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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원직 9급 국어] 11년 1회차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문 1 ~ 문 3】
그러한 오봉 선생이 되고 보니, 왜놈들이나 그들의 앞잡이들의 비위에 맞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소위 합방 이후 낙동강 연안의 그 질펀한 갈밭들이 모조리 동척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이내 그들의 논밭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는, 당신은 당신대로 더욱 참을 수가 없는 듯이, 툭하면 구두덜거리며 어디론지 핑 떠나기가 일쑤였다. 그러자니 사실 살림이라고는 깍듯이 돌아볼 경황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 식구들도 자연 그렇게 된 어른에게 기댈 도리가 없어지고 도리어 세상을 등진 듯 새침하게 세월을 보내는 그의 비위나 거스를까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A【 “우짜다가 화를 내실 때는 꼭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디이라. 목소리나 비미이(예사로) 큿나! ‘못난 것들!’ 하고 호통을 치실 때는 그저 온 집이 쩌렁쩌렁 울리디이라.”】
할머니는 이런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두려운 반면 자기에게는 이를 수 없이 고마운 시아버님이었다는 말도 잊지는 않았다.
“야아, 춥다, 어서 방에 들어가거라. 와 부엌 사람들한테 일을 맡기지 않고서……. ”
저녁 일이 늦을 때는 이렇게 나무람 겸 위로를 해 주시더란 것이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가벼운 한숨을 쉬곤 하였다고 한다.
B【그러나 그렇다고 며느리 가야 댁은 일을 덜 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가문의 부녀자들은 비록 굶는 한이 있더라도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기었지만, 그녀는 타고난 천성이 그러질 못했다. 집안 형편을 따라서 진일 마른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내었다. 일을 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긴다거나 꺼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찍 배우지 못한 일이라도 이내 손에 익숙해졌다. 머슴이나 부엌 식구들이 도리어 송구스럽게 여길 정도로 부지런했다. 벌써 그녀는 한다한 양반의 집 맏며느리가 아니라, 흔해 빠진 농사꾼의 마누라처럼 되어 갔다.】
남편인 명호 양반은 그저 미안스런 눈치만 보였다. 그는 소위 양반의 집 맏아들로서 층층시하에 눌려 살아온 처지라,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른들의 눈치나 살필 일이지,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실 그는 부인 가야댁보다 나이도 두어 살 아래였을 뿐 아니라 이녁 할아버지나 아버지 오봉 선생에 비하면, 위인이 그저 순하기만 했지, 아직은 무슨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시아버지 오봉 선생이 멀리 출타를 할 때는 마누라보다 자부인 가야 부인을 꼭 불렀다.
“야아, 내 옷 좀 챙겨 오너라. 여분이 한 불쯤 더 있었음 좋겠다.”
애당초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누가 따르기는커녕, 배웅도 멀리 못 나오게 했다.
“아부이 잘 다녀오이소.”
대문 밖에서 그저 이럴라치면
“오냐, 집 잘 지켜라.”
하고는 돌아도 안 보고 휭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아버지가 안 계시면 가야 부인이 실제 주인 구실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호 양반은 아직 글만 읽는 서생인 데다 시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워낙 눌려서만 살아오던 분이 돼서 매사에 자기의 의견이라고는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어머니라고 의향을 물으면,
“내가 머 아나. 니가 알아서 해라.”
고작 이런 투였다.(중략)
이런 꼴로 가야 부인의 시댁뿐 아니라 부락 자제들도 아직 신통한 해방 덕을 못 보았다. 첫째, 징용을 끌려간 사람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어쩌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거지가 되어 오거나 병신이 되어 왔다. 더구나 ‘여자 정신대’에 나간 처녀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하고 기다리는 판이었다. 그래서 부락들은 역시 걱정에 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 불행하리라 믿었던 이와모도 참봉의 집은 반대로 활짝 꽃이 피었다. 고등계 경보부로 있었던 맏아들은 해방 직후에 코끝도 안 보이고 어디에 숨어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만 떠돌더니, 뜻밖에 다시 경찰 간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몇 해 뒤엔 어마어마하게도 국회 의원으로 뽑혔다.
명호 양반은 아버지 오봉 선생을 닮아서 다시 두문불출을 하다시피 구겨지고, 아들 가운데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 막내도 결국 반거충이가 되어 어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애닯기도 하제. 즈그 할배나 징조할배가 그렇기 훌륭하고 독립운동도 많이 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들 안타까워했다. 양 접장이 살아 있었더람 뭐라고 할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궁금하게 여겼다. 가야 부인의 머리에 흰털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막내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땐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천수나 치고 미륵당에 나가면 미륵불 앞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곧잘 자줏빛 모란꽃잎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석이 안 왔나?”
C【가야 부인은 겨우 눈을 뜨고 또 뜨곤 막내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멀리서 또 포성이 쿵 울려 왔다.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가야 부인은 무슨 말이라도 할 듯이 입을 약간 우물하다 만다. 이마에서 잇달아 솟는 땀이 드디어 그녀의 최후를 알리는 것 같았다. 】
-김정한, ‘수라도(修羅道)’

밑줄 친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죽음의 공포
2
소망의 좌절
3
새로운 희망
4
실연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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