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9급 한국사] 20년 1회차 기출문제 정답·해설 페이지
- 고인돌 조성: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 풍습이다.
- 빗살무늬토기 제작: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 명도전 교역: 철기 시대에 중국과 교역했음을 보여 주는 화폐이다.
- 관료전·녹읍·태학의 조합: 태학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세운 교육 기관이므로 (다)에 맞지 않는다.
- 녹읍·관료전·국학의 조합: 지급한 것과 폐지한 것이 뒤바뀌었다.
- 녹읍·관료전·태학의 조합: 지급과 폐지가 뒤바뀌었고, 교육 기관도 고구려의 것이다.
- 해동성국: 선왕 때 전성기를 맞은 발해를 중국이 부른 이름이다.
- 독자적 연호: 발해는 인안, 대흥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 3성 6부: 발해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운영하였다.
- 갑인자 주조: 세종 때의 사실이다.
- 호패법 시행: 태종 때 처음 시행되었다.
- 『조선경국전』 편찬: 태조 때 정도전이 지은 법전이다.
- 별무반 조직: 숙종 때 여진에 대비한 것으로, 귀주 대첩보다 뒤의 일이다.
- 비변사 설치: 조선 시대 16세기의 일이다.
- 정방 설치: 무신 집권기 최우가 설치한 인사 기구로, 시기가 뒤일 뿐 아니라 군사 기구도 아니다.
- 무관세 적용: 1876년 조일 무역 규칙 체제에서 일본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못했다.
- 2개 항구 추가 개항: 강화도 조약에 규정되어 이후 원산과 인천이 개항되었다.
- 일본 화폐 유통: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 규정된 내용이다.
- 서원 정리: 흥선대원군이 양반 세력의 근거지를 약화하고자 추진하였다.
- 『대전회통』 편찬: 흥선대원군이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며 편찬하였다.
- 삼군부 강화: 비변사의 권한을 축소하고 삼군부를 부활시켜 군사권을 담당하게 하였다.
- 재정의 탁지부 관리: 헌의 6조에 포함되어 재정 일원화를 요구하였다.
- 칙임관 임명: 정부의 과반수 찬성을 받도록 한 조항이 포함되었다.
- 조약 시행: 각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의 합동 서명을 요구한 조항이 포함되었다.
- 이성계의 회군: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 6진 개척: 두만강 유역에서 이루어졌다.
- 묘청의 천도 추진: 서경(평양)을 무대로 한 일이다.
- (가)의 좌·우 합작 위원회 참가: 이 위원회를 주도한 인물은 여운형과 김규식이다.
- (나)의 남북 연석회의 참석: 평양 회의에 간 인물은 김구, 김규식 등이며 이승만은 참석하지 않았다.
- 두 인물의 5·10 총선거 찬성: 이승만과 달리 김구는 단독 선거에 반대하여 불참하였다.
- 전주 관노의 난: 전주에서 관노비 등이 일으킨 봉기이다.
- 망이·망소이의 난: 공주 명학소 주민이 차별에 반발해 일으킨 봉기이다.
- 김사미·효심의 난: 운문과 초전에서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이다.
- 역분전 → 경정전시과 → 과전법 → 시정전시과의 배열: 시정전시과는 전시과의 첫 제도이므로 맨 뒤에 올 수 없다.
- 시정전시과 → 경정전시과 → 역분전 → 과전법의 배열: 역분전은 전시과보다 앞선 제도이다.
- 시정전시과 → 역분전 → 경정전시과 → 과전법의 배열: 태조 때의 역분전이 경종 때의 시정전시과보다 먼저이다.
- 백제의 22담로: 무령왕 때 지방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였다.
- 발해의 지방 행정: 5경 15부 62주로 조직하였다.
- 고려의 속현: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았다.
- 균전제 주장: 신분에 따라 토지를 차등 분배하자고 한 유형원의 주장이다.
- 최초의 지전설: 김석문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학의』의 소비 강조: 박제가의 주장이다.
- ㄱ(양반만 구성원): 향약에는 양반뿐 아니라 상민, 노비 등 향촌 구성원이 두루 포함되었다.
- ㄹ(수령이 만든 자치규약): 향약은 수령이 아니라 지방 사족이 주도하여 운영하였다.
- 양반에게도 군포 징수: 양반에게도 군포를 거둔 것은 흥선대원군의 호포제이다.
- 숙종 때 평안도·함경도 제외 시행: 대동법의 전국 확대에 관한 설명이다.
- 공인의 등장: 대동법 시행으로 나타난 변화이다.
- 조선혁명선언: 신채호가 작성한 의열단의 활동 지침이다.
- 자유시 참변: 1921년 만주·연해주의 독립군이 겪은 사건으로, 이 단체의 성립 이전이다.
- 대전자령 전투: 1933년 지청천의 한국독립군이 거둔 승리이다.
- 1910년대의 산미증식계획: 이 계획은 1920년대에 추진되었다.
- 1920년대의 토지조사사업: 이 사업은 1910년대에 전개되었다.
- 1930년대의 「회사령」과 「어업령」: 두 법령은 1910년대 초에 공포되었다.
- 연통제: 임시정부가 국내와 연락하고 자금을 모으고자 둔 비밀 행정 조직이다.
- 공화정 채택: 임시정부는 민주 공화정을 정체로 삼았다.
- 『독립신문』 발행: 임시정부의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 7·7 → 7·4 → 합의서 → 6·15의 배열: 1988년의 선언이 1972년의 성명보다 앞에 놓였다.
- 7·7 → 6·15 → 7·4 → 합의서의 배열: 2000년의 선언이 1972년의 성명과 1991년의 합의서보다 앞에 놓였다.
- 7·4 → 합의서 → 7·7 → 6·15의 배열: 1991년의 합의서가 1988년의 선언보다 앞에 놓였다.
다음 내용의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유적: 상원 검은모루 동굴, 연천 전곡리 등
○ 생활: 동굴이나 강가 등
○ 도구: 뗀석기와 뼈 연모 등
고인돌을 조성하였다.
빗살무늬토기를 제작하였다.
명도전 등을 사용하여 교역하였다.
주먹도끼로 짐승을 사냥하기도 하였다.
제시된 시대는 구석기 시대이므로, 주먹도끼로 짐승을 사냥했다는 설명이 옳다.
‘상원 검은모루 동굴’, ‘연천 전곡리’ 유적과 ‘뗀석기’, 동굴·강가 생활이 단서이다.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뗀석기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가) ~ (다)를 바르게 연결한 것은?신문왕은 왕권 강화와 진골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하고자 (가) 을 지급하고, (나) 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귀족 자제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고 관리로 양성하고자 (다) 을 설치하였다.(가) (나) (다)
관료전 녹읍 국학
관료전 녹읍 태학
녹읍 관료전 국학
녹읍 관료전 태학
(가)는 관료전, (나)는 녹읍, (다)는 국학이다.
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하고, 수조권과 노동력 징발권을 함께 주던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했다. 또한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하여 관리를 양성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발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중앙 정치 기구를 3성 6부로 조직하였다.
발해와 관련 없는 것은 청해진 설치이다.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한 해상 기지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조선 성종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갑인자를 주조하였다.
『동국통감』을 간행하였다.
호패법을 처음 시행하였다.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였다.
성종 시기의 사실은 『동국통감』 간행이다.
『동국통감』은 서거정 등이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통사로, 성종 때 간행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거란의 소손녕이 군대를 이끌고 침략하여,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하였다.↓(가)↓거란의 군대를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별무반을 조직하여 침략에 대비하였다.
비변사를 설치하여 변방을 방비하였다.
정방을 설치하여 군사적 기반으로 삼았다.
압록강 동쪽에 성을 쌓아 강동 6주를 설치하였다.
(가) 시기의 사실은 강동 6주 설치이다.
앞의 기준은 소손녕이 침입한 거란의 1차 침입(993)이고, 뒤의 기준은 강감찬이 승리한 귀주 대첩(1019)이다.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고려는 994년 무렵 압록강 동쪽에 강동 6주를 설치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과 그 부속 조규의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일본 상품에 무관세를 적용할 것
일본의 최혜국 대우를 인정할 것
부산 외에 2개 항구를 일본에 개항할 것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할 것
강화도 조약과 부속 조규에 없는 내용은 일본의 최혜국 대우이다.
일본에 대한 최혜국 대우는 1883년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에서 규정되었으므로 1876년의 조약 내용이 아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다.
『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삼군부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양전·지계 사업을 시행하였다.
흥선대원군 집권기의 사실이 아닌 것은 양전·지계 사업이다.
양전·지계 사업은 대한제국의 광무개혁 때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고자 시행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밑줄 친 ‘건의문’의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1898년(광무 2년) 10월 종로광장에서 관민공동회가 개최되었다. 박정양 등 정부의 대신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의 백성이 모인 군중대회에서 6가지 건의문을 채택하여 황제에게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탐관오리는 모두 쫓아낼 것
전국 재정은 모두 탁지부에서 관리할 것
칙임관은 정부의 과반수 찬성을 받아 임명할 것
조약은 각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으로 서명한 다음에 시행할 것
밑줄 친 ‘건의문’은 헌의 6조이며, 여기에 없는 내용은 탐관오리를 쫓아내라는 조항이다.
‘1898년’, ‘관민공동회’, ‘6가지 건의문’이 단서이다. 탐관오리 축출은 동학 농민군의 개혁 요구로 잘 알려진 내용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밑줄 친 ‘이곳’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프랑스 극동함대의 로즈 제독은 7척의 군함을 이끌고 1866년 10월 이곳에 상륙하여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프랑스군은 이후 철군하면서 이곳에 있는 외규장각 의궤, 보물 등을 약탈하였다.
이성계가 회군하여 개경으로 진격하였다.
김종서가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하였다.
삼별초가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묘청이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천도를 추진하였다.
‘이곳’은 강화도이므로, 배중손이 지휘한 삼별초의 봉기가 이곳에서 있었던 사실이다.
‘로즈 제독’, ‘1866년’, ‘외규장각 의궤’ 약탈이 병인양요의 단서이다. 삼별초는 고려 정부의 개경 환도에 반대하여 강화도에서 봉기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가), (나)를 주장한 인물에 대한 설명이 바르게 짝 지어진 것은?(가)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소)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할 것이다.
(가) − 좌·우합작위원회에 참가하였다.
(나) −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가)와 (나) − 5·10 총선거 실시를 찬성하였다.
(가)와 (나) − 신탁통치 방안에 반대하였다.
(가)는 김구, (나)는 이승만이며, 두 사람은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하였다.
(가)는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내용이고, (나)는 ‘남방만이라도’ 정부를 조직하자는 정읍 발언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시작된 봉기는?북산에서 땔나무를 하다가 공사(公私)의 노예들을 불러 모아 모의하며 말하기를 “나라에서 경인년과 계사년 이래로 높은 관직이 천민과 노비에서 많이 나왔으니, 장수와 재상이 어찌 타고난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면서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고려사』 −
만적의 난
전주 관노의 난
망이·망소이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제시문의 봉기는 만적의 난이다.
‘공사(公私)의 노예들’을 불러 모아 모의한 점과 ‘장수와 재상이 어찌 타고난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말이 단서이다.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개경에서 신분 해방을 꾀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다음 고려 시대의 제도를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가) 경정전시과 (나) 과전법
(다) 역분전 (라) 시정전시과
(다) → (가) → (나) → (라)
(다) → (라) → (가) → (나)
(라) → (가) → (다) → (나)
(라) → (다) → (가) → (나)
시기순 배열은 역분전 → 시정전시과 → 경정전시과 → 과전법이다.
역분전은 태조(940), 시정전시과는 경종(976), 경정전시과는 문종(1076), 과전법은 고려 말 공양왕(1391) 때 제정되었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지방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백제는 지방에 22담로를 설치하였다.
발해는 지방 행정 구역을 5경 15부 62주로 나누었다.
고려는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주현보다 많았다.
조선은 수령을 파견할 때 그 지역 출신을 임명하였다.
옳지 않은 것은 조선이 그 지역 출신을 수령으로 임명했다는 설명이다.
조선은 수령이 자기 출신 지역에 부임하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를 시행하여 지방 세력화를 막았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다음과 같이 주장한 실학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여(閭)에는 여장(閭長)을 두고, 1여의 농토는 여에 사는 사람들이 다 함께 농사를 짓게 하되, 내 땅 네 땅의 구별이 없이, 오직 여장의 명령만을 따르도록 한다. 일할 때마다 여장은 그 일수를 장부에 기록하여 둔다. 추수 때에는 곡물을 모두 여장의 집에 운반하여 그 양곡을 나눈다. 이때 먼저 나라에 바치는 세금을 제하고, 그다음은 여장의 녹(봉급)을 제하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장부에 의거하여 일한 양에 따라 여민에게 분배한다.
균전제를 주장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지전설을 제시하였다.
사법제도 운영에 관한 『흠흠신서』를 저술하였다.
『북학의』에서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고 주장하였다.
제시문은 정약용의 여전론이므로, 『흠흠신서』를 저술했다는 설명이 옳다.
‘여(閭)’ 단위로 공동 경작하고 ‘일한 양에 따라’ 분배한다는 내용이 단서이다. 정약용은 형옥 사건을 다룬 『흠흠신서』를 저술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조선시대 향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ㄱ. 양반만 향약의 구성원이었다.
ㄴ. 향촌 사회의 질서유지에 기여하였다.
ㄷ. 중종 때 조광조 등이 각지에 향약을 보급하였다.
ㄹ. 향촌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수령이 만든 자치규약이다.
ㄱ, ㄴ
ㄱ, ㄹ
ㄴ, ㄷ
ㄷ, ㄹ
옳은 설명은 ㄴ과 ㄷ이다.
향약은 전통적 공동 조직에 유교 윤리를 더한 향촌 규약으로 향촌 질서 유지에 기여하였고, 중종 때 조광조 등 사림이 보급에 앞장섰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조선시대 균역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농민의 군포 부담을 줄여 주었다.
상민에게만 부과하였던 군포를 양반에게도 징수하였다.
숙종 때에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시행되었다.
공인이 등장하여 왕실과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였다.
균역법은 농민의 군포 부담을 줄여 준 제도이다.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여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줄어든 재정은 결작 등으로 보충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밑줄 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이 단체는 1935년에 중국 관내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가 뭉쳐서 성립되었으며, 이후 항일투쟁을 강화하고자 조선민족전선연맹으로 개편되었고 그 산하에 조선의용대가 조직되었다.
조선혁명선언을 강령으로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자유시 참변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밑줄 친 단체는 민족혁명당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는 설명이 옳다.
‘1935년’, ‘중국 관내’, ‘조선민족전선연맹’, ‘조선의용대’가 단서이다. 민족혁명당의 김원봉 세력은 1940년대 초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일제의 경제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910년대: 일본 내 식량 부족을 해결하려는 산미증식계획이 추진되었다.
1920년대: 재정수입을 확대하고자 토지조사사업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 조선인 기업의 발전을 억압하는 「회사령」과 「어업령」이 공포되었다.
1940년대: 「국가총동원법」 아래서 가혹한 물자 공출이 강제되었다.
옳은 설명은 1940년대 「국가총동원법」 아래의 물자 공출이다.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 뒤 침략 전쟁이 확대되자 곡물과 금속 등을 강제로 공출하였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
연통제를 시행하였다.
공화정을 채택하였다.
브나로드 운동을 지원하였다.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발행하였다.
임시정부의 활동이 아닌 것은 브나로드 운동 지원이다.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가 1930년대 초에 주도한 농촌 계몽 운동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가) ~ (라)를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가) 7·7 특별 선언
(나) 7·4 남북 공동 성명
(다) 6·15 남북 공동 선언
(라)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가) → (나) → (라) → (다)
(가) → (다) → (나) → (라)
(나) → (가) → (라) → (다)
(나) → (라) → (가) → (다)
시기순 배열은 7·4 남북 공동 성명 → 7·7 특별 선언 → 남북 기본 합의서 → 6·15 남북 공동 선언이다.
7·4 성명은 1972년, 7·7 선언은 1988년, 화해·불가침 교류 협력 합의서는 1991년, 6·15 선언은 2000년의 일이다.
오류나 개정된 내용이 보이면 알려주세요
[지역인재 9급 한국사] 20년 1회차 시험지 PDF 다운로드·인쇄 →
[지역인재 9급 한국사] 20년 1회차 정답과 해설은 무료인가요?
이 페이지의 20문항 정답과 해설은 로그인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무제한 풀이·실전 모의고사·PDF 출력·전자책 다운로드는 베이직 플랜에 포함됩니다.
이 회차를 CBT 로 직접 풀어볼 수 있나요?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 암기장에서 이 회차를 회차별·랜덤으로 풀고 오답노트에 자동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지역인재 9급 한국사 기출문제 풀러 가기 →
시험지 PDF 나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나요?
이 회차의 인쇄용 시험지 PDF 페이지에서 시험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험지 PDF 받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