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대황제 … | [계리직 한국사] 19년 1회차 기출문제 상세 페이지
1[계리직 한국사] 19년 1회차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대황제 폐하께서 갑오년 중흥(中興)의 기회를 맞아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정하시고 새로이 경장(更張)하는 정령(政令)을 반포하실 때에 특히 한문과 한글을 같이 사용하여 공사 문서(公私文書)를 국한문으로 섞어 쓰라는 칙교(勅敎)를 내리셨다. 모든 관리가 이를 받들어 근래에 관보와 각 부군(府郡)의 훈령, 지령과 각 군(各郡)의 청원서, 보고서가 국한문으로 쓰였다. 이제 본사에서도 신문을 확장하려는 때를 맞아 국한문을 함께 쓰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황제 폐하의 성칙(聖勅)을 따르기 위해서이며, 또한 옛글과 현재의 글을 함께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함이다.
- 「(가)」 창간사 -
<보기>
ㄱ. 경술국치 이후 강제로 「한성신문」으로 바뀌어 발행되다가 폐간하였다.
ㄴ. 천도교 기관지로 창간되었으며 인민의 교육을 강조하고 반민족적 행위 등을 규탄하였다.
ㄷ. 1898년 8월 창간한 일간지로 개화 문명의 수용을 통해 근대 사회를 건설하고자 국민 계몽에 주력하였다.
ㄹ. 1898년 9월에 창간되어 광무 정권이 표방한 ‘구본신참’의 원칙에 따라 온건하면서도 점진적인 개혁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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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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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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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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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
해설
국한문 혼용을 밝힌 창간사의 (가)는 황성신문이며, 경술국치 뒤 한성신문으로 바뀌었다가 폐간된 것과 1898년 9월 창간되어 구본신참에 따른 점진 개혁을 제시한 것이 옳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 일간지로 유학 지식층을 주 독자로 하였으며, 을사늑약 때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었다.
- 천도교 기관지로 창간된 신문은 『만세보』이다.
- 1898년 8월 창간되어 순한글로 서민·부녀자 계몽에 힘쓴 일간지는 『제국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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