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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원직 9급 국어] 16년 1회차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문14∼문17]
(가) 국화에게는 서리를 이겨내는 높은 절개가 있기 때문에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이 꽃을 사랑한 것이다. 도잠이야말로 은일인(隱逸人)이다. 이 꽃을 가리켜, 주무숙(周茂叔)이 은일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은일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지, 국화 자신은 실로 은일하지 않다. 왕궁, 귀인 부호가로부터 여염의 천한 선비에 이르기까지 뜨락이나 동산에 심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고금의 시인 문사들이 가사나 서설을 지어 훌륭히 찬양했으며, 또 화가들은 아름답게 그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유몽(劉蒙), 범지능(范至能), 사정지(史正志), 왕관(王觀) 등은 그 종류를 빠짐없이 모아 국보(菊譜)를 만들었으니, 과연 국화를 보고 바위와 숲이 어울린 험한 빈터에 깊숙이 숨어 삶으로써 사람들이 그 이름을 모르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혁혁한 그 명성은 모란보다 더 높다. 그러니 참으로 꽃 중에서 은일은 ‘어상(禦霜)’이라 하겠다.
이 꽃은 담홍색으로 송이가 많으며 잎은 국화와 같은데 줄기가 약간 가늘다. 늦가을에야 비로소 피며, 서리가 내릴수록 그 빛깔이 더욱 선명하니, 아마 도잠이 이 꽃을 보았다면 그 사랑이 국화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된 연유로 지금토록 아름다운 빛깔과 높은 은일의 덕을 홀로 간직하고, 세상에 그 이름을 숨기고만 있을까.
나 역시 이제야 이 꽃을 보았으니 이와 같은 종류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필시 깊숙한 산 언덕 쑥대와 넝쿨이 엉킨 사이에 ㉠절개를 가진 꽃들이 어상처럼 숨어 살고 있을 것이다. 참답게 산야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이런 꽃들을 알겠지만, 설령 알고 있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꽃들이 도잠처럼 글을 지어 이름을 널리 드러내주기를 바라랴.
(나) 안도현의 시에 「무식한 놈」이라는, 제목부터 재미있는 시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를 지목하여 읽어 보라며 어떤 분이 이 시인의 시집을 제게 선물했는데 재미있게 읽히는 시였습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절교를 선언하는 그 단호함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여”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하는 착상도 기발한게 재미있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걸로 절교를 하겠다면 절교 안 당하고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 시를 읽으며 저도 움찔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실물로는 구별하고 또 이들이 다른 이름으로 구별된다는 것까지는 알았으나 그 정확한 이름은 몰랐으니까요. 요즈음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하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꽤 무식한 놈이었지요.
<중략>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시인이 1989년에 쓴 수필에서 산수유나무를 보았다고 한 이야기도 저는 왠지 미심쩍습니다.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박목월의 시 「귀밑 사마귀」에 나오는 “산수유 꽃 노랗게 / 흐느끼는 봄마다”를 읽고 산수유 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꽃일까 하고 궁금했으나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오랜 세월 잊고 있다가 근자(近者)에 혼자서 자주 오르내리는 능선(稜線) 길을 가다가 우연히 시야에 들어온 꽃나무를 보고 그게 산수유임을 알아챘다는 것입니다.
책을 뒤져 그 특징을 확인했다고 했는데도 저는 이상하게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능선 길에서 보았다는 것이 우선 마음에 걸립니다. 이분이 자주 오르내린 능선 길이 어떤 지리적인 조건의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능선에 있었으면 생강나무이기가 쉽고 산수유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분은 산수유의 열매를 “가을에 홍색으로 익는다고 하나 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주 오르내린 길에서 산수유 열매가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것도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 아닌가요? 역시 생강나무였기 때문에 열매를 못 본 것이 아닐까, 그 선연하게 반짝이는 산수유 열매가 어찌 눈에 안 뜨일 수 있었겠느냐 그런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봄에 관악산에서 생강나무를 찍고 있는데 한 등산객이 혼잣말로 산수유다 그러더군요. 제가 산수유가 아닌데요 했더니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럼 무슨 꽃이냐고 묻기를 기다렸는데(그러면 숲 해설가 행세를 좀 해보려 했는데) 그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그냥 가버렸습니다.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은 아마 일반인들이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종류에 속할 것입니다. 정말 이것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무식한 놈이라거나 절교하겠다든가 하는 일은 지나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니 만일 앞의 안도현 시인도 누가 생강나무를 산수유나무로 혼동하였다고 하면 그건 애교로 보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데 좀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가)의 글쓴이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바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국화와 어상의 생태학적 차이
2
시인이 사랑하는 꽃들의 특징
3
국화보다 진정 은일한 꽃인 어상
4
서리를 이겨내는 국화의 높은 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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