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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계리직 한국사] 19년 1회차
밑줄 친 (가)와 (나) 사이 시기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심하도다. (가)달단이 환란을 일으킴이여! 그 잔인하고 흉포한 성품은 이미 말로 다할 수 없고, 심지어 어리석음은 또한 짐승보다 심하니, 어찌 천하에서 공경하는 바를 알겠으며, 이른바 불법(佛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그들이 경유하는 곳마다 불상과 범서를 마구 불태워 버렸습니다. … (중략) … 옛날 현종 2년에 (나)거란주(契丹主)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와서 정벌하자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하고, 거란 군사는 송악성에 주둔하고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종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더할 수 없는 큰 서원을 발하여 대장경 판본을 판각했습니다. 그러자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그렇다면 대장경도 한가지고, 전후 판각한 것도 한가지고, 군신이 함께 서원한 것도 한가지인데, 어찌 그때에만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가고 지금의 달단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제불다천(諸佛多天)이 어느 정도 보살펴 주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
1
개경에서 초조대장경판이 조성되었다.
2
개경의 교장도감에서 ?교장?이 간행되었다.
3
해인사에 장경판전을 짓고 팔만대장경판을 소장하였다.
4
대구 부인사에 소장된 초조대장경판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해설

(가)는 13세기 몽골의 침입, (나)는 현종 2년(1011) 거란의 2차 침입이며, 해인사 장경판전 건립은 그 뒤 조선 초의 일이어서 그 사이 시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글은 이규보가 재조대장경 조판 때 지은 기고문으로, 현종 때 거란 침입을 계기로 초조대장경을 만든 일을 상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 사이는 초조대장경 조성부터 몽골 침입 초기까지이다.

  • 초조대장경판은 현종 때 거란 침입을 계기로 개경에서 조성되었다.
  • 의천은 교장도감을 두어 『교장』을 간행하였다.
  • 부인사에 보관된 초조대장경판은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때 불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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