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0회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무덤 껴묻거리로 오수전 등을 묻었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의례 도구로 청동 방울 등을 사용하였다.
포스터에는 "정착 생활과 농경이 시작된 (가) 시대"라고 적혀 있고, 중앙에는 밑이 뾰족하고 겉면에 빗금 무늬가 새겨진 빗살무늬 토기가, 아래쪽에는 짚으로 지붕을 인 움집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모두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요소입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하여 조·피 등을 재배하는 농경을 시작하였고, 빗살무늬 토기에 식량을 저장·조리하였습니다. 또한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는 원시적인 수공업도 이루어졌습니다.
나머지는 뒤 시대의 모습입니다. 철제 농기구를 이용한 농사와 오수전 같은 중국 화폐를 껴묻는 풍습은 철기 시대의 일이고, 청동 방울을 의례 도구로 사용한 것은 청동기 시대 군장의 모습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혼인 풍습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제시된 『삼국지』 동이전 기록은 "국읍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게 하니 천군이라 하였다. 또 나라마다 별읍이 있으니 이를 소도라 하였는데 … 그 안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내지 않았다"라고 전합니다.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특징으로, 정치적 지배자와 제사장이 구분된 제정 분리 사회였음을 보여 줍니다. 소도는 신성 구역이어서 죄인이 들어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습니다.
삼한은 마한·진한·변한으로 이루어졌고, 각 소국에는 세력의 크기에 따라 신지, 읍차 등으로 불린 지배자가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풍속으로, 영고는 부여의 제천 행사, 민며느리제는 옥저의 혼인 풍습, 책화는 동예의 읍락 경계 관습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제도'로 옳은 것은? [2점]
흑창
상평창
진대법
제위보
그림 속 문서에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관청의 곡식을 내어 백성 가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을 두어 식량을 빌려주도록 하고, 겨울에 갚게 하라"는 명령이 담겨 있고, 아래에는 고국천왕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 고국천왕이 재상 을파소의 건의를 받아 실시한 진대법입니다.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여 가난한 농민이 몰락해 귀족의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국가의 조세 기반을 지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고구려의 제도가 아닙니다. 흑창과 제위보는 고려의 구휼·기금 기구이고, 상평창은 고려·조선에서 물가를 조절하던 기구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점]
러시아가 조차를 요구한 섬이다.
영국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섬이다.
하멜 일행이 표류하다 도착한 섬이다.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 영토임을 주장한 섬이다.
화면의 제목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 섬, (가)"이고, 사진에는 두 개의 큰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 나옵니다. 설명에는 가지어(강치)가 많아 가지도로 불림, 1900년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에 석도로 기록됨,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 (가)로 표기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단서들이 가리키는 섬은 독도입니다. 대한 제국은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고 석도(독도)를 관할하도록 명시하였으며, 심흥택 보고서는 '독도'라는 명칭이 공문서에 쓰인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독도는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반면 러시아가 조차를 요구한 곳은 절영도, 영국이 불법 점령한 곳은 거문도, 하멜 일행이 표류하다 도착한 곳은 제주도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가상 우표로 적절한 것은? [2점]
그림 속 학생은 "우리 반에서는 공주와 부여에 도읍했던 국가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우표를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를 도읍으로 삼았던 나라는 백제이며, 이미 붙어 있는 우표도 정림사지 오층 석탑, 석촌동 고분군, 무령왕릉 석수로 모두 백제 문화유산입니다.
따라서 (가)에는 백제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하므로, 무왕 때 익산에 세워진 현존 최고(最古)의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을 담은 우표가 알맞습니다. 이 탑은 목탑 양식을 돌로 구현한 백제 석탑의 대표작입니다.
나머지 우표는 다른 나라의 유산입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 여왕 때의 천문 관측대, 무용총 수렵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 성덕 대왕 신종은 통일 신라의 범종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하였다.
옥저를 정복하고 동해안으로 진출하였다.
지방에 22담로를 두어 왕족을 파견하였다.
여행 앱 화면은 김해 지역에 세워진 '이 나라'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며, 지도에는 국립 김해 박물관, 김해 구지봉, 김해 대성동 고분군, 김해 수로왕릉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구지봉은 김수로왕 건국 설화의 무대이고, 수로왕릉은 그 무덤으로 전해집니다.
이 유적들이 가리키는 나라는 김해를 중심으로 성장한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유리한 위치와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낙랑·왜와 중계 무역을 하며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사실입니다. 국학 설치는 통일 신라 신문왕, 옥저 정복과 동해안 진출은 고구려 태조왕, 22담로에 왕족 파견은 백제 무령왕의 정책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우경을 장려하였다.
율령을 반포하였다.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제시된 『삼국사기』 기록에는 "왕이 영을 내려 순장을 금하게 하였다. 이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다섯 명씩 순장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게 한 것이다", "여러 신하들이 한뜻으로 '신라국왕'이라는 호칭을 올리니 왕이 이를 따랐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장을 금지하고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중국식 칭호를 확정한 인물은 지증왕입니다. 그는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키고 지방 제도로 주·군을 정비하는 등 국가 체제를 다듬었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는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우경을 장려하여 생산력을 크게 높였습니다. 반면 율령 반포는 법흥왕, 화랑도의 국가 조직 개편은 진흥왕, 독서삼품과 실시는 통일 신라 원성왕의 업적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세시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단오
칠석
한식
삼짇날
제시된 책에는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양력 4월 5일 무렵이며, 중국 춘추 시대 개자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이날에는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었으며 조상의 묘를 돌보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세시풍속은 한식입니다. 한식은 '찬 음식(寒食)'이라는 이름 그대로 불을 쓰지 않고 미리 만들어 둔 음식을 먹는 날로, 진나라 문공을 위해 헌신하고도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기리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한식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봉분에 잔디를 새로 입히는 개사초를 하며, 산소를 돌보는 풍습이 이어졌습니다. 그림에서 사람들이 무덤가에 모여 봉분과 상석을 손질하는 장면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명절과 구분해 두면 좋습니다. 음력 5월 5일 명절은 그네뛰기·씨름·창포물에 머리 감기로, 음력 7월 7일 명절은 견우와 직녀 설화로, 음력 3월 3일 명절은 진달래 화전 부치기로 기억하면 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옳은 것은? [3점]
백강 전투
살수 대첩
관산성 전투
처인성 전투
화면의 재생 목록은 삼국 통일을 주제로 하며, (가)는 백제의 운명을 결정지은 황산벌 전투, (나)는 당군을 물리친 기벌포 전투 영상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의 시기를 묻는 문제입니다.
황산벌 전투는 660년 신라 김유신이 계백의 결사대를 물리친 싸움으로, 곧이어 사비성이 함락되며 백제가 멸망했습니다. 기벌포 전투는 676년 신라가 금강 하구에서 당의 수군을 격파하여 나당 전쟁을 마무리한 싸움입니다.
이 사이인 663년에 일어난 사건이 백강 전투입니다. 백제 부흥 운동 세력이 왜의 지원군과 함께 백강(금강 하구 일대)에서 나당 연합군과 맞섰으나 크게 패하면서 부흥 운동은 사실상 끝을 맺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벗어납니다. 을지문덕이 수의 군대를 무찌른 싸움은 612년, 백제 성왕이 신라 진흥왕에게 패해 전사한 싸움은 554년,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싸움은 1232년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기획서에 나타난 시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김헌창의 난
이자겸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망이·망소이의 난
기획서의 제목은 '천년의 신라, 마지막을 향해 가다'이고, 제작 의도에는 혜공왕 이후 잦은 왕위 쟁탈전으로 통치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중앙 정부가 세금을 독촉하자 농민들이 봉기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장보고, 진성 여왕, 원종·애노입니다.
혜공왕이 피살된 이후를 흔히 신라 하대라 부르며, 150여 년 동안 20명의 왕이 바뀔 만큼 왕위 다툼이 극심했습니다. 청해진을 근거로 한 장보고의 활동, 진성 여왕 때 원종과 애노의 봉기가 모두 이 시기의 일입니다.
같은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 반란이 김헌창의 난입니다.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데 불만을 품은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822년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고려 시대의 사건입니다. 외척 세력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난은 1126년, 무신 집권기 경상도 운문·초전에서 일어난 봉기는 1193년, 공주 명학소에서 신분 차별에 반발해 일어난 봉기는 1176년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대마도 정벌
4군 6진 개척
동북 9성 축조
산둥반도의 등주 공격
타임라인은 발해의 역사를 왕별로 정리한 것으로, 고왕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건국, 문왕 대흠무는 상경으로 천도, 선왕 대인수는 건흥이라는 연호 사용으로 짝지어져 있습니다. 빈칸은 무왕 대무예의 업적입니다.
무왕은 연호를 인안이라 하고 영토를 크게 넓히며 당과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흑수 말갈 문제로 당과 대립이 깊어지자 732년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의 등주를 공격하게 하여 당의 해안 지역을 타격했습니다. 이것이 빈칸에 들어갈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발해와 무관합니다. 이종무가 왜구의 소굴을 친 원정과 최윤덕·김종서가 북방 영토를 개척한 일은 모두 조선 세종 때이고, 별무반을 이끈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고 성을 쌓은 일은 고려 예종 때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견훤
궁예
온조
주몽
대화 속 사진은 (가)가 세운 태봉의 도성 터라고 소개되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수많은 청주 사람을 철원성으로 옮겨 도읍으로 삼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고구려를 세운 뒤 나라 이름을 마진, 다시 태봉으로 바꾸고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인물은 궁예입니다. 그는 광평성을 비롯한 관제를 정비하고 연호를 무태·수덕만세 등으로 바꾸며 왕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을 자처하며 관심법으로 신하와 부인을 죽이는 등 폭정을 거듭하다가 신하들에게 축출되었고, 뒤이어 왕건이 고려를 세웠습니다. 철원의 도성 터는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 인물은 각각 후백제를 세우고 완산주에 도읍한 인물, 하남 위례성에 백제를 세운 인물, 졸본에서 고구려를 세운 인물로 태봉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책'으로 옳은 것은? [1점]
동국통감
동사강목
삼국유사
제왕운기
화면 속 출연자들은 이 책을 두고 승려 일연이 저술한 역사서이며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조건을 함께 만족하는 책은 삼국유사입니다. 고려 충렬왕 때 승려 일연이 편찬한 이 책은 단군 신화를 우리 역사의 첫머리로 기록했고, 불교 설화·향가 14수 등 정사에 담기지 않은 자료를 폭넓게 실었습니다.
나머지 책과 구분해야 합니다. 서거정 등이 고조선부터 고려까지를 편년체로 정리한 관찬 사서, 안정복이 조선 후기에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를 강목체로 서술한 책은 모두 조선 시대의 저술입니다.
단군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고려 시대 책으로 이승휴가 지은 서사시 형식의 역사서가 있지만, 이는 승려가 아닌 문신의 저술이므로 '일연'이라는 단서로 가려낼 수 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문화유산 카드에는 종목이 국보, 시대는 고려, 소장처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소개 글에는 원의 영향을 받은 탑으로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목조 건축을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조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설명에 해당하는 것은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입니다. 고려 충목왕 때 대리석으로 세워졌으며, 기단과 탑신이 아(亞)자 모양으로 층층이 꺾여 있고 지붕돌에 기와·공포까지 표현되어 목조 건물을 그대로 옮긴 듯한 모습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다가 돌아온 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전시되어 있어, 카드의 소장처 정보와도 일치합니다. 조선 세조 때 세워진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이 탑을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나머지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이중 기단 위에 삼층으로 쌓은 통일 신라의 전형적 석탑,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신라의 모전 석탑, 벽돌을 구워 쌓은 발해의 전탑은 모두 고려의 대리석 탑이 아닙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 - (나) - (다)
(가) - (다) - (나)
(나) - (가) - (다)
(다) - (가) - (나)
(가)는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발해 일어난 을미의병(1895)으로 유인석이 중심인물이다. (나)는 을사늑약 체결 후 을사의병(1905~1906)으로 최익현이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하며 봉기했다. (다)는 정미의병 시기 각지 의병이 연합해 결성한 13도 창의군(1908)이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한 것이다. 따라서 시기 순서는 (가)-(나)-(다)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중방
교정도감
도병마사
식목도감
퀴즈의 단계별 힌트는 고려 무신 정권기의 최고 권력 기구, 임시 기구로 출발, 최충헌이 설치입니다. 세 힌트를 종합하면 답은 교정도감입니다.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자신을 노린 반대 세력을 색출하려고 임시로 설치한 기구였으나, 이후 인사·조세·감찰 등 국정 전반을 처리하는 최고 정치 기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우두머리인 교정별감은 최씨 집안이 대대로 세습했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다른 기구와 구분해야 합니다. 2군 6위의 상장군·대장군이 모이던 회의체는 무신 정변 직후 권력의 중심이었으나 최충헌이 설치한 기구는 아니며, 최우가 인사 행정을 처리하려 자기 집에 둔 기구는 정방입니다.
국방과 국경 문제를 다루던 회의 기구와 법과 제도를 논의하던 회의 기구는 고려의 독자적인 재추 합좌 기구로, 무신 정권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가상 인터뷰의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3점]
무애가를 지었습니다.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습니다.
인터뷰에서 기자는 지눌 스님에게 불교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묻고 있으므로, 빈칸에는 지눌의 활동이 들어가야 합니다.
지눌은 고려 무신 집권기에 불교계의 세속화를 비판하며,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참선과 독경에 힘쓰자는 수선사 결사를 제창했습니다. 순천 송광사를 근거지로 삼아 이 운동을 펼쳤습니다.
사상 면에서는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아우르는 정혜쌍수와, 단번에 깨친 뒤에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를 내세웠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승려의 업적입니다. 어려운 불교 교리를 노래로 만들어 대중에게 퍼뜨린 신라의 승려, 국청사를 중심으로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통합하려 한 고려 왕자 출신 승려,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기행문을 남긴 신라의 승려가 각각 해당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카드 뒷면에는 고려 시대 학자, 성균관 대사성 역임, 사신으로 명과 일본을 왕래, 조선 건국 세력에 맞서 고려 왕조를 지키고자 함, 문집으로 포은집이 있음이라는 단서가 적혀 있습니다.
'포은'이라는 호와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려 했다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이 인물은 정몽주입니다. 그는 성균관에서 성리학을 가르쳐 '동방 이학의 조'로 불렸고, 명과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며 외교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새 왕조 개창에 반대하다가 이방원 세력에 의해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절의를 지킨 인물로 후대에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나머지 인물은 시대가 다르거나 입장이 반대입니다. 열하일기를 남긴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북벌을 주장한 조선 후기 서인의 영수, 그리고 조선 개국을 주도하고 조선경국전을 지은 인물이 각각 해당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화면의 과제는 15세기 조선의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조사하는 내용이며, 세 사람의 이름 아래에 각각의 업적이 적혀 있습니다. 이천에는 '갑인자 등 금속 활자를 제작하였다', 이순지에는 '역법서인 칠정산을 만들었다'가 채워져 있고, 장영실의 칸이 (가)로 비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장영실의 업적이 들어가야 합니다. 관노 출신이던 장영실은 세종의 발탁으로 기술 관료가 되어 물의 흐름으로 시각을 알리고 스스로 종을 쳐 시간을 알려 주는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습니다. 해시계인 앙부일구,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제작에도 참여하였습니다.
나머지 업적은 시기와 인물이 맞지 않습니다. 거중기 설계는 18세기 정조 때 정약용이 수원 화성 축조를 위해 한 일이고, 대동여지도는 19세기 김정호가 만든 지도이며, 동의보감은 광해군 때 허준이 완성한 의서로 모두 15세기의 성과가 아닙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대답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①
②
③
④
교사는 원 간섭기에 몽골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고려의 생활 모습을 묻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은 지배층을 중심으로 한 변발 유행, 증류 방식의 소주 제조, 고추를 넣은 김치 담그기, 아랫도리에 주름을 잡은 철릭 착용입니다.
이 가운데 고추를 넣어 김치를 담갔다는 대답이 시기에 맞지 않습니다. 고추는 아메리카 원산의 작물로 임진왜란 전후에 일본을 거쳐 들어왔고, 고춧가루를 넣은 붉은 김치가 일반화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입니다. 고려 시대의 김치는 소금에 절이거나 장에 담근 형태였습니다.
반면 변발과 호복, 철릭 같은 복식은 대표적인 몽골풍이며, 소주 역시 몽골군의 주둔지였던 개성·안동·제주 등에 증류 기술이 전해지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원 간섭기에는 몽골어와 몽골식 풍습이 고려 사회에 널리 퍼졌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왕명 출납을 관장하였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았다.
외국어 통역 업무를 담당하였다.
사간원, 홍문관과 함께 삼사로 불렸다.
그림 속 두 관리의 대화에서 한 사람은 호조의 관리들이 국가의 물자를 빼돌려 비위의 범위가 넓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서둘러 (가)의 수장인 대사헌에게 보고하라고 합니다. 관리의 비리를 적발·감찰하고 그 우두머리가 대사헌인 기구는 조선의 사헌부입니다.
사헌부는 관리의 부정과 비리를 감찰하고 정사를 비판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왕에게 간쟁하던 사간원, 경연을 담당하며 학문·자문을 맡던 홍문관과 함께 삼사로 불리며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막는 언론 기능을 수행하였습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은 대간이라 하여 5품 이하 관리 임명에 동의하는 서경권도 행사하였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기 다른 기구에 해당합니다. 왕명 출납은 승정원, 수도의 행정과 치안은 한성부, 외국어 통역 업무는 사역원이 담당하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용어로 옳은 것은? [1점]
선종
성리학
양명학
천도교
화면은 조선의 통치 이념인 (가)를 배운 뒤 학생들이 떠올린 용어를 빈도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 보여 줍니다. 제시된 단어는 신진사대부(가장 큼), 이기론, 주자, 이이, 이황, 사림, 서원, 안향입니다.
이는 모두 성리학과 직결되는 용어입니다. 성리학은 남송의 주자가 집대성한 유학으로 이(理)와 기(氣)로 세계와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이기론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고려 후기 안향이 소개하였고 신진사대부가 이를 사상적 기반으로 조선 건국을 주도하였습니다.
조선에서는 이황과 이이 등에 의해 심화되었고, 사림 세력이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향촌에서 세력을 넓히며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종은 불교의 한 종파, 양명학은 성리학을 비판하며 실천을 강조한 학문, 천도교는 동학을 개칭한 근대의 종교로 조선의 공식 통치 이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김시민 장군이 활약하였다.
별무반을 편성하여 적과 싸웠다.
전쟁 후 청과 군신 관계를 맺었다.
이여송이 이끄는 명의 지원군이 파병되었다.
진행자는 촬영 장소가 남한산성이며,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유리한 지형에 세워진 산성으로 '이 전쟁' 때 인조가 피신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란하여 항전한 전쟁은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입니다.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으나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침입하였습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간 버텼지만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하였고, 그 결과 조선은 청과 군신 관계를 맺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이 볼모로 끌려갔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기 다른 전쟁의 사실입니다. 김시민의 진주 대첩과 이여송이 이끈 명 지원군의 파병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고, 별무반 편성은 고려 숙종 때 여진 정벌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비변사가 폐지되었다.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였다.
무오사화로 김일손 등이 처형되었다.
(가)는 효종이 죽자 자의 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벌어진 예송으로, 1659년의 기해예송입니다. (나)는 신하들이 탕평의 의미를 되새기라는 뜻에서 왕이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운 일로, 1742년 영조가 한 조치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의 시기입니다. 이 기간에 숙종은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을 급격히 교체하는 환국을 여러 차례 단행하였는데, 1680년 남인이 대거 축출되고 서인이 집권한 경신환국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이 시기를 벗어납니다. 훈련도감 설치는 임진왜란 중인 1593년, 무오사화로 김일손 등이 처형된 것은 1498년 연산군 때로 (가) 이전의 일이며, 비변사 폐지는 19세기 후반 흥선 대원군의 개혁으로 (나) 이후에 해당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홍경래가 봉기를 주도하였다.
서경 천도를 주장하며 일어났다.
백낙신의 횡포가 계기가 되었다.
특수 행정 구역인 소의 주민이 참여하였다.
지도는 1811년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 등에 반발하여 일어난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여 줍니다. 무대는 평안도로 가산·박천·정주·곽산·선천·철산·용천·태천 등지가 표시되어 있고, 다복동이 '반군의 본거지', 정주가 '관군에 패한 곳'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홍경래의 난입니다. 몰락 양반 홍경래가 봉기를 주도하여 다복동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우군칙·이희저 등 상인·광산 노동자·농민이 가담해 한때 청천강 이북을 장악하였으나, 정주성에서 관군에게 진압되었습니다.
다른 설명은 각기 다른 사건입니다. 서경 천도를 내세운 것은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 백낙신의 횡포가 계기가 된 것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진주 농민 봉기), 특수 행정 구역인 소의 주민이 참여한 것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망이·망소이의 난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민화를 그리는 화가
탈춤을 공연하는 광대
판소리를 구경하는 상인
팔관회에 참가하는 외국 사신
그림에는 간판에 세책점이라 적힌 가게에서 여인이 춘향전을 빌리려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벽에는 '상평통보 환영'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한글 소설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과 상평통보의 유통은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의 경제력과 의식이 성장하면서 서민 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소박한 소망을 담은 민화가 유행하고, 양반을 풍자하는 탈춤과 판소리가 장시에서 공연되었으며 상인들이 이를 즐겼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없는 것은 팔관회에 참가하는 외국 사신입니다. 팔관회는 고려의 국가적 행사로 송·여진·아라비아 상인까지 참여하는 국제 교류의 장이었으나, 조선 건국 이후 유교 이념에 따라 폐지되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제도로 옳은 것은? [1점]
과전법
균역법
대동법
영정법
도해에서 (가)의 실시 배경은 방납의 폐단, 담당 기구는 선혜청, 내용은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부과하고 특산물 대신 쌀·옷감·동전을 징수, 영향은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공납을 대신 바치고 대가를 부풀려 받는 방납의 폐단으로 농민 부담이 커지자,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하여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하였습니다. 가호 단위로 현물을 내던 공납을 토지 1결당 쌀 12두 등으로 바꾸어 토지가 많은 지주의 부담을 늘리고 농민 부담은 줄였습니다.
또한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하여 상품 수요가 늘면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였습니다. 과전법은 고려 말 관리에게 수조권을 나누어 준 토지 제도, 균역법은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제도, 영정법은 전세를 토지 1결당 4~6두로 고정한 제도로 각각 성격이 다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전시과를 시행하였다.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홍보물은 (가)의 능행차 재현 행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거행했던 을묘년 화성 원행을 재현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행렬 경로는 창덕궁 → 노들섬 → 시흥행궁터 → 장안문·화성행궁 → 융릉입니다.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자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을 참배한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1795년 을묘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 화성으로 대규모 행차를 하였고, 그 과정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남겼습니다.
정조는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고 그 외영을 화성에 두었습니다. 아울러 규장각을 설치해 초계문신제를 운영하고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을 폐지하였습니다.
다른 정책은 시기가 다릅니다. 전시과는 고려의 토지 제도,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경복궁 중건은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추진한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이이
박제가
유형원
홍대용
그림은 전북 부안에 있는 반계 서당을 소개하는 게시물로, 이곳에 머물렀던 조선의 실학자가 균전론 등 여러 개혁안을 제시한 반계수록을 저술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안 우반동에 은거하며 반계수록을 지은 인물은 유형원입니다. 그는 신분에 따라 토지를 차등 분배하자는 균전론을 주장하여 토지 제도 개혁을 통해 자영농을 육성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이는 16세기 성리학자로 동호문답·성학집요를 남겼고, 박제가와 홍대용은 청의 문물 수용을 강조한 북학파 실학자로 각각 북학의와 의산문답을 저술하였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영선사를 파견하였다.
육영 공원을 설립하였다.
대한국 국제를 제정하였다.
그림은 환구단의 일부인 황궁우 앞에서 나눈 대화로,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경운궁에서 새로운 국호를 선포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선포된 국호는 대한 제국(1897)입니다.
대한 제국 시기인 1899년, 고종은 황제에게 육해군 통수권·입법권·사법권 등 모든 권한이 집중된 전제 군주제를 규정한 대한국 국제를 제정하여 반포하였습니다.
당백전 발행(1866)은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재원 마련책이고, 청에 기기 제조 기술을 배우러 보낸 영선사 파견(1881)과 근대식 관립 학교인 육영 공원 설립(1886)은 모두 대한 제국 수립 이전의 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1점]
갑오개혁
갑신정변
브나로드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
그림은 3일 천하라는 제목의 역사 뮤지컬 홍보물로,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삼아 조선 청년들이 일으킨 사건을 다룬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일으킨 정변이 갑신정변입니다. 이들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여 '3일 천하'라 불립니다.
갑오개혁(1894)은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추진된 근대적 개혁이고, 브나로드 운동(1931)은 동아일보의 농촌 계몽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1920년대)은 우리 손으로 대학을 세우려 한 실력 양성 운동으로 모두 우정총국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의병'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가)
(나)
(다)
(라)
그림 속 고종의 말은 역적들이 국모를 시해하고 억지로 머리카락을 깎게 하니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것으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 일어난 을미의병(1895)을 가리킵니다. 이어 단발을 편한 대로 하게 하였다는 것은 아관 파천 이후 단발령이 철회된 상황을 보여 줍니다.
연표는 1862년 임술 농민 봉기 - 1875년 운요호 사건 - 1882년 임오군란 - 1894년 청일 전쟁 발발 - 1910년 국권 피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1895년에 일어난 을미의병은 청일 전쟁 발발(1894)과 국권 피탈(1910) 사이의 시기에 위치합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척화비가 건립되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그림은 미국 군대가 쳐들어왔다는 외침과 함께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광성보를 지켜내자는 대화가 나오는 장면으로, 1871년의 신미양요를 나타냅니다. 어재연이 이끈 조선군은 강화도 광성보에서 미군에 맞서 항전하였습니다.
신미양요로 미군을 물리친 뒤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병인박해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의 일로 모두 신미양요보다 앞서 일어났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이준
손병희
여운형
홍범도
그림은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 안내도를 배경으로 한 답사 장면으로, 신익희·김병로·이시영·김창숙 묘와 광복군 합동 묘역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안내자는 답사할 인물에 대해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아 이상설·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한 인물은 이준이며, 그는 현지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손병희는 천도교를 이끌며 3·1 운동 민족 대표로 참여하였고, 여운형은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하였으며,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지휘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
조선 사람 조선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주장하였다.
그림에서는 국채 보상 기성회에서 모금하고 있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참여하려고 비녀를 팔았다거나 담배를 끊어 성금을 마련했다는 사람들의 말이 나옵니다. 이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국권을 지키자는 이 운동은 금연·금주와 패물 헌납으로 확산되었고,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의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만민 공동회 개최는 독립 협회의 활동이고,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세운 것은 물산 장려 운동이며,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한 것은 형평 운동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만세 시위 운동'의 영향으로 옳은 것은? [2점]
독립문이 건립되었다.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토지 조사 사업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림은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보여 주면서, 이것이 언론이 통제된 무단 통치 시기에 발행된 지하 신문이며 1919년에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세 시위 운동은 3·1 운동입니다.
3·1 운동으로 독립운동을 하나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독립문 건립(1897)은 독립 협회의 활동이고 홍범 14조 반포(1895)는 제2차 갑오개혁의 결과이며, 토지 조사 사업 시작(1912)은 3·1 운동 이전에 이루어졌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단체로 옳은 것은? [2점]
권업회
보안회
참의부
대한 광복회
박상진은 1915년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여 독립 전쟁 자금을 모금하고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활동을 주도하다가 1918년 체포되었다. 의열단은 1919년 김원봉이 만주 지린에서 조직한 무장 투쟁 단체이고, 독립 의군부는 1912년 임병찬이 조직한 복벽주의 단체이며, 대한인 국민회는 미주 지역 한인들이 결성한 단체이므로 (가)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신채호
안중근
이회영
이동휘
그림은 우당 (가)와/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다큐멘터리 기획안으로, 명문가의 자손인 우당과 형제들이 만주로 망명하여 펼친 독립운동을 다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구성은 1부 전 재산을 처분하고 압록강을 건너다, 2부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다입니다.
호가 우당이며 여섯 형제와 함께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망명한 뒤, 삼원보에 신흥 강습소(뒷날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길러낸 인물은 이회영입니다.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 등을 저술한 민족주의 사학자,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사, 이동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회사령을 공포하는 총독부 관리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그림은 궁성요배 표어 유물로, 중일 전쟁 이후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시기에 아침마다 일왕이 거처하는 곳을 향해 절하며 경의를 표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이 만든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중일 전쟁(1937) 이후는 민족 말살 통치 시기로,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궁성 요배·신사 참배와 함께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을 학생과 일반인에게 강요하였습니다.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과 회사령 공포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모습이고, 암태도 소작 쟁의는 1923년에 일어난 일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났다.
통감부의 탄압으로 실패하였다.
국민 대표 회의 개최의 배경이 되었다.
신간회에서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제시된 카드뉴스는 1929년 나주와 광주를 오가는 열차 안에서 벌어진 한·일 학생 간 충돌로 시작해, 일제 경찰의 민족 차별적 대응에 맞서 광주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위가 시작된 11월 3일을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로 지정했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밑줄 그은 '이 운동'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국내 최대의 민족 협동 전선 단체였던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열어 이를 전국적인 항일 운동으로 확산시키려 하였다. 이것이 이 운동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순종의 인산일(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것은 6·10 만세 운동(1926)이며, 통감부는 1910년 국권 피탈 이전에 존재한 기구이므로 1929년의 사건과 무관하다. 국민 대표 회의(1923) 개최의 배경이 된 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침체와 노선 갈등이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군사 조직으로 옳은 것은? [1점]
북로 군정서
조선 의용대
조선 혁명군
한국 광복군
화면 속 질문과 답변을 보면 (가) 조직은 총사령관이 지청천이었고, 영국군과 함께 미얀마 전선에서 활동했으며,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군사 조직은 한국 광복군이다.
한국 광복군은 1940년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군으로 창설되었고, 총사령관에 지청천이 임명되었다.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공작대를 파견해 포로 심문과 선전 활동을 담당했고,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다가 일제의 항복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북로 군정서는 김좌진이 이끌며 청산리 대첩을 이끈 부대이고, 조선 의용대는 김원봉이 중국 관내에서 조직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이며, 조선 혁명군은 양세봉이 이끌고 남만주에서 영릉가·흥경성 전투를 치른 부대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성명서가 발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한인 애국단이 결성되었다.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렸다.
평양에서 남북 협상이 진행되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림 속 성명서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으로, 김구가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힌 글이다. 이는 유엔 소총회가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결정한 직후인 1948년 2월에 발표되었다.
이 성명 발표 이후 김구와 김규식은 북측에 회담을 제의하여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 협상(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단독 선거를 막지는 못하였고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한인 애국단 결성(1931),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1945년 12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1946년 3월)는 모두 이 성명서가 발표되기 이전의 사실이므로 이후의 일로 볼 수 없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원산 총파업
제암리 사건
자유시 참변
제주 4·3 사건
답사 사진전 안내문에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세력을 토벌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었다고 적혀 있고, 답사지로 너븐숭이 애기무덤과 섯알오름 학살터가 제시되어 있다. 두 곳 모두 제주도에 있는 유적이므로 (가)는 제주 4·3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한 무장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군경 토벌대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사건으로, 제주도 일부 선거구는 5·10 총선거가 무산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특별법에 따라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원산 총파업(1929)은 일제 강점기 최대의 노동 쟁의이고, 제암리 사건(1919)은 3·1 운동 당시 일본군의 학살 만행이며, 자유시 참변(1921)은 러시아 자유시에서 한인 무장 부대가 참변을 당한 사건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인천 상륙 작전이 전개되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승만이 임시 의정원에서 탄핵되었다.
쌍성보에서 한중 연합 작전이 펼쳐졌다.
사진 속 기념관은 에티오피아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을 기리는 기념관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유엔군으로 참전한 전쟁은 6·25 전쟁(1950~1953)이다.
6·25 전쟁 중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버틴 뒤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여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되찾은 다음 압록강 부근까지 북진하였다. 이후 중국군의 개입으로 1·4 후퇴를 겪었고 전선이 교착되면서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1945)은 광복 직후의 일이고, 이승만의 임시 의정원 탄핵(1925)과 쌍성보 한중 연합 작전(1932)은 모두 일제 강점기의 사실이므로 이 전쟁 시기와 맞지 않는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밑줄 그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일어났다.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
대화에서 1987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라는 시점과, 명동성당에 있던 시위대에게 도시락을 전했다는 내용, 그리고 시민들이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는 구호가 제시되어 있다. 이는 6월 민주 항쟁을 가리킨다.
6월 민주 항쟁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전두환 정부의 4·13 호헌 조치에 반발해 일어났으며,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사건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그 결과 여당 대표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여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해 일어난 것은 4·19 혁명(1960),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것은 6·3 시위(1964),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가 원인이 된 것은 5·18 민주화 운동(1980)이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다)의 모습이 나타난 시대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 - (나) - (다)
(가) - (다) - (나)
(나) - (가) - (다)
(다) - (가) - (나)
게시판의 세 자료를 보면, (가)는 당항성과 울산항에서 당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교류했다는 내용으로 통일 신라에 해당한다. 울산항은 통일 신라의 국제 무역항이었고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나)는 만상과 송상이 청과의 무역에 활발히 참여했다는 내용으로, 사상(私商)이 성장한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만상은 의주를 근거지로 청과, 내상은 동래에서 일본과 무역하였다.
(다)는 벽란도가 송·일본·아라비아 상인들이 드나드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다는 내용으로 고려 시대이다. 이때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따라서 시대 순서는 통일 신라 → 고려 → 조선 후기, 곧 (가) → (다) → (나)가 된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금융 실명제를 실시했어.
경부 고속 도로를 준공했어.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어.
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했어.
칠판 주제는 '○○○ 정부가 한 일'이고, 학생들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는 점과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총독부 건물 철거(1995)와 OECD 가입(1996)은 모두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이다.
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인 1993년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여 가명·차명 거래를 금지하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전직 대통령 구속 등도 이 시기의 일이다.
경부 고속 도로 준공(1970)과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1962)은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이며,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은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되어 이명박 정부 때 발효되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옳은 것은? [1점]
진도
거제도
강화도
울릉도
답사 안내문에 실린 네 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근리 지석묘, 대몽 항쟁기 왕의 무덤인 홍릉, 병인양요의 격전지 정족산성, 조일 수호 조규가 체결된 연무당 옛터이다. 이 유적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은 강화도이다.
강화도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유적이 남아 있고,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맞서 도읍을 옮겨 항쟁한 곳이어서 그때의 왕인 고려 고종의 무덤(홍릉)이 자리한다. 조선 후기에는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고, 신미양요 때는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또한 1876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연무당에서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이 체결되어 조선이 개항하게 되었다. 이처럼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유적이 한곳에 모여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가) - 훈요 10조를 남겼다.
(나) - 전민변정도감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다) - 현량과 시행을 주장하였다.
(라) -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
학습지는 네 인물이 당시 사회의 문제점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묻고 있다. 표에서 최치원은 골품제의 모순 심화, 신돈은 권문세족의 불법적인 농장 확대, 조광조는 권력이 훈구 세력에 집중된 상황, 전봉준은 지방관의 수탈과 외세의 침탈이라는 문제와 마주한 인물로 제시되어 있다.
최치원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한 뒤 귀국하여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려 개혁을 건의했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훈요 10조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후대 왕들에게 남긴 가르침이므로, 최치원의 해결 노력으로 짝지을 수 없는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다.
나머지는 모두 알맞다. 신돈은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 설치를 건의해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되돌렸고, 조광조는 중종 때 사림을 등용하기 위해 현량과 시행을 주장했으며, 전봉준은 고부 군수의 학정과 외세 침탈에 맞서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정부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3점]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6·15 남북 공동 선언에 합의하였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최초로 실현하였다.
전시 패널에 걸린 두 장의 사진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한중 수교입니다.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한 것은 1991년 9월, 중국과 국교를 맺은 것은 1992년 8월의 일로, 두 사건 모두 노태우 정부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소련·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국제 정세 변화를 배경으로 북방 외교를 펼쳐 소련·중국 등과 잇달아 수교하였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남북 대화도 크게 진전되었습니다. 그 결실이 1991년 12월에 채택된 남북 기본 합의서로,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을 약속한 최초의 공식 합의였습니다.
나머지 선택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밝힌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나 합의한 6·15 남북 공동 선언은 김대중 정부의 성과입니다. 또 이산가족 고향 방문이 최초로 실현된 것은 1985년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최신 법령·기준과 다른 부분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0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