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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법원직 9급 국어] 23년 1회차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문6∼문8]
(가)
시원한 여름 저녁이었다.
바람이 불고 시커먼 구름 떼가 서편으로 몰려 달리고 있었다. 그 구름이 몰려 쌓이는 먼 서편 하늘 끝에선 이따금 칼날 같은 번갯불이 번쩍이곤 했다. 이편 하늘의 별들은 구름 사이사이에서 이상스레 파릇파릇 빛났다. 달은 구름 더미를 요리조리 헤치고 빠져나왔다가는, 새로 몰려오는 구름 더미에 애처롭게도 휘감기곤 했다. 집집의 지붕들은 깊숙하고도 싸늘한 빛으로 물들고, 대기에는 차가운 물기가 돌았다.
땅 위엔 무언지 불길한 느낌이 들도록 차단한 정적이 흘렀다.
철과 나는 베란다 위에 앉아 있었다. 막연한 원시적인 공포감 같은 소심한 느낌에 사로잡혀 무한정 묵묵히 앉아 있었다. 철은 먼 하늘가에 시선을 준 채 연방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한동안 말없이 앉았다가 철은 문득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
형은 스물일곱 살이었고 동생은 스물두 살이었다.
형은 둔감했고 위태위태하도록 솔직했고, 결국 조금 모자란 사람이었다.
해방 이듬해 삼팔선을 넘어올 때 모두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판에 큰 소리로,
“야하, 이기 바루 그 삼팔선이구나이, 야하.”
이래 놔서 일행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도 형을 쥐어박았고, 형은 엉엉 울었고, 어머니도 찔끔찔끔 울었다. 아버지는 애초부터 이 형을 단념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불쌍해서 이따금씩 찔끔거리곤 했다.
물론 평소에 동생에 대한 형으로서의 체모나 위신 같은 것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이미 철들자부터 형을 대하는 동생의 눈언저리와 입가엔 늘 쓴웃음 같은 것이 어리어 있었으니, 하얀 살갗의 여윈 얼굴에 이 쓴웃음은 동생의 오연한 성미와 잘 어울려 있었다.
어머니는 형에 대한 아버지의 단념이나 동생의 이런 투가 더 서러웠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동생의 표정에 구애 없이 하루하루가 그저 천하태평이었다.
사변이 일어나자 형제가 다 군인의 몸이 됐다.
1951년 가을, 제각기 북의 포로로 잡혀 북쪽 후방으로 인계돼 가다가 둘은 더럭 만났다. 해가 질 무렵, 무너진 통천(通川)읍 거리에서였다.
형은 대뜸 울음보를 터뜨렸다. 펄렁한 야전잠바에 맨머리 바람이었고, 털럭털럭한 군화를 끌고 있었다.
동생도 한순간은 흠칫했으나, 형이 울음을 터뜨리자 난처한 듯 살그머니 외면을 했다. 형에 비해선 주제가 조금 깔끔해서 산뜻한 초록색 군 작업복 차림이었다.
(다)
동생의 눈에선 다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형은 별안간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동생의 얼굴을 멀끔히 마주 쳐다보더니,
“왜 우니, 왜 울어, 왜, 왜. 어서 그치지 못하겠니.” 하면서도 도리어 제 편에서 또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튿날, 형의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절름거렸다. 혼잣소리도 풀이 없었다.
“그만큼 걸었음 무던히 왔구만서두. 에에이, 이젠 좀 그만 걷지덜, 무던히 걸었구만서두.”
하고는 주위의 경비병들을 흘끔 곁눈질해 보았다. 경비병들은 물론 알은체도 안 했다. 바뀐 사람들은 꽤나 사나운 패들이었다.
그날 밤 형은 동생을 향해 쓸쓸하게 웃기만 했다.
“칠성아, 너 집에 가거든 말이다, 집에 가거든…….”
하고는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쭉 웃으면서,
“히히, 내가 무슨 소릴 허니. 네가 집에 갈 땐 나두 갈 텐데, 앙 그러니? 내가 정신이 빠졌어.”
(라)
한참 뒤엔 또 동생의 어깨를 그러안으면서,
“야, 칠성아!”
동생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쳐다보기만 했다.
바깥은 바람이 세었다. 거적문이 습기 어린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곤 하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눈 덮인 초라한 들판이 부유스름하게 아득히 뻗었다.
동생의 눈에선 또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형은 또 벌컥 성을 내며,
“왜 우니, 왜? 흐흐흐.”
하고 제 편에서 더 더 울었다.
며칠이 지날수록 형의 걸음은 더 절룩거려졌다. 행렬 속에서도 별로 혼잣소릴 지껄이지 않았다. 평소의 형답지 않게 꽤나 조심스런 낯색이었다. 둘레를 두리번거리며 경비병의 눈치를 흘끔거리기만 했다. 이젠 밤에도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고 이것저것 지껄이지 않았다. 그러나 먼 개 짖는 소리 같은 것에는 여전히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 동생은 또 참다못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형은 왜 우느냐고 화를 내지도 않고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동생은 이런 형이 서러워 더 더 흐느꼈다.
(마)
그날 밤, 바깥엔 함박눈이 내렸다.
형은 불현듯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댔다.
“너, 무슨 일이 생겨두 날 형이라구 글지 마라, 어엉”
여느 때답지 않게 숙성한 사람 같은 억양이었다.
“울지두 말구 모르는 체만 해, 꼭.”
동생은 부러 큰 소리로,
“야하, 눈이 내린다.”
형이 지껄일 소리를 자기가 지금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이미 형은 그저 꾹 하니 굳은 표정이었다.
동생은 안타까워 또 울었다. 형을 그러안고 귀에다 입을 대고,
“형아, 형아, 정신 차려.”
이튿날, 한낮이 기울어서 어느 영 기슭에 다다르자, 형은 동생의 허벅다리를 쿡 찌르고는 걷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형의 걸음걸이를 주의해 보아 오던 한 사람이 뒤에서 따발총을 휘둘러 쏘았다.
형은 앉은 채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사람은 총을 어깨에 둘러메면서,
“메칠을 더 살겠다구 뻐득대? 뻐득대길.”
- 이호철, <나상> -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것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보 기 >
‘나상’은 벌거벗은 모습이라는 뜻으로,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상태를 말한다. 이 소설은 전쟁 중 포로 호송이라는 상황을 빌려 구성원을 획일화하는 사회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의 감시, 전쟁의 폭력성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전쟁 상황에서 근원적인 인간성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있다.
1
모자라지만 ‘둔감하고 위태위태하도록 솔직했’던 형은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인물로 볼 수 있겠군.
2
형이 ‘경비병의 눈치를 흘끔거리기만’하는 모습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의 감시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겠군.
3
‘형이라구 글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구성원을 획일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겠군.
4
한 사람이 ‘따발총을 휘둘러 쏘’는 장면에서 전쟁의 폭력성과 근원적인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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