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1[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보기>는 일제가 제정한 법령의 일부이다.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가) 태형은 수형자를 형판 위에 엎드리게 하고 그 자의 양팔을 좌우로 벌리게 하여 형판에 묶고 양 다리도 같이 묶은 후 볼기 부분을 노출시켜 태로 친다.
    (나)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한 때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 할 수 있다.
    1
    (가) - 일제의 헌병 경찰이 집행하였다.
    2
    (가) - 조선인, 일본인 구분 없이 적용되었다.
    3
    (나) -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강제 폐간으로 이어졌다.
    4
    (나) -인력뿐 아니라 물자까지도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해설

    (가) 조선 태형령이 조선인과 일본인 구분 없이 적용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태형령은 조선인에게만 적용된 차별적 법령이었다.

    '태로 친다'는 태형 집행 규정이므로 (가)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조선 태형령, '국가 총동원상 필요한 때', '징용' 규정이 있는 (나)는 1938년 제정된 국가 총동원법이다.

    • 무단 통치기에는 헌병 경찰이 즉결 처분권을 가지고 태형을 집행하였다.
    • 국가 총동원법 이후 전시 통제가 강화되면서 1940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었다.
    • 국가 총동원법을 근거로 징용·징병 같은 인력과 함께 금속·식량 등 물자도 수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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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 운동이 추진된 시기의 활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
    국채 1,300만원은 바로 우리 대한의 존망에 직결된 것이다. 갚으면 나라가 존재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대세가 반드시 그렇게 이르는 것이다. 2천만 인이 3개월동안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1인마다 20전씩 징수하면 1,300만 원이 될 수 있다. 우리 2천만 동포 중에 애국 사상을 가진 이는 기어이 이를 실시해서 삼천리 강토를 유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1
    관민 공동회를 개최하고 헌의 6조를 채택하였다.
    2
    군대 해산에 반발한 의병 투쟁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3
    자강회 계열과 천도교 간부들이 대한협회를 조직하였다.
    4
    신교육 보급을 위한 사립학교들이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해설

    관민 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채택한 것은 1898년 독립 협회의 활동이므로 이 시기의 활동으로 옳지 않다.

    '국채 1,300만 원'을 '담배를 끊고' 모은 돈으로 갚자는 내용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이다. 이 무렵은 을사늑약 이후 애국 계몽 운동과 의병 투쟁이 활발하던 시기이다.

    • 1907년 한·일 신협약 직후 군대 해산에 반발한 해산 군인이 합류하며 정미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 1907년 대한 자강회를 계승해 자강회 계열과 천도교 인사들이 대한 협회를 조직하였다.
    •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신교육을 위한 사립학교가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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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가)와 (나) 시기 사이에 있었던 사실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가) 백제는 개국 이래로 문자로 사적(事蹟)을 기록함이 없더니, 이에 이르러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
    (나) 태학박사 이문진에게 명하여 고사(古史)를 축약하여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보기>
    ㄱ. 백제가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겼다.
    ㄴ. 고구려가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다.
    ㄷ. 신라가 대가야를 정벌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하였다.
    ㄹ. 고구려가 옥저와 동예를 정복하고 동해안으로 진출하였다.
    1
    ㄱ,ㄴ
    2
    ㄱ,ㄷ
    3
    ㄴ,ㄹ
    4
    ㄷ,ㄹ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백제의 사비 천도와 신라의 대가야 정벌이다.

    '박사 고흥'이 '서기'를 편찬한 것은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 때이고, '이문진'이 '신집 5권'을 편찬한 것은 600년 고구려 영양왕 때이다. 성왕의 사비 천도는 538년, 진흥왕의 대가야 정벌은 562년이므로 두 기준 사이에 든다.

    • 고구려의 천리장성 축조는 631년에 시작된 7세기의 일이라 (나) 이후이다.
    • 고구려가 옥저와 동예를 정복한 것은 1~2세기 태조왕 때의 일이라 (가) 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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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과 관련 있는 왕이 시행한 정책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쌍기가 귀화한 이후로부터 문사를 존중하여 은혜와 예가 너무 융숭하니, 재주 없는 자가 외람되어 갑자기 승진하여 한 해 안에 경상(卿相)이 되었다. 멀리 중국 남방과 북방의 용렬한 사람까지도 특별한 예로써 접대하니, 이 때문에 젊은 문사들이 다투어 진출하고 옛 덕망 있는 사람들이 점차 쇠진하였다.
    - 『고려사』 -
    <보기>
    ㄱ. 승과제도의 시행
    ㄴ. 개정 전시과의 제정
    ㄷ. 광덕, 준풍의 연호 사용
    ㄹ. 경학박사와 이학박사의 지방 파견
    1
    ㄱ,ㄴ
    2
    ㄱ,ㄷ
    3
    ㄴ,ㄹ
    4
    ㄷ,ㄹ
    해설

    제시된 왕은 광종이며, 광종의 정책은 승과 제도 시행과 광덕·준풍 연호 사용이다.

    후주에서 온 '쌍기'의 귀화를 계기로 문사를 우대했다는 내용은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실시한 광종 때의 일이다. 광종은 승과를 두고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써서 왕권을 과시하였다.

    • 개정 전시과는 목종 때 제정되었다.
    • 경학박사 등을 지방에 파견해 교육을 맡긴 것은 성종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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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동학도들은 각 읍에 할거하여 공해(公廨)에 ( ㉠ )을/를 세우고 서기, 성찰, 집사, 동몽 등을 두어 완연한 하나의 관청으로 삼았다. 이른바 고을 수령은 다만 이름이 있을 뿐 행정을 맡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고을 수령들을 추방하니 이서배(吏胥輩)들은 모두 동학당에 들어 성명(性命)을 보존하였다.
    - 『갑오약력』 -
    1
    사발통문의 작성에 앞장섰다.
    2
    교조 신원 운동을 주도하였다.
    3
    관군과 협상하여 전주 화약을 체결하였다.
    4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탐관오리를 응징하였다.
    해설

    ㉠은 집강소로,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탐관오리를 응징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동학도'가 각 읍의 '공해(관아)'에 세우고 서기·성찰 등을 둔 기구는 전주 화약 이후 전라도 일대에 설치된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이다. 집강소는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 사발통문은 고부 봉기 직전 전봉준 등 농민 지도자들이 작성하였다.
    • 교조 신원 운동은 집강소 설치 이전 동학교도들이 최제우의 명예 회복을 요구한 운동이다.
    • 전주 화약은 농민군이 정부와 맺은 것이고, 집강소는 그 결과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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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 글을 쓴 인물의 저술로 옳은 것은?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으나 그 역사는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형체는 없어져 버렸지만, 정신은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역사를 쓰는 까닭이다. 정신이 살아서 없어지지 않으면 형체도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1
    조선사연구초
    2
    조선사회경제사
    3
    한국독립운동지혈사
    4
    오천년간 조선의 얼
    해설

    글쓴이는 박은식이며, 그의 저술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이다.

    '나라는 형체, 역사는 정신'이라 하여 국혼을 강조한 글은 박은식의 『한국통사』 서문이다.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항일 투쟁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 『조선사연구초』는 신채호의 저술이다.
    • 『조선사회경제사』는 사회 경제 사학자 백남운의 저술이다.
    • 『오천년간 조선의 얼』은 '얼'을 강조한 정인보의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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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보기>의 사실들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였다.
    ㄴ.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속오법에 따라 지방군을 편제하였다.
    ㄷ. 일본에 부산포, 제포, 염포 등 3포를 개방하여 제한된 범위에서 교역을 허용하였다.
    ㄹ. 중앙에서 파견되는 장수로 하여금 방어지역의 병력을 지휘하게 하는 제승방략 체제를 수립하였다.
    1
    ㄱ - ㄴ - ㄷ - ㄹ
    2
    ㄱ - ㄷ - ㄹ - ㄴ
    3
    ㄷ - ㄱ - ㄴ - ㄹ
    4
    ㄷ - ㄹ - ㄱ - ㄴ
    해설

    순서는 화통도감 설치 → 3포 개방 → 제승방략 체제 → 훈련도감 설치이다.

    화통도감은 고려 말 우왕 때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3포 개방은 조선 세종 때 왜구를 회유하기 위한 조치이다.

    제승방략 체제는 16세기 진관 체제의 한계를 보완하려고 수립되었고, 훈련도감 설치와 속오법에 따른 지방군 편제는 그 뒤 임진왜란 중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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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과 같이 주장한 실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대체로 재물은 비유하건대 샘과 같은 것이다. 퍼내면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성들의 기술이 쇠퇴하고, 쭈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나라의 수공업자들이 기술을 열심히 익히는 일이 없게 되면 기예가 망하게 된다.
    1
    지구 자전설을 주장하였다.
    2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하였다.
    3
    수례와 선박의 이용을 역설하였다.
    4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해설

    제시된 실학자는 박제가이며, 지구 자전설을 주장한 사람은 홍대용이므로 이 설명이 옳지 않다.

    재물을 '샘'에 비유하여 퍼내야 찬다고 한 것은 『북학의』에서 소비를 통해 생산을 자극해야 한다고 본 박제가의 주장이다.

    • 박제가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하였다.
    • 수레와 선박을 이용해 상공업과 유통을 진흥할 것을 강조하였다.
    • 청에 다녀온 뒤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자는 북학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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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 남북 간 합의의 배경으로 옳은 것은?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 통일 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 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1
    동아시아에 데탕트 정세가 조성되었다.
    2
    남북 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3
    정부가 6⦁3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을 선언하였다.
    4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는 북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해설

    이 합의의 배경은 동아시아의 데탕트(긴장 완화) 정세이다.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의 3대 원칙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의 내용이다. 닉슨 독트린과 미·중 화해로 냉전 긴장이 완화되자 남북 대화가 시작되었다.

    •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채택된 것으로 이 합의보다 뒤이다.
    •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은 1973년에 나온 것으로 공동 성명 이후의 일이다.
    • 공산권 국가와 수교한 북방 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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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밑출 진 ‘이 시대’에 대한 옳은 설명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은 씨족별로 대략 20~30명씩 무리를 이루어 사냥과 고기잡이, 채집 등을 행하며 공동체적인 삶을 영위하였다. 도구와 기술이 뒤떨어져서 공동으로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였고, 채집 생활도 함께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기>
    ㄱ. 집 근처의 텃밭을 이용하여 잡곡을 재배하였다.
    ㄴ. 마을 주위를 토성이나 목책, 도랑 등으로 에워쌌다.
    ㄷ. 특정 동물을 자기 부족의 기원과 연결시켜 숭배하였다.
    ㄹ.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부여 송국리, 고령 장기리가 있다.
    1
    ㄱ,ㄴ
    2
    ㄱ,ㄷ
    3
    ㄴ,ㄹ
    4
    ㄷ,ㄹ
    해설

    '이 시대'는 신석기 시대이며, 텃밭의 잡곡 재배와 토테미즘이 옳은 설명이다.

    '씨족'별로 무리를 이루어 사냥·고기잡이·채집을 함께하는 평등한 공동체 생활은 신석기 시대의 특징이다. 이 시기에 조·피 등 잡곡 농경이 시작되었고, 특정 동물을 부족의 기원으로 숭배하는 신앙이 나타났다.

    • 마을 둘레를 환호·목책으로 두른 것은 전쟁이 잦아진 청동기 시대의 모습이다.
    • 부여 송국리 유적과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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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는 것은?
    통일신라에서는 신문왕 때 ( ㉠ )을/를 설립하여 국가 운영에 필요한 학문과 기술을 교육하였다. 원성왕 때에는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는 ( ㉡ )을/를 마련하였다.
    1
    ㉠ - 박사와 조교를 두어 예기와 문선 등을 가르쳤다.
    2
    ㉡ - 골품제 때문에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3
    ㉠,㉡ - 학문과 유학을 보급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4
    ㉠,㉡ - 당의 교육제도와 과거제도를 수용하여 운영하였다.
    해설

    국학과 독서삼품과가 당의 교육 제도와 과거 제도를 수용하여 운영되었다는 설명이 옳지 않다.

    신문왕이 세운 ㉠은 국학, 원성왕이 유교 경전 이해 수준으로 관리를 뽑은 ㉡은 독서삼품과이다. 독서삼품과는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신라의 독자적 제도로, 당의 과거제를 그대로 들여온 것이 아니다.

    • 국학에는 박사와 조교를 두어 『논어』, 『효경』, 『예기』, 『문선』 등을 가르쳤다.
    • 독서삼품과는 진골 귀족의 반발과 골품제의 한계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 두 제도 모두 유학을 보급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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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 내용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사실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조선 초기 집권층은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위해 과학 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중국과 아라비아의 과학기술을 폭넓게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게 수용하고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과학 기술을 지원하였다.
    1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이 도입되었다.
    2
    계미자, 갑인자와 같은 금속활자를 주조하였다.
    3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소개한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4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돌에 새겨 왕조의 권위를 표현하였다.
    해설

    시헌력 도입은 조선 후기 효종 때의 일이므로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 발달을 뒷받침하는 사실로 적절하지 않다.

    제시문은 조선 초기 집권층이 중국·아라비아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게 수용했다는 내용이다. 시헌력은 서양 역법을 반영한 청의 역법으로 17세기에 도입되었다.

    • 태종 때 계미자, 세종 때 갑인자 등 금속 활자를 주조하였다.
    • 세종 때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 태조 때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돌에 새겨 새 왕조의 권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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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은 6⦁5전쟁의 전개과정에 따른 전선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다. (가)~(라)를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문제 이미지
    1
    (다) - (나) - (라) - (가)
    2
    (다) - (라) - (가) - (나)
    3
    (라) - (가) - (다) - (나)
    4
    (라) - (다) - (나) - (가)
    해설

    6·25 전쟁의 전선은 (라) → (가) → (다) → (나) 순으로 변화하였다.

    개전 초 북한군에 밀려 국군과 유엔군은 대구·부산 일대의 낙동강 방어선(라)까지 후퇴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반격하여 신의주·청진 부근의 압록강 일대(가)까지 북진하였다.

    중국군 개입으로 1·4 후퇴를 겪으며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평택~삼척 부근(다)까지 밀렸다. 이후 재반격과 정전 협상 끝에 개성 남쪽에서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휴전선(나)에서 전선이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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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보기>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고려 문종의 아들로 태어났다.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론의 연마와 실천을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제창하였다.
    1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
    2
    종교 결사운동을 전개하였다.
    3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려 하였다.
    4
    천태종을 세워 교단의 통일을 도모하였다.
    해설

    제시된 인물은 의천이며, 천태종을 세워 교단 통합을 도모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문종의 아들'로 '교장도감' 설치를 건의하고 '교관겸수'를 제창한 승려는 대각국사 의천이다. 의천은 교종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고자 해동 천태종을 열었다.

    • 유불 일치설을 주장한 것은 무신 집권기의 혜심이다.
    • 신앙 결사 운동은 지눌의 수선사, 요세의 백련사 결사가 대표적이다.
    •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한 것은 지눌의 정혜쌍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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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고려시대의 사회시책과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상평창을 두어 물가 안정을 꾀하였다.
    2
    동⦁서대비원을 설치하여 환자 진료를 담당하게 하였다.
    3
    혜민국을 두어 유랑자의 수용과 구휼을 담당하게 하였다.
    4
    기금으로 운영하는 제위보를 두어 빈민을 구제하게 되었다.
    해설

    혜민국은 유랑자 수용이 아니라 백성에게 의약을 지급하던 기관이므로, 혜민국을 유랑자 수용·구휼 기관으로 설명한 것이 옳지 않다.

    고려는 빈민 구제와 의료를 위해 여러 기관을 두었는데, 환자 치료와 빈민·유랑자 구휼은 동·서대비원이 맡았다.

    • 상평창: 곡물 가격이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내다 팔아 물가를 조절하였다.
    • 동·서대비원: 개경 동쪽과 서쪽에 두어 환자 진료와 빈민 구휼을 담당하였다.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하고 그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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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인 ( ㉠ )은/는 북쪽으로는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남쪽으로는 신라와 국경을 접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후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인들은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1
    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하였다.
    2
    처음으로 ‘발해’를 정식 국호로 삼았다.
    3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를 완비하였다.
    4
    장문휴에게 명하여 산둥반도를 공격하게 하였다.
    해설

    ㉠은 발해 선왕으로,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를 완비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으로 말갈족 대부분을 복속하고 '해동성국'이라 불리는 전성기를 이끈 왕은 선왕이다. 선왕은 넓어진 영토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였다.

    • 중경에서 상경으로 수도를 옮긴 것은 문왕이다.
    • 당으로부터 '발해 국왕'으로 책봉되어 국호를 발해로 쓰기 시작한 것은 문왕 때이다.
    •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의 등주를 공격한 것은 무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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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과 같은 생활 풍습이 있는 초기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과 곡식을 거두어들인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때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면서 밤낮으로 즐겼다.
    1
    족외혼을 엄격하게 지켰다.
    2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3
    식구가 죽으면 살던 집을 헐어 버렸다.
    4
    신지, 읍차라고 불리는 지배자가 존재하였다.
    해설

    제시된 나라는 삼한이며, 신지·읍차라 불리는 지배자가 있었다는 설명이 옳다.

    씨를 뿌린 '5월'과 곡식을 거둔 '10월'에 제사를 지내며 밤낮으로 즐긴 것은 삼한의 계절제이다. 삼한에서는 세력이 큰 지배자를 신지·견지, 작은 지배자를 읍차·부례라 불렀다.

    • 족외혼을 엄격히 지킨 것은 동예의 풍속이다.
    • 혼인 후 신부 집 뒤에 서옥을 짓고 사는 서옥제는 고구려의 풍습이다.
    • 식구가 죽으면 살던 집을 헐거나 버린 것은 동예의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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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다음은 붕당정치의 전개과정이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효종이 죽자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복제(服制) 문제로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과 허목 등 남인 간에 예송(禮訟)이 발생하였다.
    ⇩
    (가)
    ⇩
    영조는 산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조 전랑의 인사 권한을 축소하였다.
    1
    사람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되었다.
    2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나타났다.
    3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였다.
    4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환국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해설

    (가)에는 환국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내용이 들어간다.

    앞은 현종 때 자의대비 복제를 둘러싼 예송, 뒤는 영조의 탕평 정치이다. 그 사이 숙종 때 집권 붕당이 급격히 교체되는 환국이 거듭되면서 붕당 정치가 변질되었다.

    •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것은 선조 때로 예송보다 앞선다.
    • 북인이 정권을 독점한 것은 광해군 때로 예송보다 앞선다.
    • 세도 정치는 정조 사후 순조 때부터 나타나 영조보다 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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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밑출 친 한자성어의 사용이 가장 적절한 것은?
    1
    그가 이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쏟은 각고의 노력은 한마디로 隔靴搔癢이 아닐 수 없다.
    2
    프랑스 니스에서 벌어진 참혹한 테러 현장 보도를 보면서, 우리 시대가 여전히 康衢煙月이라고 생각했다.
    3
    夏爐冬扇이라더니, 꼼꼼한 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빈틈없이 살림을 준비하고 집안 단속에 여념이 없었다.
    4
    그가 내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조직을 제 편의대로 바꾸려는 것을 보면서, 指鹿爲馬가 옛말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설

    윗사람을 속이고 권세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상황에 指鹿爲馬(지록위마)를 쓴 문장이 가장 적절하다.

    지록위마는 진나라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 우기며 신하들을 시험한 고사로, 거짓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함을 뜻한다.

    • 隔靴搔癢(격화소양):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성에 차지 않음을 이르므로, 논문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표현하는 데 맞지 않다.
    • 康衢煙月(강구연월): 태평한 시대의 평화로운 풍경을 뜻하므로, 참혹한 테러가 벌어지는 시대를 가리키는 데 맞지 않다.
    • 夏爐冬扇(하로동선):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곧 철에 맞지 않아 쓸모없는 것을 뜻하므로, 철마다 빈틈없이 살림을 준비하는 모습과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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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계리직 한국사] 16년 1회차
    밑출 친 한자어의 사용이 옳은 것은?
    1
    이자소득에 대해 비과세하거나 優待稅率을 적용하는 상품도 있다.
    2
    債貿證書와 주식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금융상품도 있다.
    3
    가계당좌예금이란 가계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개인용 當坐預金을 말한다.
    4
    MMF는 은행의 MMDA, 증권사 및 종합금융회사의 CMA 등과 經爭商品이다.
    해설

    세금을 낮춰 주는 세율이라는 뜻의 優待稅率(우대세율)이 바르게 쓰인 한자어이다.

    나머지는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다른 한자를 잘못 쓴 것으로, 뜻에 맞는 글자를 확인해야 한다.

    • 채무증서: '일·의무'를 뜻하는 '務'를 써서 債務證書로 써야 하며, 무역의 '貿'는 틀린 글자이다.
    • 당좌예금: 자리를 뜻하는 '座'를 써서 當座預金으로 써야 하며, 앉을 '坐'는 틀린 글자이다.
    • 경쟁상품: 다툴 '競'을 써서 競爭商品으로 써야 하며, 지날 '經'은 틀린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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