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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원직 9급 전산·사서 국어] 24년 1회차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문1~3]
(가)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A]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 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나)
우리 집도 아니고 / 일갓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보기>를 참고하여 [A]를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보 기 >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는 일종의 스크린 역할을 하는 ‘흰 바람벽’을 통해 자기 성찰이 이루어진다. ‘흰 바람벽’을 통해 시인의 추억이 지나가고, 마침내 화자의 목소리가 자막으로 처리된다. 그 목소리의 실제 주인공인 화자는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나’를 보는 관객이 된다. ‘나’가 스크린을 통해 이렇게 둘로 분리되면서 ‘나’의 성찰은 한층 깊이를 갖게 된다.
1
‘이러한 글자들’은 실제로는 화자 자신의 목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군.
2
화자가 관객이 되어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지나가는 글자들을 바라보고 있군.
3
화자의 목소리가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지나가는 글자로 표현되면서 성찰의 깊이가 확보된다고 볼 수 있겠군.
4
‘초생달’, ‘바구지꽃’, ‘짝새’, ‘당나귀’와의 합일을 통해 화자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성찰을 드러냈군.
해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초생달 등과의 합일을 통해 성찰을 드러냈다는 이해이다.

‘초생달’, ‘바구지꽃’, ‘짝새’, ‘당나귀’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의 예로 제시될 뿐, 화자가 이들과 하나가 된다는 내용은 없다. <보기>가 말하는 성찰의 방식도 합일이 아니라 ‘나’가 둘로 분리되는 것이다.

  • ‘이러한 글자들’을 화자 자신의 목소리로 보는 것은 적절하다. <보기>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자막으로 처리된다’고 했다.
  • 화자가 관객이 되어 지나가는 글자들을 바라본다는 것도 적절하다. <보기>의 ‘화자는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나’를 보는 관객이 된다’와 맞는다.
  • 화자의 목소리가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지나가는 글자로 표현되어 성찰이 깊어진다는 것도 적절하다. <보기>의 ‘성찰은 한층 깊이를 갖게 된다’와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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