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1[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기록으로서의 역사’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되면 안 된다.
    2
    역사를 통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3
    사료와 역사적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4
    ‘사실로서의 역사’란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사실과 사건을 의미한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되면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역사가가 과거 사실을 선택·해석해 서술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 역사를 통해 현재 삶에 필요한 지혜와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역사 학습의 의의로 옳습니다.
    • 사료가 곧 진실은 아니므로 사료의 진위·신빙성을 따지는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는 설명은 옳습니다.
    • '사실로서의 역사'를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실과 사건으로 보는 것은 객관적 의미의 역사 정의로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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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 설명 중 역사적 시기가 다른 하나는?
    1
    황해도 봉산 지탑리에서 나온 탄화된 좁쌀을 통해 농경 흔적을 알 수 있다.
    2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나온 조개껍데기 가면을 통해 예술 활동 양상을 엿볼 수 있다.
    3
    단양 수양개에서 나온 물고기 조각을 통해 물고기가 잘 잡히기를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4
    평안남도 온천 궁산리에서 나온 뼈바늘을 통해 직조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해설

    시기가 다른 하나는 단양 수양개의 물고기 조각으로, 구석기 시대의 예술 활동을 보여 주는 유물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농경·예술·직조 생활을 보여 주는 유적·유물입니다.

    • 봉산 지탑리의 탄화된 좁쌀은 신석기 시대에 잡곡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 부산 동삼동 패총의 조개껍데기 가면은 신석기 시대의 예술 활동을 보여 줍니다.
    • 온천 궁산리의 뼈바늘은 신석기 시대에 옷이나 그물을 만드는 원시적 수공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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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평안도 농민전쟁(홍경래 난)의 역사적 배경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평안도민은 중앙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되었다.
    2
    봉기에 대한 호응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만큼 지역 차별이 극심하였다.
    3
    세도 정권이 서울 특권상인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평안도민의 상공업 활동을 억압했다.
    4
    평안도민 중 대외 무역과 광산 개발에 참여하여 부호로 성장한 인물이 많았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봉기에 대한 호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설명입니다.

    홍경래의 난은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과 세도 정치의 수탈을 배경으로 일어났지만, 봉기는 청천강 이북 지역에 국한되었고 전국적 호응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정주성에서 진압되었습니다.

    • 평안도민은 서북인 차별로 중앙 관직 진출 기회가 크게 제한되었습니다.
    • 세도 정권은 서울 특권 상인의 이익을 보호하며 평안도민의 상공업 활동을 억압했습니다.
    • 평안도에서는 대청 무역과 광산 개발로 부를 축적한 상인·부호층이 성장해 봉기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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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들을 모두 고른 것은?
    • ㄱ. 선조가 왜란이 끝나기 전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다.
    • ㄴ. 광해군을 추종한 북인은 동인 중에서 이황 문인을 제외한 파벌들이 연합한 붕당이었다.
    • ㄷ.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 실리정책을 폈다.
    • ㄹ. ‘인조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서인정권은 광해군의 대외정책을 계승하였다.
    1
    ㄱ, ㄴ
    2
    ㄴ, ㄷ
    3
    ㄱ, ㄷ
    4
    ㄱ, ㄹ
    해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사실로 옳은 것은 북인 정권의 성격과 광해군의 중립 외교이다.

    광해군을 떠받친 북인은 동인 가운데 이황 문인(남인)을 제외한 조식·서경덕 계열이 모인 붕당이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실리 외교를 펼쳤다.

    • 선조는 왜란이 끝난 뒤인 1608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 광해군이 즉위하였다. 왜란 중에 사망한 것이 아니다.
    •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은 광해군의 외교를 비판하며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섰고, 이것이 정묘·병자호란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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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임진왜란 이후 시행된 경제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6두로 고정시켰다.
    2
    군포를 연간 1필로 줄이면서 지주에게 토지 1결당 미곡 2두의 결작을 부담시켰다.
    3
    공납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하여 공물 대신 미곡⋅면포⋅화폐를 받았다.
    4
    세습으로 인한 과전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한 정책으로, 이는 조선 전기 세조 때의 직전법입니다.

    직전법은 과전의 세습화로 지급할 토지가 부족해지자 시행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정책이므로 왜란 이후의 경제 정책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전세를 풍흉과 관계없이 토지 1결당 미곡 4~6두로 고정한 것은 인조 때의 영정법입니다.
    • 군포를 1필로 줄이고 지주에게 결작을 부담시킨 것은 영조 때의 균역법입니다.
    • 공물 대신 미곡·면포·화폐를 거둔 것은 광해군 때 처음 시행된 대동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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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4⋅19혁명의 영향으로 볼 수 없는 것은?
    1
    내각책임제 정부와 양원제 의회가 출범하였다.
    2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법이 제정되었다.
    3
    부정축재자에 대한 처벌 요구가 높아졌다.
    4
    통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해설

    4·19 혁명의 영향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반민족행위자 처벌법의 제정입니다.

    반민족 행위 처벌법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제정된 것으로, 4·19 혁명(1960)보다 앞선 일입니다.

    • 4·19 혁명 이후 개헌으로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의회가 도입되어 장면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 혁명 이후 부정 선거 관련자와 부정 축재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 혁명 이후 혁신 세력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중립화 통일론, 남북 협상론 등 통일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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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과 관련된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조선 전기에 농업에서는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농서의 편찬과 보급, ㉡수리 시설의 확충 등 안정된 농업 조건을 만들기 위한 권농 정책이 추진되었다. 상공업에서는 ㉢시전의 설치, ㉣관영 수공업의 정비 등을 통하여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1
    ㉠-「농가집성」의 간행
    2
    ㉡-저수지 다수 축조
    3
    ㉢-관청 필수품 공급
    4
    ㉣-수공업자의 공장안 등록
    해설

    조선 전기의 농서 편찬과 짝지을 수 없는 것은 『농가집성』의 간행이다.

    『농가집성』은 양 난 이후인 효종 때 신속이 편찬해 이앙법 보급에 기여한 조선 후기 농서이다. 조선 전기의 대표 농서는 세종 때의 『농사직설』이다.

    • 조선 전기에는 벽골제 등 저수지를 수축·축조하여 수리 시설을 늘렸다.
    • 시전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대가로 특정 상품의 독점 판매권을 받았다.
    • 관영 수공업은 장인을 공장안에 등록해 관청에 소속시켜 필요한 물품을 만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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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마립간’ 대신 중국식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왕의 업적은?
    1
    병부를 설치하였다.
    2
    국학을 설치하였다.
    3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4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해설

    '마립간' 대신 '왕' 칭호를 처음 사용한 왕은 신라 지증왕이며, 그의 업적은 우산국 복속입니다.

    지증왕은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왕' 칭호를 사용했으며,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복속했습니다.

    • 병부를 설치한 왕은 법흥왕입니다.
    • 국학을 설치한 왕은 통일 이후의 신문왕입니다.
    • 대가야를 정복한 왕은 진흥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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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된 시기의 사회상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지금 양반이 명분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그들의 비루한 행동이 상공업자보다 심한 자가 많다. (중략) 상공업을 두고 천한 직업이라 하지만 본래 부정하거나 비루한 일은 아니다.
    1
    이익, 정약용 등이 토지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2
    미륵 사상이나 정감록 등이 민중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3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여 삼정 문란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4
    서민 생활을 반영하는 풍속화, 한글 소설, 판소리 등이 유행하였다.
    해설

    적절하지 않은 것은 교정청을 설치해 삼정 문란을 바로잡으려 하였다는 설명이다.

    양반도 상공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상공업 진흥론이다. 삼정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한 기구는 임술 농민 봉기 뒤의 삼정이정청이며, 교정청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뒤 자주적 개혁을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 조선 후기에는 이익의 한전론, 정약용의 여전론 등 토지 제도 개혁론이 제기되었다.
    • 사회 불안 속에 미륵 신앙과 『정감록』 같은 예언 사상이 민중에게 퍼졌다.
    • 서민 문화가 성장하여 풍속화, 한글 소설, 판소리 등이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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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조선시대의 예술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공예는 생활용품이나 문방구 등에서 특색있는 발달을 보였다.
    2
    분청사기와 백자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후기로 갈수록 분청사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3
    궁궐, 관아, 성문, 학교 건축이 발달했던 고려시대와 대조적으로 사원 건축이 발달하였다.
    4
    양반들은 장인들이 하는 일이라 하여 서예를 기피하였으나 그림은 필수적 교양으로 여겼다.
    해설

    옳은 것은 공예가 생활용품과 문방구 등에서 특색 있게 발달했다는 설명입니다.

    조선의 공예는 사치품보다 실용성을 중시해 목공예·화각·자개 등 생활용품과 문방구 분야에서 특색을 보였습니다.

    • 분청사기는 15세기에 유행했으나 16세기 이후 쇠퇴하고 점차 백자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 조선은 사원 건축이 발달한 고려와 달리 궁궐·관아·성문·학교 건축이 중심이었습니다.
    • 양반들은 서예를 필수 교양으로 여겨 중시했으며, 그림도 사대부의 교양으로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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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고려시대의 경제생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대외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당과의 무역이었다.
    2
    밭농사에는 2년 3작의 윤작법이 전기부터 일반화되었다.
    3
    조세, 공물, 부역 등을 부과하기 위해서 그 근거가 되는 양안과 호적을 작성하였다.
    4
    일본에서 수입된 주요 품목으로는 수은, 향료, 산호 등이 있다.
    해설

    옳은 것은 조세·공물·부역 부과의 근거로 양안과 호적을 작성했다는 설명입니다.

    고려는 토지 대장인 양안과 인구 대장인 호적을 작성해 토지와 인정(人丁)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 고려 대외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상대는 당이 아니라 송이었습니다.
    • 밭농사의 2년 3작 윤작법은 전기부터 일반화된 것이 아니라 고려 후기에 점차 보급되었습니다.
    • 향료·산호 등은 일본이 아니라 벽란도를 찾은 아라비아 상인이 가져온 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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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고려시대 노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노비는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었다.
    2
    노비는 매매, 증여, 상속의 대상이 되었고, 승려가 될 수 없었다.
    3
    소유주가 각기 다른 노와 비가 혼인하더라도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였다.
    4
    모든 노비는 독립된 경제생활을 영위하였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모든 노비가 독립된 경제생활을 영위했다는 설명입니다.

    독립된 경제생활을 한 것은 주인과 떨어져 살며 신공을 바치던 외거 노비이고, 주인집에 살며 잡일을 하던 솔거 노비는 독립된 경제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 외거 노비는 토지·가옥 등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증여·상속의 대상이 되었고, 승려가 될 수 없었습니다.
    • 소유주가 서로 다른 노와 비도 혼인해 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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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일제가 다음과 같은 취지의 조선교육령을 공포한 데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을 4년에서 6년으로, 고등보통학교는 4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
    • 조선인과 일본인의 공학을 원칙으로 한다.
    1
    헌병경찰 중심의 통치체제 하에서 낮은 수준의 실용 교육만 실시하고자 하였다.
    2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황국 신민화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였다.
    3
    만주침략을 감행하고 한국인을 동화시켜 침략 전쟁의 협조자로 만들고자 하였다.
    4
    3ㆍ1 운동 이후 격화된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무마하고자 하였다.
    해설

    제시된 조선교육령은 제2차 조선교육령으로, 3·1 운동 이후 격화된 반일 감정을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6년으로 연장', '조선인과 일본인의 공학 원칙'은 1922년 문화 통치기에 공포된 제2차 조선교육령의 내용이다. 겉으로는 일본과 같은 학제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차별이 이어진 기만적 유화 정책이었다.

    • 헌병 경찰 통치 아래 낮은 수준의 실용 교육을 추구한 것은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이다.
    • 만주 침략 이후 황국 신민화를 내세워 조선어를 선택 과목으로 돌린 것은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이다.
    • 태평양 전쟁 시기 전시 교육 체제를 강화한 것은 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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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일제 강점기 농민 운동에 대한 서술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것은?
    • ㄱ. 초기 소작쟁의의 요구 사항은 주로 소작권 이동 반대, 소작료 인하 등이었다.
    • ㄴ. 일본인 농장·지주회사를 상대로 한 소작쟁의는 규모도 크고 격렬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 ㄷ. 1920년대 농민들은 자위책으로 소작인조합 등의 농민단체를 결성하였다.
    • ㄹ. 소작인조합은 1940년대 이후 자작농까지 포괄하는 농민조합으로 바뀌어갔다.
    1
    ㄱ
    2
    ㄱ, ㄴ
    3
    ㄱ, ㄴ, ㄷ
    4
    ㄱ, ㄴ, ㄷ, ㄹ
    해설

    옳은 서술은 ㄱ, ㄴ, ㄷ이며, 농민조합으로의 전환 시기를 1940년대로 본 ㄹ만 틀렸다.

    1920년대 초 소작쟁의는 소작권 이동 반대와 소작료 인하를 주로 요구했고, 동양 척식 주식회사 같은 일본인 농장·지주 회사를 상대로 한 쟁의는 규모가 크고 격렬하였다. 농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소작인조합을 결성하였다.

    • 소작인조합이 자작농까지 아우르는 농민조합으로 바뀐 것은 192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40년대에는 전시 통제로 합법적인 농민 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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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1945년 12월에 개최된 모스크바3상회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회의에서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소련은 4개국 신탁통치를 제안하였다.
    2
    김구, 이승만 등은 격렬한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펼쳤다.
    3
    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국, 소련 양국군 대표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4
    조선공산당은 모스크바3상회의 지지 시위를 벌였다.
    해설

    옳지 않은 것은 미국이 즉시 독립을, 소련이 신탁 통치를 제안했다는 설명입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신탁 통치안을 제안한 쪽은 미국이었고, 소련은 임시 정부 수립을 우선하는 안을 냈으며, 결과적으로 임시 정부 수립과 최대 5년간의 신탁 통치가 결정되었습니다.

    • 김구·이승만 등 우익 세력은 결정이 알려지자 격렬한 반탁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결정에 따라 임시 정부 수립을 협의하기 위한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습니다.
    • 조선 공산당 등 좌익 세력은 결정의 총체적 지지로 돌아서 지지 시위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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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의 역사적 사실과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목판 인쇄술의 발달, 청동 주조 기술의 발달, 인쇄에 적합한 먹과 종이의 제조 등이 어우러져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주조하여 「고금상정예문」을 인쇄하였다.
    1
    난립한 교종의 종파를 화엄종 중심으로 재확립하기 위해 균여를 귀법사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2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하여 반기를 들었으며, 진도로 거점을 옮겨 항몽전을 전개하였다.
    3
    사림원을 설치하여 개혁정치를 추진하고, 관료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관제를 바꾸었다.
    4
    화약 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화약무기를 제조하였다.
    해설

    제시된 사실과 시기가 가장 가까운 것은 삼별초의 항몽 투쟁이다.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한 것은 무신 정권기 최우 집권 때인 1234년 무렵이다. 삼별초는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발해 진도로 거점을 옮겨 대몽 항쟁을 이어 갔다.

    • 균여를 귀법사 주지로 삼아 화엄종을 정비한 것은 10세기 광종 때이다.
    • 사림원을 설치해 개혁 정치를 추진한 것은 13세기 말 충선왕 때이다.
    • 화통도감을 설치해 화약 무기를 만든 것은 14세기 후반 우왕 때 최무선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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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 사건들과 가장 가까운 시점에 저술된 역사책은?
    • 백제는 도읍을 사비[부여]로 옮겼다.
    • 신라는 백관의 공복(公服)을 제정하였다.
    • 수나라가 중국대륙을 통일하였다.
    1
    유기(留記)
    2
    국사(國史)
    3
    서기(書記)
    4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해설

    제시된 사건들과 가장 가까운 시점에 저술된 역사책은 신라의 『국사』이다.

    신라의 공복 제정(520, 법흥왕), 백제의 사비 천도(538, 성왕), 수의 중국 통일(589)은 모두 6세기의 일이다. 『국사』는 545년 진흥왕 때 거칠부가 편찬하였다.

    • 『유기』는 고구려 초기에 편찬된 역사서로 6세기보다 이르다.
    • 『서기』는 4세기 백제 근초고왕 때 고흥이 편찬하였다.
    • 『제왕연대력』은 8세기 통일 신라의 김대문이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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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 연설문과 가장 관련이 깊은 역사적 사실은?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에 나라에 이롭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길은 관과 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켰다.
    2
    유교문화를 수호하고, 서양과 일본문화를 배척하였다.
    3
    ‘헌의 6조’를 고종에게 올려 시행 약속을 받았다.
    4
    구식군대가 신식군대에 비해 차별을 받게 되자 폭동을 일으켰다.
    해설

    제시된 연설은 독립협회가 연 관민 공동회의 연설로, 헌의 6조 채택과 관련이 깊다.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 '관과 민이 합심'이라는 표현은 1898년 관민 공동회에서 백정 출신 박성춘이 한 연설이다. 이 집회에서 결의한 헌의 6조를 고종에게 올려 시행을 약속받았다.

    •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한 정변은 1884년 급진 개화파의 갑신정변이다.
    • 유교 문화를 지키고 서양·일본 문화를 배척한 것은 위정척사 운동이다.
    • 구식 군대가 별기군과의 차별에 반발해 일으킨 폭동은 1882년 임오군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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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 글에서 ( ) 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삼국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각 나라는 군사력과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농업 생산력 증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 ), ( ), ( ) 등 여러 정책을 실시하자, 농업 생산이 증대되어 농민 생활도 점차 향상되어 갔다.
    1
    우경 장려
    2
    철제 농기구의 보급
    3
    수취 제도의 정비
    4
    정전(丁田)의 지급
    해설

    삼국 시대의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정전(丁田)의 지급이다.

    정전은 삼국 통일 뒤 성덕왕 때 백성에게 지급한 토지로, 삼국이 경쟁하던 시기의 정책이 아니다.

    • 신라 지증왕 때 소를 이용한 우경을 장려하였다.
    • 철제 농기구가 널리 보급되어 농업 생산력이 높아졌다.
    • 삼국은 조세·공물·역 등 수취 제도를 정비해 재정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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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급 지방직 한국사] 10년 1회차
    다음 설명이 가리키는 인물과 관련된 사실로 옳은 것은?
    지엄의 문하에서 현수와 더불어 화엄종을 연구하고 귀국했다. 국가 지원을 얻어 부석사를 짓고 화엄의 교종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1
    진골 귀족 출신으로 원융사상을 설파하였다.
    2
    여러 종파의 사상을 융합하는 화쟁사상을 주창하였다.
    3
    아미타 신앙을 보급해 불교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4
    중관파와 유식파의 대립문제를 연구해 일심사상으로 체계화 하였다.
    해설

    제시된 인물은 의상이며, 진골 귀족 출신으로 원융 사상을 설파하였다.

    '지엄의 문하', '부석사'는 당에서 화엄종을 배우고 돌아와 부석사를 세운 의상을 가리킨다. 의상은 『화엄일승법계도』에서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곧 하나라는 원융 사상을 펼쳤다.

    • 여러 종파의 대립을 조화시키려 한 화쟁 사상은 원효가 주창하였다.
    • 나무아미타불만 외워도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아미타 신앙을 퍼뜨려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은 원효이다.
    • 중관파와 유식파의 대립을 일심 사상으로 아우른 것도 원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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