 모집한다고 알려 농민들을 모으겠다", "가산 다복동에서 거사하기로 정합시다", "격문은 제가 쓰겠습니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는 1811년(순조 11)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재현한 것입니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 내내 이어진 평안도(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과 세도 정치기의 수탈에 반발하여 일어났습니다. 몰락 양반 홍경래를 중심으로 지역의 상인·광산 노동자·농민이 결합하였고, 가산 다복동에서 봉기하여 청천강 이북 지역을 한때 장악하였으나 정주성에서 관군에게 진압되었습니다.
강화도 초지진에서의 항전은 신미양요·운요호 사건 등 외세의 침입에 맞선 싸움이고, 서경 천도와 금국 정벌 주장은 고려 인종 때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해당합니다. 제물포 조약은 임오군란의 결과로 체결된 조약이므로 이 봉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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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이익
김정희
박제가
유성룡
그림 속 설명은 이 작품이 "북경에 갔을 때 우정을 나눈 청의 화가 나빙이 선물한 것"이며, 해당 인물은 "4차례 연행길에 올라 청의 지식인들과 교유하였고, 청의 제도와 문물을 소개한 북학의를 저술하였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박제가입니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으로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되었고, 여러 차례 청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북학의를 지어 수레와 배의 이용, 통상 확대, 상공업 진흥을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절약보다 소비를 강조하며 재물을 우물에 비유한 논리로 유명합니다.
이익은 성호사설을 남기고 한전론을 주장한 중농학파이고, 김정희는 금석과안록과 추사체로 알려진 19세기 학자이며,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경과를 기록한 징비록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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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서원 철폐에 반대하는 양반
배재 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
탕평비 건립을 바라보는 유생
만민 공동회에서 연설하는 백정
다큐멘터리 기획안의 제목은 "흥선 대원군, 통치 체제를 정비하다"이며, 기획 의도에 "1863년 고종의 즉위로 실권을 장악한 흥선 대원군이 추진하였던 정책을 조명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내용은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체제 재정비,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확충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비변사를 축소·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렸으며, 대전회통·육전조례를 편찬하였습니다. 또한 붕당의 근거지이자 면세 특권을 누리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호포제와 환곡을 개선한 사창제를 시행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원 철폐에 반대하는 양반의 모습이 이 시기 장면으로 적절합니다.
배재 학당은 1885년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학교이고, 탕평비는 18세기 영조가 성균관 앞에 세운 것이며, 만민 공동회에서 백정이 연설한 일은 1898년 독립 협회 활동 시기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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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대답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①
②
③
④
선생님이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에 대해 말해 볼까요?"라고 묻고, 학생들이 각각 과전법이 실시되었다, 모내기법(이앙법)이 확산되었다,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되었다, 장시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라고 답하는 장면입니다.
이 가운데 과전법은 1391년 고려 말 공양왕 때 신진 사대부가 마련한 토지 제도로, 경기 지역의 토지에 한하여 전·현직 관리에게 수조권을 준 제도입니다. 조선 전기에 직전법을 거쳐 명종 때 사실상 소멸하였으므로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을 묻는 대답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모내기법 확산으로 이모작과 광작이 가능해졌고, 숙종 때 법화로 채택된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으며, 15세기 후반 등장한 장시가 조선 후기에는 전국 1,000여 곳으로 늘어 보부상이 이를 연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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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1점][근대 역사의 현장]
(가) 은/는 1884년 근대 우편 업무를 도입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개화당이 이곳에서 열린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삼아 (나) 을/를 일으켜 한동안 우편 업무가 중단되었다. 그 후 1895년 우체사가 설치되어 관련 업무가 재개되었다.
기기창
우정총국
군국기무처
통리기무아문
1884년 근대 우편 업무를 도입하기 위해 세워졌고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개화당이 정변을 일으킨 곳이라는 설명에서 (가)가 우정총국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우편 업무가 중단되었다가 1895년 우체사가 설치되면서 재개되었다. 기기창은 근대식 무기를 제조하던 공장, 군국기무처는 갑오개혁의 정책을 의결한 기구,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개화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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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개항기 이후 여러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가) 삼정의 문란으로 진주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자, 정부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해 사태를 조사·수습하였다.
(나) 프랑스군이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도서가 약탈되었다.
(다) 급진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정변을 일으켰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였으며,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한성 조약이 체결되었다.
(라)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제국을 수립하였고,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되 새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을 개혁 원칙으로 내세웠다.
(나)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구본신참을 개혁 원칙으로 내세웠다.
한성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태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가)는 1862년 임술농민봉기(진주민란) — 삼정의 문란이 원인이 되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됐다(④). (나)는 1866년 병인양요 —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했다(③). (다)는 1884년 갑신정변 — 실패 후 한성 조약이 체결됐다(②). (라)는 1897년 대한제국 수립·광무개혁 — 구본신참을 원칙으로 내세웠다(①).
따라서 (나)에 해당하는 설명은 ③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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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별기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조선 총독부의 탄압과 방해로 실패하였다.
집강소를 중심으로 폐정 개혁안을 실천하였다.
신문 기사는 "(가)의 국가 기념일, 5월 11일로 지정되다"라는 제목 아래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물리친 5월 11일(음력 4월 7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가)는 1894년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을 기치로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 외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봉기한 사건"이라고 전하며 황토현 전적비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이는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서 시작된 봉기는 백산에서 재봉기하여 황토현·황룡촌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전주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정부가 청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보내자 농민군은 전주 화약을 맺고 물러났고, 이후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탐관오리 처벌과 노비 문서 소각 등 폐정 개혁안을 실천하였습니다.
별기군 창설은 1881년 개화 정책의 일환이고, 대구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한 것은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이며, 조선 총독부의 방해로 실패한 것은 1920년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으로 시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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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설명 카드에는 "1897년 고종이 하늘에 제사 지내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장소이다. 국권 피탈 이후 일제가 헐어버렸고, 현재는 부속 건물인 황궁우가 남아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사진 자료 가운데 환구단(원구단)입니다.
고종은 아관 파천 이후 경운궁으로 환궁한 뒤 1897년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국호를 대한 제국, 연호를 광무로 선포하였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의식은 황제국의 상징이었기에 환구단 건립 자체가 자주 독립국임을 드러내는 조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사진 중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 사직단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 광혜원은 1885년 설립된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황제 즉위식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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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장을 펼친 단체로 옳은 것은? [2점]
권업회
근우회
보안회
토월회
그림은 종로 거리에서 상인과 유생들이 시위하는 장면으로, "일본은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철회하라!", "조그마한 땅도 절대 넘겨줄 수 없다!"라는 구호가 나옵니다. 1904년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맞서 조직된 단체는 보안회입니다.
보안회는 송수만·원세성 등이 중심이 되어 연일 집회를 열고 반대 여론을 모았으며, 결국 일본이 요구를 철회하게 만든 성공적인 국권 수호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일제의 압력으로 해산되었으나 그 흐름은 헌정 연구회, 대한 자강회로 이어졌습니다.
권업회는 1911년 연해주 신한촌에서 결성된 한인 단체, 근우회는 1927년 신간회의 자매 단체로 창립된 여성 운동 단체, 토월회는 1923년 결성된 신극 운동 단체이므로 황무지 개간권 반대 운동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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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해당하는 신문으로 옳은 것은? [1점]
한국사 사전 검색 결과에는 "1896년 서재필 등이 창간",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발행",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라는 세 가지 정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신문은 보기 사진 가운데 독립신문입니다.
독립신문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창간되었으나 민간이 발행한 최초의 신문으로, 순 한글로 기사를 실어 민중의 이해를 도왔고 영문판을 두어 국내 사정을 국외에 알렸습니다. 이후 서재필 등은 독립 협회를 창립하고 독립문 건립과 만민 공동회 개최를 주도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신문 중 제국신문은 1898년 부녀자와 서민을 대상으로 순 한글로 발행되었고, 해조신문은 1908년 연해주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며,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창간하여 국채 보상 운동을 적극 지원한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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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조약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외교권 박탈
천주교 포교 허용
화폐 정리 사업 실시
대한 제국 군대 해산
자료는 호머 헐버트를 소개하면서 그가 육영 공원의 교사로 초빙되어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었고, "1905년 일제에 의해 (가)가 강제로 체결되자 그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파견된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지원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1905년에 강제로 체결된 이 조약은 을사늑약(제2차 한일 협약)입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였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고종은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였습니다.
천주교 포교 허용은 1886년 조·프 수호 통상 조약의 내용이고, 화폐 정리 사업은 1904년 제1차 한일 협약으로 파견된 재정 고문 메가타가 추진한 것이며, 대한 제국 군대 해산은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체결된 1907년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에 따른 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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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대성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였습니다.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습니다.
수업 장면에서 화면에 제시된 시는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님의 침묵이고, 교사는 이 시가 만해 한용운의 작품이며 그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하였다고 설명합니다. 빈칸에는 한용운의 또 다른 활동이 들어가야 합니다.
한용운은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여 불교계의 낡은 관습과 미신적 요소를 비판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불교 개혁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일제가 사찰령으로 불교를 통제하려 하자 이에 맞서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려 하였고, 잡지 유심을 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성 학교를 세운 인물은 안창호, 잡지 어린이를 발간한 인물은 천도교 소년회의 방정환이며, 해동 천태종을 개창한 인물은 고려 시대의 승려 의천이므로 한용운의 활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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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 한것은? [2점]
(가) - (나) - (다)
(가) - (다) - (나)
(나) - (가) - (다)
(다) - (나) - (가)
그림은 세 장면을 (가)·(나)·(다)로 보여 줍니다. (가)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 (나)는 홍범도가 이끈 봉오동 전투 승리 장면, (다)는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장면입니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국권 피탈 이전인 1909년의 일입니다. 안중근은 만주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이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입니다. 윤봉길의 의거는 1932년,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 단원으로서 상하이 훙커우 공원의 일본군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 사건입니다.
따라서 세 사건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 승리 →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순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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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이 책'으로 옳은 것은? [3점]
그림의 대담 장면에서 나온 단서는 두 가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단재 신채호가 저술했다는 점, 그리고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기록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두 설명에 모두 들어맞는 책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입니다. 신채호는 이 책의 총론에서 "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규정하고, 우리 고대사를 민족 주체의 시각에서 서술하여 식민 사관에 맞섰습니다.
보기에 함께 제시된 책들은 시기와 저자가 다릅니다. 제왕운기는 고려 후기 이승휴가 지은 서사시 형식의 역사서이고, 동사강목은 조선 후기 안정복이 강목체로 정리한 통사이며, 연려실기술은 조선 후기 이긍익이 조선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기사본말체로 엮은 책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그림 속 말풍선은 의열단원인 (가)가 조선 식산 은행과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은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금을 수탈하던 대표적인 경제 침탈 기구였습니다.
이 의거를 일으킨 인물은 나석주입니다. 나석주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단원으로, 1926년 서울에서 두 기관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의 활동은 성격이 다릅니다. 김규식은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었고, 안창호는 신민회와 흥사단을 이끌며 실력 양성에 힘썼으며, 이육사는 저항시를 남긴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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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단체의활동으로 옳은 것은? [3점]
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정부에 헌의 6조를 건의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였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그림의 창립 총회 무대에 걸린 강령은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이며, 아래 현판에는 1927년 2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이 강령과 날짜로 알 수 있는 단체는 신간회입니다. 신간회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손잡고 결성한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합법적 민족 운동 단체로, 자치론을 주장하던 타협적 세력을 '기회주의'로 규정하여 배격하였습니다.
신간회는 전국에 지회를 두고 민중 계몽과 노동·농민 운동을 지원하였으며,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이를 전국적인 항일 운동으로 확산시키려 민중 대회를 계획하였습니다.
다른 활동들은 주체가 따로 있습니다. 독립 공채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헌의 6조 건의는 독립 협회, 한글 맞춤법 통일안 발표는 조선어 학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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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독립군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고종의 밀지을 받아 조직되었다.
간도 참변 이후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 승리하였다.
그림 속 해설자는 사진을 가리키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1940년 중국 충칭에서 창설한 (가)의 훈련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부대는 한국광복군입니다.
한국광복군은 임시 정부의 정규 군대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정진군을 훈련시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실행 직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기 다른 조직의 것입니다.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된 것은 독립 의군부, 간도 참변 이후 자유시로 이동한 것은 대한 독립 군단,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 등 연합 부대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지역을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2점]
(가)
(나)
(다)
(라)
지도에는 (가) 서울, (나) 전주, (다) 경주, (라) 충주가 표시되어 있고, 학생들은 각각 "고구려의 한강 유역 진출을 알려 주는 비석이 있다", "김윤후가 몽골군에 항전한 곳", "신립이 탄금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 설명이 모두 가리키는 지역은 충주입니다. 충주 고구려비는 5세기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진출했음을 보여 주는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승려 출신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노비들과 힘을 합쳐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 냈고, 임진왜란 때는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지역은 지도에서 중부 내륙에 표시된 충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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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3점]
원산 총파업
제암리 사건
제주 4·3 사건
부마 민주 항쟁
그림 속 설명에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되었으며, 2000년에 진상 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었다는 단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조건에 들어맞는 사건은 제주 4·3 사건입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선거인 5·10 총선거에 반대하며 제주도에서 무장 봉기가 일어났고,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 세 개 선거구 가운데 두 곳에서는 5·10 총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 조사와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사건들은 시기와 성격이 다릅니다. 원산 총파업은 일제 강점기의 노동 운동, 제암리 사건은 3·1 운동 당시 일제의 학살 만행, 부마 민주 항쟁은 유신 체제 말기의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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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은 것은? [3점]
그림은 '사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필름 형태로, 5·10 총선거 실시 → (가) →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활동의 흐름을 보여 줍니다. 앞뒤 사건 사이에 들어갈 장면을 찾는 문제입니다.
5·10 총선거는 1948년 5월에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보통 선거로, 이 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헌법을 만들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습니다. 그 결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되었습니다.
이어 제헌 국회는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1948년 말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여 친일 행위자 조사에 나섰습니다. 따라서 두 장면 사이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사진이 들어가야 합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신탁 통치 반대 운동과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는 총선거 이전인 광복 직후(1945~1946년)의 일이고, 베트남 전쟁 파병은 1960년대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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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흥사단 결성
서전서숙 설립
한국통사 저술
남북 협상 추진
탐구 활동 계획서의 주제는 백범 김구의 독립 운동과 광복 이후 활동이며, 내용으로 한인 애국단 조직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이 이미 적혀 있고, 가 볼 곳으로 경교장과 백범 김구 기념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앞의 두 항목은 광복 이전의 활동이므로, 빈칸에는 광복 이후의 활동이 들어가야 합니다. 김구는 광복 후 경교장에 머물며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48년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평양으로 가서 북측 지도자들과 통일 정부 수립을 논의하는 남북 협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것이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내용입니다.
다른 항목들은 인물이 다릅니다. 흥사단을 결성한 인물은 안창호, 북간도에 서전서숙을 세운 인물은 이상설, 한국통사를 저술한 인물은 박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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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사에 해당하는 세시 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설날
단오
추석
한식
그림의 현수막에는 "수릿날 맞이 체험 행사"와 "2020년 6월 25일(음력 5월 5일)"이 적혀 있고, 좌우 팻말에는 창포물에 머리 감기 체험과 수리취떡 만들기 체험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음력 5월 5일을 가리키는 명절이자 수릿날이라고도 불리는 세시 풍속은 단오입니다. 모내기를 마치고 풍년을 기원하던 날로, 여름을 앞두고 더위와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는 풍습이 발달했습니다.
단오에는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액운을 막고, 수리취를 넣어 수레바퀴 모양으로 빚은 수리취떡을 먹었습니다. 이 밖에 그네뛰기와 씨름을 즐기고 부채를 주고받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다른 명절은 날짜가 다릅니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며,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찬 음식을 먹고 조상의 산소를 돌보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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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전쟁'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인천 상륙 작전이 전개되었다.
여수·순천 10·19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화면 속 방송은 임시 수도 부산을 비롯한 곳곳에 천막 학교가 세워져 전쟁 중에도 수업이 진행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아래 자막은 '피란 중에도 천막 학교 운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외에 모여 앉아 수업을 받는 학생들 사진과 함께 제시된 이 장면은 6·25 전쟁(1950~1953) 시기의 모습입니다.
부산이 임시 수도로 기능한 것은 1950년 8월부터 1953년 8월까지로,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린 뒤 정부가 남쪽으로 피란한 결과였습니다. 이 전쟁 중에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해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어긋납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조직은 1945년 8월 광복 직후, 여수·순천 10·19 사건은 1948년으로 모두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일이며, 금융 실명제 실시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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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신 체제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다.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반대하여 일어났다.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사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 운동으로 정부는 국민의 직선제 요구를 수용해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유신 체제 붕괴는 1979년 부마 민주 항쟁과 관련되고, 3·15 부정 선거 항의는 1960년 4·19 혁명, 시민군 조직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의 특징이므로 (가)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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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은 것은? [2점]
사진전의 제목은 '1970년대 대한민국 사진전 - 경제 분야'이고, 이미 걸린 두 장의 사진은 경부 고속 도로 개통과 포항 종합 제철 공장 준공입니다. 따라서 빈 액자에는 1970년대 경제 분야의 사건을 담은 사진이 들어가야 합니다.
경부 고속 도로는 1970년에 개통되었고 포항 종합 제철 공장은 1973년에 준공되었습니다. 같은 흐름에서 우리나라는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으며, '100억불 수출의 날' 아치가 걸린 거리 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므로 빈칸에 알맞습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1980년대 이후입니다. 서울 올림픽 대회 개최는 1988년,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정상 회의 개최는 2005년(부산),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1996년의 일이어서 1970년대 전시에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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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은'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2점]
남북 조절 위원회를 개최하였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최초로 남북 간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일기에는 2000년이라는 연도와 함께 '남북 정상 회담이 처음 열린 날'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났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정부는 김대중 정부입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 정상 회담의 결과로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을 계기로 이산가족 방문, 경의선 복원, 개성 공단 조성 합의 등 남북 교류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다른 사실들은 시기가 다릅니다. 남북 조절 위원회 개최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박정희 정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1991년 노태우 정부,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전두환 정부 때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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