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쳐 일어나는 상황을 조성함다음 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국회직 8급 국어] 24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국회직 8급 국어] 24년 1회차
→떨쳐 일어나는 상황을 조성함
다음 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만주에 갈 때 십여 호 친족이 같이 갔다가 난리 중에 소식도 못 듣고 왔는데,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친정 사람들 소식도 혹 오가는 편에 들을 수 있었다.
시인 이육사가 북경에서 총살당했다는 소문은 한심통박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에, 또 그렇게 꿈꾸고 바라던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한 채. 그러나 조국 광복의 간절한 소망을 시로 남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 손녀가 읽어 준 육사의 시에는 그가 바라는 손님은 청포를 입고 찾아올 것이라고 하얀 모시수건을 은쟁반에 준비하라고 했다. 조국 광복을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기다렸을지를 나는 안다.
해방 이듬해 시월에 이육사의 동생들인 원일, 원조, 원창 삼형제가 내가 살고 있는 돗질에 들렀다. 묘사(墓祀)를 지내러 안동에 오는 길에 외사촌 누나인 날 보러 왔던 것이다. “우리는 국수 좋아하는데 국수 좀 해 주시려는가?” 그들 중 누가 그랬다.
“국수 좋아하면 더 좋지. 반찬 따로 안 해도 되고.”
대답해 놓고 밀가루 반죽해서 손으로 썰어 얼른 칼국수를 해 주었다. 한 그릇씩 먹고 더 먹는 걸 보고 어찌나 흐뭇했던지 모른다. 집 앞에 있는 정자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더니 벽계(碧溪) 소리 좋다고 찬사가 대단했다.
“원일이 너 거기서 시 하나 지어라.” 했더니, 그렇잖아도 쓰려던 중이라 했다. 바위틈으로 졸졸 흐르는 도랑물이 큰 바위 석곽에 일단 고였다가 다시 떨어지는 그 석천(石泉)의 운치가 보통사람에게도 예사롭진 않았다.
육사 형제는 모두 여섯이다. 원기, 원삼, 원일, 원조, 원창, 원홍이다. 원삼이가 곧 육사인데, 아명은 원록이라고도 했다. 육사는 해방되기 얼마 전에 만주에서 돌아와 서울 들렀다 북경 갔다고 했다. 그 길로 붙잡혀 그 이듬해 사형당했다. 그가 바라던 청포 입은 손님도 맞이하지 못하고 마흔 살 나이에 아깝게 갔다.
원일이하고 남편하고는 동갑이라 집에 오면 늘 항렬 따지고 생일 따지며 서로 자기가 어른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고모(육사 어머니)가 안동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의 친정 질부가 된 때문에 양쪽으로 친척이라 항렬 따지기가 좀 복잡했다.
- 허은 구술, ꡔ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ꡕ 에서 -
1
이육사는 서른아홉 살에 체포되었다.
2
이육사가 시를 지어 읊었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3
이육사의 시에서 ‘청포 입은 손님’은 조국 광복을 의미한다.
4
이육사의 어린 시절 이름은 ‘원록’이었다.
5
이육사는 ‘나’의 남편보다 나이가 많았다.
해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육사가 시를 지어 읊었다는 회상이다.
글쓴이가 시를 지으라고 권한 인물은 동생 원일이다. “원일이 너 거기서 시 하나 지어라.”라는 구절이 근거이며, 이육사 본인은 이 일화에 없다. 그는 이 일화 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 이육사가 서른아홉 살에 체포되었다는 내용은 “그 길로 붙잡혀 그 이듬해 사형당했다”와 “마흔 살 나이에”에서 알 수 있다.
- ‘청포 입은 손님’이 조국 광복을 의미한다는 내용은 손님을 기다리는 시를 조국 광복을 기다리는 마음과 연결한 대목에서 확인된다.
- 어린 시절 이름이 ‘원록’이었다는 내용은 “아명은 원록이라고도 했다”와 일치한다.
- ‘나’의 남편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내용은 남편이 동생 원일과 동갑이라는 진술에서 추론된다. 형제 순서에서 육사는 원일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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