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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가) 온달이 … | [국회직 9급 한국사] 24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국회직 9급 한국사] 24년 1회차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온달이 왕에게 아뢰었다. “신라가 우리 한강 북쪽 땅을 빼앗아 군과 현으로 만들었으므로, 백성들이 원통하여 언제나 부모의 나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불초한 신을 어리석게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한번 나가 싸워서 반드시 우리의 땅을 회복하겠습니다.” 왕은 이를 허락했다.
- 『삼국사기』 -
(나) 역적의 우두머리 흠돌, 흥원, 진공 등은 지위가 재능으로 오른 것이 아니고 관직이 실로 은혜로써 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근신하여 부귀를 보전하지 못하였다. …… 지금 이미 요망한 무리들이 말끔하게 제거되어 먼 곳이나 가까운 곳 모두에 걱정거리가 없게 되었으니, 불러 모은 군사와 말들을 마땅히 신속하게 돌려보내라.
- 『삼국사기』 -
1
진흥왕이 북한산 순수비를 세웠다.
2
장문휴가 군사를 이끌고 등주를 공격하였다.
3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4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5
을지문덕이 수의 군대를 살수에서 크게 무찔렀다.
해설

(가)는 영양왕 즉위 초 온달의 출정으로 6세기 말이고, (나)는 ‘흠돌’의 난을 진압한 신문왕 즉위년으로 681년이므로, 그 사이의 사실은 살수 대첩이다.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은 612년으로, 두 기준 사건의 사이에 들어간다.

  • 진흥왕의 북한산 순수비는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의 6세기 중후반 일로, 온달의 출정보다 앞선다.
  • 장문휴의 등주 공격은 732년 발해 무왕 때로 (나) 이후이다.
  •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427년으로 (가) 이전이다.
  • 성왕의 전사는 554년 관산성 전투로 (가) 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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