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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원직 9급 전산·사서 국어] 26년 1회차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문1~4]
피해자는 돌아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기 시작하였다. 뒤에서 두 놈이 총을 재었다.
바야흐로 불길을 뿜으려는 총구를 등 뒤에 받으며, 주저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피해자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가고 있다. 인제 몇 발의 총성과 더불어 그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똑바로 정면으로 눈을 준 채 조금도 흩어질 줄 모르는 그의 침착한 걸음걸이…….
눈앞이 빙빙 돈다. ⓐ 그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자기인 것만 같았다. ㉠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그는 사수를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그의 두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두 놈이 쓰러졌다. 그는 다음 다음 연달아 쏘았다. 일순간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서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전신의 근육이 개머리판의 진동에 따라 약동한다. 의식이 자주 흐려진다. 그는 푹 고개를 묻고 쓰러졌다. 위기일발, 다시 겨눈다. 또 어깨 위에 급격한 진동이 지나간다. 자꾸 흩어지는 의식. 놈들의 사격이 뚝 그쳤다. 적은 전후 좌우방으로 흩어져서 육박하여 오고 있다. 의식을 잃은 난사.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푹 쓰러졌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갓 지나간 격렬한 총성의 여음이 귓가에서 감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난다.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다. 그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오른편 팔 위에 격통이 일어난다. 그는 간신히 왼편 손으로 오른편 팔을 엎쓸어 더듬었다. 손끝에 오는 감촉이 끈적끈적하다. 손을 떼었다.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 손끝과 손가락 사이에는 피, 검붉은 피가 흠뻑 젖어 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먼지와 거미줄이 뽀야니 늘어 붙은 찢어진 천장 구멍으로 사라져 간다. 방안이다. 방안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이따금 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오른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서 그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 후 몇 번이고 신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 시간이 되었나 보다.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띠고 사닥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떤 일일까……? 막연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 …… 정확한 ……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사닥다리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나와!”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독촉하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인제 끝나는 것이다. ⓓ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그는 눈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움켜 짚고 떨리는 다리를 바로 잡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음을 옮겼다. ㉡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본부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뒤이어 떨어졌다.
㉢ 눈에 함빡 싸인 흰 둑길이다. 오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 닿은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 하는 길이니 유감없을 거요.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사수(射手) 준비! 총탄 재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앞에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 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튼,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총성,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흰 눈 속을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 속에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가 뒤통수서 잡아 일으키는 것 같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 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쩍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들 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들 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오상원, 「유예」-

윗글을 영화로 제작하려고 할 때, ㉠~㉣의 영상 제작에 대한 계획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결심에 찬 내면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총을 세게 잡는 주인공의 손아귀를 확대하여 촬영한다.
2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키려는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 주인공의 의지에 찬 표정을 확대하여 촬영한다.
3
㉢:운명에 대한 원망과 좌절을 나타내기 위해 주인공의 내적 독백을 효과음으로 삽입한다.
4
㉣:흐려지는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눈 위에 햇볕이 비치는 장면에서 점차 화면이 어두워지고 소리가 작아지도록 한다.
해설

적절하지 않은 계획은 ㉢에서 운명에 대한 원망과 좌절을 나타내려는 계획이다.

㉢ 바로 뒤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라는 서술이 이어지고, 주인공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곧 ㉢의 정서는 원망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의지이다.

  • ㉠에서 총을 세게 잡는 손아귀를 확대하는 계획: ‘총을 꽉 움켜쥐었다’와 ‘비겁한 수단이다’에 담긴 결심을 잘 살린다.
  • ㉡에서 의지에 찬 표정을 확대하는 계획: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서술에 들어맞는다.
  • ㉣에서 화면을 점차 어둡게 하고 소리를 줄이는 계획: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는 서술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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