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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역인재 9급 국어] 19년 1회차
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규장(奎章)이란 제왕의 시문이나 글씨를 이르는 말로, 규장각은 역대 임금의 시문과 글씨를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을 가리킨다. 정조는 왕실 도서관이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 등으로 부침을 겪는 것을 보고 크게 탄식했다. 그래서 즉위 이튿날, 창덕궁의 후원에 규장각을 건립하라고 명령했다. 부친인 사도세자의 폐위로 정통성이 흔들린 정조는 자신이 조선 왕실의 적통임을 분명히 한다는 뜻에서 선왕인 영조의 시문을 정리하는 일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 이렇게 정리된 선왕의 문헌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기 위하여 설립한 것이 규장각이다.
왕실에 도서관을 두는 제도는 중국 송나라 때 확립된 바 있다. 송나라에서는 용도각, 천장각, 보문각 등 독립적인 건물을 두어 황제에 따라 별도로 시문과 글씨를 보관했다. 정조는 임금별로 시문과 글씨를 따로 관리하는 송나라의 제도가 번거롭다고 여겨 하나의 궁궐 전각에 함께 봉안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어제각(御製閣)이라 했다가 세조가 직접 쓴 ‘奎章閣’이라는 액자를 현판으로 옮겨 달면서 규장각이라는 명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규장각을 설립한 사람은 정조지만 그 구상은 세조 때의 학자 양성지가 제공했다. 이러한 사실을 나중에 안 정조는 “규장각을 건립하자는 의견이 오랜 세월을 두고 합치함이 있기에 그 말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생각하려 함이다.”라고 하면서 양성지의 문집을 편찬하여 간행하게 했다. 또한 정조는 양성지의 외손 30여 명이 홍문관 요직에 등용되었던 것을 기리고자 규장각에서 『양문양공외예보(梁文襄公外裔譜)』를 편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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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즉위 초부터 왕실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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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송나라의 제도를 답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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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이라는 명칭은 정조 시대 이전에 이미 만들어졌다.
4
정조는 양성지와 그의 후손들을 기리려고 했다.
해설
정조가 송나라의 제도를 답습했다는 진술이 지문과 부합하지 않는다.
정조는 임금별로 따로 관리하는 송나라의 제도가 '번거롭다고 여겨 하나의 궁궐 전각에 함께 봉안'하도록 했으므로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다.
- 즉위 초부터 정통성 확립에 힘썼다는 진술은 '즉위 이튿날' 건립을 명하고 적통임을 분명히 하려 했다는 내용과 부합한다.
- 규장각이라는 명칭이 정조 이전에 있었다는 진술은 '세조가 직접 쓴 奎章閣이라는 액자'라는 내용과 부합한다.
- 양성지와 후손을 기리려 했다는 진술은 문집 간행과 외손의 계보 편찬이라는 내용과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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