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50회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가)시대에 처음 제작된 유물로 옳은 것은? [1점]
포스터에는 ‘선사 문화 축제’라는 제목과 함께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된 (가) 시대로 떠나요!”라는 안내가 적혀 있습니다. 그림 속 체험 프로그램도 움집 생활 체험하기, 갈돌과 갈판으로 곡식 갈기, 가락바퀴로 실 뽑기로, 배경에는 원뿔형 지붕의 움집이 그려져 있습니다.
농경과 정착 생활의 시작, 움집, 갈돌·갈판, 가락바퀴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따라서 (가)는 신석기 시대이며, 이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유물을 골라야 합니다.
신석기 시대에 처음 제작된 것은 빗살무늬 토기로, 바닥이 뾰족하거나 둥글고 겉면에 빗살 모양의 무늬를 새긴 토기입니다. 곡식을 저장하고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돌의 양면을 떼어 내 만든 뗀석기인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고, 여러 갈래의 돌기가 뻗은 별 모양 돌도끼는 청동기 시대의 무기이며, 몸통을 감싸는 형태의 판갑옷은 철기 문화가 발달한 삼국 시대의 유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소도라고 불리는 신성 지역이 있었다.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한 책화가 있었다.
범금 8조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였다.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퀴즈판에 제시된 힌트는 “만주 쑹화강 유역의 평야 지대에 위치하였다”, “도둑질한 자는 훔친 것의 12배로 갚게 하였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세 가지입니다.
쑹화강 유역의 평야 지대라는 위치, 1책 12법이라 불리는 엄격한 법 조항, 12월에 열린 제천 행사 영고는 모두 부여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힌트로는 부여의 정치 조직인 사출도가 적절합니다. 부여에서는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加)가 각기 사출도를 다스렸고, 중앙은 왕이 통치하는 연맹 왕국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소도라는 신성 지역은 삼한, 읍락 간 경계를 침범하면 배상하게 한 책화는 동예, 범금 8조는 고조선의 특징이므로 부여의 힌트가 될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왕으로 옳은 것은? [2점]
성왕
무열왕
근초고왕
소수림왕
학생들의 대화에는 “사비로 도읍을 옮겼어”, “남부여로 국호를 바꿨어”,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어”라는 세 가지 업적이 나옵니다.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왕은 백제 성왕입니다. 성왕은 백제의 중흥을 위해 중앙 관청을 정비하고 불교를 진흥하였으며, 일본에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손잡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으나, 곧 신라가 이 지역을 독차지하자 신라를 공격하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무열왕은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서 백제를 멸망시킨 왕, 근초고왕은 4세기에 마한을 정복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한 백제 왕, 소수림왕은 불교 수용과 태학 설립으로 고구려의 체제를 정비한 왕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휴대 전화 화면의 문화재 설명에는 국보 제119호로 지정된 고구려의 불상으로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었고, 전체 높이가 16.2cm이며, 뒷면에 새겨진 ‘연가 7년’이라는 글자로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맞는 문화유산은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입니다. 광배를 갖춘 자그마한 금동 불상으로, 광배 뒷면의 명문 덕분에 고구려에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으며 남쪽인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어 고구려 불교문화의 전파를 보여 줍니다.
다리를 반쯤 걸치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석굴 안에 모셔진 통일 신라의 석굴암 본존불,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발해의 이불병좌상은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제도’로 옳은 것은? [1점]
의창
환곡
사창제
진대법
연극 대본에는 고국천왕이 흉년으로 곡식을 구하기 어려워 우는 백성을 만나는 장면과, 궁에서 신하 을파소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겨울에 갚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구려 고국천왕이 을파소의 건의를 받아들여 실시한,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겨울에 갚게 한 빈민 구제 제도는 진대법입니다. 밑줄 그은 ‘제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의창은 고려 시대의 빈민 구제 기구이고, 환곡은 조선 시대에 곡식을 대여하던 제도이며, 사창제는 흥선 대원군이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마을 단위로 운영하게 한 제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에서 보도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가)
(나)
(다)
(라)
보도 장면에서 기자는 고구려군이 당군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당군이 성벽보다 높은 흙산을 쌓아 공략을 시도하고 있고, 성 안에서도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전하면서 현장을 안시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 사건은 645년의 안시성 싸움입니다.
연표는 391년 광개토 대왕 즉위 – (가) – 427년 고구려 평양 천도 – (나) – 554년 관산성 전투 – (다) – 612년 살수 대첩 – (라) – 668년 고구려 멸망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645년에 일어난 안시성 싸움은 612년 살수 대첩과 668년 고구려 멸망 사이의 시기에 들어갑니다. 당 태종이 요동 지역을 거쳐 침입하였으나 안시성에서 군민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물러났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세속 5계를 지었다.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였다.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다.
영주 부석사를 건립하였다.
인물 카드의 주요 활동에는 “모든 진리는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 사상을 주장”, “무애가를 지어 불러 불교 대중화에 기여”, “『대승기신론소』 등을 저술”이 적혀 있습니다.
일심 사상과 무애가, 『대승기신론소』는 모두 신라의 승려 원효와 연결됩니다. 원효는 어려운 교리를 몰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쳐 불교를 대중에게 널리 퍼뜨렸습니다.
또한 원효는 여러 종파의 서로 다른 주장을 조화시키려는 화쟁 사상을 폈으며, 그 대표적인 저술이 『십문화쟁론』입니다.
세속 5계를 지은 인물은 원광, 수선사 결사를 제창한 인물은 고려의 지눌, 영주 부석사를 세운 인물은 화엄 사상을 정립한 의상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일기에는 가족과 함께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여행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8세기 중엽 김대성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가)에 석가탑과 다보탑이 나란히 서 있었으며, 그곳에서 불교의 이상 세계를 지상에 건설하고자 했던 신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림에도 두 탑이 나란히 그려져 있습니다.
경주에 있으면서 삼층 석탑(석가탑)과 다보탑을 함께 품고 있는 통일 신라의 절은 불국사입니다. 불국사는 김대성이 조성을 주도했다고 전해지며, 청운교·백운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이 유폐되었던 김제의 사찰, 법주사는 팔상전으로 유명한 보은의 사찰, 수덕사는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 건물인 대웅전이 남아 있는 예산의 사찰로 경주에 있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지방에 22담로를 두었다.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중앙군으로 9서당을 설치하였다.
영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제시된 글은 남북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사료로, “옛날 북쪽에 고구려, 서남쪽에 백제, 동남쪽에 신라가 있어 이것을 삼국이라 하였다”라고 한 뒤,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다음에 남쪽에 신라, 북쪽에 (가)가 있으니 이를 남북국이라 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옛 땅에 세워져 신라와 남북으로 병립한 나라이므로 (가)는 발해입니다.
발해는 선왕 때 옛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회복하고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정비하는 등 최대 영역을 이루었는데, 이 시기의 융성함을 두고 당에서 해동성국(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이라 불렀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다른 나라의 것입니다. 지방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한 것은 백제 무령왕, 중앙군으로 9서당을 설치한 것은 통일 신라 신문왕, 영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은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사실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훈요 10조를 남겼다.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백제 계승을 내세웠다.
국호를 태봉으로 바꾸었다.
그림 속 책에는 “신라 왕실의 후예로 알려진 이 인물은 양길의 부하가 되어 세력을 키웠다”, “이후 그는 송악을 도읍으로 삼아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신라 왕족 출신으로 양길 밑에서 성장했고 미륵 신앙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인물은 궁예입니다.
궁예는 901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겼으며, 다시 국호를 태봉으로 고쳤습니다. 광평성을 중심으로 한 관제를 마련했으나 이후 미륵불을 자처하며 관심법으로 신하를 숙청하다가 왕건에게 축출되었습니다.
훈요 10조를 남긴 인물은 고려를 세운 왕건,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인물은 신라의 장보고, 백제 계승을 내세우며 후백제를 세운 인물은 견훤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교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쓰시마 섬을 정벌하였다.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대화에서 학생들은 전시된 초상화를 두고 “고려 제31대 왕과 왕비의 초상화”라 하였고, “이 왕은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는 등 원의 간섭을 물리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려 31대 왕이자 반원 자주 정책을 편 인물이므로 밑줄 그은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내정 간섭 기구였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없애고 친원 세력인 기철 일파를 제거했으며, 몽골식 변발과 호복을 금지하였습니다. 또한 원이 화주(쌍성)에 설치해 철령 이북을 직접 지배하던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그 지역을 되찾았습니다.
교정도감을 설치해 최씨 무신 정권의 최고 기구로 삼은 인물은 최충헌이고, 거란과 여진의 침입에 대비해 국경에 천리장성을 쌓은 것은 덕종~정종 대의 일이며, 쓰시마 섬 정벌은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수행한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고창 전투
진포 대첩
삼별초 항쟁
위화도 회군
탐구 활동 계획서의 주제는 후삼국 통일 과정이고, 주요 사건이 금성(나주) 점령 → (가) → 경순왕의 항복 → 일리천 전투 순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나주 점령 이후, 신라 항복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 들어가야 합니다.
왕건이 궁예 휘하에서 수군을 이끌고 금성을 점령한 것은 903년,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긴 것이 935년,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무너뜨린 일리천 전투가 936년입니다. 그 사이인 930년에 왕건은 안동 지역에서 견훤군을 크게 격파한 고창 전투에서 승리하여 후삼국 경쟁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최무선의 화포가 활약한 진포 대첩은 1380년의 왜구 격퇴이고, 삼별초의 대몽 항쟁은 1270년부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1388년의 일로 모두 고려 후기에 해당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4군 6진을 설치하였다.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그림에서 왕이 “경의 건의에 따라 설치된 별무반을 거느리고 여진을 정벌하시오”라고 명하고 있고, 그 뒤로 신기군·신보군·항마군이라 적힌 깃발을 든 군대가 늘어서 있습니다. 별무반 설치를 건의하고 이를 이끌고 여진 정벌에 나선 (가) 인물은 윤관입니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려로 구성된 항마군으로 편성된 특별 부대였습니다. 윤관은 예종 때 이 부대를 이끌고 여진을 몰아낸 뒤 그 지역에 동북 9성을 쌓았으나, 이후 여진의 요청과 방어의 어려움 때문에 곧 돌려주었습니다.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한 인물은 신라 지증왕 때의 이사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최윤덕·김종서, 거란의 침입 때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한 인물은 서희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상황을 볼 수 있었던 국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건원중보를 발행하였다.
신해통공을 단행하였다.
연분 9등법을 시행하였다.
관수 관급제를 실시하였다.
그림 속 항구에서 “벽란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상인이 “송에서 인삼을 사러 왔습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고 송 상인이 드나들던 나라이므로 이 상황이 나타난 국가는 고려입니다.
고려는 성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를 만들어 유통을 시도하였습니다. 이후 숙종 때는 주전도감을 두어 삼한통보·해동통보와 은병(활구)을 발행했지만,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 탓에 화폐는 널리 쓰이지 못했습니다.
나머지는 조선의 정책입니다.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한 신해통공은 정조, 풍흉에 따라 전세를 차등 부과한 연분 9등법은 세종, 관청이 수조권을 대행해 조세를 거두어 지급한 관수 관급제는 성종 때 시행되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2목 설치
집현전 개편
경국대전 편찬
독서삼품과 실시
칠판의 학습 주제는 “(가), 고려의 통치 체제 마련”이고, 주변에 시무 28조 수용, 국자감 정비, 경학박사 지방 파견, 2성 6부제 마련, 상평창 설치가 적혀 있습니다.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을 확립한 왕이므로 (가)는 고려 성종입니다.
성종은 지방 세력을 통제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습니다. 아울러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보내 지방 교육을 담당하게 하고, 물가 조절 기관인 상평창을 두었습니다.
집현전을 개편해 학문 연구 기관으로 만든 것은 조선 세종,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해 반포한 것은 조선 성종, 유교 경전 이해 수준으로 관리를 뽑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한 것은 통일 신라 원성왕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포스터에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 활자본 (가)를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알린 그녀”, “조선 왕실의 행사를 기록한 외규장각 의궤의 국내 반환을 위해 애쓴 그녀”라며 박병선 박사의 삶을 다룬 뮤지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찾아내 세상에 알린,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 인쇄본은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입니다. 보기 중 ‘직지심체요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쇄본 자료가 이에 해당하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다른 자료들은 성격이 다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중종 때 완성된 인문 지리서, 왕오천축국전은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다녀와 남긴 기행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불국사 삼층 석탑에서 나온 현존 최고의 목판 인쇄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것’으로 옳은 것은? [1점]
교지
족보
호패
공명첩
안내문은 “조선 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라는 제목 아래 “조선 시대 16세 이상의 남자들이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몸에 차고 다녔던 이것을 관람하고,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분증 구실을 하던 휴대용 패이므로 밑줄 그은 ‘이것’은 호패입니다.
호패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신분, 거주지 등을 새겼으며 신분에 따라 재질이 달랐습니다. 조선 태종 때 처음 시행된 호패법은 인구를 파악해 조세와 군역 등 국역을 부과하고 백성의 이동을 통제하려는 목적을 지녔습니다.
나머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교지는 왕이 관직 임명 등을 내리며 발급한 문서, 족보는 한 가문의 계보를 기록한 책, 공명첩은 이름 쓰는 칸을 비워 두고 곡식 등을 받고 팔던 명예직 임명장으로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책으로 옳은 것은? [2점]
동의보감
악학궤범
삼강행실도
용비어천가
조선 왕조가 유교 윤리 정착을 위해 효자·충신·열녀의 이야기를 모아 편찬한 책은 삼강행실도이며, 성종 때 그 내용을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이 보급되었다. 동의보감은 의학서, 목민심서는 지방관의 통치 지침서,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이 편찬한 법전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왕의 정책으로 옳은 것은? [3점]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직전법을 실시하였다.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
5군영 체제를 완성하였다.
뉴스 화면에서 “조선 제7대 국왕 (가)의 모습을 담은 밑그림이 공개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어진 모사본을 옮겨 그리는 과정에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하며, “(가)는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일곱 번째 임금이자 6조 직계제를 부활시킨 왕이므로 (가)는 세조입니다.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고 즉위한 뒤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되살렸으며, 집현전과 경연을 없애 신하들의 견제를 약화시켰습니다. 또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하였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다시 세운 것은 흥선 대원군 시기, 젊은 문신을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한 것은 정조, 훈련도감부터 금위영까지 이어지는 5군영 체제가 완성된 것은 숙종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최영이 홍산에서 왜구를 물리쳤다.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을 격퇴하였다.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적을 막아내었다.
왼쪽 그림은 신립이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섬멸하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1592년 임진왜란 초기의 탄금대 전투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이순신이 “칠천량에서는 패배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1597년 정유재란 중 명량 해전 직전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가) 시기는 임진왜란이 진행되던 1592년~1597년 사이입니다. 이 기간에 해당하는 사실은 권율이 1593년 행주산성에서 관군과 백성이 힘을 합쳐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행주 대첩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최영의 홍산 대첩은 고려 말 왜구 격퇴, 강감찬의 귀주 대첩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3차 침입 격퇴, 김윤후의 처인성 전투는 고려 시대 몽골의 2차 침입 때 있었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승정원
어사대
집사부
홍문관
대화에서 (가)는 궁궐 내의 서적을 관리하고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기구이며,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사로 불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관직으로 교리가 있다고 언급됩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조선의 기구는 홍문관입니다. 홍문관은 성종 때 집현전을 계승해 정비되었으며, 경연을 주관하고 왕에게 학문적 자문을 하여 옥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나머지 기구는 성격이 다릅니다. 승정원은 왕명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 어사대는 고려의 감찰 기구, 집사부는 통일 신라의 국정 총괄 기구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①
②
③
④
교사가 묻는 주제는 현종 때 두 차례 있었던 예송입니다. 예송은 효종과 효종비가 죽은 뒤 각각 일어났으며, 인조의 계비인 자의 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예법 해석을 둘러싸고 대립한 사건입니다.
화면의 답변 가운데 서인과 남인의 예법 대립,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 문제, 효종과 효종비 사후 두 차례 발생이라는 세 가지는 모두 예송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조광조 일파가 축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답변은 옳지 않습니다. 조광조와 그 일파의 축출은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의 결과로, 현종 때의 예송과는 시기도 성격도 전혀 다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과전법
균역법
대동법
영정법
퀴즈의 단계별 힌트는 1단계 선혜청에서 주관, 2단계 특산물 대신 쌀·베·동전으로 납부, 3단계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공납을 부과입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가리키는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대동법은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어 점차 확대되었고 숙종 때 전국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집집마다 특산물을 거두던 공납의 폐단을 없애고 토지 결수에 따라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 핵심입니다.
나머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과전법은 고려 말 관리에게 수조권을 나누어 준 토지 제도, 균역법은 영조 때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군역 제도, 영정법은 인조 때 전세를 토지 1결당 4~6두로 고정한 제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비석을 세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3점]
비변사를 혁파하였다.
속대전을 편찬하였다.
나선 정벌을 단행하였다.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하였다.
그림 속 비석은 탕평비로, ‘두루 원만하고 치우치지 않음이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요, 치우치고 두루 원만하지 못함이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비석은 영조가 성균관 앞에 세워 탕평책의 뜻을 널리 알리려 한 것입니다.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을 펴는 한편, 조선의 법전을 정비하여 속대전을 편찬하였습니다. 또한 균역법을 실시해 군포 부담을 줄이고, 신문고를 부활시켰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일입니다. 비변사 혁파는 흥선 대원군, 나선 정벌은 효종,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열하일기를 저술하였다.
사상 의학을 정립하였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카드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문장가, 생몰 1737년~1805년, 호는 연암, 주요 활동으로 「양반전」·「허생전」 저술과 수레와 선박의 이용 강조가 적혀 있습니다. 이 인물은 박지원입니다.
박지원은 청에 다녀온 경험을 정리한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청의 발달한 문물을 소개하고 수레·선박·화폐의 이용을 통한 상공업 진흥을 주장한 중상학파(북학파) 실학자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전기 화가 안견, 사상 의학은 이제마,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제작하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의 상황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중인층의 시사 활동이 활발하였다.
춘향가 등의 판소리가 성행하였다.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사설시조가 유행하였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담은 제왕운기가 저술되었다.
그림은 전기수가 사람들 앞에서 ‘임경업 장군이 칼을 획’ 하고 소설을 읽어 주다가 멈추자, 청중이 상평통보를 주며 다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전기수의 활동과 상평통보 유통은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 문화가 크게 발달하여 중인층의 시사 활동이 활발해졌고, 춘향가 등의 판소리가 성행하였으며, 정형에서 벗어난 사설시조가 유행하였습니다.
반면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담은 제왕운기는 고려 후기에 이승휴가 저술한 역사서로, 조선 후기의 상황과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종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중광단 결성을 주도하였다.
기관지로 만세보를 발간하였다.
초기에는 서학으로 소개되었다.
동경대전을 기본 경전으로 삼았다.
신문 기사는 교황이 서소문 순교 성지를 방문한 내용으로, 이곳이 200여 년 전 유교 윤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이승훈을 비롯한 (가)를 믿는 사람들을 처형한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가)는 천주교입니다.
천주교는 17세기 청에 다녀온 사신들을 통해 서양 학문의 하나인 서학으로 소개되었다가, 18세기 후반부터 신앙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승훈은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인물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종교의 특징입니다. 중광단 결성은 대종교, 기관지 만세보 발간과 동경대전을 경전으로 삼은 것은 천도교(동학)의 내용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삼국 간섭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빌미가 되었다.
운요호의 초지진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은 어재연 장군의 생가를 소개하는 장면으로, 미군이 통상을 강요하며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 당시 그가 광성보에서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고 설명합니다. 밑줄 그은 ‘이 사건’은 1871년 신미양요입니다.
신미양요는 1866년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 셔먼호가 불탄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함대를 보내 일으킨 침략입니다.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은 광성보에서 격전을 벌였고, 이후 흥선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건입니다. 삼국 간섭은 청일 전쟁 후 일본의 랴오둥반도 반환과 관련되며, 운요호의 초지진 공격은 운요호 사건, 제물포 조약 체결은 임오군란의 결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교정청
군국기무처
도평의사사
통리기무아문
도식의 중심 주제는 1880년대 조선 정부의 개화 정책이며, 가지에는 신식 군대인 별기군 창설, 근대 시설인 기기창 설립, 외교 사절로 미국에 보빙사 파견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가)는 정책 총괄 기구의 설치에 해당합니다.
1880년 조선 정부가 개화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는 통리기무아문입니다.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군사·통상 등의 업무를 나누어 맡겼고, 별기군 창설과 사절단 파견도 이 기구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와 성격이 다릅니다. 교정청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이후 자주적 개혁을 위해 설치되었고, 군국기무처는 제1차 갑오개혁을 추진한 기구이며, 도평의사사는 고려 후기의 최고 정무 기구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2점]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였어요.
정부에 헌의 6조를 건의하였어요.
백산에 집결하여 4대 강령을 발표하였어요.
곽재우, 고경명 등이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어요.
화면 속 사진은 1907년 영국 기자 매켄지가 의병들을 취재하며 찍은 것이라고 교사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진 속에는 군복과 한복을 섞어 입고 소총을 든 의병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는 정미의병의 모습입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 신협약을 맺은 뒤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하였습니다. 이때 해산된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강화되었고, 이인영·허위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한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서울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습니다.
정부에 헌의 6조를 건의한 것은 1898년 관민 공동회를 연 독립 협회의 활동이고, 백산에 집결해 4대 강령을 발표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군입니다. 곽재우·고경명이 의병장으로 활약한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로, 사진 속 1907년이라는 연도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한성 사범 학교를 설립하였다.
태극 서관, 자기 회사를 운영하였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였다.
화면에는 안창호의 사진과 함께 “안창호, 양기탁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비밀 결사로, 국권 회복과 공화 정체의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국내 조직이 해산되었다”는 설명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단체는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입니다.
신민회는 화면의 설명대로 국내에서 교육 진흥과 국민 계몽, 산업 진흥을 내세워 대성 학교·오산 학교를 세우고, 계몽 서적을 보급하는 태극 서관과 민족 산업 육성을 위한 자기 회사를 운영하였습니다. 또한 국외에서는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통한 군사적 실력 양성을 꾀하였는데, 남만주 삼원보 등지에 기지를 마련하고 신흥 강습소를 세워 독립군을 길러 냈습니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것은 서재필과 독립 협회, 한성 사범 학교를 설립한 것은 갑오개혁 시기 정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것은 1904년 보안회의 활동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근우회의 후원으로 확산되었어요.
조선 총독부의 방해로 실패했어요.
김홍집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어요.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어요.
화면 속 기념비는 대구에 세워진 국채 보상 운동 기념비이고, 대화창에는 “국채 보상 기성회가 주도했어요”, “당시 여성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모아 성금으로 내기도 했어요”라는 내용이 이미 올라와 있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국채 보상 운동(1907년)에 관한 설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 운동은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국권을 지키자며 대구에서 서상돈·김광제 등이 시작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황성신문·제국신문 등 언론이 모금 취지를 널리 알리고 성금 명단을 실어 주며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근우회의 후원으로 확산된 것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방해해 좌절시킨 것은 통감부였으므로 조선 총독부(1910년 설치)를 언급한 설명은 시기가 맞지 않으며, 김홍집이 중심이 된 것은 갑오개혁 때의 군국기무처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나)-(다)
(가)-(다)-(나)
(나)-(가)-(다)
(다)-(나)-(가)
(가) 대한국 국제 반포(1899)는 대한제국이 전제 군주정을 선포한 사건이고, (다) 대동단결 선언(1917)은 순종의 주권 포기(1910년 8월 29일)로 황제권이 소멸하고 민권이 발생했다는 논리를 내세운 선언이며, (나) 제헌 헌법 공포(1948)는 국민 주권을 명문화한 대한민국 헌법 제정이다. 따라서 시간 순서는 (가)-(다)-(나)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민족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신간회 창립의 계기가 되었다.
을미사변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영향을 끼쳤다.
동아일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답사 안내문의 제목은 “1926년, 그날의 길을 따라”이고, 주요 경로는 창덕궁 돈화문 — 단성사 — 종로 — 경성 사범 학교 — 흥인지문으로 이어집니다. 안내문에는 창덕궁 돈화문이 순종 장례 행렬이 출발한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중앙 고보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외친 곳”, “조선 학생 과학 연구회 학생이 경찰에 의해 체포된 곳”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6·10 만세 운동입니다.
6·10 만세 운동은 사회주의 계열과 천도교 계열, 학생 단체가 각각 시위를 준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었으나 학생들이 장례 행렬을 따라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외치면서 전개되었습니다. 이 준비 과정에서 확인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연대 경험은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1927년 신간회 창립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을미사변에 반발해 일어난 것은 을미의병이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영향을 끼친 것은 1919년 3·1 운동입니다. 동아일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것은 1931년부터 전개된 브나로드 운동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자료로 옳은 것은? [2점]
사진 속 탑은 “일제 강점기에 백정들이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일으켰던 운동을 기념하는 탑”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내걸고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바로 형평 운동이며, 이를 주도한 단체는 조선 형평사입니다.
또 다른 인물은 “이 운동을 주도한 단체의 포스터로, 저울을 뜻하는 글자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어깨에 저울대를 걸친 인물이 붉게 그려지고 위쪽에 ‘전조선형평사대회’를 알리는 글자가 적힌 포스터가 들어가야 합니다. ‘형평(衡平)’의 저울 형(衡) 자가 곧 저울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조선물산을 팔고 사자’라며 국산품 애용을 권하는 선전물은 물산 장려 운동의 자료이고,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는 농촌 계몽을 내건 브나로드 운동의 자료여서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명절로 옳은 것은? [1점]
단오
동지
추석
한식
현수막에 “세시 풍속 체험 행사 — 음력 8월 15일 명절”이라고 적혀 있고, 체험 부스에는 ‘보름달 소원 쓰기’와 ‘송편 만들기’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음력 8월 15일에 송편을 빚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명절은 추석(한가위)입니다.
추석에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와 성묘를 하였으며, 강강술래·씨름·줄다리기 등의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림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도 강강술래를 나타낸 것입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씨름을 하는 명절이고, 동지는 양력 12월 22일경으로 팥죽을 먹으며,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찬 음식을 먹고 성묘를 하는 날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부대’로 옳은 것은? [3점]
대한 독립군
조선 의용대
조선 혁명군
한국 광복군
우표 수집 기록에는 “만주에서 있었던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우표”라는 설명과 함께, “홍범도 장군이 이끈 부대가 참여했던 전투”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우표에도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이라는 문구와 380원의 액면가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1920년 6월 홍범도가 이끈 대한 독립군은 군무 도독부군, 국민회군 등과 연합하여 만주 봉오동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 뒤 매복 공격으로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과 함께 청산리 대첩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조선 의용대는 1938년 김원봉이 중국 우한에서 조직한 부대이고, 조선 혁명군은 양세봉이 이끌며 영릉가·흥경성 전투를 치렀습니다. 한국 광복군은 1940년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창설한 군대로, 모두 봉오동 전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윤동주
이상화
이육사
한용운
카드 뉴스 주제는 “(가), 조국의 독립을 꿈꾸다”이고, 학생들의 대화에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대구 형무소에 갇힌 내용”, “그의 이름이 형무소에 있을 때의 수인 번호와 관련 있다”, “대표적 작품인 광야”라는 세 가지 단서가 나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이육사입니다.
본명이 이원록인 그는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탄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이때의 수인 번호 264에서 따온 ‘육사’를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광야」, 「절정」, 「청포도」 등 저항 의식이 담긴 시를 남겼고 의열단에 가담해 활동하다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윤동주는 「서시」·「별 헤는 밤」을 남기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으며,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용운은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3점]
‘이달의 독립 유공자 — 조선을 사랑한 외국인’ 카드에는 1889~1970년의 생몰년, “영국 태생 캐나다 의학자”, “1968년 건국 훈장 독립장” 수훈이라는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아래 설명에는 “3·1 운동 당시 일제가 저지른 제암리 학살 사건의 참상을 외국 언론에 제보하여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폭로하였고,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최초의 외국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프랭크 스코필드입니다.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교수로 우리나라에 온 그는 3·1 운동 현장과 제암리·수촌리 학살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으로 기록해 국외에 알렸고,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며 34번째 민족 대표로 불렸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외국인 가운데 호머 헐버트는 육영 공원 교사이자 헤이그 특사를 도운 인물, 메리 스크랜튼은 이화 학당을 세운 선교사, 어니스트 베델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인으로, 제암리 사건 폭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6ㆍ3 시위
새마을 운동
원산 총파업
제주 4ㆍ3 사건
화면은 ‘영상으로 만나는 1920년대’라는 제목 아래 대규모 군중 집회 장면을 보여 주며, “라이징 선 석유 회사는 조선인을 구타한 일본인 감독을 파면하라”,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라”, “최저 임금제를 확립하라”는 구호가 적혀 있습니다. 이는 1929년에 일어난 원산 총파업의 모습입니다.
원산 총파업은 원산 부근 문평의 라이징 선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원산 노동 연합회의 지도 아래 도시 전체 노동자가 참여한 대규모 파업으로 번졌습니다. 일제와 회사 측의 탄압으로 요구가 관철되지는 못했으나,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노동 쟁의이자 반제국주의 항일 투쟁의 성격을 띠었고 국외 노동 단체의 격려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6·3 시위는 1964년 한일 회담 반대 운동,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 농촌 근대화 운동, 제주 4·3 사건은 1948년에 일어난 일로 모두 1920년대와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1점]
토월회를 결성하여 신극 운동을 펼쳤다.
국문 연구소 위원으로 국문법을 정리하였다.
원불교를 창시하고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침략 과정을 다른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그림은 주시경을 기리는 조형물 앞에서 인물이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말풍선에는 한글 연구에 오랜 시간 힘썼고, 한글 보급을 위해 순우리말 호인 한힌샘을 사용했으며, 큰 보자기에 책을 싸서 여러 학교로 강의를 다녔기 때문에 주보따리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주시경은 대한 제국 학부 안에 설치된 국문 연구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말의 표기법과 문법 체계를 정리하였고, 그 성과를 「국어문법」, 「말의 소리」 등으로 남겼습니다. 따라서 국문 연구소 위원으로 국문법을 정리하였다는 설명이 그의 활동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의 활동입니다. 토월회를 결성해 신극 운동을 펼친 것은 박승희 등 도쿄 유학생들이고, 원불교를 창시하고 새생활 운동을 전개한 인물은 박중빈이며, 일제의 침략 과정을 다룬 「한국통사」를 저술한 인물은 박은식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①
②
③
④
칠판의 지도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이동 경로를 보여 줍니다. 상하이(1919)에서 출발해 항저우 · 전장 · 창사 · 광저우 · 류저우 · 치장을 거쳐 충칭(1940)에 정착하는 경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과 중일 전쟁의 확대로 임시 정부가 근거지를 계속 옮겨야 했음을 나타냅니다.
학생들의 답변 가운데 신흥 무관 학교 설립은 임시 정부의 활동이 아닙니다. 신흥 강습소에서 출발한 이 학교는 1911년 신민회 인사인 이회영 형제 등이 서간도 삼원보에 세운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임시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의 일입니다.
반면 국내와의 비밀 연락망인 연통제를 운영한 것, 이승만을 중심으로 미국에 외교 기구인 구미 위원부를 둔 것,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한 것은 모두 임시 정부가 실제로 벌인 활동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섬’으로 옳은 것은? [1점]
독도
진도
거문도
제주도
그림은 학생들이 섬 모형을 놓고 대화하는 장면으로, 모형에는 두 개의 큰 바위섬과 그 주변의 작은 바위들이 표현되어 있고 태극기가 꽂혀 있습니다. 대화에서 이 섬은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이 섬이 우리 영토임을 확인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안용복은 두 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그 부속 섬에 대한 조선의 영유권을 확인시켰는데, 여기서 말하는 섬이 바로 독도입니다.
진도는 삼별초의 항쟁지, 거문도는 영국이 러시아 견제를 구실로 불법 점령했던 곳, 제주도는 삼별초의 마지막 근거지이자 하멜 표류지로 알려진 섬이어서 대화의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①
②
③
④
지도에 표시된 지역은 전주입니다. 전주는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도읍이었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있으며,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후백제의 도읍, 동학 농민군과 정부의 화약 체결,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에 대한 답변은 모두 전주와 관련된 내용으로 옳습니다.
옳지 않은 답변은 정림사지 오층 석탑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탑은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전주가 아니라 부여에 남아 있으며, 백제 멸망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긴 글이 탑신에 전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남북 협상 참석
단독 정부 수립 주장
조선 혁명 선언 작성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
인물 카드에 호는 우사, 생몰 연도는 1881년~1950년, 직업은 정치인 · 학자 · 독립운동가로 적혀 있고 이름은 김규식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활동란에는 신한 청년단(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었다는 내용이 먼저 제시되어 있습니다.
김규식은 광복 이후 좌우 합작 위원회의 우측 대표로 활동하였고, 단독 정부 수립 움직임이 굳어지자 1948년 김구와 함께 평양으로 가서 남북 협상에 참석하였습니다. 따라서 빈칸에 들어갈 활동은 남북 협상 참석입니다.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것은 정읍 발언을 한 이승만이고,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한 인물은 신채호이며,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인물은 의열단원 김상옥이어서 이 인물의 활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헤이그 특사 파견 배경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
국민 대표 회의 개최 원인
한ㆍ일 기본 조약 체결 결과
모둠별 탐구 활동표를 보면 1모둠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과, 2모둠은 좌우 합작 운동의 의미, 3모둠은 5 · 10 총선거 과정을 조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광복 직후부터 1948년까지 이어진 사건들입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신탁 통치와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가 결정되었고, 이후 좌우 대립을 넘어서려는 좌우 합작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결국 유엔의 결의에 따라 남한만의 5 · 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구성되고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따라서 공통 주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입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 배경은 을사늑약 체결과 관련된 대한 제국 시기의 일이고, 국민 대표 회의는 1923년 임시 정부의 노선 갈등에서 열렸으며, 한 · 일 기본 조약은 1965년에 체결되어 제시된 탐구 주제들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였다.
중국, 소련 등과 수교하였다.
사사오입 개헌안을 가결하였다.
개성 공단 건설 사업을 실현하였다.
화면의 '역사 돋보기'에는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제보받기 위해 설치한 투서함 사진이 실려 있고, 진행자는 당시 (가) 정부가 이 위원회의 활동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합니다.
반민특위는 1948년 제헌 국회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면서 구성되었으나, 반공을 앞세운 이승만 정부가 협조하지 않고 국회 프락치 사건과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건이 이어지면서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기에는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기 위해 1954년 개헌안 표결에서 정족수를 반올림해 통과시킨 사사오입 개헌이 있었습니다. 금융 실명제는 김영삼 정부, 중국 · 소련과의 수교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 개성 공단 건설 사업의 실현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인천 상륙 작전을 전개하였다.
김원봉이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미ㆍ소 공동 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쌍성보에서 한ㆍ중 연합 작전을 펼쳤다.
사진은 경의선 장단역에 남아 있는 증기 기관차로, 차체 곳곳이 포탄에 뚫린 채 녹슬어 있습니다. 대화에서 이 흔적은 1950년에 일어난 전쟁 때 폭탄을 맞아 생긴 것이며 이 전쟁으로 많은 이산가족이 아픔을 겪고 있다고 설명하므로, 밑줄 그은 전쟁은 6 · 25 전쟁입니다.
6 · 25 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다가 1950년 9월 맥아더가 지휘한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면서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따라서 인천 상륙 작전 전개가 이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습니다.
김원봉의 의열단 조직은 1919년 만주에서, 미 · 소 공동 위원회 개최는 광복 직후인 1946~1947년에, 쌍성보에서의 한 · 중 연합 작전은 1932년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에 의해 이루어진 일로 모두 이 전쟁과 시기가 다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대화에 나타난 민주화 운동으로 옳은 것은? [3점]
4ㆍ19 혁명
6월 민주 항쟁
부ㆍ마 민주 항쟁
5ㆍ18 민주화 운동
화면 속 조형물은 1979년 야당 총재의 국회 의원직 제명으로 촉발되어 유신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의원직에서 제명되자 그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크게 일어났는데, 이것이 부 · 마 민주 항쟁입니다.
대화에서는 2019년 정부가 이 운동이 민주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여 시위가 시작된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 · 마 민주 항쟁 기념일은 시위가 시작된 10월 16일로 정해졌습니다.
4 · 19 혁명은 1960년 3 · 15 부정 선거에 항의해 일어나 이승만이 물러난 사건이고, 6월 민주 항쟁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으며, 5 · 18 민주화 운동은 1980년 신군부의 계엄 확대에 맞서 광주에서 일어나 시기와 계기가 다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남북 기본 합의서
7ㆍ4 남북 공동 성명
6ㆍ15 남북 공동 선언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제시된 기록물 카드는 '기록으로 보는 평화 통일 노력'이라는 묶음의 2000년대 부분에 놓여 있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만나 평양에서 회담을 진행하였다는 설명과 두 정상이 악수하는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이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에서 채택된 문서가 6 · 15 남북 공동 선언입니다. 이 선언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고 개성 공단 조성과 금강산 관광 확대 등 남북 교류 협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모두 1991~1992년 노태우 정부 시기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고, 7 · 4 남북 공동 성명은 1972년 박정희 정부 때 자주 · 평화 · 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밝힌 것이어서 2000년대 기록물과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50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