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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원직 9급 국어] 13년 1회차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문18∼문20】
(가)“그렇다면, 자넨 우리들이 논의를 통해서 말한 그러한 것들이 실제로 전적으로 실현되는 걸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내게 강요하지는 말게나. 오히려 자네로선, 한 나라가 어떻게 하면 앞서 언급된 바에 가장 가깝게 다스려질 것인지를 우리들이 발견할 수만 있다면, 이로써 자네가 그 실현을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 실현 가능한 것들로 우리들이 확인한 것으로 인정하게. 아니면 자네는 이런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겠는가? 나로서는 실로 그 정도로 만족하겠네만.”
“저 역시 만족하겠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했네.
“그러면 그 다음으로 우리들이 찾아서 보여주도록 해야 할 것은, ㉠현실의 나라들에 있어서 잘못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엇이 이들 나라들로 하여금 그런 식으로 다스려지지 못하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최소의 것으로 무엇이 변혁을 봄으로써 한 나라가 이런 유형의 국가 체제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인지 하는 것일 것 같네. 이 경우의 변혁으로는 한 가지 것이면 제일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두 가지 것들이나, 이로써도 안 된다면, 가능한 한 적은 수의 하찮은 변혁이면 되겠네만.”
“그야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데 내 생각으론 단 한 가지 것의 변혁을 통해서도 그런 변화를 볼 수 있음을 우리들이 보여줄 수 있을 것같이 여겨지네. 그렇지만, 그건 작은 것도 쉬운 것도 아니나, 가능한 것일세.” 내가 한 말일세.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건 무엇인가요?” 하고 그가 물었네.
“이제 나는 앞서 가장 큰 파도에 비유했던, 바로 그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네. 그렇지만 비록, 마치 파도가 덮치듯, 꼼짝없이 웃음거리가 되고 치욕을 듬뿍 뒤집어쓰는 한이 있을지라도, 말하게 될 걸세.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말하려는 것을 유의해서 들어주게나.” 내가 말했네.
“말씀하세요.” 하고 그가 말했네.
“㉡철학자들이 그들의 나라들에 있어서 군주들로 되거나 아니면 현재 군주 또는 지배자로 불리는 이들이 참으로 그리고 충분히 지식 또는 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권력과 철학(지혜의 사랑)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따로따로 향해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당하게 되지 않는 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아니 내 생각으로는, 인류에게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네. 그렇게 되기 이전에는, 지금껏 우리들이 말해온 그러한 국가 체제가 가능한 한도까지 성장하여 햇빛을 보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걸세. 실은 이게 벌써부터 나로 하여금 발설하기를 망설이게 한 그것일세. 그건 굉장히 역설적인 언급이 될 것이라는 걸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세. 왜냐하면 다른 어떤 방책도 개인적으로건 또는 공적으로건 행복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깨닫기란 힘든 일이니까.” 내가 한 말일세.
- 플라톤, 국가
(나)내가 확신하는 바로는, ㉢플라톤은 정치 문제를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또는 ‘누구의 의지가 지고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등의 형태로 나타냄으로써 정치 철학에 있어서 계속적인 혼란 상태를 야기시켰다. 그것은 플라톤이 앞장서서 논한 바와 같이 도덕 철학 영역에서 집단주의와 이타주의를 동일시함으로써 불러일으킨 혼동과 사실상 흡사하다. ‘누가 통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일단 제기되면, ‘최고의 선인(善人)’이나 ‘최고의 현자’ 또는 ‘타고난 통치자’나 ‘지배 기술에 숙달한 자’ (혹은 ‘일반 의지’나 ‘주인 종족’이, 또는 ‘산업 노동자’나 ‘인민’)가 통치해야 한다는 등의 대답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설득력이 있는 것같이 들리지만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와 같이 아무런 쓸모없는 대답이다. 누가 ‘최악인’이나 ‘가장 어리석은 바보’나 ‘타고난 노예’의 지배를 옹호하겠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런 대답은 정치 이론의 근본적인 몇 가지 문제는 해결된 것이라고 믿게 하기가 쉽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정치 이론에 접근해 본다면, 어떤 근본적인 문제를 풀었다기보다는 ‘누가 통치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근본적인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문제를 단지 간과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이런 가정을 믿는 자들까지도 정치적인 지배자들이 항상 충분히 ‘선(善)’하거나 ‘현명(賢明)’ (이런 낱말의 엄격한 의미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하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선하고 현명한 정부를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정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제기된다. 정치 사상은 처음부터 나쁜 정부의 가능성을 탐구해서는 안 되는가? 우리는 최악의 지배자에 대비하고, 최선의 지배자를 희망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초래한다. 그것은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하는 질문 대신에 ‘우리는 나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를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 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중략>
통치자에 대한 제도적 통제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정부가 언제나 선하거나 현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상은 가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에 관해 약간 언급했으므로, 이런 가정보다 조금 더 넘어서고 싶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통치자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평균 이상인 자가 거의 없었고, 더러는 평균 이하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물론 최선의 통치자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에 있어서 최악의 통치자에 대비한 원칙을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탁월하고 유능한 통치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에 우리의 모든 정치적 노력을 건다는 것은 나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인다.
-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에서 (가)의 주제문과 (나)의 주제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 ㉤
2
㉡, ㉤
3
㉠, ㉢
4
㉡, ㉣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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