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가)명군 도독 … | [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24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법원직 9급 전산·사서 한국사] 24년 1회차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 (가)명군 도독 이여송이 대병력의 관군을 거느리고 곧바로 평양성 밖에 다다라 제장에게 부서를 나누어 본성을 포위하였습니다. … 조선의 장군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매복하고 함께 대로로 나아가니 왜적들은 사방으로 도망가다가 복병의 요격을 입었습니다. (나)화의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명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나라이고 노적은 우리나라에는 부모의 원수입니다. … 어찌 차마 이런 시기에 다시 화의를 제창할 수 있겠습니까? |
1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2
신립 장군은 충주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였다.
3
인조는 삼전도에 나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4
조선은 왜구의 약탈을 근절하고자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해설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은 강홍립의 후금 항복(1619)이다.
(가)는 ‘이여송’의 명군이 ‘평양성’을 포위한 장면으로 임진왜란 중 평양성 탈환(1593)이고, (나)는 ‘화의’를 반대하고 ‘노적’을 원수라 한 척화론으로 병자호란 무렵(1636)의 상소이다.
- 신립의 충주 패배: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의 일로 (가)보다 앞선다.
- 인조의 삼전도 항복: 1637년의 일로 척화 상소가 올라온 (나)보다 뒤이다.
- 대마도 정벌: 세종 때인 1419년의 일로 (가)보다 훨씬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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